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외모와 옷차림, 몸놀림 그리고 내가 이룬 것과 남들이 내게 보내는 인정의 눈길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멋지고 영리해져서 남보다 우월한 경탄의 대상이 되리라는 자신감,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상황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엄청난 기대감이 깃들어있었다.
바로 이것이 나를 슬프게 했을까? 당시 나의 가슴을 가득채웠던 생에서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끌어냈던 그 열의와 신념 때문인가? 지금도 나는 가끔 아이들과 십대들의 얼굴에서 그 당시의 나에게서와 똑같은 열의와 신념을 발견한다. 그때마다 나는 나를 돌이켜볼 때 느끼는 것과 똑같이 슬픈 눈길로 그것을 바라본다. 이 슬픔은 단순한 슬픔일까? 이러한 슬픔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기억 속에서 산산이 부서질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일까? 기억 속의 행복은 상황뿐만 아니라 지킬 수없는 약속을 먹고 사는 까닭에? - P44

하지만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전 반 시간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儀式이 되었다. - P49

"어떻게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간단히 가버릴 수 있어!"
나는 아침 식사와 장미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서 그녀를끌어안으려 했다.
"한나......."
"건드리지 마."
그녀는 원피스에 둘렀던 폭이 좁은 가죽 허리띠를 손에 들고있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내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입술이 찢어졌고 피 맛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녀는 허리띠를 다시 한 번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내리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띠를 들고 있던 팔을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휘둥그레진 눈, 크게 벌어진 입, 눈물 때문에 부어오른 눈꺼풀, 뺨과 목의 붉은 반점, 그녀의 입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의 단조로운 신음 소리와 비슷한, 목이 잠긴 듯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선 채 흐르는 눈물 사이로 나를 쳐다보았다. - P62

비행기의 엔진이 고장났다고 해서 그것이 비행의 끝은 아니다. 비행기는 날아가던 돌멩이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미끄러지듯이 날아간다. 초대형 다발 여객기는 착륙 시도 시에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반 시간에서 45분 정도까지는 날아간다. 승객들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엔진이 고장난 상태에서의 비행은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의 비행은 조금 더 조용하다. 아주 조금 더 조용하다. 엔진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것이 몸체와 날개에 와서 부서지는 바람 소리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창문 밖을 내다보면 땅이나 바다가 위협적으로 가까이 와있다. 아니면 기내 영화가 상영되고 있고, 남녀 승무원들은 블라인드를 내려놓은 상태이리라. 승객들은 어쩌면 약간 더 조용해진 비행을 특히 쾌적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해 여름은 우리 사랑의 활공 비행이었다. 아니 오히려 한나에 대한 나의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 P76

그 후 나는 그녀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한나와 나 사이의 비밀을 세상에 알렸거나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침묵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털어놓았어야 하는 것들도 일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부인이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임을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부인을 하는 건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심사숙고하는 건지, 난처함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건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본인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부인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버린다. - P82

그러던 어느 순간 그런 기분이 싹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는 숙제를 하고 배구를 하고 시시덕거리며 장난질하는 수영장의여느 오후와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그때 내가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2.3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허리부분을 끈으로 묶은 앞이 터진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그녀는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돌아보았다. 거리가 멀었기때문에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녀가 왜 수영장을 찾아왔는지, 자신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그녀 쪽에서 나와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내가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우리는 왜 여태껏 한 번도 우연히 만난 적이 없었던 건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등의 의문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나는 일어났다. 일어서느라 그녀에게서 시선을 뗀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알아볼 수 없는 표정의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짧은 반바지와 끈을 동여맨 블라우스 차림의 한나. 그것 역시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들 중 하나이다.
다음 날 그녀는 떠났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고기는 헤엄을 칠 때 유체역학적 후류 물고기가 지나간 후에도 계속 소용돌이치는 물의 흔적를 남긴다. 예민한 수염을 가진 바다표범은 이러한 흔적을 탐지하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능력은 2001년 독일 로스토크에서 활동하는 귀도 덴하르트Guido Dehnhardt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들은 두 마리의 잔점박이물범 헨리와 닉이 소형 잠수함의 수중 경로를 추적할 수 있음을 보였다. 연구팀이 눈을 가리고 헤드폰으로 귀를 막았을 때도 헨리와 닉은 잠수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잠수함을 놓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수염이 스타킹으로 덮여 있을 때였다. 당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유체역학적 감각이 근거리에서만 작동할 거라고 믿었다. 수중 물체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란은너무 빨리 사라져서, 몇 센티미터의 범위를 넘어서면 탐지될 수 없을 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체역학적 후류는 실제로 몇 분 동안지속될 수 있다. 덴하르트의 추정에 따르면, 헤엄치는 청어는 180미터떨어진 곳에서 바다표범이 따라갈 수 있는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 P268

물고기는 측선을 통해 문자 그대로 주변에 흐르는 풍부한 정보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거의 모든 방향으로 몸길이의 한두 배까지 확장되는데, 데이크흐라프는 이를 일컬어 "원거리 촉각"이라고 한다. "인간은 피부 위로 흐르는 강한 수류를 느낄 수 있지만, 물고기가 측선을 통해 획득하는 풍부한 인식에 비하면 어림도 없어요"라고 수십 년동안 이 시스템을 연구해온 셰릴 쿱스sheryl Coombs는 말한다. 우리가 거리를 걸을 때 밝기와 색상의 패턴이 우리의 망막 위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를 지나쳐 흐르는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아마도 물고기는 측선 위로 움직이는 물의 패턴에서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들은 이러한 패턴을 사용해 흐르는 물속에서 방향을잡고, 먹이를 찾고,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고, 서로를 감시할 수 있다. 무리 속의 물고기는 측선을 사용해 가장 가까운 이웃과 속도 및 방향을 일치시킨다." 포식자가 돌진할 때 유입되는 급물살은 포식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개체의 측선을 자극해 멀리 달아나게 한다. 그들의 갑작스러운움직임은 이웃의 측선을 연쇄적으로 자극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공황의 물결이 바깥으로 퍼져나가면, 물고기 떼는 포식자 주위에 매끄럽게 분산된다. 각 물고기는 주변에 있는 소량의 물에만 주의를 기울이지만, 촉각은 모든 물고기를 연결해 조정된 전체로서 행동하게 만든다. 눈먼 물고기일지라도 여전히 무리에 가담할 수 있다. - P273

떠돌이호랑거미는 먹이를 잡기 위해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 그 대신먹이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다리에는 수십만 개의 털이 1제곱밀리미터당 400개의 밀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거의 모든 털은 신경과 연결되어 있으며 접촉에 민감하다. 다리 하나에 있는 털을 몇 개만 건드리면, 거미는 팔다리를 움츠리거나 몸을 돌려 탐색할 것이다. 만약 달리는도중에 털이 물체 예를 들어 호기심 많은 과학자가 길을 가로질러 엮어놓은 철사를 스친다면, 거미는 몸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이다." 구애하는 동안, 수컷은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적절한 방법으로 암컷의 털을 자극할 수 있다.
대부분의 털은 직접적인 접촉에만 반응하지만, 일부는 너무 길고 민감해 바람에 의해 구부러지기도 한다. 이것들을 감각모trichobothria라고하는데, "털trichos"과 "컵bothrium"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새의 모상우나 물고기의 신경소구처럼, 그것은 흐름 센서이지만 유난히 민감하다. 심지어 분속 2.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공기- 미풍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벼운 바람도 그것을 구부러뜨릴 것이다. 현미경으로 털을 관찰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해 있음에도 감지할 수 없는 기류의 영향으로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각각의 다리에 100개의 감각모가 있어, 떠돌이호랑거미는 몸 주위의 기류에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  - P282

하지만 곤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많은 곤충들이 그들만의 기류 센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귀뚜라미wood cricker는 꽁무니에서 튀어나온 미각cercus이라고 불리는 한 쌍의 가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거미의 감각모만큼이나 민감한(어쩌면 더 민감한) 수백 개의 털로 덮여있다. 소위 사상모filiform 라고 불리는 이 털들은 벌의 날갯짓이 생성하는기류를 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제롬 카사스Jerome Casas가 보여준 바와 같이 돌진하는 거미가 만들어내는 극미풍을 탐지할 수 있다.
늑대거미wolf spider는 귀뚜라미의 주요 포식자로, 먹잇감을 향해 달려간다. 불규칙하고 낙엽이 깔린 임상 forest floor에서, 그들은 목표물과 동일한 잎에 머무는 동안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빠르지만, 카사스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귀뚜라미의 사상모에 탐지될 수 있다." 거미가 더 빨리 움직일수록 탐지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거미의 유일한 희망은 귀뚜라미에게 최대한 살금살금 접근하는것이다. 즉 아주 느리게 움직여야만 공기를 흩뜨리지 않고 귀뚜라미에게 근접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최단거리를 돌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의 공격이 성공할 확률은 50분의 1에 불과하다. "귀뚜라미가 거의 항상 이겨요"라고 카사스가 나에게 말한다. "귀뚜라미가 잎에서 뛰어내려 다른 곳에 도착하는 순간 게임은 끝나요.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세계로 이동한 거거든요." - P284

귀뚜라미의 사상모와 거미의 감각모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다. 그것들은 단일 광자 가능한 한 가장 적은 가시광선 양 안에 있는 에너지의 일부에 의해서도 구부러질 수 있다. 이 털들은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시각수용체보다도 100배나 더 민감하다." 실제로 귀뚜라미의 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열잡음 thermalnoise-흔들리는 분자의 운동에너지-과 거의 같다. 달리 말하면, 물리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이러한 털들을 더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을 흥분시키지 않는 이유가 뭘까? 거미가 상상 속의 곤충을 향해 끊임없이 뛰어오르거나, 귀뚜라미가 유령거미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로, 털은 생물학적으로 유의미한 주파수에만 반응한다. 그런 종류의 주파수는 포식자나 먹잇감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지, 환경에 의해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 털의 기저부에 있는 기계수용체는 털 자체보다 덜 민감하므로, 발화하려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닥의 털이 거미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물들은 단일 기계수용체의 흥분된 독창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모든 기계수용체의 합창을 듣는다. - P285

워켄틴은 그 이후로 줄곧 이 행동을 연구해왔다. 다행히도 지금은 ‘긁적거리는 밤샘 작업‘이 줄어들고 적외선 비디오카메라 촬영이 늘어났다. 그녀가 보여주는 최근의 비디오에서, 고양이눈뱀은 청개구리 알 덩어리에 달려들어 몇 개의 알을 덥석 입에 문다. 의기양양하게 한입 베어물려고 할 때, 주변의 배아들이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얼굴에서 (알을 빠르게 분해하는 효소를 방출한다. 그들 중 하나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잠시후 다른 하나가 합류한다. 이윽고 수많은 올챙이들이 재빨리 다이빙하고, 아직도 첫맛을 보지 못한 뱀의 입가에는 젤리 같은 알 껍질만 남아있다. "난 이걸 보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라고 워켄틴은 말한다.
그녀의 실험은, 개구리의 배아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력하지도 않고 어리바리하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배아의 감각 거품은 그들이 갇혀 있는 실제 거품 너머까지 확장된다. 빛은 반투명한 알을 통과할 수 있고, 화학물질은 그 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동이다. 진동은 알과 배아로 전달되며, 배아는 아무런 사전 경험도 없이 ‘유해한 분위기‘와 ‘무해한 분위기‘를 구별할 수 있다. 뱀에게 물리면 부화가 촉진되지만, 비와 바람과 발자국은 그렇지 않았다.
가벼운 지진이 워켄틴의 연못을 흔들었을 때도 배아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워켄틴은 다양한 진동을 녹음해 알 앞에서 재생함으로써, 배아들이 특정한 음높이와 리듬에 맞춰져 있음을 증명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짧은 고주파 진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뱀이 공격하면 주파수가낮아지고 패턴이 복잡해지며, 씹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이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정적을 빗방울 소리로 대체함으로써 더 뱀처럼 느껴지도록 만들면, 올챙이는 더 많은 공포감을 느끼며 부화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들은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세상을 명확히 감지할 수 있고, 그정보를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은 선택의지와 환경세계를 가지고 있다. - P290

예를 들어 공중에 떠다니는 소리는 진행 방향으로 진동하는 파동이다(용수철 형태의 장난감인 슬링키를 앞뒤로 잡아당겼다 놓는 것을 상상하라). 그와대조적으로 표면파는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진동한다(슬링키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을 상상하라)." 표면파는 수면에서 잔물결로 확연히 드러나지만, 단단한 지면에서는 감지하기 어렵다. 만약 당신이 땅에 돌을 던진다면, 미세한 파동이 지면을 따라 잔물결을 이룰 것이다. 만약 어떤 동물이 충분히 민감하다면, 발 아래 땅의 미묘한 들썩거림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많은 동물들은 충분히 민감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스피커의 저음이나 휴대폰의 진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다른 종들이 알고 있는 풍부한 진동풍경vibroscape을 놓치고 있다. 표면 진동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소리와 분리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동물들은 종종 땅과 공기를 동시에 흔듦으로써두 가지를 동시에 생성한다. 게다가 동물들은 종종 동일한 수용체와 기관-예컨대 유모세포와 내이-으로 두 종류의 파동(표면 진동, 소리)을 탐지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공통 어휘를 사용해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진동은 들리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물이 진동을 듣는다"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표면 진동과 소리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감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를 크게 무시한다는 점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연구자들은 신체부위의 온갖 움직임(두드림, 쿵쾅거림, 흔듦, 뜀)을 시각이나 청각 신호로 해석하면서, 그런 움직임이 생성하는 표면파를 무시했다. 모든 빨간눈청개구리는 생후 4일 반부터 감각 세계에 신호를 보내지만,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리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라고 생태학자 페기 힐Peggy Hill은썼다." 그것은 감각생물학자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선입견에 굴복함으로써, 바로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것은 때때로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 P293

전갈의 센서는 발에 자리 잡고 있다. 대충 ‘발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관절에는, 마치 날카로운 칼로 외골격을 후빈 것 같은 여덟 개의 틈새가 모여 있다. 이게 바로 틈새 감각기 slit sensilla로, 모든 거미류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진동 탐지 기관이다. 각 틈새는 막으로 둘러싸이고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있다. 표면파가 전갈에 도달하면 들썩이는 모래가 전갈의 발을 밀어붙인다. 이것은 틈새를 극미하게 압축하지만, 막을 쥐어짜서 신경을 발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외골격에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함으로써, 전갈은 지나가는 먹잇감의 발자국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건이 처음 발생하면, 전갈은 재빨리 사냥 모드로 전환한다. 녀석은 몸을 일으켜 집게를 벌리고, 여덟 개의 발을 거의 완벽한 원형으로 배열한다. 이 자세에서, 전갈은 표면파가 각각의 다리에 부딪친 시점을 비교함으로써 표면파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낼 수 있다. 녀석은 몸을 돌이켜 달리다가 잠시 멈추고 제2의 파동을 기다린다. 잠시 후 파동이 도착하면 다시 몸을 돌이켜 달리며, 제3, 제4의 파동이 계속 도착함에 따라 목표물에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한다. 집게발이 뭔가에 부딪히자마자 전갈은 그것을 움켜잡고 독침을 쏜다. 파동의 진원지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먹이가 땅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다리를 쌌어."
"아, 그렇구나."내가 안심하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엄마 머리를 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이 마구 떨렸다. 당시에 신호등이 어떤색깔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난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치 난생처음 울어 보는 것처럼 눈물이 펑펑 흘렀다. 서럽게 신음하듯 무너져 울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울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울었다. 지금 울고 있는 내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우는 나 자신을 보면 찰싹 등을 때리며 "이건 울 가치도 없는 일이야"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울었다. 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카타르시스도 아니었다. 내 자신이 서러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내 몸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고통이 터져 나오는 거였다. 그 사람은 내 엄마였다. 내 동료였다.
나와 엄마는 늘 함께하며, 같이 세상에 맞서 왔다. 앤드루가 "엄마 머리를 쐈어"라고 했을 때 나는 둘로 쪼개졌다. - P405

"쉬." 엄마가 말했다. "울지 마라, 얘야. 쉬이이. 울지 마."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요. 엄마? 엄만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
"아니, 난 죽지 않았을 거야. 난 죽지 않았어. 괜찮다."
"하지만 전 엄마가 죽은 줄 알았다고요."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를 잃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니지, 얘야, 아가, 울지마, 트레버, 트레버,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라 들어."
"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아가, 넌 좋은 면을 볼 줄 알아야 해."
"뭐라고요? ‘좋은 면‘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엄마, 엄마는 얼굴에 총을 맞았어요. 좋은 면 따위는 없다고요."
"당연히 있다. 이제는 네가 공식적으로 가족 중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되었잖니."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나도 따라 웃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동시에 미친사람처럼 웃음도 났다.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았고, 우리는 늘 그랬던것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엄마와 아들이 중환자실의 고통 속에서 함께 웃고 있었다. 밝고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 P4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병석에 누워 있는 시간은 정말 마법의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바깥세상, 즉 마당이나 정원 또는길거리에서 보내는 자유 시간의 세계는 아주 희미한 소리가 되어 병실로 들어올 뿐이다. 병실 안에는 환자가 읽고 있는 이야기와 형상들의 세계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고열은 주변 세계에 대한 감지력을 떨어뜨리고 상상력을 날카롭게 해 병실을 하나의 새로운,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괴물들은 커튼과 벽지의 문양 속에서 흉측한 얼굴을 내보이고,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서가와 옷장들은 산이나 건물 또는 배가 된다. 그것들은 우뚝 솟아올라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기나긴 밤 시간 내내 환자와 함께 있어주는 것은 교회 시계탑의 종소리와 가끔씩 지나가는자동차들의 부르릉 소리, 사방의 벽과 지붕을 더듬으며 반사되는 전조등 불빛뿐이다. 이때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동경, 회상, 불안, 욕망 등이 미로를 만들어놓는다.
환자는 그 미로에서 끊임없이 길을 잃고 또다시 찾았다가 또다시 잃곤 한다. 이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할 것 없이.
그런데 환자의 병이 나으면 이 모든 것은 끝나고 만다. 하지만 병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된 상태라면, 병실은 외부 세계에대해 방수 처리되고 이제 병이 거의 나아 전혀 열이 나지 않는환자라 하더라도 미로 속에서 헤맨다. - P20

나는 가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에겐 가축과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산책 나갈 때 데리고 가는 개, 데리고 노는 고양이, 사람의 무릎 위에서 몸을 동글게 말고 있다가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게 가르랑거리는 고양이. 이 녀석들은 우리에게 사랑스런 존재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의 먹이를 사러 가고 변기를 치우고 가축병원에 가는 것은 사실 너무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의 인생 자체였으면 정말로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나는 가끔 늘 불평만 늘어놓는 형과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여동생도 차라리 다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엔 그들 모두가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의 어린 여동생. 생각건대 4남매 중에 막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도 뻔뻔스럽지 않고서는 자기주장을 할 수 없었으리라. 나의 형. 우리는 한방을 썼다. 이것은 분명히 나보다는 그에게 참기 힘든 일이었을것이다. 게다가 내가 병이 난 후로는 방을 완전히 내게 넘겨주고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불평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의 아버지. 그에게 우리 자식들이 어떻게 인생이 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자라나 곧 어른이 될것이고 그러면 집에서 나갈 테니 말이다. - P34

"이름이 뭐예요?"
나는 7일인가 8일 째 되는 날에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내 몸 위에서 잠들어 있다가 막 눈을 떴다. 나는 그때까지당신이라든가 너라는 호칭을 피했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이름이 뭐냐고요!"
"그건 왜 알려고 그러니?"
그녀는 나를 의심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당신하고 나는•••••• 나는 당신 성만 알고 이름은 모르잖아요. 난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그게 뭐 잘못되기라도••••••."
그녀는 웃었다.
"아무것도 아냐, 꼬마야. 아무것도 잘못된 거 없어. 내 이름은 한나야."
그녀는 계속해서 웃었다. 그녀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바람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당신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여요."
"반쯤 잠들어 있었거든. 네 이름은 뭐니?"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을 걸로 생각했다. 학교에서쓰는 물건들을 책가방 대신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의 물건들을 부엌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맨 위쪽에, 즉 공책뿐만 아니라 책들 위에 적혀있는 내 이름이 보였다. 나는 늘 배운 대로 책들을 튼튼한 종이로 싸고 거기에 책 제목과 내 이름을 적은 표찰을 붙여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 이름은 미하엘 베르크예요."
"미하엘, 미하엘, 미하엘." 그녀는 내 이름을 음미했다. "내꼬마의 이름은 미하엘이고, 대학생......."
"고등학생이에요."
"고등학생이고, 나이는, 열일곱 살?"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에 활동하기 때문에, 딱정벌레는 야행성 곤충과 달리 멀리 있는 불꽃을 쉽게 감지할 수 없다. 그들은 시각에 의존해 연기기둥을 추적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먼발치에서 연기기둥을 식별할 만큼 예리한 눈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듬이를 이용해 그을린 나무 냄새를 탐지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단서는 바람의 방향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단서는 ‘열‘이다.
모든 물체의 원자와 분자는 끊임없이 진동하며, 이 운동은 전자기 복사detromagnetic radiation를 생성한다. 물체가 뜨거워질수록 분자는 더 빨리 운동하며, 더 높은 주파수에서 더 많은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 방사선은 약간의 가시광선 가열된 금속에서 나오는 빛을 생각해보라-을포함하지만, 대부분은 적외선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우리는 적외선을 볼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벽난로 근처에 서 있으면 불타는 나무에서 적외선이 방사된다. 적외선이 당신에게 도달하면 그 에너지가 흡수되어, 벽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를 가열하고 피부의 온도 센서를 작동시킨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열기를 느끼고, 그게 어디서 오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적외선 조명 아래에 있는 신체부위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반면, 적외선 그림자 속에 있는 부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트릭은 근거리에서만 작동한다. 적외선은 벽난로에서 사방으로 퍼지고, 그중 일부는 이동하는 동안 흡수되기 때문이다. 벽난로에서 멀어질수록 당신에게 도달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어, 마침내 그것이 전달하는 에너지는 더 이상 당신의 몸을 (탐지될 만큼) 가열하지 못한다. 따라서 원거리에서 오는 적외선을 탐지하려면, 광원이 (태양처럼) 극도로 강렬하거나 특수 장비가 있어야 한다. 검정넓적비단벌레속 딱정벌레는후자에 해당한다. - P223

딱정벌레의 몸에는 또 한 가지 비결이 있다. 모든 곤충과 마찬가지로그들의 외부 표면은 화재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매우 잘 흡수한다. 딱정벌레는 불을 효율적으로 쫒도록 전적응 prcadaptation (생물이 현재 처해 있는환경과는 다른 환경에 처하거나 생활양식을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 이미 그것에 적합한형질을 가지고 있어 적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옮긴이)되어 있는셈이므로, 그들의 조상은 몸이 자연적으로 흡수하는 적외선을 감지할수 있는 센서를 개발하기만 하면 되었다. 열한 종의 검정넓적비단벌레가 이렇게 했는데, 매우 성공적이어서 다섯 개 대륙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호주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세 가지 다른유형의 곤충들이 독립적으로 적외선 센서를 진화시켜, 까맣게 그을린 숲의 고요한 낙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불 쫓는 기술은 너무나 유용해서 적어도 네 번-검정넓적비단벌레, 호주의 세 가지 곤충-진화했지만, 불은 동물이 추적하고 싶어 하는 유일한 열원이 아니다. 어떤 종들은 몸의 온기를 추적한다. - P226

소름끼칠 수 있지만, 기생은 자연계에서 가장 흔한 생활방식 중 하나다. 대부분의 동물 종은 다른 생물의 몸을 착취함으로써 생존하는 기생충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임승차자 중 상당수는 숙주를 선택하는데 까다로우며, 올바른 표적을 찾기 위해 약간의 방법이 필요하다. 냄새는 좋은 단서를 제공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수억 년 전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조류와 포유류의 조상은 체온을 생성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독립적으로 진화시켜, 주변 온도와 자신들의 온도를 분리했다. 전문적으로 내온성, 구어체로 온혈성으로 알려진 이 능력은 조류와 포유류에게 속도와 스태미나, 지구력과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 능력 덕분에, 그들은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장기간 및 장거리에 걸쳐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온혈동물은 누군가에게 추적당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즉 그들은 변하지 않는 체온 때문에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 숙주(특히 혈관)를 찾는 기생충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혈액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일반적으로 무균 상태여서, 결론적으로 최고의 식량원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1만 4000종의 동물들 - 빈대, 모기, 체체파리, 참노린재assassin bug이 이것을 먹고 살기 위해 진화했으며, 그들중 상당수가 열에 적응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P228

 환경세계 개념의 창시자인 야콥 폰웍스킬은 진드기가 냄새를 통해 숙주를 추적하고 온도를 사용해 맨살에 내려앉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앤카Ann Carr와 빈센트 살가도Vincent Salgado는 최근 진드기가 최대 4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체온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랍게도 두 사람은 DEET와 시트로넬라 같은 곤충 기피제가 진드기의 후각을 방해하는게 아니라 열 추적을 막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진드기 물림을 예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학자들에게 ‘기존의 많은 진드기 연구를 재평가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진드기의 환경세계에 대한 연구자들의 부정확한 지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과거의 실험들이 잘못 해석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진드기의 열 감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의 탐색용 다리 끝에 있는 기관은 지금껏 냄새 탐지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흡혈박쥐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조들의 기저부에는 작은구형 요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요부는 얇은 시트로 덮여 있고, 시트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전형적인 코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끔찍한 설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방향제가 시트에 가로막혀 기저의 뉴런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외선 센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탁월한 설계다. 멀리 떨어진 숙주의 혈액에서 나온 적외선은 대부분 시트에 의해 차단되지만, 일부는 미세한 구멍을 통과해 그 아래의 요부를 부분적으로 비출 것이다.
요부의 어떤 부분에 적외선이 비치는지 분석함으로써, 진드기는 ‘적외선의 방향‘과 ‘열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 P231

열에 민감한 구멍은 세 그룹의 뱀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이중두 그룹인 비단뱀과 보아뱀은 무독성 보아류constrictor로, 숨을 막히게 하는 휘감기로 먹잇감을 죽인다. 세 번째 그룹은 적절하게 명명된 맹독성의 살무사류pit viper-코튼마우스 cottonmouth, 코퍼헤드 copperhead, 모카신moccasin, 방울뱀-다." 방울뱀은 따뜻한 물체를 공격하고, 죽은 지 오래된 쥐보다 갓 죽은 쥐를 선호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공격한다. 선천적으로 눈이 없는 눈먼 방울뱀조차도 눈 있는 방울뱀만큼이나효율적으로 생쥐를 죽일 수 있다." 구멍 덕분에, 그들은 설치류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머리를 정조준할 수도 있다.
살무사의 열 민감성은 (진드기 다리에 있는 것과 유사한) 구멍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구멍의 모양이 궁금하면, 동그란 어항 바닥에 미니 트램폴린을 놓고 전체를 옆으로 눕힌다고 상상해보라.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공기가 가득 찬 넓은 방이 나오고, 얇은 막이 그 방을 가로막고 있다. 입구를 통과한 적외선이 막에 부딪혀 막을 가열한다. 이런 일이 쉽게 발생하는 것은 막이 구성요소들에 노출된 채 공중에 매달려 있고 이 책한 페이지의 6분의 1만 한 두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막은 미세한 온도 상승을 감지하는 약 7000개의 신경종말들로 가득 차 있다. 엘레나 그라체바가 발견한 것처럼, 이 신경들은 다른 신체부위에 있는 뉴런보다400배나 많은 TRPA1을 보유하고 있으며 막의 온도가 0.001도만 상승해도 반응한다. 이 놀라운 민감성은, 살무사가 최대 1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설치류의 온기를 감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의 머리 위에 눈가리개를 한 방울뱀을 앉혀놓는다면, 방울뱀은 당신의 쭉 뻗은 손가락 끝에 있는 생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234

이런 특성들-호기심, 손재주, 분해하는 취미-은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에 서식하는 해달에게 안성맞춤이다. 빈번히 직면하는 차가운 바닷물은 족제빗과 동물에게 커다란 부담이지만, 해양 포유동물에게는지극히 사소한 일이다. 해달에게는 보온이 되는 우람한 몸도, 단열재 역할을 하는 바다표범 · 고래 · 매너티의 지방도 없다. 그들은 동물계에서가장 촘촘한 털을 가지고 있어서 1제곱센티미터당 몸털 수가 우리의 머리털을 능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체열의 신속한 방출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체중의 4분의 1에 상당하는 먹이를먹어야 하는데 해달의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다이빙을 한다. 못 먹는 게 거의 없고, 거의 모든 먹잇감을 손으로 잡는다. 광량이 불충분할 때도, 그들은 분주한 발놀림으로 먹이를 찾는다. 셀카가 테이블을 분해할 때 보여준 손재주를발휘해, 야생 해달은 물고기를 낚아채고 성게를 잡고 해저에 묻힌 조개를 캐낸다. 섬세한 촉각 덕분에, 그들은 넓고 차가운 바다에서 아담하고 따뜻한 포유동물로 살아남을 수 있다.
해달의 뇌를 살펴보면 발의 민감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해달의 촉각을 관장하는 뇌 영역은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이다. 체성감각피질의 상이한 부분들은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정보를 입력받는데, 이 부분들의 상대적인 크기를 분석하면 동물의 주요촉각기관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손. 입술·생식기와 관련된 부분이 발달했고, 생쥐는 수염, 오리너구리는 부리,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이빨과 관련된 부분이 각각 발달했다. 해달의 경우, 발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는 부분이 다른 족제빗과 동물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크며 심지어 다른 수달보다도 크다. - P244

지금 당장 해달이 먹이를 찾으러 간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은 바다 표면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둥둥 떠다니고 빙그르르 구르고 잠수한다. 그들이 바닷물에 잠겨 있는 시간은 1분에 불과한데, 이 정도면 당신이 이 단락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잠수는 소중한 1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므로, 올바른 깊이에 도달하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몇 번에 걸친 ‘광란의 순간‘에, 해달은 우툴두툴한 손모아장갑으로 해저를 헤집으며 모든 것을 탐색한다. 물속은 어둡지만 어둠은 문제가 되지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발 아래에 펼쳐진 바다는 만지고, 움켜쥐고, 누르고, 찌르고, 쥐어짜고, 쓰다듬고, 다룰 수 있는 모양과 질감으로 넘쳐난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먹잇감은 비슷하게 단단한 암석 사이에 자리 잡고 있지만, 해달은 순식간에 둘의 차이를 느끼고 암석에서 먹이를 끄집어낸다. 촉각, 다재다능한 발, 그리고 족제빗과 특유의 넘치는 자신감으로 조개를 낚아채고, 전복을 홱 잡아당기고, 성게를 움켜쥐고,
마침내 어획물을 먹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1분이다. - P246

촉각의 속도와 민감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엽기적인 코를 가진 두더지는 곤충의 애벌레 같은 작은 먹잇감을 감지하고 포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조각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양을 포획해야 한다. "그들은 작은 진공청소기에요." 카타니아가 말한다. "워낙 작은 것을 먹기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그들이 그런 고생을 하는 이유는, 경쟁자가 없기때문이다. 별코-손처럼 작동하고 눈처럼 스캔하는 코-덕분에 지하세계는 눈부시도록 상세하게 보이고, 경쟁자들이 인지할 수조차 없는 먹이로 넘쳐난다. 다른 두더지들에게는 텅 빈 복도처럼 보일 수도 있는 땅굴이 ‘별‘의 손길 아래에서 맛있는 간식으로 반짝인다.

별코두더지처럼 촉각에 특화된 동물 중 상당수는 시각이 제한된 조건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종종 숨어 있거나 찾기 어려운 것을 탐색하는데, 이를 위해 ‘탐지하고, 누르고, 탐색할 수 있는 신체부위‘를 가지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한다. 해달의 발이 됐든, 인간의 손가락이 됐든,
코끼리의 코가 됐든, 문어의 팔이 됐든, 동물은 의도적으로 촉각기관을 움직여 세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더지가 보여준 바와 같이, 그 기관이 굳이 손일 필요는 없다.
새의 부리는 뼈로 만들어졌고, 단단한 각질(케라틴)-손톱을 구성하는 단백질로 덮여 있다. 그것은 뭔가를 움켜쥐고 쪼기 위해 얼굴에 장착된 단단한 도구로, 생기가 없고 무감각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종의경우, 부리의 끝 부분에는 진동과 움직임에 민감한 기계수용체가 약간 포함되어 있다.  - P255

어떤 포유동물은 움직이는 동안 수염을 1초에 여러 번씩 앞뒤로 연신휘젓는다. 수염질whisking로 알려진 이 흥미로운 행동을 통해, 그들은 머리의 앞쪽과 주변 영역을 탐색할 수 있다. 수염질에 대해 처음 들었을때 나는 그것을 과소평가했다. 직관적으로, 그것은 내가 어두운 복도를비틀거리며 걸어갈 때 할 수 있는 일-벽에 부딪히지 않거나 전등 스위치를 찾기 위해 손을 뻗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감각생물학자인 로빈 그랜트 Robyn Grant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수염질 하는 생쥐나 시궁쥐가 코털을 사용하는 방식이, 내가 눈을 사용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치류는 자기 앞에 있는 장소를 지속적으로 훑어봄으로써 장면에 대한 인식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주둥이에있는 ‘긴 이동성 수염‘이 뭔가를 감지하면, 턱과 입술에 있는 ‘짧은 고정성수염‘이 더 자세히 조사한다(후자가 전자보다 더 많고 예민하다). 이 행동은 별코두더지가 땅굴 벽에 코를 들이대고 별코를 이용해 물체를 탐지하고, 최종적으로 열한 번째 광선쌍(작고 가장 민감한 광선쌍)을 가동하는것과 유사하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어떤 장면을 대충 훑어보다가 주변시야에서 뭔가를 탐지하고, 고해상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유사하다.
수염질과 시각의 유사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고개를 돌리면 눈이 먼저 움직이는 것처럼, 생쥐는 머리보다 수염이 먼저 움직일것이다." 우리가 망막을 가로지르는 빛의 패턴을 통해 세상을 지도화하는 것처럼, 생쥐는 수염의 배열을 가로지르는 촉감 패턴으로 세상을 지도화할 수 있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