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매일 이 방들을 살피고 먼지를 턴답니다. 다시 오시고 싶거든 말씀만 하세요. 내선 전화를 거시면 되지요. 언제든 안내하겠습니다. 하녀들은 여기 못 오게 했습니다. 오로지 저만 출입하는곳이지요."
다시금 기분 나쁘게 다정한 말투였다. 얼굴에 머금은 미소는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주인어른이 출타하시고 혼자 외로울 때면 이 방에 와서 앉아 계시고 싶은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정말 아름다운 방이니까요. 이 방을 보면 그분께서그렇게 오래전에 떠나셨다는 걸 전혀 모르겠지요? 잠시 외출했다가 저녁이면 곧 돌아오실 것 같지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 안이 바짝말라 있었다.
"비단 이 방뿐만이 아닙니다. 거실, 홀, 정원 곁방까지 전 여러곳에서 그분을 느낀답니다. 어떤가요, 마님께서도 그렇죠?"
댄버스 부인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어느덧 속삭임에 가깝게 낮아졌다. "때로 이 복도를 따라 걷노라면 그분께서 바로 뒤에서 따라오신다는 기분이 들죠. 그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저는 그 발소리를 확실히 알고 틀림없이 구분해낸답니다. 또 홀 위쪽 발코니에서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개들을 부르던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요. 저녁 식사 하러 계단을 내려가는 그분의 옷자락 소리도 종종 들을 수 있어요"
부인은 여전히 나를 응시한 채 잠시 말을 멈추더니 느릿느릿 덧붙였다. "어쩌면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를 보고 말을 걸고 계신 것은아닐까요? 죽은 사람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와 산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모르겠어요." 내 목소리는 어색했고 이상하게 톤이 높았다. 평소의 내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전 때로 그런 생각을 한답니다. 그분께서 맨덜리로 되돌아와 당신과 드윈터 씨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 P265

맥심의 할머니는 간호사가 하는 대로 가만히 참고 있었다. 피곤한 듯 눈을 감았는데 그러니까 훨씬 더 맥심과 비슷했다. 젊었을때의 할머니는 어땠을까? 키 크고 잘생긴 부인이 주머니에 설탕을 넣고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린 채 마구간을 누비는 모습이 그려졌다. 꽉 졸라맨 허리에, 목깃이 높게 달린 옷을 입었겠지. 2시까지마차를 준비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일이었다. 할머니는 벌써 40년 전에 남편을, 그리고 15년 전에는 아들을 떠나보냈다.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마지막 날까지 간호사와 함께 이 벽돌집에서 살아야 한다. 노인들의 심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 아이들이 어떤 두려움과 희망, 믿음을 가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제까지 아이였으니 기억이 생생한 것이다. 하지만 눈이 먼 채 숄을 두르고 저렇게 앉아 있는 맥심의 할머니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 걸까? 비어트리스가 하품을 하며 연신 시계를 보는 것을 알까? 우리가 그저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찾아온 것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자, 이걸로 석 달 동안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아도 돼‘라고 혼잣말하리라는 걸 알까?
가끔은 맨덜리를 떠올릴까? 내가 앉는 식당에 앉았던 것을 기억할까? 할머니 역시 밤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셨을까? 모든 것을다 잊어버린 채 그저 조용하고 파리한 얼굴로 소소한 통증과 소소한 불편만 느끼는 것일까? 햇살이 따뜻하면 기뻐하고 바람이 차면 질색하면서? - P282

식당으로 내려가 내 자리에 앉은 채 식탁 맞은편에 앉은 맥심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자리에 레베카가 앉아 생선 포크를 집어드는 모습을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프리스가 들어와 ‘파벨 씨가 전화하셨습니다. 마님‘이라고 전하는 모습을, 이어 레베카가 홀깃 맥심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맥심은 아무 말없이 식사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통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레베카는 미묘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으리라. 처음에는 마지못해 짧게 대꾸하던 맥심은 결국에는 레베카가 유머를 섞어 전하는 하루 일과, 어딜 갔었고 누굴 만났고 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다음번 요리를 다 먹을 때쯤이면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미소 지으며 식탁 위로 손을올려 아내의 손을 잡았겠지.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맥심이 물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먹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그러니까 한 60초가량이 흐르는 동안 나는 레베카와 나를 동일시한나머지 멍청하게도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몸과 마음 모두로 이제는 지나가버린 시절을 경험한 셈이었다.
"생선 요리를 먹는 대신 당신이 얼마나 신기한 행동을 했는지알아요?" 맥심이 말했다. "처음에는 마치 전화벨 소리를 듣는 듯귀를 기울이더군. 이어 입술을 살짝 움직이며 나를 흘낏 쳐다봤소.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지. 이 모든 행동이 한순간에 일어난 거요. 가장무도회에서 할 행동을 연습이라도 하는 거요?" 그는 웃으면서 나를 건너보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다면, 그 짧은 순간 동안 그는 과거의 맥심이었고 나는 레베카였음을 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 "마치 범죄자 같은 표정이군. 무슨 일이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요."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 P309

초상화에 나온 드레스는 내 옷과 완전히 똑같았다. 부풀린 소매, 좁은 몸통과 리본,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챙 넓은 모자는 물론이고 구불거리며 얼굴 위로 늘어진 머리카락까지도 똑같았다. 그렇게 흥분된 것은, 또 그렇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손짓을 한 뒤 손가락을 입에대어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발코니를 건너 내 쪽으로 왔다.
"북을 좀 쳐주세요. 그리고 ‘캐럴라인 드윈터이십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주세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거든요."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뺨이 달아올랐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얼마나 유치한, 하지만 유쾌한 한바탕 놀이인가! 아직도 몸을 웅크리고 복도에 숨어 있는 클래리스에게 나는 미소를 보냈다. 다음 순간 북소리가 홀에 울렸다. 그소리를 기다리던 나조차도 순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캐럴라인 드윈터이십니다!" 북 치는 악사가 외쳤다.
나는 계단 앞쪽으로 걸어 나가 그림 속 소녀처럼 모자를 손에들고 서서 미소 지었다.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박수 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 P329

모든 면에서 올았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던진 말,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라는 그 말은 밴호퍼 부인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이성적이고 진실한 말이었다. 맥심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나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신혼여행도 이곳 맨덜리에서의 생활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다.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남자고 나는 그의 어린 아내이고 그리고 그는 외로웠다는 사실뿐이다. 그는 내게 조금도 속해 있지 않다. 온전히 레베카의 것이다. 아직도 레베카 생각을 한다. 레베카가 있으므로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댄버스 부인 말대로 레베카는 아직도 이 집 안에 있다. 서쪽의 침실에, 서재에, 거실에, 홀 위쪽 발코니에 정원 곁방에도 아직 레베카의 비옷이 걸려 있지 않은가. 정원에, 숲에, 해변의 돌집에도 레베카의 발소리가 복도를울리고 그 향수 냄새가 계단에 어려 있다. 하인들은 여전히 그 명령에 복종하고 우리는 레베카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는다. 레베카가 좋아했던 꽃들이 방에 놓인다. 그 침실 옷장에 걸린 옷들, 화장대 위의 머리빗, 의자 아래의 슬리퍼, 침대 위의 가운...... 레베카는 아직도 맨덜리의 안주인이다. 여전히 드윈터 부인이다.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것이 다 보존되어 있는 이곳을 비틀거리며 헤매는 불쌍한 바보에 불과하다. 맥심의 할머나는 울부짖었지. ‘레베카는 어디 있는 게야? 레베카를 보고 싶어. 레베카를 대체 어떻게 한 게야?‘ 할머니는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니까 난 맥심에게도, 맨덜리에도 속해 있지 않으니까 처음 만났을때 비어트리스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직설적으로 말했지. ‘당신은 레베카와 너무도 다르군‘ 늘 예의 바른 프랭크는 내가 레베카 이야기를 꺼내자 당황했고 내 질문들을 싫어했어. 그리고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지. 그렇습니다. 제 평생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라고.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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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내내 사회의 가치에 반기를 들었던 예술가들은 주로 서양의 시각 언어를 이용했는데, 그런 작품을 본 서양 비평가들 중 일부는 그것을 모방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서양의 시각언어가 힘이 있었던 것은 그저 그것이 금지된 것이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쓰는 것은 계산된 행동이자 유의미한 행동이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그냥 베꼈다거나 미켈란젤로가 고전 조각을 그냥 베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중국 전위화가들이 서구 양식을 그냥 베끼기만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형식은 비슷하고, 언어는 모방적이지만, 의미는 다르다. - P161

전통 중국 회화는 스승을 모방함으로써 훈련했다. 독창성은 노년을 위해서 남겨 두는 것, 그때도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아주 살짝만 바꾸는 것이었다. 전통 회화의 역사는 풍성하지만 느린데 비해, 전위는 맹렬한 속도로 전진한다. - P166

최근 서양에서 구더신의 작품이 포함된 전시회가 끝났을 때, 작품을 포장하던 사람들이 구의 작품을 포장지와 혼동하는 바람에 실수로 그의 작품을 내버렸다. 「내 작품이 그렇게 폐기된 게 좋습니다. 세상에는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예술 작품이 안 그래도 많아요. 나까지 예술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구더신의 이 말에 나머지 두 명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에게 비개인성이란 거의 무의식적인 충동이다. 중국 예술가들이 서양 예술가들의 끔찍한 자기 과대평가와 자기 중심주의라고 여기는충동의 정반대에 있는 충동이다. - P167

6월 4일 이후 장과정의 정체성은 바뀌었다. 장은 말했다. 「학살직전에는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시위 함성에 귀가 멀 듯했죠. 그러다 탱크가 왔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그 침묵이 탱크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장과 경은 학살 피해자의 모습을 커다랗게 그런 뒤 밤중에 그림을 육교에 내걸었다. 「당신도 만약 길 건너편에서 누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면, 앞뒤 잴 것 없이 건너가서 살인자를 막으려 들겁니다. 그런 거였죠.」 장의 말이다. 이후 두려워진 그들은 시골로 내려가서 숨었고, 내내 언제라도 붙잡혀 투옥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명 뉴스 진행자가 더없이 무표정한 태도로 학살을 보도하는 것이 유달리 역겹게 느껴졌다고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여성에게 할 말을 적어 주는 사람이야말로 중국인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고, 따라서 그 여자는 사방에 있었죠. 나는 그녀에게, 나아가 모든 중국인이 그녀를 통해서 정부를 이해한다는 사실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그녀에게 접촉했습니다. 돈을 줄 테니까 백과사전의 한 대목을 읽어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필 백과사전이었던 것은 그녀의 편도 아니고 내 편도 아닌, 완벽하게 중립적인 텍스트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녀는 중간에 낀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그녀를 속이는 데성공했습니다. 백과사전의 물 항목을 읽어 주면 그 낭독을 물과 꽃에 관한 전시회에서 쓸 예정이라고 말했죠. 중국 정부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던 그 여자는 결국 내가 고른 텍스트를 읽어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 일에서 엄청난 힘을 경험했습니다. 비공인 예술가로체포 위험을 겪어 온 내가 국가의 공식 상징을 이렇게 쉽게 조작할수 있다니. 그리고 그 일은 우리 사회에서 돈의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쉽다는 게 얼떨떨했습니다. 이렇게 술술 풀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 P169

우리는 문화 혁명이 중국 지식인에게 끔찍한 시기였다고 단정하기 쉽다. 많은 지식인이 살해되었고, 아니면 광산이나 공장이나 시골 농장으로 보내져서 강제 노역을 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러시아 사람들이 스탈린을 언급할 때나 루마니아 사람들이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들었을 때 드러내는 진저리 치는 혐오감을 접할 수없다. 전위 미술계 내에서도 마오 주석에 대한 애정은 비록 양가적일지언정 확고부동하다. 「반대했던 사람들마저도 어느 정도는 그를 믿었으니까요」 어느 늦은 밤 차를 마시면서 한번은 라오 리가말했다. 그는 혁명 초기에 반혁명 분자로 몰렸던지라 혁명 기간을거의 감옥에서 보냈다. 「마오는 아주 설득력 있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지식인들은 정말 스스로를 한심한 존재로 느끼게 됐습니다. 문화 혁명 때 사람들은 순수하고 완벽한 사회를 건설할 생각에 푹빠져 있었죠. 나는 그들의 그 이상에 반대했고 맞서 싸웠습니다만, 그리고 지금이라도 똑같이 싸우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상업주의 사회에는 그에 필적하는 이상이 없다는 겁니다. 방향이 틀린 이상이라도 아무런 이상이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 P174

그러나 내가 슬쩍 분노를 떠보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마오 주석을 부정하는 것은 나 자신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전위 예술가들의 대리인인 홍콩의 딜러 존슨 장은이렇게 말했다. 「불행한 유년기 같은 겁니다. 사람이 평생 그 기억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고 남에게 그것을 경험하게 만들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기억을 깡그리 저버린다면 가식적이거나 불완전한 인간이 되겠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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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끝이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두 번 다시 그 일을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차를 마시며 내 쪽을 보고 미소 지었고 손잡이에 걸쳐져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 미소는 내가얻어낸 보상이었다. 재스퍼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보상이듯이 말 잘 듣는 개라면 만족하고 엎드려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재스퍼가 되었다.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핫케이크를 한 장 집어 반으로 나눈 뒤 개들에게 주었다.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온몸의 기력을소진한 듯 피곤했다. 맥심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신문에만 열중한채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핫케이크를 자르느라 손가락에 버터가 묻어 엉망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손수건이 나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골똘히 그 레이스 달린 작은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리스가 홀의 돌바닥에서 그걸 집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비옷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손수건을 뒤집어보았다. 옷에서 보푸라기가 묻어 지저분했다. 오랫동안 그 비옷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쪽 끝에 길고 비스듬한 R 자가 W 자와 함께 겹쳐서 수놓여 있었다. 다른 글자들을 압도하는 바로 그 R이었다. R 자의 꼬리는 수건 바깥까지 뻗쳐나가려는 듯 길었다. 하찮은 손수건 한 장이었으므로 원래 주인은 대충 뭉쳐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렸으리라.
그러니까 나는 그 손수건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후 처음으로 그비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레베카는 길고 늘씬하고 어깨가 나보다넓었다. 내게 그 옷은 너무 크고 길었으며 소매가 손까지 내려왔다. 단추 몇 개는 떨어지고 없었다. 레베카는 단추가 없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망토처럼 어깨에 두르거나 앞자락을 연 채 헐렁하게입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을지도 모른다.
손수건 위에 분홍색이 묻어 있었다. 립스틱 자국이었다. 이 손수건으로 립스틱을 문질러 지운 뒤 뭉쳐서 이 주머니에 넣었던 것이다. 나는 버터 묻은 손을 그 손수건에 닦았다. 그러자 희미한 향기가 올라왔다. 어디선가 맡아본 향기였다. 나는 눈을 감고 기억을더듬었다. 알 듯 모를 듯했다. 금방 들이마셨던, 내 손에 묻은 향기같았다.
다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손수건에 희미하게 남은 냄새는 행복의 계곡에 핀 흰진달래 꽃잎에서 나는 바로 그 향기였다. - P182

"프랭크, 당신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요. 왜 제가 그런 질문을던졌는지 이상하겠죠. 쓸데없이, 심지어는 잔인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다고 여길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다만가끔씩 저만 불리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곳 맨덜리에사는 것도 낯설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힘들고요. 오늘 오후처럼 답방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제대로 해낼까 의심스럽다는 눈길을 보내죠. ‘대체 맥심은 뭘 보고 저 여자랑 결혼한 걸까?‘라고 말하는 듯 말이에요.
그러면 저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져요. 해서는 안 될 결혼을 했다는 생각,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저 여자는 레베카와 정말 다르군‘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저도 안다고요"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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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러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능력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응성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더빨리 더 바람직한 형태로 스스로 얻어 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안다. 한편 이들이 갖지 못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성공을 견주어서 판단하는 데 배경이 될 큰 그림, 그리고 성공에는 책임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인식이다. 옛 소련은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장악된 나라였고, 결국에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의미를 잃었다. 한편 오늘날 젊은세대의 유력한 구성원들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완곡어법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본주의란 누구나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스스로 낚아채야 하는 체제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 세월이 십오년 전이었다면, 이들 중 많은 사람은 기성 체제를 악으로 여기고 그에 대항하여 싸웠을지도 모른다. 아르톰 트로이츠키는 약간 씁쓸한 듯이 내게 말했다. 「영웅적인 시절은 끝났습니다. 나도 만약 현재의 젊은 세대로 태어났다면 영웅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 P143

새로운 러시아의 혼돈을 낳는 진정한 원인은 경찰의 허약함도, 마피아의 압도적인 영향력도, 헌법 수정의 어려움도, 옐친의 불안정함도, 악화하는 인플레이션도, 서구 정부들의 순진한 원조 분배정책도, 식량 부족도 국영 공장의 비효율성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그동안 모두가 공익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아 왔던 사회에서 이제 모두가 자신만을 챙기면 된다고 보는 가치 체계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하고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수많은 의제들이 우연한 상황에 따라 잠시 이렇게 정렬했다가 다시 저렇게 정렬했다가하는 나라에서는 일관성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 진짜 문제는 그것이다. - P144

소련 시절 러시아 정교회는 조직이라는 평판을 누렸지만(그도교회가 KGB에 연루하기는 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깡그리 사라졌다. 교회는 이제 푸틴이 내세운 의제들에 공공연히 힘을 실어 준다. 1991년에는 러시아 인구 중 자신을 신자로 규정한 사람이 3분의 1이었지만 2015년에는 그 수가 4분의 3이 넘었다. 그러면서도 인구의 4분의 1가까이는 종교가 사회에 보다 질을 더 많이 끼친다고 생각하며 신자 중에저도 3분의 1은신을 정말로 믿진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물며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의 지도력을 <기적>이라고 칭송하면서 푸틴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유주의는 법치의 붕괴와 세상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문에 따르면 총대주교는 개인 자산이 40억 달러쯤 된다고 하고 3만 달러짜리 시계와 모스크바의 펜트하우스를 자랑한다고 한다. 그는 또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상업적 용도로 대여해 준다.
푸틴은 정교회 오토바이 갱단인 <노치니예 볼키>와 자주 함께 사진을찍었다. <성스러운 러시아>라는 또 다른 정교회 스킨헤드 갱단의 지도자 이반 오스트라콥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신성 러시아의 적은 사방에 있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의 악마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의 신성한 장소를 보호해야 한다. 경찰은 그런 공격에 대처할 여력이 없다. 내가 체첸전쟁에서 싸우고 돌아왔을 때, 조국은 매춘, 마약, 사탄숭배자 등등 더러운것들 투성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가 오름세를 탔다.> 그 갱단은 록밴드 푸시라이엇에게 선고된 가혹한 처벌에 항의하던 시위대 중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는데, 애초에 푸시라이엇이 체포된 것은 모스크바의 한 성당에서 연 공연에서 푸틴에 반대하는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갱단은 자신들이 중상을 입힌 사람에 대해 <그는 우리의 신성하고 성스러운 것들을 모욕했다>라고 말했다. - P148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2011년과 2012년 선거 후에 항의 시위를 조작했다. 주동자는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활동가 일리야 야신, 좌파 전선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역의회 의원 보리스 넴초프 등이었다. 2015년, 나발니와 우달초프는 가연금에 처해졌다. 넴초프는 모스크바의 한 다리에서 등에 총을 맞고 죽었는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것에 항의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지 몇 시간 후였다.
모스크바 정치 기술 센터의 게오르기 치초프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 편> <국가의 반역자들>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위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거스르는 꼴이 되니까요.」 한때 활발한 시위자였던 33세의 니키타 데니소프는 이렇게 말했다. 「시위 행진이 아무 소용 없을뿐더러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죠. 29세의 옐레나 보브로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섰지만, 접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뿐이었어요 권력자들뿐아니라 친구들과 친척들에게서도 냉담함이 러시아의 국민 오락이 된 모양이다. - P152

우연히 이 광경을 지켜본 웬 서양인이 내게 어깨를 으쓱하면서중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공개적으로 싸우는 시도가 늘 이렇게 실패로 돌아간다고 그래서 참 안됐다고 말했다. 그 서양인은 중국에서 국가에 반대하는 모든 예술가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유선거와 헌법을 지지할 것이라는 서양인다운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논리는 중국과 중국인을 오해한 데서 나온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경우, 그런 결론은 요점 파악에 실패한 판단이었다. 사실 쑹의 이발은 대성공이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여기에는 과거에는 현재에는 민주주의 시위에 활발히 나선 이른바<지하 세계> 전위 예술가들도 포함된다- 중국에 서양식 민주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한갓 실수일뿐더러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을 좋아한다. 그들은 물론 서양의 돈과 정보와 힘을 갖고 싶어하지만, 중국의 문제에 서양의 해법을 적용하기는 원치 않는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도 알고 보면 중국식 해법의 추진을 요구하는 것일 따름이다. 동양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원하지 않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그게 관례라고 내게 말해 준 예술가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 P155

중국에서는 개인으로서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급진적인 일이다. 그런 태도는 중국인들이 늘 똑똑히 의식하고 있으며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5000년 역사, 그들이 자주 (그리고 가끔은 격렬하게)수정하지만 결코 내버리진 않는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중국의 전위 예술계 멤버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독립적인 개인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은우스꽝스러운 짓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예술적 기예란 그들이서양식의 천박한 사익 추구라고 여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에서 나온다. 그들의 어떤 행동이 서양인의 눈에는 중국의 획일적 전통으로부터 의절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전통을 살살 부추겨서 더욱 진화시키려는 요량으로 한 발짝만 멀어진 것에 가깝다. 중국은 많은 문제와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기능하고 있으며, 지식인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는 그 사실이 서양의 민주주의 개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상 파괴적인 예술가들조차도 덩샤오핑 정부에 몸서리칠지언정 그체제의 작동에는 대체로 놀랄 만큼 만족해한다. 중국 전위 예술계의 반항적 행동도 그 체제 내에서 유효할 뿐, 서양의 체제 내에서 해석되도록 기획된 것이 아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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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나중에야 나는 그때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액션의 요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즈음에는 나도 그때 왜 우리가 해방자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압제자 브레즈네프를 위해서 축배를 들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흐루쇼프 시절과 마찬가지로, 브레즈네프 시절 소련의 전위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집이나 작업실에 두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여주었는데, 그런 작품을 본 관객은 동료 전위 예술가들뿐이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 예술가들은 <초기 기독교도 공동체나 프리메이슨 같았다>.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파악했고, 좋을 때나 나쁠때나 뭉쳤고, 집단 구성원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소련인민에게 허락된 진실보다 더 고차원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직 자신들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성을 배웠고, 호혜가 가득한 세상을 건설했다.
비록 강렬한 아이러니와 사소한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어도, 그들의 그 생명력은 사람들이 모든 제스처를 부질없게 여기게 된 국가에서 그들의 작품에 절실함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긴밀하게 공유하는 즐거움을 일구는 것으로 고난에 맞섰고, 그 심오한 목적의식에서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재미로부터 자신들의 재능의 가치를 확인했다.
그들의 재능은 실로 상당했다. 즐거움도 상당했겠지만, 그 즐거움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에 초월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끌어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것을 장악한 체제와 씨름하려는 자가 지성이 부족해서야 좌절하기 마련이라, 바보들은 금세 패배했다. 모스크바 예술가 사회에는 수동적 관찰자의 자리가 없었다. 구성원들의 헌신은 엄청났다.  - P80

거의 모든 그림이 팔렸다. 제일 예쁜 그림들, 혹은 누가 봐도 제일 평범한 그림들이 제일 높은 가격에 팔렸다. 이 사실에 모스크바전위 집단은 기겁했고, 서양이 자신들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소련 미술의 정전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경매장에서 본 일부 입찰자들 때문에 무척 심란해졌는데, 그 입찰자들이 소련의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작품에 맥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주이론적인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 작업실에서 자기 작품을 삼십 분 동안 설명했을 때, 나중에 경매장에서 최고 입찰가 축에 드는금액을 부를 여자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흑백과 회색만 쓰는건 여기에서는 색깔 있는 물감을 구하기가 어려워서인가요?」최고의 작품들 중 일부는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팔렸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기념품을 쇼핑하려는 사람들에게 팔렸다. 총판매액은 350만 달러로, 최고로 낙관적인 예측치였던 180만 달러의 두 배에 육박했다. 시몽드 퓨리는 소련 문화부 부국장 세르게이포포프를 얼싸안았다.
사람들이 대회의실을 떠날 때, 한 여자가 카탈로그를 짚으면서옆 사람에게 외쳤다. 「이걸 샀어요.」 여자는 살짝 찌푸리면서 덧붙였다. 「아니면 이건가. 뭔지 기억이 안 나네.」「뭐든 어때요.」 상대가 말했다. 「오늘 밤을 기억할 물건이 있으면 되는 거지. 재밌지 않았어요?」소련 예술가들은 이렇게 대중의 눈앞에 나서게 되었다. 극단적인 프라이버시에 기반하여 작품 활동을 했던 그들에게는 가시방석같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KGB에게 무의미해 보이도록, 심지어 지루해 보이도록 워낙 비밀스런 기준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서양에서 유명해진 뒤에도 오랫동안 서양인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채로 남을 얄궂은 운명이었다. 예술 작품이 그 기원으로부터 단절될 때 맨 먼저 시야에서 사라지기 쉬운 것이 바로그 속에 담긴 아이러니다. 진실의 다중성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던소련 미술은 그림인 것 못지않게 정치적 발언이었는데,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진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적 구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비평할 때 그 초점은 작품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주제가 아니라 모호함이라는-속성 자체여야 한다. 가장 합리적인 비평 방식이 사회학적 접근인것도 이 때문이다. 요컨대, 이 예술가들이 위장을 탁월하게 해냈다는 사실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유효한 평가이지만 위장 그 자체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 P88

 「여기 우리는 소수이지만, 의사당에도이 나라 전체에도 수많은 사람이 더 있습니다.」 청년은 또 민주주의를 말하고, 탱크에 탄 군인들에게 과거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다른 사람들도 가세한다. 코스탸와 라리사도 군인들에게 열변을 토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명령을 강제로 따르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점을 강조한다. 「당신들이 명령을 따른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스스로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확성기를 든 청년이 말한다.
군인들은 서로 눈을 맞추다가 시선을 돌려 우리를 본다. 우리는쫄딱 젖었고, 너무 춥고, 신념에 대한 용기 외에는 가진 것이 없어무력한 처지이므로 스스로가 정의를 주장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물리적 방어는 누가 봐도 부족하다 군인들은 우리를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족히 일 분 동안 뚫어져라 우리를 보다가, 이윽고 선두의 탱크를 모는 군인이 마치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경로 앞에 굴복할 따름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대중의 뜻에 따라야 하겠지요.」 그는 우리더러 탱크들이 유턴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비키라고 지시한다. 탱크들이 유턴하는 데는 정말로 넓은 공간과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코스타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이 떠난 진짜 이유가 뭘까?」「우리 때문이지.」 코스타는 대답한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우리가 한 말 때문에」 우리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가리지 않고 얼싸안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서 목이 쉬어라 환성을 지른다.
일이 다 끝나고서야, 영웅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경험했다는 생각과 수그러지는 두려움이 뒤섞이면서 비로소 더없이 황홀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무모한 용기는 지금은 이쯤이면 됐다고 결정한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열렬히 우리의 모험담을 들려준 뒤, 내 호텔로 간다. 우리는 호텔에서 멋진 점심을 먹고, 뿌듯해한다. 나는 오늘로 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점심 후에 공항으로 떠난다. 나머지사람들은 집에 가서 푹 자고, 기운을 차리고, 전화를 걸고, 오늘 밤 철야농성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철야농성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비행기에 체크인 할무렵에 이미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내부 분쟁 때문이었지만, 인간 바리케이드의 의견을 좇은 군인들 덕분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해방감을 안겼다. 자유는 그들이 늘 집착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흘 동안 그들은 물리적으로 그것을 수호하는 사치를 경험했던 것이다. 코스탸는 나중에 전화로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 너랑, 나랑, 다른 모든 친구들이 그러고는 잠시 후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내 깃발이었어.」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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