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철학 30day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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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자에서 현자들의 생각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옮겨 꾸준히 노력하라. 매일 매일 실천하고 노력한다면 당신의 삶은 분명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습관화하라. 이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원칙이고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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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철학 30day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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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신문처럼 보이는 이 책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는 삶의 지혜를 전할 목적으로 펴낸 격언집이다. 격언을 단순히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저명한 철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책에 남긴 말 중 삶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지혜의 말들이 담겨 있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빠른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종종 좌절하거나 나락으로 추락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만일 위기에 처했을 때 멘토가 늘 옆에서 조언해주고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해주면 그나마 최소한의 대응을 해가면서 추락을 막을 수도 있을 텐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겐 그럴 수도 없다. 위기는 너무 빨리 다가오고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다. 삶의 스트레스는 이럴 때마다 조금씩 쌓여 또 다른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대처하려면 평소에 연습을 해두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어떤 위기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위기 대처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철학자들은 삶의 문제에 대해 끝없는 생각과 사고의 전환으로 삶의 지혜를 창출해낸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의 인간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나간다. 삶의 철학은 생각과 경험의 결과를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영혼에 새겨넣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자들이 가르친 삶의 지혜는 위기에 정신적으로 무장하는 작업이다. 정신적으로 잘 준비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을 갖고 살아간다면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도 훨씬 커질 것이다. 훈련은 순발력을 발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포츠 선수가 훈련을 철저히 하면 운동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훈련한 대로 움직여 위기를 극복하는 일과 동일한 원리다. 

이 작은 책에는 마음 훈련을 하는 데 금과옥조로 작용할 말을 남긴 54명의 위인들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이 책은 금언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체화할 것인지에 대해 훈련 지침서로 활용되도록 구성돼 있다. 만일 이 작은 책자를 천천히 먹어 소화한다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웬만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신 없이 빠르고 복잡해서 흔들리는 우리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각 개인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고윤은 다양한 멘토들의 성공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더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의 선험적인 행동과 연구는 삶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최소한의 영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매일 꾸준한 노력으로 1%씩 성장하는 삶을 전하는 저자는 지금 당신의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바쁜 현대인이라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릴스나 숏츠 같은 소비성 콘텐츠로 도파민 중독에 빠지니 인생이 무너져가는 건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벼운 도파민이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과 인생의 철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서른 살 때의 무너져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고 경험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못하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는 무력감에 빠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글로 하나하나 적다가 오래지 않아 '자신이 무너져 있음'을 발견했다. 메모장에 "남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도 못 내리는 상태"임을 자각하고 적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 하나도 타인의 의견 없이는 결정하지 못하는 삶이었다. 이때가 삶의 주체성에 대해 깨달은 시기다.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타인을 위해 살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기준을 세우는 철학은 우리 인생에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에 존재하는 위인 54명의 철학이 담겨있다. 가장 유명한 니체,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 퇴계 이황, 임마누엘 칸트, 장영실 등 세상에 업적을 남긴 인물의 철학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 유행하는 '타지에서 한 달 살기'처럼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명언들을 '30일'로 나눠 구성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편씩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어려운 철학과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 현대인들에게 맞게 소책자 형식으로 만들었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사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자기계발이나 철학의 근본 원칙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대 전제 아래서 이뤄진다. 삶을 바꾸거나 더 좋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오랜 생각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숙고(熟考)해야 한다. 다음엔 실천(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삶은 바뀌지 않는다. 또 실천하되 오래 해야 한다. '한 번 해보는' 식으로 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습관화해야 한다. 습관화되면 비로소 성격도 변화된다. 사람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게 아니다. 나쁜 성격이었으면 좋은 성격으로, 폭력적이었던 성격이 관용적인 성격으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대인 관계나 사람들과의 관계는 달라진다. 이젠 변화한 더 좋은 삶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봐도 된다. 이 책도 이 같은 철학적 조언이 중심이 된다. 흔들리는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을 이 책을 통해 얻길 바란다.

이 책이 작은 책자처럼 만들어져 있다. 책의 구성도 54명의 위인의 말을 장(章)의 구분 없이 실었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언제 어디를 펴도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위인들의 조언이 실려 있다. 필요하다면 가급적 말을 남긴 책 이름도 함께 실었다. 제목은 주제를 표현하는 한 줄의 문구나 문장이다. 한 번 읽고 다시 읽을 때 목차를 펼쳐보면 찾기 쉽다. 첫 페이지에 실린 「낙관주의는 10배의 힘을 만든다」를 살펴본다. 

"요즘은 이성주의적 사고방식이 엘리트적인 태도로 여겨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성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 순수한 이성주의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이성주의라는 이름 아래 비관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정말 우리가 가진 것이 이성주의인가, 아니면 단지 비관주의에 불과한가?"(p.12) 

저자는 풀이해준다. 이에 따르면 겉보기에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이성주의는 낙관과 비관 모두를 포함하는 균형 잡힌 사고방식이다. 이를 통해 최적의 결정을 바르게 내릴 수 있는 반면, 비관주의는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라 말할 수 있다. 어떤 태도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로버트 슐러(미국의 목사이자 심리학자)의 말을 덧붙인다. "비관주의자는 '나는 그서을 볼 때 믿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낙관주의자는 '믿을 때 나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p.13)



로버트 슐러가 누구인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사실 독자도 마찬가지다. 무슨 의도의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 말이 이성주의적 사고와 작관주의가 어떻게 현실을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기한다는 저자의 말에 선뜻 공감되지 않는다. 저자는 천천히 설명해 간다. 비관주의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그것이 비현실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 안에는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실천적 소양이 빠져 있다. 반면, 행동을 동반한 낙관주의는 놀랍게도 전 이류를 진보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말은 다음과 같은 등식을 성립시킨다.

낙관주의+행동=상상할 수 없는 긍정적 결과

무슨 뜻인지 명쾌하지는 않는다. 아마 독자의 지식이나 지혜, 통찰력 부족일 것이다. 다시 저자의 말을 경청한다. "무엇이든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일단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다. 그는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여 신대륙을 발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비관주의적인 콜럼버스로는 절대 성취될 수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일론 머스크가 있다. 그 누가 화상으로의 이주를 상상하며 로켓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낙관주의와 엄청난 행동력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우린 화성에 가지 못했지만, 스페이스X의 연구를 통해 우주 탐사 분야는 상상 이상의 진보를 이루었다. 결국 행동이 첨가된 나관주의는 우리의 인생을 넘어 전 인류를 전진시키는 동력을 품고 있다.

저자는 아직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낟. 우리는 자신을 비관주의자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이성주의에는 낙관도 있고 비판도 있으며, 냉정하게 바라보되, 긍정을 놓치지 않는 지혜가 담겨 있다. 미래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태도와 믿음이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이해하고, 이성주의적 사고를 통해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장(章)의 마지막에 〈비관주의를 없애고 낙관주의를 강화하는 5가지 방법〉이란 요점 정리를 둔다. 한 차례 배우고 익혔다면 복습으로 완전히 머릿속에 각인돼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내용은 이 책에 담긴 54개 항목의 하나일 뿐이다. 

① 매일 아침 긍정의 '3분 명상' : 노래 1곡이 흘러나올 동안 아침에 좋은 생각과 좋은 말을 마음껏 해준다.

② '낙관적 실패 저널' 만들기 : 작은 실패를 적고 그 옆에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장점을 낙관적으로 기록하여 모든 실패를 긍정화한다. 

③ '감사의 오브제' 습관 만들기 :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물건을 하나 정해 들고 다니면서 그 물건을 만질 때마다 감사할 수 있는 일을 1가지 떠올린다. 

④ '긍정 알림'을 설정한다 : 하루에 한번 휴대혼으로 알림을 설정하여 알림이 울릴 때 '잘하고 있어'라고 되뇐다. 문장은 무엇을 되뇌든 낙관적이라면 좋다.

⑤ '낙관의 날' 정하기 : 한 달에 하루를 정해 그날은 자신과 타인에게 오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말만 하는 날로 지정한다. 


우리는 진정 삶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매일 전전긍긍 살고 있진 않은가? 비교를 밥 먹듯 일삼고 누군갈 쫓기 바쁜 그런 껍데기 인생 말이다. 자립심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면 그에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태도는 개인이 가진 철학에서 나온다. 철학이라고 해서 마냥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철학은 주관적인 경험에서 만들어진 삶의 철칙으로 흔들리는 인생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철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닌, 새로운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과 저녁. 피곤한 몸을 깨워 일터로 향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 우리는 공평하게 24시간을 활용하며 인생을 살고 있기에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건강한 철학이 필요하다.



이 책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는 독자들에게 매일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다. 3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동서양 위인의 철학을 읽다 보면 내가 잊고 있던 것, 추구하고자 했던 것, 잃어버렸던 것을 상기할 수 있으며 죽어가는 마음을 살릴 새로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끔은 한 명의 철학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철학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바쁜 하루 중 짧게 하는 10분의 독서가 그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다.

만약 현재의 삶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이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때다. 누구나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이 당신의 것이 되길 바란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 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결심을 가지길 바란다. 저자가 이런 바람에서 이 책을 썼다.


꼭 위대한 업적을 쌓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위대함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 또한 외적인 요소를 과하게 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옆에 울고 있는 사람에게 휴지라도 건넬 수 있다면,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반창고를 건네줄 수 있다면, 타인의 비난에 위축된 사람에게 작은 위로를 해줄 수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지독한 현실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듬어 주는 것도 좋겠다. 나와 남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살아가는 삶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눠주고 타인을 평가하며 비수를 꽂는 대신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단언컨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위대한 성공이 어디 있고, 고귀한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p.111) -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란」 중에서


저자 :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성공, 동기부여, 자존감, 관계 등 2030들이 가장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 내용에 대해 해결책을 제안한다. 토니 로빈스, 짐 론, 나 레온 힐 등 다양한 멘토들의 성공학 연구를 바탕으로 글을 적으며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삶의 1% 성장을 유도한다. 실제 그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은 개설 후 매달 10,000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1년 만에 10만 팔로워를 달성했고, 매달 1,000만 명 이상이 그의 콘텐츠를 읽고 있다. 삶의 만족감을 얻는 인생을 지향하며 오늘도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Instagram @pacerskore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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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문명의 한복판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클래식 클라우드 32
김사과 지음 / arte(아르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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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미국 작가지만 평생 미국보다 런던에서 오랫동안 살며 작품을 많이 썼던 헨리 제임스. 그는 미국의 시민으로 태어났다. 미국의 독립전쟁 직후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와 큰 부자가 된 조부 윌리엄 제임스 덕택에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와 손자인 헨리 제임스까지 큰돈을 물려받아 생활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책 『헨리 제임스』에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은 300만 달러(현재 가치로 9,000억 원)에 이른다. 아버지 헨리 제임스(이름이 아들과 같다) 시니어는 매년 1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30억 원)을 지급받아 직업 없이 오랜 세월을 유한계급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의 아버지는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 숨 막히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 해방되어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방탕해진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할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는 격노했고,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보스턴으로 도망친다. 몇 년 뒤 아버지의 사망으로 자유를 얻게 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혹은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정신적 방황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형 윌리엄 제임스(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미국의 실험심리학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또 철학에서는 실용주의를 널리 사상운동으로 발전시키고, 현대철학의 주류의 하나로 한 지도적 학자로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 제임스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세계 문학계에서 그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이 책의 저자 김사과는 밝힌다. 헨리 제임스(이하 헨리 제임스는 모두 이 책의 주인공인 미국 작가를 지칭)는 사실상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은 바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고난도의 소설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헨리 제임스는 인간의 행동과 마음의 내면 작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 제임스 소설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하고, 특히 외부 사건이 개인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소설가 속 완벽한 망명객의 삶을 자처한 헨리 제임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이 책은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32번째로, 헨리 제임스의 족적을 따라 미국에서 영국, 프랑스 등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을 찾아가며 헨리 제임스의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그 문학적 성취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 있다. 미국 소설가였지만 영국 문학의 전통에 속해 있고, 파리를 꿈꾸었으며, 런던에 정착했고, 이탈리아를 사랑했던 헨리 제임스, 극단적 자유를 추구한 그의 예술 세계는 어떻게 축적되었을까?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 김사과가 붓끝을 따라 코스모폴리탄적 이방인의 유럽과 미국에서의 삶과 문학을 좇아간다.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으로 우리말로 한량처럼 살았던 아버지는 헨리 제임스에게 미국 문화에 대한 부적응자 기질을 물려줬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다른 평범한 미국 아버지들과 달랐다는 것이다. 미국 남자들에게 정체성의 상징과 같은 공식적 '직업'이 그에게는 없었다. 한편 아이들을 미국의 주류 종교(개신교)와 교육 방식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제한 없는 자유를 자식들에게 선사해 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결과적으로 그의 아이들은 교회와 학교, 즉 당시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에 대한 감각을 익히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아버지 영향으로 어른으로 자라난 제임스가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렸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삶 자체를 커다란 혼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 김사과의 분석이다. 첫째 윌리엄은 아버지와 비슷한 신경 쇼크를 겪어야 했다. 셋째 윌킨슨과 넷째 로버트슨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활약하며 이른 나이에 삶의 전성기를 맛보지만 이후 사업 실패, 심리적 방황, 알코올중독 등으로 불운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다. 또 사후에 일기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는 막내 앨리스(이름으로 미루어 여성)의 삶은 고독하고 병약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헨리 제임스가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 만했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 혼란을 문학으로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한, 그리고 평생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간 희귀한 미국인 예술가였다.



저자 김사과는 헨리 제임스의 족적을 좇아 그의 삶과 문학을 설명하는 핵심어로 '제국'과 '문명'을 꼽고 있다. 이는 그가 국적인 미국과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 프랑스 나폴레옹이 구축하려 했던 제국과 파리, 로마 제국과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에서 끄집어낸 키워드로 본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저자는 「제국의 소설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떠오르는 제국의 수도 뉴욕(사실상 미국 문명의 발상지)을 뒤로 하고, 런던, 파리, 이탈리아 로마 등 영락한 수도를 떠도는 '제국의 유령'을 좇았다고 분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자인 김사과는 “현실 세계에서 그(헨리 제임스)는 어디에 있든 어색함을 느꼈다. 무신론자로 키워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발자크의 파리를 선망했지만 편협한 파리 문학계는 이방인에게 좁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결국 런던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각광받는 사교계 인사가 된 뒤에도 런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저 미국에서 온 괴짜 소설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의심했다”라고 쓰고 있다. 이 말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헨리 제임스는 자기 안에 있는 두 세계관의 충돌, 혹은 구세계(유럽)와 신세계(미국)의 충돌을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특이점은 그의 작품은 새로운 세계(미국)의 순수함과 활력, 오래된 세계(유럽)의 부패와 지혜를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세계의 개성과 문화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탐구하는 그의 작품들은 종종 예술적이고 부패하며 매혹적인 오래된 세계(유럽)와 종종 거칠고, 개방적이고, 공격적인 새로운 세계(미국)의 캐릭터를 대조시키면서 그 충돌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헨리 제임스는 미국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미국과 유럽, 특히 영국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한 후, 영국에 정착하여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러한 생애는 그의 작품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제임스의 작품은 복잡한 심리 묘사와 섬세한 문체로 유명하다.



이 책은 「제국의 소설가」, 「가장 완벽했던 시간」란 제목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외에 「뉴욕」 「파리」 「런던 」「라이」 「소설과 자유」 등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 파리, 런던 등은 모두 제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고, 세계의 문명에 영향을 끼쳤던 도시들이다. 그리고 뒤늦게 번영한 뉴욕만 아직 명맥을 유지할 뿐 런던과 파리, 두 도시는 영락해 가는 모습의 우울감이 내려앉은 분위기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4장의 '라이'는 영국 본토인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동남쪽 끝, 서식스 지방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라이는 로더 강, 틸링엄 강, 그리고 브레드 강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다. 세 강이 영국 해협을 향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말해 주듯, 동화 같은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p.137) 

시간이 흘러 라이를 방문하게 된 헨리 제임스는 램 하우스에서 머물게 된다. 램 하우스는 18세기 수 차례 시장을 지냈던 제임스 램이 장인 소유의 땅이었던 라이 중심가 구역의 건물을 사들여 재건축한 곳이다. 영국의 국왕 조지 1세가 라이를 방문했을 때 이 건물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헨리 제임스는 이 집과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작고 오래된 영국 소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담쟁이넝쿨에 덮인 붉은 벽돌집이라니 근사하다. 우연하게도 제임스가 머물러 있는 지 얼마 되지 않아 램 하우스 주인이 세상을 떠났다. 헨리 제임스는 1897년 램 하우스의 임대 계약을 맺는다. 

제임스가 라이로 이주한 것은 1898년 6월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집과 정원을 꾸몄다. 친분이 있는 귀족 부인을 통해서 조지 왕조 시기 만들어진 마호가니 장식품들을 사들였다. 벽에는 번존스(19세기 영국 화가)의 그림과, 플로베르의 초상화, 『데이지 밀러』에 수록된 일러스트를 걸어 놓았다. 소설가 제임스는 램 하우스의 정원을 특히 아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부터 있던 커다란 뽕나무와 탐스러운 복숭아나무를 좋아했는데 자신이 미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냈던 나날들로부터 한 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램 하우스의 정원은 여전히 근사했다. 집을 둘러싼 붉은 벽돌담을 짙은 초록빛 잎사귀들이 뒤덮고 있는 가운데 그 주변으로 보라, 노랑, 분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저자 김사과의 추적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 찾아낸 것은 제임스의 후기 걸작 3부작인 『황금의 잔』, 『대사들』, 『비둘기의 날개』가 이곳 램 하우스에서 지내던 시절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독자 역시 헨리 제임스란 인물에 대해 문외한이다. 물론 그의 작품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접하지 못했다. 책 이름(황금의 잔)과 주인공 이름(아메리고)으로 가까스로 기억 반대편에 있던 한 조각 접점을 붙들었다. 어느 책에선가 사례를 들은 것을 잠깐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서 『황금의 잔』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제임스의 후기 걸작으로 꼽히는 데서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고, 몰락한 이탈리아 왕족이란 주인공의 이름이 '아메리고'라서 더욱 미국과의 관계 있는 인물임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가 램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사들였던 장식품 중에 이탈리아 왕족이 남긴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대목이다. 꼭 '황금의 잔'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의미의 장식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제임스의 관점이 다르기에 도시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구별해 주는 상징으로 '황금'이 사용된다. 미국 뉴욕을 떠난 제임스가 왜 제국의 수도를 돌아다녔을까? 어쩌면 제국의 원동력이 되고, 제국의 완성에 가장 큰 힘을 주었던 곳이 수도였기에 동경했던 것일까?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를 이방인이라는 의식 없이 돌아다녔을지라도 제국의 수도였던 곳에 집착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는 자신의 세계관에 빗대어 분석한다. 제국과 문명, 그것은 여전히 내겐 낯선 세계다. 그리고 제국의 수도, 신기루처럼 반짝이는 문명의 표면을 우아하게 떠다니는 제임스 소설 속 인물들 또한 외계인들처럼 생경하다. 그르이 완벽한 언어와 몸가짐으로 표류하던 그 시기의 유럽은 정치경제적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전쟁을 향해 돌진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태였다.(p.18)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 19세기 후반 가장 국제적이었던 인간의 진짜 모습과, 그것을 가능케 한 인간 문명의 본질적 폭력성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정지된 듯 기이한 침묵 속 완벽한 풍경. 제임스 소설 속 인물들은 황금으로 도금된 철창 속에 갇혀 있다. 희생자들의 비명과 핏자국이 솜씨 좋게 제거된 그곳은 문명의 최정점에 놓인 화려한 응접실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최상위 포식자들, 지배자들, 부자들, 권력자들, 즉 뱀파이어 백작과 암사자 공작부인, 그리고 그들의 불운한 희생자 친구들을 초대 손님으로 하는, 잔혹한 저녁 만찬이다.(p.19)



헨리 제임스의 소설들은 자연의 변화를 시간순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 흐르는 의식을 독자들이 따라가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이러한 문체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제임스가 당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성별, 그리고 그들의 상호 작용을 이런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문체의 형성은 소심한 개인적 성격에서부터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여인들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에도 늘 소극적이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음속으로만 흠모하던 여인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해도, 작품 속에서조차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데 주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소심한 성격 자체가 꼼꼼하고 치밀한 세부 묘사에서는 강점을 발휘했으며, 그런 소설 기법으로 인해서 그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제임스의 작품에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주제로 탐구하며 해외 생활의 자유와 도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헤쳐 나가는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제임스 자신의 인생 경험과 미국인과 유럽인 사이의 문화적, 심리적 차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제임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국의 문화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적인 측면과 유럽 사회에서 삶에 수반될 수 있는 소외와 모호한 도덕성을 모두 경험하면서 외국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중성은 개인적 성장, 사회적 기대,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맥락을 벗어난 진정한 자기 표현에 대한 탐구를 풍부하게 해 준다. 새로운 자유에 대한 유혹과 친숙한 소속감에 대한 갈망 등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에 내재된 모순은 등장인물이 사회적 압력과 관계없이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자본주의와 상품 문화에 대한 제임스의 비판을 반영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외국인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인 여행과 발견에 대한 서술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더 넓은 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에 대한 논평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설득력 있는 분석에 귀 기울이다 보면 헨리 제임스와 삶과 문학에 대해 가깝게 접근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 : 김사과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N. E. W.』 『바캉스 소설』, 중편소설 『0 영 ZERO 零』,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헨리 제임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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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상자
김정용 지음 / 델피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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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하는데 집 앞에 내 이름이 적힌 붉은 상자가 놓여 있다면 상자를 열어 볼까? 이 책 『붉은 상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시작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주인공 최도익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받는다. 보낸 이가 쓰여 있지 않은 작은 붉은 상자에는 의문의 쪽지만 하나 덜렁 들어있을 뿐. 발신인은 물론 주소도 없고, 심지어는 송장도 없이 택배 상자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문 앞에 놓인 상자. 별 생각 없이 열어본 상자 안에는 밑도 끝도 없이 쪽지만 달랑 놓여 있다. 최도익은 내용은 찜찜했지만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기에 시험장으로 출발한다. 그때부터 그의 앞에 이상한 일들이 자꾸 펼쳐지며 미스터리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넘보는, 작가 김정용이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상자’를 출간했다. ‘붉은 상자’는 택배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미스터리의 한복판으로 이끌며, 종횡무진 펼쳐지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대한민국은 택배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음식부터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택배로 못 받는 물건이 없다. 원래 우리 사회에서 '배달'이란 음식 정도만 집 앞 혹은 집 안까지 배달해주는 일을 의미했다. 음식은 집 안까지 배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 배달도 지금처럼 모르는 음식점보다는 믿을 수 있는 음식점, 자신이 직접 가봤던 음식점을 배달해 달라고 했던 일이다. 다른 물건은 우체국을 통해 '소포'를 전달해주고, 수령했다는 수령 증명서에 사인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 점이 가능한 것은 소포 배달은 우체국이란 국가 기관에서 공무를 담당하는 우체국 직원이 배달하는 것이어서 믿을 수 있어 비싼 요금을 치러야만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음식점에 직접 가서 주문하고 그곳에서 먹는 음식을 사람 밀집 지역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소포 배달과 음식 배달이 택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이 배달(倍達)이라는 용어로 지칭되었기에 여러 단어와 합성되어 근대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이때 배달의 연원은 단군(檀君)의 단을 박달 혹은 배달로 부르는데 기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달'이란 단어도 '배달의 민족'이란 말도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의 산업화 시대에 점심 시간도 아껴 일해야 하는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신조어로 음식 배달이란 '배달(配達)'과 동음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때까지 배달이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별칭으로 사용되었었다. 이 용어와 똑같은 발음인 '배달(配達)'로 전환시킨 사람이 있다. 중국음식은 빨리 만들어 싸고, 양도 많아 우리나라에서 특화돼 발전된 '짜장면'의 배달로 매우 적합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대부분의 소규모 업체나 가난한 학생, 현장 노동자들이 밥 먹으러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중국집 짜장면 등 배달 주문을 시작했다. 배달의 민족이란 용어를 통째로 빌려다가 택배 전문업체로 발전시켜 업계 1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배달의 민족'의 사장도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는 외국인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노동 임금이 싸기에 음식점은 음식값만 받고 배달해주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다. 이런 서비스가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특수 호황을 맞았다. 사람과의 접촉이나 대화 등을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생활의 모든 물품을 배달해주는 제도로 확대된 것이다. 이제 택배는 큰 시장을 형성한 산업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살다 보면 아파트에는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늘 하나둘쯤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이든 내 이름이 쓰인 상자가 놓여있으면 으레 누구나 집안으로 들고 들어와 뜯어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상자에 섬뜩한 쪽지 한 장뿐이라면? 이 책 『붉은 상자』는 조건반사적으로 상자를 열어보는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를 날카로운 미스터리로 풀어내 독자들의 머리칼을 쭈뼛 서게 만든다. 한국식 미스터리에 매우 적합한 소재가 될 가능성에 공감한다. 저자는 이런 사회 문화에 익숙한 시대에 “그때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더라면···.”이란 여운을 남기는 멘트로 독자들을 미스터리 세계로 안내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알게 되지만 붉은 상자를 받은 것은 단지 도익만이 아니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다른 곳에서도 붉은 상자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그 존재를 드러낸다. 붉은 상자를 받은 것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공시생 최도익, 체대 준비생 민정희, 순댓국집 아줌마처럼 보통 사람들을 통해, 운명에 저항한다고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운명의 상흔을 처참하리만큼 날카롭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운명적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얼키설키 얽힌 또 다른 사건이 숨겨 있음을 슬며시 내비친다. 저자가 미스터리 소설을 작정하고 구상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상자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려 애써보지만 의문의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더욱이 형사는 도익을 강력한 사건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 소설을 위해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독자를 오리무중의 세상으로 이끈다. 즉 꿈의 세계다. 단순히 악몽도 아니지만, 깨고 나면 개운하지 않은 꿈. 그것도 깨면 다행이지만 깬 것인지, 꿈속의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한 꿈. 그마저도 한두 번이 아니라 꿈을 꿀 때마다 똑같은 상황이 나타난다면... 꿈속의 상황이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여기서 저자가 쓰는 방법은 꿈속에서의 '가위 바위 보 게임'이다. "도대체 언제 시작된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이 무의미한 듯 보이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모두들 계속해서 주먹만 내고 있다는 점이다. 보자기를 내면 이긴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나조차도 계속해서 주먹만을 내고 있다. 이기는 게 두려운 걸까? 아니면 언제 시작된지조차 모르는 이 미친 가위바위보가 끝나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그러는 사이, 이들 중 한 명이 보자기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마르고 등골이 시큰해졌다. 뇌에서는 보자기를 내라고 다급하게 신경 세포들을 자극해댔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주먹만을 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자기를 내려 해도 꽉 쥐어진 주먹이 펴지질 않았다."(p.9~10)



현실이 어쩌면 운명이라고 저자는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이 일련의 꿈속 현실을 꿈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속의 화자인 '나'는 이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보자기를 내는 법 또한 알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운명인가? 꿈인가? 아니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인가? 독자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갑자기 무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동요가 일어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여러 개의 눈동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손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여러 개의 주먹 사이로 보란 듯이 쫙 펴져 있는 손바닥이 보인다. 재빨리 누가 보자기를 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누가 보자기를 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자는 다시 강조한다. 이것은 꿈이다. 재빨리 손의 감각을 느껴보려 애써봤지만,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낸 건 주먹일까? 보자기일까? 아니면···. 모두들 나와 같은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무슨 수를 쓰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운명은 운명적으로 작동한다. 최도익이 아무리 발버둥친들 운명은 그 버둥거림조차 운명이라 비웃는 듯하다. 자신의 운명을 걸고 붉은 상자에 얽힌 운명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운명적 이야기, 그것이 바로 미스터리 소설 『붉은 상자』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붉은 상자 속의 쪽지에 적힌 내용은 무언인가? 송장이 없어 보낸 이도 주소도 없다. 다만 최도익이란 이름과 주소만 적혀 있을 뿐이다. '시험 날 아침부터 참···' 속으로만 되뇌이고 쪽지를 읽어본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절대로 대화하지 말 것>. 쪽지를 보자마자 최도익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절친인 영운이 녀석이다.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놈이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난다. 괘씸한 생각해 전화를 걸어 따지려다가, 그렇게 하면 결국 녀석의 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니 아무런 반응도 않기로 하고 최도익은 상자째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이 소설 작품 『붉은 상자』는 짧은 〈프롤로그〉 외에 15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의 날」 「폭우」 「173」 「연결 고리」 「만남」 「악연, 혹은 인연」 「막다른 길」 「엄습하는 그림자」 「약한 고리」 「지독한 안개의 밤」 「거미줄」 「벼랑 끝에서」 「방향 전환」 「그리고」 「다시」 15개의 제목을 열거해놓고 쭈욱 살펴도 제목간 연결 고리가 별로 없다. 그냥 각 장의 핵심어를 나열한 것일까?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짧게 첨부돼 있다. 긴 사건을 돌아와 마지막에 쓴 〈에필로그〉에도 다서가 될 만한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주먹만 내는 가위바위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따. 이 게임의 끝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허깨비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누군가 보자기를 냈고, 그것으로 작은 동요가 일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보자기를 낸 것이 나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보자기를 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핵심은 우리를 가둔 이 운명이라는 ㄲ무을 부수고 나갈 수 있는 첫 번째 꿈틀거림이 시작됐다는 데 있다. 보자기는 그 출발점이다. // 확실한 것 하나는 언제나 보자기는 주먹을 이긴다는 사실이다. // 붉은 상자는 다시 돌아온다."(p.285)

이 소설은 작중 '나'가 현실인가 꿈속인가를 헛갈리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최도익은 물론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건 속에서 해결하려 해도, 무시하려 해도 결국은 휘말리게 되고 급기야 최도식은 살해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꿈속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의 일을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꿔지지 않고 정해진 대로 진행되기 마련이다는 점은 '운명'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현실적 현실을 부딪쳐 이겨내고 극복하는 자체가 우리의 삶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 독자들은 저자가 마련한 장치와 복선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모든 것을 포기하면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특수한 임무를 갖거나 특별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극히 평범한 우리들 삶과 비숫하게 사는 것에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저자의 집필 취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는 저자가 깔아놓은 복선도 찾아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는 저자와 추리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붉은 상자 때문에 평생을 숨어다녔다. 가족은 부서졌고,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면서 도망자처럼 살아온 인생이었다.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이 생기면 도망쳤고, 정들면 아반도주했다. 운명이라 생각했고, 사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전부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 운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충돌해왔다.(p.158))


말이 공개수사지 진행 과정, 수색 범위, 그리고 수사 대책까지 전부 매스컴을 통해 납치범에게 낱낱이 알려주는 바보짓이다. 어리숙한 유괴범이면 조여 오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조급해지겠지만, 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는 놈이라면 상황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 알고서 만세를 부를 것이다.(p.180)


전부 운명이라면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는 일 아닐까? 게다가 발버둥 치는 것까지 정해져있다면, 그런 거라면…… 이렇게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p.255)


“아무리 애를 써도 정해진 것은 바뀌지 않아. 물론 바뀐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언제나 같지. 그러니 헛심 쓰지 말라는 말이네.”(p.272)


저자 : 김정용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이후 소설가, 희곡작가, 작사가, 연출가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재주의 소유자.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하다]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뮤지컬 [사이드 미러]의 대본을, [라이팅 핸즈], [만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덩굴져 펼쳐지는 이야기] 등의 대본과 연출을 담당하였다. 또한 [그대로 머물다], [난민] 등의 가사를 작사하고 다수의 독립영화와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2023년 장편소설 [서커스 물개]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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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 가우디에서 임영웅까지 인생 후반전, 예술에서 삶을 재발견하다
유창선 지음 / 새빛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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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은 제작법이 분야별로 각기 달라 예술가들의 숫자는 늘어나더라도 감상을 위해서는 관람과 전시회 등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예술의 시작은 인류의 기원과 같다고 알려지는데 감상은 여전히 쉽지는 않다. 가장 뒤늦게 시작된 예술인 영화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으로 여러 장소에서 관람이 가능하지만 연극이나 오페라, 음악 등은 공연을 통해, 미술은 전시회를 통해 한정된 장소에서만 감상이 가능하다. 또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연주자(배우)가 직접 실현해야 가능한 탓에 멀리 있거나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감상이 제한된다. 그래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고, 특히 출판, 영상, 음향 등의 기술 발달은 그나마 간접적으로 예술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제한된 수요와 공급으로 예술은 대중에게 알려지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결국은 오늘날 대중 다수가 편하게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대중적 인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인쇄술 발명 이전 책은 일부 귀족 계급이나 젊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고, 공연 예술 또한 지배 계급만 향유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 역시 사람이기에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예술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지배 계급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수많은 삶의 난관과 역경을 딛고 오로지 예술에만 온 노력을 기울여온 예술가들의 작품은 뒤늦게라도 인정돼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는 경우도 많다. 바야흐로 현대는 모든 사람이 진정한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의 시대다. 예술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분야라고 그 분야를 폄훼하지는 않는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삶과 역경까지도 품어 작품 속에 녹여냄으로써 인간 삶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책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정치평론가로 주로 정치평론을 하던 저자 유창선이 쓴 예술 에세이다. 이 책은 예술을 좋아하지만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전문지식도 없는 문외한인 독자에게 우선 양적으로 압도감을 준다. 부제로 쓰인 「가우디에서 임영웅까지 인생 후반전, 예술에서 삶을 재발견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이든 대중가요든, 거장의 그림 관람이든, 이름 없는 화가의 그림이든 예술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왕성한 예술 감상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평론가로서 예술에 늦깎이 입문이라고 말하지만 평소에 예술적 관심은 컸던 것 같다는 느낌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예술에 빠져들었다고 「50대에 나는 그만 예술에 빠져 버렸다」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밝힌다. ‘1세대 정치평론가’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교와 정가를 누볐다.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엔 방송과 언론, 그리고 SNS를 통해 정치 얘기만 하면서 살았다다. 그랬던 그가 하필이면 정치의 계절(4월 총선을 앞두고 이 글을 썼다)에 문화예술에 대한 책을 썼다. 무슨 사연,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프롤로그〉에 따르면 ‘예알못’이었던 저자가 예술이 주는 감흥과 행복감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병상에서였다.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하고 8개월 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밤 9시만 되면 일제히 소등하는 병실에서 저자는 밤마다 이어폰을 꽂고는 휴대폰에 담아놓은 음악들을 들었다. 깜깜한 병실에서였지만 쇼팽의 녹턴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들을 듣다 보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더 없이 편해졌다. 50대의 나이를 떠나 보내던 마지막 시간에 저자는 병실에서 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고마움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술 문외한인 독자가 저자의 이름을 책으로는 처음 접한다. 방송에서 가끔씩 들은 기억이 있지만 정치와는 담 쌓은 지 오래된 독자로서는 그의 정치평론을 기억하지도,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할 리 없다. 심지어는 그가 흔히 말하는 진보적 성향인지, 보수적 성향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가 쓴 책을 왜 선택했을까? 독자에게 선택의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만 독자는 순전히 이 책에 담긴 모든 예술 아이템이 매우 세상 흐름에 민감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또 분야를 막론하고 저자의 예술적 감흥을 최소한 질적으로는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예술적 공감대는 정치색이나 경제 문제로 가려서는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세월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무겁고 날선 얘기를 하며 살다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내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향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니 저자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저 멀리 있는 광장으로 향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기라도 한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무겁고 날선 얘기를 하며 살다보니 예술의 아름다움과 감흥 같은 것을 느끼고 보존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50이란 나이를 정점으로 인생의 오후에 접어든다고 어떤 철학자는 표현했었다. 그 표현을 저자에 적용한다면 저자는 병원에서 나오면서 이제 남은 생은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시점이 바로 인생 2막의 시작점이었을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면서 연주회장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고 〈프롤로그〉를 통해 말한다. 아직 몸이 불편해서 때로는 문화공연장에 힘들게 도착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런 불편 따위는 모두 잊게 된다고도 말한다. 



특히 저녁 시간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설명한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다 나은 것 같은 힘찬 모습이었다고 느끼면서 독자가 홀로 곱씹었을 생각은 예술. 흔히들 얘기하는 치유의 힘일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음악을 통해 위로받곤 했다. 독자도 저자의 이 말에 공감하면서 인생의 오후에 예술과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고, 더 예술적 삶에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다. 책의 목차를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은 공연, 콘서트, 전시회, 극장을 찾아다니며 예술을 수년 내에 접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대로 대중적이든 클래식하든 문화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심취할 수 기간이 이렇게 단 시간 내에 이뤄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2부 〈우리를 위로해주는 영웅들〉, 3부 〈예술가들의 투혼이 낳은 성취〉, 4부 〈슬픔조차 아름답게 들리는 선율〉, 5부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부록'으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에 대해 〈‘자아’를 지킨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5편의 에세이를 보여준다. 작가론과 작품론을 겸한 저자의 감상평이다. 감상평이라기보다 평론에 가깝다.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내 어머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아버지와 딸 사이의 거리」, 「사랑의 열정은 정말 단순한 것일까」, 「내 삶은 역사적일 수 있을까」 등이다. 독자 생각으로는 아니 에르노에 천착하지 않고서는 쓰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이 책은 저자가 관람했던 공연, 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단순한 후기를 넘어 저자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시선 위에서 작품과 예술가들에 대한 생각을 풀은 글들이다. 독자가 '예술 평론'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작품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게 되기를 저자는 소망한다. 작품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람의 욕구를 부여하고, 작품을 이미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공연을 즐기는 생활에 빠져들면서 점차 문화를 향유하는 장르도 다양해졌다. 관심과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연결됐다. 오케스트라, 독주와 앙상블, 실내악,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발레, 국악관현악, 판소리, 연극, 전시회, 영화 등 듣고 볼 좋은 작품들이 있으면 달려가곤 했다.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갔을 때는 그림들이 너무 좋아 나 혼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니도 걸러가며 뮤지엄들을 순례하던 날들도 있었다. 임영웅의 공연을 보려고 ‘피케팅’(피나는 티케팅)을 거쳐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관람을 하기도 했다. 스스로 ‘중독’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문화예술이 좋았고 빠져들었다. 인생 후반기에 예술에 푹 빠져든 사람의 사유가 담긴 현장 기록들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접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명만 열거해도 여러 페이지에 달할 것이다. 이 책의 5개 파트는 각각 2~6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타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 「마일리스 드 케랑갈 원작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 영화 예술의 이야기다. 2부는 「임영웅 콘서트 〈IM HERO TOUR 2023〉」,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등 2개 장으로 대중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3부에는 「호암미술관 〈한 점 하늘_김환기〉 & 뮤지컬 〈라흐 헤스트〉」「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뮤지엄 산에서의 개인전 〈안도 타다오-청춘〉

」 「리움미술관의 카렐란전 〈우리(WE)〉」 「정작 가우디는 고생했고 피카소는 화려하게 살았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등 국적에 관계없이 공연과 건축예술, 전시회 이야기가 실려 있다. 4부는 「벨리니의 오페라극 〈노르마〉」 「서울시립교향악단 〈아주 특별한 콘서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세계의 포디엄을 누비는 한국의 마에스트라들」 등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5부는 「극단 파수꾼의 연극 〈아이히만, 암흑이 시작하는 곳에서〉」 「산울림 편지콘서트 〈쇼팽, 블루노트〉」 「전무송-전현아 부녀의 연극 〈더 파더〉」 「100년만에 무대에 올려진 연극 〈의붓자식〉」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 아인 랜드의 삶과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전시, 공연, 영화 등 예술의 전 분야에 걸친 문화평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올 봄이 가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예술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살기를 권유해본다. 



”음악사 연보를 들여다보니까 브라질 작곡가 시키냐 곤자가가 1885년에 자작곡을 갖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당시 브라질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음악가로, 많은 차별 속에서도 활발한 음악활동을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많은 여성들이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음악가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선 여성 지휘자들의 오랜 분투가 있었기에 이제는 여성 지휘자들이 포디엄(podium)에 당당하게 서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여성 지휘자들을 향한 박수 세례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p.195) - 「4부 ‘세계의 포디엄을 누비는 한국의 마에스트라들」 중에서


저자 : 유창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등을 통해 활발히 정치평론을 해온 1세대 정치평론가였다. 평생 정치 얘기를 하던 사람이 문화예술에 관한 책을 써서 나타나니 독자들은 의아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5년 전 생사를 가르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오랜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병상에서 만난 것이 음악이었다. 불 꺼진 병실에서 밤마다 음악을 들으며 예술이 갖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실감했던 저자는 병원에서 나온 뒤로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찾아다니게 됐다. 오십 대의 마지막에 예술을 제대로 만나 푹 빠져들게 된 것이다. 배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었던 정치와 달리 예술은 우리의 마음에 공감해주며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손잡아 주는 동반자임을 저자는 발견했다.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은 근래에 저자가 보고 들었던 문화예술 작품들에 대해 쓴 글들을 싣고 있다. 공연이나 전시 등에 대한 단순한 후기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최근에 주목받았던 공연과 작품들이 많이 소개된다. 책에나오는 작품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관람의 욕구를 부여하고, 이미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저자는 현재 <여성신문>에 ‘유창선의 문화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 에세이 『나를 찾는 시간』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삶과 죽음의 대화』(공저) 등이 있고, 정치평론집으로는 『김건희 죽이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정치의 재발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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