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렛 휴스의 말을 빌리면, 더티 워커는 "우리 모두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의 다수 시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불미스러운 일을 수행하는데도 위임자인 우리는 더티 워커에게 거리를 두고 그들을 멸시한다. 더티 워커의 한 예는 미국의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교도관이다. 1970년대에 각 주에서 정신병원을 폐쇄한 이후 구치소와 교도소는 사실상 이 나라의 정신병원이 되었다. 더티 워커의 또 다른 예는 표적살인을 수행하는 드론 전투원이다. 이들은 9·11 테러이후 점점 전쟁에 대해 관심을 잃고 냉담해지는 국민을 대신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더티 워크, 그리고 휴스가 그의 글에서 논한 모든 종류의 더러운 노동은 국가가 위임했다. 즉 국민이 그들의 고용주이며, 이 점에서 더러운 노동자는 무슨 불량배가아니라 사회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모든 현대 사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더티 워크가 한 가지 있다. 여기서 시민은 고용주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그 노동을 뒷받침하고 이익을 취한다. 플로르 마르티네스는 정부 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에서 일했지만, 이 산업에 가장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은 바로 미국인의 식욕이다.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어치우지만 그 고기가 생산된 현장에는 근처에도 갈 필요가 없다.  - P322

이 먼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이자 심미적인 거리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닭다리는 이 시스템의 잔인성을 감추는 무색무취의 포장재에 들어 있다. 뼈가 없는 햄버거 패티, 빵가루를입힌 치킨너겟 같은 식품은 아예 고기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만드느라 동물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러한 욕망에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문명화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은폐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도축을 예로 들었다. 원래 중세 시대 상류층은 일상적으로 식탁에서
"생선을 통째, 새를 통째 (...) 그뿐 아니라 토끼나 양도 통째로, 송아지는 4분의 1 토막을 잘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준이 달라졌다. "고기 요리가 동물을 죽이는 행위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상기시키지 않는다는 새로운 규준이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고기 요리는 많은 경우 조리와 절단을 통해 동물의 원래 형태가 감춰지고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동안 요리의 기원을 거의 연상할 수 없다."
엘리아스는 이어 이렇게 쓴다. "그 일은 상점이나 부엌에서전문가들이 처리한다. (...) 커다란 고깃덩어리나 심지어 생선 한마리를 식탁에서 자르는 것에서 시작하여, 죽은 동물을 보는 데서오는 불쾌감의 한계치가 높아지다가, 자르는 행위가 무대 뒤편의 전문화되고 고립된 공간으로 옮겨지는 이 곡선은 전형적인 문명화곡선이다.  - P325

"물리적 위험보다 더한 가장 끔찍한 위험은 감정이 다치는거예요." 어느 돼지고기 정육공장의 노동자가 게일 아이스니츠에게 한 말이다. "도살장에 온 돼지들이 나한테 다가와서 강아지처럼 코를 문대요. 2분 후에 내가 죽일 텐데." 이 공장에는 그로 인한고통을 누르려고 약물이나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일한 문제는, 그렇게 술로 감정을 억눌러봤자 깨고 나면 그대로라는 거죠." 이 문장에서 나는 톰 베네즈를 비롯해 여러 교도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축 노동자는 교도관과 비슷한 대응기제에 의지하고 있다. 아이스니츠는 생계를 위해 동물을 죽이는사람은 그 자신의 영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쓴다.
패키릿의 결론은 이와는 다르다. 노킹 박스에서 동물을 죽이는 일은 인간의 감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동료는 그에게 "그런 일을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밤에 악몽을 꾸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 듯했다. 이것이 가능한 중요한 이유 하나는 노동분업에 있었다. 소고기 정육공장에는 도축 노동이 내장 뜯어내기, 간 걸기, 머리 조각내기 등 실로 다양한 하위 분야로 세분화되어있다. 즉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자잘하게 나뉘어 있었다(그래서 소를 실제로 죽이는 것은 노킹 담당자뿐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나도 어느 닭고기 공장을 방문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어느 부서는 간을 빼고, 어느 부서는 목을 자르고, 또 어느 부서는 ‘결함‘부위를 제거했다. 이들이 닭을 조각내고 솎아내는 동안 바닥에는핏물 섞인 분홍빛 폐수가 하수구를 향해 흘렀고 내 신발 밑창에도튀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냄새는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나 나는 닭의 목을 자르고 간을빼는 일이 어떻게 평범한 일이 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고, 실제로 내가 만난 샌더슨 팜스 노동자들은 도축 노동을 힘든 감정과는 무관한 기계적인 작업으로 생각했다.  - P328

 2020년 6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 1500명이 양성 판정을 받자 지역 당국은휴교령과 봉쇄령을 선포했다. 그런데 이 공장의 소유주인 퇴니스는 집단감염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비난하려다가 곧 반발에 부딪혔다. 독일의 노동부 장관 후베르투스 하일Hubertus Heil은 퇴니스가 "지역 전체를 볼모로 삼았다며 그 비용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퇴니스는 사과와 더불어 지역사회의 대대적인 검사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하일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않고 자신은 이 회사에 대한 신뢰가 ‘제로‘라고 언론에 밝혔다. 이후 그는 정육산업을 "무책임이 조직화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규정하면서 감시 강화, 하청 계약 금지 등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이처럼 정부 공무원은 위험하고 모욕적인 노동환경이 세상에 폭로되었을 때 그러한 환경에서 이익을 취하는 회사를 망신 주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 P349

 듀크대학교의 경제학자 매슈 존슨MatthewJohnson,
Jasmin은 <망신 주기를 통한 규제megulation by Shaming>라는 논문에서 기업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전략의 억제 효과를 분석했다. 존슨에 따르면 지역 언론과 업계 간행물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발신하면해당 지역의 동종 업계 시설에서 규제 위반 사례가 30퍼센트 감소한다. 또 한 번의 뉴스 보도가 직업안전보건국의 안전 조사 200회에 해당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2020년 9월24일 노동차관 패트릭 피젤라Patrick Pizzella는 직업안전보건국을 비롯한 집행 기관에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기업의 규제 위반행위를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유행병 관련 규제 위반에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그대로 중단되었다. 이 정부의 우선순위에는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보다 정육회사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앞섰을 것으로 보인다. - P350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좋은 먹거리‘ 운동이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로 축소되면 식품업의 생산환경 같은 구조적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날 수 있다. - P358

가처분 소득이 많은 사람에겐 윤리적 소비가 쉬운 일이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푸드 스탬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지 않다. 소비에서 발생하는 윤리 격차는 계급 격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KFC와 월마트에서 나쁜 고기를 소비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멋진 식당과 홀푸즈 같은 상점에서 윤리적인 고기를 소비한다. 그런 소고기와 닭고기에 붙은 라벨은 소비자가 스스로에게서 순수함과 미덕을 느끼게 해준다.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미덕은 특권과 한 쌍을 이루어, 부유한 소비자는 공장식 축산에서벌어지는 불순하고 더러운 관행에 가담하는 기분을 돈으로 떨쳐낼 수 있다. 불순하고 더럽게 생산되는 식품은 미덕, 윤리가 부족한 소비자의 몫이다. 누가 미덕이 부족한 소비자인가 하면, ‘해체라인‘에서 간을 걸고 내장을 뜯어내며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도축노동자들이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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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 저택으로 이어지는 길입구의 철문 앞에 섰지만 굳게 닫힌 탓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문에는 쇠사슬이 가로걸리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문지기를 소리쳐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녹슨 철문 틈새로 들여다보니 문지기 집은 오랫동안 버려졌던 듯한 모습이었다. 굴뚝에서 연기도 나오지 않았고 작은 격자창은 깨어져 쓸쓸히 입을 벌리고 있었다. - P5

달콤한 시럽이 뚝뚝 듣는 핫케이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바삭한 토스트, 갓 구워내 뜨거운 스콘, 속에 뭘 넣었는지 알 수없지만 맛이 좋았던 샌드위치, 그리고 아주 특별했던 생강 빵도 떠오른다. 입에서 녹아버리는 카스텔라, 과일 사탕절임과 건포도가터질 듯 가득 든 빵도 생각난다. 굶주린 가족이 한 주 내내 먹을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음식이었다. 결국 남은 음식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때로 그 낭비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남은 음식의 행방에 대해 댄버스 부인에게 감히 묻지는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비웃는 듯 차가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오만한 미소와 함께 "돌아가신 드윈터 부인께서는 그깟 일에 신경쓰지 않으셨지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댄버스 부인이라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파벨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제일 처음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은 댄버스 부인의 얼굴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본능적으로 레베카와 비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 드리워졌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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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 국민은 자국군의 드론이 정찰하는 지역의 민간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에 관한 정보도찾으려고만 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가령 뉴욕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글로벌 정의 연구소(Global Justice Clinic와 스탠퍼드대학교 국제 인권 및 갈등해결 연구소가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 <드론 밑에서 살아간다는 것uring Under Drones)mes>은 미군이 파키스탄에서 수행한 드론 공습의 증인과 생존자 130여 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그중에는 칼릴 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도시 다타켈에서 드론이반군 집회로 의심된 무리에 미사일을 떨어뜨렸을 때 칸은 현장으로 달려가 그날 내내 "조각난 시체를 모아 관에 넣었고, 마을 사람들은 수십 개의 관을 거리로 운구했다고 연구진에게 말했다. 그집회는 광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부족 장로들의 모임이었다. 한 시골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늘 우리를 감시하고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머리 위를 맴도는 눈 없는 비행기는 "감정적 쇠약, 드론이 머리 위에 나타나기만 해도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거나 숨는 행동, 기절, 악몽을 비롯한 침투적 사고, 큰 소음에 과도하게 놀라는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겁이 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장소를 피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보고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럴 마음을 먹지 않을 뿐이다. 펜타곤을 촬영한 패글런의 "검은 세계" 연작 사진집 《보이지 않는 Invisible》에 리베카 솔닛RebeccaSolnit의 글이 실렸다. "패글런이 묘사한 지도 위의 빈 점들은 마음속의 빈 점들, 그리고 공적 대화 속의 빈 점들과 동류다." 헤더 라인보의 <가디언> 사설에 쏟아진 반응을 보건대, 이 점들이 계속비어 있는 이유는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자세한 것까지는 알아내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 P266

문제의 일자리가 미국 본토인에게 실제로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는 이주민 때문에 본토인에겐 매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앨버트빌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닭고기 공장 일은 ‘이주민 노동‘이 되었고, 그 결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과 협상력에 이주노동자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여 일의 위상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팻이 일하는 정육공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공장에는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앨라배마주는 노동조합 의무 가입이 금지된 주이기에 신규 채용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었고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자한때 94퍼센트에 달했던 노조 가입률이 40퍼센트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팻의 소득도 줄었다.  - P283

이 역학에 주목한 경제학자 필립 마틴Philip Martin은 채소 수확, 호텔 객실 청소 같은 틈새 노동시장에 이주민이 진입하면 그러잖아도 힘든 노동이 더욱 힘들어지고 본토인에겐 더더욱 매력 없는노동, 더티 워크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주자를 고용할 수 있는 한 고용주는 더러운 일을 개선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미국인은 더러운 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고분고분한 외국인에게 대체될까 두려워하는 본토박이 저숙련 노동자들의 계급 불안과 인종차별이 뒤섞여, 이주민들은 사회적 더러움을 획득한다(팻은 "그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쫓겨날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 P284

닭고기 정육산업이 고수익 사업으로 급성장한1990년대에는 흑인과 라틴계 주민이 정육공장에서 일했다(2020년기준으로 닭고기와 달걀은 미시시피주의 가장 중요한 농산물로, 총 매출액이28억 달러에 달했다). 스튀시는 그 수익이 노동자에게 거의 분배되지않는다는 점에서 닭고기 정육산업을 "대농장식 자본주의 Plantationcapitalisa" 시스템으로 규정했다. 이 개념은 노동자의 인간성을 박탈하는 환경에서 주로 소수인종이 일하고, 기업의 소유주와 임원은 거의 대부분 백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과거 대농장에서와 똑같이 가금류 정육공장에서는 관리자가 전권을 휘두르며 일선노동자를 가혹하게 취급한다. 고된 노동으로 물리적 상처뿐만 아니라 감정적 상처도 남는다는 것까지 과거 대농장에서와 똑같다.
도축 노동은 "몸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유발한다. 관리자의 만성적인 홀대는 노동자의 존엄성, 자존심, 정의감을 위협하기에 정신을 다치게 한다."18노예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라면 ‘대농장식‘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브라이언의 도축 노동자를만나 그들이 겪은 모욕에 대해 들으면서 그 용어를 거듭 떠올릴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없는 건 채찍뿐이에요." 레지나는 이렇게말하며 관리자들이 그를 무자비하게 채근할 때 그러듯이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 P296

한편으로는 미투 운동이 부딪힌 장벽이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호사를 통해 가해자를고소하는 일은 보복과 공적 모욕이 뒤따를 수 있기에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나 여성 뉴스 앵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약간의 불만을 표출하기만 해도 보복당할 수 있는 라틴계 이주노동자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사 측의 보복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법률가들의 발표에 이은 토론 시간에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노동자는 관리자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상부에 보고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격분했는데, 분노의 대상은 가해자인 관리자가 아니라 자신의 아내였다. 정육공장 내 젠더 역학은 노동자 가정 내 젠더 역학을 너무도 여실히 반영했다. 여성 노동자가 기댈 수 있는 안전한 장소는 거의없었다. - P308

그들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해도 자신의 주제를 알게 된다.
이처럼 미국 사회는 멕시코계 이주민을 더러운 존재로 분류함으로써 이들이 사회질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가상의 위협을 중화한다고 몬테자노는 말한다. 그의 분석은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Hary Daugins의 연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더글러스는 그의 권위서《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 (1966)에서 오물을 "제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했다. "오물은 본질적으로 더러워서가 아니라 사회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양식이나 전제와 조화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오물은 질서를 거스른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런데 무언가를 더러운 것으로 분류하는 일은 더럽지 않은 것,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을 분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물이 있는 곳에 체계가 존재한다. 질서가 부적절한 요소의 거부와 관련되는 한, 오물은 사물의 체계적 질서화 및 분류의 부산물이다." 부적절한 요소는 쓰레기, 배설물 같은 무생물일 수도 있지만 사람일 수도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순수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접촉을 피하는 이를 더글러스는 "오염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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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군기자 데이비드 우드David Wood의 《우리가 저지른 일these Harve to Dove"이었다. 우드는 이렇게 썼다.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혼동되어왔지만 도덕적 외상은 더 미묘한 상처로서, 플래시백이나 병적인 놀람 증상이 아니라 ‘슬픔, 회한, 비탄, 수치, 반감, 도덕적 혼란‘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특징은 신체적반응이 아닌 꿈이나 의구심 같은 미묘한 감정적 반응으로 드러난다. 칸투는 이 개념이 자신의 문제에 부합한다고 느꼈다. 회고록에서 그는 "전투를 경험한 사람만 도덕적 외상을 입는 게 아니다"라고 썼다. 2018년 초에 이 책을 출간할 때 칸투는 국경순찰대사람들의 비난을 각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경순찰대와 정치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책을 비난하고 나섰다. 칸투가 텍사스주 오스틴 같은 도시에서 낭독회를 열면 이주민 인권운동가들이 나타나 불매를 외쳤다. 그를 ‘나치‘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다."
칸투가 국경순찰대를 미화하는 책을 썼다면 그런 비난이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회고록에 국경순찰대의 현실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한 대목에는 요원들이 이주자의 개인 소지품에 대고 오줌을 싼다고 썼다. 또 한 대목에서는 요원들이 체포된 이주자를 ‘쓰레기 같은 놈‘ ‘멍청한 늙다리‘ 등 인간성을 부정하는말로 부른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낭독회를 찾아오는 운동가들은 그런 대목을 회개의 표시로 읽지 않았고, 제도적 인종차별의 유해함을 밝히려는 시도로는 더더욱 읽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개인적 타락의 증거로 여기고 저자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이들이 칸투의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나선 배경에는 트럼프대통령이 불붙인 분노가 있었다. 그는 미등록 이주자를 ‘강간범‘ ‘짐승‘이라고 불렀고, 국경순찰대가 그들을 비인도적으로 취급할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으며, 미등록 이주자 일제 단속을 위해 이민관세집행국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요원까지 파견했다.  - P244

 이탈리아의 소설가프리모 레비 Prino Lort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 <회색지대zone grigia>라는 에세이에서 죽음의 수용소에 나타났던 노동 분업에 주목했다. 가장 추악하고 모욕적인 일, 가령 유해를 쓸어 치우거나 피해자를 선정하는 일 등이 포로에게 위임되었고, 그 일을 맡은 포로는 특권(여분의 빵 한 조각, 죽음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누렸다. 나치가 이 전략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인력 부족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도덕적인 이유였다. 레비에 따르면, 나치는 그들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을 불결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죄의 부담을 지게 하고, 피로 물들이고, 최대한 그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렇게 그들을 공모 관계로 묶음으로써 다시는 등 돌릴 수 없게 해야 했다.‘
레비가 보기에 바로 이것이 "국가사회주의가 저지른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 나치는 "선택(특히 도덕적 선택)의 여지가 0으로축소된", 강압된 협력이라는 "회색지대" 안에서 피해자의 무죄성을 강탈했다. 그런데 "특권층 포로"에 대해선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 자발적인 부역자는 자신의 의지로 체제가 저지르는 죄의 매개물이자 도구"가 되었으므로 "그들이 행한 죄의 정당한 주인"이었다.‘ 그러나 종국에 레비는 판단을 유보하기를 주장하며, "연민과 엄격함"으로 그들이 마주했던 절박한 상황과 난처한 선택들을 숙고해보기를 요청한다. - P246

 수용소에 처음 도착했을때 레비는 "불행을 함께하는 동반자들의 연대를 기대했다. 다시말해, 무력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그들끼리 동맹을 맺고 권력자에게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날 즈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포로들은 너무도 절박했던 나머지 권력자의 감언이설에 쉽게 흔들렸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흐릿해지곤 했다. 나치 수용소가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결국 레비의 글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바는, 어떠한 사회질서에서든 권력 격차가 존재하는 한 그 질서의 맨 아래에있는 사람들이 부정한 시스템의 "매개물이자 도구"로 기능할 수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권력이 없다는 그 사실이 권력을 행사하려는 욕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혹은 나치 수용소의 포로들에게 가해진 강제력만큼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어떤 강제적인 힘에 속박되기 때문이다. 그런 힘 중 하나가 경제적 곤경이라는 압력이다. - P248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더티 워커가 느끼는 공모 의식과 죄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해리엇이 침묵한 가장 큰 이유는 교도관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서, 또는 해고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것은 충분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 이유가 충분히 정당한가? 해리엇은 그 답을 알 수 없었고, 자신이 시스템의 피해자인지가해자인지 줄곧 헷갈렸다. 해리엇만이 아니라 내가 만난 교도소의 다른 상담사들도 그저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학대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들과 달리 폭행 사건을 고발했다가 해고당한 맬링크로트는 환자를 위해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경제적 사정보다 우선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칙을 고수하는 이 훌륭한 입장은 의료윤리학계와 인권운동 진영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맬링크로트는 그런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위험을 덜 무릅써도 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자란 독신자였고, 해리엇처럼 안전망 없이 어린 자식을 부양하는처지가 아니었다. 그에 비해 해리엇을 비롯한 여러 상담사들은 경제덕 곤궁에서 비롯된 모순된 충동에 시달리면서 더 조심스럽게 데이드의 회색지대 안에서 길을 짚어나가야만 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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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있는 한, 그녀도 이 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리 와"
그녀는 팔을 벌렸다. 아이가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힘에 떠밀려 그녀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지하실의 희끄무레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지금 아이는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체온과 살갗의 촉감이확연히 느껴지게 되었다. 더 커지고, 더 무거워지고, 더 뚜렷해졌다.
그녀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엄마하고 둘이 살자"
그녀가 하얀 그림자 아이를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하고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
속삭이며 그녀는 아이의 희끄무레한 이마에 입 맞추었다.
어두운 콘크리트 건물의 검은 지하실에서 오랫동안 엄마를 기다렸던 조그만 아이의 흔적이 드디어 찾아낸 그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 P290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 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 P295

밝은 미래 따위는 믿지 않았다. 먹고살 수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순간이었다. 돌아가면 아마도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느릿하게 저물어가는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그리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애썼다. - P332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진심일 것이다. 내 부모와 그들의 부모 세대, 한국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세대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언제나, 2차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용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 P348

좋은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으나 나쁜 시간을 소원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래는 없었다. 그와 내가알았던 모든 삶의 유형들은 전부 과거에 갇혀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 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어
너무 많이 행복해지면
슬픔이 그리워질 테니까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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