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이점을 남들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공통의 도덕적 목표이기는 해도, PEN이 전 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만은 아니다. 미국 시인 에마 래저러스는 <우리가 모두 자유로워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인간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태도가 담겨 있으며, 바로 이것이 기자로서 내 목적의식이다. 여러분도이 책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목소리가 틀어막히는 것은 그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은 것이고, 우리가 다 함께 의지하는 집단 지성을 훼손한 것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는 1997년 미국인에게 <당신들의 자유로 우리의 자유를 촉진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우리의 자유는 다른 모든 이들의 자유에 달려 있다. PEN이미국과 해외에서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싸우는 것은 서로 별개인 두 사업이 아니다. 이것은 공개적 의견 교환이라는 하나의 캠페인이다. - P62

내가 리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기본적으로 친미주의자인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한 이들이었고, 격렬한 반미주의자들은 모두 그렇지 않은 이들이었다. 내 말은 미국이 아이오와 주립 대학이나 UCLA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학생 비자를 마구 내주면 세상의 문제를 다 풀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든 가보지 못한 장소를 사랑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요주의 국가> 사람들의 방문을 포괄적으로 몽땅 금하는 정책은 미국에게 우호적인 말을 해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미국에 「베이워치」 외에 무슨 장점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결국에는 안보에 해가 된다. - P64

우리가 타자를 격리하면 그들은 우리에 대해 무지를 기르고, 무지는 금세 위험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에서도 위험한 증오가 싹튼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세계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우리 자신을 빈틈없이 둘러싸서 막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궁극에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외국인 혐오 정서가 맨 먼저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그 구하는 행위다. 고립주의자들의 몽상과는달리, 우리는 경비가 튼튼하고 멋진 궁전에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곪아가는 감옥에 가두는 것뿐이다. - P65

이웃을 사랑하기란 어렵고, 적을 사랑하기란 더 어려우며, 후자는 실제로 가끔 부주의한 판단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 짓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굳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생태적 필요일 수도 있고, 사회적 의무일 수도 있고, 갈수록 좁아지는 세계의 불가피한 성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사람들 간의 모든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늘 역효과를 낳는다. 진보주의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여러 신뢰할 만한연구에 따르면 인종에 관한 말을 전혀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일수록 피부색에 따라 무리를 짓고, 거꾸로 차이를 충분히 학습한 아이들일수록 더 기꺼이 섞인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특성을 가진 타인과 자신을 대비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존재다. 다른 나라들이 없다면, 미국도 없다. 다른 나라들을 몽땅 탈신비화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아는 미국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권을 기준으로 무리 지으면서도 국가 간에 친절하도록 애쓸 수 있고, 마셜 플랜이 최소한 드레스덴 공습만큼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며, 우리가 누리는 이점을 갖지 못한 이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지지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적을 파악해야하는 시급한 필요성과 새 적을 만드는 끔찍한 어리석음을 충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 P67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가보고 싶던 곳으로 가는 여행이든 그리운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든, 그저 출발 자체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는 것을 여행은 삶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환기시킨다. 내가 이륙할 때 초조해지는 것은 기압 탓도,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걱정되어서도 아니다. 나 자신이 꼭 녹아 없어질 것처럼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용기보다 안락을, 안락보다 안전을 우선하라고 배웠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위계를 뒤집으려고애쓰며 살았다. 릴케는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연습할 것은하나뿐,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는 것은 쉽게 되는 일이니 따로 배울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오를 때, 나는 내가 떠나온 곳이나 방문했던 곳을 놓아주는 연습을 한다. 곧 어딘가에 도착하리라는 생각으로 출발을 견디지만, 분리는 잠깐이나마 늘 나를 회한에 빠뜨린다. 그러나 그런 슬픔 속에서도 안다. 내가 거듭 밖으로 나가 본 뒤에야 집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서야 밖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적어도 내게, 작별은 친밀함의 필수 조건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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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차고 깨끗했다. 갑자기 그가 맨덜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거기 살았던 이야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맨덜리에서는 봄철 오후의 황무지를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진다는것, 긴 겨울을 보낸 바다는 자주색으로 보인다는 것, 테라스에서면 밀려오는 파도가 작은 만을 씻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 수선화가 만발하여 저녁 바람에 흔들린다는 것, 흔들리는 가지 위에 붙은 그 황금빛 꽃송이를 아무리 많이 따도 줄어드는 기미는전혀 없다는 것, 꽃들은 마치 진격하는 군대처럼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있다는 것, 잔디밭 아래 둑 위에는 노랑 분홍, 연자주 크로커스가 자라지만 지금쯤은 절정기가 지나 창백한 눈송이처럼 시들어 떨어지리라는 것, 앵초는 빈틈만 있으면 잡초처럼 자라는 채신머리없는 꽃이라는 것, 초롱꽃은 아직 때가 일러 작년의 이파리속에 봉오리를 감추고 있겠지만 일단 피어나면 제비꽃을 압도하고 숲의 고사리까지 말려 죽이며 하늘빛과 경쟁하듯 푸른빛을 자랑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 P50

그 부인은 쉽게 잊히지 않는 미모와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목소리가 그 말의 기억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부인이 갔던 장소들, 부인이 만졌던 물건들도 있다. 선반에는 부인이 수놓은 천이 깔려 여전히 부인의 향기를 풍기겠지. 내 침실베개 아래에는 부인의 손길이 닿았던 책도 있다. 나는 부인이 속표지를 펼치고 미소 지으면서 펜을 흔든 뒤 서명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아마도 그의 생일이었을 테고 부인은 아침 식탁에서 다른 선물과 함께 그 시집을 건넸을 것이다. 그가 포장끈을 풀고 종이를 벗기는 동안 두 사람은 함께 웃었겠지. 그가 시집을 읽을 때부인은 몸을 굽혀 그의 어깨를 감쌌으리라. 그리고 남편을 맥스라고 불렀을 것이다. 맥스, 이 얼마나 친숙하고 다정하며 쉽게 발음되는 이름인가. 가족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그를 맥심이라고 불렀다. 나를 포함해 그보다 어리거나 별생각 없는 이들도 그랬다.
맥스라는 호칭은 그 부인의 선택, 그 부인만의 권한이었다. 부인은그 이름을 시집 속표지에 자랑스럽게 써넣었으리라. 흰 종이 위에 그 힘차고 비스듬한 필체를 거침없이 남기며.
얼마나 여러 번,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그 부인은 남편에게 그런 메모를 썼을까…… 작은 쪽지도 있었을 테고 그가 멀리 떠나 있을 때에는 몇 장에걸쳐 둘만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도 보냈겠지. 그 부인의 목소리는 집 안 곳곳에서, 그리고 정원에서 울렸으리라. 시집에 남은 필체처럼 거침없고 익숙하게.
그리고 나는 그를 맥심이라고 불러야 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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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똥차를 몰고 곧장 남아공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야영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열흘치 식량을 갖고 있었고 후 그곳 주민 집에서 묵게 된다면 선물할 요량으로 그곳 주식인 옥수수가루도 열 봉지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싣고 돌아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해가 뜬 직후, 유달리 꾀죄죄한 원형 초가들이 모인 마을을 보았다. 길에 차를 세우고, 내가 경사진 둑을 넘어 마을로 다가갔다. 주민 몇 명이 가냘픈 불길을 둘러싸고 손을 비벼 녹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식료품 열 봉지를 건넨 뒤, 어리벙벙한 표정을 보면서 잠시 즐겼다. 여행에는 낯선이에게 주는 도움과 낯선 이에게서 받는 도움이 다 있다.
나는 개입과 상호성이라는 문제를 갈수록 더 유념하게 되었다. 모든 새로운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그것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대신, 그 혼란에 자신을 더 활짝 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례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일은 본디 잘하는 편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 내 차이를 인식해야 했고 그들도 그 차이를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과 같은 척 꾸며서는 그들에게 녹아들 수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이 그들의 방식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낫다는 가정을 접어 둘 때, 비로소 녹아들 수 있다. - P36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연습이다. 여행은 우리를 증류하여, 맥락을 떠난 본질만을 남긴다. 완전히 낯선 장소에 몸을 담갔을 때만큼 자신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또 없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곳 사람들이 내게 색다른 기대를 적용하기 때문인데, 내가 말하는 방식, 내가 입은 옷의 재단, 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단서들 따위가 아니라 내 국적이 그들의 기대를 형성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행은 우리를 위장시킨다. 나에 대해서 개략적인 선입견만을 품은 사람들의 시선에 둘러싸일 때, 우리는 꼭 위장한 것만 같고 익명이 된 것만 같다. 스스로 선택한 것인 한, 나는 외로움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집에서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한, 멀고 험난한 장소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나는 사회적 구속을 싫어하고, 여행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도와주었다. - P39

진정성은 여행자의 성배다. 진정성은 발견될 수는 있지만 계획될 수는 없다. 스물여덟 살 때 친구 탤컷 캠프와 함께 보츠와나의 유일한 간선도로를 달려서 그 나라를 가로질렀는데, 도로를 건너는 소떼 때문에 주기적으로 차를 세워야 했다. 한번은 아주아주 멀리 동물 떼가 보였지만 목동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코끼리 떼였다. 우리는 코끼리의 <자연 서식지>인 드넓은 보호 구역에서 코끼리를 이미 많이 본 터였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돈 내고 들어가서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법적 경계인 국립 공원이란 왠지 야생동물과의 조우에 인공적인 느낌을 준다. 그 공식 경계 너머에서 코끼리들을 우연히 만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우리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 한 시간쯤 서 있었다. 이우는 햇살에 후피동물들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십여 개국에서 코끼리를 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때처럼 벅찬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 P43

자유가 정체와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유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단발적으로 등장한다. 자유의 한 구성 요소는 낙관주의인데, 낙관주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지금 벌어지는 일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한다. 변화는 종종 무모하다. 종종 끔찍하게 잘못된다. 분위기에 짜릿한 자극을 가하지만 종종 그 짜릿함이 실현되지 않고 소실되는 결과만을 낳는다.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모든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의 무게를 나눠서 짊어지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추상적 개념으로는 매력적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직접 투표해야 하는 순간에는 벅차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미얀마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 티다 박사를 미얀마에서 인터뷰했다. 18개월 뒤 그녀가 뉴욕에 와서 만났는데, 그때 그녀는 정부만 바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뿐이라면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억압에 길들었던 국민들의 마음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ㅡ이 일에는 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유를 좇아 구속을 떨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란 참으로 영광스럽지만 참으로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유를 획득한 뒤에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토니 모리슨의 말을 빌리면, <자유로워진 자신을 되찾아야 한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따라서 장애물만 제거되면 어디서나 민주주의가 생겨날 것이라고가정하지만(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아마 이런 가정에 따라서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증거는 그런 예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자유는 배워야 하는 것,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 P48

저우언라이는프랑스 혁명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단지 새로운 체제로 가는 길은 아니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설령 변화의 약속이 영영 실현되지 않더라도, 변화의 순간 그 자체가 귀중할 수도있다. 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에 평생 매료된 사람이라, 변혁의 목전에 놓인 곳들을 자주 가보았다. 그러는 동안 과거보다는 냉소가 늘었다. 역사의 교차로에서, 전보다 나은 것을 가져올 것 같았던 변화가 도리어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있다. 위대한 진전이 비극과 함께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상시적 불확실성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변화는 점진적인 침식의 결과가 아니라 빈발하는 부정 출발의 결과일 때가 많다. 실패한 시작이 두 번, 세 번, 혹은 열 번쯤 쌓인 뒤에야 비로소 돌파구가열리고 변화가 오는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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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모든 곳의 특파원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를 알려 주셨다. 우리는 노란 뷰익으로 뉴욕주 9A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이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플레전트빌은 정말로 플레전트한(즐거운) 곳이냐고묻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삼킬로미터 지난 뒤 왜 나치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내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을 이미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탄없이 대뜸 집단 수용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은 기억난다. 나도 우리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알았고, 그래서 만약 우리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그 일을 겪었을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최소한 네 번 졸랐다. 이야기에서 뭔가 빠진 부분이 있어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급기야 대화를 무자르다시피 하는 단호한 말투로 그것은 그저 <순수한 악>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었다. 「유대인들은 왜 상황이 나빠졌을 때 그냥 떠나 버리지 않았어요?」「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거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언제든 어딘가 갈 데가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력하고 의존적이고 잘 속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 P13

 미국을 떠나기 전, 여러 선생님들과 현명한 어른들이 불가리아는 끔찍한 소련 괴뢰국이지만 루마니아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용감하고 독립적인 지도자가 있어서 모스크바의 지령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불가리아에서는 가식적이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합창단의 주연 소프라노 루이즈 엘턴과 내가 집시 극단을 쫓아가느라고 잠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분위기는 쾌활했다. 반면 루마니아에서는 억압적인 장면을 매일 목격했는데, 우리에게 자기 나라가 자유롭고 진보적인 곳임을 설득시키려고 한 주최 측의 말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광경들이었다. 한번은 병원 창문에서 어느 환자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려고 하자 군복을 입은 간병인이 거칠게 그를 끌어당기고는 얼른 블라인드를 내렸다. 길에서 만난 초조한 기색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편지를 건네면서 그것을 몰래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두려워서 그런지 대화를 나누려고 들지는 않았다. 어디에나 군인들이 구석구석 지켜 서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부쿠레슈티 관광은 금지되었는데, 우리 루마니아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밤 생활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 웃긴 말이라고 느낀 우리는 나머지 일정 내내 저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는 매력적인 곳이지만 루마니아는 오싹한 경찰 국가더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이 내게 틀린 소리 하지 말라고 말했다. 차우셰스쿠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루마니아가 동유럽중에서도 아마 가장 억압적인 체제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훨씬 더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서야 드러났다. 나는 이 사건으로 직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첫눈에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 보니 음흉한 곳일 수는 있지만 첫눈에 음흉하게 느껴졌던 장소가 알고보니 사랑스러운 곳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P20

2015년 11월, 그 예술가들 중 한 명인 친구 안드레이 로이테르와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책에 썼던 우리 공통의 추억 중 몇 가지를 끄집어냈다. 그가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희망을 품었었는지기억해요? 나는 그 꿈들이 실현되지 못한 것을 그가 애석하게 여기는지 궁금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록 근거 없는 희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어도, 그때 그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후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그림을, 내 모든 존재를 결정지었어요」 우리는 푸틴의 러시아에 만연한 무도함을 개탄했는데, 그는그런 폭력조차 희망 뒤에 온 것이기 때문에 달라요> 하고 말했다. 대화 도중, 희망이란 행복한 유년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 수혜자에게 불가피하게 뒤따를 트라우마를 견딜 힘을 갖춰준다. 그것은 또한 원초적 사랑처럼 경험된다. 이전까지 비교적 비정치적이었던 내 삶은 모스크바에 체류하는 동안 궁지에 몰린 진실성이 갖기 마련인 절박함을 띠게 되었다. 아직 그 절박함을 목적성이라고 불러도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여행이 그때 그 고양감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련 예술가들의 낙천주의는 결국 대체로 허구에지나지 않은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상상된 현실에 관한 감정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진정한 감정이었다. 좌절된 희망, 거기엔 애초 희망이 없던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어떤 고결함이 어려 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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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가 많이 들어올수록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에 따라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같은 방법으로 석유산업을 적극 유인하기를 원했다. 프로이덴버그와 그램링과 달리 혹실드는 시추 사업에 대한 견해가 그렇게 획일적이지만은 않다고 분석했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도시 거주민은 다른의견을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거의 한목소리로 시추 사업에 찬성한 집단은 교육 수준이 낮고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혹실드는 우연히 읽은 기업 컨설팅 보고서에서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하는 석유산업 시설의 부지 선정과 관련하여 바로 이 집단이 지목된 것을 발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부지는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저항성이 가장 낮은 사람의 특징 하나는 작은 소도시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라는 것. 또 하나는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이었다." - P386

더티 워크는 특정 계급에게 불균형하게 배정될 뿐 아니라 특정장소에 집중되어 있다. 교도소는 주로 ‘시골 게토‘에, 정육공장은 외딴 산업 단지에 지어진다. 누구에게나 눈엣가시인 정유공장과 시추선은 캘리포니아주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저항성이 가장낮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들어선다. 더티 워크의 지리는 인종불평등과 계급 불평등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층 강화하기에, 낙인찍힌 산업과 시설은 빈곤한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암 골목‘
이 그런 곳이다. - P392

개인적 안전이란 "안전모를 써! 굴러떨어지지 마!"로 요약된다. 노동자는 훈련 과정에서 이 메시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기가 알아서 사고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릴리언도 잡역부 시절엔 그렇게 생각했다. "시추선에서 일할 때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사고를 우리가 일으킨 거라고 생각했어요."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더티 워커도 똑같은 메시지를 듣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그들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릴리언은 생각을 바꾸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공정 안전process safety‘이라고 믿었다. 공정 안전은 비용 절감, 조업 속도 최대화처럼 시스템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결정이 누적된 결과다. 공정 안전은 릴리언의 표현으로 "창의 뭉툭한 끝에 앉은 고위급 임원들의 결정에서 시작된다. 그 반대편
"창의 날카로운 끝"에서는 일선 노동자가 부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윗사람들을 대신해 더러운 일을 한다. - P399

세라가 시추선 노동자에 대해 한 말은 모든 종류의 더티 워커에게 적용된다. 더티 워크는 그 일을 하는 개인만을 더럽히지않는다.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를 더럽히고, 그가 만나고 교유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도록 흔적을남긴다. 과밀하고 폭력적인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더러운 노동은 교도관만이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사람을 조각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불결한 일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둔감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 P411

폴슨이 이런 상황마다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이익을 지켜낸데에는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이유도 없지 않았으니, 그가소극적이고 자립심이 약한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다른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나아가 윤리와 양심의 문제에 대해서 테크 노동자들이 높은 위상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목소리를 낸 구글 직원은 폴슨만이 아니었다. 기사가 나오고 2주 후, 1000명이 넘는 직원이 공동 서한을 통해 문제의 사업 계획을 비판하고 직원의 사업 결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투명성이, 결정권이, 그리고 분명하고개방적인 과정에 대한 약속이 당장 필요하다."
이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저숙련 직종의 더티 워커와 달리 자신이 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테크 노동자 중에는 ‘네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고 가르치는 일류대학 출신이 많은 데다 회사 측이 직원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은 ‘스마트 크리에이티브한 직원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매주 금요일에 전체 회의를 연다(《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 슈미트와 로젠버그는 "악해지지 말자"는 모토 또한 "직원에게 힘을 부여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드래곤플라이 프로젝트가 도마에 올랐을 때 구글은 직원의 이견을 그리 환영하지 않았다. 이 문제가 제기된 금요일 전체 회의는 실로엉망으로 끝났고, 많은 직원이 사실은 회사가 직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 P426

이 인자는 바로 권력이다. 고프먼이 지적했듯낙인은 관계를 통해 획득된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얼룩지고 에누리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스테레오타입은 사회적 상호작용을통해 창출된다. 그러나 브루스 링크Bruce Link와 조 펠란Jo Phelan의 말대로 스테레오타입의 효력은 전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자 링크와 펠란은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오만하고 냉담한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했다. 환자는 직원의 등 뒤에서 그들을 비웃을 수 있다. 그들을 못 믿을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직원이 낙인찍힌 무리에 속하는 일은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환자에겐 직원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심각한 차별이라는 결과로 실현할 만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묵직한 위력"으로 낙인을 찍는 것은 "교육기관, 직업, 주거, 의료 등 주요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권을 통제할" 힘, 바로 권력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낙인찍히고 정체성이 손상되어 삶의 기회를 상실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권력이 없기때문이다. - P438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금융 붕괴 이후에도 과거와 다름없이 고액의 상여금을 받은 은행가들은 더티 워커는 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낙인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 한 방법은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미덕을 내보이는 행위가 가난한 노동자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설령 누군가 그들의 직업을 탐탁잖아하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태도로 타인의 비판을 훨씬 더 쉽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투자 은행가가 자신이 얼룩지고 에누리당했다는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금융업이 부당하게 규제당하고 비난받게 생겼다며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바로 이것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오만", 즉 일류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 공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 계층의 과도한 자기애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선망받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각각의 소득계층과 각각의 직업 경로로 밀어 넣는다. 샌델이지적한 대로 이 시스템은 일류대학 학위가 없고 근 몇십 년간 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만 있는 노동자계급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깎아내려왔다.  - P439

성공한 능력주의자의 오만은 정당하지 않다고, 왜냐하면 초고학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너무도 흔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유복하게 자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공한 능력주의자가 오만한 이유는 그처럼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마저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본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때문이다. 어떤 노동이 더티 워크가 되려면 ‘선량한 사람들‘, 이른바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더럽다고 여겨 그들 스스로는 절대 하려 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교도소와 정육공장의 노동, 드론 전투원의 노동, 시추선 잡역부의 노동이 그런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사이트 안정성 엔지니어의 노동, 월스트리트 은행가의 노동은 그런 일이 아니다. - P440

과연 그 장면은 콩고가 ‘독립국‘이던 식민지 시대, 그러니까 레오폴 2세가 고무와 상아를 수탈하려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극도의 잔인성과 폭력을 휘둘렀던100여 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 영상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런 "충격적인 일"은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에 은폐되어, 집과 사무실에서 충전용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장비를 쓰는 사람 대다수의 눈에는 보이지않는다. 채찍을 휘두르는 군인과 그 모습을 태연히 지켜보는 공무원은 식민지 시대의 밀사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대신해 더티 워크를 하고 있다. - P452

《베트남의 아킬레우스에서 조너선 셰이는 도덕적 외상을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유화하는 것이라고 썼다. 가령 귀환병에게는 그 사람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기간에 의료노동자는 도덕적 외상의 위험을 무릅쓰긴 했어도 자신의 경험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부채감을 느낀 대중은 존경과 호기심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해리엇 같은더러운 노동자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해리엇은 자신의 경험을 사적으로 대면해야 했고 그로부터 펼쳐진 불안한 기억과 홀로씨름해야 했다. 여기엔 공동체적 대면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보훈의료 센터에서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귀환병이 전장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위배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함께, 소리 높여 귀환병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가 마땅히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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