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는 흔히 동반이환comorbidity 현상을 동반한다. 이는 문제의 일차적 장애 말고도 다른 장애가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양극성장애나 조현병으로 진단된 환자는 흔히 경계선인격장애같은 그 밖의 진단도 받게 된다. 나는 사이코패스이기만 하고 다른 병은 없는 사람을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증상, 원인이 되는 뇌영역, 관련 전달물질 면에서 여러 장애가 폭넓게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정신장애다. 나의 사이코패스적 특성은 다른 문제와 별개로 논의할 수 없다. 내가 매력적인 이유는 활기차고 말재간이 있으며 호언장담으로 앞에 놓인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그 에너지와 유창함은 나의 경조증에서 나온다. 이렇게 나의 모든 행동이 한데 묶여 있다. - P236

인디애나폴리스 릴리연구소 Lilly Research Laboratory의 도론 새그먼Doron Sagman과 마우리시오 토엔 Mauricio Tohen은 양극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황장애, 강박장애, 물질남용의 위험이 크다고 썼다. 그뿐만 아니라 양극성장애 환자는 주요우울장애 환자와 달리 약 3분의 1이 반사회적 · 경계선 · 히스테리성 ·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동시에 보인다. 또한 자살하거나, 비만이거나. 제2형 당뇨가 생기거나, 흡연할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한다.
최근에 이 양극성 동반이환의 목록을 본 나는 멈칫했다. 이 목록은 어린 시절부터 10대와 청년기를 거치는 내내 번갈아 사귀어온내 평생지기들(병명들)의 친숙한 ‘인명록‘인 셈이었다. 나는 이들장애와 연관된 증상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고, 각각의 증상이 내 일생의 어떤 기간을 지배했다. 한 증상이 10대 초반에 절정을 이루다가 물러가면, 완비된 또 한 벌의 증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모든장애가 발병하기만 하면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나타났다. 일가 어른들과 임상의들이 내게 들려준 의견들에도 공통점이 하나 명백히드러났다. 이 장애들 대부분이 세로토닌계와 강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 P237

인격과 성격은 다르다. ‘인격 personality‘은 신경성(신경과민, 불안, 회피 등), 외향성, 친화성, 새로운 발상과 경험을 향한 개방성, 성실성(세심함, 근면성, 자제력, 성취욕 등) 같은 특성의 목록이다. 반면에 ‘성격 character‘은 인격보다 덜 분명하다. 한 사람의 진정한 성격은 그가 곤혹스럽고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힘든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격은 많은 부분이 유전에 의한 것이므로 바꿀 수 없으며 성격은 스트레스 요인, 경험, 선택, 믿음에 따라 그보다는쉽게 바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웅들이 소설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성격의 변화는 성격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드러내는 일례다. 종교, 정부, 가족, 문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성격을 ‘어두운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기반으로 한다. - P246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개인‘이 생존에 유리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떨까? 사이코패스가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게있을까?
사이코패스들은 유능한 지도자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최근 실시한 연구에서는 전사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잘 내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반면, 사이코패스는 기꺼이 도박을 건다. 불확실한 시기라도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군대를 움직이거나 부족을 데리고 산을 넘을 것이다. 그 결과로 그가 맡은 집단은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집단에 모험을 시키는 것이 문명적으로는 이롭다. 그런 도박 중 일부는 성공해서 문명을 진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돌연변이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어떤 돌연변이는 커다란 이익을 주는 것과 같다. - P283

그래서 내가 사이코패스냐고? 단적으로 답하자면 ‘아니올시다. 그보다는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더 나은 답이다. 나는PCL-R에서 대인관계 특성(피상적이고, 과대망상증이 있고, 기만적이다), 정서 특성(가책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행동 특성(충동적이고 무책임하다)을 포함한 많은 항목에 해당된다. 하지만 반사회 특성은 보이지 않는다. 분노를 조절할 줄 알고 전과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일성싶다.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통찰력 있는 어머니가 일찍부터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보고 아들을 잘 이끌어주었기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나는 역경을 헤쳐나갔다. 2013년 늦겨울,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자서전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는 게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난 지금 내 자서전이 아니라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가 나를 기른 방식에서 왔다. 나의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됨과 아버지됨과 부모됨과 양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하다.
60대에 시작한 뜻하지 않은 순례를 통해 발견한 것은 5년 전만해도 내가 믿지 않았던 뭔가다. 태어날 때 자연이 나누어준 형편없는 카드 한 벌을 올바른 양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나는 사이코패시 스펙트럼상에도 골프처럼 스위트스폿이 있다고 믿는다. PCL-R로 25~30점인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나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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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배의 위쪽에서 모두가 일제히 휴대 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고, 걱정스러운 몸짓으로 빈 공간을 향해 분노를 쏟아 내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직장에 늦을 거라고, 그런데 그들이 입은 이러한 손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지 궁금하다고, 그러기에 술이나 퍼마시는 인간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고,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고, 가뜩이나 현지인들에게도 일자리가 부족한데 뭣 때문에 이민자를 고용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언어는 대체 어디서 깨쳤는지 모르겠다고 하긴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고.
에릭은 그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얼마 안 있으면 잠잠해질 테고 자리에 앉아서 점점 화창해지는 하늘을, 그리고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아름다운 빛줄기를 바라볼 거라고 확신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엘리자의 딸이 입고 있는 선명한 하늘색 코트였다.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징크스였다.) 이 색깔은 배를 탈 때 불길한 징조를 뜻했다. 하지만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금방 잊어버렸다. 그는 대양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면서 오늘을위해 특별히 준비한 초콜릿 바와 콜라 한 상자를 아래쪽으로 던졌다. 그가 준비한 가벼운 다과가 사람들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멀어져 가는 해안가를 바라보면서 잠잠해졌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항해에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T 형제 중에 동생이 그에게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콜라 때문에 트림을 했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가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유치원 선생인 엘리자가 궁금해했다.
‘연료는 충분한가?‘ 콩팥에 문제가 있는 S 영감도 관심을 보였다. 적어도 에릭에게는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될 수 있으면 그들을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시선을 수평선에 고정했다. 덕분에 그의 동공은 반으로 갈라졌다. 바다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래쪽 절반은 짙은 빛을, 하늘에서부터 시작되는 위쪽 절반은 밝은 빛을 띠었다. 실제로 승객들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그들은 이마 쪽으로 모자를 당겨 쓰고, 목에 두른 스카프를 단단히 고쳐 맸다. 헬리콥터의 우르렁대는 프로펠러 소리와 경찰 모터보트의 요란한 소음이 정적을 깨뜨릴 때까지는 모두 조용히 항해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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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에릭은 3년 동안(이곳에서 100해리 떨어진 곳에서는 코카인 밀반입에 통상 교수형이 선고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과한 형벌도 아니었다.) 공짜로 영어 실력을 갈고닦을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 책 한 권을 독파하는 고급 반용 영어 수업, 문학적이면서 고래학적이고 여행 심리학적인 어학 코스. 산만하게 이것저것 손대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다섯 달이 지나자 에릭의 실력은 이스마엘의 모험담을 거의 외워서 낭송할 수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등장인물 중에서 에이허브의 목소리로 말하는 건, 특히나 에릭에게 짜릿한 기쁨을 선사하곤 했는데, 마치 편안한 옷을 입은 듯 에릭의 본성과 워낙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다소 괴상하고 촌스럽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 이런 책이이런 인물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행운이었다. 여행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동시성의 원리‘라고 명명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보여 주는 증거로 여겼다. 의미의 실타래, 기이한 논리의 그물망이 이 아름다운 혼돈 속에서 사방으로펼쳐져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 말이다. 그리고 신을 믿는 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야말로 신의 손가락에 새겨진 일그러진 지문의 흔적과 같은 것이라고 에릭은 생각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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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의 뇌에 관해 내가 아는 내용을 거론했다. 전사유전자를 초기 학대와 연결하는, 아브샬롬 카스피의 연구결과도 언급했다. 그리고 세 다리 의자 이론이 위험한 사이코패시 행동의 토대가 될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세대를 초월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세 세대 이상의 아이들이 사회적 폭력을 경험하는 문화에서는 폭력의 비율이 증가해 호전적인 전사 문화가 발생한다는 논리였다. 내가추측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폭력이 만성적인 사회에서는 소녀들이 기왕이면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해줄 남자들과 어울릴 테고, 그러다 아마도 짝을 지을 테다. 대상은 십중팔구 공격성과 관련이 높은유전자를 가진 소년들일 것이다. 그렇게 두어 세대가 지나면 공격성 관련 유전자가 집중되기 시작하고, 결국 서너 세대 뒤에는 사회안에서 유독 공격적인 하위집단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정치적·종교적·문화적·경제적·사회적 원인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공격성 관련 유전자가 유달리 집중된 사람들의 공격적문화는 몇 세기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발표에서는 거명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지역으로는 가자. 다르푸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일부, 과테말라와 콜롬비아의 여러 지역, 미국 도시들의 몇몇 동네가 예상된다. - P147

하지만 프로그램에 필요한 데이터는 얻었다. 내가 통역을 써서각 부족민들을 면담하는 동안, 제임스는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 유리병에 부족민들의 타액을 모아 얼음 위에다 얹었다. 유목민들은 네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기억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그들의 전사유전자 보유율이 낮으며 그들의 평화로운 사회에서는 전사유전자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백인들은 X염색체 약 30퍼센트에 고위험 MAOA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과 중국인, 마오리족은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이러한 인종적 차이는 계속 논란이 되어왔는데 모로코의 유목민 부족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런데 만일 배두인족과 같은 아랍인의 전사유전자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 어쩌지? 우리는 두 시험군 모두에서 30퍼센트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우리 생각은 틀렸다. 그 비율이 약 30퍼센트로, 유럽인과 북아메리카인만큼 높았던 것이다. 결과대로라면 환경은 내 예상보다더 큰 역할을 할지도 몰랐다. 사막의 가혹한 조건에서는 생존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폭력적이면 추방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면 혼자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이 경우 사람들의 공격성을 제한하고 있는 건 유전이 아니라 문화였다. 본성이아닌 양육 말이다. 이건 DNA가 우리 행동의 80퍼센트를 설명한다는 나의 믿음에 가해진 또 하나의 작은 일격이었다. - P156

사실 나는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지만, 다이엔에게 완전히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와 다이앤 사이에 유대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공감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매혹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가족, 자유의지론, 불가지론)가 있어서 동지애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언제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1967년부터 1968년 무렵, 나의 사고와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격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풋볼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다칠까봐 노심초사하지도 않았다. 알파인 스키 경주를 하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온화함을 잃었고, 학문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마치 나의 공격성 스위치가 켜진 듯했다. 교회는 더 이상 다니지 않았고, 도덕성 또한 사라졌다. 허풍의 수준도 날로 높아졌다. - P178

직업적 성과가 오르락내리락하고 몸무게도 미친 듯이 변한다는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테이프로 이어 붙인 그래프용지 여러 장에이 리듬을 그려보기로 작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논문 발표 수연구비 액수 등을 기초로 직업적·창의적 산출량과 몸무게의 관계를 도표로 만들고 나니, 그 상관관계가 확실했다. 내 몸무게가 꼭짓점을 찍었을 때마다, 그러니까 몸무게가 대여섯 차례 130~135킬로그램에 육박했을 때마다 나의 직업적·창의적 산출량 또한 절정이었다. 그러다가 살이 다 빠져서 85~95킬로그램으로 돌아가면,
생산성도 0으로 떨어져 그 상태가 1~2년 지속되곤 했다.
내가 많이 먹고 담배 피우고 놀수록 그리고 운동을 덜 할수록, 모든 분야에서 성과가 좋았다. 다른 사실도 눈에 띄었다. 내 몸무게가 최고의 눈금을 찍을 때, 가까운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나아지는 듯했다. 몸무게가 최고점에 다가가는 동안에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의 유대감도 커지는 듯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 긍정적특성, 지적·창의적 성과와 유대감은 연결된 듯 보였다. 그리고 때때로 담배 때문에 살이 빠졌을 때엔 생산성이 떨어지고 어떤 종류의 공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정기적으로 섹시한 파티 보이가 되었지만, 동시에 얼간이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때의 나는 나의 어떤 행동이 남들의 감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아니 물리적으로 해칠지 모른다는 걱정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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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왜 연결되는지 결코 알아내지못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측했다. 혹시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그리고 어쩌면 엔도르핀과 테스토스테론도 내 변연계 안에서 비정상적이지만 주기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닐까? 이들 신경전달물질, 조절인자, 호르몬이 모여들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측두엽과 그에 연관된 변연계, 곧 감정의 뇌가 특히 의심스러웠다. 수면 리듬을 포함해 세로토닌이 조절하는 나의 일일 리듬들이 바뀌면서 이 거센 요동에 연료를 공급한다고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는 추측에 불과했다. - P184

공감은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공감을 동정과대비시킬 수 있다. 이때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다시 말해 그가 경험하는 감정을 당신도 경험하듯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여겨진다. 반면에 동정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욕구에 가깝지, 실제로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일반적으로 타인에 대한 감정 반응도를 가리킨다. 동정은 지진이나 홍수 피해자들의 곤경을 전해 들은 사람이 자신은 그런 피해를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시간을 내어 피해자들을 돕거나 구호자금을 기부하게 하는 감정이다. 이는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피해자들에게 공감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반드시 공감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공감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남들의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감지하면서도 남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UCLA 마르코 야코보니 Marco lacoboni가 진행한 생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관계 및 영향에대해 큰 시사점을 준다. - P186

거울뉴런계는 야코보니의 발견을 근거로 가정되는 뇌 회로다. 남이 뭔가를 하는 모습을 한 번만 지켜보면 즉시 자기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영장류, 특히 인간의 능력은 전두엽과 두정피질의영역에 있는 이 뉴런들 사이에 형성된 회로를 바탕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엄마가 수건을 개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가 바로 수건을개려고 시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거울뉴런계의 존재는 도움이 된다. 아이는 엄마를 지켜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운동계 sensorymutor system와 똑같은 세포군을 써서 그 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 P187

우리가 공감이라 부르는 것에 이렇게 많은 뇌 영역과 유전자가 연관됨을 알면, 공감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토록 애매했던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성싶다. 우리는 대개 공감의 부재를 사이코패시와 연관 짓는다.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을 냉담하게, 거의 무감각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이코패스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애정을 갖고 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조차도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버펄로 빌을 생각해보라. 그는 죄 없는 여자들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죽이지만, 자신의 푸들이 위험에 빠지자 눈에 띄게 초조해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이코패스들이 나머지 사회 전부를 증오하며 폭력적으로든 비폭력적으로든 복수에 나설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주식투자에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면, 사이코패스는 금융기관에 분노를 돌림으로써 세상에 가혹하게 복수할것이다. 사이코패시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는 자신의 가족, 종족, 국가, 인종, 종교에 대한 공격을 지각하면 그에 대해 복수하려 들 것이다. 가장 폭력적인 테러리스트, 외톨이 살인자, 독재자는 자신의 집단에게는 공감하지만 타인의 삶과 안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 P193

공감의 유형은 이처럼 개인 대 집단이라는 틀로 나눠볼 수도 있지만(이장 앞에서 이야기한 공감대 동정이라는 이분법과도 연관된다). 다른 방식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다. 바로 감정적 공감과 ‘마음이론‘으로 알려져 있는 인지적 공감을 구분하는 것이다. 마음이론은 아동기 전반에 생겨나서 성인기까지 점차 발달하며, 아이들이 자신에게 욕구와 의도와 믿음 같은 정신 상태가 있음을 그리고남들에게도 비슷한 심리가 있음을 깨닫는 주요한 발달적 이행 단계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는 사람은 정상적인 마음이론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경계선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와 같은일부 인격장애와 특정한 형태의 양극성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에 사이코패시, 자기애성인격장애, 특정한유형의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은 인지적 공감은 가능하되 감정적공감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두 유형의 공감 상실은 전전두피질의아래쪽, 즉 복측 절반 중에서도 서로 다른 부분의 기능부전과 연관된다. - P194

나는 또 상대의 신뢰를 얻으려 거짓말을 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거짓말은 게임을 나한테 유리하게 이끄는 내 페르소나의 일부이자, 인생이 따분하지 않게끔 삶에 대처하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내가 하는 거짓말은 대부분 정보를 빠뜨리는 것일 뿐, 없는 정보를보태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누가 나에게 직업을 물을 때 나는 한때 바텐더 겸 트럭 운전사였지만 지금은 반쯤 은퇴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지만 그 목적은 단지 상대에게 트럭 운전사치고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일부 사이코패스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그들은 모두다르다. 나쁜 가정에서 태어난 사이코패스가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저지르는 이유는 아버지가 그를 두들겨 패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는 무감각해진다. 그렇게 성장한 사이코패스를 자극하려면 많은 게 필요하다. 마약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점점 더자극적인 행동을 해야 쾌감을 얻고 점점 더 극단적인 경험을 해야뭐라도 느낀다. 이는 연애를 통해 긍정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지만, 그가 학대를 당했다면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성적학대로 성과 폭력에 관련된 뇌의 배선이 잘못된 사람은 강간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연구가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은 대개 쾌락과 관계 있다. 나는 언제나 짜릿함이나 즐거운 시간을 추구하고, 약간의 쾌감을 얻기 위해남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로 유명했다. - P200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런 성향은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전반에 잘 들어맞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유의지론과 불가지론, 무신론을 정치적·종교적으로 신봉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아이를구하는 데 우리가 가진 돈을 동전 한 닢까지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 아이만 애지중지하면 결국 인류는 파괴될 것이다. 또 누굴 애지중지할지는 누가 판결하는가? 나는 먼 지평선이 백년, 천년, 만년 뒤에 펼쳐질 상황을 본다. 한 사람이 사회를 위해 내일 거꾸러진다면, 그건 정말 유감이지만 나는 괘념치않는다. 나는 어떤 아이가 내 눈앞에서 굶어 죽게 내버려두지는않겠지만(나는 괴물은 아니다), 내가 정부를 운영한다면 모든 복지제도를 도려낼 것이다. 헌법의 기본 원리(공정성, 사유재산, 기타 등등)를 철저하게 적용한다면 어떤 사람은 죽을 것임을 알고있지만, 나는 괴롭지 않다. 그 체제가 약하거나 게으른 개인들을솎아낸대도, 난 상관없다. 나는 비생산적이거나 무책임한 행동을부추기고 싶지 않다. 그런 행동은 사회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한 사람이나 한 집단보다 종種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한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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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달 과정에서 환경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지는않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많은 걸 배운다. 웃기, 걷기, 말하기도 그러하고, 성격처럼 더 복잡한 것도 알아서 발달한다. 지독한 학대나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만 없으면, 아이들은 무사히 성장할 것이다. 교육적 음악사업과 게임 사업의 규모가 10억달러에 달하고, 아이들의 발달 과정을 제어하겠다고 아이들의 식단을 관리하는 부모도 있지만, 그런 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드물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스트레스를 아예 없애주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어떤 아이도 부모가 바라는 대로는 되지 않으며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유형의 성인이 될지를 어른들은 거의 좌우할 수 없다. 나와 함께 일하는 소아신경학자들도 "아이는 정해진대로 만들어진다"라고 말하곤 했다. 당신이 아이를 완전히 망쳐놓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P141

 그날 아침 내 마음의 눈에는 뒤뜰 정원의 다리 셋달린 의자가 사이코패시의 세 가지 요소와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새로운 사이코패시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였다.
나에게는 ‘유년 시절의 학대‘라는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몇 년에 걸쳐 사이코패스에 관해 강연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 사이코패스에 속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가끔씩 나의 안정된(또는 내가 그렇다고 믿은) 행동을 놓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동료들이 단순히 내가 한 어떤 짓에 분개했거나 나의 성공을 질투해서 과잉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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