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 유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다 복잡한 유기체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현상인지 이해하기 위해 먼저 DNA, RNA, 단백질의구조 및 기능에 대해 짧게 살펴보자. 낯설고 골치 아픈 이야기일지몰라도 생물학의 논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이 요소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하며, 각각의 역할과 상호작용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읽게 될 몹시 대단한 발견들의 가치를 음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 발견들의 충격은 살아 있는유기체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분자들에 대해 잘 알수록 커진다.
DNA, RNA, 단백질의 관계는 이렇다. DNA는 RNA를 만드는 주형이며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주형이다.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는 두 단계를 거쳐 단백질로 해독되는 셈인데, 세포와 신체 내에서 실제 업무를 해내는 것은 단백질들이다.
먼저 염색체, 유전자, DNA의 관계를 알아보자[그림3-1]. 세포 안에들어 있는 굉장히 기다란 DNA 분자를 염색체라고 한다. 그 DNA 분자 위에는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각각의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다.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구성 요소들이 두 개의 기다란 가닥을 이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각 뉴클레오티드는 A. C. G. T라는 약자로 불리는 네 가지 염기들 중 하나를 갖는다. 두 개의 DNA 가닥이한데 얽혀 있는 것은 양쪽 가닥에 있는 염기들이 서로 쌍을 이루어 강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염색체의 수는 적은 경우에는 하나일 수도 있고(대장균), 훨씬 많을 수도 있다(사람은 23쌍이 있다).  - P89

이제 DNA의 정보가 어떻게 해독되는지 알아보자.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첫 단계는 전사 과정으로, ‘메신저 RNA‘(mRNA)가 DNA 분자 중 한 가닥과 상보하는 염기서열을 전사한다. 두번째 단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mRNA가 단백질로 해독되는 과정으로서, 번역이라고 불린다[그림3-2]. RNA 염기서열을 단백질 서열로 번역하는 데는 보편적인 유전암호가 또 존재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조각들이 모여 긴 사슬을 이룸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DNA 염기서열과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에는 직접적인 대응관계가 있다. 아미노산 서열의 내용은 단백질의 모양과 화학적 속성을 결정한다. 산소를 나를지, 근섬유를 만들지, 락토오스를 분해할지 등을 정하는 것이다. - P91

1. 유전자의 활동은 DNA 결합 단백질이 붙었다 떨어졌다 함으로써조절된다.
2. DNA 결합 단백질은 그 유전자 근처에 있는 특정 DNA 서열을 감지할 줄 안다.

박테리아의 유전자 스위치를 발견한 것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엄청난 개념적 충격이었다. 자콥과 모노는 이것이 세포의 생리를 통제하는 우아한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보다 복잡한 유기체들에서 어떻게 세포 분화가 통제되는지 밝히는 데 대단한 도움을 줄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혈액, 뇌, 근육 세포 등의기능이 각 조직의 임무에 맞도록 전문화된 단백질 생산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테리아의 효소 유도 연구는 동물의 기관세포들이 각기 전문적 기능을 펼친다는 개념을 이끌어낸 선구자인셈이다. 

약 180개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부분으로서, 단백질로 번역해보면 아미노산 60개에 해당했다. 각각의 호메오 유전자는 특정 신체부위와 부속에 저마다 독특한 영향을 미치지만 한편으로 모든 호메오 단백질들이 모종의 공통적 기능을 갖는다는 뜻이었으므로, 실로 대단히 흥분되는 발견이었다.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는 DNA의 모양새를 따서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호메오 유전자들에 공통되는 180개 염기쌍 서열이 기다란 DNA 서열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작은 ‘상자‘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호메오박스(homeobox) 유전자라고 불렀다. 그것이 암호화하는 단백질 부분이 호메오도메인이다. 나중에는 호메오박스를 가진 호메오 유전자들을 일컬어 혹스(Hox) 유전자라 줄여 부르게 되었다. - P96

처음에는 호메오박스의 기능에 대해 상충하는 해석들이 난무했다. 호메오박스의 중요성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고작해야 세포 속에서 단백질들의 이동 위치를 알려주는 등의 평범한 기능을 암호화하고 있으리라 주장한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호메오박스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옥스퍼드 대학의 조너선 슬랙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제타석의 발견에 호메오박스 발견을 견주었다. 호메오박스는 모든 동물의 발생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어줄까?
척추동물을 포함한 몇몇 동물들에서 혹스 유전자가 발견되고 몇년이 지났을 때, 그것을 덮어버릴 만큼 대단한 사건이 벌어졌다. 쥐의 혹스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보았더니 파리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4개 복합체이다). 게다가 각 복합체 속 유전자들의 순서는 각각이 발현되는 쥐의 신체부위 순서에 정확하게 대응했다. 상이한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이 그저 유전자 염기서열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복합체 조직을 이루는 방식. 나아가 배아에서 활용되는 방식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림3-5].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은 파리와 쥐처럼 상이한 동물들의 발생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계의 거의 모든 일원들, 사람이나 코끼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파리 연구를 열렬히 지지했던 생물학자들조차 혹스 유전자가 이토록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토록 중요하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상이한 동물들이 그저 비슷한 종류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을 넘어서 아예똑같은 유전자들로 만들어졌다니! - P99

아이리스, 아니리디아, 스멀 아이 유전자를 한데 묶어 팍스-6(Pax-6)라고 부른다. 묘사 면에서는 심심한 이름이지만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 하는 점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항상 눈 발생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팍스-6는 와충류 같은 단순한 구조부터 훨씬 복잡한 척추동물까지, 모든 동물의 모든 종류의 눈 형성과 관련이 있다. 팍스-6 유전자가 동물계의 눈 발생에 광범위하게 연관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상이한 집단의 동물들이 저마다 바닥에서부터 새 눈을 만들어낼 때 우연히도 매번 팍스-6유전자가 소환되어 사용된 것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형태인지는 몰라도 동물들의 공통 선조가 가졌던 눈이 발달할 때 팍스-6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맡겨진 역할이 진화 역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온전히 보존된 것이다.  - P104

간단히 말하면,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동물의 몸에서 튀어나온 부속지들의 형성에는 하나같이 DLL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었다. 병아리의 다리, 어류의 지느러미, 해양 선충들의 부속지(‘족‘이라 불린다), 멍게의 병낭과 입수관, 성게의 관족 등이 다 그랬다. 몸통에 달려 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너무나 상이한 구조들을 형성하는 데 똑같은 툴킷 유전자가 작용하는 것이다. 팍스-6 유전자와 흡사한 상황이다. 확인된 동물들은 분류 체계의 서로 다른 주요가지들을 대표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팍스-6와 눈 진화의 관계를 두 가지로 해석했듯, DLL과 부속지 진화의 관계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매번 새로이 구조들이 생겨날 때 DLL이 독립적으로 여러번 사용된 것이거나, 공통의 선조가 모종의 부속지를 만들어낼 때 DLL을 사용했기 때문에 역할이 진화 역사 내내 재사용되며 보전된것이다. - P105

파리, 척추동물, 기타 동물들의 팍스-6, 디스탈리스, 틴먼족 단백질들에 공통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단백질들이 모두 호메오도메인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죄다 DNA 결합 단백질들이라는 뜻이다. 이 호메오도메인들은 앞서 보았던 혹스 단백질 호메오도메인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호메오도메인에는 약 스물네 가지의 계열이 있는 듯하다.
혹스, 팍스-6, DII, 틴먼 단백질은 서로 다른 계열에 속한다. 서로 다른 동물들의 팍스-6 단백질끼리가 서로 다른 호메오단백질 계열들끼리보다 더 비슷하다. 혹스 단백질, DII 단백질, 틴먼 단백질 역시 계열이 다른 호메오도메인 단백질들보다 제 계열 내의 일원들끼리더 비슷하다. 호메오도메인 종류가 구분되는 것은 전문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DNA에서 서로 다른 염기서열에 결합한다). 어쨌든 모두 DNA에 결합하고, 기관이나 부속지 발생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을 볼 때, 그들이 발생 중인 눈, 부속지, 심장 등에서 유전자 상태를 켜고 끄는 조절 역할을 맡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큰 까닭은 어쩌면 많은 수의 유전자들을 조절하기 때문인지도, 어쩌면 기관 형성의 초기에 개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둘 다인지도 모른다(어느 쪽이든 이들이 없으면 기관이나 신체부속 형성이 망가지긴 마찬가지다). - P106

척추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이 잘못되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은 이런 선천적 장애 외에 암이 있다. 세포 안팎의 조절장치들이 잘못될 경우 생겨나는 것이 종양인데, 세포의 신호 반응 능력에 이상이 있을 때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저세포암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 사례이다. 피부암 중 가장 흔한 종류로서 특히 햇볕에 지나치게 노출된 얼굴과 목에 자주 발생한다. 여러 종양세포들이돌연변이 소닉 헤지호그 수용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신호전달 경로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해지는 돌연변이다. 그러므로 종양을 치료하는 한 화학요법으로 신호전달 경로 억제제를 투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읽으며 짐작했겠지만 바로 그 사이클로파민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사산한 양에서 식물의 독성물질을 지나 인간의 암 화학치료라니, 참으로 신기한 과학 발전 역정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역시 헤지호그 경로 돌연변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뇌종양과 췌장암에도 이 접근법이 쓰이고 있다. - P115

공동의 툴킷이 발견되자 다양성의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필연적으로 변화가 왔다. 우리는 여러 동물의 툴킷 유전자들에 관한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툴킷 유전자들이 동물계에 널리 퍼져 있는것은 무슨 의미일까? 툴킷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대부분의 동물종류가 진화해 갈라지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또 파리류, 선충류, 사람, 한 종류의 쥐와 물고기, 기타 몇몇 동물들의 완전한 게놈 서열 분석 자료를 갖고 있다. 게놈을 비교해본 결과, 파리와 사람이 공통의 발생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약과였다. 쥐와 사람은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2만 5천 개가량 갖고 있고, 침팬지와 사람은 DNA의 약 99퍼센트가 동일하다. 공통의 툴킷이 있을뿐더러 상이한 종들의 게놈이 몹시 흡사하다는 사실은 명백히 역설이다. 공유하는 유전자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차이가 생겨나는 가? 어떻게 동일한 혹스 유전자 집합들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여러 절지동물들을 조각해낸단 말인가? 포유동물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영장류, 유인원, 인간의 차이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 P116

개구리와 파리의 배아 및 유충은 포식자들에 한없이 취약한 상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 질주하듯 발생을 해치워버릴 수밖에 없다. 암컷이 생산한 수백 개의 알 중 성체로 무사히 자라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람의 생태는 전연 다르다. 사람은 최고로 안전한 장소에서 발생을 겪으며, 어쨌든 처음에는 매우 느린 속도로 발생을 진행시킨다. 인간 수정란의 초기 분열들은 매 스무 시간마다 한 번씩 벌어지므로, 올챙이가 완벽하게 만들어질 시간 동안 고작 32개세포를 만들 수 있다. 낭배 형성은 13일째에야 시작되며 머리 영역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되는 데 약 3주가 걸린다. 배아 뒤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마디들 같은 것이 두 줄로 생기는데 척추동물이란 증거이다(이 원체들로부터 나중에 척추 및 주변 근육과 피부가 생겨난다). 이쯤일 때 인간 배아의 길이는 2.5밀리미터 남짓하다. 태어나려면 아직도 여덟 달을(길기도 하지!) 지내야 한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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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은 무조건 물리쳐야 할 해악인가? 그렇지 않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사유에 지배당한 조선 사대부에게는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놓는 상태인 ‘방심‘, ‘잡념‘, ‘망상‘, ‘상념‘이 자신을 망치는 가장 해로운 적이었다. 그러나 성호학파의 문인 이학규(李學逵)는 오히려 망상을 통해 절망으로 가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와 활력을 찾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망상 덕분에 유배지에 갇혀 있는이 몸도 크게는 온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작게는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터럭 끝까지도 헤매고 다닐 수 있다고 망상을 하는 순간 자신의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할 만하다고. 만약 지금 마음속 한 가닥 망상을 없애려고 한다면, 그의 삶은 불씨가 죽어 버린 잿더미처럼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영원히 살아 움직임을 증명할 수 있는것은 망상에 있을 따름이다.
성리학적 세계관과 사유에 얽매이고 구속당하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이른바 ‘망상 예찬‘이다. 망상이 있어야 사람의 정신과 마음은 비로소 사상의 한계와 세상의 경계를 넘어서 무한과 무궁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망상이 없다면 사상의 한계와 사유의 경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망상하고 또 망상하라.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삶이 바로 그 망상 속에 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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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특유의 무관심을 보이는 동안 집에서 만든 작은 동물 모양의 캐러멜은 마을에서 계속 팔리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불면증으로 푸른색이 된 달콤한 병아리들, 불면증으로 분홍색이 된 맛있는 생선들, 불면증으로 노란색이 된 보드라운 망아지들을 빨아 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급기야는 온 동네사람들이 월요일 동틀 무렵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당시에 할 일은 엄청나게 많은데 시간이 모자랐던 마콘도 사람들은 잠을 안 자게 되는 것을 오히려 즐거워했다. 어찌나 열심히 일들을 했던지 이내 할 일이 더 이상 없게 되었고, 새벽 3시에 시계에서 나오는 왈츠의 음표들을 세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게 되었다. 피로 때문이 아니라 꿈이 그리워 잠을 자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피곤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함께 모여 앉아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이나 되풀이하고, 거세한 수탉얘기를 신경질이 날 정도까지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얘기하는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거세한 수탉 얘기를 또 들려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얘기를 듣는 사람이 그러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듣고 싶다고 대답하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라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자리를 뜰라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자리를 뜨라고 부탁한 적이 없고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는 등, 그런 식으로 며칠밤이 새도록 지속되는 지독한 모임에서 밑도 끝도 없는 장난을 쳐댔다. - P78

"우린 이 마을에서 종이를 가지고 명령을 내리지 않소.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주겠는데요. 이 마을에는 조정할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린 그 어떤 조정관도 필요없소." 그는 침착성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돈 아폴리나르 모스코테의 뻔뻔스러운 태도 앞에서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자기들이 마을을 어떻게 세웠으며, 땅을 어떻게 분배했으며, 그 어떤 정부도 귀찮게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서, 어떻게 길을 닦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개선해 왔는지 모든 것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워낙 평화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자연사를 한 사람조차도 없소. 우리에겐 아직 묘지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겠죠?" 사실, 마콘도 사람들은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는 걸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까지 자신들을 평화롭게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도 다행스럽게 여겼고, 외지 사람으로부터 이래라저래라 명령이나 받으려고 마을을 세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계속해서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지와 똑같은 색깔의 흰 생면직 저고리를 입은 돈 아폴리나르 모스코테는 단 한순간도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따라서 당신이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정착하겠다면 대단한 환영을 받을 거요. 하지만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집을 파랗게 칠하라고 강요하면서 무질서를 조장하기 위해 왔다면 당신이 가져온 그 잡동사니 세간들을 가지고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요. 우리 집은 비둘기처럼 하얀색으로 칠할 테니까 말이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결론을 내렸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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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가 산후조리차 집에서 휴식을 취한 지 약 사십 일째 되던 날 집시들이 마을로 돌아왔다. 지난번에 얼음을 가져왔던 그 곡예사들과 마술사들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얼마가지 않아 자신들이 멜키아데스 족속과는 달리 진보된 문명의 전파자가 아니라 단순히 여흥을 제공하고 물건을 파는 상인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 주었다. 얼음을 가져왔을 때도 그들은 그것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그저 서커스의 볼거리로 선전했을 뿐이다. 이번에 그들은 다른 발명품들과 함께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을 교통 수단의 발전에 근본적으로 공헌할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오락 기구로 소개했다. 물론, 사람들은 마을 집 위를 살포시 날아 보고 싶은 욕망으로 마지막 남은 황금 쪼가리들을 파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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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의 신체부속끼리 비교할 때는 처음에 같은 부위였지만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변화한 것들인지, 아니면 일대일 연관관계가 분명치 않은 연속 부위들이 엇갈려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도롱뇽, 초식공룡, 쥐의 앞다리와 사람의 팔은 상동기관(homolog)들이다. 동일한 구조가 각 종에 맞게 다른 식으로 변형되었다는 뜻이다. 모두 공통 선조의 앞발로부터 진화한 것이다.
뒷발, 즉 사람의 다리나 네발 척추동물의 뒷다리 역시 상동기관들이다. 그런데 앞다리와 뒷다리는 서로 연속 상동기관(serial homolog)이다. 한 구조가 반복해서 나타났다는 뜻이며, 변형 정도는 동물마다 다르다. 척추와 연관 구조들(갈비뼈), 사지동물의 앞다리와 뒷다리, 손발가락들, 이빨들, 절지동물의 구기와 더듬이와 걷는다리, 곤충의 앞날개와 뒷날개가 서로 연속 상동기관들이다. - P56

반복 구조의 수와 종류가 변하는 과정에는 틀림없이 모종의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생물학자 새뮤얼 윌리스턴은 1914년에 이렇게 단언했다. "유기체 신체부속들의 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줄어든 부위들이 기능 면에서는 훨씬 전문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또 하나의] 법칙이다." 윌리스턴은 고대 해양 파충류를 연구하는 중이었다. 초기 동물군에는 비슷한 부속들이 다수 반복되는 반면,
후대 동물군에는 부속의 수가 줄고 구조마다 한결 전문화된 형태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게다가 전문화된 패턴이 일반적인 형태로 되돌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흥미로운 사례를 한 가지 들면, 처음에 사지동물에게 발가락이 등장했을 때는 한 발에 여덟 개까지 발가락이 있었다. 하지만 여덟 개라 해도 종류로 나누면 다섯 가지에 불과했으므로 결국에는 다섯 개의 발가락만 남게 되었다. 후대종들의 발가락은 더욱 전문화되었으며 더 수가 준 경우도 생겼다. - P60

모듈들이 반복된다는 것 외에도 동물 신체와 부속에 일반적으로적용된다 할 특징이 두 가지 더 있다. 대칭성과 극성이다. 우리가 친숙한 대부분의 동물은 좌우대칭형이다. 몸의 중앙을 가르는 기다란 중심축을 기준으로 왼편과 오른편이 대칭한다. 이런 설계를 채택한 동물은 앞/뒤 방위도 갖게 되는데, 덕분에 여러 효과적인 이동 방식들이 진화했다. 좌우가 아닌 대칭형을 갖는 동물도 있다. 가령 구멍연잎성게 같은 성게류 등 신기하고 다양한 종들이 속해 있는 극피동물은 5방사대칭형이다(그림1-12]. 대칭축을 찾아보는 것은 동물이 형성된 방식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동물 신체와 부속의 극성, Polarity)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동물은 극성을 나타내는 축이 세 개가 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몸 위에서 아래까지(직립한 사람의 경우에는 등에서 몸 앞까지가 된다). 몸에 가까운 쪽에서 먼 쪽까지 (몸통에 수직으로 붙어 있는 팔다리처럼 몸체에서 튀어나온 구조들에 적용된다)이다. 부속 구조들 각각도 극성이 있다. 손을 보자. 엄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손등에서 손바닥까지, 손목에서 손가락 끝 방향으로 세 축이 있다. - P63

슈페만 형성체의 극적인 효과를 보고 알 수 있는 사실은, 배아의한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발생에 질서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이후 마찬가지로 극적인 다른 형성체들도 여럿 발견되어 이 원칙이 발생의 여러 차원에 적용되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배아 전체에 적용되는 것도, 개별 신체부속에 적용되는 것도 아주 세세한 패턴에 곧장 적용되는 것도 있다. 극적인 활약을 보이는 행성체를 두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사지의 형성은 예전부터 발생학자들을 매료시켰다. 발생 초기에배아 옆구리에 툭 튀어나온 작은 싹 모양 아체 (體, bud)였던 것이여러 단계를 거치며 꼴을 갖춰간다. 삼일 된 닭 배아의 아체는 길이와 폭이 1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병아리가 부화할 즈음이면 천배 가까이 자란다. 그 사이에 자그만 조직 뭉치는 바깥으로 자라며 길어지고, 뼈, 연골, 근육, 힘줄, 손발가락, 깃털을 발달시킨다. 질서 있고 아름답게 발생 과정을 펼쳐간다.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은 연골 요소들이 가지런히 형성되는 일이다(이 자리에 나중에 뼈가 들어선다). 연골은 세포들이 응집된 부분에 형성되는데 어깨에서 시작하여 손발목을 따라 마지막으로 손발가락까지. 반드시 순서대로 놓인 다. 특별한 염료를 쓰면 전 과정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다(그림2-3). 사지 발생에 순서가 있는 것, 손발가락에 극성이 있는 것을 보면 배아전체와 마찬가지로 부속 차원에도 체계적인 신호가 존재해서 세포들의 운명을 지시함을 알 수 있다. - P72

형성체들은 조직이나 세포에 영향을 미쳐 어떠한 패턴을 형성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형태발생 (morphogenesis)을 유도한다. 형성체의 활동을 단순하게 해석하면 그들이 모종의 물질을 생성함으로써 주변 세포들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 물질을 형태발생인자(morphogen)라 한다. 형성체의 영향은 대상 세포들과의 거리에 따라 다르다. 영원 배아나 병아리 날개 아체, 나비 날개에서 형성체 세포들에 가까이 있는 세포들일수록 가장 크게 영향을 받고 멀리 있을수록 덜 받는다(또는 받지 않는다). 특정위치에 생성된 형태발생인자는 멀어질수록 농도가 떨어지는 농도기울기(concentration gradients)를 만든다. 인자를 둘러싼 주변 세포들은 자기에게 와 닿는 인자의 농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 P74

베이트슨은 기형들을 두 가지 기초적인 분류로 나누었다. 반복 부속의 수가 달라진 것, 그리고 부속 중 하나가 다른 부속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베이트슨은 후자의 변이에 호메오(homeotic, 그리스어로 같거나 비슷하다는 뜻인 ‘homeos‘에서 땄다) 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용어는 매우 중요하니 기억해두는 게 좋다. 베이트이 기이한 생물들을 수집한 까닭은 자연에서도 형태의 도약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진화적 변화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베이트슨의 추론이 언뜻 직관적이며 설득력 있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둬야겠다. 생물학자들은 여러 증거를 보았을 때 진화에서 단번에 그런 엄청난 도약이 이루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드물다고 생각한다. 변이형이 생겨난다 해서 곧 새로운 종류나 종의 창시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지식으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반대다. 괴물들은 형질을 전파하지 못한 채 자연선택의 힘에 휩쓸려 사라질 부적합한 형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단번에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바람직한 괴물‘이라는 개념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 P77

호메오 돌연변이를 보노라면 하나의 구조가 다른 구조로 어쩌면 그렇게 완벽하게 바뀔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발달이 뒤처지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고 구조 전체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신체부속이 엉뚱한 장소에 생기거나 엉뚱한 수만큼 생긴 것이다. 주지해야 할 점은, 변화가 연속 상동기관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더듬이가 다리로, 뒷날개가 앞날개로), 변형의 원인이 단 하나의 유전자에 일어난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초파리의 경우 ‘호메오‘ 유전자, 즉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호메오 형태를 일으키는 유전자들의 수가 아주 적다. 그러니까 몇 개 안 되는 ‘마스터‘ 유전자들이 파리 연속 상동기관들의 분화를 모두 담당한다는 뜻이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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