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리를 쌌어."
"아, 그렇구나."내가 안심하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엄마 머리를 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이 마구 떨렸다. 당시에 신호등이 어떤색깔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난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치 난생처음 울어 보는 것처럼 눈물이 펑펑 흘렀다. 서럽게 신음하듯 무너져 울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울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울었다. 지금 울고 있는 내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우는 나 자신을 보면 찰싹 등을 때리며 "이건 울 가치도 없는 일이야"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울었다. 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카타르시스도 아니었다. 내 자신이 서러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내 몸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고통이 터져 나오는 거였다. 그 사람은 내 엄마였다. 내 동료였다.
나와 엄마는 늘 함께하며, 같이 세상에 맞서 왔다. 앤드루가 "엄마 머리를 쐈어"라고 했을 때 나는 둘로 쪼개졌다. - P405

"쉬." 엄마가 말했다. "울지 마라, 얘야. 쉬이이. 울지 마."
"어떻게 안 올 수가 있어요. 엄마? 엄만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
"아니, 난 죽지 않았을 거야. 난 죽지 않았어. 괜찮다."
"하지만 전 엄마가 죽은 줄 알았다고요."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를 잃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니지, 얘야, 아가, 울지마, 트레버, 트레버,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라 들어."
"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아가, 넌 좋은 면을 볼 줄 알아야 해."
"뭐라고요? ‘좋은 면‘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엄마, 엄마는 얼굴에 총을 맞았어요. 좋은 면 따위는 없다고요."
"당연히 있다. 이제는 네가 공식적으로 가족 중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되었잖니."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나도 따라 웃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동시에 미친사람처럼 웃음도 났다.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았고, 우리는 늘 그랬던것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엄마와 아들이 중환자실의 고통 속에서 함께 웃고 있었다. 밝고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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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병석에 누워 있는 시간은 정말 마법의 시간이라고 할 것이다! 바깥세상, 즉 마당이나 정원 또는길거리에서 보내는 자유 시간의 세계는 아주 희미한 소리가 되어 병실로 들어올 뿐이다. 병실 안에는 환자가 읽고 있는 이야기와 형상들의 세계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고열은 주변 세계에 대한 감지력을 떨어뜨리고 상상력을 날카롭게 해 병실을 하나의 새로운,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괴물들은 커튼과 벽지의 문양 속에서 흉측한 얼굴을 내보이고,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서가와 옷장들은 산이나 건물 또는 배가 된다. 그것들은 우뚝 솟아올라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기나긴 밤 시간 내내 환자와 함께 있어주는 것은 교회 시계탑의 종소리와 가끔씩 지나가는자동차들의 부르릉 소리, 사방의 벽과 지붕을 더듬으며 반사되는 전조등 불빛뿐이다. 이때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동경, 회상, 불안, 욕망 등이 미로를 만들어놓는다.
환자는 그 미로에서 끊임없이 길을 잃고 또다시 찾았다가 또다시 잃곤 한다. 이때는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 할 것 없이.
그런데 환자의 병이 나으면 이 모든 것은 끝나고 만다. 하지만 병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된 상태라면, 병실은 외부 세계에대해 방수 처리되고 이제 병이 거의 나아 전혀 열이 나지 않는환자라 하더라도 미로 속에서 헤맨다. - P20

나는 가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에겐 가축과 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산책 나갈 때 데리고 가는 개, 데리고 노는 고양이, 사람의 무릎 위에서 몸을 동글게 말고 있다가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게 가르랑거리는 고양이. 이 녀석들은 우리에게 사랑스런 존재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의 먹이를 사러 가고 변기를 치우고 가축병원에 가는 것은 사실 너무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가족인 우리가 그의 인생 자체였으면 정말로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나는 가끔 늘 불평만 늘어놓는 형과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여동생도 차라리 다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엔 그들 모두가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의 어린 여동생. 생각건대 4남매 중에 막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도 뻔뻔스럽지 않고서는 자기주장을 할 수 없었으리라. 나의 형. 우리는 한방을 썼다. 이것은 분명히 나보다는 그에게 참기 힘든 일이었을것이다. 게다가 내가 병이 난 후로는 방을 완전히 내게 넘겨주고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불평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의 아버지. 그에게 우리 자식들이 어떻게 인생이 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자라나 곧 어른이 될것이고 그러면 집에서 나갈 테니 말이다. - P34

"이름이 뭐예요?"
나는 7일인가 8일 째 되는 날에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내 몸 위에서 잠들어 있다가 막 눈을 떴다. 나는 그때까지당신이라든가 너라는 호칭을 피했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이름이 뭐냐고요!"
"그건 왜 알려고 그러니?"
그녀는 나를 의심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당신하고 나는•••••• 나는 당신 성만 알고 이름은 모르잖아요. 난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어요. 그게 뭐 잘못되기라도••••••."
그녀는 웃었다.
"아무것도 아냐, 꼬마야. 아무것도 잘못된 거 없어. 내 이름은 한나야."
그녀는 계속해서 웃었다. 그녀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바람에 나도 덩달아 웃었다.
"당신 모습이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여요."
"반쯤 잠들어 있었거든. 네 이름은 뭐니?"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을 걸로 생각했다. 학교에서쓰는 물건들을 책가방 대신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의 물건들을 부엌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맨 위쪽에, 즉 공책뿐만 아니라 책들 위에 적혀있는 내 이름이 보였다. 나는 늘 배운 대로 책들을 튼튼한 종이로 싸고 거기에 책 제목과 내 이름을 적은 표찰을 붙여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 이름은 미하엘 베르크예요."
"미하엘, 미하엘, 미하엘." 그녀는 내 이름을 음미했다. "내꼬마의 이름은 미하엘이고, 대학생......."
"고등학생이에요."
"고등학생이고, 나이는, 열일곱 살?"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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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활동하기 때문에, 딱정벌레는 야행성 곤충과 달리 멀리 있는 불꽃을 쉽게 감지할 수 없다. 그들은 시각에 의존해 연기기둥을 추적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먼발치에서 연기기둥을 식별할 만큼 예리한 눈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듬이를 이용해 그을린 나무 냄새를 탐지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단서는 바람의 방향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단서는 ‘열‘이다.
모든 물체의 원자와 분자는 끊임없이 진동하며, 이 운동은 전자기 복사detromagnetic radiation를 생성한다. 물체가 뜨거워질수록 분자는 더 빨리 운동하며, 더 높은 주파수에서 더 많은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 방사선은 약간의 가시광선 가열된 금속에서 나오는 빛을 생각해보라-을포함하지만, 대부분은 적외선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우리는 적외선을 볼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벽난로 근처에 서 있으면 불타는 나무에서 적외선이 방사된다. 적외선이 당신에게 도달하면 그 에너지가 흡수되어, 벽난로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를 가열하고 피부의 온도 센서를 작동시킨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열기를 느끼고, 그게 어디서 오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적외선 조명 아래에 있는 신체부위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반면, 적외선 그림자 속에 있는 부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트릭은 근거리에서만 작동한다. 적외선은 벽난로에서 사방으로 퍼지고, 그중 일부는 이동하는 동안 흡수되기 때문이다. 벽난로에서 멀어질수록 당신에게 도달하는 빛의 양이 줄어들어, 마침내 그것이 전달하는 에너지는 더 이상 당신의 몸을 (탐지될 만큼) 가열하지 못한다. 따라서 원거리에서 오는 적외선을 탐지하려면, 광원이 (태양처럼) 극도로 강렬하거나 특수 장비가 있어야 한다. 검정넓적비단벌레속 딱정벌레는후자에 해당한다. - P223

딱정벌레의 몸에는 또 한 가지 비결이 있다. 모든 곤충과 마찬가지로그들의 외부 표면은 화재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매우 잘 흡수한다. 딱정벌레는 불을 효율적으로 쫒도록 전적응 prcadaptation (생물이 현재 처해 있는환경과는 다른 환경에 처하거나 생활양식을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 이미 그것에 적합한형질을 가지고 있어 적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옮긴이)되어 있는셈이므로, 그들의 조상은 몸이 자연적으로 흡수하는 적외선을 감지할수 있는 센서를 개발하기만 하면 되었다. 열한 종의 검정넓적비단벌레가 이렇게 했는데, 매우 성공적이어서 다섯 개 대륙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호주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세 가지 다른유형의 곤충들이 독립적으로 적외선 센서를 진화시켜, 까맣게 그을린 숲의 고요한 낙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불 쫓는 기술은 너무나 유용해서 적어도 네 번-검정넓적비단벌레, 호주의 세 가지 곤충-진화했지만, 불은 동물이 추적하고 싶어 하는 유일한 열원이 아니다. 어떤 종들은 몸의 온기를 추적한다. - P226

소름끼칠 수 있지만, 기생은 자연계에서 가장 흔한 생활방식 중 하나다. 대부분의 동물 종은 다른 생물의 몸을 착취함으로써 생존하는 기생충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무임승차자 중 상당수는 숙주를 선택하는데 까다로우며, 올바른 표적을 찾기 위해 약간의 방법이 필요하다. 냄새는 좋은 단서를 제공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수억 년 전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조류와 포유류의 조상은 체온을 생성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독립적으로 진화시켜, 주변 온도와 자신들의 온도를 분리했다. 전문적으로 내온성, 구어체로 온혈성으로 알려진 이 능력은 조류와 포유류에게 속도와 스태미나, 지구력과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 능력 덕분에, 그들은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장기간 및 장거리에 걸쳐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온혈동물은 누군가에게 추적당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즉 그들은 변하지 않는 체온 때문에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 숙주(특히 혈관)를 찾는 기생충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혈액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일반적으로 무균 상태여서, 결론적으로 최고의 식량원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1만 4000종의 동물들 - 빈대, 모기, 체체파리, 참노린재assassin bug이 이것을 먹고 살기 위해 진화했으며, 그들중 상당수가 열에 적응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P228

 환경세계 개념의 창시자인 야콥 폰웍스킬은 진드기가 냄새를 통해 숙주를 추적하고 온도를 사용해 맨살에 내려앉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앤카Ann Carr와 빈센트 살가도Vincent Salgado는 최근 진드기가 최대 4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체온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랍게도 두 사람은 DEET와 시트로넬라 같은 곤충 기피제가 진드기의 후각을 방해하는게 아니라 열 추적을 막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진드기 물림을 예방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학자들에게 ‘기존의 많은 진드기 연구를 재평가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진드기의 환경세계에 대한 연구자들의 부정확한 지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과거의 실험들이 잘못 해석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진드기의 열 감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의 탐색용 다리 끝에 있는 기관은 지금껏 냄새 탐지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흡혈박쥐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조들의 기저부에는 작은구형 요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요부는 얇은 시트로 덮여 있고, 시트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다. 전형적인 코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끔찍한 설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방향제가 시트에 가로막혀 기저의 뉴런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외선 센서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탁월한 설계다. 멀리 떨어진 숙주의 혈액에서 나온 적외선은 대부분 시트에 의해 차단되지만, 일부는 미세한 구멍을 통과해 그 아래의 요부를 부분적으로 비출 것이다.
요부의 어떤 부분에 적외선이 비치는지 분석함으로써, 진드기는 ‘적외선의 방향‘과 ‘열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 P231

열에 민감한 구멍은 세 그룹의 뱀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이중두 그룹인 비단뱀과 보아뱀은 무독성 보아류constrictor로, 숨을 막히게 하는 휘감기로 먹잇감을 죽인다. 세 번째 그룹은 적절하게 명명된 맹독성의 살무사류pit viper-코튼마우스 cottonmouth, 코퍼헤드 copperhead, 모카신moccasin, 방울뱀-다." 방울뱀은 따뜻한 물체를 공격하고, 죽은 지 오래된 쥐보다 갓 죽은 쥐를 선호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공격한다. 선천적으로 눈이 없는 눈먼 방울뱀조차도 눈 있는 방울뱀만큼이나효율적으로 생쥐를 죽일 수 있다." 구멍 덕분에, 그들은 설치류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머리를 정조준할 수도 있다.
살무사의 열 민감성은 (진드기 다리에 있는 것과 유사한) 구멍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구멍의 모양이 궁금하면, 동그란 어항 바닥에 미니 트램폴린을 놓고 전체를 옆으로 눕힌다고 상상해보라.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공기가 가득 찬 넓은 방이 나오고, 얇은 막이 그 방을 가로막고 있다. 입구를 통과한 적외선이 막에 부딪혀 막을 가열한다. 이런 일이 쉽게 발생하는 것은 막이 구성요소들에 노출된 채 공중에 매달려 있고 이 책한 페이지의 6분의 1만 한 두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막은 미세한 온도 상승을 감지하는 약 7000개의 신경종말들로 가득 차 있다. 엘레나 그라체바가 발견한 것처럼, 이 신경들은 다른 신체부위에 있는 뉴런보다400배나 많은 TRPA1을 보유하고 있으며 막의 온도가 0.001도만 상승해도 반응한다. 이 놀라운 민감성은, 살무사가 최대 1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설치류의 온기를 감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의 머리 위에 눈가리개를 한 방울뱀을 앉혀놓는다면, 방울뱀은 당신의 쭉 뻗은 손가락 끝에 있는 생쥐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234

이런 특성들-호기심, 손재주, 분해하는 취미-은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에 서식하는 해달에게 안성맞춤이다. 빈번히 직면하는 차가운 바닷물은 족제빗과 동물에게 커다란 부담이지만, 해양 포유동물에게는지극히 사소한 일이다. 해달에게는 보온이 되는 우람한 몸도, 단열재 역할을 하는 바다표범 · 고래 · 매너티의 지방도 없다. 그들은 동물계에서가장 촘촘한 털을 가지고 있어서 1제곱센티미터당 몸털 수가 우리의 머리털을 능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체열의 신속한 방출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체중의 4분의 1에 상당하는 먹이를먹어야 하는데 해달의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다이빙을 한다. 못 먹는 게 거의 없고, 거의 모든 먹잇감을 손으로 잡는다. 광량이 불충분할 때도, 그들은 분주한 발놀림으로 먹이를 찾는다. 셀카가 테이블을 분해할 때 보여준 손재주를발휘해, 야생 해달은 물고기를 낚아채고 성게를 잡고 해저에 묻힌 조개를 캐낸다. 섬세한 촉각 덕분에, 그들은 넓고 차가운 바다에서 아담하고 따뜻한 포유동물로 살아남을 수 있다.
해달의 뇌를 살펴보면 발의 민감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해달의 촉각을 관장하는 뇌 영역은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이다. 체성감각피질의 상이한 부분들은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정보를 입력받는데, 이 부분들의 상대적인 크기를 분석하면 동물의 주요촉각기관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손. 입술·생식기와 관련된 부분이 발달했고, 생쥐는 수염, 오리너구리는 부리,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이빨과 관련된 부분이 각각 발달했다. 해달의 경우, 발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는 부분이 다른 족제빗과 동물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크며 심지어 다른 수달보다도 크다. - P244

지금 당장 해달이 먹이를 찾으러 간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은 바다 표면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둥둥 떠다니고 빙그르르 구르고 잠수한다. 그들이 바닷물에 잠겨 있는 시간은 1분에 불과한데, 이 정도면 당신이 이 단락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잠수는 소중한 1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므로, 올바른 깊이에 도달하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몇 번에 걸친 ‘광란의 순간‘에, 해달은 우툴두툴한 손모아장갑으로 해저를 헤집으며 모든 것을 탐색한다. 물속은 어둡지만 어둠은 문제가 되지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발 아래에 펼쳐진 바다는 만지고, 움켜쥐고, 누르고, 찌르고, 쥐어짜고, 쓰다듬고, 다룰 수 있는 모양과 질감으로 넘쳐난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먹잇감은 비슷하게 단단한 암석 사이에 자리 잡고 있지만, 해달은 순식간에 둘의 차이를 느끼고 암석에서 먹이를 끄집어낸다. 촉각, 다재다능한 발, 그리고 족제빗과 특유의 넘치는 자신감으로 조개를 낚아채고, 전복을 홱 잡아당기고, 성게를 움켜쥐고,
마침내 어획물을 먹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1분이다. - P246

촉각의 속도와 민감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엽기적인 코를 가진 두더지는 곤충의 애벌레 같은 작은 먹잇감을 감지하고 포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조각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양을 포획해야 한다. "그들은 작은 진공청소기에요." 카타니아가 말한다. "워낙 작은 것을 먹기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그들이 그런 고생을 하는 이유는, 경쟁자가 없기때문이다. 별코-손처럼 작동하고 눈처럼 스캔하는 코-덕분에 지하세계는 눈부시도록 상세하게 보이고, 경쟁자들이 인지할 수조차 없는 먹이로 넘쳐난다. 다른 두더지들에게는 텅 빈 복도처럼 보일 수도 있는 땅굴이 ‘별‘의 손길 아래에서 맛있는 간식으로 반짝인다.

별코두더지처럼 촉각에 특화된 동물 중 상당수는 시각이 제한된 조건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종종 숨어 있거나 찾기 어려운 것을 탐색하는데, 이를 위해 ‘탐지하고, 누르고, 탐색할 수 있는 신체부위‘를 가지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한다. 해달의 발이 됐든, 인간의 손가락이 됐든,
코끼리의 코가 됐든, 문어의 팔이 됐든, 동물은 의도적으로 촉각기관을 움직여 세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더지가 보여준 바와 같이, 그 기관이 굳이 손일 필요는 없다.
새의 부리는 뼈로 만들어졌고, 단단한 각질(케라틴)-손톱을 구성하는 단백질로 덮여 있다. 그것은 뭔가를 움켜쥐고 쪼기 위해 얼굴에 장착된 단단한 도구로, 생기가 없고 무감각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종의경우, 부리의 끝 부분에는 진동과 움직임에 민감한 기계수용체가 약간 포함되어 있다.  - P255

어떤 포유동물은 움직이는 동안 수염을 1초에 여러 번씩 앞뒤로 연신휘젓는다. 수염질whisking로 알려진 이 흥미로운 행동을 통해, 그들은 머리의 앞쪽과 주변 영역을 탐색할 수 있다. 수염질에 대해 처음 들었을때 나는 그것을 과소평가했다. 직관적으로, 그것은 내가 어두운 복도를비틀거리며 걸어갈 때 할 수 있는 일-벽에 부딪히지 않거나 전등 스위치를 찾기 위해 손을 뻗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감각생물학자인 로빈 그랜트 Robyn Grant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수염질 하는 생쥐나 시궁쥐가 코털을 사용하는 방식이, 내가 눈을 사용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치류는 자기 앞에 있는 장소를 지속적으로 훑어봄으로써 장면에 대한 인식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주둥이에있는 ‘긴 이동성 수염‘이 뭔가를 감지하면, 턱과 입술에 있는 ‘짧은 고정성수염‘이 더 자세히 조사한다(후자가 전자보다 더 많고 예민하다). 이 행동은 별코두더지가 땅굴 벽에 코를 들이대고 별코를 이용해 물체를 탐지하고, 최종적으로 열한 번째 광선쌍(작고 가장 민감한 광선쌍)을 가동하는것과 유사하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어떤 장면을 대충 훑어보다가 주변시야에서 뭔가를 탐지하고, 고해상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유사하다.
수염질과 시각의 유사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고개를 돌리면 눈이 먼저 움직이는 것처럼, 생쥐는 머리보다 수염이 먼저 움직일것이다." 우리가 망막을 가로지르는 빛의 패턴을 통해 세상을 지도화하는 것처럼, 생쥐는 수염의 배열을 가로지르는 촉감 패턴으로 세상을 지도화할 수 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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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보이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언 이후 그야말로 지랄 맞은상황에 처해 있었다. 후드에서 태어났다는 건 원래 후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치즈 보이는 이미 바깥세상을 구경했다.지만, 충분한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존재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 세상에 나아갈 수단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남아공의 실업률이 통계적으로 ‘낮았다‘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다. 모두들 노예로 고용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 이후에는 누구에게나 최저 임금을 줘야 했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갑자기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인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치솟았고, 50퍼센트에 이르기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였고, 후드 출신이고 특정한 말투를 쓰면 판매직조차도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아공의 흑인 거주구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들이 직장에 가거나 말거나 한 상태고, 밖에 나가 골목에서 노닥거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자유였고, 고기를 낚는 법도 배웠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낚싯대를 주지 않았다. - P303

후드에서의 삶은 또한 스트레스도 적고 편안했다. 모든 정신적에너지가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데 집중되다 보니,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까? 후드에서는 엄마네 집에 얹혀살며 남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마흔 살 남자라고 해도 업신여김을 당하지않았다. 후드에서는 결코 자신이 실패작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아도 됐다. 왜냐하면 언제나 자신보다 더 못한 누군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또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을 가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도 해도, 자신보다 특별히 더 나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기력한상태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느끼게 해줬던 것이다.
후드에는 집단의식도 충만했다. 약쟁이부터 경찰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서로를 알았다. 사람들을 서로를 보살폈다. 동네의 어떤 아줌마든지 뭘 해 달라고 시키면 반드시 그러겠다고 해야 했다. "이것 좀부탁해도 될까?"란 말이 관용구처럼 쓰였다. 마치 모두가 내 엄마고 내가 모두의 자식이라도 되는 듯이.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
"네, 뭐가 필요하신데요?"
"가서 우유랑 빵좀 사다 줬으면 좋겠는데."
"네. 문제없어요"
그리고 그 아줌마가 돈을 주면 가서 우유와 빵을 사다 준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다거나 특별히 돈 드는 게 아니라면 거절하지 않았다.
후드에서 가장 큰 원칙은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혼자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돈이 좀 있어? 그럼 왜 사람들을 돕지않는 거야? 동네의 늙은 노파가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맥주를 살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 병씩 돌렸다. 누구든 성공하면 커뮤니티에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되돌려 줘야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흑인 거주구는 치안 유지도 자체적으로 했다. 누군가가 도둑질하다 붙잡히면 동네가 처리했다. 누군가가 남의 집에 침입하다 잡히면 동네가 처리했다. 여자를 강간하다 잡히면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경찰에 잡히길 기도해야 했다. 여자가 맞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았다. 맞는 데는 따져야 할 점들이 너무 많았다. 왜 싸웠나? 누구 책임인가? 누가 시작했나? 하지만 강간은 강간이고, 도둑질은 도둑질이었다. 그건 커뮤니티를 훼손하는 짓이었다. - P318

후드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했지만, 편안함이란 위험할 수도 있는것이다. 편안함은 등을 기댈 마루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제한하는천장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 패거리 중 G 역시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직장이 없는 한량이었다. 그러다 괜찮은 옷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다. 매일 아침이면 그는 일하러 나갔고, 나머지 우리들은 그를 놀려 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나가는 그를 비웃었다.
"오, G. 멋진 옷을 입었는데!" "야, G, 오늘도 백인 남자 만나러 가는 거야?" "야, G. 도서관에서 책 빌려 오는 거 잊지 마라!"
G가 거기서 일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우리가 벽돌담위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G가 슬리퍼에 양말만 신고 나왔다. 일하러가는 옷차림이 아니었다.
"여, G. 어떻게 된 거야? 직장은 어쩌고?"
"아, 그 일 그만뒀어."
"왜?"
"내가 뭘 훔쳤다면서 해고했어."
나는 그가 일부러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 패거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스스로 자기 앞길을 막은 거라는.
후드는 자체적인 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절대 누구를버려두지도 않지만, 절대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는다. 떠나려는 선택을하는 순간, 당신을 키워 주고 절대 배신하지 않았던 공간을 모욕하는셈이 된다. 이제 그 공간은 당신의 적이 되고 만다.
후드에서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곧 떠나야 할 순간이다. 후드가 잘나가는 당신을 잡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다. 한 남자가 물건을 훔쳐 당신의 차에 몰래 넣어 두고 경찰이 그 물건을 찾아낼 것이다. 당신은 견딜 수 없다. 물론 당신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 잘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후드의 친구들을 멋진 클럽으로 데려가면,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누군가가 싸움을 시작하고 당신 친구 중 한 명이 총을 꺼내고 누군가가 총을 맞는 것이다. 당신은 멍하니 서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묻는다.
이게 후드의 방식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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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간염에 걸렸다. 나의 병은 그해 가을에 시작되어 다음 해 봄에 끝났다. 묵은해의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고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만큼 나의 몸은 자꾸만 약해져갔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몸 상태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해 1월은 따뜻했고, 어머니는 나를위해 침대를 발코니에 내다주었다. 나는 하늘과 태양과 구름을 바라보며 뜰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를 들었다. 2월의 어느 초저녁에는 지빠귀 노랫소리도 들렸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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