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업가들은 외로운 노년층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한국의 연금 생활자들은 몇 년 전부터 낮에 ‘콜라텍‘(콜라+디스코텍)이라고 부르는 디스코장에 모인다. 일부 콜라텍은 평일에는 1,000명, 주말에는 그 2배의 손님이 온다. 입장료는 겨우 1,000원으로, 젊은 층을 상대로 운영되는 클럽 입장료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하다. 세계적으로 높은 빈곤율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노인들에게 콜라텍은 구명줄 같은 존재다. "온종일 뭘 하겠습니까? 식구들은 일에 바빠요. 기껏 모여서 담배나 피우는 노인정에는 가기 싫고요." 85세의 김사규 씨는 말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씩 춤을 추는 것은 사업 실패나 결혼 실패 또는 외로운일상에서 오는 불안을 마법처럼 가라앉혀주었다. "음악과 파트너만있으면 잡념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역시 85세인 김인길 씨가말한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 때 그동안 저축한 돈을 거의 다 잃었다. 파트너를 스스로 구하기 쑥스러워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도우미들이 나를 새로운 여자한테 데려가서 같이 춤추라고 손을 포개줍니다. 그러면 나는 쉬는 시간에 그 도우미한테 유산균 음료 한 병을 사지요." 김인길 씨는 말한다.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신자 수가 급감하고 직장이 날로 고독한 곳이 되어가고 청년 클럽이 문을 닫고 커뮤니티센터가 폐쇄되면서 갈수록 더 많은 도시인이 혼자 살게 되자, 상업화된 공동체가 21세기의 새로운 대성당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대신 실을 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이브 춤을 춘다. 이 현상은 ‘비촉‘ 생활과 디지털 프라이버시 고치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적극적으로 모색된 길항력이자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는 직접 체험이다. - P328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갈망은 여전한 이 세계에서 기업들이 빈틈을 채우려고 나선 셈이다. ‘외로움 경제 Loneliness Economy‘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외로움 경제는 기술적 형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가들은 20세기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집단 열광 collective effervescence‘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직접 같이하며 느끼는 극도의 흥분 상태)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사람들의사그라지지 않는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그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다. - P329
기업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다. 돌아보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지역 사업체가 마을 육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가 많았다. 영국 빅토리아시대에 구멍가게가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마을 주민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던 이 상점들은 다음 급여일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흔히 구명줄 같은 존재였다. 19세기 말 이발소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안식처였다는 사실은 또 어떤가. 그들에게 이발소는 이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이 모여 체스나 도미노 게임을 하고 정치와 지역 문제를 논하는 공동체 공간이기도 했다. 일부 지역 사업장은 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가 1989년 저서 『제3의 장소』에서 언급한 바로 그 ‘제3의 장소‘가 되었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아닌, 하지만 단골들이 만나고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교류하면서 유대를 형성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꽃피는 모임 공간. 올든버그는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집에서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썼다. 제3의 공간은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장소에서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가장 포용적인 형식으로 연습할수 있기 때문이다. 제3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치 독서회에 온 것처럼 아주 다양한 세계관과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한편 이 공간이 계속번창할 수 있도록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고 조정하고 이해하고 논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모두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이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모든 참가자가 그 공간에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공간에 단순히 들고나지만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개인적으로 관련된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의 관점에서 기꺼이 관여하고 듣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한 많은 지역 매장이 21세기를 맞아 실존적 위협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 P330
폐점을 앞둔 며칠간 마지막 파이 한 조각을 사려는 충성 고객들이 길 모퉁이를 따라 길게 줄을 섰다. 예전 단골들은 멀리서 상실을슬퍼했다. 2016년 임대료가 좀 덜 부담스러우면서 조용한 생활 터전을 찾아 모하비 사막으로 이사한 킴벌리 시코라는 미션 파이에서 발견했던 공동체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킴벌리는 미션 파이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는다. "혹시 온라인 주문을 받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종업원 임금을 깎는 걸 보게 됐다면 매장 문을 닫는 것보다 훨씬 더 속상했을 거예요" 킴벌리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건 무관심과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한테 지는 거니까요. 미션 파이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요." 문제는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는 살아남는 일과 항상 같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션 파이의 폐점은 현실에서 수익과 포용적공동체 정신이 항상 손잡고 갈 수는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요즘의 힘든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 사업자보다 불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오프라인 사업자의 영업세를 조정해주어야 한다. 아울러 친공동체 사업장이라는 새로운 사업 카테고리를 신설해 특정 사업장이 포용성을 갖추고 사회적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해당 사업장에 세제 감면이나 인센티브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우리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P336
여러 공유 주거 기업에서 즐겨 쓰는 콘셉트인 ‘모든 것이 한 지붕아래‘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공유 공간 내에 식료품점, 세탁실, 체력단련장, 바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분리를 유발할 수있다. 거주민이 공유 시설 내에서 장을 보고 시설 내의 바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이 공간 밖의 마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주변의 공동체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고 지역 주민들도그들로부터 소외될 우려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공유 주거 기업들의 관점에서도 실패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는 지역과 진정으로 연결되어야 강한 공동체의식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 오래 머무를 확률이 높아지기때문이다. 의도가 진실하고 구성원의 참여에 진정성이 있다면 민간부문의 공동체는 이 세기의 외로움 위기를 완화하는 데 일정 역할을 수행할수 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의 공동체 공간이 해체되고, 모임 비용이 무료이거나 저렴한 장소를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고, 마을의 중심가가 퇴락해가는 지금, 공동체라는 것이 자칫 특권층만 접근 가능한 것이 될 위험이 있다.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만 ‘당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외로움은 오로지 부자만 ‘치료‘할수 있는 질병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이미 금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사적 영역의 공동체가 또 다른 적대적 건축물(타인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외로움을 완화하고 사회를 폭넓게 다시 연결하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약속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수가 접근하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 P357
보수주의자는 흔히 ‘전통적 가족‘의 붕괴, 교회 예배 참석률 감소, 과도하게 강력한 복지국가에 원인을 돌린다. 복지국가가 개인의 책임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약화시킨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움 위기의 해법을 대개 개인에게서 찾는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위해 더 노력하는 수밖에없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본질적인 이유는정부의 역할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라고 말한다. 그들은 시민을 피해자로 묘사하며, 국가가 할 일에만 강조점을 두곤 한다. 적어도 공동체를 보살피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책임에 관해서라면 상대적으로 개인은 무임승차가 허용된다. 외로움의 추동력이 무엇인가와 관련한 이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멸적이다. 이 두 정치적 관점 모두 나름대로 진실을 담고 있지만 둘 다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지도, 이 위기를 해결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앞서 봤듯이, 외로움을 발생시키는 구조적 원인은 국가의 행동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행동 둘 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아울러 21세기 기술의 발전 양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스마트폰 중독일 수도 있고, 일터에서의 감시일 수도 있으며, 긱 이코노미가 될 수도 있고, 날로 늘어가는 비접촉 경험이 될 수도 있다. - P364
더욱이 이러한 외로움의 추동력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때가 많다. 당신의 고용주가 응급 상황에 부닥친 연로한 부모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으면, 당신은 부모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들과 함께하거나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임대료가 자꾸 올라 계속 이사를 하느라 이웃을 잘 모르면 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마을 공동체에기여할 마음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인스타그램의 도파민 쾌감에 중독되었거나 사무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이메일을 확인한다면 가족이나 친구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것이고, 설사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다고 해도 휴대전화 때문에 주의가 산만할 가능성이 크다. 거리에 놓인 유일한 벤치가 도시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내려고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것이라면 당신은 거기 걸터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노닥거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에 일이 있을지 없을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당신은 자녀의 일요일 풋볼팀에서 코치를 맡겠다고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단일한 힘이 아니다. 외로움은 생태계 안에 머문다. 따라서 외로움 위기를 극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정치·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 개인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 - P365
외로움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름을 끼얹은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정치 기획이다. 자기본위로 자기 자신만 생각할 것을 부추기는 이 자본주의는 무관심을 일상화하고, 이기심을 미덕으로 만들고, 온정과 돌봄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자력갱생"과 "더욱 분투하라"를 외치는 이 자본주의는 공공 서비스와 마을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인류의 번영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하고 우리의 운명이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서사를 영속화했다. 우리가 전에는 외로운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우리의 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갈수록 심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연대, 공동체, 더불어 살기, 친절등의 가치를, 부드럽게 표현하면 주변부로 밀어냈고 심하게 표현하면 말살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그 심장부에 돌봄과 온정이 자리한 정치를 끌어안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등 뒤를 든든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 이러한 정치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형태밖에 없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 P366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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