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 서울 이야기 - 우리가 몰랐던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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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는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를 읽기 전 '서울'이란 지명을 언제부터 사용했느냐는 점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수도'라는 의미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인터넷 네이버를 통해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다. 여러 백과사전이 있고, 서울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이나 서울의 기원 등에 대해서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가 지금의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서울로 부르게 됐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다시 국어사전을 뒤졌다. 두 개의 풀이가 있다. ①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곳. ② 지명: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도시. 한강 하류에 위치하며, 북한산·도봉산·인왕산·관악산 따위의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부로 불리다가 1945년에 서울로 명명되었고, 1949년에 특별시로 승격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따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을 비롯하여 탑골 공원, 어린이 대공원, 남산 타워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면적은 605.39㎢.로 돼 있다. 

독자가 서울에 대해 사전을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국어사전을 통해 뜻풀이를 찾아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영어사전은 사전이 때묻고 닳아 아무데나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이용했는데 '왜 서울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을까?' 내심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서울이란 명칭과 기타 다른 정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다소 심적 보상이 되었다. ‘서울’이라는 단어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이는 국호의 서라벌, 서벌(나라, 도성의 뜻)과 동의라고 한다.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기록은 한자로 했고, 한자가 국가 공용어로 사용됐기 때문에 주로 한자음이 지역별로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말하는 일종의 사투리로 발음됐던 것 같다. 중국 본토에서도 한자는 문서 작성에 공용으로 쓰였지만 막상 발음하는 것은 통일 왕조였을 때도 지금의 우리 '표준말'처럼 통일 발음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역시 비슷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자가 이처럼 추정하는 것은 가장 최근 왕조인 조선시대에도 한자만 사용했고, 일반 백성이나 사회 활동이 제한돼 있는 부녀자들은 한자를 따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 고위관료 등에서는 책을 읽을 정도의 한자 교육을 가정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널리 쓰이기를 바랐으나, 사대(事大)를 국시로 했던 조선에서 다른 언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은 중국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생각해 한글은 정부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벼슬을 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이나 부녀자들 사이에 한글은 쉽게 퍼져 그런 대로 명맥은 유지했을 것이다. 편지를 쓴다거나 최소한의 뜻을 펴기에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필요한 일부 부녀자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 중기 이후 한글소설도 발표되고, 또 배우기가 쉬워 필요한 이들은 배우기도 했을 터였다.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수도는 당연히 한자로 표기했다. '한성(漢城)' 혹은 '한양(漢陽)'으로 표기했을 터다. 그러나 발음도 '서울'로 하지는 않았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국한문을 혼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한성이라 표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학자도 거의 없는데다 한글 전용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때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경성(京城)'으로 표기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경성으로 사용하다가 해방 후 비로소 '서울'이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이 됐다. 표기법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수도로 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옛적 서울 이야기』(이하 『옛적 서울 이야기』)의 저자 배한철도 〈서문〉에서 19살 때 처음 상경해 서울역을 나서며, 마주했던 역앞 건물(대우빌딩, 현 서울스퀘어)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서 기껏해야 2~3층의 건물을 보다가 압도적 위용의 건물 앞에 놀랐다는 이야기다. 저자는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알게 됐던 서울의 각종 역사, 기억, 기록들이 무척 재미있고, 한편으론 변화무쌍한 산업화 시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이 책의 집필했다고 밝힌다. 

"송파구 잠실 일대의 한강은 더욱 변화무쌍한 역사가 있다.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선 잠실이 애초 한강의 북쪽 편 뚝섬(광진구)의 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잠실은 조선 제11대 중종대 한강의 홍수로, 뚝섬 한가운데에 물길이 만들어지면서 섬으로 분리된다. 원래의 이 일대 한강의 명칭은 송파강이었으며 홍수로 새로 만들어진 물길은 신천으로 불렸다. 송파구 신천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잠실섬을 육지화하고 송파강은 막아 인공호수를 조성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석촌호수다."(p.7)



이 책은 2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이다. 1부엔 「낯선 조선, 뜻밖의 서울」「지옥보다 못한 최악의 헬조선」「혼돈과 격동의 역사」「발길 닿는 곳마다 명승지」 등 4개의 장과, 2부에 「조선의 주인, 경화사족」「같은 듯 서로 다른 인생」「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오백년 사직 지킨 이데올로기」 등 4개의 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양은 조선 왕조의 수도로서 자리 잡았다. 흔히 왕과 신하가 오가던 정치의 무대로 기억되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넓고 복잡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힌 도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동안 따분하게 배워왔던 정치사나 왕조 중심의 조선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도시 한양의 진짜 얼굴을 골목과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낸다고 저자는 밝힌다. 궁궐이 아닌 주택가, 왕이 아닌 백성들의 내밀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조선시대 한양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어 과거의 한양을 시간 여행하듯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1부 〈조선의 서울, 한양〉에서는 도시의 구조, 경제, 명소, 위기와 같은 큰 이야기를 다룬다. 선입견과는 달리 한양은 소고기 소비량이 엄청났던 미식의 도시였다고 한다. 또 왕궁이 있는 도시이니만큼 독특한 내시들의 사회와 복잡한 신분 질서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처럼 주택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벌어지는 등, 한양은 정치 무대를 넘어선 생동감 넘치는 도시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2부 〈한양의 사람, 삶의 이야기〉에서는 역사책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노비, 무당, 군인, 상인, 여성 등의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추적한다. 청계천이 거대한 도시 하수도로 쓰였고, 지금의 이태원과 한남동은 공동묘지였으며, 왕십리와 서대문은 서울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배추와 미나리 밭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서울 도심은 곳곳이 역사 이야기의 보고다. 당연히 나라의 도읍지로 518년을 지속했고, 조선이 멸망하고도 115년이 지난 수도 서울은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된 지 700년이 훌쩍 넘었다. 세 번의 외침과, 일제에 의해 망국의 한을 품고, 강대국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분단시키고 또 자신들이 싸우느라 납북간 전쟁까지 일으켰다. 서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폐허을 딛고 민주국가로서의 발돋움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고,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온 도시다.


서울의 고갯길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저자에 따르면 서울은 외사산(바깥 4개의 큰 산), 내사산(안쪽 4개의 큰 산)에 둘러싸여 있고 여기에서 발원한 물길이 한데 모였다가 다시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지형이어서 무수한 구릉지와 고개가 존재했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어렵지 않게 찾아진다. 종묘 오른편의 종로4가 일원에는 난전인 이현(梨峴)시장이 존재했다. 이현은 순수 우리말로 배오개(배고개)라고 했다. 고갯길 주변으로 배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고 해서 이렇게 지칭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이곳에서는 상인들이 돈과 물건을 노리는 도둑떼가 활개를 치는 무법지대였다. 따라서 대낮에도 100명이 모여야 고개를 겨우 넘어갈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상한 것은 배오개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지역이 아니라 관허시장인 종로시전에 인접한 번화가였다는 점이다. 

"허가를 받지 않은 상인들이 워낙 부자여서 도적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강도질을 감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시기 서울 인구는 3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로 인해 각종 도시문제가 불거지고 살인 등 강력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조선 조정은 엄벌주의 사형제를 시행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중대 범죄자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사형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해 일번백계의 효과도 얻고자 했다. 한양도성의 가장 번잡한 거리인 종로 시전 일대와 도성 밖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서소문 밖 네거리는 끔찍한 방법으로 죄수를 죽이는 한성부의 대표적인 사형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부촌으로 각광받는 한남동과 옥수·금호동, 마포, 광희문 밖 신당동이 무덤으로 가득한 공동묘지였다는 것도 매우 낯설다. 산 전체를 빼곡하게 뒤덮은 묘지를 보고 외국인들은 "천연두 흉터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묘지는 오늘날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인식돼 화장장만 들어서도 인근 주민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결사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은 과거 '무덤의 도시'였으며 서울 사람들은 묘터 위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또 죽어서는 그 자리에 묻혔다. 

조선시대 하면, 극소수 양반들만 모든 권리를 독점해 떵떵거리며 살고 일반 백성들은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지레짐작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낙후되고 궁핍했다는 것 흔한 인식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일제강점기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역사의식을 주입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반일의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내시는 가난과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자발적으로 거세하고 자원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종 34년(1897) 대한제국 성립기 직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에 움막으로 된 고자 시술소가 영업했다고 구전된다. 내시는 생식기능이 없었지만 어엿이 부인과 자녀를 거느렸다. 아내가 죽으면 재혼했고 첩까지 있었다.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왕실과 줄을 대기 위해 평민뿐 아니라 양반 가문 규수들도 서로 내시의 아내가 되고자 했다.(p.283)


종로구청 옆 이마빌딩은 궁중에 필요한 말을 기르는 사복시가, 청계천 마전교에는 말과 소를 빌려 주거나 매매하는 세마장이 위치해 말의 배설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유입됐다. 나라에서도 굳이 단속하지 않았다. 세종 때 “도읍은 인가가 번성하고 그곳의 개천도 더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어효첨의 주장을 받아들여 오물투기를 방관했다. 동물 사체, 유아의 시체까지도 밤중에 몰래 버렸으며 종종 살인사건도 발생했다.(p.314)


이 책은 서울을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지만, 기존의 도시사와는 결이 다르다. 정치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의 자리에서 조선을 들여다보며, 현재 서울의 도시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활사 기반의 인문 콘텐츠다. 서울의 현재는 조선의 골목 위에 있다. 『옛적 서울 이야기』는 그 오랜 시간의 지층 위로 다시 한번 걸어보게 만드는 책인 셈이다.


저자 : 배한철


박물관과 유적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문화재 기자. 발품을 팔아 얻은 생생한 체험으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한 칼럼을 쓰고 관련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대학에서는 이와 전혀 무관한 경영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정책 기사를 주로 써왔다. 하지만 학창시절 관심분야였던 문화재와 역사 공부를 꾸준히 이어온 덕분에 2011년부터는 문화재 분야를 취재하며 못다 이룬 역사학도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국보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국보가 간직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헌을 깊숙이 탐독하고, 전국 유적지를 구석구석 답사하며 이 책을 썼다.

현재 〈매일경제신문〉과 네이버에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 등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쓴다. 저서로 《한국사 스크랩》(2015년 세종도서 선정)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책 선정, 2017년 세종도서 선정)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 등 베스트셀러 역사 교양서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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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 2.0시대 최악의 충격파
추동훈.이승주.강영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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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5일(미 동부시간) 전화 통화를 하고 교착 상태에 빠진 양국간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양국의 '관세 전쟁 휴전' 이후에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지속과,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 및 중국인 학생 미국 유학 차단 시도 등으로 더욱 첨예해진 미중 간 갈등은 일단 봉합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략) 미국과 중국은 지난 달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고 90일간 무역 협상을 위해 서로에게 부과하던 100% 넘는 관세를 대폭(115% 포인트) 낮추는 '관세 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양국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미국은 중국이 비관세 조치 해제를 약속하고도 핵심 광물 및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하지 않는다며 합의를 전반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중국은 이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반도체 등 일부 품목 수출통제 및 중국인 미국 유학생 비자 취소 등 차별 조처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양국 정상은 이날 통화에서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6일 연합뉴스의 보도 내용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트럼프 2기가 출범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선언이라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독자는 본다. 트럼프 1기때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한 경험이 있어서다. 다만 관세율이 상상을 초월해 100~150% 수준의 인상인데다 무역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지금 이 전쟁에서 극복해 나갈 원동력이 별로 없다는 데서 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원자폭탄급'이라는 인식에 독자는 공감한다. 더욱이 지난 12월 3일의 비상계엄부터 6개월간 이에 대한 대책이 정부 입장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은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기에 안타까움이 더한다. 

이 책 『관세전쟁』은 지난 4월 2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진 이후 극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자세히 짚어보고, 적절한 대책으로 이제부터라도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집필됐다. 지난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 늦었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는 상태다. 다행히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게 되기를 바라는형국이다.


4월 2일 트럼프의 발표 이튿날 나스닥은 6% 급락, 3일 하루 증발한 시가총액만 무려 약 3조 1,000억 달러에 이르러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한다. 환율 역시 급락하는 등 전 세계 경제에 충격파가 급속도로 퍼져 전 세계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중국과는 연일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145%(미국) vs 125%(중국)’까지 보복 관세를 올리는 등 '치킨게임'으로까지 치달았으나 중국이 강경한 맞대응이 미국 내 물가 상승과 달러화 가치 하락 등 이상 증상을 잠재우기까지 일단 수면 아래로 감춰진 듯하다. 중국의 맞대응은 미중 경제전쟁으로까지 번질 위기는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진화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관세’는 트럼프 2.0 시기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화약고에 다름 아닐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당사국인 중국과는 달리 미국의 관세 대응에 맞대응이 곤란한 나라들은 희생양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은 그의 당선 이전에도 일정 부분 예견된 바 있다.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폴 크루그먼은 일찍이 “트럼프는 경제를 협상의 수단으로 보며, 관세를 외교 무기로 사용한다. 그가 돌아오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무시하고, 동맹국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관세전쟁을 재시작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모건스탠리 역시 2024년 말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10% 전면 관세 가능성이 높고, 이는 글로벌 GDP를 최소 0.5% 이상 끌어내릴 수 있다”고 했으며, 골드만삭스는 2024년 대선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관세 인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중 간 디커플링(decoupling)이 본격화된다”라고 예측했다. 지금의 위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관세전쟁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생존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이 출간된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은 추동훈(매일경제신문 산업부), 이승주(문화일보 경제부), 강영연(한국경제신문) 등 3명의 기자(이하 저자)들이 과연 우리가 '무역전쟁' '경제전쟁' '관세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짚어보고,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를 짚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썼다.


저자는 「돌아온 트럼프, 관세전쟁의 서막」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통해 "4년 만에 복귀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전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정책으로 무장했다. 그의 정책은 훨씬 맵고 짜게 변했다. 이는 전 세계 경제구조를 뒤흔드는 듣도 보도 못한 레시피다."고 지적한다. 이 무기는 경제를 중심으로 무역, 외교, 안보를 하나로 엮어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트럼프의 노골적 의도를 선명하게 담은 무기다. 그리고 재집권 초기에 이를 수행하는 핵심 첨병이 바로 '관세'다."라고 저자는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또 관세전쟁(Tariff War)은 더 이상 경제지표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려는 트럼프의 복잡한 셈법이자, 미국식 패권주의의 새로운 표현 방식이다. 중국에 집중했던 트럼프 1기와 대조적으로 2025년 트럼프는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캐나다처럼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들과도 전쟁을 선포했다. 관세는 이제 그 자체로 미국의 외교 수단이면서 지정학적 메시지다. 표면적으로는 '거래 조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압박 도구'로 쓰이고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선포 이후 드러난 현상을 토대로 트럼프의 의도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첫 100일 동안 미국은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거의 모든 산업을 관세의 영향권 아래 두고 있다. '국가안보'와 '경제주권'이라는 명분이 내세워졌지만 그 이면에는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사업가 트럼프의 진면모가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직전 정부인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반독점'을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점잖게 진행했던 동맹 기반 협력 체계는 트럼프 정부 들어 '네 편도, 내 편도 없는 전면전'으로 선회했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을 장착한 미국의 관세정책은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을 어지러이 흔들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 주식시장은 관세정책에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중이다. 달러와 금, 채권 시장은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널을 뛰고 있다."(p.5)

저자는 이에 따라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의 보호무역' 논리로만 접근할 단순한 일차 방정식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트럼프의 철저한 정치적 의도와 안보적 계산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결합한 고차원 방정식이라고 규정짓는다. 심지어 그 정답이 있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난제에 가깝다는 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제도적 울타리를 오래전에 넘어갔다. 걸림돌이 되는 조약과 약속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트럼프는 전 세게가 합의하에 수십 년간 지켜오던 '글로벌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저자는 더 나아가 이 관세전쟁은 포퓰리즘 정치가 나쁘게 진화된 형태라고 강조한다. 복잡한 공급망과 무역흑자, 기술수출, 서비스 교역 등의 이야기는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고, 그마저도 엉터리로 작성됐다고 과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5%로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26%로 바꾼 뒤 또다시 25%로 회귀한 것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 『관세전쟁』은 트럼프 2기 정책의 핵심이자 전 세계에 연일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관세전쟁'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전망을 두루 살펴본다. 관세전쟁이 불러올 경제적 충격과 세계 경제의 방향을 조망하며, 특히 한국에 미칠 여파와 그에 대한 생존 전략을 도모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와 기업 입장에서 관세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대응법을 알아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트럼프 2기 무역 정책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구조적·전략적 선택이다. 그리고 그 마중물로 ‘관세’라는 통상정책을 택했을 뿐이다. 이제 관세는 더 이상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경제 정책의 하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 전략이자 산업정책이며, 안보 수단이다. 미국의 관세라는 칼의 한쪽 날이 경쟁국을 겨누고 있다면 그 반대편 날은 다름 아닌 동맹국을 스치고 있다. 이게 바로 트럼프가 손에 쥔 양날검의 무서움이다. 관세는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p.7)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관세전쟁의 충격-발발 원인과 방향〉, 2장 〈관세전쟁이 뒤흔드는 글로벌 경제-글로벌 경제 전망〉, 3장 〈관세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법-한국의 현황 분석과 대응 전략〉, 4장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개인의 투자 전략과 기업의 리스크 관리법〉 등이다. 이번 관세전쟁에서 우리로서는 우리 한국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장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등 국가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수출 품목에 관세의 올가미가 씌워지느냐 마느냐, 씌워진다면 그 폭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수출과 내수 부진에 따른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경제, 그리고 기업과 개인에게는 공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세 정책이 단기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화될 경우 국가와 기업,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지대할 것이고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의 실체를 파악, 이에 대해 적절하게 대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시대적 과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의 1장에서 트럼프 2기 정책의 핵심인 ‘관세전쟁’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그 전망을 두루 살펴본다. 또 관세전쟁이 불러올 경제적 충격과 세계 경제의 방향을 전망하며 특히 한국에 미칠 여파와 그에 대한 생존 전략을 도모해본다. 무엇보다 개인 투자자와 기업의 입장에서 관세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대응법을 알아보는 것이 핵심이다. 4장에서는 개인의 투자 전략과 기업의 리스크 관리법을 살펴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2기의 무역 정책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일회성 대응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다만 그 수단으로 ‘관세’라는 전통적 무기를 택했을 뿐이다. 이제 관세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경제 정책의 하위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외교 전략이며, 산업 정책이고, 안보 수단이다. 그리고 때로는 동맹을 압박하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관세는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진짜 목표는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명확하게 읽고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관세가 매겨지면 관세 부담 없이 자유롭게 미국과 교역하던 우리나라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판매 저하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세는 한국산 제품에만 매겨지는 게 아닌 큼, 그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산업군별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 가장 주목되는 품목은 우리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다. 반도체는 4월 초 품목별 관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자동차 등 다른 산업군보다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향후 관세가 부과될 여지가 남아있는 만큼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태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 최대 품목이지만,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적은 편이라 피해는 다른 산업군 대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는 2024년 기준 대미 수출 3위 품목이다.(p.152) 한국은 미국에 106억 달러의 반도체를 수출한 바 있다.


관세전쟁을 치르면서 확실해진 것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이든 연설로든 강조했던 부분은 반드시 관련 정책이 나온다는 점이다. 상호관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강조하던 내용이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통상정책 공약에 포함돼 있었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레이스 초반에는 전 세계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일률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강화됐고, 대선 직전에는 최대 20%를 매길 수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물론 실제 상호관세는 이 같은 예상을 모두 뛰어넘었지만 방향성은 예고됐던 셈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그간 트럼프가 강조했던 정책과 아젠다를 확인하며 투자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p.196~197)


"트럼프 2.0 시대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시장을 바라보는 시야를 단기에서 장기로, 나무에서 숲으로 확장하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p.249)


저자 : 추동훈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2013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디지털테크부, 부동산부, 증권부, 정치부, 뉴욕특파원 등을 거쳤다. 현재 산업부에서 국내·외 기업들의 경영 전략, 사업 트렌드를 취재하고 있다.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흥부전(흥미로운 부랜드 전)〉 코너를 네이버와 매일경제에 연재 중이다. 저서로는 《일론 머스크 디스럽션 X》, 《부동산 1만 시간의 법칙》, 《최소한의 정치공부》 등이 있다.


저자 : 이승주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2014년 뉴시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부동산부·금융부·증권부·정치부·국제부 등을 거쳤고, 3년 전부터 세종시에서 경제정책을 맡고 있다. 최근까지 산업통상자원부를 출입하며 트럼프 당선을 지켜봤다. 저서로는 《토익보다 부동산》, 《부동산 투자를 잘한다는 것》,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7》(공저), 《코인 부자는 무엇이 달랐나》(공저) 등이 있다.


저자 :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2011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서 일하며 산업부·IT과학부·생활경제부·국제부·증권부·정치부·뉴욕특파원 등을 거쳤다. 저서로는 《주식, 나는 대가처럼 투자한다》, 《대치동이야기》(공저), 《이토록 쉬운 경제학》(공저), 《시네마노믹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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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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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번역본이고, 번역본은 영어로 쓰인 판본이다.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고,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영어 번역본 『명상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편저자 이근오가 〈서문〉을 썼다. 편저자는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줄까"를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물론 '무엇을 하고 싶다', '어떻게 살까' 정도는 하고 살지만··· 그러나 편저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면 명쾌한 답이 내려지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질문을 오래 하지 않는다. 편자의 경우 깊은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외롭게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때 만난 사람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편저자는 밝힌다. 

편저자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원래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다. 하루의 끝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그저 조용히 스스로에게 써내려간 문장들이었다. 그런 글이 편자에게는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애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였다. 전쟁터에서 『명상록』을 집필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살륙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전장(戰場)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보통의 황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아우렐리우스는 훌륭한 황제로서, 후계자를 세습하기보다 로마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황제이자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편저자는 『명상록』을 읽을 때마다 황제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조급함이 엿보였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글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오래 전 모든 사람을 다스렸던 황제이자 한 명의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외로움이 편자의 외로움과 결이 같다고 느꼈을까?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갈 것,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 것, 묵묵히 나의 길을 갈 것 등이 절절하게 전해졌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도 다가온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행동이 아니라면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며,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아우렐리우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한 철학자였다. 로마의 황제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철학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은,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접하는 현대인들이 그의 태도를 배워,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이 곧 편자의 말임을 독자에게는 읽힌다.

『명상록』이 편자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함께 준 책이었다는 말과 일치되는 부분이다. 편자는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문장들, 그리고 편자가 살아오며 겪은 마음의 조각들을 조금씩 꺼내어 책으로 엮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알려져 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가려 뽑아 묶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이 책은 『명상록』의 문장 가운데 주제별로 묶어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왜 당신은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 2장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3장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4장 〈나를 지키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5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등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1장 첫 번째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의 해석이다」에서는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까닭없이 비난 받을 경우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속해서 시간을 쏟는 경우가 잦다. 이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편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안 옳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무게를 부여햇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p.17) 

편저자의 의견이 이어진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내 마음에 어떤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를 보며 계속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같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짖는 개를 보고 나도 같이 짖는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할 수 없다. "타인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p.18)


2장 네 번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의 글은 흥미롭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말하며 관심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편저자는 쓰고 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마음먹고,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편저자는 지적한다. 그렇게 꾸준히 생각하고 애쓰며 만든 결과로 인품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싶다. 사람들은 완벽을 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완벽보다는 노력을 통한 변화를 더 좋아하고, 말로만 하는 배려보다는 진심이 보이는 행동에 더 감동받는다. 그렇기에 꼭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고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함에도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는 것. 도와주고 싶다는 말보다는 먼저 그 짐을 덜어주는 것. 아낀다는 말보다는 정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는 결국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편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라."(p.71)

3장 첫 번째 「남의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라는 글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류 공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저자는 지적한다. 남의 삶을 궁금해하다 보면 결국 가장 소홀해지는 것은 나의 삶이다. 내가 더 신경 쓰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점점 더 빈 수레가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자기 계발에 신경 써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삶을 살고, 누군가는 남 얘기만 ㅎ며 변화 없는 삶에 머문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편저자는 『명상록』에서 찾아 적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신경 쓰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하라."(p.99)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남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3장 다섯 번째 「네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너의 태도를 바꿔라」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관계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 소모는 더 커진다. 실망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아내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불편함을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분명하게 상황을 구분하라고 했다. "네게 일어난 일을 바꾸는 것이 네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너의 태도뿐이다."(p.114)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 《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역 : 이근오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와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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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의 철학자 - 타고난 철학자 '개'에게 배우는 단순명료한 행복의 의미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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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팡세』의 서두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인간만이 하는 고유의 행위다. 즉 인간이 아닌, 지구상의 다른 어떤 동물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행위로서 인류 출현 이후 짧은 기간에 지구의 모든 생물종 최상위층에 우똑 섰다. 단순히 경쟁하는 상황에서 가장 최고의 계층에 자리한 정도가 아니라 다른 종이 범접할 수 없는 창조주 '신의 대리인'이라는 오만한 생각까지 해냈다. 물론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인류를 창조하는 능력이 다른 종에 비할 수 없이 탁월한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 『네 발의 철학자』는 '개'가 인간보다 철학자로서는 더 우위에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무척 도발적인 가설에서 출발한다. 저자 마크 롤랜즈가 세운 가설이지만 내용 자체는 독자들이 읽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관찰과 연구, 사색이 응집된 탐구를 통해 정립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저자 롤랜즈는 전작 『철학자와 늑대』에서 『철학자~』는 야성을 간직한 채 인간 세계에 동참한 늑대와 그의 소울메이트 괴짜 철학자인 저자와의 우정에 관한 놀라운 실화를 담았다. 『철학자~』에서는 인간의 세계에 동참해 상상 초월의 세상살이를 했던 한 마리 늑대의 삶이 펼쳐진다. 대학 강의실에, 도로 위에, 쇼핑 센터에, 비행기에, 페리의 갑판 위에서 늑대는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문명 세계에 거뜬히 적응한 늑대 브레닌은 어느새 철학자의 인생과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성의 대표주자 철학자는 야성의 대표주자 늑대에게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고 늑대라는 거울에 비춰진 인간의 진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철학자~』를 통해 과연 지성과 야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을 보여주었다. 또 세상에 길들여져 잃어버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이 규정한 인간의 모습을 넘어 나아가는 법을 들려주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 『네 발의 철학자』를 통해 개와의 삶으로부터 얻은 통찰을 심도 있게 담아냈다. 이 책은 개와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시대를 아우르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흄, 스피노자,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까지 인간계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이론을 개의 삶과 견주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특히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여기는 ‘성찰’이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은 성찰하는 인간과 몰입하는 개를 대비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찰한다. 이 책과 함께 견생(犬生)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잃어버렸던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철학 강의」란 제목의 〈추천사〉에서 "반려견과 함께하면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이라며, "이 단순한 가르침이야말로 반려견이 반려인인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한다.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이다. 만약 인간이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인간은 철학적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을 시작하지만 개는 그 질문을 온몸으로 살아낸다. 개는 철학이 무엇인지 몰라도 삶을 통해 철학적 교훈을 실천한다. 개들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이 답이다. 최 교수는 이 책이 개의 행동을 관찰하며 의식, 본성, 성찰, 도덕, 자유, 행복, 우연과 필연, 주관과 객관, 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철학의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분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철학은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우리 삶의 근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 『네 발의 철학자』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개들을 관찰해 답을 찾아 나간다. 특히 수색‧구조‧보호견종 슈츠훈트 혈통인 섀도의 일상 행동을 살피다 ‘유레카’를 외친다. 섀도는 운하 변에 사는 파충류 이구아나를 잡으려는 질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언제나 허탕을 치지만 아침마다 이를 즐겁게 반복한다. 이처럼 반복적인 일로도 충만한 기쁨과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은 결실 없는 반복을 정신적 고문으로 여긴다. 인류에게 불을 전했다가 신의 미움을 사서 바위를 언덕 위로 올리다 굴러떨어지곤 다시 시작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시지포스의 바위’ 신화가 은유하는 바다. 이처럼 인간은 반복적이고 소소한 일상에도 전념하는 개와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차이의 원인을 자기성찰이 가능한 인간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데서 찾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철학자를 찾는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철학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하고, 계몽철학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에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성찰과 거리가 있는 개의 단순명료한 삶이라 해서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함께한 반려견을 통해 "개는 남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삶을 검열하거나 캐묻거나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원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지 않으냐"는 특성을 밝혀낸다. 저자는 또 인간과 개는 본성의 분출 방식에서도 대조적이라고 주장한다. 저먼 셰퍼드를 훈련해 사냥‧경비를 맡기면 본성을 풀풀 뿜어낸다는 것이다. 섀도가 매일같이 이구아나와 다람쥐를 쫓으면서도 지루해하지 않고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이를 통해 공격과 보호의 본성을 발산하는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인간은 본성이 약해져 다양한 사건의 의미를 따지고 진행 중인 상황의 과정과 결과를 과도하게 고민할 뿐이라고 대조적인 행동에 대해 주시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행동양식에선 행복이 분출될 도약대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을 ‘불완전한 철학자’로 부르는 까닭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인간은 도덕 덕분에 개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개도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반박한다.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면서 다친 동료의 곁에 있어 주고, 먼 거리를 오가며 먹이를 구해와 새끼나 주변 동물과 나누는 자기희생적 사례는 드물지 않다. 개의 도덕적 행동은 다른 개체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공감 능력과 가치에 맞춰 행동하는 억제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설명이다. 개는 인간 같은 복잡한 자기성찰 없이도 행동으로 도덕과 연민, 공존을 실천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성찰’하는 인간과 ‘몰입’하는 개를 대비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찰하기 위해 쓰여졌다. 특히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철학적 ‘성찰’의 능력이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치르고 있는 성찰의 대가란 무엇인지 알아본다.

저자가 개와 함께하며 도출해낸 탐구 결과 중 하나가 「노래하는 법을 잊지 않는 타고난 철학자」라는 제목의 〈서문〉에 알베르 카뮈를 인용한다. 개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반복 훈련을 많이 하는데, 이는 매일 반복되는 교훈이며 이를 철학 이외의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에 관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철학적 문제는 모두 장난이라고 했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를 묻는 하나의 방식이다. 카뮈의 생각은 힘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찾는다면 삶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답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새도는 이미 답을 했고, 카뮈와 내게는 없을 확신까지 있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모든 것! 철학적 질문에 대한 개들의 답변이다. 그러하듯, 정교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정교함이 개의 두드러진 강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대답에는 근본적인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정답이 아닐지는 모르나, 정답에 가깝거나 정답 쪽을 가르킨다. 즉 영리하고 정교한 영장류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개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나는 큰 그림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일개 영장류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는 개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철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멀다. 잘 관찰하면 개들이 의식과 이성의 본질, 도덕성의 의미, 자유의 범위와 한계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게 보인다. 개들은 철학적 논쟁은커녕 그들이 고민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않고도 이런 난제들에 힘들이지 않고 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답을 완전체로 통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과 행동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그 유사 개념인 행복, 전념 같은 것은 모든 '개 철학'의 초석을 이룬다.(p.12~13) (중략)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뭔가를 알게 되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섀도의 바위〉, 2장 〈캐묻지 않는 삶〉, 3장 〈거울아, 거울아〉, 4장 〈도박꾼의 자유〉, 5장 〈착한 개〉, 6장 〈삶의 설계〉, 7장 〈입스를 겪는 개〉, 8장 〈가끔 에덴을 바라보다〉 등이다. 2장 〈캐묻지 않는 삶〉에서 저자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가올 일은 걱정을 낳고 지나간 일은 후회를 부르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고 밝힌다. 반면 개에게는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오직 현재에 머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함없이 기뻐하는 개를 바라보며 저자는 몰입하는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살핀다. 책에 따르면 매일같이 언덕에서 이구아나 떼를 추격하는 반려견 섀도의 일상을 시시포스의 신화와 견주며 그가 우리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해본다. 섀도와 시시포스는 되풀이되는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한쪽은 삶의 의미로 넘쳐흐르고, 다른 한쪽은 무의미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의미와 무의미, 즉 섀도와 시시포스를 가르는 것은 ‘본성’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본성에서 비롯된 행복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본능에 충실하여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처럼 존재와 행동이 정확히 일치할 때 가능하며 거기에는 어떤 고민도 의심도 자기 검열도 끼어들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찾는다면 삶의 의미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답할 질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새도는 이미 답을 했고, 카뮈와 내게는 없을 확신까지 있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모든 것! 철학적 질문에 대한 개들의 답변이다. 그러하듯, 정교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정교함이 개의 두드러진 강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대답에는 근본적인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정답이 아닐지는 모르나, 정답에 가깝거나 정답 쪽을 가르킨다. 즉 영리하고 정교한 영장류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개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창의적이다. 나는 큰 그림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일개 영장류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는 개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철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멀다. 잘 관찰하면 개들이 의식과 이성의 본질, 도덕성의 의미, 자유의 범위와 한계 같은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게 보인다. 개들은 철학적 논쟁은커녕 그들이 고민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않고도 이런 난제들에 힘들이지 않고 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답을 완전체로 통합시키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과 행동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과 그 유사 개념인 행복, 전념 같은 것은 모든 '개 철학'의 초석을 이룬다.(p.12~13) (중략) 개들은 타고난 철학자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뭔가를 알게 되지만, 개들은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섀도의 바위〉, 2장 〈캐묻지 않는 삶〉, 3장 〈거울아, 거울아〉, 4장 〈도박꾼의 자유〉, 5장 〈착한 개〉, 6장 〈삶의 설계〉, 7장 〈입스를 겪는 개〉, 8장 〈가끔 에덴을 바라보다〉 등이다. 2장 〈캐묻지 않는 삶〉에서 저자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가올 일은 걱정을 낳고 지나간 일은 후회를 부르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행복은 멀어져간다고 밝힌다. 반면 개에게는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다. 후회도 걱정도 없이 오직 현재에 머물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함없이 기뻐하는 개를 바라보며 저자는 몰입하는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살핀다. 책에 따르면 매일같이 언덕에서 이구아나 떼를 추격하는 반려견 섀도의 일상을 시시포스의 신화와 견주며 그가 우리와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생각해본다. 섀도와 시시포스는 되풀이되는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한쪽은 삶의 의미로 넘쳐흐르고, 다른 한쪽은 무의미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의미와 무의미, 즉 섀도와 시시포스를 가르는 것은 ‘본성’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본성에서 비롯된 행복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본능에 충실하여 이구아나를 쫓는 섀도처럼 존재와 행동이 정확히 일치할 때 가능하며 거기에는 어떤 고민도 의심도 자기 검열도 끼어들지 않는다. 


저자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명료한 개의 행복을 보여주는 이 책은 성찰하지 않는 삶이 단지 살 만하다는 것을 넘어 끝없이 캐묻고 의심하는 삶보다 가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어지는 챕터에서 저자는 자기 인식, 자유, 도덕성, 이성 등의 철학적 개념이 과연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를 질문하고, 우리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여겨왔던 개념들이 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개의 행동에 기대어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알아보는 거울 실험이나 후각 실험의 결과를 통해 개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에 관심이 없을 뿐 자기 인식 능력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스피노자와 사르트르가 정의한 ‘자유’를 토대로 개와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피노자가 말한 ‘본성의 필연성에 의한 자유’가 개의 자유에 가깝고, 사르트르가 주장한 각자의 해석과 의미 부여에서 비롯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유의 의미조차 우리 생각과 해석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인간만이 도덕적이라는 생각도 뒤집는다. 복잡한 사고의 과정 없이 무리의 다른 개체를 구하거나 반려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여러 사례를 통해, 행동의 근거가 다를 뿐 동물 역시 도덕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개의 도덕성은 공감과 억제라는 두 가지 기둥에 근거하고 있음을 전한다. 또 논리적 추론을 거치지는 않지만 인간의 이성을 수단 삼아 원하는 바를 얻는 개의 능력을 짚으며, 인간은 개의 ‘확장된 마음’이라는 결론에까지 다다른다. 즉 개는 이성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일러둔다.

우리는 개의 경우보다 삶을 사랑하기 어렵다. 삶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삶과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특히 성찰은 인간의 삶을 두 개로 나눈다. 우리는 실제로 삶을 사는 주체이자 스스로를 관찰하는 객체로 분열되어 두 개의 삶을 산다. 삶의 배우이자 관객인 것이다. 배우로서 삶에 몰입하지만 관객으로서 삶을 바라보고 평가하기도 하는 우리는 두 삶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반면 성찰하지 않는 개는 오직 주체로서 하나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매 순간에 몰입하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주체와 객체라는 삶에 대한 두 관점을 살펴보며, 주체로서의 경험을 늘려가야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활기 넘치던 젊은 시절 늑대와 함께한 성장기를 그려낸 『철학자와 늑대』 이후 저자가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개와 걸어가는 여정을 담은 이 책은, 끝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길을 보다 의미 있게 걷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과 함께 견생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잃어버렸던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삶에는 ‘객체로서의 삶’과 ‘주체로서의 삶’이 있다. 객체로서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삶, 그것에 대해 희망과 두려움, 만족과 후회를 품는 삶이다. 이는 외부에서 바라본 나의 삶이다. 시간적 경계는 태어날 때 시작되어 죽음에서 절정에 이른다. 공간적 경계는 다소 불분명하겠지만 내 삶은 일반적으로 내 몸 주변에서 일어나고, 비교적 내 몸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p.231)


저자 :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


영국 웨일스 뉴포트 출신의 괴짜 철학자이자 현재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다. 그가 11년간이나 동고동락했던 그의 오랜 친구 늑대 브레닌 이야기는 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고 전 유럽 아마존 6년 연속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대표작 『철학자와 늑대』 덕에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젊고 매사 삐딱했던 저자는 이 놀라운 책에서 가슴 찡한 늑대의 철학을 빌려 우리 인간의 모습을 날것으로 보여 줘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이자 나이 오십을 2년 앞둔 저자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까칠하지만 전반적으로 완숙해진 중년의 철학자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이번에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웨일스의 돌산에서, 프랑스의 해변에서, 플로리다의 늪지에서 그리고 마이애미의 마라톤 출발선에서 달리고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를 전한다. 특히 나이 들어 비로소 얻게 되는 진정한 자유와 끝없이 반복되는 환희의 세계로 안내한다.

주요 저서로 대표작 『철학자와 늑대』를 비롯해 『동물권』 『동물의 역습』 『동물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SF철학』 『내가 아는 모든 것은 TV에서 배웠다』가 있다.


역자 : 강수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외 유수 기업의 통·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철학자와 늑대』, 『철학자가 달린다』, 『인생은 불친절하지만 나는 행복하겠다』, 『속도의 배신』, 『지금 생각이 답이다』, 『마음에 대해 달리기가 말해 주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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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 신병주 교수의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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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한민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라임에도 역사적인 유적이 많지 않은 점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유럽 여행을 처음 가서 그들의 문화 유적을 보고 느낀 점이다. 그들은 선진국이었고, 우리는 개발도상국이어서였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문화 유적은 우리와 비슷한, 혹은 우리보다 덜 된 역사임에도 찬란하고 웅장했다. 특히 건축 문화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본 것들이 관광지 이곳 저곳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보는 것마다 대단했다. 높이 치솟은 성당, 웅장한 그리스·로마 시대의 공공건물··· 볼수록 주눅이 들 정도였다. 물론 건축물은 해당 지역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란 인식은 있었지만 돌 건축물에 치장된 장식의 솜씨는 우리의 다보탑에 못지 않았고, 크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관광객 입장에서 볼 때는 유럽인들은 "조상 덕에 먹고 산다"고 독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화 유적은? 주변 나라나, 지형, 기후 조건을 따져야겠지만, 우선 외관상 크기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질투심이었는지, 위축감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자긍심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의 문화 유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것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부족해 보였다. 이와 반대로 우리 역사마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린 역사상 강대국임을 자처한 적이 없다. 먼 과거 고대 삼국시대 때가 유일하게 정복자로서의 나라의 위상이 크게 높았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 왕조를 능가하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중국까지 침략해 들어가 정복하려는 침략의 역사는 없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전쟁에서 이긴 '승전의 역사'였다. 이처럼 유럽의 역사와 우리 역사가 다른 점은 분명하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해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은 우리 민족 역사에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최고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찬란하고 웅장한 역사 유적을 갖지 못한 점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민족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비춰 본다면 우리도 자랑할 만한 역사 유적이 숱하게 많다. 좁은 영토지만 5,000년 동안 쌓이고, 흔적을 남긴 유적들은 한반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상징성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우리는 근대 이후의 역사가 침략 당해 억압받고, 외부 세력에 의해 이념적으로 분단됐다. 이념이 다른 두 강대국에 의해 영토마저 강제로 분단된 이후 겪은 한국전쟁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제 강점기의 피지배 민족으로 가혹한 수탈과 우리 민족성의 훼손이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끊임없이 침략을 당해 왔다. 중국, 일본, 러시아뿐만 아니라 근대 들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한 미국도 우리에겐 호의적이지 않았다. 강대국이 가진 힘의 논리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민족성이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은 우리의 자랑할 만한 정신 자산이다. 정신 자산은 유형의 물적 유산을 남기지 않아 눈에 띄이지 않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우리 삶이 파괴될 위험 앞에선 단결력과 끈끈한 유대감, 그리고 남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있는 인내력이 큰 힘을 발휘한다. 바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다. 

이런 민족성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길 곳곳에도 역사적 흔적을 남겼다.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그 길은 더 이상 그저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다. 그때의 인물, 그때의 사건, 그때의 공간이 연결되면서 생생한 역사적 장면과 마주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또 그럴수록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선조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찾아내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지배는 민족적 정신력을 말살하려 했기에 더욱 잔인한 식민주의라고 배척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 강제된 식민주의 역사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일부 집단의 그릇된 역사관도 이젠 하나씩 정리돼 가고 있다. 이 책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은 "과거와의 만남도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주장을 가진 저자 신병주의 신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사적 인과관계에 치중한 묵직한 역사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이 책에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그때의 현장'을 실제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생생한 진짜 역사를 알게 하는 이 책 한 권을 들고 지금 당장 뛰어나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거닐어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그 길에 뜻밖의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고, 현재와의 연결선상에서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이 멀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켜켜이 쌓인 역사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따라가면서 선조들의 멋스러운 지혜와 품격을 엿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얻게 되는 깨달음은 그야말로 민족적 자산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활동은 현장 답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역사를 만들어 간 인물과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생생한 사건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 역사 현장 답사의 가치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현장 답사를 나가 설명한 내용과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실제 답사가 가능하도록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각 지역별로 파트를 나누었다. 둘째,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서술한 만큼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셋째, 각 장(章)마다 현장을 찾아가는 길과 관련 정보를 박스로 표기하여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역사는 씨줄과 날줄로 경험된 사건, 인물, 그리고 공간을 파악한다. 그리고 파악된 내용을 바탕으로 씨줄과 날줄로 빈틈없이 엮어 완전한 원형에 맞추어 낸다. 이것이 역사관이고 역사 기술이다. 이렇게 잘 맞추어진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과거를 교훈 삼아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고, 과거의 장점은 다시 사용하도록 추출해낸다. 공자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고, 신채호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념이 우리에게 주는 묵직한 가르침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역사의 현장에서 만나는 인물, 사건,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서술한 만큼 보다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현장을 찾는 안내까지 부기하여 책을 읽으면서 답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역사가 주는 즐거움과 의미를 얻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역사관과 역사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의 흔적을 모두 7장(章)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1장 〈왕실의 역사, 궁궐 속으로〉, 2장 〈갈등과 변화의 공간, 서울〉, 3장 〈외곽의 역사, 경기도〉, 4장 〈선비의 고장, 경상도〉, 5장 〈유배지에서 꽃핀 학문, 전라도〉, 6장 〈청백리와 천주교의 흔적, 충청도〉, 7장 〈허난설헌과 김만덕, 강원도·제주도〉 등이다. 우리 5,000년의 역사를 다 담을 수 없는 이유는 한민족 역사 중 분단된 후 80년 동안 남한의 역사학자가 확실하게 정사(正史)를 분석하고 고증, 확증할 수 있는 부분이 조선시대 우리 역사뿐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앞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올바른 역사 쓰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계속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1장는 근정전·집현전과 같이 익숙한 공간 이외에 내의원, 종친부, 창덕궁 후원의 설경 등 새로운 공간을 주로 다룬다. 2부에서는 칠궁, 왕의 잠저, 흥덕이 밭, 인조별서유긷비 등 조선왕조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수 소개한 점이 눈에 띈다. 3부에서는 추사 김정희와 과천, 정몽주, 조광조와 경기도 용인과의 인연 등을 설명한다. 4부는 안동 하회마을, 한산도대첩과 노량해전의 현장들, 조식과 지리산 산천재 등을 소개한다. 또 5부는 정약용과 강진, 정약전과 흑산도, 유형원과 부안의 학문적 인연 등을, 6부에서는 성삼문과 윤봉길 의사의 당진 솔뫼성지 등을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7부에서는 허난설헌, 신사임당, 김만덕의 행적을 짚어본다. 

서울 지역은 오랫동안 조선의 수도 역할을 했던 만큼 곳곳에 의미 있는 유적지가 가득하다. 서울 중심지에는 왕과 왕비가 살았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5대궁뿐 아니라 그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 나아가 왕을 낳은 어머니들의 신주를 모신 칠궁 등이 모여 있다. 북촌은 양반들이나 고관들이 주로 거주했던 공간이다. 북촌의 헌법재판소가 있는 자리에는 『열하일기』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개화파 정치인 홍영식의 집터 표지석이 있고 1885년에 설립된 최초의 병원 제중원 표지석도 있다. 서촌은 조선 후기 양반과 평민 사이에 위치한 중인들이 시와 문장 등의 문화를 즐기는 곳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시인 천수경이 주인이었던 ‘송석원’으로, 친일파 윤덕영은 그 자리에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던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을 짓기도 했다. 지금은 박노수미술관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박노수미술관 주변에는 시인 이상이 20년간 살았던 집터에 자리한 ‘이상의 집’, 연희전문학교 학생 윤동주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음을 알려주는 ‘윤동주 하숙집’ 표지판도 찾아볼 수 있다.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산, 낙산, 인왕산, 남산, 백악산을 연결한 한양도성, 한명회의 화려했던 정치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압구정동의 유래가 된 정자 압구정, 석촌호수 쪽으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삼전도비를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의 영릉이 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무덤 헌릉(서초구 내곡동)의 서쪽으로 자신의 무덤 자리를 생전에 정한 왕이었고 사후 그곳에 묻혔다. 하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계속 지적되고 문종, 단종, 의경세자 등 적장자 출신들이 연이어 요절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경기도 여주로 옮겨졌다. 용인에는 성리학의 수용과 실천에 공을 세운 정몽주와 조광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과 구리시의 동구릉은 왕과 왕비를 모신 대표적인 왕릉군이다. 강화도는 고대 유적인 고인돌부터 고려시대 유적인 고려궁궐 터, 조선시대 유적인 정족산사고와 외규장각 등 시기별 유적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외규장각은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궁궐 안은 전쟁이나 화재의 안전지대가 아니었기에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지어 왕실의 도서를 보존했다.

경상도 안동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 학문의 산실로 꼽히는 도산서원 및 퇴계종택이 있다. 근처에는 이황의 후손인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도 있다. 산청에는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 양대산맥인 조식의 생가, 산천재가 있다. 경의 상징인 방울과 의의 상징인 칼을 찬 선비로 기억되는 조식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곽재우 등 많은 의병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남해로 가면 이성계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금산의 보리암, 노량해전의 이순신을 기린 관음포,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만날 수 있다.

전라도 담양에는 호남 선비의 풍류와 멋이 담긴 소쇄원이 있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양산보가 스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정자를 짓고 은거했던 곳이다. 흑산도는 정약용의 형이자 『자산어보』의 저자인 정약전의 유배지로 정약전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책을 집필한 공간인 사촌서실이 있다.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사건인 신유박해로 유배길에 올랐고 그들이 유배 기간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까지 전해온다. 강진은 정약용의 유배지다. 정약용은 강진에 다산초당을 짓고 거처로 삼았다. 외가인 해남 윤씨 종택인 녹우당이 인근에 있어 많은 책을 얻을 수 있었고, 근처 백련사에 거처하는 혜장, 초의 등의 고승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약용은 유배의 시간을 실학 완성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전주는 이성계의 고조부가 살았던 곳으로 전주 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오목대는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돌아가는 길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이다.


충청도 아산에는 조선시대에 가장 이상적이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청백리 맹사성 고택이 있다.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맹씨행단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고려 후기 장군 최영의 집이었는데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이 물려받은 곳이다. 공주에는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의 능인 무령왕릉이 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원형의 형태로 발견되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옥천에는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있고, 그 인근에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도 있다. 당진에 있는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으로 증조부 김진후,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까지 4대의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교의 성지다.

강원도 강릉에는 오죽헌이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재산 상속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고 처가살이가 관행적으로 행해졌는데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이이가 태어난 곳이 오죽헌이다. 강릉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허난설헌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기도 했던 허난설헌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뛰어난 재주에 비해 순탄하지 못한 결혼생활 끝에 27세에 요절했다. 허균은 외우고 있거나 친정에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를 모아 『난설헌고』를 만들었다. 이 시집은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져 허난설헌의 이름을 알렸다. 또한 오대산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로, 혹시라도 모를 화재나 변란으로 소실될 것을 우려하여 임진왜란 이후에는 보다 안전한 산간 지역에 설치했다. 그중 하나가 오대산사고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1913년에 일본에 유출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지만 2023년에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오대산에 돌아와 자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 애월에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삼별초가 최후까지 저항을 했던 향파두리성이 있다. 제주시에는 김만덕기념관이 있는데 김만덕은 1795년 제주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천금을 내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정조실록』에 실린 여성 상인이다. 여성이 재물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것이 국가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서귀포시로 가면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1840년에서 1848년까지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유배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청나라 사신으로 갔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을 위해 고마움을 담아 그린 김정희의 역작 〈세한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자 : 신병주(申炳周)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 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편 외 다수, EBS 「클래스 e」 ‘조선 왕을 만나는 시간’ 시리즈, CJ ENM,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역사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등에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평전』, 『왕으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왕비로 산다는 것』, 『우리 역사 속 전염병』, 『56개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서울의 자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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