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소금도 하지만 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 힘으로 이겨내는 방법밖에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밤늦게 아무도 없는 산길을 천천히 걷기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불빛 속으로 뛰어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어둠 속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걸으면서나는 어둠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어둠은 나를 삼켜버릴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매일 그 아이를 만나는 일은 그보다 더 무서웠다.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아이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감이 나를 그렇게 내몰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경우는 어둠 속에서 멀리 불빛이 보일 때다. 그 불빛이 얼마나 정겨운지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참아야만 했다. 왜 어둠 속을 걸어야만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다. 왜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어둠 속을 걸어가야만 했던 그중학교 2학년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 P199
밤이 얼마나 지났는가, 아직 절반도 못 되었네. 뭇별들이 눈부시게 빛을 내누나.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 어둡기만 한데 그대는 어이해 이 고장에 머무는가. 夜如何其夜未央 繁星燦爛生光芒 深山幽邃杳冥冥 嗟君何以留此鄉
김시습은 이 시에서 ‘‘杳冥冥묘명명‘이라고, 그러니까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둡다‘며 세 번이나 어둡다는 말을 썼다.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둠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스물한 살 시절 삼각산에서 글을 읽다가 수양대군이 나이 어린 단종에게서 정권을 탈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흘이나 두문불출한 다음에 통곡하고 책들을 모두 불살랐다더니 그런 참담한 시대를 일컫는 것이었을까? 얼마만큼 어두웠기에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둡다‘라고쓸 수 있을까? 그만큼 삶이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웠다는뜻이 아닐까? 지리산으로 도망칠 용기도 없음을 확인하고 풀숲에서 나오는 내게 그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괜찮느냐고 물었다. 까치산에서 내려간 나는 수업을 빼먹은 일로 교무실로 불려갔다. 왜 그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모의고사를 망쳐서 그랬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재차 물었다. 나는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며 똑같이 대답했다. 그 말을 믿었는지, 아니면 전후사정을 짐작한 것이었는지 선생님은 내게 앞으로는 마음대로 수업을 빼먹지 말라고 말했다. 교무실에서 나왔더니 그 아이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 아이는 잘했다며 안심했다. 까치산에서 내려온 뒤부터 그 아이는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었고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았다.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운 밤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도 어둡고 어두운 어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둠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주 하찮은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건 중학교 2학년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업이었지만, 또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수업이기도 했다. - P200
생>이라는 노래가하지만 바다는, 그런 바다는 다시 보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바다다"라는 말에 놀라던 그때로 흘러간다.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부드럽게, 따뜻하게. 일본 시인 기타하라하쿠北의 세월은 가네」라는 시를 읽으면 가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시절이 결코 아니다.
세월은 가네. 붉은 증기선의 뱃전이 지나가듯 곡물창고에 번득이는 석양빛, 검은 고양이의 아름다운 귀울림 소리처럼, 세월은 가네. 어느 곁엔가, 부드러운 그늘 드리우며 가네. 세월은 가네. 붉은 증기선의 뱃전이 지나가듯.
다시 한번 그렇게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간절히, 손꼽아 수학여행을 기다릴 수 있다면 "어텐션 플리즈, 바우!"의 세계를 소망할 수 있다면, 깜짝 놀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도, 나이가 들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릴 수만 있다면. - P212
눈에 익은 추사 글씨를 보다가 2층 한쪽에 걸린 난 그림을 보게됐다. 이파리 세 개가 너무나 아름답게 종이를 가르고 있었다. 추사는 그 그림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놓았다.
봄빛 짙어 이슬 많고, 땅 풀려 풀 돋다. 산 깊고 해 긴데, 사람 자취 고요하니 향기만 쏜다. 春濃露重 地暖艸生 山深日長 人靜香透
나는 그 그림의 화제, ‘春濃露重춘농로동‘을 몇 번이나 되면서 성북동 고갯길을 걸어 내려왔다.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추사의 그림을 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엉엉 소리내 울었을지도 모른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뒷골목 식당 알전구 아래 앉아 두 분이서 재미나게, 참 재미나게 말씀하셨지. 서울 아저씨는늘 웃으면서 농담을 하셨지.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니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니까.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그냥 그 정도로만, 그럼, 다들 잘 지내시기를.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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