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가 나를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욕조 마개를 막은 다음 수돗물을 제일 세게 튼다. 욕조 물이 차오르자 흰 욕실이 어딘가 변해서 눈앞을 가린다. 전부 다 보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P23

이제 태양이 기울어서 일렁이는 물결에 우리가 어떻게비치는지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무서워진다. 나는 아까 이집에 도착했을 때처럼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다음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가 나를 끌어당겨 풀밭에 다시 안전하게 올려놓은 다음 혼자 내려간다. 양동이가 옆으로 잠시 떴다가 가라앉아서 꿀꺽꿀꺽 반가운 소리를 내며 물을 삼키더니 수면 밖으로 나와 들어올려진다. - P30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P70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73

달이 다시 나오자 아저씨가 램프를 끄고, 우리는 달빛 속에서 사구를 내려왔던 길을 쉽게 찾아 따라간다. 사구 꼭대기에 도착해서 신발을 신으려 하자 아저씨가 나를 말리며직접 신겨준다. 그런 다음 자기 신발을 신고 끈을 묶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멈춰 서서 바다를 돌아본다.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
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보이니?" 아저씨가 말한다.
"네." 내가 말한다. "저기 보여요."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 P75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P96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뜬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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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향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덥고 환한 날이다.
들판에 군데군데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길을 따라 푸릇한빛이 갑자기 일렁인다. 우리는 아빠가 포티파이브 카드 게임에서 빨간 쇼트혼 암소를 잃었던 실레일리 마을을 통과하고 그걸 딴 사람이 곧장 소를 팔아 치웠던 카뉴 시장을지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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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문명과 현대화와 서구화를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페이리는 내게 말했다. 「그러나 서양이 중국보다 앞서서 새로운 방식에 도달한 것은 근대에 와서였습니다. 그전에는 중국이 더 발전된 문명이었죠.」 중국인들은 서양이 산업화를 서양 고유의것으로 여기는 태도에 진저리를 낸다. 상하이의 기자 보샤오보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공장을 보면 서양 문물이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백 년 전부터 공장이 있었습니다. 서양은 우리 나라에서 화약을 접한 뒤 당장 그것을 가져다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독립혁명이나 제1차 세계 대전을 중국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자동차를 몰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서구식 생활양식이 아닙니다. 그냥 현대적 생활 양식입니다.
서양은 또 수묵화가 아닌 미술은 죄다 자신의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중국 예술가들은 서구에서 발달한 시각 언어를쓴다. 하지만 종이는 원래 아시아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종이에 그린 모든 그림을 아시아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왜 모든 유화는 서구식이라고 불리는가? 왜 서양은 개념 예술, 설치미술, 모더니즘, 추상 미술을 모두 자기 것으로 여기는가? 홍콩의 딜러인 앨리스 킹은 귀화 양식을 현대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중국 그림이라는 게 정확히 뭐죠? 중국에 있는 사람이 그린 그림은 다 중국 그림인가요? 인종적으로 중국인인 사람이 그린 그림은 다 중국 그림인가요? 아니면 양식의 문제인가요? 서양인도 한지와 붓을 써서 그리면 중국 그림인가요? 서양에서는현재 중국 작품들을 곧잘 단순한 모방작으로 폄하한다. 이에 대해 위안밍위안 예술가 마을에 사는 화가 왕인은 말했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우리나라의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서양의 눈에 진부해보이더라도」 - P186

왕도 끄덕였다. 「옌 씨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법대로 하자고 주장함으로써 관행에 계속 불복하는 것입니다. 옌 씨는 강한 개인이라는 이유로 구타당했던 것이고, 역시 개인으로서 그 사건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겁니다. 이기든 지든,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런생각을 알리고 싶습니다. 개인도 항의할 수 있다는 것, 신념을 지킬방도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 나는 쑹쑹의 이발을 떠올렸다. 이제야 그 퍼포먼스가 왜 그렇게 큰 분노를 일으켰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퍼포먼스가 어떤 측면에서 성공이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사소한 사건이 어떤 점에서는 폭탄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은 자신의 위험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한 성공한다. 중화 인민 공화국에서 개인성이라는 개념, 라오 리가 전형으로서 체화하고 있는 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거의 들어보지 못한 생각이다. 그런데 만일 이 개념이 중국의 방대한 인구에게 널리 스민다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결정권을 얻고 싶어 할 것이고, 그것은 중앙 정부의 종말이자 통제의 종말이자 공산주의의 종말일 것이다. 중국의 종말일 것이다. 중국에 운이 따른다면, 휴머니스트들과 절대주의자들의 이 싸움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쪽이 결정적으로 이겨 버리는 것은 비극일 터이기때문이다. 불의는 물론 끔찍하다. 그러나 중국의 종말 역시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덩샤오핑도, 라오 리와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도. - P194

서양미술계는 소련/러시아 미술보다 중국 현대 미술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그 수용은 서양문화사를 재고하는 작업, 즉 유럽 및 미국 문화가 아시아에 수출한 것 못지않게 아시아로부터 배운 것도 많다는 점을 깨닫는 작업과 시기가 맞물렸다. 아시아가 서양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피상적으로는 칠기나 자기를 애호하는 취향에 머물러 있지만, 철학적으로는그보다 더 심오하다. 미니멀리즘과 형식주의는 아시아 사상이다. 일시성을 칭송하는 아시아의 전통 없이 플럭서스Fluxus 운동이 가능했을까? 우리가 현대 아시아 미술을 모더니즘 미술의 표절로폄하하던 것은 이제 그만두었으니, 다음으로는 모더니즘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아시아를 표절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서양화가들이 서예의 붓질에서 약간의 기법을 배운 것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동양의문자 기반 언어에서 배운 최고의 가르침은 은유적 풍성함으로 언어와 시각적 재현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방법이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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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알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요."
댄버스 부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들이댔다. "물론 그렇겠죠. 이제 알았나요? 당신은 절대 그분을 이길 수 없어요. 그분은 아직도 이곳 안주인이에요. 진짜 드윈터 부인은 바로 그분이지요. 그림자이고 유령인 건 그분이 아니라 당신이라고요. 아무도 원치 않아 내쳐진 잊혀져버린 존재가 바로 당신이에요. 자, 그런데도 맨덜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왜 그분께 맨덜리를 맡기고 떠나지 못하지요?"
나는 창문 쪽으로 물러섰다. 다시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댄버스 부인은 내 팔을 붙잡았다.
"왜 가지 않는 거예요? 우린 아무도 당신을 원하지 않아요. 드윈터 씨도 마찬가지죠. 당신을 원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분을잊지 못하니까요. 드윈터 씨는 그분과 함께 이 집에 홀로 있고 싶어 해요. 교회 지하 묘지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은 그분이 아니라당신이에요. 죽어야 할 사람은 드윈터 부인이 아니라 당신이라고요"
댄버스 부인은 창문을 열고 나를 그쪽으로 밀었다. 흰 안개 때문에 형체가 희미해진 테라스가 내려다보였다. "저 아래를 봐요. 정말 쉽지 않겠어요? 어째서 뛰어내리지 않는 거죠? 목이 부러진다 해도 고통은 느끼지 못할 거예요. 아주 빠르고 편한 방법이죠. 물에 빠져 죽는 것과는 달라요. 왜 당장 뛰어내리지 않는 거죠?"
안개가 창밖을 가득 채웠다. 끈적거리고 습한 공기가 내 눈에, 콧구멍 안에 밀려들었다. 나는 두 손으로 창틀을 꼭 잡았다.
"두려워 마세요. 밀어버리지는 않을 테니. 당신 옆에 있지도 않을 거예요. 혼자서도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으니까. 대체 당신이여기 맨덜리에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요?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요. 드윈터 씨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요. 그러니 살아갈 이유가 별로없는거죠? 지금 당장 뛰어내려 끝장을 내버리는 게 어때요? 그러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텐데요."
테라스의 꽃봉오리들이 보였다. 수국이 잔뜩 무리 지어 있었다. 돌바닥은 부드러운 회색이었다. 폭신할 듯했다. - P381

"물론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시끄러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드윈터 씨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잠수부는 보트 주위를 돌다가또 다른 한층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실 문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꽉 잠겨 있고 선창도 닫혀 있더랍니다. 돌을 하나 주워 선창을 깨고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물이 가득 차긴 했어도 안쪽도 멀쩡하더라는군요.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놀라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고 합니다."
설 대령이 말을 멈추고는 누구 엿듣는 사람이 없나 확인하려는듯 등 뒤를 돌아보았다. "선실 바닥에 반듯이 누운 시체가 보였다는 겁니다. 물론 뼈만 남은 시체였지요. 하지만 사람이 틀림없다고합니다. 머리통과 팔다리가 보였다고 하니까요. 그는 바로 물 위로 올라와 제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장 이렇게 달려온 겁니다."
나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다음에는 충격을 받아, 마지막으로는 공포에 휩싸여 그를 응시했다.
"혼자 배를 탔던 게 아닌가요?" 나는 속삭였다. "누군가 함께 있었다는 얘기군요? 아무도 모르게?"
"그런 것 같습니다."" - P408

그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리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레베카가 이겼소"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의 손 아래 있는내 손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우리 사이에는 늘 레베카의 그림자가 있었소. 그놈의 그림자가우리 둘을 갈라놓곤 했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가슴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을 이렇게꼭 껴안아줄 수 있었겠소? 죽기 전에 나를 바라보던 레베카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오. 그 비열한 미소가 또렷하오. 레베카는이미 그때 이런 일을 예상했던 거요. 결국에는 자기가 이긴다는걸 알고 있었소"
"맥심" 내가 속삭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얘길하고 싶은 거예요?"
"그 보트, 그 보트가 발견되었소. 오늘 오후에 잠수부가 찾아냈다는군"
"저도 들었어요. 설 대령이 알려주었죠. 당신은 잠수부가 선실에서 보았다는 그 시체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요."
"결국 레베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뜻이죠. 누군가 함께 바다에나갔던 거예요. 이제부터 그자가 누군지 찾아내야죠. 그럼 되는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소."
"전 당신과 함께예요. 제가 당신을 도울 거예요"
" 레베카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없소. 레베카 혼자였소"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얼굴을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선실 바닥에 있는 시체가 바로 레베카요." - P412

퍼즐조각이 하나씩 맞춰졌다. 레베카가 마침내 장막에서 걸어 나와 살아 있는 인물로 나타났다. 말에게 채찍을 내리치던 레베카 승리감에 도취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발코니에 몸을 기대던 레베카해변에서 깜짝 놀란 표정의 벤과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당신은 친절해. 다른 사람과 달라 날 정신병원에 넣지 않을 거지?"라고했었다. 밤에 그 숲길을 따라 걸어온 다른 사람, 키 크고 늘씬한다른 사람이 있었다. 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맥심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전히 서재를 이리저리 오가면서말이다. "결혼한 지 닷새째 되는 날 결국 그 여자의 정체를 알았소. 몬테카를로의 언덕 위로 올라갔던 때를 기억하오? 거기 다시 서서기억을 되살리고 싶었던 거요. 그 여자는 거기 앉아 깔깔 웃어댔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소.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지.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추악한 얘기였소. 그제야 난 내가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괴물과 결혼한 것인지 알았소. 혈통과 두뇌, 미모라고? 오 맙소사!" - P423

‘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말이야, 맥스, 당신은 물론이고 세상 그누구도 그 애가 당신 자식이 아니란 걸 증명하지 못해. 그 아이는당신 성을 물려받고 여기 맨덜리에서 자라겠지. 당신이 할 수 있는일은 하나도 없어. 당신이 죽고 나면 맨덜리는 그 아이 것이 되지이 역시 당신이 막지 못하는 일이야. 그 아이가 유일한 상속인일테니.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맨덜리를 위해 후계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 아들이 밤나무 아래에서 유모차를 타고 잔디밭에서 목마 놀이를 하는 모습을, 행복의 계곡에서 나비 잡는 모습을당신도 즐겁게 지켜봐야 해. 내 아들이 날이 갈수록 커가는 것, 당신이 죽으면 이 모든 게 그 아이 소유가 되리라는 것은 맥스, 당신인생 최대의 악몽이 아니겠어?‘
그 여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담뱃불을 붙이고 창가로 가서 섰소, 그리고 웃어대기 시작했지. 한참을 그치지 않고 웃었소. 영원히 그렇게 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 ‘오, 하느님, 정말이지 얼마나 기막히게 재미있는지! 자,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 말뜻을 당신도 이해했겠지? 멍청한 주민들, 눈먼 소작인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어? 늘 바라마지않던 일이라고 주인 나리에게 축하 인사를 하겠지. 난 완벽한 어머니가 되는 거야. 이제까지 완벽한 아내였던 것처럼. 그 누구도 진실을 모를 거야. 아니, 추측조차 못 할걸‘
그 여자는 창가에서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았소. 미소 띤 얼굴로 한 손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른 한 손은 담배를 쥐고 있었지.
내가 죽여버렸을 때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소. 총알은 정확히그 몸을 관통했다오. 그 여자는 금방 쓰러지지 않았소.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소......"
이어 맥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 속삭임으로 변했다. 마주 잡은 그의 손이 차디찼다. 나는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옆에 누워 잠자는 재스퍼의 등을, 가끔씩 바닥을 살짝 내리치는 그 꼬리를 쳐다보았다.
"난 생각을 못 했소." 그는 무감각한 목소리로 지친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이 총에 맞으면 그토록 피가 많이 흐른다는 걸 말이오." - P434

"부인께서는 그렇게 진실을 요구했고 전 알려드렸습니다. 어떤환자들에게는 그편이 더 좋은 법이지요. 괜히 복잡하게 말해봤자 좋을 게 없거든요. 댄버스 부인인지 드윈터 부인인지 하여튼 그 부인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분이 아니더군요 여러분도 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인께서는 침착했습니다. 전혀 충격을 받지않더군요. 이미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료비를 내고 나갔지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파일함을 닫고 서류철도 덮었다. "제 진단 소견은 이랬습니다. 그때는 통증이 경미한 수준이었지만 곧 견디기 어렵게 될 것이고 서너 달 후에는 모르핀을 맞아야 한다고요. 이미 수술할 때가 지났으므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모르핀을 맞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였지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벽난로 위의 시계가 째깍거렸고 소년들이 테니스를 쳤다. 하늘에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 P572

"줄리언 대령이 진실을 눈치챈 것 같소?"
나는 내 안경 너머로 맥심을 바라보았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분명 알았을 거요 분명히 맥심이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 해도 절대로 아무 말 안 할 거예요. 절대로"
"그야 그렇겠지"
그는 지배인에게 다시 술을 시켰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에서 말없이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레베카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거요. 마지막 허세였지. 내가 자기를 죽이게 만들고 싶었던 거요. 모든 것을 다 내다보았겠지.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웃어댔던 것이고 죽으면서도 그렇게 웃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야"
나는 침묵했다. 그저 브랜디소다를 마셨을 뿐이다. 이제 다 끝났다. 다 정리가 되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맥심의 얼굴이 또다시 창백해질 일은 없다.
"마지막으로 한 방 먹인 셈이지. 가장 멋진 한 방이었소. 지금도 나는 레베카가 이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오" - P583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하늘을 보았다.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았다. 태양이 떠오르는 듯 붉은 기가 돌았다. 붉은 기는 조금씩 퍼져갔다.
"오로라는 겨울에 보이는 거지요? 지금 같은 여름에는 안 보이지요?"
"저건 오로라가 아니오. 저건 맨덜리요"
나는 흘낏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맥심 맥심, 저게 뭐죠?"
그가 속도를 냈다. 차는 오르막길을 거의 다 올라간 상태였다. 래니언은 이제 발밑에 있었다. 왼쪽에는 가느다란 은빛 강줄기가흘렀다. 9킬로미터 떨어진 케리스로 가면서 점점 더 넓어질 강줄기였다. 이제 맨덜리로 가는 길이 펼쳐졌다. 달이 없었다. 머리 위쪽 하늘은 완전히 깜깜했다. 하지만 지평선은 깜깜하지 않았다. 불꽃처럼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과 함께 불탄 재가 날아왔다. - P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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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매일 이 방들을 살피고 먼지를 턴답니다. 다시 오시고 싶거든 말씀만 하세요. 내선 전화를 거시면 되지요. 언제든 안내하겠습니다. 하녀들은 여기 못 오게 했습니다. 오로지 저만 출입하는곳이지요."
다시금 기분 나쁘게 다정한 말투였다. 얼굴에 머금은 미소는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주인어른이 출타하시고 혼자 외로울 때면 이 방에 와서 앉아 계시고 싶은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정말 아름다운 방이니까요. 이 방을 보면 그분께서그렇게 오래전에 떠나셨다는 걸 전혀 모르겠지요? 잠시 외출했다가 저녁이면 곧 돌아오실 것 같지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 안이 바짝말라 있었다.
"비단 이 방뿐만이 아닙니다. 거실, 홀, 정원 곁방까지 전 여러곳에서 그분을 느낀답니다. 어떤가요, 마님께서도 그렇죠?"
댄버스 부인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어느덧 속삭임에 가깝게 낮아졌다. "때로 이 복도를 따라 걷노라면 그분께서 바로 뒤에서 따라오신다는 기분이 들죠. 그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저는 그 발소리를 확실히 알고 틀림없이 구분해낸답니다. 또 홀 위쪽 발코니에서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개들을 부르던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요. 저녁 식사 하러 계단을 내려가는 그분의 옷자락 소리도 종종 들을 수 있어요"
부인은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잠시 말을 멈추더니 느릿느릿 덧붙였다. "어쩌면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보고 말을 걸고 계신 것은아닐까요? 죽은 사람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와 산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모르겠어요." 내 목소리는 어색했고 이상하게 톤이 높았다. 평소의 내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전 때로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그분께서 맨덜리로 되돌아와 당신과 드윈터 씨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 P265

맥심의 할머니는 간호사가 하는 대로 가만히 참고 있었다. 피곤한 듯 눈을 감았는데 그러니까 훨씬 더 맥심과 비슷했다. 젊었을때의 할머니는 어땠을까? 키 크고 잘생긴 부인이 주머니에 설탕을 넣고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린 채 마구간을 누비는 모습이 그려졌다. 꽉 졸라맨 허리에, 목깃이 높게 달린 옷을 입었겠지. 2시까지마차를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일이었다. 할머니는 벌써 40년 전에 남편을, 그리고 15년 전에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마지막 날까지 간호사와 함께 이 벽돌집에서 살아야 한다. 노인들의 심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 아이들이 어떤 두려움과 희망, 믿음을 가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제까지 아이였으니 기억이 생생한 것이다. 하지만 눈이 먼 채 숄을 두르고 저렇게 앉아 있는 맥심의 할머니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 걸까? 비어트리스가 하품을 하며 연신 시계를 보는 것을 알까? 우리가 그저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찾아온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자, 이걸로 석 달 동안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아도 돼‘라고 혼잣말하리라는 걸 알까?
가끔은 맨덜리를 떠올릴까? 내가 앉는 식당에 앉았던 것을 기억할까? 할머니 역시 밤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셨을까? 모든 것을다 잊어버린 채 그저 조용하고 파리한 얼굴로 소소한 통증과 소소한 불편만 느끼는 것일까? 햇살이 따뜻하면 기뻐하고 바람이 차면 질색하면서? - P282

식당으로 내려가 내 자리에 앉은 채 식탁 맞은편에 앉은 맥심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자리에 레베카가 앉아 생선 포크를 집어드는 모습을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프리스가 들어와 ‘파벨 씨가 전화하셨습니다. 마님‘이라고 전하는 모습을, 이어 레베카가 홀깃 맥심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맥심은 아무 말없이 식사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통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레베카는 미묘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으리라. 처음에는 마지못해 짧게 대꾸하던 맥심은 결국에는 레베카가 유머를 섞어 전하는 하루 일과, 어딜 갔었고 누굴 만났고 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음번 요리를 다 먹을 때쯤이면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미소 지으며 식탁 위로 손을올려 아내의 손을 잡았겠지.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맥심이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먹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그러니까 한 60초가량이 흐르는 동안 나는 레베카와 나를 동일시한나머지 멍청하게도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몸과 마음 모두로 이제는 지나가버린 시절을 경험한 셈이었다.
"생선 요리를 먹는 대신 당신이 얼마나 신기한 행동을 했는지알아요?" 맥심이 말했다. "처음에는 마치 전화벨 소리를 듣는 듯귀를 기울이더군. 이어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나를 흘낏 쳐다봤소.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지. 이 모든 행동이 한순간에 일어난 거요. 가장무도회에서 할 행동을 연습이라도 하는 거요?" 그는 웃으면서 나를 건너보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다면,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과거의 맥심이었고 나는 레베카였음을 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 "마치 범죄자 같은 표정이군. 무슨 일이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요."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 P309

초상화에 나온 드레스는 내 옷과 완전히 똑같았다. 부풀린 소매, 좁은 몸통과 리본,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챙 넓은 모자는 물론이고 구불거리며 얼굴 위로 늘어진 머리카락까지도 똑같았다. 그렇게 흥분된 것은, 또 그렇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손짓을 한 뒤 손가락을 입에대어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발코니를 건너 내 쪽으로 왔다.
"북을 좀 쳐주세요. 그리고 ‘캐럴라인 드윈터이십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주세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거든요."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뺨이 달아올랐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얼마나 유치한, 하지만 유쾌한 한바탕 놀이인가! 아직도 몸을 웅크리고 복도에 숨어 있는 클래리스에게 나는 미소를 보냈다. 다음 순간 북소리가 홀에 울렸다. 그소리를 기다리던 나조차도 순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캐럴라인 드윈터이십니다!" 북 치는 악사가 외쳤다.
나는 계단 앞쪽으로 걸어 나가 그림 속 소녀처럼 모자를 손에들고 서서 미소 지었다.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박수 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 P329

모든 면에서 올았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던진 말,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라는 그 말은 밴호퍼 부인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이성적이고 진실한 말이었다. 맥심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나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신혼여행도 이곳 맨덜리에서의 생활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다.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남자고 나는 그의 어린 아내이고 그리고 그는 외로웠다는 사실뿐이다. 그는 내게 조금도 속해 있지 않다. 온전히 레베카의 것이다. 아직도 레베카 생각을 한다. 레베카가 있으므로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댄버스 부인 말대로 레베카는 아직도 이 집 안에 있다. 서쪽의 침실에, 서재에, 거실에, 홀 위쪽 발코니에 정원 곁방에도 아직 레베카의 비옷이 걸려 있지 않은가. 정원에, 숲에, 해변의 돌집에도 레베카의 발소리가 복도를울리고 그 향수 냄새가 계단에 어려 있다. 하인들은 여전히 그 명령에 복종하고 우리는 레베카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는다. 레베카가 좋아했던 꽃들이 방에 놓인다. 그 침실 옷장에 걸린 옷들, 화장대 위의 머리빗, 의자 아래의 슬리퍼, 침대 위의 가운...... 레베카는 아직도 맨덜리의 안주인이다. 여전히 드윈터 부인이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것이 다 보존되어 있는 이곳을 비틀거리며 헤매는 불쌍한 바보에 불과하다. 맥심의 할머나는 울부짖었지. ‘레베카는 어디 있는 게야? 레베카를 보고 싶어. 레베카를 대체 어떻게 한 게야?‘ 할머니는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니까 난 맥심에게도, 맨덜리에도 속해 있지 않으니까 처음 만났을때 비어트리스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직설적으로 말했지. ‘당신은 레베카와 너무도 다르군‘ 늘 예의 바른 프랭크는 내가 레베카 이야기를 꺼내자 당황했고 내 질문들을 싫어했어. 그리고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지. 그렇습니다. 제 평생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라고.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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