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보다 좀 더 연배가 높은 윗세대의 진보적 백인 예술가들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서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 평등한 사회를이루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다. 그들은 가령 나딘 고디머, 아톨 퓌하르트, J. M. 쿠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남아공 작가들에 준하는 남아공 예술가들이었지만, 작가들과는 달리 이들은 노벨 평화상이든 다른 어떤 상이든 후보로 오르거나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해외에서는 비교적 무명이었다. 그들의 영웅주의는 지금도 활발하게 토론되는 주제이고, 그들이 생산한 작품의 질도 마찬가지다. 시각 예술은 늘 글보다 간접적인데, 이 사실이 예술가들에게 자유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편 그들이 천명하는 이상을 살짝 흐려 보이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파르트헤이트가 해체된것은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으나, 진보적 백인 예술가들도 분명 깊은 인류애와 도덕적 정의감으로 잔인한 나라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요즘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체제를 짐짓 경멸하고는 그 경멸을 마케팅한 위선자들이라는 이유로종종 비난받는다. 남아공 백인들은 진보주의자라는 딱지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 못지않게 당혹해한다. 백인의 진보주의란 어쩐지 의무감에서 나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의무감이란 예술의 대립항이기 때문이다. - P216
지난 1980년대, 해외로 쫓겨난 ANC 멤버들이 기획하고 유엔이힘을 실어 주었던 문화적 보이콧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겉보기정통성을 훼손하는 데 기여했다. 보이콧에 따라, 외국 예술가나 운동선수나 학자는 남아공에 가지 말 것을 요청받았다. 거꾸로 남아공인들은 해외 전시회나 대회에 참가하지 말 것을 요청받았다. 이런 문화적 보이콧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몰락을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물론 그로 인한 고립이 남아공 흑백 예술가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뜻밖의 희망은 있었다. 보이콧이없었더라도 어차피 흑인 예술가들은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대체로단절되어 있었을 것이다. 반면 백인 예술가들은 보이콧이 없었다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보이콧 때문에 이제 그것은 아주 부유해서 제 돈으로 여행 다닐 수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꿈꿀 수 없는 가능성이었다. 메릴린 마틴은 내게 <문화적 보이콧은 미국과 유럽에 이어져 있던 탯줄을 자르도록 도와주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오늘날 남아공 예술계의 독립성과 생명력은 그 고립이낳은 직접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윗세대의 선도적 예술가 중 하나인 수 윌리엄슨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문화적 보이콧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자해를 행한 셈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결국 남아공인이라는 정체성을 제고하는, 뜻밖의 긍정적 영향도 낳았습니다.」 - P217
제인 알렉산더는 추방자 혹은 부랑자인 흑인 남자들의 모형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다. 석회로 모형을 뜬 뒤 넝마를 입힌 작품들은 으스스하고, 쓸쓸하고 매혹적으로 인간적이다. 그녀는 내게 애석하기는 해도 슬프지는 않다는 듯한 느낌으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남아공에는 나 같은 작가들을 위한 자리는 없을 거예요. 모두가흑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상, 낙원처럼 보이는 세상을 원하죠. 흑인 예술가들은 소련 예술가들이 레닌을 묘사했던 방식으로자신들의 지도자를 묘사하고 있고, 백인 예술가들은 기회 균등 조치에 따라 뒷전으로 물러나야 할 겁니다. 예전에 잠깐 유색인 학교에서 가르쳤던 적이 있어요. 그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도 한 이유였죠. 그런데 어느 날 유색인 교사가 와서 내 자리를 원한다고 말했고, 나는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십 년 후에는 내 작품들이 창고에 처박혀 있을 거예요. 당신이 볼 때는 투쟁에 공감하는 듯한 작품들이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현재의 정치 상황, 타협의 정신, 백인들이 들이는 노력, 변화의 추동력에 관해서 말했다. 그녀는 조용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많은 백인들이 불평등을 최대한 빨리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일을 한시바삐 끝내고 싶기 때문이에요」 - P221
이런 환경에서 백인들의 역할은 좀 곤란한 데가 있다. 요하네스버그 예술 재단을 운영하는 백인 관장 스티븐 섹은 이렇게 말했다.「두 단계 과정입니다. 식민주의자들이 파괴하고, 후원자들이 재건을 돕죠 요즘은 흑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 유행이 되었어요. 마치 백인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흑인들의 작품에 진정성이 더 있었던 것처럼. 최근에 몇몇 흑인 학생들이 색채 이론 수업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유화 화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대신 그들에게 구슬 공예를 가르친다면, 그건 그들의 정체성을회복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는 제자리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궁극의 아파르트헤이트식 조치일까요?」 백인들은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흑인 작가들의 작품을 낮잡아 보면서도 동시에그것을 감상적으로 다룸으로써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 흑백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용어인 타운십 예술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 말에는 분리된 예술, 좀 더 원초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예술이라는 뉘앙스가담겨 있다. 그런데 작가들이 이것보다 더 싫어하는 용어는 과도적예술이라는 표현이다. 언론에서 종종 쓰이는 이 말에는 논리적 수순으로 볼 때 흑인 전통 예술은 결국 백인 예술로 대체될 것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 P224
화가 샘 늘렝게트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 작품을 보고묻습니다. <어떻게 타운십에서 그렇게 행복한 작품을 그립니까?>타운십에 전쟁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음악, 결혼식, 파티도 있습니다. 바로 옆 골목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요. 폭력이 발생하면, 외부인들은 그것만 보죠. 그건 잘못입니다. 나는 현실의 비율을 예술에도 반영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30퍼센트가 폭력이라면 70퍼센트는 즐거운 축제 같죠. 요전 날 아침에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갔다가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분명 현실의 일부이고, 따라서 내 예술에도 반영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원래 가려고 했던 곳으로 외출했습니다. 그렇게 삶의 균형을 맞춥니다.」 - P228
모든 사람들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동등하게 중요하다고단언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고 그 말들이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협화음을 끌어낼 따름이다. 천 개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으면서 개개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취사선택해야만 한다. 새로운 남아공은 열한 가지 언어를 공식 언어로 쓸 것이라는 결정이 발표된 날로부터 일주일 뒤, 노벨상에 두 차례 후보로 올랐던 인권 운동가 헬렌 수즈만을 만났다. 수즈만은 내게 <통역 과정에서 얼마나많은 것이 사라질지 생각하면 끔찍해요>라고 말했다. 다양성 인정이 아무리 시급한 과제이더라도, 중앙 정부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모종의 통일성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 P236
내가 저녁 식사에서 나눴던 대화는 메트가 고궁박물원의 중국미술 작품들을 빌려서 뉴욕에서 열 전시회 이야기였다. 전시는 예정일이 채 두 달도 안 남은 상태였다. 그 전시는 양측이 5년 넘게벌여 온 신중한 협상의 결실이었고, 양국 간 최고 수준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협력을 뜻하는 작업이었다. 전시는 원래 섬세한 국제 외교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 전시는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미국이 한편으로는 중국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인권 유린을 가볍게 꾸짖는 이 시점에, 또한 중국이 꼭 자기 나라에서 이탈한 지방의 한 성처럼 여기는 타이완을 무력으로 통합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이 시점에, 이 전시는 타이완의 존재감과 차츰 커져 가는 자결의 의지를 미국 관람객들에게 상기시킬 것이었다. 1996년 3월 19일 화요일로 예정된 개막일은 타이완에서 첫 대통령 자유선거가 치러질 날로부터 겨우나흘 전이고, 타이완이 그처럼 자유를 과시하는 데 대해 본토는 벌써부터 귀가 먹을 듯 시끄럽게 칼을 덜그럭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전시는 서양에서 열린 중국 미술 전시들 중 역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었다. 중국 미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 주는 작품들이 소개될 것이었다. 그 역사를 대여해 주는 것이 중국이 아니라타이완인 것은 1949년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달아나면서 최고로귀한 유물, 회화, 서예, 도자기, 옥, 청동 작품들을 싹 쓸어 갔던 사정 때문이다. 중국은 그 작품들을 도난당한 것으로 여기고, 응당 베이징으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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