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라이즈 포 라이프 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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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는 스스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 대로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경향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이 책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의 편역자 김요한은 지적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칭할 수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능을 가진 인간이란 뜻인데 '지능'이란 단어와 '생각'이란 말은 동의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비슷한 의미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인공지능(AI)에도 뒤떨어지고 마침내 AI의 로봇의 지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과학이나 철학의 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미래'에 대한 문제이다. 이 책 표제어에서 문득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니체다. 이 두 사람은 거의 19세기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들이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삶이 곧 고통'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끝없는 사유로 삶의 지혜를 제시했다. 많은 세계 명사들에게 영향을 미친 니체 역시 삶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깊은 성찰로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또 두 철학자는 19세기 독일 철학자라는공통점도 있다. 세계 어느 대륙이나 전쟁이 잦았지만 유럽은 로마 제국 때부터의 영향인지, 이웃한 각 나라들이 친구처럼, 또는 적처럼 지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듯하다. 국경이 있지만 오가는 데 큰 어려움도 별로 없다. 개방된 문화 탓이리라.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백인종으로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자신들이 이어받았다는 자부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 철학자가 19세기 독일인이지만 쇼펜하우어가 1788년 생이고, 니체는 1844년 생이니만큼 쇼펜하우어가 더 앞선 세대의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독일, 독일인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가 1870년 비스마르크 이후라고 보면 두 철학자가 살았던 독일은 서유럽에서 조금은 뒤떨어진 문명임은 틀림없는 시대다. 상대적으로 넓고 비옥한 영토의 프랑스와 섬나라의 한계를 해외 개척으로 세계 최대의 나라를 확장한 영국에 비해 조금은 뒤처진 국토 환경이다. 산악지형인데다 바다에 접한 해안선이 짧고 그마저 대서양으로 가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야 한다. 해외 진출의 조건이 열악한 셈이다.



두 사람의 철학은 신(神)의 개념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었던 배경도 있다. 독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것은 프로이센에서 저먼(게르만)이란 명칭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 비스마르크 재상 이후부터다. 독일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가장 밑바탕이 된 학문은 철학도 인문학도 아닌, 과학이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지만 독일은 두 차례 모두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이었다. 억눌렸던 그들의 민족성이 과학의 탁월한 발달로 서구뿐만 아니라 세계 패권을 꿈꾸었으니 서양 문명이 호전성을 갖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할 것 같다. 

이 책의 역자 김요한은 철학은 '생각과 창조'를 무기로 발달한 학문이고, 유효한 수많은 사상과 지혜를 선도해 왔는데 오늘날 현대인은 미디어가 쏟아내는 콘텐츠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역자는 생각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쇼펜하우어의 수많은 아포리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 니체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를 완전히 죽여야 ‘내일의 나’가 태어난다. ‘새로운 나’로 변하려면 기존의 나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지금 내 삶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내는 게 최우선이다.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은 니체의 저서 중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았다. 또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짧고 간결한 문장과 쉬운 번역을 택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니체의 번역서가 나왔지만, 니체 철학이 지닌 독특함으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니체의 핵심 사상에 바로 접근할 수 있으며, 무수한 삶의 위기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늘날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역자는 책 앞 부분 〈옮긴이의 말〉을 통해 4차 산업의 혁명과 함께 인공지능(AI)의 발달, 무수한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의 삶은 버겁고 힘들다고 말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니체의 메시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니체의 번역서가 나왔지만, 니체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논쟁은 독자들에게 ‘읽기 어려운 책’으로 각인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니체의 철학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독자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도록 도와준다. 책의 출간 이유다.

이 책은 세 가지 큰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현대사회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엄선했다. 둘째, 니체 원문의 느낌과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개인적 해석이나 표현을 최소화했다. 셋째, 글보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현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했다. 이 책은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하여 독자들이 니체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따라서 삶 속 모든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도, 항상 희망의 빛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여정이 이 책을 통해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2장 〈깊은 질문에 답하다〉, 3장 〈깨달음으로의 고통스러운 여정〉, 4장 〈우리,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의 삶〉 등이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이해하기로는 쇼펜하우어가 삶의 바탕을 '고통'에 두었다면 니체는 '절망'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독자의 느낌이어서 내세울 바는 못 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세상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절망서 시작하게 된다.



역자는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책 앞 부분에 두고 '서문'을 대신하고 있다. 그 마지막을 책의 이해를 위해 역자가 제시한 문장 「지금 절망 속에 있다면」도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다 할지라도, / 작은 틈 사이로 비춰 나오는 태양을 추구하라. // 절망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니." 4개의 장에는 모두 166개의 문구가 제목을 이루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을 연결해 읽는다면 이 책의 구성이 역자의 니체 철학에 대한 이해에서 선정된 유기적 구성이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현대인은 존재의 의미(생각을 잃어버려서)를 되찾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깊은 질문을 하고 성찰과 사색을 거듭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되찾아내야 한다. 그 길의 여정은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존재하는 한 감내하고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 우리, '이해받지 못하는 자들의 삶'이다. 이 책의 130번째 소제목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인용해 본다.

이 거리의 혼란 속에서, 필요한 목소리들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우울한 행복을 준다. 얼마나 많은 즐거움, 급함, 욕망이 여기서 매 순간 드러나는가. 얼마나 많은 목마름과 흥분이 나타나는가. 그러나 곧 이 모든 시끄러운, 생기 넘치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곧 조용해질 것인가. 모두의 그림자, 그의 우울한 동반자가 그 뒤에 서 있다.

이것은 항상 이민선이 출발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과 같다. 사람들은 서롤에게 할 말이 그 어느 때보다 많고, 시간은 촉박하며, 모든 소음 뒤에는 외로운 침묵으로 기다리는 바다가 있다. 그렇게 탐욕스럽고, 자신의 먹잇감을 확신하며 기다린다. 그리고 모두, 모두가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사소한 일이었다고, 가까운 미래가 모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이러한 서두름, 이 소리 지르기, 이 자신을 귀머거리로 만들고 자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있다.

모두가 이 미래에서 가장 앞서고자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죽음의 고요함만이 이 미래에서 모두에게 확실하고 공통적인 유일한 것들이다. 이 확실하고 모두에게 공통적인 유일한 것이 사람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죽음의 형제애로 여기는 것에서 가장 멀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죽음을 전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삶에 대한 생각을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 심지어 백 배나 더.(p.179~180)



자본주의가 덜 익숙했던 니체의 시대에서도 당연히 가난에 대해 좋아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가난'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가난함을 필연적인 것으로 아름답게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그것 때문에 고통받거나 운명을 원망하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고 풀어간다. 그리고 니체는 "이건 마치 현명한 정원사가 자기 정원의 작은 물줄기를 분수로 만들어 자연의 여신의 손에 맡기는 것처럼 가난함도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연의 여신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라고 되묻는다. 다만 "그 누군가가 당신은 아니길 바란다."(p.41)고 덧붙인다.

25번째 「삶이란 무엇인가?」도 눈길을 끈다. "삶이란, 우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것이다. 삶이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약해지고 늙은 모든 것에 대해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이다."라는 가설을 앞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죽어가는 자, 고통받는 이들, 나이 든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말라는 것일까?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을 해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지혜로운 모세는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p.43) 

이 책의 2장 〈깊은 질문에 답하다〉 34번째 소제목은 이 책을 펴낸 역자 김요한의 생각과 가깝게 이해된다. 역자는 현대인의 삶이 생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전제했다. 34번째 소제목은 「고통에 관한 생각조차 견디기 어려워하는 시대」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과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가다. 이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영혼의 고통에도 해당된다.

현대인들은 아마도 과거에 사람들이 폭력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폭력적이 되어야 했던 시대와 비교하면, 신체적 고통에 대해 잘 모르는 허풍쟁이와 환상가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신체적 고문과 박탈을 오랫동안 견뎌냈으며, 고통을 자신의 보존을 위한 필수적 수단으로 봤다. 그들은 고통에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고, 기꺼이 고통을 가하며 다른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일을 보고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했다.

영혼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경험을 통해 알든 설명을 통해 알든 간에, 일부는 그것을 고급문화의 징표로 여긴다. 호긍ㄴ 일부는 영혼의 슬픔을 전혀 믿지 않으며, 그것을 언급할 때 신체적 고통의 경험을 떠올린다. 역자의 주석도 명쾌하다. 비관주의적 철학의 출현은 실제 고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삶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이미 사람들이 겪는 작은 불편함을 너무나도 크게 느끼는 시기에 나타난다. (중략) "결국, 고통에 대한 해결책은 고통 그 자체다."(p.61~62)



'신은 죽었다' '망치를 든 철학자'로 깊게 각인된 니체는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했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망상으로 도덕이나 종교, 문화, 역사 등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는 유대인 혐오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니체도 '음악'과 '사랑'에는 매우 부드러웠던 것 같다. 157번째 제목 「음악과 사랑」(p.209)에서 니체는 "음악을 강상하는 경험은, 우리가 먼저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뚜렷한 주제나 멜로디를 정확히 듣고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음악은 우리를 사로잡는 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황홀하게 한다."고 말했다.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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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찾아라 -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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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만들어온 삶의 지혜이고, 법칙이다. 이에 충실해 인류는 지구 최고의 생명체로 진화했고, 현인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라고 조언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인류의 삶에는 매 순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 수많은 선구자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는 시대나 장소는 다를지라도 이 삶의 원칙은 인간 삶의 절대불변의 진리이다. 

이 책 『진짜 나를 찾아라』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이다. '무소유'의 스님으로 알려진 그가 2003년 광주 남도예술회관 대강당에서 〈맑고 향기롭게〉 10주년 기념 강연을 했다. "도착지와 시간을 먼저 생각하면 거기에 갇혀 가는 길을 즐길 수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법정은 1994년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라는 실천 덕목으로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설립하고, 올해로 30주년이 됐다. 법정은 14년 전 2010년 입적했지만, 뜻 있는 관계자들과 생전 30년, 사후 14년을 함께해 온 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가 법정의 강연을 책으로 펴냈다. 김한수가 쓴 추천사에는 법정이 평소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직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말고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전언이다. 

〈추천사〉에는 이 밖에도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메시지가 담긴 강연 내용이 많다. "주위에 핀 꽃들을 보십시오. 이 꽃들은 생과 사에 연연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자기 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던가요?"(「자기의 일을 사랑하라」 중에서) "꽃은 묵묵히 피고 집니다.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때 그곳에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그것은 한 송이 꽃의 소리요, 한 가지 꽃의 모습.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쁨이 후회 없이 거기서 빛나고 있습니다."(「없는 것을 어찌 찿으려 하는가」 중에서)

법정의 ‘글맛’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말맛’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김종수 전문기자는 말한다. 그러나 법정의 강연은 그대로 녹음해 풀어 놓으면 훌륭한 한 편의 글이 된다는 것. 교훈과 유머, 위로와 격려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추천사〉를 통해 전한다.



독자들도 느끼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나지막이, 때로는 격하게 말씀하시는 법정의 생생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고. 더구나 강연 내용이 20~30년 전의 말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크나큰 가르침과 위안을 준다. 어쩌면 점점 더 진짜 나의 모습을 잃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 춘천, 대구, 창원, 광주, 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법정 스님이 펼친 강연을 글로 풀어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강연 내용이 그동안 책으로 출간되지 않아 미공개된 것들이라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책에 따르면 법정은 1994년 3월 26일 서울 구룡사에서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했다. 맑고 향기롭게는 구체적인 실천행을 도모하여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그 뜻을 함께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순수 시민 모임이다. 현재에도 많은 회원이 동참하며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맑고 향기롭게〉 30주년을 기념하여, 법정이 전국을 돌며 대중 강연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위해, 우리의 풍요롭고 참다운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일러주시는 스님의 귀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흔히들 마음을 맑히라고, 비우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마음을 밝히는 법이라고 얘기하는 이는 없다. 또 실제 생활이 마음을 비우고 사는 이처럼 여겨지는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다. 마음이란 결코 말로써, 관념으로써 맑혀지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선행을 했을 때 마음은 맑아진다. 선행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행위를 이른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을 그저 퍼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있던 것들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일 뿐이다. 하찮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노라면 절로 맑은 기쁨이 샘솟는다. 그것이 행복이다." (중략) 인간들의 이기적 욕심이,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 이제는 자신들의 생명마저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이제 우리들, 인간들은 지혜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p.10~11)



이 책은 모두 1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5회분의 강연을 책으로 묶었다. 각 장의 제목은 책을 펴낸이들이 정했겠지만 간단하고 명료해 강연 내용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진정한 고독에 이르는 길」 「자신만의 얼굴을 만들어 가라」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려면」 「없는 것을 어찌 찾으려 하는가」 「인간을 벗어나 자연으로 살아가라」 「수많은 생을 두고 쌓은 인연」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나의 선지식」 「지금 여기, 삶을 채우는 시간」 「텅 빈 공간에 홀로 앉아 있으라」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 「참다운 구도자가 되는 길」 「인간은 유한한 존재」 「눈을 들어 흐르는 강물을 보라」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이유」 등 15개 제목이 독자들의 눈을 잡아 끈다. 제목 자체로도 생각할 게 참 많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법정이 내내 자리한 길상사 설법전에서 문화강좌를 하던 「차를 마시면서」의 내용이 마지막에 곁들여 있다. 

앞서 언급한 「실질적인 선행을 했을 때 마음은 맑아진다」 란 제목의 〈맑고 향기롭게〉 취지문에서 "깨달음에 이르려면 두 가지 일을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 하나는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 감시하여 행여라도 욕심냄이 없도록 삿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 하나는 실천하는 것이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 갖는 실천행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고 참된 삶을 살기 위한 핵심 키워드가 ‘성찰’과 ‘사랑’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고된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찰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로 담고 있다. '수행'이란 출가 승려들이 절에서 공부하고 이른바 '도'를 깨닫기 위해 참선하는 행위만을 일컫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수행이란 '지금 여기서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게 된다. 법정은 삶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삶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 일에 열의를 가지고 몰두할 수 있어야 합니다.”(p.16)

「맑고 향기롭게 취지문」에서 법정은 “물질의 노예가 아닌 나눌 줄 알고, 자제할 줄 알며, 만족할 줄 알고, 서로 손잡을 줄 아는 심성을 회복해 가야만 한다. 이것이 참다운 삶을 사는 길이며, 삶을 풍요롭게 가꿔 가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가지 일을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법정은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자아 성찰을 위한 고독의 필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대중이 싫어하는 '고독'에 대해서도 꼭 가져야 할 하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흔히 고립과 고독을 혼동하기도 합니다만, 고립이 아니라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특성과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걸 깨우려면 자신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깊은 고독에 빠져 보아야 합니다.”(p.25~26)

유념해야 할 것은, 법정 스님이 강조한 ‘고독’은 자기로부터 시작하기 위해서이지 거기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수많은 이웃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고독의 최종적인 관계는 결국 이웃이라는 것이다. 즉,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고독의 의미라고 법정은 설파한다. 우리가 한 생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할 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내 가족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많은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내 마음을 얼마만큼 따뜻하게 기울였는가 물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하십시오. 좋은 책을 읽었을 때도 그렇게 하세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인연이고 또 맺음입니다.”(p.71)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는 길임을 강조한다. 이 강연은 1986년 동덕여대 동덕미술관에서 실시되었는데 '불교계가 경전을 잘 읽지 않는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시작한다. 

"우리나라 불교도들은 경전을 잘 읽지 않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탐구력이 부족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시고자 한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 종교인지, 불자는 무엇을 등불로 삼아야 하는지, 자신을 수련하고 세상을 향해 어떤 보살행을 해야 하는지 탐구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궁금하지 않은 것이지요. 혹은 알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음 경전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불경이 한문으로 전해지다 보니 한자를 읽지 못하고 한문을 알지 못하면 경전 또한 읽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요즘은 번역서가 많으니 이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p.51)

법정은 부처님의 뜻을 잘 살피려면, 불교의 참된 교리를 깨치기 위해서는 경전을 읽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부처님께서도 "이미 모든 법이 잘 말하여졌고 또한 준비되어 있으니 오직 법에만 기대어 자신을 수련하면 충분하다."라고 가르쳤음을 강조하며,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선재동자라는 젊은 구도자의 이야기를 해준다. 선재동자의 구도 행각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로부터 출발하여 온갖 덕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에 이르러 마치게 되는 것은 불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 주는 실증이라는 것. 법정은 "이름만 붙인다고 하여 보살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태어났다고 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명확히 한다. 보현보살의 말을 빌어 부처님의과 같은 공덕을 이루려면 열 가지 크나큰 행과 원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 열 가지 행원이 모두 나와 설명까지 나와 있다. 간략하게 번호를 붙여 살펴본다. 

① 예경제불(禮敬諸佛) -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을 드리는 것.

② 칭찬여래(稱讚如來) - 부처님의 덕행을 찬탄하는 것. 

③ 광수공양(廣修供養) - 여러 가지를 공양하는 일. 

④ 참회업장(懺悔業障) - 자신이 지은 허물을 참회해야 한다는 뜻. 

⑤ 수희공덕(隨喜功德) - 남의 공덕을 함께 기뻐하는 것. 

⑥ 청전법륜(請轉法輪) -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 

⑦ 청불주세(請佛在世) -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 

⑧ 상수불학(常隨佛學) - 부처님을 본받아 배우는 것. 

⑨ 항순중생(恒順衆生) - 이웃의 뜻에 따르라는 가르침. 

⑩ 보개회향(普皆廻向) - 모두 다 돌려보내는 것.


이 책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길을 알려는 법정의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행복의 척도를 소유에 두지 마십시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등 무소유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마세요” 등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일침으로 환경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법정의 죽비는 영원히 남아 우리의 영혼을 맑고 향기롭게 바꿔줄 것이다.



저자 : 법정(法頂)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후 인간의 선의지를 고뇌하다가 대학 3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6년 당대 고승인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같은 해 7월 사미계를 받은 뒤, 1959년 3월 통도사에서 승려 자운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어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1975년 10월에는 송광사 뒷산에 직접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짓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홀로 살았다. 1994년부터는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끄는 한편, 1995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가,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며,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했다.

수필 창작에도 힘써 수십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였는데, 담담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정갈하고 맑은 글쓰기로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 작가로도 문명이 높다. 대표적인 수필집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 소리』, 『산방한담』, 『텅 빈 충만』, 『스승을 찾아서』,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홀로 사는 즐거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그 밖에 『깨달음의 거울』, 『숫타니파타』,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역서를 출간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출가 50년, 법정 스님의 잠언 모음집으로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달렸다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이 직접 가려 뽑은 50편의 글이 담겨 있는 대표산문선집이다. 산중 생활에서 길어 올린 명상과 사색이 특유의 계절적인 감성과 어우러져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영혼의 피안처가 되어 준다.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포근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한 『무소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품으로 북적이는 도심이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 새와 바람, 나무와 벗하며 살아가시는 스님은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보여준다. 다른 저서로는 『홀로 사는 즐거움』 『말과 침묵』 『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참 좋은 이야기』 『화엄경』 『인연 이야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영혼의 모음(母音)』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진리의 말씀-법구경』 등이 있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 11일 병원에서 퇴원하여 법정스님이 1997년 12월 창건해 2003년까지 회주를 맡아왔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할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말라'고 당부했다는 법정 스님은 가는 걸음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남은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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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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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시의 대상으로 전락한 인류의 엉덩이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답변을 찾아 나선 저자의 끈질긴 추적은 역사학�진화학�심리학�사회학을 넘나든다. 저자가 천착 탐구한 결과 한 곳을 가르킨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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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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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엉덩이는 어떻게 인식돼 왔을까? 이 책 『엉덩이즘Butts』의 저자 헤더 라드케(Heather Radke)는 크고 빵빵한 자신의 엉덩이가 수치심과 으스댐의 경계에 서 있음을 깨닫고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대관절 왜 인류는 이토록 수많은 암시를, 페티시를, 혐오를, 뉘앙스를 엉덩이에게 부과해왔는가?를 탐구한다. 왜 인간은 그저 신체 부위 중 하나일 뿐인 엉덩이에게, 겹겹이 옷을 입혔다가 벗기기를 반복해왔을까? 저자는 큐레이터로 일하며 쌓아온 지식과, 젊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쌓아온 필력을 십분 활용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저자의 글쓰기는 계단을 오르며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한다. “아, 내 엉덩이 괜찮나?” 이런 질문은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봄직하다. 옷 등 패션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만큼 현대 여성은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즐겨 입기에 유난히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날, 뒤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여성이라면 본 적 없는 뒤태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마땅히 내 것임에도 어쩐지 당당할 수 없고, 오로지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대상. 인류가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엉덩이는 늘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근데, 엉덩이는 어쩌다 이런 곤란한 존재가 된 걸까?

도발적이면서도 별 문제 아니라는 듯 시니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책 『엉덩이즘』은, 탈의실에서 낑낑대며 청바지에 엉덩이를 욱여넣던 한 여성의 뛰어난 탐구 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큐레이터로 일하며 특유의 집요한 연구력을 장착한 헤더 라드케는 편견과 오해, 목적과 의도라는 수많은 옷을 겹겹이 입고 뒤뚱거렸던 엉덩이의 이력을 낱낱이 파헤친다. 작가로서의 데뷔작인 이 책은 발칙하고 드라마틱한 저술로 이루어진 흥미진진한 르포라는 극찬을 받으며 출간 당시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이목을 끌었다고 한다. 2022년 최고의 논픽션 자리를 휩쓸며 독자의 열렬한 간증을 받았다. 수치심에 갇힌 몸과 마음은 자유로워지고, 억압받던 자신감은 강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며 자꾸만 엉덩이를 감췄던 이들에게 해방구 그 자체가 되어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마치 구호 같은 책 속 문장들을 되뇌며 우리는 당차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는 그저, 엉덩이일 뿐이라고.



우리말 '엉덩이'는 ① 볼기의 윗부분 ② 명사 볼기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풀이다. '볼기' 못지않게 자주 쓰이는 '궁둥이'도 ① 볼기의 아랫부분 앉으면 바닥에 닿는, 근육이 많은 부분 ② 옷에서 엉덩이의 아래가 닿는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표현만 약간 다르게 했을 뿐 우리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이자 소재인 '엉덩이'를 가르킨다. 저자가 부제에서 선택한 '패티시'와 엉덩이는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로 보이는 게 독자가 남성이어서일까? 여성인 저자가 〈서문〉에 쓴 글은 독자가 남성이어서 느끼는 부분이란 말을 무색케 한다. "맘에 드는 바지를 골라 거울 앞에 선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끼워 넣어본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 절묘한 각도로 허리춤 아래를 째려본다. ‘너무 커 보이나? 아니면 너무 빈곤해 보이나? 아래로 처진 거 같은데, 너무 빵빵한 것보다는 낫겠지?’ 내 것임에도 나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을 상상하며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밖으로 나선다. 착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채 달리는 여성의 뒤태에도, 걸을 때마다 펄럭대는 아저씨의 펑퍼짐한 바지 밑에도 존재하지만 어쩐지 의미는 제각각인 은밀한 신체 부위로 엉덩이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뒤에 묵직하게 자리한 채 묵묵히 안녕을 지키는, 엉덩이"라고.

『엉덩이즘』은 혐오와 차별이라는 시선으로 때려놓고, 아름답고 섹시하다며 은근슬쩍 쓰다듬다가, 필요한 만큼 써먹고는 ‘에라, 모르겠다’ 뒤편에 방치했던 엉덩이의 유구한 설움을 담아냈다. 패션 잡지 〈에스콰이어〉의 극찬처럼 “활기차고 철저한 태도로,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는” 이 책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해온 엉덩이의 역사를 톺아보며, 엉덩이를 가진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변곡점들을 짚어낸다. 또한 그동안 어디에서도 건강하게 주목받을 수 없었던 엉덩이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매력을 어필하며, 오해를 해명할 번듯한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 엉덩이를 볼 때, 그들이 정확히 무얼 보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약해진다. 우리는 엉덩이를 남에게 넘겨준다. 엉덩이는 가진 사람보다 보는 사람에게 속한 존재니까. 엉덩이는 타인이 비밀스럽게 관찰하고, 은근슬쩍 곁눈질하고 기분 나쁘게 훑어보는 대상"(p.8)이라고 경험적 불유쾌함을 주장한다. 시선의 대부분은 남성들의 것일 터이니, 엉덩이의 주인인 여자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다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남성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남성들은 이를 평가하고, 비평하고, 대상화하고, 탐한다.



왜 엉덩이는 남성들의 은밀한 시선을 끌어들이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학·진화학·심리학·사회학을 넘나들며 질문에 천착해 풀어나간다. 의학·해부학적으로 엉덩이는 근육과 지방을 결합한 큰볼기근으로 설명된다. 문제는 엉덩이를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에게 엉덩이처럼 보이는 부위는 있지만, 엉덩이라 지칭할 수 있는 부위를 가진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사실에 저자는 접근한다.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과거의 흔적에서 연구 단서를 찾곤 했던 저자는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초의 엉덩이를 달고 태어난 고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을 보관한 박물관에 찾아간다. 기원을 따라 찾아간 그곳에서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과 나눈 대화를 통해, 이족보행 짐승인 인간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했던 엉덩이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순간속도가 빠른 네발짐승으로부터 도망갈 지구력을 선사하고, 큰 뇌를 떠받치며 빠르게 움직이도록 돕고,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고도 무사히 살아갈 열량을 축적하는 곳. 엉덩이는 정말 인간의 ‘생존’에 관여하는 존재다. 이 책은 의견이 분분한 과학자들이 유일하게 인정한 사실, “엉덩이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다”라는 점을 한 번 더 되짚으며 엉덩이가 갖는 해부학적·생물학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침팬지와 달리 인간의 엉덩이는 훨씬 크다. 네발짐승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다. 빠르게 달리면 체온을 내리지 못해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190만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의 엉덩이는 장거리를 달려도 다치지 않고 오래 달리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에 듬성듬성 자라는 나무로 달려가 타고 오를 때, 덤불 뒤에 쪼그리고 숨을 때, 포식자로부터 빠르고 민첩하게 도망칠 때 엉덩이가 필요했다. 그는 육상 선수들을 보면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엉덩이가 크게 발달한 선수들은 장거리 주자가 아니라 단거리 주자, 뜀뛰기 선수, 던지기 선수들이죠.” 과학자들은 엉덩이 근육이 존재하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지만, 엉덩이가 인간의 진화에 중요하게 기여했으며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우리가 인간인 건, 어찌 말하면 엉덩이 덕분이다.(p.46~48)


프랑스 플로리스 〈올림포스의 신들〉. 사진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저작권 보호에 위배 없음. <출처=네이버>


진화론적으로 합리적 이론이지만 인류의 예술사적으로 살펴보면 다소 다른 의견이 제시될 수도 있다. 미술사에서 엉덩이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장 뤼크 엔니그에 따르면 19세기 중반부터 1914년 즉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술사 속 엉덩이는 대체로 언제나 목욕 중이었다고 한다.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사랑의 보편적인 상징인 하트 모양이 엉덩이 즉 "뒤에서 바라본 여자 엉덩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여성의 엉덩이는 복숭아처럼 하트 형태를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엉덩이가 완벽하게 돌출된 형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허리가 쏙 들어가야 한다. 엉덩이는 두 개의 아치형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아름다운 엉덩이의 본격적인 첫 출현은 비너스 칼리피기스(Venus callipygis)일 것이다. 비너스 칼리피기스는 '엉덩이가 아름다운 비너스'라는 뜻이다. 

인류 예술사에서 완벽한 엉덩이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젊고 활동적인 남성의 엉덩이. 이런 엉덩이의 완벽함이 정점에 도달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였다. 하지만 그리스의 청년상들의 엉덩이가 정면으로 표현된 적은 드물다. 엉덩이가 중심이 되는조각이 제작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반면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엉덩이는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미켈란젤로에 의해 남성 엉덩이의 진정한 진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특히 〈다비드〉, 〈카시나 전투〉,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속 남자들의 엉덩이를 보라. 한마디로 천지를 진동하는 엉덩이다.(유경희, 〈몸으로 본 서양미술〉) 

엉덩이가 중요한 신체 부위인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엉덩이는 과연 그뿐인가? 우리가 엉덩이를 달고 살면서,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떠올리는 다양한 감정은 왜 생긴 것이며 어디서 비롯된 걸까? 엉덩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던 출발점을 더듬으며 저자는 노예제도가 팽배하던 착취의 역사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산 한 여성의 초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바로 호텐토트 비너스, 세라 바트먼이다.



책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코이족의 여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 간 그는 그야말로 ‘서커스의 곰’처럼 취급당했다. 상상 이상으로 엉덩이에 열광적이었던 19세기 런던 분위기와 커다란 엉덩이를 지닌 바트먼의 몸은 권력가들의 욕망에 절묘하게 맞물렸고, 이는 큰돈과 비이성적인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 기이한 현상이 암묵적인 인종 차별과 성차별을 양산해냈다고 지적한다. 책은 약자의 나체를 대상화해 인종적 위계, 기이한 성착취 구조를 사회에 퍼뜨린 음흉한 서구 열강의 속내를 까뒤집어 보여주고, 이 위험하고 폭력적인 선입견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점도 고발한다. 

천박한 엉덩이, 섹시한 엉덩이, 예쁜 엉덩이 등 엉덩이에 위계질서가 생기고 나니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커다랗고 풍성한 실루엣을 만들어 성적으로 어필하려는 19세기 유럽의 아가씨에겐 버슬(bustle)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유형의 부르주아 여성인 플래퍼(flapper)들에겐 호리호리한 몸에 적합한 코코 샤넬의 옷이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대량 생산을 통한 기성복의 시대가 도래했어도 여전히 마네킹 속 ‘이상적인 엉덩이’를 열망하는 사회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여기서 작가는 ‘이상적인 엉덩이’에 수렴하는 엉덩이가 아주 극소수이며, 이 극소수의 엉덩이 소유주조차 자기 엉덩이에 만족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가장 괴이한 점으로 꼽는다. ‘헤로인 시크(heroin chic)’ 유행 속 케이트 모스의 비쩍 마른 엉덩이에도, 섹스심벌로 수많은 인기와 돈을 벌어들인 제니퍼 로페즈의 엉덩이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을 정착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여성들은 변덕 심한 사회의 시선 속에서 유행이 바뀔 때마다 자기 엉덩이를 미워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본가들은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작가는 아프리카의 트워킹을 자신의 정체성과 시장성 확장의 기회로 삼은 마일리 사이러스, 선정적 이미지와 모호한 인종 정체성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들인 킴 카다시안을 예로 든다. 더불어 큰 엉덩이를 떼었다가 붙이고, 하위문화로 취급했던 흑인 문화를 차용하고 제거하는 백인 문화의 선택적 태도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선택적 글래머’들의 대중없는 폄하로부터 엉덩이를 지키는 방법은, 그동안 외면해온 수치심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모든 수치심에 근원에서 고개를 돌릴 때, 우리는 남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리고 우리의 수치심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영영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도 해를 입힌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억압과 착취와 차별이 이어졌음에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은 채 끊임없이 저항해온 엉덩이들도 있다. 수많은 댄서가 당당하게 선보이는 ‘트워킹’은, 사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음악과 춤이 번영한 뉴올리언스의 콩고 광장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노예들이 모여 저항정신을 담아 선보였던 퍼레이드에서, 여성들이 사회운동으로서 췄던 도발적인 춤이 트워킹의 기원이었다는 점을 포착해낸다. 흑인 음악의 정수이자 미국 음악의 밑바탕을 이뤘던 뉴올리언스에서, 노예들의 저항정신으로부터 비롯된 트워킹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탄탄한 몸매를 여성의 가장 가치 있는 자기관리로 여겼던 피트니스 시대, 당시 모든 미국 여성의 엉덩이 근육을 책임졌던 〈번즈 오브 스틸(Buns of Steel)〉은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사회에 확산시키며 멋지고 강하고 단단한 엉덩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탄생시켰다. 이는 새로운 ‘이상적인 엉덩이’를 만들며 또 하나의 강박을 양산하는 데 그칠 뻔했으나, 어떠한 엉덩이든 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 계기기도 했다. 위 댄스(WE DANCE), 거거익선(Positively More) 등 ‘뚱뚱한 피트니스’의 열풍을 만들어내며 그들만의 박자와 바운스로 비판 정신을 유쾌하게 표현한, 즐겁고 뚱뚱한 엉덩이들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꿋꿋했던 엉덩이, 눈초리 속에서도 당당했던 엉덩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행복한 엉덩이 등 시대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굴곡을 만든 투철한 엉덩이들은 분명 있었다. 간과된 엉덩이 하나 없이 논리정연하고도 발칙하게 세상에 소개해낸 저자는, 출간과 함께 가장 부끄러운 존재를 역대급 통쾌함으로 풀어냈다는 언론과 독자들의 평가를 받았다. 철저한 고증 아래 선별된 유익한 정보들, 정치적이면서도 논리적인 메시지, 유머러스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는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윤활유로서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크고 작은 ‘엉덩이’들에게 결코 특정 태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몸을 바라보는 마음에, 환기의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담담하게 적어 나간다. 저자 역시 연구와 집필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엉덩이에 갖는 수치심에서 해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드는 혐오감은, 유구하고 익숙하고 평범하다는 이유로 쉽게 좌절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수치심의 근원에 직면하며 생겨난 변화는, 다음 세대의 엉덩이에게 분명히 새로운 의미를 전해줄 것이라고 저자는 확언한다. 우리가 오래된 시선과 편견으로, 정치와 문화라는 수단으로 억압해왔어도 결국 지금의 모양으로 뒤태에 달린 것처럼. 엉덩이는 사회가 정해놓은 청바지와, 문화가 입혀놓은 거들과, 욕망이 뒤엉킨 비키니에 각자만의 부피로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몸은 타고나길 통제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둘러싼 음흉한 페티시를 통렬하게 저격하는 책 속 다정한 일갈이 퍼져나갈수록, 우리 모두의 엉덩이는 언젠가 보란 듯이 해방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당신의 엉덩이에 너그럽기를, 또한 모든 엉덩이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엉덩이즘』은 쓰였다.


엉덩이의 역사에 관해 조사하며 나는 내가 품은 수치심을 이해하고 그 배경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의 사고방식과 전제로 품은 가정들에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제는 거대한 구조적 힘이 덜 막연하게 느껴진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희망을 품는다.(p.360~361)

- 「에필로그: 탈의실을 나서며」 중에서


저자 : 헤더 라드케(Heather Radke)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피바디상The Peabody Awards을 수상한 WNYC 프로그램 〈라디오랩Radiolab〉에 객원 편집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롱리즈Longreads〉, 〈파리 리뷰Paris Review〉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써왔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문예창작 예술 석사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카고의 제인 애덤스 헐하우스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탈의실에서 애써 외면해왔던 엉덩이를 직면하고서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역자 : 박다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책 『멍든 아동기, 평생건강을 결정한다』, 『만만찮은 여자들』, 『불안에 대하여』,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스피닝』 등을 번역했다. 배우자와 아이, 고양이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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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
유인경 지음 / 테라코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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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독자는 노년 생활, 노후 생활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대비책이 없다고 걱정하지도 않았다. 또 7~8년 전 이른바 '100세 시대' 열풍이 불 때도 들떠 즐거워 하지도 않았다.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사람이 노년생활을 상상한다는 것은,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오히려 쓸데없는 자해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많이 바뀌었다. 일상이 바뀌었고, 일에 대한 열정도 많이 식었다. 뿐만 아니라 몸 여기저기가 하나씩 가벼운 증상을 보이며 '노후'이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생각이 천천히 변해갔다. 기본적으로 집과 밥은 연금과 작은 저축액 등으로 해결되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막연히 생각했던 일년에 한 번씩 해외 여행이나 죽기 전까지의 건강 관리 등 지혜로운 노년 생활을 신중하게 생각해보니 걱정을 안 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걱정을 시작하자 대비해야 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안감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비로소 왜 다른 사람들이 노후 걱정을 하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지』는 노년의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은퇴 후 노년은 이렇게 지내라"라는 안내서이자 영감을 주는 한 작가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 유인경은 정년퇴직까지 기자 생활을 했고 이젠 어느덧 60대 중반으로 가고 있다고 「스스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최고의 시기」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밝힌다. 독자도 "벌써?"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엊그제 방송에서, 특히 아침 TV 방송에서 똑 부러지는 말투와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던 아우라가 풍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독자가 아침 방송을 안 본 지도 10년은 된 듯하다. "벌써?" 하고 놀란 이유는 독자 자신에게 있는 듯하다. 책 표제어에도 '오십 너머'라는 문구에 이제 저자가 '50대에 들어섰거나 조금 지났거나'로 예단한 독자의 오산이었다. 저자는 내년부터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경로 혜택을 받는 나이라니 정말 세월에는 장사가 없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100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인간 최고의 소망 중 하나라고 전국적으로 흥겨워했는데 벌써 노인은 찬밥 신세다.



앞서 독자 개인적인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기술했지만 저자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자 역시 젊은 시절에 ‘노년’은 화성이나 목성처럼 아득히 먼 곳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이 50을 앞두게 되면,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지게 될지 덜컥 겁이 난다. 노화는 재앙, 뒷방 늙은이, 꼰대 같은 부정적인 말만 떠오르고, 나날이 발전해 가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을 먼저, 오래 살아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50대 이후부터의 삶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보는 시간’이라고 한다. 부모나 가족의 요구나 기대 때문에 혹은 사회적 역할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살아왔던 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돌릴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물들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요즘 중장년층들은 취미로 해 보고 싶었던 걸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자격증을 따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에 가서 즐기고, 이웃을 위한 봉사도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이에 따라 실상 모든 역동적 소비지출이나 트렌드 변화에 중장년층이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칙칙하게 녹슨 실버가 반짝이는 ‘골드’로 격상되기 시작했다.

저자 역시 나이 들어 가는 게 생각만큼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고, 오히려 근사하고 재미있으며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와 보람을 느끼니 그 세계로 들어오는 걸 겁내지 말라고 단언한다. 특히,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숫자상의 나이와 상관 없이 인생 최고의 시기, 최상의 구간을 살아갈 수 있다며, 인생 후반기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운 이들에게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1982년부터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노인과 어르신을 직간접으로 만나고 수많은 책과 자료를 보면서 인생 후반기의 삶을 쓸쓸히 지는 석양이 아니라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밝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이들의 특징을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자신의 숫자 상의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젊거나 어려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화려한 과거나 무용담을 내세우지 않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고 팔자타령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현재 자신이 맡은 연극의 역할과 출연하는 구간에 자신의 진짜 얼굴과 목소리를 내며 충만함을 느끼려고 한다. 인생이 자신의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알고, 꾸준히 한 길을 걷는다고 꼭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알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직진한다. 늘 어디에선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 가며 오늘을 살아간다.

저자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인생의 전성기와 행복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시기를 최상의 구간, 즉 프리미엄 피리어드(Premium Period)로 이름짓는다. 그리고 프리미엄 피리어드를 보낼 수 있는 삶의 태도, 마음가짐, 해야 할 일, 인간관계 등을 21가지로 정리해 풍성한 사례와 실천 방법 등을 이 책에 담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도 인생 후반기를 ‘최상의 구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작은 습관, 말 한마디,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각도를 조금씩 바꾸고, 조금 더 유연해지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은 4개 파트(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최상의 구간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2부 〈최상의 구간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3부 〈최상의 구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4부 〈최상의 구간에서 필요한 관계에 대하여〉 등이다. 즉, '노년 황금기'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갖추고, 해야 할 일에 매진하되 대인 관게를 축소할 것을 권유한다.



각 파트마다 5~6개의 장(章)을 마련해 키워드로 이를 정리해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각 장의 키워드는 모두 영문자 'P'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구성해 독자들의 이해와 머릿속에 각인하기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21개의 단어 가운데 눈에 띄는 단어는 역시 자주 접하던 단어이다. 노년은 물론 젊은층 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첫째 Present(현재)이다. 부제로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라'가 붙어 있다.저자는 자신의 기자 생활 중 기사의 질은 인터뷰를 한 대상이나 준비한 자료가 좌우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당시 취재원에 얼마나 집중했는지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기자 생활 말년에야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오래 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라고 소개한다. 

"인터뷰할 때는 그 사람이 가장 멋지고 내 인생 최고의 상대이며 지구상에서 그 사람과 나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인터뷰가 가능했다. 시간이 조금 길어져 다음 스케줄에 차질을 빚으면 다음 상대에게 "정말 죄송한데 30분 정도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대부분 양해를 해 주셨다. 그러나 다음에 할 인터뷰 시간이 늦어질까 봐 초조해하면 인터뷰를 당하는 이들도 내 눈치를 보며 건성으로 답했다. 하나에 하나씩, 야구 선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 하나씩 쳐내듯 하면 된다···.(p.27)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가져라」란 부제가 붙은 "Purpose(목적 의식)' 장(章)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야심(?)을 드러낸다. "60대 중반까지 한결같이 억지로 일일 학습지를 풀듯 건성건성 살아온 나는 최근에 나를 위해 가장 나다운 목표를 정했다. 손자가 태어나고 제법 의사소통이 되면서 나는 그 아이의 귀엽고 재미있고 유쾌한 할머니가 되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p.60)는 목표이자 야심이다. 할머니인 자신은 그 아이의 일상을 통제할 필요 없고 성적이나 장래 등에 대한 책임감도 느낄 필요 없이 가장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어서라는 이유를 붙여놓아 눈에 띈다.



21개의 단어 중 어느 것이 가장 관심이 가는지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상황이나 살아온 배경, 앞으로 살아갈 환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누구나 맞닥뜨리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했을 'Pick(선택)'의 문제다. 저자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를 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는 네 살 난아들을 독일군 몰래 수용소 침대에 숨게 하고 아들에게는 이 상황을 거짓말로 설명한다. 여긴 캠프이고 게임을 해서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에게 탱크를 준다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거나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면 점수가 깎이니 조용히 지내서 탱크를 받자고. 아들 조슈아는 강제노동에 지쳐 돌아온 아버지에게 오늘 몇 점을 받았느냐고 천진하게 묻는다. 나치를 피해 아들을 쓰레기통에 잠시 숨겨 놓은 귀도는 나치에게 총살 당하러 끌려가면서도 쓰레기통 구멍으로 자신을 보는 아들을 위해 게임을 하러 가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는 아들에게 거짓말을 선택했지만 덕분에 아들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캠프에 참여한 즐거움을 누렸다.

저자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 나이 들어서 선택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내게 불필요한 것을 골라 버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자신이 남들에게 휘둘려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내게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절을 선택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내가 타인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절대 큰일이 생기거나 인간관계가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p.95)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의미가 있다」란 부제의 'Pass' 장에서 저자는 노후에는 '집착(욕망)을 떨쳐버릴 것'을 강조한다. "과거의 명성이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노후를 비참하게 만든다.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꼰 매듭을 푸는 것이 내가 나한테 해 주는 자연 치유법이 아닐까. 과거도, 매듭도 강물에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노후도 평화롭게 흘러간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기를···.(p.149)



저자 유인경은 이 책에 쓰인 용어 '프리미엄 피리어드'는 대문호 괴테가 후배들에게 한 말 "사는 동안은 사는 것처럼 살아라!"와 일치한다고 〈서문〉에서 밝히면서 책을 시작했다. 저자는 「오십 너머에도 천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다」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글을 마치며)〉에서 자신의 '요즘'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나이 들면서 나는 지혜롭거나 현명해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편안하고 평화로워졌다. 과거 내가 겪었던 고통과 슬픔, 실수와 실패, 참담함과 부끄러움, 원망과 분노, 억울함과 답답함등의 감정들이 더 이상 나를 찌르거나 피를 내거나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 뒤에는 기쁨이, 웃음 뒤에는 눈물이 패키지로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결국 쓴맛 뒤에 맛보는 달콤함, 구름이 걷히고 나온 햇살의 눈부심, 오해가 이해로 바뀌어 가는 과정의 황홀함, 뒤늦게 발견한 새로운 세상의 맛과 멋과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어,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버텨 온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진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하며 나를 다독여 준다. 나의 노년기를 재해석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집중하고 있다."(p.249)


오래전 미국 신문에 90이 된 할아버지가 “60에 은퇴한 후 나는 나머지 시간을 아무 목표나 목적 없이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처럼 조심조심하며 살았다. 3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건강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작은 기쁨을 위해서도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는 내용을 인용한다. "나이 들어 간다고 해서 매사 조심조심 익숙한 생활에 순응하며 지낸다면 그건 살아도 죽어 지내는 셈이다. 인생 후반전의 특권이자 의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걸어 보는 것이다. 단, 20대의 속도와 힘으로 달릴 필요는 없다. 진짜 어른다운 지혜와 연륜으로 내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오래 근사하게 보낼 길을 찾아보면 된다." 독자들도 자신에게 좀 더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 또 다른 능력을 발견해 내고 성장해 가며 인생의 가장 빛나는 날, ‘프리미엄 피리어드’를 시작해보길 저자는 권유한다. 


저자 : 유인경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일했다. 주요 일간지 취재 여기자 중 최초로 2015년에 정년 퇴임을 맞았다.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자산으로 여기며, 누구와도 수다를 떨 수 있는 것이 특기이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라면 돈 버는 재주라고 스스로 말한다. 저서로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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