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구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
방에 있는 코끼리를 상상해보라. 이 코끼리는 우화에 나오는 체중 측정 대상이 아니라, 실제 몸무게가 알려진 포유동물이다. 방이 그것을 수용할 만큼 충분히 넓다고 상상하라. 이를테면 학교 체육관이라고 하자. 이제 생쥐가 허둥지둥 들어온다고 상상하라. 그 옆에서 유럽울새가 깡충깡충 뛴다. 대들보에는 올빼미가 앉아 있다. 천장에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방울뱀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거미가 한구석에 거미줄을 쳐놓고 있다. 모기가 허공을 가르며 윙윙거린다. 화분에 심은 해바라기 위에 뒤영벌이 앉아 있다. 마지막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는 가상의 공간 한가운데에 인간을 추가하라. 그녀를 리베카라고 부르자. 그녀는 시력이 좋고 호기심이 많으며 (다행히도) 동물을 좋아한다. 그녀가어쩌다 이런 난장판에 빠졌는지 걱정하지 마라. 이 모든 동물들이 체육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신경 쓰지 마라. 그 대신 리베카와 이 상상속의 나머지 동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지 생각해보라. - P16
감각 거품을 의미하는 멋진 단어인 환경세계Umwelt가 있다. 이것은1909년 발트해 연안 독일의 동물학자 야콥 폰 웍스퀼Jakob von Uexkill이 정의하고 대중화한 개념이다.‘ 환경세계는 ‘환경‘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에서 유래했지만, 웍스퀼은 그것을 단순히 동물의 주변 환경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환경세계는 특히 동물이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의 일부인 지각적 세계 perceptual world를 의미한다. 방금 언급한 ‘상상의 방‘의 거주자들처럼, 수많은 생물이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환경세계를 가질 수 있다. 포유류의 피를탐하는 진드기는 동물의 체온, 털의 감촉, 피부에서 방출되는 부티르산냄새에 관심을 갖는다. 이 세 가지가 진드기의 환경세계를 구성한다. 진드기의 입장에서 볼 때 푸른 나무, 붉은 장미,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등은멋진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드기가 그것들을 고의로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을 감지할 수 없고,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웍스퀼은 동물의 몸을 집에 비유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집마다 정원으로 열리는 창문이 여러 개 있다. 빛의 창문, 소리의 창문, 냄새의 창문, 맛의 창문, 수많은 촉감의 창문이 있다. 이 창문들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집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달라진다. 정원은 결코 ‘더 큰 세계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정원은 집에 속한 유일한 세계-환경세계-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정원은 집의 거주자들에게 나타나는 정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P19
감각은 세상의 혼돈을 우리가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각과 경험으로 변환한다. 그것은 생물학으로 하여금 물리학을 길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자극을 정보로 바꾼다. 그것은 무작위성에서 관련성을 끄집어내고, 잡다함에서 의미를 엮어낸다. 그것은 동물을 주변 환경과 연결한다. 그리고 그것은 표현, 표시, 제스처, 호출, 전류를 통해 동물들을 서로 연결한다. 감각은 동물의 삶을 구속함으로써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종의 미래‘와 ‘그에 앞선 진화적 가능성‘을 정의한다. - P23
그건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Thomas Nagel은 1974년 자신의 고전적 에세이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에서 다른 동물들도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의식적 경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박쥐는 음파 탐지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데, 이는 대다수의 인간에게 결여된 감각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주관적으로 같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팔에 갈퀴가 있거나 입안에 곤충이 들어 있는장면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당신은 여전히 ‘박쥐로서의 나‘에 대한 정신적 캐리커처를 창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박쥐의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다"라고 네이글은 말했다. "하지만 이것을 상상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인 나에게 주어진 마음의 자원은 박쥐의 기분을 상상하는데 불충분하다." - P27
인간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호흡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개는 모든 구성요소를 더 많이 - 더욱 광범위한 후각상피, 그 상피에 존재하는 수십배 많은 뉴런, 거의 두 배 많은 종류의 후각수용체, 상대적으로 더 큰 후각망울 -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하드웨어는 별도의 구획에 포장되어 있는 반면, 우리의 하드웨어는 코를 통해 공기의 주요 흐름에 노출된다.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 코에서 방향제가 제거되어, 명멸하는 불빛처럼 불안정한 냄새를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는 일단 코에 들어간 방향제가 코 안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고,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보충되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인 냄새를 경험한다. 콧구멍의 모양이 이 효과를 더해준다.‘ 만약 개가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면, 당신은 녀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지표면의 방향제들이 코에서 멀리 날아가 버릴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에 개의 코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면, ‘전면을 향한 콧구멍‘이 점점 더 가늘어져 ‘측면을 향한 슬릿‘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확인하기 바란다. 이는 개가 쿵쿵거리면서 숨을 내쉴 때 슬릿을 통해 빠져나온 공기가 와류를 만듦으로써 코에 신선한 방향제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숨을 내쉴 때도 개는 여전히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한 실험에서, 영국산 포인터(이상하게도 ‘사탄 선생님‘이라는 이름을가지고 있었다)는 실험 기간 동안 서른 번의 숨을 내쉬었음에도 불구하고 40초 동안 끊이지 않는 내향성 기류를 생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 P39
항상 직진하는 빛과 달리, 냄새는 확산되고 스며들고 넘치고 소용돌이친다. "핀이 새로운 공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것을 관찰할 때마다. 나는 나의 시각이 제공하는 명확한 경계를 무시하려고 노력해요. 대신 뚜렷한 경계가 없는 희미하게 빛나는 환경‘을 상상하곤 해요"라고 호로비츠는 말한다. "초점 영역이 존재하지만, 뭐랄까 모든 영역이 서로스며든다고 할 수 있죠." 냄새는 어둠을 통과하고, 모퉁이를 돌고, 그 밖의 악조건(시야를 방해하는 조건)에서도 이동한다. 호로비츠는 내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는 가방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핀은 냄새를 맡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샌드위치에서 표류하는 분자를 포착할 수 있다. 냄새는빛과 달리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며 역사를 드러낼 수 있다. 호로비츠의 방에 있던 과거 거주자들은 유령 같은 시각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방 안에는 핀이 탐지할 수 있는 화학적 각인이 남아 있다. 냄새는 원천보다 먼저 도착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할 수도 있다. 먼 곳의 비에서 발산되는 냄새는 사람들에게 폭풍우의 진행에 대한 단서를제공할 수 있다. 집에 도착한 주인이 방출하는 방향제는 반려견으로 하여금 문으로 달려가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들은 때때로 초감각적이라고 묘사되지만, 따지고 보면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다. 사물이 눈에 나타나기 전에 코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핀이 코를 킁킁거릴때, 녀석은 현재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과거를 읽고 미래를 점치고 있는것이다. 여기에 더해 녀석은 전기를 읽고 있다. 동물들은 화학물질자루를 누출시켜, 엄청난 방향제 구름으로 공기를 가득 채운다." 어떤좋은 의도적으로 냄새를 방출함으로써 메시지를 보내는 반면, 우리 모두는 무심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위치, 정체성, 건강, 최근의식단을 올바른 코를 가진 생물들에게 털어놓는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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