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형의 모텔은 조야한 가구들을 들여놓은 형편없는 모텔로, 우리 가족은 늘 이런 호텔에 묵곤 했다. 역사상 위대한 구두쇠 중의 하나인 우리 아버지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방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우리는 대체로 말이 뛰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푹 꺼진 침대에 냉방장치라곤 열린 창문이 전부고, 한밤중에 가구 부서지는 소리와 ‘총내려놔, 비니,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라고 말하는 여자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깰 것만 같은 모텔 방에서 야영을 해야 했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거나 불합리하게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싸이코>에서 재닛 리가 모텔 욕실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고 ‘그래도 저기엔 샤워 커튼이라도 있네‘ 하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모든 것이 고속도로 여행을 예측 불가능한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어준다. 하루의 끝에 얼마만큼 편안한 잠자리를 얻게 될지, 어떤 소소한 즐거움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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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서 나는 보았다. 얼굴이 늘 진실을 말하진 않는다. 안 그런가? 적어도 나에겐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이 쓰는 것을 읽는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증거이자 우리의 확신을 뒷받침해줄 증거이다. 그러나 말과 표정이 정반대일 때, 우리는 그의 얼굴을 낱낱이 살핀다. 눈빛에 감도는 교활함, 번지는 홍조, 안면근육의 불가항력적 경련. 그러면 우리는 알게 된다. 위선이나 거짓 주장이 밝혀지고, 진실이 우리 앞에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건 달랐다. 더 단순했다. 모순은 전무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았다. 두 눈, 그 눈에 담긴 빛깔과 표정, 그리고 두 뺨, 병색이 깃든 두 뺨과 그 아래 광대뼈를보고 알았다. 확증은 그의 키에서 얻었다. 그 키에 맞게 자리잡은 골격과 근육이 확실한 증거였다. 그는 에이드리언의 아들이었다. 출생증명서나 DNA 검사 결과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나는 보았고, 직감했다. 물론 생일은 딱 맞아떨어졌다. 얼추 그 나이쯤 될 것이다. - P234

하지만 그건 사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심사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사실 마음 한켠으론너희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그러나 복수의 과녁은 그 조준이 정확해야 하는 법. 너희 둘이 딱 그에 해당된단 말이지.‘ 또 이렇게도 썼다. ‘그러니 너희에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는 노릇. 너희의 양해를구하며 시어를 동원해보자면, 순진무구한 새 생명으로 하여금 자신이 너희의 운우지정으로 인한 결실임을 깨닫는 짐을지운다는 건 불공정한 처사일 테니 말이야.‘ 회한remorse 이란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회한의 감정은 그와 같다. 내가 썼던 말을 다시 읽을 때 나를 깨무는 이가얼마나 그악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내뱉었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그 말은 가히 고대의 저주처럼 여겨졌다. 물론, 나는 저주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그랬었다. 말이 씨가 된다느니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도 나중에 일어날 일을 명명하는행위 자체 - 콕 집어 나쁜 일이 일어나길 바라자 실제로 똑같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여전히 몸이 오싹해질 만큼 초자연적인 데가 있다. 저주를 퍼부었던 젊은 시절의 나와 그저주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목도한 노년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는 사실. 이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서로 무관하다. - P236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나가!" 시속 삼십 킬로미터로 연석 위에 차를 세운 후 베로니카는 일갈했다. 이제야 나는 그 말이 품고 있는 더 폭넓은 울림을 이해했다. 내 인생에서 꺼져버려. 너는 내 인생에서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이야. 네가 만나자고 했을 때 승낙하는 게 아니었어. 점심 약속도 마찬가지고, 널 데리고 내 아들을 보러 간 것은 더더욱. 나가, 나가라고! - P242

"에이드리언 아버님의 친구 분이시라면—"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해를 못 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래도 그는내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말을 그나마 달리 표현해준 셈이었다.
"그런가요?"
"메리는 에이드리언의 어머니가 아니에요. 누나예요. 에이드리언의 어머니는 반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에이드리언은감당을 못 할 정도로 슬퍼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극복을 못하고 있어요."
무심히, 나는 감자칩 하나를 먹었다. 또 하나를 먹었다. 소금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래서 통통한 감자칩은 별로다. 감자를 덩이째 씹는 것 같다. 얇게 썬 감자칩은 겉이 더 파삭파삭하면서 소금간도 알맞게 밴다. - P252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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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 여자는 예쁘게 생겼다‘고 할 땐 보통 ‘그 여자는 소싯적에 예뻤다‘는 뜻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마거릿에 대해 말할 땐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마거릿은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는 걸 안다. 실제로도 그녀는 변했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의 폭을 다른 사람만큼 느끼지 못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입에서 식당 지배인 같은 말이 나올 리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련다. 마거릿은 사라져버린 것만 보고 나는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만 본다고. - P129

 사십 년 전의 그녀는 이가 갈리게 까다로운 여자였다. 그리고ㅡ날 제대로 엿먹인 그 세 마디의 답변을 증거로 판단컨대 - 나이를 먹었다고 성격이 물러졌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나는 스스로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한걸까. - P144

 나는 끝까지 다 읽었고,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잔에 남아 있던 와인을 이리저리 흘리면서 도로 병에 부었다.
그리고 커다란 잔에 위스키를 가득 따랐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같은 년. 잘 지냈나? 너도 함께 이 편지를읽도록.)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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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 어깨를 후려치며 해마다 기념식을 치를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각자 다른 인생길을 향하기 시작했고, 에이드리언이라는 공동의 기억만으로 결속을 다질 수는 없었다.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을 만한 구석이별로 없었기에 그의 자살 사건이 더 수월하게 정리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평생토록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그의 죽음은 - 케임브리지 신문이 기계적으로 주장했듯이-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빠르다 싶을 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 시간과 역사의 틈새 속으로 사라져갔다. - P97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이 되면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마련이다. 안 그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덕을 쌓은 만큼상을 주는 게 인생의 소관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젊었을 때는 노년에 겪을지 모를 고통과 황폐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인, 이혼을 한, 상처한 자신을 상상해본다. 자식들도 커서 품을 떠나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입지가 사라지고 욕망이, 이성을 끄는 매력이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본다. 더 나아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 세상 어떤 동반자를 구한다 해도 홀로 맞설 수밖에 없는 죽음까지도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 말로, 소리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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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향

나는 전에 어떤 책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있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다. 전화 회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수 없고, 식당에서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종업원을 만날 수없으며,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1995년, 나는 이 중 세 번째 항목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나는 20년 넘게 살아온 영국을 뒤로 하고 영국인 아내와 네 명의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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