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샬로츠빌 지역당에 가서 내가 한 강연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공화당원은 도덕심리학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민주당원은 그렇지못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정치적 행동을 주관하는 것은 기수가아니라 코끼리라는 것을 공화당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었고, 코끼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공화당원이 만드는 슬로건, 정치 광고, 연설문은 모두 사람의 직감에 직접적으로 가 닿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도 1988년 윌리 호튼(WillieHorton)이라는 흑인 범죄자의 얼굴 사진을 넣어 만든 광고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광고에서 공화당은 윌리 호튼이주말에 감옥에서 나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범죄에 유화적인" 마이클 듀카키스(Michael Dukakis: 당시 민주당의 후보)가 범죄자 주말 휴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전국에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반면 민주당원은 코끼리보다는 기수를 정면에 놓고 호소할 때가 많으며, 따라서 정책의 세부 내용을 비롯해 그것이 가져다줄 이득이 강조되는 편이다. 조지 W. 부시나 그의 아버지 조지 H. W. 부시나 청중에게서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는 능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둘 다 운만큼은 대단히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대선에서 그들의 대항마로 나선 이들은 머리를 주로 쓰는, 감정적으로 냉철한 사람들(마이클 듀카키스, 앨 고어. 존 케리)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나와 재임에까지 성공한 경우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로는 단 한 번뿐이었고, 이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 주인공은 자신의 친근한 이미지와 유창한 말솜씨를 하나로 결합시킬 줄 알았으며, 그럴 때면 거의 음악을 들을 때의 감동이 느껴지곤 했으니까 말이다. 빌 클린턴, 그는코끼리를 어떻게 매료시키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 P288
우리 다섯은 정치적으로는 모두 진보였지만, 진보 쪽 사람들이 정치심리학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똑같은 우려를 품고 있었다. 진보파의 연구 중에는 보수주의자가 어떤 면에서 잘못인지를 설명하려는것이 너무 많았다("보수주의자들은 왜 보통 사람들처럼 평등, 다양성,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날은 마침 정치심리학 회의가 열렸던 날이었는데, 보수주의자를 겨냥하거나 부시 대통령의 인지능력 한계를 지적하며 농담을 던진 연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우리 다섯은 모두 그런 행동은 잘못이라고 느꼈다. 도덕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몇 안 되더라도 청중 속에 보수주의자가 끼어 있을 경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면에서도 분명 잘못이었다(그런 행동은 특정결론에 이르려는 동기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결론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그쪽으로 나아가기 쉬운 법이다). 아울러 우리 다섯은 정치와 관련된 미국인들의 삶이 점차 양극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 심히 걱정이었다. 따라서 도덕심리학이 힘이 되어 각파의 열성 당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면 좋겠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 P295
이 소론에 담긴 핵심 생각은, 어떻게 하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평화롭게 살아갈 사회를 만드느냐 하는 문제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접근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두 접근법중 하나는 존 스튜어트 밀로 대표되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의 위대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으로 대표된다. 소론에서 나는 밀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로, 상호 이득을 위한 사회적 계약으로써 사회가 만들어진다고상상해보자. 이곳에서는 개인들이 다 같이 평등하게 지내며,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뜻에 따라 이사하고, 재능을 계발하고,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계약사회의 대표적 수호자는 존 스튜어트 밀로, 그는 자유론(On Liberty)>에 이렇게 썼다. "교양 있는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에게정당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하나, 타인에 대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려는 목적이 있을 때뿐이다." 밀의 이 비전은 수많은 진보주의자와 자유주의자에게 호소력을 지닌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밀의 사회는 평화롭고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곳으로서, 각양각색의 개인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준다. 그러면서도 궁지에 처한 사람을 돕거나 공익을 위해 법을바꾸어야 할 때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하나로 뭉친다(오바마가 외치는 ‘단결‘도 이러한 것이다). - P303
이런 식의 사회 비전은 오로지 배려 기반과 공평성 기반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나는 소론을 통해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누구나 이 두기반에 의지한다고 가정하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이 잔혹과 불의를보면 참지 못하며, 나아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일에는 발 벗고나서리라고 가정하게 된다. 이렇게 밀의 비전을 소개한 데 이어 나는 뒤르켐의 비전을 대조해 보여주었다.
이제는 사회가 개인 간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다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살방편을 찾는 과정에서 차차 유기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상상해보자. 즉, 생존을 위해 하나로 엮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기심은 서로 억누르는 한편, 사회 이탈자나 무임승차자 등 집단의 협동에 해가 되는 무리를 처단해나간다. 이때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는 개인이 아니다. 그 기본단위는 위계질서가 잡힌 가족으로, 여타 기관들도 이를 본으로 삼는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개인들이 태어나는 순간 강력하고 제약적인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는바, 따라서 자율성에도 심대한 제약이 따른다. 이렇듯 좀 더 구속적인 사회개념을 수호해온 사람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으로, 일찍이 아노미(무규범 상태) 현상을 경고한 그는 1897년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자신이 소속감을느낄 수 있는, 자기보다 높은 무엇이 보이지 않으면 고차원의 목표에 애착을 가지거나 규칙에 순응하지 못한다. 사회의 모든 압력에서 자유롭게 해방된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자 든든한 기반을 잃는 것이다."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뒤르켐의 사회는 숱한 집단이 서로 포개지고 겹치며일종의 안전망을 이루어, 개개인을 사회화시키고 탈바꿈시키고 돌보는 것이다. 자기 뜻대로 하게 개인을 내버려두면 그는 결국 피상적이고 육체적이고 이기적인 쾌락을 좇게 되기 때문이다. 뒤르켐의 사회가 더 중요시하는 것은 자기표현보다는 자기 절제, 권리보다는 의무, 타 집단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이다. - P304
뒤르켐의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배려와 공평성 기반만이 아님을나는 소론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사회를 건설하려면 충성심, 권위, 고귀함 기반도 마저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어서 나는 미국의 좌파가 이런 뒤르켐의 세상을 도덕적 흉물 정도로만 보는까닭에 사회적 보수층은 물론 종교적 우파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뒤르켐의 세상은 보통 위계적이고, 종교적이며, 또 벌이 엄격하다. 더불어 사람들의 자율성에 한계를 긋고, 많은 경우 전통적인 성 역할을 비롯하여 전통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비전은 진보주의자에게는 떠받들기는커녕 싸워서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 P305
여러분의 도덕 매트릭스가 오로지 배려 기반과 공평성 기반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아마 여러분은 에 플루리부스 우눔(E pluribus unum: 다자에서 하나로)이라는 미국의 비공식 모토를 들어도 고귀한 울림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고귀하다‘는 것은 앞 장에서 소개한 고귀함 기반의 그런 개념을 말한다. 한마디로 고귀함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상, 사물, 혹은 사건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할 줄 안다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집단을 하나의 실체로 똘똘 뭉치게 할 경우 그 가치는 특히 커진다. 생각해보면 이 지구에서 성공한 나라치고 플루리부스(각양각색의 민족)로 우눔(하나의 국가)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연출하지 않은 곳은 없다." 이 기적을 더 이상 연출하지 못할 때 나라는 망하거나 쪼개진다. 민주당이 플루리부스 정당이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이후 민주당은 대체로 다양성을 칭송하고, 동화(同化)되지 않는 이민을 지지하며, 또 영어를 미국의 표준어로 쓰는 데는 반대하고, 성조기 핀은 웬만해서는 달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를 세계시민이라 칭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실정이니, 1968년 이래로 민주당이 대선에서 그토록 부진한 성적을 내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미국의 대통령은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가 말한 "미국의 시민 종교(American civil religion)"에서 대사제와 다름없는 존재이다." 그러니만큼 대통령은 (꼭 예수가 아니더라도)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을수 없고, 미국이 낳은 영웅과 그것이 이룩한 역사를 찬미하지 않을수 없으며, 또 성스러운 경전(독립선언문과 헌법)을 입에 올리지 않을수 없고, 플루리부스를 우눔으로 성화(聖化)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가톨릭교도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일 어떤 사람이 라틴어를 쓰지 않겠다고 하거나 자신은 이 세상의 신을 전부 모신다고 여긴다면, 누가 그 사람을 사제로 선택하겠는가?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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