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기꾼. 게으름뱅이 무임승차자에게서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력한 소망을 가진바, 이를 더 유심히 살펴 공평성 기반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사기꾼·게으름뱅이 · 무임승차자 들이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계속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까지 협동을 멈추고, 그러면 사회구조 자체가 흐트러지고 만다. 공평성 기반은 우리가 누구에게서 직접 사기를 당했을 때 의분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둔다. •••••• 그러나 공평성 기반은 이보다 더 넓은 차원의 관심사에도 적용된다. 즉, 공평성 기반이 있기에 우리는 사기꾼이나 파렴치한 등 집단을 위해 물을 모아두기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물을 ‘마셔버린‘ 사람은 누구든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공평성 기반을 자극하는 통용적 동인은 집단의 크기와 숱한 역사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갖춘 대규모 산업사회의 경우에는, 생존에 필요한 응급처치 이상으로 이 안전망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통용적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안전망의 남용 여부를 사람들은 중요하게여긴다. 이 사실을 알면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사회 기금을 챙기는 미혼모 같은 사람들 말이오.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민주당원이 되지"라고 말한 남성처럼, 왜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화가 나서 내게 이메일을 보냈는지 설명된다. 한 보수주의자가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를 "게으르기" 때문이라거나,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사람,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부의 도움에 기대지 않는 사람들이 싫어서"라고 꼽은 이유도 이해할 수 있고 말이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허위로 서류를 꾸며 대규모 대출을 받아 주택을 산 이들을 왜 국민들이긴급 구제해주어야 하느냐고 산텔리가 분통을 터뜨린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 P330
즉, 진보주의자들은 세 가지 기반의 도덕성을 가진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여섯 가지 기반 모두를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진보의 도덕 매트릭스는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기반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단 진보주의자들은 공평성 (비례의 원칙)이 동정심이나 압제에 대한 저항과 상충할 때에는 공평성은 버리고 그 대신 이 둘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주의자의 도덕성은 여섯 가지 기반 모두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에 비해서 배려기반을 희생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다른 도덕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해를 입는 사람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335
• 도덕성 기반에 우리는 자유/압제 기반을 추가했다. 이 기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배의 표시가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그것을알아차리고 의분을 느낀다. 불한당과 독재자에게 저항하거나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 같이 뭉쳐야 한다는 욕구도 여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이 기반을 잘 알면 자유주의자와 일부 보수주의자가 왜 "나를 짓밟지 마라" 식의 반정부 감정을 가지는지는 물론, 좌파의 평등주의와 반권위주의도 이해할 수 있다. • 우리는 공평성 기반에 수정을 가해 그것이 비례의 원칙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공평성 기반이 호혜적 이타주의 심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험담과 징계가 가능한 도덕공동체를 만들어내고부터는 공평성 기반이 짊어진 의무가 훨씬 많아졌다. 사람들 대부분은 심층적인 직관 차원에서 인과법칙을 중시한다. 사기꾼은 벌을 받고 착하게 살아가는 시민은 응분의 보상을 받기를 사람들은 대체로 기대한다. - P337
이렇게 수정을 가하자 근래 들어 민주당이 골몰해온 커다란 수수께끼 하나를 이 ‘도덕성 기반 이론‘을 통해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문제란 바로 왜 미국의 시골 주민과 노동 계층은 일반적으로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분배를 통해 국민들에게 좀 더 공평하게 돈을 나누어주고자 하는 쪽은 오히려 민주당인데도 말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반하는 식으로 투표하는 것은 공화당의 농락에 넘어간 때문이라고 곧잘 이야기한다(2004년의 인기작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What‘s theMatter with Kansas?))의 주된 논지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도덕성 기반이론‘에서 보면, 시골 지역과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은 사실 자신들의 도덕적 이해에 따라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입맛은 ‘더 트루 테이스트‘ 식당에는 맞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자신의 나라가 피해자들을 돌보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만 매달리는 것도 원치 않는다. 뒤르켐의 사회관을 비롯해서 여섯 가지 기반의 도덕성과 세 가지 기반의 도덕성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민주당은 사람들이 공화당에 투표하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책 1부에서 나는 도덕심리학의 첫 번째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라는 것이다. 2부에서는그러한 직관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설명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도덕심리학의 두 번째 원칙을 제시했다.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 다양한 도덕성 때문에 좋은 사람들 사이에 너무도 쉽게 편이 갈리는 모습을 살펴볼 차례이다. 이렇게 편이 갈라지면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는않고 적대적으로 싸우기만 한다. 이제 우리는 도덕심리학의 세 번째원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준비가 되었다. 바로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라는 것이다. - P337
이 이야기를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해보자. 내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또래와의 경쟁에서 자신의 이익을 능숙하게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갖가지 정신 기제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인간 본성이 이집단적이기도 하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타 집단과의 경쟁에서 우리 집단의 이익을 능숙하게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갖가지 정신 기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인(聖人)은 못 되어도 더러 훌륭한 팀플레이어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면, 이집단성의 기제는 과연 어디서 생기는가가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오늘날 우리가 집단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까닭은, 먼 옛날 집단적인 개인들이 한 집단 내의 그렇지 못한 개인들을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면 이는 표준적이고기본적인 자연선택이 그저 개인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에 지나지않는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의 집단성은 글라우콘이 말한 식일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실제로 집단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의 가정이 아니라고 하면, 국기 주위에 몰리기 현상(rally-round-the-flag)에서 보이듯이, 우리가 집단성 기제를 가진 것은 함께 뭉쳐 협동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고 하면, 나는 이른바 ‘집단선택‘의 개념을들먹이는 것이 되는데, 이 집단선택의 개념은 1970년대에 학계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혀 추방된 바 있다. - P344
다윈은 이때 이미 오늘날 다차원 선택(multi-level selection)이라고 알려진 개념의 기본 논리를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큰 인형을 열면그 안에 작은 인형들이 연달아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처럼, 생명은여러 차원이 위계 서열에 따라 겹겹이 포개진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유전자는 염색체 속에 들어 있고, 염색체는 세포 속에 들어 있으며, 세포는 개별 유기체 안에 들어 있고, 개별 유기체는 벌집이나 인간사회 등 각종 집단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경쟁은 이러한 위계 서열의 어느 차원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된 목적을 생각하면(도덕성 연구), 여기에서 중요한 차원은 딱 두 가지, 개별 유기체와 집단뿐이다. 집단 간 경쟁이 벌어질 때에는 보통 단결력과 협동심이 좋은 집단이 이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각 집단에는 저마다 이기적인 개인들(무임승차자)이 있어 결국에는 이들이 이득을 챙겨가지 않는가. 제일 용맹스러운 부대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맞지만, 제일 용맹스러운 부대 안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 즉, 몇몇겁쟁이가 전장에서 몸을 사리고 살아남아,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다차원 선택은 결국, 각 차원에서 선택 압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느냐, 즉 삶의 경쟁이 특정 특성들에 대해 어떤 유전자를 더 선호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 P348
하지만 초창기 인간들이 애초 그런 집단 형성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였을까? 이에 대해 다윈은 인간이 팀플레이어들로 구성된 집단을 출현시키기까지 거쳤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가능성 높은단계‘를 제시한다. 첫 단계는 ‘사회적 본능‘이었다. 아득히 먼 옛날에는 혼자 있기 좋아하면 포식자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았다. 집단 가까이에 머무는 충동이 강해 남들과 잘 무리를 짓는 사람들은 잘 살아남고 말이다. 두번째 단계는 호혜성이었다. 사람들은 전에 남을 도운 적이 있어야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그것을 얻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성 덕목을 발전시키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자극제‘는 따로 있으니, 바로 사람들은 ‘동료들의 칭찬과 책망‘에촉각을 곤두세운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에 살며 글을 썼지만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었던 글라우콘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의 평판에 강박적일 정도의 관심을 갖는다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 이런 강박증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자연선택이개인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생기는 것이었다. 즉, 나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거나 영예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이나 배우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다윈은 한 가지 단계를 추가한다. 즉, 사람들에게는의무나 원칙을 신성시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 인간의 종교적 본성 일부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이 단계들을 하나로 합쳐놓고 보면 초창기 유인원이 어떤 길을 거쳐 인류로 진화했는지 그 모습이 그려지는데, 인류로 다 진화한 시점에서는 인간에게 무임승차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도 명예· 충성심 · 조국이 그 무엇보다 신성시되는 만큼, 사실 겁쟁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될 확률은 그다지높지 않다. 이런 이들은 군대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구타를 당하거나 낙오하거나 아니면 부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동료 병사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을 확률이 가장 높다. 설령 전장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의 평판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여자들은 물론 장차 고용주가 될 사람까지도 그를 멀리할 것이다. - P349
윌리엄스가 주목했던 사실은 특정 차원에서 적응이 일어날 때는 항상 그 차원에서 선택 (설계) 과정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떤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저차원(이를테면 개체)의선택 효과로 충분히 설명된다면 굳이 고차원(이를테면 집단)까지 눈을돌릴 필요가 없다고 그는 독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논의 전개를 위해 윌리엄스는 사슴의 뜀박질 속도를 사례로 든다. 사슴들이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 속도가 빠른 무리가 마치 한 단위처럼 움직이며 이따금 경로까지 다 같이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리의 그런 행동을 보고 우리는 보통 집단선택에기대어 그것을 설명하곤 한다. 속도가 느린 무리보다 속도가 빠른 무리가 포식자를 피해 잘 달아난 세월이 벌써 수백만 년에 이를 것이고, 그러다 보니 속도가 느린 무리는 점차 사라지고 그 대신 속도가빠른 무리가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윌리엄스는 지적하길, 사슴의 경우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는 능력은 개체 차원에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즉, 선택 과정은 개체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 속도가 느린 사슴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힌 반면, 같은 무리에 있더라도 속도가 빠른 녀석들은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이렇게 설명이 되는 만큼 굳이 선택에 무리 차원을 끌어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사슴 무리가 빠른 것은 다름 아니라 빠른 사슴들이모여 있기 때문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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