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은 흄과 입장이 같았다. 도덕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알고 보면 자기들 뇌의 "감정 중추에 의견을 구해" 그것을 조작하듯 정당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비난했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윤리학을 연구하는 일은 조만간 철학자들의 손에서 벗어나 "생물학의 영역이 될 것이니,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 본성의 연구가 윤리학과 하나로 짜 맞추어질 것이었다. 철학 · 생물학 · 진화의 이러한 결합은 윌슨이 꿈꾸던 ‘새로운 종합‘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나중에 윌슨은 이를 통섭(consilience)이라고 불렀다. 여러 사상이 "경계를 뛰어넘어 다 같이" 하나의 통일된 지식 체계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였다." - P80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기본이 되는 심리는 패턴 연결이다. 이런식의 인지는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우리는 여기에 떠밀려 뮐러 · 라이어의 착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착시를 경험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한쪽 선이 다른 선에 비해 더 길게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마골리스는 이런 식의 사고를 ‘직관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반면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우리가 어떤 사고를 거쳐 특정 판단에 이르렀는지 설명할 때, 혹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런 판단에 이를 수 있었는지 설명할 때" 이용된다." 이유를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언어를 가진 생물체, 그리고 스스로의 입장을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생물체에게서만 일어난다.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은 자동적이지 않다. 이는 의식적인 과정으로, 때로는 수고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고, 인지 정보에 의해 그 흐름이 쉽게막힌다. 콜버그는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 과정‘은 무시하고 이 ‘이유를 찾아내는 인지 과정‘을 연구해야 한다고 도덕심리학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 P98
마골리스의 아이디어는 내 연구에서 드러난 모든 내용에 완벽하게들어맞았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직관적 판단이 먼저 일어나고("그건 당연히 잘못이죠!"). 그런 다음에야 천천히, 때로는 고문과도 같이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음. 둘의 피임 방법이 모두 실패할 수도 있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나는 아이는 기형아일 겁니다. 직관은 추론을 일으키는 추동력이지만, 추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 P99
감정이 사실은 인지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차츰 인정하게 된 것이다. 감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데, 그중에서도첫 단계가 방금 일어난 일이 내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 여부로 그 일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는 일종의 정보처리, 즉 인지 작용에 해당한다. 어떤 특정한 입력 패턴이 감정의평가 프로그램에 감지되면, 그것은 우리 뇌에 일련의 변화를 일으켜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예를 들어, 어두컴컴한 길을 지나는데 누가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나의 두려움 체계는 위협을 감지하고 교감신경을 작동시키는데, 이로써 맞붙을지 아니면 도망갈지의 반응 기제(fight-or-flight response)가 작동하고,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며,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위해 동공이 확대된다. - P101
《행복의 가설>이라는 책에서 나는 이 두 종류의 인지에 각각 기수("이유를 찾는 인지‘를 포함한 통제된 인지 과정)와 코끼리 (감정, 직관 및 모든 형태의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라는 이름을 붙인 바 있다." 말(馬) 대신 굳이 코끼리를 선택한 이유는 코끼리가 말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기(그리고 더 영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5억 년 동안 동물의 마음을 움직여온 것은 자동적 인지 과정이었고, 그렇게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도 움직여왔다. 따라서 수천 번의 제품 주기를 거친 소프트웨어가 기능이 향상되듯이, 자동적 인지 과정은 이제 자신의 일을매우 능숙하게 처리해내는 단계에 있다. 인간이 언어 및 추론 능력을 발달시킨 것은 최근 100만 년 사이의 어느 즈음인데, 이때 뇌가 스스로 회로를 재구성한 일은, 그러니까 코끼리 등에서 기수를 내리고그 자리에 어설픈 신참 마부를 앉힌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기수(언어를기반으로 한 추론 능력)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진화해나갈 수 있었는데. 기수가 어떻게든 코끼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수가 시중들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미래를 더멀리 내다볼 줄 아는 능력(우리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대안적인 시나리오를곰곰이 따져볼 수 있다)은, 코끼리가 지금 이 순간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또 기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나아가 첨단 기술까지 섭렵할 줄 아는데, 이 능력은 코끼리가 자신의 목표에는 한발 다가가고 재앙은 슬쩍 비키도록 도움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기수는 코끼리의 대변인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이때 기수가 코끼리의 본심을 반드시 다 알 필요는 없다. 코끼리가 방금 무슨 일을 저질렀든 기수는 그것을 사후 조작하듯 설명하는 기술이 뛰어나고, 코끼리가 앞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 정당화의 근거를 잘 마련한다. 인간이 언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서로에 대해 험담하기 시작한 때부터, 코끼리 입장에서는 24시간 내내 일하는 이 홍보 회사를 등에 태우고 다닐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 P102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 중 도덕이나 정치 논쟁에 들어가서 이 원칙을 적용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도덕이나 정치 논쟁에 들어가면 우리의 바른 마음이 기다렸다는 듯이전투태세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기수와 코끼리는 척척 호흡을 맞추어 함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적진을 향해서는 말발로 무장한 수류탄을 힘껏 내던진다. 그 모습에 우리 친구들은 감동에 젖기도 하고, 동맹들은 내가 팀에 헌신한다고 생각해줄 것이다. 그러나 적들은 이들과 달라 내가 아무리 훌륭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을바꿀 리가 없다. 그들 역시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면, 나 자신의 눈으로는 물론 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깊이 있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 반응으로 어느새 나 자신의마음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도덕적 가치관을 허물고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 P108
・기수가 코끼리를 시중드는 모습은 사람들을 도덕적 당혹감에빠뜨렸을 때 목격할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람들은강하게 직감하고, 그 느낌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후정당화의 근거를 만들어낸다. 설령 하인(추론 능력)이 아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도 주인(직관)은 자신이 내린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은 홉의 모델을 기초로 하되 거기에 좀더 사회성을 불어넣은 형태이다. 사람들은 친구를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평생 모질게 애쓰는데, 도덕적추론도 그런 노력 중 하나이다. 내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추론은 그 다음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사람들이 혼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어떤활동을 도덕적 추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자신의 직관에 어긋나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그들은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것이다. 내 논거나 결론에 어디 미심쩍은부분이 없나 이유를 찾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거의 백이면 백 그 노력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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