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 탄화수소 cuticular hydrocarbon로 알려진 이것은 신분증 역할을 한다. 개미들은 그것을 사용해 종(다른 종의 개미), 소속(다른 둥지의 개미), 신분(여왕개미)을 식별한다. 또한 여왕개미는 이 물질을 사용해 일개미들의 번식을 막거나, 제멋대로인 백성을 처벌하도록 표시한다.
페로몬은 개미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개미들로 하여금다른 적절한 감각 신호를 무시하고 엽기적이고 해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붉은개미는 청띠신선나비 blue butterfly의 애벌레를 돌보는데, 이들은 개미의 애벌레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그들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 군대개미는 페로몬 흔적을 따라가는 데 전념하기 때문에 그 경로가 실수로 무한히 반복될 경우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탈진해 죽을 때까지 끝없는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을 돌게 된다. 많은 개미들은 죽은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 페로몬을 사용한다.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E.O. Wilson 이 살아 있는 개미의 몸에 올레산oleic acid을 발랐을때, 그들의 자매들은 그들을 시체로 취급하고 개미집의 쓰레기 더미로옮겼다. 개미가 살아 있거나 발을 까딱까딱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체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개미의 세계는 소란스럽고, 페로몬이 앞뒤로 오가는 시끄러운 세계다"라고 윌슨은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 작고 불그스름한 생명체들이 허둥지둥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엄청난 양의 활동, 조정, 의사소통이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모두 페로몬을 기반으로 한다. 이 ‘냄새 나는 물질‘은 개미들로 하여금 개체성의 한계를 초월해 초개체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개체들의 멋모르는 행동으로부터 복잡하고 초월적인 행동을 만들어낸다. 페로몬 때문에 군대개미는 ‘막을 수 없는 포식자‘로 행동하고, 아르헨티나개미는 수 킬로미터에 걸쳐 초군집 supercolony을 형성하고, 가위개미는 균류를 재배함으로써 자신만의 농경을 영위한다. 개미의 문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이며, "개미 연구자 파트리치아 데토레Patrizia d‘Ettore가 쓴 것처럼 "그들의 천재성은 확실히 더듬이에있다." - P57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걷다가 다른 코끼리 냄새가 나는 퇴적물과 마주칠 때, 그들은 정체성 외에 무슨 정보를 얻을까? 그들은 선행자들의 감정 상태를 알아낼까? 선행자들의 스트레스를 감지하거나 질병을 진단할 수 있을까? 그들이 처한 더욱 광범위한 환경은 어떨까? 전후의 앙골라로 돌아온 코끼리들은 여전히 땅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 개의 지뢰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이 TNT 탐지 훈련을 얼마나 빨리 받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가뭄이 들 때 우물을 파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암보셀리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조지 위트마이어 George Wittemyer는 그들이 지하수 냄새를 이용해 그렇게 한다고 확신한다. 그는 또한 코끼리들이 멀리 떨어진 토양에 빗방울이 튀면서 나는 흙냄새를 탐지함으로써 다가오는 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상쾌해져요." 그가 나에게 말한다. "나는 흥에 겨워 활력이 넘치게 되는데, 코끼리들도 아마 그럴 거예요."
라스무센은 한때 코끼리가 "풍경, 지형, 오솔길, 광물과 소금, 물웅덩이, 비나 홍수의 냄새, 계절을 나타내는 나무 냄새에 대한 화학적 기억"을 긴 이동의 안내자로 삼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껏 검증되지 않았지만 설득력이 있다. 요컨대 개, 인간, 개미는 모두 냄새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연어는 모천의 독특한 냄새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갈 수 있다. 채찍거미 whip spider는 앞다리 끝에 있는 ‘매우 길고 실처럼 생긴 냄새 센서‘를 사용해 열대우림의 혼란 속에서 피난처로 돌아간다." 북극곰은 발에 있는 분비샘이 매 걸음마다 냄새를 남기기 때문에, 수천 킬로미터의 불분명한 얼음을 가로질러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매우 일반적이어서" 일부 과학자들은 동물의 후각의 주요 목적이 ‘화학물질 탐지‘가 아니라 ‘세상에서 길 찾기‘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코를 사용하면 풍경을 후각풍경adorscapes으로 지도화할 수 있고, 향기로운 랜드마크는 먹이와 피난처로 가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 P65

 바다의 플랑크톤은 크릴새우를 닮은 동물성 플랑크톤~에게 잡아먹힐 때 DMS를 방출하고, 크릴은 고래, 물고기, 바닷새의 먹이가 된다. DMS는 물에 쉽게 용해되지 않으며 결국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만약 대기 중의 농도가 충분히 상승하면, DMS는 구름의 씨앗(음결핵)이 된다. 만약 DMS가 선원의 코에 들어가면, 네빗이 "굴과 매우 흡사하다" 또는 "해초 같다"라고 묘사한 냄새를 유발한다. 그게 바로 바다의 향기다.
특히 DMS는 풍요로운 바다의 향기로, 거대한 ‘식물성 플랑크톤 떼‘가 똑같이 거대한 ‘크릴 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증거다. 베이츠와 대화하는 동안, 네빗은 자신이 상상했던 화학물질이 바로 DMS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물이 먹잇감으로 넘쳐나고 있음을 바닷새들에게 알리는 후각적인 ‘저녁 식사 종‘이었던 것이다.  - P70

매번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혀의 양끝은 마지막 부분에서 벌어지고 중간 지점에서 달라붙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동작은 두 개의 도넛 모양의 ‘공기 고리‘를 만들고, 고리 속의 공기는 연속적으로 움직이며 뱀의 좌우에서 방향제를 끌어들인다. 그건 마치 양쪽에서 일시적으로 커다란 부채를 휘저음으로써, 분산된 냄새 분자를 빨아들여 혀끝에 집중시키는 것과 같다. 그리고 냄새가 좌우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설사 두 갈래 혀가 공중에서 날름거리더라도 여전히 방향감각을 제공한다. - P77

그러나 메기를 연구하는 생리학자인 존 카프리오 John Caprio의 생각은다르다. 그는 냄새와 맛의 차이만큼 명확한 건 없다고 말한다. 맛은 반사적이고 선천적인 반면, 냄새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쓴 물질을 거부하는데, 그러한 반응을 무시하고 맥주, 커피, 다크초콜릿을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기각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냄새는 경험과 관련되기 전에는 의미를 지니지 않아요"라고 카프리오는 말한다.
인간의 유아는 철이 들 때까지 땀이나 대변 냄새를 역겨워하지 않는다. 성인들은 후각적인 호불호가 너무 다양해서‘ 미국 육군이 군중을 통제할 목적으로 악취탄을 개발하려고 했을 때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역겨워하는 냄새‘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생태적 반응을 촉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성 페로몬조차도 경험을 통해 빚어낼 수 있는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
그렇다면 맛은 비교적 단순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냄새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특성을 지닌 분자들의 사실상 무한한 선택을 포함한다. 신경계는 조합된 코드를 통해 그 특성을 나타내는데, 그 코드가 워낙 교묘해서 과학자들은 손도 대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맛은 인간의 경우 다섯 가지 기본 특성-짠맛, 단맛, 쓴맛, 신맛, 우마미(감칠맛)으로 요약되며, 다른 동물의 경우에는 소수의 수용체를 통해 탐지되는 몇 가지 맛이 추가될 수 있다. 냄새는 복잡한 용도 - 먼바다건너기, 먹이 찾기, 무리 또는 군집 조정하기- 로 사용될 수 있지만,맛은 거의 항상 먹이에 대한 이진법적 결정―그렇다/아니다, 좋다/나쁘다, 삼킨다/뱉는다 - 을 내리는 데 사용된다.
- P80

당분 등의 고전적인 맛을 이토록 감지하지 못하는 현상은 놀랍게도일반적이며, 동물의 식단에 따라 다르다. 고양이, 점박이하이에나, 그리고 고기만 먹는 다른 많은 포유동물들은 단맛을 감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피만 먹는 흡혈박쥐도 단맛과 우마미에 대한 미각을 잃었다! 판다는 대나무만 먹기 때문에 우마미를 감지할 필요가 없지만, 입안에무수히 많이 존재할 수 있는 독소를 경고하기 위해 ‘쓴맛 감지 유전자군‘을 확장했다. 다른 초식동물들도 코알라와 마찬가지로 쓴맛 탐지기를 더 많이 얻었지만, 바다사자와 돌고래를 포함해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포유류는 대부분의 쓴맛 탐지기를 잃었다.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동물의 미각적 환경세계gustatory Umwelt는 가장 자주 접하는 먹이를 이해하기 위해 확장 및 축소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이 때때로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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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부족들이 원래 살던 지역인 ‘고향homeland‘은 표면적으로는흑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는 ‘자치구‘였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남아공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흑인이지만, 이 자치구에 할당된 면적은 국토의 13퍼센트에 불과했다.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두막에서 살았다.
남아공에서 백인들이 사는 땅은 싱싱하고 물이 풍부한 녹지였지만, 흑인들의 땅은 과밀화됐으며 토양은 메마르고 황폐했다. 도시에서 보내오는 변변찮은 돈과 농사일을 통해 이곳의 가족들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았다. 엄마의 고모는 엄마를 불쌍히 여겨서 거둔 게 아니었다. 엄마는 일하러 왔을 뿐이었다. "나는 소나 다를 바가 없었지." 엄마는 후에 그렇게 말했다. - P101

엄마는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다는 듯나를 키웠다. 되돌아보면 엄마는 나를 백인 아이처럼 키운 것 같다. 백인 문화에 따라 키웠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했고, 내가 나 자신을 변호해야 하고, 내 의사와 결정이 중요하다는생각을 심어 줬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꿈을 좇으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꿈꿀 수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자신의 출신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된다. 소웨토에서 자랄 때 우리의 꿈은 집에 방 한 칸을 더 늘리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진입로도. 또 언젠가는 진입로 끝에 철제 대문을 세울 수 있길 바랐다.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의 최상층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선다. 엄마는 그 가능성을 내게 보여 주었다. 내가 엄마의 삶에서 항상 놀라워했던 점은, 누구도 그녀에게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다. 엄마 홀로 해냈다. 엄마는 순전히 의지의 힘만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 P114

이웃들과 친척들은 성가실 정도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 빈민가를 떠날 수도 없는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 주려고 해?"
그럼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말이죠, 설령 이 아이가 빈민가를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빈민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건 알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 P116

 하지만 나는 다행히 엄마에게서 또 하나의 능력을 물려받았다. 인생의 고통을 잊는 능력 말이다. 과거의 기억들은 트라우마로 이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지만 나는 어떤 정신적 외상도 안고 있지않다. 나는 뭔가 고통스러운 기억이 새로운 도전을 막아서도록 놔두지않았다. 엄마에게 맞았던 기억, 혹은 인생이 당신에게 남긴 체벌을 너무 심각하게 담아 두면 경계를 넘어서고 규칙을 깨지 못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 운 다음, 다음 날 개운하게 일어나서 계속 전진하는 편이 낫다. 몸 곳곳에 든 멍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괜찮다. 얼마 지나고 나면 멍은 사라진다. 그리고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이제 다시 사고를 칠 때가 왔기 때문인 거다. - P140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빠는 대형 앨범을 가져와서 식탁 위에펼쳐 보였다. "난 늘 너를 지켜봐 왔지." 거기엔 내가 해 온 모든 것들이스크랩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언급된 신문 기사들, 클럽 출연진을 다룬 잡지 기사들, 커리어의 시작부터 바로 이번 주까지 내 모든 행적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앨범을 넘기는 동안 헤드라인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트레버 노아가 금주 토요일에 블루스룸에 출연‘ ‘새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로 트레버 노아 낙점‘
온갖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걸 느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지난 10년간의 잃어버렸던 시간이 순식간에 메워지는 듯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게 마치 어제 일 같았다.
오랫동안 나는 너무 많은 의문들 속에서 살아왔다. 아빠가 내 생각을 할까? 내가 뭘 하는지 아빠는 알고 있을까? 나를 자랑스러워할까? 하지만 그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그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해왔다. 비록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아빠는 한순간도 내 아빠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날 아빠 집에서 나온 나는 한 뼘 자라 있었다. 그를 만나니 아빠가 나를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아빠는 자신의 인생에 나를 들이기로 선택했던 거였다. 아빠는 내 편지에 답장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의 바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는다는 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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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구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

방에 있는 코끼리를 상상해보라. 이 코끼리는 우화에 나오는 체중 측정 대상이 아니라, 실제 몸무게가 알려진 포유동물이다. 방이 그것을 수용할 만큼 충분히 넓다고 상상하라. 이를테면 학교 체육관이라고 하자. 이제 생쥐가 허둥지둥 들어온다고 상상하라. 그 옆에서 유럽울새가 깡충깡충 뛴다. 대들보에는 올빼미가 앉아 있다. 천장에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방울뱀이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거미가 한구석에 거미줄을 쳐놓고 있다. 모기가 허공을 가르며 윙윙거린다. 화분에 심은 해바라기 위에 뒤영벌이 앉아 있다. 마지막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는 가상의 공간 한가운데에 인간을 추가하라. 그녀를 리베카라고 부르자. 그녀는 시력이 좋고 호기심이 많으며 (다행히도) 동물을 좋아한다. 그녀가어쩌다 이런 난장판에 빠졌는지 걱정하지 마라. 이 모든 동물들이 체육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신경 쓰지 마라. 그 대신 리베카와 이 상상속의 나머지 동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지 생각해보라. - P16

감각 거품을 의미하는 멋진 단어인 환경세계Umwelt가 있다. 이것은1909년 발트해 연안 독일의 동물학자 야콥 폰 웍스퀼Jakob von Uexkill이 정의하고 대중화한 개념이다.‘ 환경세계는 ‘환경‘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에서 유래했지만, 웍스퀼은 그것을 단순히 동물의 주변 환경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환경세계는 특히 동물이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의 일부인 지각적 세계 perceptual world를 의미한다. 방금 언급한 ‘상상의 방‘의 거주자들처럼, 수많은 생물이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환경세계를 가질 수 있다. 
포유류의 피를탐하는 진드기는 동물의 체온, 털의 감촉, 피부에서 방출되는 부티르산냄새에 관심을 갖는다. 이 세 가지가 진드기의 환경세계를 구성한다. 진드기의 입장에서 볼 때 푸른 나무, 붉은 장미,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등은멋진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드기가 그것들을 고의로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들을 감지할 수 없고,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웍스퀼은 동물의 몸을 집에 비유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집마다 정원으로 열리는 창문이 여러 개 있다. 빛의 창문, 소리의 창문, 냄새의 창문, 맛의 창문, 수많은 촉감의 창문이 있다. 이 창문들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집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달라진다. 정원은 결코 ‘더 큰 세계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정원은 집에 속한 유일한 세계-환경세계-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정원은 집의 거주자들에게 나타나는 정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 P19

감각은 세상의 혼돈을 우리가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각과 경험으로 변환한다. 그것은 생물학으로 하여금 물리학을 길들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자극을 정보로 바꾼다. 그것은 무작위성에서 관련성을 끄집어내고, 잡다함에서 의미를 엮어낸다. 그것은 동물을 주변 환경과 연결한다. 그리고 그것은 표현, 표시, 제스처, 호출, 전류를 통해 동물들을 서로 연결한다.
감각은 동물의 삶을 구속함으로써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종의 미래‘와 ‘그에 앞선 진화적 가능성‘을 정의한다.  - P23

그건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Thomas Nagel은 1974년 자신의 고전적 에세이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에서 다른 동물들도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의식적 경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박쥐는 음파 탐지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데, 이는 대다수의 인간에게 결여된 감각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주관적으로 같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팔에 갈퀴가 있거나 입안에 곤충이 들어 있는장면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당신은 여전히 ‘박쥐로서의 나‘에 대한 정신적 캐리커처를 창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박쥐의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다"라고 네이글은 말했다. "하지만 이것을 상상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인 나에게 주어진 마음의 자원은 박쥐의 기분을 상상하는데 불충분하다." - P27

인간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호흡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개는 모든 구성요소를 더 많이 - 더욱 광범위한 후각상피, 그 상피에 존재하는 수십배 많은 뉴런, 거의 두 배 많은 종류의 후각수용체, 상대적으로 더 큰 후각망울 -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하드웨어는 별도의 구획에 포장되어 있는 반면, 우리의 하드웨어는 코를 통해 공기의 주요 흐름에 노출된다.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 코에서 방향제가 제거되어, 명멸하는 불빛처럼 불안정한 냄새를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는 일단 코에 들어간 방향제가 코 안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고,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보충되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인 냄새를 경험한다.
콧구멍의 모양이 이 효과를 더해준다.‘ 만약 개가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면, 당신은 녀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지표면의 방향제들이 코에서 멀리 날아가 버릴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에 개의 코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면, ‘전면을 향한 콧구멍‘이 점점 더 가늘어져 ‘측면을 향한 슬릿‘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확인하기 바란다. 이는 개가 쿵쿵거리면서 숨을 내쉴 때 슬릿을 통해 빠져나온 공기가 와류를 만듦으로써 코에 신선한 방향제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숨을 내쉴 때도 개는 여전히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한 실험에서, 영국산 포인터(이상하게도 ‘사탄 선생님‘이라는 이름을가지고 있었다)는 실험 기간 동안 서른 번의 숨을 내쉬었음에도 불구하고 40초 동안 끊이지 않는 내향성 기류를 생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 P39

항상 직진하는 빛과 달리, 냄새는 확산되고 스며들고 넘치고 소용돌이친다. "핀이 새로운 공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것을 관찰할 때마다. 나는 나의 시각이 제공하는 명확한 경계를 무시하려고 노력해요. 대신 뚜렷한 경계가 없는 희미하게 빛나는 환경‘을 상상하곤 해요"라고 호로비츠는 말한다. "초점 영역이 존재하지만, 뭐랄까 모든 영역이 서로스며든다고 할 수 있죠." 냄새는 어둠을 통과하고, 모퉁이를 돌고, 그 밖의 악조건(시야를 방해하는 조건)에서도 이동한다. 호로비츠는 내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는 가방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핀은 냄새를 맡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샌드위치에서 표류하는 분자를 포착할 수 있다. 냄새는빛과 달리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며 역사를 드러낼 수 있다. 호로비츠의 방에 있던 과거 거주자들은 유령 같은 시각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방 안에는 핀이 탐지할 수 있는 화학적 각인이 남아 있다. 냄새는 원천보다 먼저 도착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할 수도 있다. 먼 곳의 비에서 발산되는 냄새는 사람들에게 폭풍우의 진행에 대한 단서를제공할 수 있다. 집에 도착한 주인이 방출하는 방향제는 반려견으로 하여금 문으로 달려가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들은 때때로 초감각적이라고 묘사되지만, 따지고 보면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다. 사물이 눈에 나타나기 전에 코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핀이 코를 킁킁거릴때, 녀석은 현재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과거를 읽고 미래를 점치고 있는것이다. 여기에 더해 녀석은 전기를 읽고 있다. 동물들은 화학물질자루를 누출시켜, 엄청난 방향제 구름으로 공기를 가득 채운다." 어떤좋은 의도적으로 냄새를 방출함으로써 메시지를 보내는 반면, 우리 모두는 무심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위치, 정체성, 건강, 최근의식단을 올바른 코를 가진 생물들에게 털어놓는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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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웨토에는 뭔가 신기한 면이 있었다. 비록 우리의 압제자들이만든 감옥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자결권과 통제권이 주어졌다. 소웨토는 우리 것이었다. 그건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염원을 품게 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빈민가를 빠져나오는 게 꿈으로 여겨진다면, 빈민가를 떠날 수 없는 소웨토에서 꿈이란 그 빈민가를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 P65

"이리 와라! 집 안에 악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침대 밖으로 끌어냈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행동해야 할 때였다.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밖에 나가 똥을 볼태우는 거였다. 마법은 그렇게 처리해야 한다. 마법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그 물체를 태우는 것이다. 우리는 마당에 나갔고, 엄마는 내 똥이담긴 신문지를 진입로에 두고 성냥으로 불을 붙여 태웠다. 그리고 임마와 할머니는 불타는 똥 곁에 서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렀다.
소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악마가 주변에 있을 때는 커뮤니티 전체가 함께 악마를 몰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도에 참여하지 않는 집이 있으면, 악마가 우리 집을 떠나 그 집으로 가서 그 가족을 저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 사람 모두가 필요했다. 신호가 울렸다. 소집이 발령됐다. 내 작고 늙은 할머니가 문 밖에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긴급 기도 모임에 참석하라고 다른 할머니들을 불러냈다. "어서 와요! 우리 집이 마법에 당했어요!"
내 똥이 불타는 진입로에 서서, 늙고 가여운 할머니가 겁에 질려비틀거리며 거리를 쏘다니는 걸 보며,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악마의 소행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진상을 도저히 내 입으로 자백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떨어질 체벌은? 하느님 맙소사. 매 앞에서 정직은 절대 최선의 방책일 수 없었다.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잠시 후 적어도 열 명 이상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성경을 옆에 끼고 줄줄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이 꽉찼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도 모임이었고, 우리 집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기도 했다. 모두가 원을 그리고 둘러앉아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기도는 강력했다. 할머니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고 웅얼거리고 말들을 쏟아 냈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손을 뻗어 나를 붙잡고는 원 중앙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트레버, 기도하렴." - P74

언어에는 정체성과 문화뿐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담겨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건 ‘우리는 똑같다‘는 의미를 전한다. 언어에 장벽이 있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의미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들은 이 점을 잘 알았다. 흑인들을분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우리들을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도나눠 놓았다. 반투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직 그들의 언어로만 가르쳤다. 줄루족 아이들은 줄루어로 배웠다. 츠와나족 아이들은 츠와나어로 배웠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부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우리들끼리 싸웠다. 우리들은 서로 다르다고 믿으면서.
언어의 위대한 점은,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우리는 똑같다‘고 설득시키는 데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종 차별은 우리가 피부색에 따라 서로 다르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인종 차별이 멍청한 덕에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인종 차별주의자이고 당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당신처럼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인종 차별적 선입관이 강화될 것이다. 그는 나와 다르고, 나보다 덜 똑똑하다는, 만약 한 뛰어난 과학자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왔는데 영어를 더듬거린다면 사람들은 말할 거다. "어. 나 저 사람 못 믿겠어." - P78

한번은 어느 가게에 들렀는데 우리바로 앞에 서 있던 가게 주인이 경비원을 쳐다보며 아프리칸스어로 말했다. "Volg daat suartes, netnou steel bulle iets(이 흑인들 따라다니면서뭐 훔치지 않는지 잘 살펴봐."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름답고 유창한 아프리칸스어로. "Hoekom volg jy nie daai swartes sodat jy hulle kan help krywaarna bulle soek nie(이 흑인들 좀 따라다니면서 물건 찾는 걸 도와주는건 어때요?"
"Ag.jammer! (아, 죄송합니다!)" 가게 주인이 아프리칸스어로 사과했다. 어처구니없는 부분은 그가 자신의 인종 차별적 행위에 대해서가아니라 단지 우리를 향해‘ 인종 차별을 행한 걸 사과했다는 점이었다.
"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이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인 줄 알았지 뭐요. 당신도 알다시피 흑인들은 훔치는 걸 좋아하니까."
나도 엄마처럼 언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상대방이 쓰는 언어에 맞춰 동시 송출했다고 할까. 그냥 거리를 걷기만 해도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신 어디서 왔소?"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질문받은 언어와 억양을 똑같이 사용해 답했다. 그럼 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였다. "아,
알겠소 난 또 당신이 이방인인 줄 알았지. 됐소이다."
이 방법을 나는 평생 유용한 도구로 써먹었다.  - P87

아파르트헤이트 이전에 정규 교육을 받는 남아공 흑인을 가르친 건 대개사들, 원주민들을 크리스천으로 만들고 서구화시키는 데 열성적인 외국인들이었다. 미션 스쿨에서 흑인들은 영어, 유럽 문학, 의학, 법 등을 배웠다. 넬슨 만델라부터 스티브비코Steve Biko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주요 흑인 리더들이선교사들에게 교육받은 건 우연이 아니다. 배운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혹은 적어도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도록 만들려면 흑인들의 마음을 불구로 만들어야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정부는 ‘반투 학교Bantu schools‘를 세웠다. 반투 학교에서는 과학도, 역사도 인권도 가르치지 않았다. 계량학과 농업을, 감자 개수 세는 법, 도로 포장하는 법, 나무 베는 법, 밭가는 법을 가르쳤다. 정부는 말했다. "미개한 반투들에게 역사나 과학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건 풀을 뜯어 먹을 수도 없는 초원을 구경시키는 것처럼 그릇된 길로 인도할 뿐이다." 그들은 매우 솔직했다. 왜 굳이 노예를 가르쳐야 하나? 오로지 땅만 파는 게 삶의 목적인 사람에게 대체 왜 라틴어를 가르친단 말인가?
미션스쿨도 이 새로운 커리큘럼을 따라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폐쇄되었다. 대부분이 문을 닫는 바람에 흑인 아이들은 다 쓰러져 가는 학교 교실에 빽빽이 모여 이제 겨우글눈을 깨우친 교사에게 수업을 받아야 했다.  - P96

미션스쿨과 반투 학교로 대변되는 남아공의 교육은 우리를 압제하던 두 백인 그룹, 영국인들과 아프리카너들의 차이점을 극명히 보여 준다. 영국식 인종 차별과 아프리카식 인종차별의 차이점은, 적어도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뭔가 갈망할 대상을제공했다는 것이다. 만약 똑바른 영어를 쓰고 제대로 차려 입을 수 있다면, 스스로를 영국식으로 교화시킬 수 있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갈망. 그러나 아프리카너들은 그런 가능성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영국식 인종 차별이 "만약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말하는 원숭이가 있다면, 그건 행여라도 사람일지 몰라"라면,
아프리카식 인종 차별은 "대체 왜 원숭이에게 책을 준단 말이야?"라는 식이었던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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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업가들은 외로운 노년층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한국의 연금 생활자들은 몇 년 전부터 낮에 ‘콜라텍‘(콜라+디스코텍)이라고 부르는 디스코장에 모인다. 일부 콜라텍은 평일에는 1,000명, 주말에는 그 2배의 손님이 온다. 입장료는 겨우 1,000원으로, 젊은 층을 상대로 운영되는 클럽 입장료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 세계적으로 높은 빈곤율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노인들에게 콜라텍은 구명줄 같은 존재다. "온종일 뭘 하겠습니까? 식구들은 일에 바빠요. 기껏 모여서 담배나 피우는 노인정에는 가기 싫고요." 85세의 김사규 씨는 말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씩 춤을 추는 것은 사업 실패나 결혼 실패 또는 외로운일상에서 오는 불안을 마법처럼 가라앉혀주었다. "음악과 파트너만있으면 잡념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역시 85세인 김인길 씨가말한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 때 그동안 저축한 돈을 거의 다 잃었다. 파트너를 스스로 구하기 쑥스러워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도우미들이 나를 새로운 여자한테 데려가서 같이 춤추라고 손을 포개줍니다. 그러면 나는 쉬는 시간에 그 도우미한테 유산균 음료 한 병을 사지요." 김인길 씨는 말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신자 수가 급감하고 직장이 날로 고독한 곳이 되어가고 청년 클럽이 문을 닫고 커뮤니티센터가 폐쇄되면서 갈수록 더 많은 도시인이 혼자 살게 되자, 상업화된 공동체가 21세기의 새로운 대성당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대신 실을 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이브 춤을 춘다. 이 현상은 ‘비촉‘ 생활과 디지털 프라이버시 고치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적극적으로 모색된 길항력이자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는 직접 체험이다. - P328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은 여전한 이 세계에서 기업들이 빈틈을 채우려고 나선 셈이다. ‘외로움 경제 Loneliness Economy‘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외로움 경제는 기술적 형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가들은 20세기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집단 열광 collective effervescence‘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직접 같이하며 느끼는 극도의 흥분 상태)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사그라지지 않는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 P329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다. 돌아보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지역 사업체가 마을 육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가 많았다.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구멍가게가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마을 주민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던 이 상점들은 다음 급여일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흔히 구명줄 같은 존재였다. 19세기 말 이발소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안식처였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그들에게 이발소는 이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이 모여 체스나 도미노 게임을 하고 정치와 지역 문제를 논하는 공동체 공간이기도 했다. 일부 지역 사업장은 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가 1989년 저서 『제3의 장소』에서 언급한 바로 그 ‘제3의 장소‘가 되었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아닌, 하지만 단골들이 만나고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유대를 형성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꽃피는 모임 공간. 올든버그는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집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썼다. 제3의 공간은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장소에서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가장 포용적인 형식으로 연습할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치 독서회에 온 것처럼 아주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한편 이 공간이 계속번창할 수 있도록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고 조정하고 이해하고 논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모두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이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모든 참가자가 그 공간에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공간에 단순히 들고나지만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개인적으로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의 관점에서 기꺼이 관여하고 듣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한 많은 지역 매장이 21세기를 맞아 실존적 위협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 P330

폐점을 앞둔 며칠간 마지막 파이 한 조각을 사려는 충성 고객들이 길 모퉁이를 따라 길게 줄을 섰다. 예전 단골들은 멀리서 상실을슬퍼했다. 2016년 임대료가 좀 덜 부담스러우면서 조용한 생활 터전을 찾아 모하비 사막으로 이사한 킴벌리 시코라는 미션 파이에서 발견했던 공동체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킴벌리는 미션 파이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는다. "혹시 온라인 주문을 받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종업원 임금을 깎는 걸 보게 됐다면 매장 문을 닫는 것보다 훨씬 더 속상했을 거예요" 킴벌리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건 무관심과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한테 지는 거니까요. 미션 파이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요."
문제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는 살아남는 일과 항상 같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션 파이의 폐점은 현실에서 수익과 포용적공동체 정신이 항상 손잡고 갈 수는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요즘의 힘든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 사업자보다 불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오프라인 사업자의 영업세를 조정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친공동체 사업장이라는 새로운 사업 카테고리를 신설해 특정 사업장이 포용성을 갖추고 사회적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해당 사업장에 세제 감면이나 인센티브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우리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P336

여러 공유 주거 기업에서 즐겨 쓰는 콘셉트인 ‘모든 것이 한 지붕아래‘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공유 공간 내에 식료품점, 세탁실, 체력단련장, 바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분리를 유발할 수있다. 거주민이 공유 시설 내에서 장을 보고 시설 내의 바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이 공간 밖의 마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주변의 공동체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고 지역 주민들도그들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공유 주거 기업들의 관점에서도 실패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지역과 진정으로 연결되어야 강한 공동체의식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 오래 머무를 확률이 높아지기때문이다.
의도가 진실하고 구성원의 참여에 진정성이 있다면 민간부문의 공동체는 이 세기의 외로움 위기를 완화하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할수 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의 공동체 공간이 해체되고, 모임 비용이 무료이거나 저렴한 장소를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고, 마을의 중심가가 퇴락해가는 지금, 공동체라는 것이 자칫 특권층만 접근 가능한 것이 될 위험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당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외로움은 오로지 부자만 ‘치료‘할수 있는 질병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이미 금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사적 영역의 공동체가 또 다른 적대적 건축물(타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외로움을 완화하고 사회를 폭넓게 다시 연결하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약속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수가 접근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 P357

보수주의자는 흔히 ‘전통적 가족‘의 붕괴, 교회 예배 참석률 감소, 과도하게 강력한 복지국가에 원인을 돌린다. 복지국가가 개인의 책임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약화시킨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움 위기의 해법을 대개 개인에게서 찾는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위해 더 노력하는 수밖에없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본질적인 이유는정부의 역할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라고 말한다. 그들은 시민을 피해자로 묘사하며, 국가가 할 일에만 강조점을 두곤 한다. 적어도 공동체를 보살피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책임에 관해서라면 상대적으로 개인은 무임승차가 허용된다.
외로움의 추동력이 무엇인가와 관련한 이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멸적이다. 이 두 정치적 관점 모두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지만 둘 다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지도, 이 위기를 해결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앞서 봤듯이,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원인은 국가의 행동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의 감시일 수도 있으며, 긱 이코노미가 될 수도 있고, 날로 늘어가는 비접촉 경험이 될 수도 있다. - P364

더욱이 이러한 외로움의 추동력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다. 당신의 고용주가 응급 상황에 부닥친 연로한 부모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으면, 당신은 부모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들과 함께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임대료가 자꾸 올라 계속 이사를 하느라 이웃을 잘 모르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마을 공동체에기여할 마음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인스타그램의 도파민 쾌감에 중독되었거나 사무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이메일을 확인한다면 가족이나 친구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것이고, 설사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다고 해도 휴대전화 때문에 주의가 산만할 가능성이 크다. 거리에 놓인 유일한 벤치가 도시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것이라면 당신은 거기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노닥거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당신은 자녀의 일요일 풋볼팀에서 코치를 맡겠다고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단일한 힘이 아니다. 외로움은 생태계 안에 머문다. 따라서 외로움 위기를 극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 개인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 - P365

외로움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름을 끼얹은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정치 기획이다. 자기본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할 것을 부추기는 이 자본주의는 무관심을 일상화하고, 이기심을 미덕으로 만들고, 온정과 돌봄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자력갱생"과 "더욱 분투하라"를 외치는 이 자본주의는 공공 서비스와 마을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인류의 번영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하고 우리의 운명이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서사를 영속화했다. 우리가 전에는 외로운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 공동체, 더불어 살기, 친절등의 가치를, 부드럽게 표현하면 주변부로 밀어냈고 심하게 표현하면 말살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그 심장부에 돌봄과 온정이 자리한 정치를 끌어안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등 뒤를 든든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 이러한 정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밖에 없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 P366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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