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로도 지구적 경쟁에 나설 준비가 부족한 처지에 자치주들이 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더 큰 이웃 경제권들과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진지하게 걱정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미얀마가 무력한 조각들로 쪼개지지 않으면서도 민주화할 수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중앙 정부는 어떻게 하나로 통합된 국가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러 민족 집단들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있을까? 애초에 장군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국가 정체성의 잔재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나 있을까? 미얀마를 지켜보는 제삼자들은 옛 유고슬라비아가 여러 공화국으로 산산조각나서오랫동안 대립을 일삼았던 것처럼 미얀마도 결국 와해될까 봐 우려한다.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의 정신은 이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맥락에서도 응징적 정의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 추궁보다는 과거를 묻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윈 민은 1988년 봉기 이후 몇 년을 정글에서 보냈 - P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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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의 도시에서조차 10보다 큰 수가 존재한다고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도시의 담벼락에는<모두가 10의 그늘 속에서 평등하다>라든가 <파르밀의 이단자들을 처단하자>라는 구호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파르밀은 마치 어떤 역병이 돌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격리되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파르밀은 지식이라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몹쓸 도시였을 것이다.
아무도 이 도시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파르밀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수에 관한 지식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파르밀 백성들의 수가갈수록 줄어들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뱅상은 파르밀의 어느 거리에서 어떤 광신적인 <10의수호자에게 암살당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호호백발의 노인이 된 뒤의 일이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싸움에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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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네 말로 인해 낡은 생각이 깨지고 나은 생각이 완성되는 찰나의 기쁨을 느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문제에 힌트를 얻은 거지.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사람이아니라 남의 말이 스며드는 고운 흙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질색하는 일도 한번 시도해보고 안 읽히는 책도읽고, 파도처럼 부단히 움직여야겠지.
버지니아 울프가 딱 그랬다. [파도]라는 독백과 이미지로 된 형식의 소설에 도전하면서 "완전히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작품을 쓰는 나 자신을 매우 존경한다"(해설, 313면)고 일기에 적었대. 자기 쇄신의 실행력이 존경스럽지. "포도송이에서 포도를 떼어내듯이 떼어내어 ‘받아요. 이것이 나의 인생이오‘라고 말"(253면)하는 몽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가 하면, 또 "인생은 즐겁고 좋은 것이다. 월요일 다음에는 화요일이 오고 그다음에는 수요일이 온다"(286면)고 무심하게 삶에 순응하는 책을 마저 읽다가, 그날 너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나는 좋은 늙음을 꿈꾼다. - P104

점원의 인상은떠오르지 않았어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음식에만 꽂혀 시선을 아래로 고정했어요. 상대의 눈을 보는 일은 존중의 짧은 의례이거늘. - P106

그럼 이제 와서 어쩌나요. 이 집요한 삶의 배반을 견딜 방법은 없는가. 예전에 어느 문학잡지를 보다가 중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 리Yiyun Li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베껴놓은 적이있어요. 그가 그랬죠.
"삶은 그저 삶일 뿐이지요. 늘 고난이 있습니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있고, 저는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순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 테니까요. 그것은 삶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친절은 우리가 베풀거나 베풀지 않겠다고 선택할 수 있어요. 타인툰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에대한 친절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친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선택이기 때문에 저는 친절에대해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친절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희망적입니다. 게다가 친절은 글쓰기로 훈련할 수 있거든요. - P107

지금 생각하니까 삶의 하중을 받아서 신체가변형되고 있었던 거 같아. 건강검진표에는 나오지 않는 이상 징후들이겠지. 눈빛은 차분함을 잃고 말투는 드세지고 걸음은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그런데 더 슬픈 건 그걸 내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야. 하루하루는 똑같아 보여도10년 후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두려운 일이지. - P119

우린 슬픔에 무지한 종족입니다. 세월호 이전에도 슬픔은 허용되는 삶의 모드가 아니었죠. 슬퍼하는 사람은 약자로 분류되고, 약자는 구제의 대상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공적 발언의 장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은 각자 삭여야 할 사적 과제로 여겨집니다. 슬픔을 표현하는 말도, 슬픔에 공감하는 말도 공동체에흐르지 못하니까 슬픔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죠. 슬픔에 관한 지혜가 모자랍니다. - P171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그 나이를 두번 산다. 나도 열일곱 무렵부터 시가 괜히 좋았다. 시집표지가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노트에 정성스레 베껴 쓰곤했다. 슬픔, 기쁨, 사랑, 그리움 같은 단어가 만든 감정의 둘레에서 나는 마치 꽃그늘 아래 앉은 것처럼 더없이 안전하다 느꼈다. 아이는 왜 그시의 그 부분이 좋았을까.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나도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한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는데, 똑똑한 게 자기답게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언제부턴가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이젠 안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지켜보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 P209

"이야기를 바꾸는 일,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 백인 아이들은 그냥 ‘어울려 노는‘ 것이지만 흑인 아이들은 ‘어슬렁거리고‘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것이 된다. 언어는 지우고, 왜곡하고,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거짓 미끼를 던지거나 주의를 흘뜨릴 수 있다."(9-12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라니. 해볼 만하지 않나요. 우린 이야기를 공기처럼 마시며 삽니다. 그중엔질 나쁜 공기처럼 몸에 해로운 이야기가 있지요. J가 성장기 내내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덕목들, 가령 자신감 있어라, 활동적이어야 한다, 같은 것들의 강요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또 아빠가 없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듣기 싫었기에 혼란스러웠다고 했던 것처럼요.
솔닛은 세상의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세상을 둘러싼 그 물의 일부가 되어, 기존의 이야기들을 훼손하거나 강화할" (289면) 거라고요. 그러니까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자, 반박하고 저항하는 말들이 물처럼 넘치도록 하자는 뜻이겠죠. - P237

한 사람의 ‘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자질보다 가족으로부터 우수한 학업 기회가 꾸준하게 제공되느냐, 행운이 따르느냐 등 비능력적 요인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능력‘이 현수의능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72면)고 말해도 무리가없게 됩니다. 저자는 말해요. "능력은 환경적·사회적으로구성되는 것이며 ‘온전히 개인에게 속한 능력‘이란 환상이다."(21)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능력을 꼭 학력과 성적으로만 측정하는가? 즉, 능력을 도대체 누가 평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P248

가장 낮은 자리에 있기에 제일 먼저타격을 입고 가장 약한 이들이 모여 있기에 사회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탁아소가 쉽게 폐쇄되는 사회에서 청년들이라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긴축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고독하게, 그리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20면)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쁠 것이 분명하다‘는 어두운 전망을 품는 젊은이를 양산했다"(67면)고 지적해요.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을 그대도 들어보았을 거예요. 집과 절은 인간 생활을 떠받치는 두 중심 거점을 뜻하는 거 같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집도 중요하지만 절이라는 출구가 없으면 집은 따뜻한 감옥일지도 몰라요. 의식주가 해결된다고 존엄이 보장되진 않으니까요. 저만 해도 사람답게살아갈 힘과 배움을 얻은 곳은 노조나 인문 공동체 같은 ‘절‘이었어요. 그대가 찾는 곳도 비빌 언덕이 되는 ‘절‘이겠고요. - P274

"사람은 누구나 깨진 꽃병이다. 이렇게 막고 저렇게막고 해봤자 깨진 걸 숨길 수 없다." 저는 연탄난로와 깨진꽃병의 마음이 있는 그곳이 천국이었구나 느끼면서 서울로향합니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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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 주민은 재산세를 내지 않는다. 중산층 유권자 중 일부는이 사실을 싫어한다. 공공 서비스가 늘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세금도 부과될 것이다. 상수도와 안정적 전력은 수도세와 전기세 고지서와 함께 올 것이다. 「파벨라가 위험하지 않게 되면, 이곳 주민도 도시의 다른 부유한 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업적 착취를겪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항도 못합니다.파우치니는 말했다.
파벨라 거주자 중에는 한집에서 삼대가 살아온 이들도 있다. 그런집이 그들의 재산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듯하다. 반면 정착한 지 일 년도 안 된 이들도 있는데, 그런 이들에게도 점거자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답은 확실하지 않다. 만약 파벨라 주민들에게 거주지에 대한 소유권을 준다면, 주민들은 그곳에서 바라보는 멋진 경치를 원하는 부자들에게 자기 땅을 팔아넘기지 않을까? 많은 파벨라에서 근사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어떤 파벨라에서는 리우 전체를 굽어볼 수 있고, 저 멀리 구세주 그리스도상 너머 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 그런장관을 즐기려면 파산할 만큼 돈을 써야 할 것이다. 파벨라 거주자중 일부는 월세를 내고 사는데, UPP가 상주하는 동네에서는 벌써 월세가 올랐다. 중산층 카리오카들의 중론은 파벨라를 보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모두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파벨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늘 <더 나은 동네로 옮기고 싶은지 물었는데, 이때 옮기고 싶다고대답한 사람은 비교적 최근에 브라질의 다른 지방에서 이곳으로이사 온 사람들뿐이었다.  - P583

 그는 도시의 중산층이 파벨라에 매력을 느끼는 현상이 오히려 파벨라 주민을 덫에 가둔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게 말했다. 「파벨라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펑크 음악이나 삼바로만자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건 공평하지 못해요. 파벨라 주민도 원한다면 베토벤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져야 합니다.」그는 정부가 파벨라에서 카포에이라 강좌는 지원하지만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과정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평정 사업이 파벨라의 일상을 덜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무엇이 혼란인지 누가 정하죠?」 그는 물었다. 파벨라에서 삶이 이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유기적으로 꿰맞춰져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나름의 체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혼란을 해결한답시고 지금 기능하는 것을 파괴해 버리면, 몹시 위험한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의 꿈은 자신이 파벨라 아이들에게 그동안 몰랐던 것, 바깥세상에서 온 것을 가르치고 나면 언젠가 바깥세상이 파벨라로 들어와서 파벨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도 세상에 무언가를 돌려주는 날이 오기 전에는, UPP가 제공한 것이 아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 P587

한 무덤에는 <히틀러의 손에 죽은 솔로몬들을 기리는 비문이새겨져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내 친척들이 쓰는 이름과 같은것이 많았다. 묘지 한가운데에는 이 지역에서 끌려간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유대인 5,000명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었다. 로즈 고모할머니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우리가 그곳을 빠져나온 것은 행운이었어. 이 순간 이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고모할머니의 말이 완전히 옳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내 가족이 유래한 동네가 최소한 그림처럼 아름답기를 바랐고, 내가 그 장소와 놀라운 일체감을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내가 여전히 제한된 삶을 사는 듯한이곳, 부쿠레슈티에서 접했던 지적 자극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이곳에 갇혀 사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이토록 낙심하게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쟁 지역도 취재해보았고 빈곤한 사회도 취재해 보았지만, 그래도 그곳들은 늘 본질적으로는 나와는 다른 곳이라고 느꼈다. 반면 이곳은 충격적일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들처럼 살다 죽을수도 있었다. - P616

마을을 빠져나올 때, 그 동네 농부들을 보았다. 그러자 저들의조상 중 일부가 내 조상을 포함한 이웃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지만않았어도 내 조상들이 이곳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이 두 세대 동안 겪은 일이 떠올랐고, 겪지 않은 일이 떠올랐고, 그러자 문득 폭력적이었던 역사에 화가 치밀기는커녕 그 덕분에 내가 특권을 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압은 때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이득이 된다. 타인의 삶을 짓밟는 사람들은 파괴에 에너지를 소진하지만, 그 때문에 삶이 망가진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는 데 힘써야 하고 그 해결책 중 일부가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증오가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내몰았고, 덕분에 우리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자유를 누렸다. - P617

야당 지도자이자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정의의 이름으로 용기를 상징하는 아웅산 수치는 20년의 가택연금에서 2010년 풀려났고,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끄는 민주국민연맹NLD은 마침내 상원에 진출했다. 미얀마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내가 막상 목격한 것은 극도로 신중한 중립적 태도였다. 누구도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앞으로도 죽 이렇게 고정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미얀마 사람들은 팔락거리던 희망의 불꽃이 결국 꺼져 버리는 일을 너무 자주 목격했기 때문에, 인구 다수가 믿는 불교의 철학이 현재 벌어지는 변화의 활기를 얼마간 누그러뜨렸다. 미얀마 사람들은 1948년 독립을 앞두었을 때는 아마 낙천적이었을 것이다. 학생 시위가 새로운 정의를 약속했던 1988년에도 낙천적이었다. 2007년 사프론 혁명 때도 조금은 낙천적이었으나, 승려 수천 명이 정부에 반대하여 떨쳐나섰던 혁명은 결국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2014년, 미얀마 사람들은 들뜬 기대를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들의 레퍼토리에서 아예 지웠고, 이제는 그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볼 뿐이다. - P622

미얀마는 크게 두 가지 공포증을 갖고 있다. 중국에 침략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1억 6000만 무슬림 인구와 자국 내 무슬림 인구에게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많은 미얀마 불교도들은 꼭 유럽과 미국의 이민 반대자들처럼 무슬림들이 사회에 동화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미얀마인의 불평은 무슬림이 자기들끼리만 부를 향유한다는 것(그러나 실은 대부분의 무슬림이 무일푼이다), 사채업을 한다는 것, 그리고 제일 나쁜점으로 무슬림은 아내를 여럿 두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수 집단이되어 불교도를 쓸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미얀마인은 피부색이 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차별도 작용한다. 미얀마에서는 사회의 거의 모든 차원에서 인종차별이 용인된다. 일례로 2009년 홍콩의 미얀마 총영사는 영사관 직원 전체에게 보내는 글에서 로힝야족은 피부가 검기 때문에 <희고 부드러운> 버마인과는 달리 <괴물처럼 추악하다>고 말했다. 벵골 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무슬림의 후손들은 개중 많은 가정이 백 년 넘게 미얀마에서 살아왔다 - 대개 라카인주(州)에서 산다. 그들은 스스로를 로힝야족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미얀마 국가주의자들은 벵골족이라고 부른다. - P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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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내 왼손을 벌해야 하는 걸까? 놈의손톱을 피가 나도록 물어뜯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놈과 놈의 다섯 손가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멋진 손이있다. 따지고 보면 손이란 아주 대단한 것이다. 집게 대용이 될수도 있고, 용기나 도마 구실을 할 수도 있다. 갈래진 손가락들은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으며, 끝의 위쪽 부분이 단단한 손톱으로덮여 있어서 무엇을 긁을 수도 있고 섬유질을 함유한 물질들을 자를 수도 있다. 내 양손 덕분에 나는 수사 보고서를 아주 빠르게타자하고 갖가지 놀이를 할 수 있었으며, 몸을 씻고 책장을 넘기고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었다. 나는 양손의 덕을 많이 보았다.우리는 어떤 것이 없어서 아쉬움을 느낄 때라야 비로소 그것이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손은 기계공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대단히 경이롭다. 아무리 정교한 로봇이 발명된다 해도 손에 필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겐 두 손이 다 필요하다. 반란을 일으킨 왼손까지도 말이다.
나는 내 왼손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우나 고우나 이 손은 지난 세월 동안 나에게 대단히 유용했고 앞으로도 여전히 쓸모가 많을 것이었다. 또한 이 손이 자율을 원한다고 해서 그게 꼭 나에게 해롭다고 볼 수는 없을 듯했다. 내생각을 보완하는 또 다른 의견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쁠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내 왼손과 협력 계약을 맺기로 결심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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