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몰라요. 전혀 몰라요." 그들도 고향에 어머니가 있기에 그녀의 고통과 염려를 이해하면서 소소한 일들을 살펴 주었다. 그녀도 그들을 네 명의 적군을 매우 좋아했다. 농부들은 애국심에서 나온 증오 같은 것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다. 비천한 사람들은 가난한 데다 온갖 새로운 의무들에 짓눌리기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당하며, 수가 많기 때문에 대포에 몸을 내놓고 떼죽음을 당한다. 또한 가장 약하고 잘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잔인한 전쟁의 비극을 가장 처참하게 겪어야 한다. 그들은 호전적인 열정이나 명예와 관련된 흥분하기 쉬운 일들 혹은패전국과 똑같이 승전국도 여섯 달이면 지쳐 버리는, 소위 정치적 책략같은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 P515
내 친구 세르발이 덧붙였다. "그 보복으로 독일인들이 마을에 있는 내 성관을 파괴한 거야" 나는 그 초가집 안에서 타 죽은 네 명의 온순했던 젊은이의 어머니들을 생각했고, 그 벽에 몸을 기댄 채 총살당한 또 다른 어머니의 처참한영웅적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불 때문에 그때까지도 거무스름한 작은 돌 하나를 땅에서 주워 들었다. - P521
행복 Le Bonheur
램프에 불을 밝히기 전 차 마시는 시간이었다. 별장은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지는 해가 하늘을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금가루를 뿌린듯 환히 빛나게 했다. 지중해는 잔물결 없이, 가벼운 흔들림도 없이, 사위어 가는 햇빛 아래에서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윤기 나는 드넓은 금속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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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지나치게 손쉬운 이상과 지나치게 원초적인 필요를, 그리고 지나치게 소박한 요구들을 갖고 있었네요. 어리석은 여자일 뿐이에요" 그러자 또 다른 여자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러면 어때요! 어쨌든 그 여자는 행복했잖아요." 그때 저쪽에서, 수평선 깊숙한 곳에서 코르시카 섬이 어둠 속으로 다시 가라앉으며 천천히 모습을 감추었다. 자신의 기슭으로 피신한 보잘것없는 연인의 이야기를 하려는 듯, 바다에 드리웠던 커다란 그림자를 서서히 지웠다. - P522
아직 혼돈 속에 싸여 있는 그 섬을 상상해 보시오. 격류가 흐르는 좁다란 협곡들이 산봉우리에 내리치는 폭풍우를 갈라놓소. 그 섬에는 평원이 없다오, 물결치는 거대한 화강암과 잡목림이 있고, 구불거리며 굽이치는 땅 위에 밤나무나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만 펼쳐져 있다오. 때때로 산꼭대기에 바윗덩어리를 닮은 마을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곳은 처녀지, 불모의 땅, 황량한 땅이라오, 문화도 산업도, 예술도 없소. 문양이 조각된 나뭇조각 하나, 돌멩이 하나 만나지 못한다오.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조상들의 유치하거나 세련된 기념물 하나 만나지 못한다오. 그것은 그 당당하고 혹독한 고장이 지닌 가장 충격적인 측면이기도하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매혹적인 것들을 찾기 이전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초연함인지도 모르겠소. - P524
술통 Le Petit Füt
아돌프 타베르니에에게 에프르빌의 여인숙 주인 시코 씨가 마글루아르 할머니의 농장 앞에 이륜 경마차를 세웠다. 시코 씨는 키가 크고 머리카락이 붉고 배가 나온 마흔 살의 원기 왕성한 남자였고, 상당히 영리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는 울타리의 말뚝에 말을 붙들어 맸다. 그런 다음 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글루아르 할머니의 농장 옆에 토지를 갖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할머니의 농장을 탐내었다. 그래서 여러 번 그 농장을 팔라고 제안했지만 마글루아르 할머니는 고집스럽게 거절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죽을 거라우." 할머니는 말했다. - P532
29호 침대 Lelit 29
도에피방 대위가 길을 지나가면 여자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그는 참으로 잘생긴 경기병 장교였다. 그는 늘 자기 넓적다리, 허리, 콧수염에 신경을 썼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뽐내며 걸어 다녔고, 쉬지 않고 으스댔다. 그의 콧수염, 허리, 넓적다리는 근사했다. 콧수염은 금빛이고 매우 견고했으며, 잘 익은 밀 빛깔의 아름다운 똬리를 이루며 섬세하고 세밀하게 말려 입술 위로 과감하게 흘러내렸다. 그런 다음 입 양쪽에서 무척이나 위풍당당한 두 개의 털 줄기를 이루며 뻗어 내려갔다. 허리는 코르셋을 입은 것처럼 날씬했고, 그 위에는 활처럼 부풀어 오르고 흰 남자답고 건장한 가슴이 있었다. 넓적다리 역시 경탄할 만했다. 착 달라붙는 빨간나사 바지 밑에서 모든 움직임이 마치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체조선수나 무용수 같은 근육질의 넓적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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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곳을 떴다. 성큼성큼 걸어 매독에 걸린 여자 환자들이 동요하고 있는 두 줄의 침대 사이를 지나 도망쳤다. 쉭쉭거리고 헐떡이는 이르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그를 쫓아왔다. "당신보다 많이. 그래, 내가 당신보다 많이 죽였어. 당신보다 더 많아......" 그는 계단을 네 단씩 급히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 틀어박혔다. 다음 날 그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 P541
귀향 Le Retour
짧고 단조로운 파도가 해안을 후려쳤다. 작고 하얀 구름들이 바람에떠밀려 넓고 푸른 하늘을 새 떼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바다를 향해 뻗어 내려가는 작은 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그 마을은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었다. 마을 끄트머리 길가에 마르탱 레베스크의 집이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진흙으로 벽을 쌓아 올린 초라한 어부의 집이었지만, 초가지붕 위에 파란 붓꽃이 피어 있었다. 문 앞에 있는 손수건만 한 뜰에는 양파, 양배추, 파슬리 같은 채소들이 가득했다. 울타리가 길을 따라 그 정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 P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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