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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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귀신 들린 아이』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1권이 18년에 걸쳐 출간됐다고 하지만 각 권마다 독립된 사건을 다루니만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독자처럼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나 지명 및 역사적 용어 등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명으로 나오는 도시, 성당, 수도원 및 수도원장 이름 등에 대해서 헛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백과사전이나 교회용어사전을 찾아 뒤질 필요는 없다. 이 책 뒷 부분에 주(註)를 저자 엘리스 피터스가 따로 지면을 할애해 별도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귀신 들린 아이』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기 1140년 9월 중순, 슈롭서의 두 영주, 즉 슈루즈베리 북쪽에 사는 영주와 남쪽에 사는 영주가 같은 날 수도원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왔다. 각각 자기 집안의 아들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교단으로 들어왔고, 다른 한 아이는 거부되었다. 수도원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원래 성 베드로에게 헌정된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 11세기 후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에게 헌정한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어느 날 귀족 가문의 젊은 청년 메리엣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수도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이 청년은 수도사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고, 수도원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고, 이를 목격한 다른 수도사들은 그의 영혼이 고통 속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특히 메리엣이 악몽을 꾸는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간다. 메리엣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의 이상한 행동은 수도원 전체에 불안을 안겨준다.

이 와중에 왕의 특사로 활동하던 한 성직자가 인근 지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성직자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터라, 그의 실종은 지역 내에서 큰 논란이 된다. 실종된 성직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메리엣의 이상 행동과 실종된 성직자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한 캐드펠 수사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수차례의 탐문 끝에 캐드펠 수사는 귀족 가문 내에서 벌어진 갈등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제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숯으로 화한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주위에 매캐한 재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가 싶더니, 나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메리엣의 발치께로 굴러떨어졌다. 얼핏 보아서는 식별하기 힘들 만큼 까맣게 그을리고 갈라진, 바싹 마른 가죽으로 된 물건. 기다란 앞부리에 변색된 버클이 고정되어 있는 승마화였다. 그 승마화에서 길고 딱딱한 것, 불에 타 너덜거리는 넝마들 사이로 상아처럼 하얗게 빛나는 어떤 것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메리엣은 영문을 모르고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p.180~181)

저자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인 캐드펠 수사의 요즘 말로는 탐정이나 수사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캐드펠 수사는 약초를 이용한 범죄부터,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 내전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까지, 중세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갈등을 손에 잡힐 듯 잘 파악하고 있다. 중세의 수사는 모든 일의 중심이 수도원에 의해 처리되고 수도원이 일반인들의 중심에 있다. 종교적 중심일 뿐 아니라 경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수도원 중심의 중세 사회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심지어는 전쟁에도 관여하는 권력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살인 사건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의 중심엔 늘 수도원이 있는 사회다. 이를 저자 피터스는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들은 고도의 지적 게임 같은 살인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중세 시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게 독특한 재미와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했다고 알렬져 있어 이 경험이 소설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됐을 거란 추정은 쉽게 가능해진다.


"청년 곁에서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두드리는 연인 또한, 청년과 짝을 이룰 만한 여자였다. 쭉 뻗은 날씬한 몸매에 제 오빠를 닮은 외모. 오빠의 훤칠하고 매혹적인 면면이 우아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한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고왔으며, 눈은 오빠 못지않게 맑고 푸르렀다. 붉은빛이 감도는 곱슬곱슬한 금발이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 양쪽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으로 메리엣이 성직자가 되고자 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 셈일까? 메리엣은 사랑에 좌절한 나머지, 그리고 형의 행복에 실낱만큼의 슬픔이나 고통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으려는 마음에 여자들이 없는 세계로 미친 듯 도피하려 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제 고통과 번민의 상징을 수도원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일까?"(p.126~127)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인간의 도덕적 갈등, 죄책감과 구원을 다룬 작품으로,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 구성력과 깊이 있는 심리 탐구가 눈에 띄는 소설이다. 여덟 번째 작품 『귀신 들린 아이』는 수도원에 들어온 신입 견습 수사의 어두운 비밀에 접근해 들어가는 스토리다. 저자 피터스는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 중세 사회의 다양한 모습 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창출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이들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성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기를 끈 이유다.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견습 수사의 괴성과 고함으로 수도원 내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슈루즈베리를 지나던 한 사제가 돌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캐드펠 수사는 사건을 밝히는 일에 뛰어든다. 캐드펠은 동떨어진 두 사건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예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황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신앙, 그리고 죄책감이다. 메리엣이라는 인물은 수도원에 들어옴으로써 과거의 죄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지만, 죄책감은 그를 밤마다 괴롭히고 그의 심신을 망가뜨린다. 캐드펠 수사는 사회의 법과 질서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진실에 더 깊은 가치를 두고 사건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데, 그가 고심한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과 심리적 깊이가 돋보인다. 추리소설적 재미뿐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 죄책감과 용서의 의미를 다룸으로써 짙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다면적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는 데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스티븐 국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왕위 계승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2세기 중세 잉글랜드로, 정치적 음모와 전쟁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소설 속 사건들을 일으키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던 캐드펠은 각종 살인사건과 비극의 진실을 좇게 된다.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캐드펠 수사는 완전무결한 순백의 성직자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치밀한 추리력과 과감한 행동력을 발휘하면서도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며, 인간의 심리, 선과 악, 정의와 용서의 복잡한 본질을 탐구한다. 이러한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면모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죄와 용서, 정의와 자비 등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캐드펠 수사가 신념과 연민 사이에서 매순간 갈등할 때마다 독자들도 그 고뇌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문학적 성찰까지 아우르는 역사추리소설의 원형이자 ‘지적 미스터리’ 고전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이 같은 특성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밀리언셀러로, 영국 BBC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장장 18년 동안의 집필 끝에 1994년에 완성됐으며, 국내에선 1997년에 처음 소개됐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개정판은 쉽게 읽히는 문장,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치밀한 추리의 세계, 생생한 묘사 등 원텍스트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편집하였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역사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이후 21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건 사실입니다.” 캐드펠은 조용히 대꾸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직접 얘기해보고도 모르겠습니까? 하긴, 그건 당신도,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다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죽음이라는 병을 안고 나오잖습니까. 태어난 날부터 내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셈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겁니다. 당신도 그 아이의 말을 들었죠. 그는 자기가 피터 클레멘스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와 마크 수사, 그리고 휴 베링어를 빼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메리엣은 사법 당국에서 자기를 중범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그 헛간이 곧 감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에게 분명히 얘기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애스플리. 그의 자백을 들은 우리 셋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마음 깊이 확신하지요. 그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이 그 얘기를 들은 네 번째 사람이자 그가 죄인이라 믿는 유일한 사람입니다.”(pp.274~275)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움베르토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쌓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39년 첫 소설 『네로의 친구 호르텐시우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시작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의 한 권인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았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문학적 성취와 함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드러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손꼽힌다.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슈롭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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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 눈과 귀로 느끼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김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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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은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독자는 클래식에 접근한 지 5년이 되었다.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라디오 방송부터 들었다. 처음엔 낯설고 기초 지식도 없어서 무작정 듣기만 했다. 무슨 곡인지 누구의 곡인지는 아예 기억하지 않았다. 그냥 라디오를 켜놓고 늘 옆에 있는 '소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1년쯤 되니 자주 듣던 곡은 제목이나 작곡가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굳이 따로 공부하거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방송에서 가끔씩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정보가 여러 번 반복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워낙 부족했기에 악보 보는 법도 몰랐고, 어떤 환경에 어울리는지 곡의 내용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작곡의 배경도 가끔 설명해주는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의존했다. 열정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쉽사리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음악 수준을 크게 높여 주었다. 입문자를 위한 음악 감상 책이었는데 쉽기도 하거니와 작곡 배경에 대해 읽고 곡을 찾아 들어보니 이해도 훨씬 쉬었다. 그렇게 서서히 작곡가의 생애와 관한 책도 읽게 됐고, 최근엔 작곡가별 곡을 한데 모아 몇 개 곡을 꽤 자세히 해석해 주는 책도 읽었다. 아는 척하긴 힘들어도 음악만 들어도 아는 곡이 꽤 많아지면서 더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올 초로 기억되는데 여느 날처럼 클래식 방송에서 임윤찬의 수상 소식을 방송 진행 아나운서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누군데?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어린 피아니스트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러니 수상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했다. 클래식 방송은 오랫동안 임윤찬의 수상 소식과 그의 연주 실력 등에 대해 초대 손님의 이야기를 통해 방송했다. 그리고 가끔씩 그의 피아노 연주곡을 방송을 통해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감동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독자의 '귀'가 막혔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의 힘과 빠르기 등이 다른 음을 낸다는 것도 이때서야 알게 됐다. 독자는 불행하게도 음감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음악을 멀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들 치는 고등학교 시절 기타도 배우지 않았다. 독자는 늘 거리를 두면서 대중 음악과 친하지 못했다. 학문이나 예·체능이나 사전에 열심히 연습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학 문제도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끊임없이 풀어가면서 익힌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라서 다르겠는가? 물론 타고난 소질이란 것도 예술 분야에서는 필요할 터다. 그러나 능력과 실력을 가르는 것은 '피나는 연습'이란 사실은 수없이 들어왔다. 

이 책 『더 클래식』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와 캐릭터를 재조명하는 취지로 집필됐다. 저자 김호정은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고 한다. 출신학교도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니 음악인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17년 동안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담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전문기자'인 것 같다. 17년 간의 기자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인과 음악곡, 무대 등 엄청난 예술 감각의 소유자일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전 음악가 16인의 스타일을 분석한다. 이미 전설이 된 선구자 백건우, 정경화, 정명훈, 조수미, 진은숙을 비롯해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거장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등 국내 동시대 음악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연주가 왜 좋은 건지, 음악가들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추구한다.

저자는 클래식은 재연의 예술이라 말을 인용한다. 수백 년 된 음악을 자꾸 연주하는 이유는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자마다, 지휘자마다, 작곡가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면 클래식을 듣는 귀가 생길 것이다. 정확한 지적인 것 같다. 앞서 독자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은 제대로 듣는 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이 책 『더 클래식』은 클래식을 듣고 싶은데 어디에서 시작할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이들이나 특정 연주자에 관심이 생겨 구석구석 해부해 보고 싶은 이들, 유명한 음악가들이 왜 유명한지 궁금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북으로 썼다고 밝힌다. 가장 쉽고도 분명한 클래식 가이드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썼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음악은 왜 좋을까?」란 제목의 〈서문(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음악가였다면 이런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지만 기사를 쓰고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인생을 살면서, 음악을 말로 풀어내지 못하면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떤 멜로디나 특정한 화음을 듣고 벅찬 감동을 느꼈던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집필 이유를 밝힌다. 음악가들이 인간의 감정과 신념을 음악으로 코딩한다면, 자신은 디코딩하는 작업을 해본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컨대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왜 이렇게 좋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궁금해 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란 희망에서 책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다. 또 그렇게 알게 되는 음악가들 사이의 차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음악가마다 다른 방식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저자는 같은 곡을 놓고도 음악가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상상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판이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오래된 악보를 놓고 수백 년 동안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생각이 클래식 음악의 생명력을 설명하는 자신의 접근법이라 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3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1장(章)에는 저자 김호정이 청중으로서 편애하는 피아니스트들을 따로 모았다. 백건우,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국내 음악가 4인, 정경화, 정명훈, 진은숙, 조수미를 각각 조명하며 화제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및 한국의 10대 영재 음악가 3명(김서현, 김정아, 이하느리)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20세기의 추억을 부르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옛 음악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레너드 번스타인,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깊숙이 파고든다. 이 중에서 백건우, 호로비츠, 번스타인, 파바로티의 글은 〈더중앙플러스〉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오로지 이 책 『더 클래식』 단행본에만 특별히 수록되었다고 한다. 

독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왜 상을 받았을까?에 대해 피아노를 잘 치니까!란 대답 이외의 다른 이유는 전혀 모른다. 클래식 입문자 수준이 이유를 알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임윤찬과 그의 연주곡을 조금 더 음악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많은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위해 쓰여졌다. 클래식 입문자에게는 쉽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이 책이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건데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정도의 대답이라면 아직 입문자 수준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독자로서는 분발에 불을 당기는 셈이다. 

왜 어떤 연주는 재미있게 들리고 어떤 연주는 잔잔하게 귀를 지나가는지, 왜 이 음악가는 이런 소리를 냈고 그 순간 무엇을 추구한 것인지 이 책은 세밀하게 조명한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임윤찬은 또 이전에 다른 연주자들에게서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강조하려는 본능도 보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비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우아한 음색이 특징이며 시종일관 기품 있고 귀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술 점수 만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테크닉적으로 완벽하다는 점을 짚어내고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의 ‘딕션 장인’이다. 모든 음표가 정확하게 귀에 꽂히는데 이는 절대음감이 극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는 알기 힘들었던 고전 음악가들 고유의 스타일을, 명확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중앙일보의 유료 구독 플랫폼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김호정의 더 클래식’을 새롭게 구성해 엮었다. 당시 구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세계를 가이드해 주는 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분석” “왜 어떤 연주는 끝까지 몰입하여 듣게 되는지 정확히 알게 하는 기사” “한국에도 이런 클래식 기사가 있어 행복해요” 등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잡은 보기 드문 클래식 시리즈였다고 평가되었다.

이 책 『더 클래식』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콘텐트라는 점이다. 글에서 설명하는 딱 그 부분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것을 들으며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모두 117개의 엄선한 클래식 음원과 영상을 QR코드로 수록해 독자들의 입체적 감상을 돕는다.

임윤찬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는 그를 ‘건반 위의 피카소’로 명명한다. 과감하게 해체하고, 강렬하게 조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연주자가 주 선율에 힘을 준다면, 임윤찬은 잘 들리지 않는 왼손 반주나 화음의 아랫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낯선 음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는데, 그 충격과 새로움이 청자를 전율케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윤찬의 연주를 오선지 악보로 시각화해서 건반 위의 피카소임을 증명한다. 언급한 대로 저자가 지적한 '다른 소리' 부분을 잡아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공로는 연주자에게 돌아간다. 다만 저자는 QR코드를 끼워넣어 독자가 읽은 것과 함께 들으며 비교 가능하도록 책을 구성했다. 

음악가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알려준다. 예컨대 언제나 정교한 연주자인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틀린 음도 개의치 않고 전진하는 임윤찬의 베토벤 영웅 변주곡 13번째 연주를 나란히 들어본다. 그러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에마르의 정갈한 열정과 임윤찬의 휘몰아치는 격정을 비교할 수 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는 독자로서는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준에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에 대한 지식보다도 소질 자체가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크게 상관할 건 없다. 독자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애호가 수준이면 만족하니까. 그래도 저자의 주장에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말도 있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고, 자기만의 해석이 있는 연주자가 많아질수록 듣는이의 기쁨은 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치밀한 분석과 다양한 음악가 인터뷰를 통해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클래식 감상법을 제시한다. 

소리의 빛깔이나 질감을 읽어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은 왜 해상도가 높은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리엔 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는지, 성악가 조수미가 깨끗한 물처럼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음악을 언어화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음악가들의 삶과 철학을 경유해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피아노 전공자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 대부분을 인터뷰해 온 저자의 내공과 성실함이 그걸 가능케 했을 터다. (임윤찬 단독 인터뷰도 실려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이 책이 추천하는 명연주를 차례대로 음미하며, 음악이 주는 축복과 감동을 온전히 느껴보자. 올 가을은 클래식 향기가 가득한 특별히 기억에 남을 가을이 될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이런 재능이 음악에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손열음 음악의 빛깔에 답이 있습니다. 같은 음을 누를 때도 그의 소리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표현이 됩니다. 똑같은 음표도 그에게는 다 다르게 들린다는 거죠. 그래서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다양한 빛깔이 쏟아져 나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p.29) - 「손열음: 정확한데 유연하다」 중에서


“믿을 수가 없군. 네 노래는 꼭 깨끗한 물 같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한 말입니다. 1987년 25세이던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고 나서죠. 죽음을 두 해 앞둔 카라얀은 앞날을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조수미를 봅니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남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p.152) - 「조수미: 신이 허락한 ‘맑음’」 중에서


저자 : 김호정


음악 하는 인생이 일반적인 줄 알고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 언론정보학, 공연예술학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찰팀·시청팀, 산업부 유통팀에서 일했다.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예술의 풍요함을 신봉한다. 더 많은 사람이 풍족하게 음악을 듣도록 돕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이며, JTBC의 클래식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를 기획·진행했다.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 라이브스트리밍, 문화재청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의 사회를 맡았다. 중앙일보 칼럼 ‘왜 음악인가’, 오디오 콘텐츠 [고전적 하루], JTBC 동영상 [헤이뉴스]의 ‘헤이 클래식’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공연 전반에 걸쳐 글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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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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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논리학'이란 단어는 우리가 사회에서 많이 사용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오히려 사용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야 교양과목으로 선택해 '철학' 수업을 한 한기 들은 게 전부다. 교재 『철학개론』을 배울 때 논리와 논리학이란 단어가 수 차례 사용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철학 수업 몇 시간 들었다고 논리학은커녕 논리란 단어 자체의 개념 확립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리고 '논리'와는 멀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학교 다닐 때는 잘 쓰지 않던 단어가 사회 생활할 때 훨씬 자주 사용된다. 어떻게 논리나 논리학을 배우지 않았는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하고,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논리학을 배우지 못했던 독자로서는 아직도 궁금하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독자는 지금도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곤 '논리'의 정확한 뜻과 논리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도 알지 못한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언젠가 문학 시간을 통해 배운 것 같고, 윤리학은 철학서나 동양고전 등에서 워낙 자주 나오는 말이라 뜻 정도는 알게 됐다. 논리학(logic, 論理學)이란 인간의 지식활동에 관련된 특정한 종류의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며 이들을 체계화하는 분야의 학문이란 사전적 풀이를 빌리지 않더라도, 설명하진 못하지만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의 논리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 책 『생각의 기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논리와 논리학에 조금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이미 책을 읽은 독자가 '도움을 준다'라는 확정적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워낙 논리학에 문외한인 탓에 굉장히 쉽게 쓰인 책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의 앞 부분(약 70페이지)는 정말 쉽게 읽힌다. 책의 〈서문〉과 〈논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다. 독자처럼 한 번 읽어서 완전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책을 덮지 말고 볼펜을 사용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체크하고 다시 읽기로 하고 건너 뛰어가면 점핑 독서를 해서라고 한 번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최소한 어떤 단어들이 사용되는지는 알아낼 수 있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어떤 점에서 보면 완전히 같은 것, 혹은 비슷한 맥락의 뜻으로 쓰이는 것을 단어들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만 이해한다면 시간이 날 때 막혔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고 생각해 본다면 분명 훨씬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책의 내용에 따라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이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과 표현으로 이루어지고, 생각과 표현을 통해 생겨난 성과가 행복과 부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스킬이 궁리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기존 지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그 유용함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리 논리학은 ‘이미 표현된 것’만을 다루고, 어떤 표현이 ‘참’이고 어떤 표현에 오류가 있는지 안내해 주지만, ‘인간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거짓과 오류가 자연스럽게 서식한다는 점에서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각과 표현에 관한 표준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어떻게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어떻게 거짓이 전속력으로 퍼지고 또 어떻게 지식이 확장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것을 고집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 통찰을 통해, 더 나은 생각을 하고, 더 효과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으며, 일을 더 잘하고 더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다. 더 잘 소통하면서 더 좋은 평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해답을 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다.

흔히 논리학이라고 하면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생각의 기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로 대표되는 전통 논리학을 복원하면서 독자들이 쉽게 논리 지식을 얻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수학자들이 제안하고 일부 철학자들이 응답해서 정립된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은 그 탐구 범위가 좁다. 2,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 논리학과 달리, 수리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갖는 그것은 인간 머릿속에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을 배제한 채, 표현된 문장 중에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학문’으로 논리학을 축소시켰다. 이 책은 표제어를 수식하는 부제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이란 문구가 의미하듯 실용적인 목적으로 저술된 논리학 책이다. 저자 코디정은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통해 제공한 '논리학 콘텐츠 시리즈'에서 많은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이 유튜브 지식채널에서 제공한 영상의 제목 몇 개만 참고 사항으로 여기에 적어본다. 〈북에디터가 알려주는 독서 스킬-최대독서법〉, 〈당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지적인 여행-자유론, 완전정복〉, 〈슬픈 황제-자유론이 말하는 아우렐리우스〉, 〈반증사용설명서-반론의 힘, 변증〉, 〈여성의 종속-존 스튜어트 밀의 멋있는 책〉 등 23개의 동영상과 '쇼트(short)'에 10여 개의 새로운 영상을 추가해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참과 거짓을 판별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기존 논리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도약하며, 또 어떻게 참과 거짓이 뒤섞이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논리학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칸트와 논리학의 환상적인 결합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마치 라식 수술을 받은 것 같은 선명한 시야를 독자에게 선물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옛날에는 생각을 하는 일은 신분이 남다르거나 정신적 지도자 같은 극소수의 사람만의 특권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특권을 사용한다. 적어도 머리를 쓰는 일만큼은 권력과 재산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일은 머리를 쓰는 일이다. 인간의 지식과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머리를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한다. ① 성실히 일함에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 ② 열심히 공부해도 입시와 자격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사람 ③ 효과적으로 독서를 못하는 사람 ④ 타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 ⑤ 타인을 설득하는 일을 함에도 논리력이 부족한 사람 ⑥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기획자 ⑦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내놓고자 하는 개발자 ⑧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⑨ 이미 꼰대가 되었음을 본인만 모르는 어느 중년 ⑩ 자녀에게 더 좋은 인생 조언을 하려는 부모의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날은 AI가 인간의 머리를 학습하는 시대이다. 도대체 인간의 머리 안에서 생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기계가 인간을 학습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기계가 자신의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지 호모 사피엔스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만 년 전 인류가 날카로운 돌멩이를 바라보면서 그것의 효용을 생각했던 것처럼, AI를 삶의 무기로 삼는 호모 사피엔스는 기계 너머의 기술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각의 기술(The Art of Thinking)이라고 저자 코디정은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17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1강 「논리란 무엇인가」, 2강 「논리를 공부해서 무엇을 얻는가」, 3강 「논리의 전체 구조」, 4강 「개념이란 무엇인가」, 5강 「생각의 탄생, 판단이란 무엇인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 등은 논리의 기초를 다룬다. 여기에서는 이 책이 다루는 논리학이 머리 바깥으로 표현된 문장들이 아닌, 머리 안쪽의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에 관한 것임을 천명한다. 다양한 예와 함께 매력적인 설명이 펼쳐진다. 7강 「토대 구조 모형」, 8강 「인간 지식의 코어, 연역」, 9강 「연역을 보충하는 귀납」, 10강 「경험은 논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11강 「유추,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 지식의 좌충우돌」, 12강 「확률의 위안」, 13강 「변증, 반론의 힘」은 논리 '심화편'이다. 독자들은 심화편에서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며, 또 어떻게 오류에 휩싸이면서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는지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식 습득과 소통의 면에서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14강 「설득의 기술」, 15강 「생각의 집합」, 17강 「끈과 가위」에서는 이런 질문에 다양한 사례로 답한다. 

이와 함께 〈부록〉은 책 말미에 붙이는 게 보통이지만, 그러면 독자들이 잘 읽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편집을 바꿔서 책 중간중간에 부록이 들어갔다.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부록〉은 「논리학 Q&A」,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법」, 「논리적인 글쓰기」 등 3편의 글에서는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논리학이 주도하는 철학의 계보」는 논리학을 기본 뼈대 삼아 철학의 계보를 살펴본다. 서양철학을 공부해도 지식이 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돼버리는 까닭은 우리가 논리학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지혜를 온전히 얻기 위해서라도 논리학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저자는 새로운 세계, 그런데 매우 친숙한 세계가 우리들 머릿속 세계라고 강조하고 이곳에서 기계가 우리를 모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우리가 기계를 모방하려 한다는 우려를 예방하기 불식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머릿속 세계가 우리가 인생의 무기를 찾을 곳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논리학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가 이 책을 한 번 읽고 모두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독자가 볼펜을 준비할 것을 권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독후감이나 서평을 한 번 읽고 제대로 쓴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책의 성격에 대해서는 읽은 대로의 느낌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낀 부분이 '추론'에 관한 부분이다. 추론은 문학 시간에 연역법, 귀납법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철학에서 추론의 쓰임새에 이렇게 쓰고 있다. "서로 관련된 둘 이상의 대상들은 지속적이든 일시적이든 관계를 맺고 있다. 추론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을 발견하고 비교한다. 이러한 관계는 감각에 직접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계가 감각에 의해 직접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이런 관계에 대한 인상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발견하고 비교하는 일은 지각의 일이 아니라 추론의 일이다. 우리가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들 등에 관해 관찰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결코 추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계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도 정신은 감각에 직접 나타난 것을 넘어서서 대상들의 실재적 존재나 관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에 의존하는 관계인 유사, 반대, 성질의 정도 그리고 양 또는 수의 비례는 관념의 변화가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관계는 지각에 의거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관념에 독립적인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 인과 관계들에 어떤 추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과 관계를 제외하고는 추론적 요소를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감각 대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흄 『인성론』 「해제」, 2004, 장동익)

저자 코디정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논리의 꽃, 생각의 도약을 알아봅니다'란 머리붙임말을 사용했다. 이에 따르면 판단의 관점에서 문장을 재구성할 경우 판단은 대상에 대한 생각이고, 따라서 판단을 내리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여기 어떤 사물이 있다.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사물을 바라본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여기 꽃바구니가 있다. 관찰자가 이 꽃바구니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 관찰자에게, 꽃이든 말든, 꽃이 예쁘든 아니든, 그 꼿이 무엇이든,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물이다. 그런데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꽃바구니를 목격한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모든 사물이 관찰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의 사물만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관찰자에게 나타난다. 이렇듯 사물이 대상이 되는 것은 관찰자에게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의 존재방식이다.

사실 백과사전을 동원하고 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문장의 뜻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알 것 같다가도 문장이 길어지면 다시 의미가 흐려진다. '추론'을 설명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자들은 매우 느리게 생각한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철학자처럼 느리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디테일'이라고 한다. 슬로우와 디테일은 다른 단어이지만, 철학 공부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의 개념이다."(p.141)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결정적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꽃바구니 사건을 첫 번째 사건으로 '맛있는 떡 사건'과 '끼어들기 사건'을 추가로 사례 설명을 더한다. 3가지 생각 사건에서 나타난 판단, 즉 명제 중에서 한 가지씩 추려낸다. '① 꽃바구니가 예쁘네 ② 이 떡은 맛있는 쑥인절미네 ③ 저 차는 끼어들기한다'. 이들 판단, 문장, 명제는 일종의 사실 판단의 성격을 갖는다. 이 자체로는 가장 기초적인 생각에 불과해서 그다지 대단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지금 여기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지점으로 생각을 도약시킨다. 예컨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지금, 여기에서의 판단에서,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라는 새로운 판단으로 생각을 도약시킬 수 있다. 이런 판단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문장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다. 즉 생각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꽃바구니가 예쁘네'를 사고력 1,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를 사고력 2로 구별한다. 전자의 사고력은, 대상에 대해서 관찰자가 머릿속 개념을 적용해서, 지금, 여기의 판단을 만들어내는 사고력이다. 그런데 후자의 사고력은 과거에 보관되어 있는 판단을 이용해서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생각을 도약시키는 추론의 사고력이다. 철학자들은 전자의 사고력 1을 오성(understanding)이라 칭하고, 후자의 사고력 2를 일컬어 추리력, 즉 이성(reason)'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오성 대신에 지금은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다. '이 시대의 지성'라는 문장에서 사용하는 지성이 아니다. 대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지적 능력, 즉 지능으로서 인간 머리의 지적인 특성을 뜻한다. 


글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해야 하는 페르소나Persona’이다. 페르소나란 가면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된 단어다. 심리학자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면Persona’이 글쓰기의 ‘인격Person’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으므로 글을 쓴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선정해서, 그 페르소나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p.259)


저자 : 코디정


에디터, 언어활동가, 변리사. 『괘씸한 철학 번역』(2023)을 포함하여 열 권의 책을 저술했다.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제2회 정문술 과학저널리즘상(인터넷부문) 수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에서 지식재산법을 가르치며(겸임교수),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운영한다. 본명 정우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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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훔친 남자
양지윤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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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무를 훔친 남자』는 신예 작가 양지윤의 첫 단편소설집이다. 무의미한 삶을 구제할 휴머니즘을 보여줬다는 평가을 받은 『무생물 이야기』(장편소설)로 2022년 데뷔했다. 표제작 「나무를 훔친 남자」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다. 저자 양지윤은 이 단편집 『나무를 훔친 남자』에서는 가치와 효용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로를 이탈한 듯 보이는 ‘이름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해 ‘우리 시대의 아트’를 새로이 규명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단편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별 볼 일 없고 어딘가 이상하고 모자라 보이며 괴짜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주인공은 선량한 마음씨와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끈질기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들은 달리 말하면 자신만의 ‘아트’를 행하는 사람들이다. ‘내 걸 찾으면 아트가 된다’는 작품 속 한 인물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선율’로 규격화된 현실을 돌파하며 끝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이들의 넘실거리는 에너지를 통해 황폐한 세태의 환멸을 풍자하는 동시에 냉혹한 현실의 벽을 사뿐히 뛰어넘는 희망을 노래한다. 

표제작인 「나무를 훔친 남자」는 누구도 물을 주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자 회사 건물에 있는 87그루의 나무 화분을 훔친 남자의 이야기이다. 8년 차 영업사원인 남자의 실적은 회사에서 꼴찌였고 동료들은 그를 무시했다. 그는 언제든 잘리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마치 나무들처럼. 그가 돌봐주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치워질 나무를 외면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정성스레 나무를 보살피지만 회사는 그가 시키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여기며 화분에 물을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익 창출에 기여하는 존재만이 인정받는 시스템 하에서 그는 언제든지 나무처럼 버림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작은 애정과 관심이 죽어가는 존재도 살려낸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무들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나가는 걸 보며 부당함과 환멸을 느낀 그는 나무를 구출하겠다고 결심하고, 회사의 나무를 모조리 가짜 나무와 바꿔치기한다. 이 일에 쏟는 그의 열정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구출해낸 나무들 속에서 죽음을 맞지만 ‘진정 이 시대의 고독한 의인’인 그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사 내에서 회자된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박수를 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박수 치는 남자」의 주인공 또한 ‘고독한 의인’이라 할 만하다. 「나무를 훔친 남자」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이름은 따로 없다. 작품 속에서는 '그', '아이', '남자', '노인' 등으로 명명된다. 이 점에 대해 저자 양지윤은 "괴벽 같지만 나는 인물에 이름 붙이기 어려워한다"고 털어놓는다. "너무 '진짜' 같으면 타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소 모순적일지 몰라도 나는 그들을 가공의 인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들은 바로 나이기도 하니까."라며 주인공을 '인칭 대명사'로 서술한다고 설명한다. 주인공인 '그'가 치는 박수 소리는 매우 커서,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박수가 유쾌해서 그와 결혼한 아내는 그가 박수를 쳐야 할 때 치지 않는 데 분노해 그와 이혼한다. 주어진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청년이 다리 위에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그가 치는 박수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이 든 부부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그를 다리 난간 위에서 끌어 내린다. 이처럼 남다른 행태로 인해 그는 가족과 멀어지고 아내한테도 버림받는다. 그렇다고 그 남자의 박수가 말썽만 일으킨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박수 치는 남자가 남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입에 올렸고, 그를 한번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그의 박수가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남긴다.


그는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박수를 치고 다녔다. 강의실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대강당에서도, 학생식당에서도 당당하게 박수를 쳤다. 잘생기지도 않고 특별히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어서 그의 행위는 돋보였다. 웬만한 학생들은 이게 다 박수 치는 남자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박수치는 남자가 박수 치는 남자가 지나가면 목소리를 낮추고 쑥덕거렸다.

"그가 또 삶을 축복하러 돌아다니는군."

그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대기업 연구원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그는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진지하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워낙 일을 잘하기도 했고 박수 치는 것만 빼면 깊은 산속에 흐르는 샘물처럼 맑고 고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p.146~147)
「알리바바 제과점」은 사람들에게 가장 저렴한 가격에 보석을 파는 곳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보석이 아니라 '보석 쿠키'를 판다. 사장에게 보석 쿠키를 제안한 사람은 수석 파티시에인 '나'였다.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보석, 아니 쿠키를 샀다. 호박 쿠키를 담당하는 직원이 제과점을 그만두자 나는 새 담당자를 구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력서를 내민 스물세 살 여자였다. 다음 날 그녀가 구운 호박 쿠키는 환상적인 검붉은 얼룩들이 눈을 사로잡는 영롱한 보석, 그 자체였다. 

알리바바 제과점은 하루에 약 만 개의 쿠키를 팔았고 그 엄청난 양의 쿠키를 만들기 위해 40명의 직원이 필요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의식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을 달아놓는다. 매장에 쿠키를 진열하거나 완성된 쿠키를 포장하거나 포스기를 작동하거나 보석 쿠키를 홍보하거나(아주 가끔 진품인지 아닌지 깨물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직원 등 다 포함해서 그 정도 인원은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그들이 나처럼 모든 쿠키를 만들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알리바바의 철칙이 있다면 한 직원 당 오직 한 종류의 쿠키만 굽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기 큼직한 안경을 쓰고 다리를 저는 마흔 살 넘은 여자는 호박 쿠키만 만들었다.

직원들의 면모를 저자는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터키석 쿠키를 만드는 남자는 눈이 찢어지고 귓볼이 고드름처럼 쳐졌다. 남자는 터키석 쿠키만 칠 년 넘게 구웠다. 초코와 민트로 만드는 그 쿠키 때문에 그는 치약도 박하 향이 없는 것만 썼다. 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호박 쿠키와 터키석 쿠키를 구웠다. 그밖에 다른 보석들도 그것들은 모조리 내가 개발했다.

알리바바 제과점은 '내'가 들어온 후 곧 주력 품목이 없이 제과점 이름과 달리 일반적인 식빵, 피자빵, 기름이 줄줄 흐르는 크로켓, 푸석한 마들렌을 팔다 '오븐에 들어갈 운명'이었다.(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었다)란 표현으로 이해된다. 내가 보석 쿠키를 제안했을 때 사장은 머리통을 후려 맞은 파리 같은 얼굴로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알리바바를 관둘까 봐 두려워했다. 내게서 헐값에 레시피를 뜯어내려고만 했다. 넘어갈 내가 아니다. 그가 나를 해고했을 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한 달도 안 돼 사장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호박 쿠키를 굽던 그녀는 알리바바에서 가장 영롱한 과자를 만들어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들어내는 수량이 적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굽는 수량을 절대적으로 고수했고,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장의 작업 요구량에는 훨씬 못 미쳤다. 갈등은 당연한 일인데, 나도 사장의 편에 섰다. 그녀만의 쿠키는 항상 가장 먼저 동이 났고 더 만들어달라는 나와 사장의 요구는 묵살됐다. 그녀의 쿠키 만드는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흉내내지 못했다. 그녀의 쿠키는 날로 진보했다. 이젠 진짜 보석 같은 쿠키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쿠키만 사려고 했다. 

나는 어느날 호박 쿠키 담당자를 구해내(?} 둘만의 탈주를 감행한다. 쿠키를 전보다 더 ‘진짜 보석’처럼 만들어내는 노동의 한편에는 삶의 존엄이 무력해진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혁진 문학평론가의 문학적 해석을 출판사 측이 소개글에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하혁진 문학평론가는 양지윤의 작품을 “현대인을 ‘활용’하고 ‘훼손’하는 세태를 향해 외치는 파산선고”라고 평하며 지금 우리가 그의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하혁진 문학평론가의 이 같은 평가는 「우리 시대의 아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벽들은 때때로 총과 칼이 아닌 낙서에 의해서 허물어지기도 했다”는 평론가의 지적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노숙자로 살아가나 그림에 특출난 재능을 지닌 ‘뱅크럽시’는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예술가 맥의 초대를 받아 한 달간 미국을 방문한다. ‘뱅크럽시’, 즉 파산이라는 그의 별명은 그를 ‘뱅크시’에 비유했으나 그것이 뒤틀리면서 얻게 된 것이다. 맥으로 인해 뱅크럽시의 그림은 엄청난 주목을 받고 고가에 팔려나가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거리의 천덕꾸러기가 된다. 보잘것없는 거리의 노숙자 뱅크럽시의 그림이 ‘우리 시대의 아트’가 지닌 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가치와 효용이 있을 리 만무하다. 뱅크럽시에게 갑작스럽게 쏟아진 박수갈채와 돌연한 무관심은 ‘돈’이 예술을 떠받치는 오늘날의 세태를 통렬하게 조명하고 있다.
「롤라」는 바에서 일하는 '나'는 어느 날 롤라라는 한 백인 손님으로부터 호텔로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거기에는 롤라에게 초대받은 한국 여자 두 명이 더 있다. 롤라는 자신이 꿈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다며 그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나는 처음엔 롤라가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얘기가 사실인 걸 알고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자기 미래도 어떤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롤라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나는 크게 실망한다. 미래에 자신이 이 이야기를 반전시킬 가장 큰 키를 쥐었다는 걸 모른 채다. 

「수조 속에 든 여자」는 한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 남자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가능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산책하는 것이 일과인 그의 눈에 길가에 버려진 거대한 수조가 들어왔다. 다음 날 그 수조 속에 아리따운 여자가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녀는 그에게 수조에 한번 들어와 보겠느냐고 꼬드긴다. 그는 곧바로 도망쳤지만 사흘째 되던 날 수조에 들어간다. 그는 졸지에 수조에 갇히고, 그녀는 수조를 집에 가져간다. 수조에 갇힌 그는 오직 그녀만의 ‘애완인간’이 된다.


그 어여쁜 인어는 수조 안에 있었다. 언제부터 들어가 있는 건지 몰라도 그가 볼 때마다 있었다.

"좋아, 들어갈게."

사흘째 되던 날 그가 말했다.

"오늘 밤 자정에 여기로 와."

그녀가 칵테일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말했다.(p.178)


그는 믿을 수 없었고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나 믿을 수 없었다. 예전에 했던 짓거리들, 예를 들면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가고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고 TV를 보고 공과금을 내고 주말에는 뭘 할까 생각하고 영문도 모르고 뭔가를 기다리는 삶. 그 짓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p.198)
「진실의 끄트머리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에서 '그'는 매일 저녁 연못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그녀에게 말을 걸 기회만 노리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읽다 만 책을 벤치에 두고 떠난다. 그는 그녀에게 그 책을 돌려주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매일 책을 들고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는 그에게 사립탐정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이 책을 저한테 파시겠어요?” 「인류의 업적」은 미래 시점의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이 지난 후의 먼 미래. 핵폭발과 전쟁, 폭력, 그리고 자본가와 독재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며 자연을 훼손하고 자연과 함께 병들어가던 인류는 마침내 자연을 해방시키고 자신까지 구원했다. 구원의 방법이란 인간의 육체와 숫자를 없앤 것. 인간에게는 영혼과 목소리만 남았다. 주인공인 ‘아이’는 꽃, 새, 짐승들은 다 보이는데 인간의 모습만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기만 하다. 아이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육체를 가진 인간’을 찾으러 떠난다.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의 구별이 없어졌다.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없어졌다.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차별이 없어졌다. 실수로 손 하나가 잘려나가거나 걷지 못하거나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없어졌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구별이 없어졌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자 살인자와 강간범들이 사라졌다. 노동과 집안일이 없어졌다. 계급이 없어졌다. 국가와 정치인들이 없어졌다.(p.239)


소설은 가공의 이야기이다. 허구이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사실은 없다. 『나무를 훔친 남자』의 저자 양지윤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가 이 책 한 권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거짓말’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며, 그가 쓰는 소설은 현실보다 좀 더 낙관적인 거짓말이라고도 한다. 진짜가 아니지만 ‘진짜 같은 가짜’ 이야기, 인간과 삶에 대한 진실을 일깨워주는 소설 말이다. 독자들은 우리 자신이기도 할 인물들이 펼치는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패기와 따뜻함, 짜릿하고 전위적인 예술적 열정을 만날 수도 있다.


저자 : 양지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8년간 영업팀에 근무하였으나 그만두고 현재는 소설을 쓰고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익명의 존재들에 대한 글쓰기를 즐긴다. 록 음악을 즐겨 듣고 틈틈이 그림 전시도 보러 간다.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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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핼리 루벤홀드 지음, 정지영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북트리거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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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표제어나 표지로 봐서 '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회 비평의 책이다. 1957년 영국 런던에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 무렵의 세계 정세에 잠시 발을 들여놓자면 영국은 네덜란드 및 프랑스와 일련의 전쟁을 벌인 끝에 북아메리카에서 확고한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 동인도 회사가 무굴 제국이 지배하던 벵골을 점령한 뒤 인도 대륙은 물론 아시아에서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영제국이라는 호화로운 명칭이 붙기 시작하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기다. 영국은 안팎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패권국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왕을 빅토리아 여왕으로 보는 이유다. 세계 어디에도 식민지가 없는 곳은 없었던 시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19세기에는 마침내 중국 대륙마저 장악한다. 잉글랜드 왕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적어도 세계 패권국의 위치를 고수했다. 

이때 런던에서 한 권의 책이 왜 영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을까?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어떤 책이기에 매해 개정판을 내며 스테디 셀로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을까? 초판 발간 이후 이 책은 세기말까지 25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당시 출판계로선 엄청난 판매 부수다. 책 이름은 『해리스의 코번트가든 여자 리스트Harris’s List of Covent Garden Ladies』다. 이 책은 조끼 포켓에 넣을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공공연하게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고 한다. ‘매춘부들’의 특기와 전공, 신상 명세를 기술한 남부끄러운 책이었던 탓이다. 

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그 ‘리스트’에 관한 책이다. 리스트의 표면이 아닌 행간에 파묻힌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저자 핼리 루벤홀드는 밝히고 있다. 『해리스 리스트』에 얽힌 세 사람이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허영심 많고 가난한 시인과 ‘잉글랜드의 포주 대장’, 그리고 마담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전철을 되밟은 ‘품위 있는’ 고급 매춘부. 이 세 사람이 리스트의 저작권자이자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의 주인공들이다. 이 세 사람의 굴곡진 삶을 파고들다 보면, 독자들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환락가 ‘코번트가든’, 그리고 사회의 변두리에서 위태롭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던 여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거리의 여자”, “애첩”, “님프”, “작부”, “갈보”, “비너스의 후예” 등으로 불린, 이른바 ‘매춘부’였다.

저자 핼리 루벤홀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영국사와 예술사,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루벤홀드는 우리에게 알려진 빛나는 역사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세심하게 읽고 구축한 유려한 내러티브를 통해, 오늘날 읽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로 가득한 옛 문헌이 생생한 내러티브를 품은 시대의 거울로 재탄생된다. 저자는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와 희생자의 삶에 빛을 비추고 역사적 맥락을 되찾아 주는 저작들을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해 왔다. 

루벤홀드가 주목하고, 해리스 리스트를 담은 책의 표제어에 등장한 '코번트가든'은 오늘날 런던의 주요 관광지다. 출판사 측에서 낸 소개글에 따르면 잡화점이 늘어선 아치형 지붕 아래로 북적이는 관광객들이 지나다니고, 거리 예술가들이 버스킹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곳이다. 광장의 오른쪽으로 뻗은 보우스트리트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공연장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으며, 반대쪽 거리인 베드퍼드스트리트에서는 소박한 외관의 세인트폴교회가 왕래하는 방문객들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1700년대에 교회에서 바라본 코번트가든의 경관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밤에는 특히 더 그렇다. 거리 곳곳에 즐비한 유곽 겸 술집들이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은근히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대놓고 유곽도 겸하는 음란한 가게들이다. 지금은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거리에 위치한 잉글랜드 사법부는 화려한 밤의 거리에 밀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귀족과 부자, 작가와 군인, 배우와 부랑자들이 거리낌 없이 뒤섞이는 코번트가든에서는 “누구든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혼란과 불법·무법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구 돈을 써도 지갑이 마르지 않던 상류층 남자들과 그들의 지갑을 호시탐탐 노리던 여자들. 그런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어떻게든 빌붙어서 한 푼이라도 뜯어내 보려던 또 다른 여자들과 남자들. 이들 대부분은 “18세기 영국 사회의 변두리에서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세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새뮤얼 데릭, 존 해리슨(잭 해리스), 샬럿 헤이즈는 이런 범주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책은 지난 2005년 첫 출간됐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은 2020년 판본이다. 저자 루벤홀드는 〈개정판 서문〉에서 "지난 15년 사이, 『해리스 리스트』와 앞서 언급한 세 저작권자의 이름은 대중문화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 내 소설 『내 운명의 여자』를 비롯하여, 이머전 허미즈 고위의 『인어와 핸콕 부인』이나 마리아 매캔의 『에이스, 킹, 네이브』 등 코번트가든이나 웨스트엔드 일대에 살았던 여자들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 여럿 나왔다. 텔레비전에서는 '해리스 리스트'와 그 명부에 적힌 여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바로 이 책을 토대로 만든 〈할롯〉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밝힌다. 이제 '해리스 리스트'는 특정한 소수 마니아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해리스 리스트'를 검색하면, 신문과 잡지, 블로그에 실린 관련 글이 수백 건씩 뜬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주제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이나 보석 디자인, 전시회, 박사 논문, 학생 영화 등을 언급할 때면, 조용히 기쁨을 누렸다고도 저자는 털어놓는다. 망각되어 버렸던 이들이 수 세기의 세월을 되돌아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기쁜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세상은 18세기 말의 세상과 다른 만큼이나 2005년의 세상과도 완전히 다르다. 여성의 경험, 특히 섹스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뿐 아니라 과거사를 해석하는 데도 적용된다. 이는 역사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중요한 세부 사항에 초점을 더 선명하게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표현이나 주변 정황 같은 것들 말이다. 일례로, 18세기에는 '유혹'과 '강간'이 사실상 동의어였다. 『해리스 리스트』에 기록된 많은 여성이 지금 기준이라면 강간으로 간주될 일을 겪은 탓에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았다. 리스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동기에 당한 성적 학대로 인해 매춘에 이르게 된 경우도 많았다. 리스트의 저자들과 이용자들은 이런 문제에 관해 오늘날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고, 우리에게는 끔찍하게 들리는 견해를 수시로 표현했다. 대부분 부자와 귀족이었던 이 남성들에게 신분이 낮은 여자는 도구일 뿐이었다.

저자는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초판본 집필 당시(2003년)에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 남자들의 경박한 어조에 적응할 수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고 밝힌다. 『해리스 리스트』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때로는 동정적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았던, 여성을 대신해서 말하는 남성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저자는 그런 관점을 글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매매 종사자들을 일컫는 적절한 명칭에 관한 논쟁, 특히 '매춘부' 대 '성 노동자'라는 단어 사용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지난 15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번 책은 기본적으로 개정판이라기보다 중쇄인 까닭에, 사소한 수정을 하는 것 외에 본격적으로 고쳐 쓸 수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용어 사용은 분명 토론한 가치가 있는 논쟁거리이지만, 이 문제는 다른 책에서 심도 있게 다루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2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막이 오르다」 2장 「잭 해리스의 전설」 3장 「아일랜드 시인」 4장 「비너스의 탄생」 5장 「잉글랜드의 포주 대장, 잭」 6장 「그럽스트리트의 글 쓰는 노예」 7장 「사랑의 복잡함」 8장 「영감」 9장 「해리스의 숙녀들 소개」 10장 「『해리스 리스트』」 11장 「포주, 대가를 치르다」 12장 「플리트 교도소와 오켈리라는 남자」 13장 「해리슨의 귀환」 14장 「킹스플레이스의 산타 샤를로타」 15장 「배스의 작은 왕」 16장 「“창녀를 키울까, 경마를 할까”─암말을 키우는 법, 또는 어리석은 망아지를 이해하는 법」 17장 「원점」 18장 「품위 있는 켈리 부인」 19장 「『해리스 리스트』의 최후」 20장 「『해리스 리스트』의 여자들」 등이다. 책의 앞 부분에 〈18세기 런던 지도〉 〈개정판 저자 서문〉 〈책에 관하여〉 등이 게재돼 있고, 뒷 부분에는 〈도판 모음〉 〈부록: 코번트가든 애호가 목록〉 〈18세기 용어집〉 〈참고문헌〉 〈감사의 글〉 〈해제: 시인, 웨이터, '창녀'의 신분 상승기〉, 〈찾아보기〉 등이 20개 장의 본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해리스 리스트』를 쓴 데릭은 아일랜드 출신의 방탕한 작가 지망생이다. 책에 따르면 포목상을 운영하는 친척 집에서 중간계급으로 성장했지만, 옷감을 파는 일엔 흥미가 없었다. 아직 ‘잭 해리스’가 되기 전의 젊은 존 해리슨은 베드퍼드스트리트의 술집에서 태어난 유망한 포주다. 친척 어른들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며, 합법적인 일보다 불법적인 일이 돈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익혔다. 악명 높은 마담 워드의 딸 헤이즈는 아버지 없는 사생아다. 워드 부인은 딸의 ‘처녀성’을 비싸게 팔고자 하고, 다른 여자들을 착취하여 딸의 앞날을 열어 주려 한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미래를 꿈꾸던 세 젊은이의 삶은 마침내 ‘코번트가든’에서 뒤얽힌다.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저자 루벤홀드는 당시의 코번트가든은 단순한 유흥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18세기 중반의 코번트가든은, 말하자면 20세기의 할리우드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멋들어진 가명을 지어낼 수도 있고, 비극적인 인생사를 꾸며 댈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며 냈다. 데릭에 관한 어떤 기록에서도 그의 부모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해리스가 떠나온 뒤의 해리슨 가족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샬럿이 어머니의 성 대신 선택한 ‘헤이즈’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도 우리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역사를 되는 대로 꾸며 내지만, 저자 루벤홀드는 세심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둘러싼 거짓들을 파헤친다. 저자의 사려 깊은 서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꿈과 욕망을 품고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뿐이다. 1757년 처음 출간된 『해리스 리스트』는 다름 아닌 ‘매춘 가이드북’이었다. ‘매춘부’의 프로필과 특기 등이 빼곡히 적혀 있는, 당대 신사들의 안주머니에 꽂혀 있던 필수품이었다.(책 뒷 부분의 〈부록: 코번트가든 애호가 목록〉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이른바 '단골' 고객이었는지 명단이 있다.) 실제로 『해리스 리스트』를 쓴 사람은 데릭이지만, 위대한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이력을 감췄다고 루벤홀드는 기록하고 있다. 책의 이름은 런던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던 포주이자 정보통의 이름을 빌린 ‘해리스 리스트’가 되었다. 해리스는 (가짜) 이름과 여자들의 목록을 빌려주고서도 정작 수입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책이 그 정도로 오랫동안 많이 팔릴 줄 몰랐던 것이다. 헤이즈는 한창때 이 책에 직접 이름을 올렸고, 나중에는 저작권자 명단으로 이름을 올린다. 저자 루벤홀드는 이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매개로 당대인들이 살아갔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되살려 낸다. 이로써 오늘날 읽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로 가득한 옛 문헌이 생생한 내러티브를 품은 시대의 거울로 재탄생한다.

뒷골목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데릭의 필력은 『해리스 리스트』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고 루벤홀드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리스트’는 충분히 사실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름이 적힌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키티 피셔 양이 보내 온 편지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리스트의 작성자들은 ‘뇌물’을 동봉한 편지까지 보내면서 리스트에서 이름을 빼 달라고 간청하는 키티 피셔 양의 항목을 지우는 대신, 편지의 전문을 그대로 실었다. 무엇보다도, “『해리스 리스트』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일부는 소녀라고 해야 맞다)은 강간이나 아동 성 착취의 피해자였다”. 루벤홀드가 지적하듯이, 당대 남자들은 “여성의 곤경에도 말로만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고, 그들에게 나름의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던 데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리스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대부분의 매춘부들이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여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손님을 받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해리스 리스트』에 오른 여성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많은 사례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해리스 리스트』 제작자에게 고객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에는 많은 여자들이 일이 없는 기간에 임시방편으로 ‘매춘’을 했다. 멀쩡한 가정의 하녀들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알 수 없었고, 다른 업종들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성폭력을 당한 탓에 하릴없이 매춘을 시작하게 된 여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중간계급은 이즈음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계층이었고, 그런 만큼 유동성도 굉장히 심했다. 물론 위로 올라가는 건 어려웠지만, 누구나 조금만 삐끗하면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리스트는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루벤홀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이 왜 매춘에 희망을 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매춘’은 많은 여자들에게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 그들 중 몇몇은 실제로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을 이뤄 내기도 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의 줄리아 로버츠처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허황된 신데렐라 스토리를 약속하고, 젊은 여자들을 서슴없이 낚아 올린다. 물론 신분 상승을 일궈 낸 여자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술에 절거나 성병에 걸려 초췌해진 몰골로 공동묘지에서 비참하고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 책은 섣부른 도덕적 비난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가혹한 세상에 맞서 어떻게든 삶을 일궈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려준다. “그저 주어진 순간을” 버티며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사람들과,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엔 가라앉고 만 이들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에 루벤홀드는 거짓과 기만의 시대상을 밝히고자 집필했다. 저자와 함께 세 문제적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을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이다.


저자 : 핼리 루벤홀드(Hallie Rubenhold) 

역사가·저술가·방송인. 18~19세기 영국 여성사를 전문으로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영국사와 예술사,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의 큐레이터, 미술품 딜러, 대학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와 희생자의 삶에 빛을 비추고 역사적 맥락을 되찾아 주는 저작들을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해 왔다.

2019년에 출간된 루벤홀드의 대표작 『더 파이브』는 영어권 논픽션을 대상으로 한 영국 최고 권위의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고,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헤이페스티벌 올해의 책, 굿리즈초이스어워드 역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밖에 『레이디 워슬리의 변덕(Lady Worsley’s Whim)』(2008)은 2015년 BBC에서 〈레이디 W의 스캔들(The Scandalous Lady W)〉로 영화화되었고, 『코번트가든의 여자들(The Covent Garden Ladies)』(2005)은 2017~2019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서비스된 드라마 시리즈 〈매춘부(Harlots)〉에 모티브를 제공했으며, 『매춘부의 핸드북(The Harlot’s Handbook)』(2007)은 BBC에서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해제 : 권김현영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다시 본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만, 그 눈은 그에게 고유한 자신으로 삶을 사는 굳건함, 아무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는 단단함,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을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하지만 분명한 점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삶을 계속하자고 다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다.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폭력에 맞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


역자 : 정지영

고려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분석하고 노동, 여성 등의 문제를 다뤘다. 인간과 지구가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글을 옮기고 알리는 번역가가 되려 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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