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업가들은 외로운 노년층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한국의 연금 생활자들은 몇 년 전부터 낮에 ‘콜라텍‘(콜라+디스코텍)이라고 부르는 디스코장에 모인다. 일부 콜라텍은 평일에는 1,000명, 주말에는 그 2배의 손님이 온다. 입장료는 겨우 1,000원으로, 젊은 층을 상대로 운영되는 클럽 입장료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 세계적으로 높은 빈곤율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노인들에게 콜라텍은 구명줄 같은 존재다. "온종일 뭘 하겠습니까? 식구들은 일에 바빠요. 기껏 모여서 담배나 피우는 노인정에는 가기 싫고요." 85세의 김사규 씨는 말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씩 춤을 추는 것은 사업 실패나 결혼 실패 또는 외로운일상에서 오는 불안을 마법처럼 가라앉혀주었다. "음악과 파트너만있으면 잡념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역시 85세인 김인길 씨가말한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 때 그동안 저축한 돈을 거의 다 잃었다. 파트너를 스스로 구하기 쑥스러워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도우미들이 나를 새로운 여자한테 데려가서 같이 춤추라고 손을 포개줍니다. 그러면 나는 쉬는 시간에 그 도우미한테 유산균 음료 한 병을 사지요." 김인길 씨는 말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신자 수가 급감하고 직장이 날로 고독한 곳이 되어가고 청년 클럽이 문을 닫고 커뮤니티센터가 폐쇄되면서 갈수록 더 많은 도시인이 혼자 살게 되자, 상업화된 공동체가 21세기의 새로운 대성당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대신 실을 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이브 춤을 춘다. 이 현상은 ‘비촉‘ 생활과 디지털 프라이버시 고치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적극적으로 모색된 길항력이자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는 직접 체험이다. - P328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은 여전한 이 세계에서 기업들이 빈틈을 채우려고 나선 셈이다. ‘외로움 경제 Loneliness Economy‘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외로움 경제는 기술적 형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가들은 20세기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집단 열광 collective effervescence‘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직접 같이하며 느끼는 극도의 흥분 상태)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사그라지지 않는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 P329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다. 돌아보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지역 사업체가 마을 육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가 많았다.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구멍가게가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마을 주민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던 이 상점들은 다음 급여일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흔히 구명줄 같은 존재였다. 19세기 말 이발소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안식처였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그들에게 이발소는 이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이 모여 체스나 도미노 게임을 하고 정치와 지역 문제를 논하는 공동체 공간이기도 했다. 일부 지역 사업장은 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가 1989년 저서 『제3의 장소』에서 언급한 바로 그 ‘제3의 장소‘가 되었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아닌, 하지만 단골들이 만나고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유대를 형성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꽃피는 모임 공간. 올든버그는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집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썼다. 제3의 공간은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장소에서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가장 포용적인 형식으로 연습할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치 독서회에 온 것처럼 아주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한편 이 공간이 계속번창할 수 있도록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고 조정하고 이해하고 논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모두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이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모든 참가자가 그 공간에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공간에 단순히 들고나지만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개인적으로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의 관점에서 기꺼이 관여하고 듣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한 많은 지역 매장이 21세기를 맞아 실존적 위협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 P330

폐점을 앞둔 며칠간 마지막 파이 한 조각을 사려는 충성 고객들이 길 모퉁이를 따라 길게 줄을 섰다. 예전 단골들은 멀리서 상실을슬퍼했다. 2016년 임대료가 좀 덜 부담스러우면서 조용한 생활 터전을 찾아 모하비 사막으로 이사한 킴벌리 시코라는 미션 파이에서 발견했던 공동체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킴벌리는 미션 파이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는다. "혹시 온라인 주문을 받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종업원 임금을 깎는 걸 보게 됐다면 매장 문을 닫는 것보다 훨씬 더 속상했을 거예요" 킴벌리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건 무관심과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한테 지는 거니까요. 미션 파이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요."
문제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는 살아남는 일과 항상 같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션 파이의 폐점은 현실에서 수익과 포용적공동체 정신이 항상 손잡고 갈 수는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요즘의 힘든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 사업자보다 불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오프라인 사업자의 영업세를 조정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친공동체 사업장이라는 새로운 사업 카테고리를 신설해 특정 사업장이 포용성을 갖추고 사회적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해당 사업장에 세제 감면이나 인센티브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우리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P336

여러 공유 주거 기업에서 즐겨 쓰는 콘셉트인 ‘모든 것이 한 지붕아래‘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공유 공간 내에 식료품점, 세탁실, 체력단련장, 바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분리를 유발할 수있다. 거주민이 공유 시설 내에서 장을 보고 시설 내의 바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이 공간 밖의 마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주변의 공동체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고 지역 주민들도그들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공유 주거 기업들의 관점에서도 실패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지역과 진정으로 연결되어야 강한 공동체의식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 오래 머무를 확률이 높아지기때문이다.
의도가 진실하고 구성원의 참여에 진정성이 있다면 민간부문의 공동체는 이 세기의 외로움 위기를 완화하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할수 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의 공동체 공간이 해체되고, 모임 비용이 무료이거나 저렴한 장소를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고, 마을의 중심가가 퇴락해가는 지금, 공동체라는 것이 자칫 특권층만 접근 가능한 것이 될 위험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당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외로움은 오로지 부자만 ‘치료‘할수 있는 질병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이미 금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사적 영역의 공동체가 또 다른 적대적 건축물(타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외로움을 완화하고 사회를 폭넓게 다시 연결하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약속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수가 접근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 P357

보수주의자는 흔히 ‘전통적 가족‘의 붕괴, 교회 예배 참석률 감소, 과도하게 강력한 복지국가에 원인을 돌린다. 복지국가가 개인의 책임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약화시킨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움 위기의 해법을 대개 개인에게서 찾는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위해 더 노력하는 수밖에없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본질적인 이유는정부의 역할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라고 말한다. 그들은 시민을 피해자로 묘사하며, 국가가 할 일에만 강조점을 두곤 한다. 적어도 공동체를 보살피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책임에 관해서라면 상대적으로 개인은 무임승차가 허용된다.
외로움의 추동력이 무엇인가와 관련한 이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멸적이다. 이 두 정치적 관점 모두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지만 둘 다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지도, 이 위기를 해결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앞서 봤듯이,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원인은 국가의 행동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의 감시일 수도 있으며, 긱 이코노미가 될 수도 있고, 날로 늘어가는 비접촉 경험이 될 수도 있다. - P364

더욱이 이러한 외로움의 추동력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다. 당신의 고용주가 응급 상황에 부닥친 연로한 부모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으면, 당신은 부모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들과 함께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임대료가 자꾸 올라 계속 이사를 하느라 이웃을 잘 모르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마을 공동체에기여할 마음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인스타그램의 도파민 쾌감에 중독되었거나 사무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이메일을 확인한다면 가족이나 친구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것이고, 설사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다고 해도 휴대전화 때문에 주의가 산만할 가능성이 크다. 거리에 놓인 유일한 벤치가 도시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것이라면 당신은 거기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노닥거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당신은 자녀의 일요일 풋볼팀에서 코치를 맡겠다고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단일한 힘이 아니다. 외로움은 생태계 안에 머문다. 따라서 외로움 위기를 극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 개인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 - P365

외로움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름을 끼얹은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정치 기획이다. 자기본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할 것을 부추기는 이 자본주의는 무관심을 일상화하고, 이기심을 미덕으로 만들고, 온정과 돌봄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자력갱생"과 "더욱 분투하라"를 외치는 이 자본주의는 공공 서비스와 마을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인류의 번영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하고 우리의 운명이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서사를 영속화했다. 우리가 전에는 외로운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 공동체, 더불어 살기, 친절등의 가치를, 부드럽게 표현하면 주변부로 밀어냈고 심하게 표현하면 말살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그 심장부에 돌봄과 온정이 자리한 정치를 끌어안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등 뒤를 든든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 이러한 정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밖에 없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 P366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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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금 확실히 기억나는 것,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은, 그뒤에 이어진 폭력 사태였다. 가끔 당시 민주주의가 아파르트헤이트에승리했다며 이를 ‘무혈혁명‘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그건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흑인들의 피는 거리에 흘러 넘쳤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됐으니 우리는 이제 주도권이 흑인들에게 넘어오리란 걸 알았다. 문제는 ‘어느 쪽 흑인이냐‘였다. 잉카타 자유당측이Inkatha Freedom Party 측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서로 권력을 다투면서 폭력 사태가 빈발했다. 이 둘 사이의 정치적 역학 관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줄루와 코사의 대리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쉽다. 잉카타는 대부분 줄루족으로, 매우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이었다. 한편 ANC는 여러 다른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을 띠고있었으나 그 당시엔 주로 코사족이 리더를 맡고 있었다. 이 둘은 평화롭게 힘을 뭉치는 대신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곳곳에서 폭동이 일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됐다. 넥레이싱 Necklacing 처형이 흔하게 벌어졌다. 넥레이싱이란 사람의 팔을 결박하고 고무 타이어를 몸통에 씌운 후,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붙여 산 채로 화형시키는 것이다.  - P26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제대로 못 들었다. 꾸벅꾸벅 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호등이 가까워졌다. 버스 기사가 차로를 살피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순간, 엄마는 손을 뻗어 버스 문을 밀어제치더니, 나를 잡아 있는 힘껏 밖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앤드루를 감싸 안은 채 몸을 둥글게 말아 나를 따라 뛰어내렸다.
아프기 전까지는 꿈인 줄만 알았다. 쾅! 나는 도로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쳐졌다. 엄마는 바로 내 옆에 떨어졌고 우리는 데굴데굴 구르고 굴렀다. 잠이 확 달아났다. 반쯤 잠들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난 겨우 멈춰 서긴 했지만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는, 이미 두 발로 서 있었다. 나를 향해 엄마가 소리쳤다.
"뛰어!"
그래서 나는 뛰었다. 엄마도 뛰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엄마보다 빨리 달리지 못했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뭘 해야 하는지 나는 그냥 알았다. 항상 폭력이 잠복해 있고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며몸에 밴 동물적 본능이랄까. 흑인 거주구에서,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이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대동하고 등장하면 나는 알았다. ‘숨을 곳을 찾아 뛰어야 한다. 뛰어서 숨어야 한다.‘ 다섯 살짜리지만 알았다. 다른 삶을 살았다면, 달리는 미니버스에서 내던져져서 당황했을지 모른다. 멍청이처럼 멀뚱히 서서 ‘무슨 일이에요, 엄마? 왜 내 다리가 이렇게 아프죠?"라고 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가 ‘뛰어‘라고 했으니 나는 뛰었다. 사자로부터 도망치는 가젤처럼 나는 뛰었다. - P32

대영 제국이 쇠퇴하면서 아프리카너들은 남아공이 자신들의 적법한 유산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들썩이며 증가하는 다수의 흑인들에 맞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더 새롭고 더 튼튼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공식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전 세계의 인종 차별 제도들을 연구했다. 호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을 방문해서 어떤 제도가 효과적이고 그렇지 않은지 파악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고서를 발간했고, 정부는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인종차별 시스템을 설계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흑인들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과 감시 시스템으로구성된 일종의 경찰국가 제도였다. 그 법률전문은 3000페이지가 넘고 무게가 거의4.5킬로그램에 달하지만, 그 요지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미국은 원주민들을 ‘분리시키고 ‘노예화‘한 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제거해 버렸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동일 집단의 사람들에게 행해졌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바로 아파르트헤이트였다. - P36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입증해 주지만, 나는 내 부모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였다. 내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건 오직 실내뿐이었다. 집을 떠나면 그는 우리와 길 건너에서 걸어야 했다. 엄마와 나는 늘 주버트 파크에 갔다. 요하네스버그 중앙 공원에는 아름다운정원과 동물원, 사람 크기의 말을 갖춘 대형 체스판이 있었다. 한번은 내가 막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 아빠와 함께 그 공원에 갔던 적이 있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다. 공원에서 그는 나와 멀찍이 떨어져 걷고있었는데, 내가 쫓아가면서 이렇게 외쳤단다. "아빠! 아빠! 아빠!"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그는 도망쳐 버렸다. 나는 그게 아빠를 쫓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와도 같이 걸을 수 없었다. 피부색이 밝은 아이가 흑인여자와 함께 다니면 여러 의문들이 제기된다.  - P48

히포와 특별 기동대를 처음 본 것은 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이었던 때였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마침내 붕괴된 이후였다. 그전까지는한 번도 경찰을 본 적이 없었는데, 아예 내가 경찰의 눈에 띌 일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웨토에 오면 할머니는 나를 절대 밖에나다니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했다. "안 돼, 안돼지, 안 돼. 얘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가선 안 돼." 벽 뒤에서, 마당에서는 놀 수 있었지만, 거리에서는 안 됐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놀고 있는 그 거리에서는 내친척들, 이웃 꼬마들, 걔네들은 밖으로 나가 맘대로 배회하다가 해가 질무렵에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제발 밖에 나가게 해 달라고졸랐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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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21세기에 나타난 감시에는 세 가지 새로운 양상이 있다. 첫째는 모니터링되는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지털 기술 때문에 사생활 침해가 우려스러운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의사결정 권력이 지나치게 기계에 이양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규모다. 옥스퍼드대 정치학자 이반 마노카Ivan Manohka가 썼듯 "예전에는 작업장 감시가 신중하게 이루어졌고 감독자의 시선은 제한적이었으며 그 범위도 작업장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원의 성과에 대한 디지털 정보를 전자 기기와 센서가쉬지 않고 실시간으로 수집·처리하며, 그 범위가 (그리고 종종) 작업장밖으로까지 확장된다. "
상시적인 감시 아래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감시된다. 갈수록 솔직해지지 못하고 동료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남에게 불신받는다고 느낄수록 우리 주변을 더더욱 경계하고, 자신을 검열하며, 움츠러들고,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기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용주, 우리의 일, 우리의 주변 사람과 단절된 느낌을 받게 된다. - P253

하심이 낮은 평점을 받고 우버에서 쫓겨날 것이 두려워 장시간아무 말도 못 하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안타깝다. 이러한 사실은 평가 구조에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숫자 하나로 축소해버릴 때 그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스스로에게 침묵을 강요하며,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굽실거리는 와중에 진정한 자아로부터 소외된 기분을 느낄 위험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수치에는 맥락에 대한 이해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다. 실제로 형편없는 서비스에 매겨진 ‘2점‘은 고객이 기분이 좋지 않아서 준 ‘2점‘이나 어느 인종차별주의 손님이 단순히 피부색 때문에 준 ‘2점‘과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 P257

더욱이 인간과 로봇의 대화는 아직 인간과 인간의대화만큼 유려하거나 유창하지 않으며, 로봇의 인터페이스도 점점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투박하다. 그러니 로봇이 우리와 맺을 수있는 ‘우정‘은 아직까지는 다소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기술의 진보에서 흔히 그렇듯이 섹스가 이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적어도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보면 최고급 섹스로봇은 가장 발전된 형태의 소셜 로봇이며, 특히 최근 출시된 섹스로봇은 역시나 아직은 인간에 가깝다고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 P303

어떤 사람은 이런 사건들은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알렉사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고장 난 자동차에 욕을 퍼붓는 것과 다르지 않고, 페퍼를 발로 차는 것은 문짝에 발길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사물에 인간적 특징을 부여했으면 최소한만이라도 예의를 갖추어 그사물을 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행동이 괜찮은 것이 되고 급기야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서서히 스며들 위험이 있다. 섹스로봇을 때리는 남자는 자신의 데이트 상대에게 폭력적이 될 것이다. 가상 비서에게 공격적으로 또는 무례하게 말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사나 점원, 서로에게 똑같이 굴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알렉사로부터 배우게 될 ‘기술‘은 불친절이 될 것이다. - P309

한편 유엔은 2019년에 발표한 146쪽짜리 보고서에서 "여성화된 디지털 비서가 실제 여성과 융합되면서 잘못된 젠더 고정관념이 퍼질 위험성이 있다"면서 "여성과의 관계에서일방적인 명령조의 언어 표현이 일반적인 것이 되고 "86 적대적인 행동, 심지어 괴롭힘에도 순종적이고 회피적이며 심지어 애교스러운반응을 보이는 "유순하고 남을 기쁘게 하고 싶어 안달하는 도우미"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유엔 보고서는 "너는 난잡해You‘re a slut"라는 말에 대한 시리의 디폴트반응 가운데 하나인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붉혔을 거예요‘‘I‘d Blush If I Could‘를 제목으로 달았다.
더욱이 범죄학에서 수십 년간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섹스 인형이환상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며‘, 사용자가 현실 세계에서상대방의 ‘노‘라는 대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성인용품과는 다른 문제다. 실물 같은 로봇인데 ‘노‘라고할 줄 모르고, 신체를 훼손하거나 학대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부 남성에게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 것"이라고 범죄학자 산테 말렛은 썼다. - P311

그리고 사회 전체 차원에서 우리가 남을 돌보는 행위를 더는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근본적인 뭔가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가 서로에게필요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서로의 요구나 권리나 욕구를 존중하겠는가? 기계가 보살핌의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돌보미의 역할을 자처하는 세계는 포용적 민주주의, 호혜성, 연민, 돌봄과 같은 토대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다.
21세기에 점차 확대되어가는 외로움 위기에 기술이 줄 수 있는답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다양한 위험이 수반된다. 가상 비서, 소셜 로봇, 심지어 섹스로봇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외로움 완화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그에 따른 이득이 경제적인 것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인간 사이의 접촉, 인간의 우정과 돌봄을희생하면서까지 도입되어서도 안 된다. 잠재적인 사회적 여파가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실 현장에서 스크린이 아이들의 교육에 일익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인간 교사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오히려 우리는 로봇공학, AI, 감성 AI의 발전을 우리 각자에 대한도전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높이고, 주변 사람을 더 잘 돌보고, 서로를 조금 더 보살피고, 남에게더 공감적이고 이타적이 되기 위한 도전, 언제나 로봇보다 더 인간적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도전, 그리고 어쩌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로봇으로부터도 배우는 도전이 될 것이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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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

뛰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 신에서는 누군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거나 던져지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맨바닥에 부딪힌 그사람은 어느 정도 데굴데굴 구르다가 딱 멈춰서 벌떡 일어나 먼지를 툭툭 털어 낸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난 생각한다. ‘저거 완전 뻥이야. 달리는 차에서 내던져지면 저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고‘ - P15

당시 나는 가톨릭 사립 학교 메리베일 칼리지 Maryvale College에 다니고 있었다. 매년 열리는 메리베일 운동회의 챔피언은 나였고, 엄마들중 챔피언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 비결이 뭐냐고? 엄마는 늘 내 엉덩이를 걷어차려고 날 쫓아다녔고, 나는 걷어차이지 않기 위해 늘 도망 다녔으니까. 그 누구도 나와 엄마보다 빨리 달리지 못했다. 엄마는 ‘이리와서 좀 맞자‘는 식으로 매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보단, 무료 배송으로 매질을 서비스하는 쪽이랄까. 또 물건을 집어던지는 데도 능숙했다. 무엇이든 엄마 옆에 있던 게 내 눈앞으로 날아오곤 했다. 그게 깨질 수 있는 물건이면 잡아서 고이 내려놔야 했다. 만약에 깨지기라도하면 그 역시 내 잘못이 되어 버리고 그럼 볼기짝이 훨씬 더 얼얼해질테니까. 엄마가 꽃병을 던지면, 나는 그걸 잡아서, 내려놓고, 다시 도망갔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생각해야 했다. ‘이거 중요한 물건인가? 그래. 깨질 수 있는 건가? 그래. 그럼 잡고, 내려놓고, 다시 도망가자!‘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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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들이 우리의 직업적 미래를 알고리즘에 맡긴다면 앞으로우리가 공정하게 대우받거나 의미 있는 법적 대응 수단을 확보할 수있으리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한 개인의 미래 성과를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톤 같은 특징으로 예측할 수 있는가에 관해 논쟁이 첨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11월 잘 알려진 미국 공익연구기관인 전자개인정보센터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 하이어뷰를 정식으로 고소했다. 하이어뷰가 "증명되지 않은 은밀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입사 지원자의 "인지 능력", "심리적 특성", "정서 지능", "사회성"을 평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편견 문제도 있다. 하이어뷰는 자사의 방법론은 인간적인 편견을 제거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이어뷰의 알고리즘은 과거에 촬영한 영상이나 이미 ‘성공한 직원‘을 토대 삼아 훈련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채용 과정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미 적용되었던 편견이 다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 P240

우리는 쇼샤나 주보프가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산다.25 고용주가 항상 당신을 주시할 뿐만 아니라 AI와 빅 데이터와 사생활 침해가 심각한 각종 기기를 동원해 당신에 관한 온갖 판단을 내리는 시대. 승진이나 해고 같은 직장 경력의 중요한 행로를 결정하는, 이러한 판단들은 흔히 맥락이 생략된 자료에 근거하거나 주변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내려지곤 한다.
레이날다의 손목이 발갛게 부어올랐는데도 페덱스 관리자들이작업 속도를 늘리라고 주문한 것은 기계가 속도만 측정할 뿐 레이날다가 느끼는 통증은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형 감옥 같은 작업장 시대에 측정되지 않은 것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반면 측정된 것은 과도하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물리적인 작업 공간을 벗어난다고 해서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워크스마트WorkSmart라는 앱은 스크린 캡처, 앱 모니터링, 키보드 입력 정보 검사 등을 통해 ‘집중도‘와 ‘강도‘를 기준으로 원격근무자들을 항상 점수화한다. 이런 앱들이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있다. 워크스마트의 감시를 받는 노동자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심지어 10분 간격으로 사진에 찍혀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역시나 이런 추세도 심화되었다. 은행에서 보험 회사까지. 로펌에서 소셜 미디어 기업까지, 집에서 일하는 직원이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는지 걱정스러운 고용주들은 2020년 봄 감시 소프트웨어에 큰돈을 투자했다. 일부 원격 근무 감시 시스템 공급자들은 2020년 4월 판매량이 무려 300%나 성장했다.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하면 이 소프트웨어가 그들의 노트북에서 제거될까?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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