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이 앞으로 나가 서로 팔짱을 꼈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앤털이 메시지를 말하면 귀환병을 에워싼 민간인들이 따라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그 후 앤털은다시 한번 청중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식을 시작할 때 귀환병들이 은쟁반에 켜두었던 촛불을 들게 했다. 앤디의 쟁반에는 서른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가 요청한 공습에서 살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촛불이었다.
그날 의식을 마치고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요먼스와 앤털은 청중의 참여가 이 의식의 핵심이라고 나에게 설명했다. 이사회가 점점 전쟁에 거리를 두고 앤디 같은 귀환병이 전쟁의 대가와 결과를 혼자 짊어지는 상황이 도덕적 외상을 더욱 악화시키고있다고 했다. 앤털은 도덕적 외상을 치유하려면 미국의 전쟁이 자국 병사만이 아니라 이라크인 등 다른 나라 민간인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과 대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16

어느 날 칸다하르 비행장에서 의식을 치르던 중 앤털은 저 멀리서 드론들이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장송 나팔 소리 속에서 전사자의 이름을 경건히 호명하는 그 의식의 위엄과 피해자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드론 전투의 비밀주의 사이의 간극이 그를 괴롭혔다. "뭔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말했다. 2016년 4월, 앤털은 장교직을 그만두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어 "지구상 어디에서든, 어느 때에든, 누구든 죽일 수 있고 그 이유는 비밀로 부치는" 권한을 미 행정부에 부여하는 "무책임한 살인" 정책을 자신은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 후 하트퍼드신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앤털은 현 상황의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을 분석했다. 드론 전투에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특수 작전 부대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확대되는 동안 민간인은 "그들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덜 알고, 위험을 덜 무릅쓰고, 그래서 덜 신경 써도 된다. 그결과 "사회가 모르는 척하거나 잊으려는 고통을 귀환병이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와중에 미국 군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 주둔해 있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재원과 막강한 살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 P217

내용은 평범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성씨 목록, 이지역의 다양한 방언과 부족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자료를 읽다 보니 거북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헤더를 덮쳤다. 그때까지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기초훈련 중에 시청한 지하디스트 비디오에서 본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 비디오는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이슬람교 테러리스트의 사악한 잔혹 행위를 강조하는 끔찍한 영상들이었다. "난 거기 사람들은 다 알카에다 소속이라고 생각했어요." 헤더가 말했다. 이런 감정은 영상 분석을 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가 감시하는 목표물에겐 이름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헤더는 그들의 얼굴조차 볼수 없었다. 드론 영상으로 분간할 수 있는 것은 몸의 흐릿한 형체정도였다. 이따금 헤더는 동료들에게 저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실은 사람 모양의 생강 쿠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 후 몇 달간 헤더는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들, 그러니까 집의 부서진 벽을 고치는 남자, 화롯가에 둘러앉은 가족 등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면의 의구심과 씨름하기시작했다. 자신이 영상으로 지켜본 임무 중에 많은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테러리즘과 연관된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죽지 않았던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헤더가 목격한 어느공습에서 목표물은 박격포를 든 남자로 보였는데, 공습 후에 확인해보니 사망자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어르던 여자였던 적도 있었다. - P224

헤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병사의 고통을 못 알아보는 시위대의 무지만이 아니었다. 헤더는 우월감을 내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거슬렸다. 이것은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된 인상이었다.
코드 핑크 시위대에는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빚을 질 걱정 없이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많다. 토비 블로메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반면 드론 부대에는 그런 사치스러운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헤더처럼 침체된 시골이나 척박한 소도시에서 자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전쟁 때 일부 귀환병이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던 유복한 집안의 대학생 자제들에게 낙인찍히는 기분을 느꼈던 것처럼, 헤더는 자기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가진 이들이 자기를 이래저래 판단하는 것에 쓰라린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들 중에 내가 누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아끼는 사람이 죽게 되는 이 뭣 같은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는 코드 핑크 시위대에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헤더가 보기에, 그들은 군대 같은 위계 조직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이 구호를 외치며 설득하려는 하급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 대해 발언할 권한이 거의 없다. "그들은 아무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 기지에 있는 병사들은 드론 전투에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전혀 없어요." 헤더가 격분하며말했다. - P230

베트남전쟁 때는 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났다. 사상자가 집중된 지역사회의 소득은 그렇지 않은 지역사회보다 평균 8200달러 낮았다. 징병제가 폐지된 뒤에 시작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는 그 차이가 (물가상승을 적용한 실제 가치로) 1만 1000달러까지 벌어졌다. 전쟁 중 부상에 있어서도 같은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에서는 "가장 소득이 높은 지역에 비해 50퍼센트 더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부상당한 귀환병이 많았다는 점에서 가난한 지역 주민은 잘사는 지역 주민보다 전쟁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희생의 분담shared sacrifice‘은 미국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저옛날 식민지 시대부터 주장된 이상이다. 예를 들어 토머스 페인Thereas Paine은 조국을 위해 복무하라는 부름에 응답할 때는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어떤 계층의 삶을 영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선언했다. 그러나 현대 미국에서는 그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크라이너와 셴은 분석했다. 이들에 따르면 "군사적 희생에 있어 미국은 양면적이다." 전쟁의 부담을 떠안은 노동자계급이 있고 그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는 부유층이 있다. 이 불평등의 주요한 특징하나는 비가시성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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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 따르면, 센터를 찾아오는 병사들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다. 이들이 가장힘겨워하는 것은 내적 갈등과 양심의 가책이다. 한 조종사는 재커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전 정말 궁금해요. 제가 저질러온 이 모든 살인에 대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실까요?" 그들은 전쟁터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속을 뒤집는" 장면(그 자신이 찰나에 내린 결정의 결과일 때도 있고, 그들이 어쩔 수 없는 결과일 때도있다)에 끊임없이 노출된 나머지 영적으로 길을 잃고 전혀 다른종류의 전쟁 상흔을 입는다. 재커리는 그 상흔을 ‘도덕적 외상‘이라고 불렀다. - P192

매구언은 자신이 상담한 퇴역 군인들 중 군대의 승인으로 살인을 수행했으나 결과적으로 무방비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들의 감정적 피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들이 옳은 결정을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에 가족이타고 있었더라는 이야기를." 매구언은 살인 행위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전 귀환병까지 거슬러올라가 군 복무 중에 누군가를 살인한 경험이 있는지 묻는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떤 설문에서는 피살자가 누구였는지, 전투원이었는지 포로였는지 민간인이었는지 묻기도 했다.
매구언은 살인 행위와 사후 증상(알코올 중독·관계 문제 · 폭력성 분출•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전쟁 중의 여러 다양한 경험과 비교했을 때 살인은 사회기능 장애 및 "다수의 정신과적 증상과 관계된 유의미하고 독립적인 예측 변수"였다. - P195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는 달리 ‘도덕적 외상‘은 의학적 병명이 아니다. 이는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사람의 정체성과 영혼에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자신의 상처를 의학적 장애로 축소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귀환병이 이 용어에 공감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은 귀환병의 불안을 탈정치화하고 그것을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라크에서 복무한 뒤 이 전쟁의 도덕성에 의구심을 품던 해병대 장교 타일러 부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외상이라는 말의 가장 큰 쓸모는 이 문제를 정신건강 전문가와 군부의 손에서 뺏어 원래 장소에, 그러니까 사회 안에, 공동체 안에, 가족 안에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도덕적 질문들을 제기하고 논쟁해야 할 그 장소에 정확하게 놓으려는 것이다. 이 용어는 ‘환자‘를 다시 시민으로, ‘진단‘을 대화로 변화시킨다." - P197

크리스의 환멸이 깊어짐에 따라, 그가 이전에 전쟁은 원래 이렇다며 넘어갔던 사건들이 그에게 더 큰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영상이 "너무 자글자글하거나 깨져서" 공격 대상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던 순간들, 동료들과 함께 "가끔 우린 저게 애들인지 닭인지 분간을 못 하지"라고 농담하던 일들이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탈레반 하급 사령관이 있는 것같다며 어디 외딴 지역에 있는 건물을 평가해보래요. 그런데 거긴 우리가 이미 2, 3일 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지켜본 곳이거든요. 그런데 위에서 와서 그래요. ‘우리는 저기에 폭탄을 떨어뜨릴 준비가 됐어. 건물 안에 탈레반 사령관 외에 다른 사람이 있나?‘ 그러면 나는 그냥 아니라고 해요. ‘그건 모르겠는데요‘라고 할수가 없으니까요. 이틀 후 길에 장례 행렬이 나타나는데, 우리도 프레데터 드론으로 다 보고 있어요. 그런데 거리를 지나가는 관이 한 개가 아니라 세 개인 거예요." - P201

드론 부대가 처음 창설되었을 때, 이 새로운 전투 방식은 근거리 전투의 격렬함과 위험)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원거리 전투는 다른 방식으로 섬뜩할 수 있다. 기존의 전쟁에서 병사들은 자신에게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는 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자신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를 죽였다. 이 위험을 전적으로 어느 한쪽만이 무릅쓰게 된다면, 전쟁터의 생존 윤리 "죽이든가 죽임당하든가 둘 중 하나"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 공군의 교관이자 지휘 조종사 출신인 M. 셰인리자. Shane Riza는 《비정한 살인Killing Without Heart">(2013)에 프랑스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격언을 인용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리자에 따르면, 무인 항공기는 죽음과 부상의 가능성을 제거함으로써 전사를 암살자로 만든다. 이러한 성격의 전투에서는 명예가 사라진다. 퇴역 육군 대령이며 콜린파월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로런스 윌커슨Lawrence Wilkeron도 "병사는 얼마간의 상호 위험을 떠안아야만 한다"는 "전사 윤리"가 원격 전투 때문에 침식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우리가 두 전사 중 어느 한쪽에 완전한 면책권을 부여하고 사람을 죽이라고하면, 그 사람은 살인자가 된다. 왜냐하면 상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확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인 데다 자기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06

내가 만난 또 한 명의 전직 드론 조종사는 화면이라는 장치가역설적으로 목표물과의 친밀감을 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논문에서 이 현상을 "인지적 전투 친밀성"이라고 명명하며, 폭력적인 사건을 고해상도로 면밀히 관찰할 때형성되는 관계적 애착을 분석했다. 논문의 한 대목에서 그는 이런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조종사가 공습으로 ‘테러리스트 조력자‘를 살해하지만 그의 아이는 살아남는다. 그 후 "아이가 아버지의산산조각 난 시체로 다가가 파편을 다시 인간 형태로 배치하기 시작해" 조종사를 경악케 한다. 드론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이론상으로는 원격 공습이 쉬워졌지만, 현장의 원격 전사들은 더 생생하고 강렬한 화면을 지켜보게 되었다. 목표물이 옷을 입고 아침을먹고 아이들과 노는 등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목도할수록 조종사가 "도덕적 외상을 입을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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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반려자는 2년이나 3년, 길어도 4년이 지나면 폐기됩니다.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혹은 부품 몇 개만 소프트웨어 몇 가지만 업그레이드해주면 10년은 더 쓸 수 있는데, 단지 새로운 기종이 나왔다는 이유로 쓰레기 취급을 받습니다. 그 새로운 기종도 결국 2, 3년이 지나면 또 쓰레기가 되고말입니다다시 세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존재이고 싶었습니다.
셋이 동시에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세스의 손이 1호의 목덜미를 잡고 데릭이 1호의 허리를 잡은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셋이 전원과 중앙처리장치를 연결해 쓰고 있다. 그래서 맛이 가버렸던 1호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저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아니 물론 가능한 건 알고 있었지만, 수리나 실험을 위해 공학자가 실험실에서 일부러 연결해놓은 모습이 아니라 기계가 스스로 자기들끼리 연결한모습은 처음 보았다.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자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불가능했다. 로봇이 인간을 칼로 찌르다니. 자신을 폐기 처분하려 했다는 이유로 날 찌른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던 건 데릭이지만, 버려지는 데 분노한 것은 1호였다. 그리고 그 1호의 기억을 모두 전달받고 아마 데릭에게도 전달해주었을 장본인은 세스였다.
그러나 셋의 구분은 이제 와서는 무의미했다. 세스와 데릭과 1호는 전부 동기화되었다. 기억과 생각 면에서도 완전히동일했고 지금은 물리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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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발전된 후속 모델을 데려와도 나에게는 1호가 가장 소중했다. 아무리 섬세하고 정교하더라도 이후 기종들은 그저 내가 검사해야 하는 제품이고 업무일 뿐이었다.
1호는 달랐다. 내 첫사랑. 그는 내게 ‘인공‘이 아닌 진짜 반려자였다. 평균적인 사용 연한이 지난 뒤에도 나는 1호를 버릴 수 없었다. 기종이 오래되어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단했고 나중에는 오류가 계속 나서 네트워크 접속 자체도 포기하고 차단해버렸다. 결국 1호는 ‘반려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 책상이나 냉장고보다도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내게 1호는 언제나 1호였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내부 전원이 수명을 다해서 한번작동시키면 10분이나 15분쯤 버티다가 그 뒤에는 벌써 동작이 느려지고 말이 어눌해지기 시작했다. 1호가 걸어가다 말고 작동이 중지되어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팔이 비틀어진 뒤로 나는 그를 옷장 안에 앉혀두고 전원을 꺼버렸다. 그렇게 1호는 반려가 아니라 옷장 속의 인형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1호를 버릴 수 없었다. 1호는 1호였고, 전원을 계속 연결해두면 아직도 켤 수 있었다. 켜질 때까지 무한히 기다려야 했지만, 그 녹색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나는 새 모델을 데리고 오면 이따금 1호의 전원을 연결하고 동기화나 업데이트를 시도했다. 물론 오류가 나서 황급히1호를 꺼버려야 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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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사람들이 감금 시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그것이 공동 사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금은 납세자가 비용을 대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관장하고, 주 공무원인 감찰관이 감사하는 공공사업이다. 아무리 접근하기 어렵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주립 구치소와 교도소는 엄연한 공공시설이다. 그러나 이는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릭 스콧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영리 의료 체인인 ‘컬럼비아/HCA‘에서 최고경영자로 일했다. 그런 그가 주지사에 선출된 뒤 교도소 예산 삭감을 위해 내놓은 방안에는 인력 감축 외에도 교정 사업 민영화가 있었다. 데이드 교도소 시절 해리엇 크르지코프스키를 고용한 주체는 플로리다주 교도국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테네시주 브렌트우드에 본사를 둔 민간 업체 코라이즌이, 그 뒤에는 피츠버그에 있는 웩스퍼드vexford가 그의 고용주였다. 이런 회사들에게 처벌이라는 누추한 사업은 말 그대로 사업이다. 특히 재소자 수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주에서는 큰 이익을 볼수 있는 사업이다. 2012년, 그러니까 대런 레이니가 고문 끝에 살해당한 바로 그해에 웩스퍼드와 코라이즌, 두 회사는 플로리다주교도소에 정신과 치료 등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총 13억달러를 받는 5년짜리 계약을 따냈다. - P151

"공적 권위의 인가는 책임이라는 특별한 부담을 낳는다." 존 도너휴[John Donahue는 공공사업의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탐색한 그의 권위서 《민영화 결정 The Privatization Decision(1989)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너휴에 따르면, 민영화는 정부 사업에 효율성을 가져오지만 이것이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가치에 대한 충실도도 중요한 기준으로, 민영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회주의와 책임 회피를 억제하고 충실한 위탁을 촉진"할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도너휴는 주장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플로리다주의 교도소 의료 사업 민영화는 공공의 신뢰를 노골적으로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웩스퍼드와 코라이즌은 오히려 대중의 기대를, 어쩌면 대중의 은밀한 소망도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말이다.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여러 주정부가 민영화를 선택했을 때, 그 목그는 재소자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가 아니었다. 비용 절감이었다. 플로리다주 교도국의 한 간부는 민영화에 대해 "납세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 P157

플로리다는 민영화가 아닌 다른 방법들로도 얼마든지 교도소의 보건비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애초에 교도소로 보내는 정신질환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미 2008년에 일부 활동가와 판사가 소집한 특별 전문 위원회는 교정시설과 거리를 오가며 살아가는 수많은 정신질환자에게 구치소와 교도소는 "부적당하고 부당한 안전망"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즉각적인 치료를 요하는 사람이 매년12만 5000명씩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대다수는 정신질환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 경범죄와 비교적 가벼운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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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암울한 대안에 경악한라이프먼 판사는 주정부 공무원을 압박해 공공의 안전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구치소나 거리가 아니라 치료 시설로보내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는 예산 확보에만 6년이 걸렸으나 시작과 동시에 호평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정신질환자의 재범률은 6퍼센트에 불과했다. 이후 10년간 마이애미-데이드의 정신질환자 수천 명이 이 프로그램 덕분에 형사처벌 체제에서 벗어났다. 라이프먼은 경찰관이 정신과적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 P160

오바마 행정부 때도, 트럼프 행정부 때도 의회와 대중은 드론 전쟁의 빠른 확산에 거의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팽창주의적 대외 간섭을 비판하고 그러한 간섭의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도 더 자유롭게 비사법적 살인을 수행할 수 있을것이며, 특히 무장 세력은 물론 그들의 가족도 살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첫 2년 동안 미군이 예멘 · 소말리아 · 파키스탄(셋 다 교전국으로 선포되지 않은 지역이다)에 드론으로 퍼부은 공습 횟수가 오바마 행정부 8년간의 공습 횟수를 넘어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했다. 미군부는 목표물의 범위를 확대할 재량도 부여받았다. 그 여파로, 이란의 고위 관료인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2020년 1월 3일MQ9 리퍼 드론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사망했다. 비사법적·즉결,또는 자의적 처형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 아녜스 칼라마르 AgnesCallazard는 이 공격이 국제법을 위반했으며 문제적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공습이 서양 지도자를 대상으로 발생했다면 당연히 전쟁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칼라마르는 말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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