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L‘Attente

우리 남자들은 저녁 식사를 한 뒤 흡연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존경받는 지도층이자 유명한 변호사인 르 브뤼망 씨가 벽난로로 다가와 등을 기대며 말했다.
"나는 매우 고약한 상황에서 사라져 버린 상속자를 찾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의 잔인한 비극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요. 우리 주변에서 매일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아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랍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요."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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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담론에서 특정 집단이 거의 표상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상징적 소멸 (symbolic annihilation)‘이다. 이는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자 조지 거브너 (George Gerbner)가 고안한 개념으로 주류 미디어가 특정 범주의 사람들, 특히 소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거의 재현하지 않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디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특정 집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미디어 담론 속 ‘부재(不在)‘는 이용자 의식에서도 해당 집단의 존재가 사라지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여기서 소수 집단이란 수의 많고 적음을 의미한다기보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자원이나 영향력에서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집단을 의미한다.
상징적 소멸은 ‘과소재현(under-representation)‘과도 연결되는데, 미디어 담론은 소수 집단의 존재를 실제보다 더 미미하게 다툼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가치를 축소한다. 상징적 소멸이나 과소재현은 ‘소수성‘이 여러 번 중첩되는 집단을 상대로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여성 중에서도 연령이 많거나, 소수 인종이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성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 P148

예멘 난민 보도는 타자에 대한 ‘정형화된 미디어 담론‘의 대표적사례다. ‘정형화(stereotyping)‘란 어떤 대상,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낯선 소수 집단을 몇 가지 고정관념을 중심으로 표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관념은 특정 집단의 특징에 대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인데, 정형화란 집단 전체의 일반적인 특징을 구성원에게예외 없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고정관념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들을분류하거나 특정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질적인 특성을부여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고정관념은 다른 사람에 대해 미처 알기도 전에 선험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특성을 가진 사람을 하나의 대표적인 속성으로 단순화하다 보니, 한 집단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차이(diversity in diversity)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오류도 범하게 된다.
고정관념에만 의존할 경우 소위 허위 조작 정보(disinformation)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할 경우 그와 다른 정보를 접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주목하지 않는다. 반대로 해당 집단에 대한 허위조작 정보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일치한다면 의외로쉽게 수용한다. 예컨대 우리가 이주 외국인에게 흔히 갖는 고정관념 중 하나가 ‘우범자‘라는 인식이다. 선행 연구(예: 박상조 · 박승관,2016)에 따르면, 외국인 범죄의 경우 실제 발생 비율보다 언론에 보도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처럼 미디어는 소수 집단 자체는 과소재현하면서도 소수 집단의 부정적 특성은 과도하게 부각하는 모순된 양상을 나타낸다. 이주 외국인을 우범자로 인식하는 부정적 고정관념은 이러한 미디어 담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 P152

이제 세 번째 논점을 살펴보자. 다양성을 저해하는 미디어 담론의 또 다른 특성인 소위 ‘갈등 지향성‘ 문제다. 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여러 양상의 갈등이 생겨나고 집단 간 대립도 심화될 수 있다. 한편으로 갈등은 그 자체로 큰 비용을 유발하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양성이 살아 있는 포용적인 사회로 진보해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다양성 사회에서 수반되는 갈등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많은 연구에 따르면, 미디어는 표면적인 갈등 현상 자체를 부각하며 당사자 간 대립을 실제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갈등의 본질적인 원인을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사안을 둘러싼 여러 의견을 전달하면서 합리적으로 갈등이 해결되도록 이끌기보다는 갈등을 과잉 재현하거나 부추기는 방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갈등 지향적인 미디어 담론은 ‘왜 갈등이 발생했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하기보다 대립과 반목 자체만을 주목하게 하여 피로감과 냉소를 유발한다.  - P156

 언론이 사안의 성격과 관계없이 정파적인 극화(polarization) 보도를 하는 것도 다양한 의견 사이의 건강한 토론을 저해한다. 극화된 보도를 계속 접하면 이용자는 이슈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정파적 시각에서 입장을 정하게 되기 때문에 여론은 더 심하게 양극화될 수 있다. 갈등 지향적인 미디어 담론을 접하며 이용자는 ‘차이‘를 성가신 것으로, ‘이견 간의 논쟁‘을 비생산적인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마치 다양성 자체가 이렇게 불편한 갈등을 만들어내는 원인인 것처럼 오해할 우려도 있다. 사실은 다양성이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것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 P157

 추천알고리즘에 대한 디지털 플랫폼 이용자들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자기 선택이 아닌 알고리즘의 선택을 따라가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색 엔진. OTT 콘텐츠 큐레이션, 뉴스 추천, 소셜미디어의 친구 추천 등 다양한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이용자에게 맞춤형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대규모 이용자 정보를 분석하여 분류하고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하는데,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가장 선호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함으로써 플랫폼에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렇듯 추천 알고리즘에 의존해서 개인화된 콘텐츠를 지속해서 소비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결국 이용자들이 경험하는 정보나 관점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협소해지면서, 사회 전반의 다양한 견해를 접하지 못하고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울타리에 갇힐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필터 버블‘이란 미국의 시민운동가 일라이 퍼리저 (EliPariser)가 2011년 제안한 개념으로, 알고리즘의 자동 필터링 때문에 플랫폼 이용자가 자기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와 관점에만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다른 정보와 관점으로부터는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진보적 성향을 가진 페이스북 이용자의 피드에는 보수적 성향의 게시글이 거의 노출되지 않는 식이다. 자기만의 우주인 필터 버블 속에서 개인의 기존 신념은 더 굳어지고 정보의 사실성이나 의견의 균형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은 약해진다. 필연적으로 허위 조작 정보, 루머, 음모론 등에 대한 저항력도 낮아진다. - P160

알고리즘은 인간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이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유형의 편향이 개입될수 있다. 데이터 부족과 편향성이 안면 인식 AI의 인종 편향을 만들었다면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의 어시스턴트 등 대다수 인공지능 스피커가 여성의 목소리를 기본 값으로 설정한 것은 알고리즘 설계자의 편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애라,
2019), 마이크로소프트사(MS)의 인공지능 챗봇 테이나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챗봇 이루다는 출시 후 이용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여성, 특정 인종, 성 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을 학습하게 된 경우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다양성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자칫 ‘기계는 중립적이고 공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만, 그 역시 인간과 사회의 편향에서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고리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지만, 우리 일상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 특히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는알고리즘의 편향성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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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식었나 봐?"
다짜고짜 질렀더니 A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구례를찾는 횟수가 줄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A와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참으로 더디다. 처음에는 높은 벽을 치고 문 열어줄 사람을 꼼꼼히따져 고른다. 그 문이 나에게로 향하는 마지막 문이 아니라 첫문이다. 10년쯤은 만나야 아,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싶다. A는 처음에 훅 들어온다. 서로 살가워질 때까지 시간과 공력을 쏟아붓는다. 친구가 되었다 싶으면 긴장이 풀리고 그래서 처음보다 느슨해진다. 누구의 방식이 옳고 그른건 아니다. 그저 서로의 방식과 속도가 다를 뿐이다. 알면서도 이 다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관계를 처음 맺을 때는 A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했고,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이번에는 내가 예전처럼 자주 오지 않는 A에게 서운했다. 뭐, 그러면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더 친해지는 것일 테니 큰 상관은 없다. - P162

그사이 아빠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신 교수님에게 보냈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만 원도 되지 않을 감자며, 대봉이며, 밤이며, 양파며, 모두 아빠가, 노동과 결코친하지 않은 아빠가 노동으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아빠도 알았던 것이다. 신 교수님은 단순한 교수가 아니라 내인생의 스승이라는 것을. 내 영혼의 아버지라는 것을.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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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동, 이주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매우 강한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들어와서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쪼그라들고 세수가 줄어서 사회복지체계를 유지할 공적 자금이 없어지는 것보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편이 더 쉽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변화를 감내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언론을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이민에 대해 회의적이던 시각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이민이 필수 불가결한 사항인것처럼 보도하는 기사와 시론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로 정부도이민청 신설 논의를 먼저 들고나왔고, 그에 대한 사회 인식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물론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야 우리가 원하면 한국에 와서 일하고 소비해줄 외국인이 줄을 서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국제 이주 노동 시장의 아주 작은 한 선택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러 면에서 치밀하게 잘 준비하고 있어야 많은 외국 근로자들이 우리나라를 이주지 및 거주지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성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 P88

좀 더 논리를 전개해보자. 우리 사회의 한편에서 ‘일할 사람이없어요.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주장을 냉철히 분석해보면 이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이 끌고 온 산업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이는 현재 상황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현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인재를 육성하지 않았다는 데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부족하나마 점점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인적 자원을 개발해왔지 않은가.
‘인구절벽‘ 이야기로 돌아가자. 앞으로 인구 절벽 문제로 인해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외국인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식으로 방향을잡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만만치 않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필자는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산업 구조 자체를 전면 개편함으로써 해결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 P92

그런데 이것보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 잘파세대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신통방통한 소통 도구 ‘스마트폰‘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 기적의 소통 도구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 같은 영화. 드라마를 시청하고, SNS · 유튜브를 통해 재미있게 소통하며 문화적 동질감을 키워간다. - P96

"인류가 만든 집단은 왜 점점 더 규모가 커졌을까?"
"인류 집단은 과연 다른 영장류 집단과는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를까?"
뇌과학자와 영장류 학자는 이 두 가지 화두를 붙잡고 오랫동안연구해왔다.
이 두 분야의 과학자들이 뇌를 연구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위로 ‘신피질(新皮質, 대뇌겉질에서 가장 최근에 진화하여 형성된 부분. 여섯층의 구조를 이루며 사람 뇌의 대부분을 이룸)‘이 있다. 그들은 전체 뇌중에서 신피질이 차지하는 비율에 특히 주목한다. 왜 그럴까? 오랜 연구를 통해 그 비율과 집단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전체 뇌에서 신피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종일수록 그 집단의 크기도 크다는 의미다. 이 비율의 관점에서 볼 때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 동물의 집단 크기와 인간 집단의 크기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침팬지의 경우 보통 50개체 정도가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생활하는 데 반해 인간은 150개체 정도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간다.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이것을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명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 친구의 최대 수는 150명 정도다. 말하자면, 이것이 하나의 인간이 이루는 집단의 표준 크기이자 단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렵 채집기 인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소 알고 지내는친구들을 매일 만나게 된다.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만나고 내일도 만나게 되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150명‘이라는 숫자가 꾸준히 유지된다. - P112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사고(thinking)가 두 가지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시스템 1은 ‘직관‘과 ‘감정‘인데, 이는 자동으로 돌아가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즉, 위에서 감정적 공감을 설명할 때 말한 드라마의 슬픈 장면에 감정 이입하는 사례처럼 의도적으로 노력하지않아도 포유류 동물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있다. 사실 인간 사회에서도 대다수 사람은 시스템 1로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별문제가 없다.
반면 시스템 2는 시스템 1에 비해 훨씬 고난도 과정이 요구된다. 즉, 시스템 2는 애써서 추론하며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성을 작동해야 한다. 이는 매우 정교한 과정이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인간 내면에는 시스템 2도 장착돼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지적 공감은 시스템 2의 작동이라고할 수 있다. 공감의 첫 번째 형태인 정서적 공감은 무의식적이고자동적으로 감정 이입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익숙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예를 들어 생김새가 비슷하고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쉽게 공감이 간다. 이는 시스템 1이 작동한 결과다. - P118

이에 반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에게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낯설게 느끼다가도 귀 기울여 듣는 동안 어느 순간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이 명확히 이해되고 공감이 된다면 이는 시스템 2가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무심코 길을 걷다가 뱀 같이 생긴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저게 뭐지?‘라며 정교하고 느리게 추론하다가는 자칫 독사에 물려 죽을 수 있기 때문에인간 뇌의 시스템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진화시켰다. 매우 신속하게 작동해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지만 틀릴 가능성이있는 시스템 1. 반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세밀하게 파악함으로써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이 독사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하도록 돕는 시스템 2.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역지사지의 힘이 발휘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왜 우리는 시스템 2가 아닌 시스템 1을 주로 작동시키며 일상생활을 영위할까?‘ 이는 수렵 채집기에 인류가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만만치 않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그것이 본능으로 장착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P120

 다시 말해 다양성이란 학습하고, 교육받고, 또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절대로얻을 수 없는 자질이자 역량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 정말 많이 애쓰고 노력해야겠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위안이 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가?‘, ‘결과적으로 문명 발전에 어떤 거대한 흐름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인류는 공감의 반경을 점점 확장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즉,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그러다가 차츰 우리 가족, 우리 부족, 우리 민족과 국가, 그리고 모든 인간으로 공감의 영역이 확장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생물 등 생명체 전체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할 수 있다. 심지어 모든 생명체를 넘어 인류가 최근 한창 개발 중인 로봇· 인공지능에까지 공감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의 반경이 비약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필자는 이것을 ‘공감의 원심력‘이라 부르고 싶다.
인지적 공감, 보편적 윤리, 교육을 통한 공감은 공감의 원심력을 키우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공감의 원심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사회의 가치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 P122

즉, 공감의 원심력이 작용하면서 다양성을 키움과 동시에 구심력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며 다양성이 증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공감의 구심력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으로 일종의 ‘부족 본능‘ 같은것을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족 본능‘은 같은 혈연, 지연 등에 대한 정서적 공감, 자기 집단에 대한 편애와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 도덕적 직관, 가치의 획일성 등에 의해 형성된다. 이처럼 인류는 언제나 공감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강력한 영향을 동시에 받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공감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큰 사회가 다양성이 높은 사회다. - P123

우리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다양한 가치로 사회를 볼 것인지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즉 자기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경쟁 자각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공격성이 발동되고, 경쟁 욕구가 커지고, 목표가 고정되고,
가치가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 구조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구 밀도‘가 매우 중요한 지표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즉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주위에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이고, 그런 까닭에 출산을 미루고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에만 매진하게 되며, 차츰 한가지 가치로만 생각하는 시야가 좁고 보수적인 사람이 되기 쉬운것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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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자 후배와 함께 놀러 왔기에 김치며 반찬을이것저것 싸주었다. 나 잘해 묵고 살아야 하면서도 A는 내가 싸주는 것들을 기꺼이 받아 갔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새 통을 여러 개 들고 왔다.
"이 사람 저 사람 싸줄라먼 통 겁나 필요허제?"
장애인 연금 받아 산다는 A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새통꾸러미를 내밀었다. A는 그렇게 똑떨어지게 깔끔한 아이였다. 깔끔한 A는 노상 오고 싶다면서 오지는 않는다. 언젠가 전화를 해서 보고 싶다기에 오라 했다.
"아따, 니는야, 멋을 참 모린다이. 남자 혼자서 워치케갈 것이냐?"
"왜? 나는 가시내 아니람서?"
"와따메. 참말로 암것도 모리네이. 그럼시로 소설은 워찌 쓰까?"
긍게.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작가지.
나는 아직도 말하지 않은, 혹은 돌려 말한 A의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자로 보일까 봐 젊은 저의 혈기를 가라앉히려는 말이었다는 건가, 어리석은 나는 그리 짐작할뿐이다. 그런들 저런들 무슨 상관이랴. 환갑 앞두고.
나는 아직도 A가 겪고 있는 불행의 긴 터널을 A처럼 담담하게 직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A와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다. 가슴이 먹먹하고, 알 수 없는 무엇엔가 화가 치민다. 그 여름밤, A가 직접 만든 밤나무 위 오두막에서의 그하룻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때의 싱그럽던, 똑똑하던, 깔끔하던, 능청스럽던 스물두엇의 A도 눈물겹게 그립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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