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점잖은 척 단장하고 속마음은 시기와 거짓으로 꽉차있는 사람은 좋아하려고 해도 한 푼의 가치가 없고 미워하려고해도 몽둥이로 때릴 만한 가치조차 없다. 단지 그가 거짓으로꾸미느라 수고로움을 다하는 꼴이 가련할 뿐이다. 만약 그가 잘못을 뉘우친다면 한 번쯤 가르쳐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매심재每心齋는 정약전의 당호다. 그의 동생 정약용은 매심재기每心齋記를 지었는데, 형 정약전이 이렇게 부탁해서였다. "매심(每心)이란 ‘뉘우칠 회悔‘다. 나는 뉘우침이 많은 사람이다. 항상 마음에 뉘우침을 새기고 있는 사람이기때문에 재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네가 기를 써 달라"
정약용은 말한다. 성인과 광인(狂人)의 차이는 뉘우침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라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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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진화의 일관된 주제 한 가지가 머릿속에 정리되기 시작한다. 자연은 완전히 무로부터 무언가를 발명해내는 수고를 자주 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툴킷 유전자들을 활용하여 기존의 구조들을 새롭게 깎아낸다. 수생 절지동물의 수많은 부속지들은 먹고, 헤엄치고, 호흡하고, 걷는 기능을 한 번에 수행하는 다기능 구조였다.
그랬던 것이 각기 전문화됨으로써 여러 종들이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에 끼어들고, 완전히 새로운 신체 설계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 P235

자각autopodium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다시 이보디보에, 그리고 현생 동물군의 유전자 및 배아 분석에 의존하여 어떻게 사지 지리의 변이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세심하게 비교할 것은 어류 지느러미의 발생과 사지동물 팔다리의 발생이다. 사지동물의 경우 팔다리는 세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게 마련인데, 몸 가까운 쪽부터 보면위팔이나 허벅지가 먼저이고 손발가락이 제일 나중에 온다. 어류의 경우는 두 가지 요소까지는 사지동물과 비슷하게 발생하지만, 결정적으로, 세번째 단계가 없다.
사지동물의 경우 세 단계의 발생 전반에 두 무리의 특별한 혹스유전자들이 관여한다. 네 개의 혹스 유전자 복합체 중 두 가지가 사용되는 것이다. 절지동물과는 다르게 몸 가까운 쪽에서 먼 쪽으로 사지를 발생시키는 데 혹스 유전자를 활용한다(절지동물은 부속지종류들을 서로 차별화하는 데 혹스 유전자를 동원한다). 혹스 유전자는 각 단계마다 다른 공간적 형태로 발현함으로써 사지 구성요소들을 전문화한다. 혹스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킨 사람이나 쥐를 보면 혹스 발현 형태가 정상적인 사지 구축 및 무늬 만들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세번째 단계에 활약하는 혹스 유전자들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손발가락의 개수나 크기가 영향을 받는다.
세번째 단계, 즉 자각 형성에 혹스 발현이 관여하도록 진화한 것이야말로 사지동물 고유의 발명이었다. 세번째 단계를 통제하는 스위치들은 첫 두 단계를 통제하는 스위치들과 다르다.  - P243

사지동물의 앞다리는 비행을 위한 날개로 세 차례 재편되었다. 익룡, 조류, 박쥐류가 각각의 경우이다. 앞다리가 날개가 되기 위해서는 위아래, 앞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몸에 착 붙게 접을 수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세 척추동물들의 날개 구조가 가만히 보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패트 십먼은 날개를 얻다에서 익룡의 날개는 ‘손가락 날개, 새의 날개는 ‘팔 날개, 박쥐의 날개는 ‘손 날개‘라고 했다(그림7-10]. 세 가지 설계를 진화 순서대로 익룡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익룡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은 약 2억 2천5백만 년 전이었다. 조류가 진화하기 약 7천만 년 전인 셈이다(조류는 익룡이 아니라 깃털 달린 공룡에서 진화했다). 익룡 날개의 두드러진 특징은 굉장히 긴네번째 손가락이 날개 바깥을 완전히 휘감는다는 점이다. 앞다리의 모든 요소와 1번에서 3번 손가락이 존재하지만 손바닥뼈들은 융합된 상태다. 1번에서 3번 손가락들은 날개막에 붙어 있지 않다. 날개막은 앞다리 전체를 따라 늘어져 있지만 날개 길이의 대부분은 길쭉해진 네번째 손가락이다.
새의 경우 날개는 막이 아니라 깃털로 만들어진다. 깃털은 피부가 자란 것으로서, 앞다리 전체에 걸쳐 돋아난다. 날개는 팔로 따지면 ‘아래팔‘에 해당하는 부분이 제일 길고, 위팔과 손과 손가락에 해당하는 부분은 짧다. 새의 네 손가락은 몹시 짧은 편이다.
박쥐의 날개는 막으로 되어 있으며 팔 전체에 걸쳐 있다. 두번째에서 다섯번째 손가락들이 굉장히 길게 늘어나 있어 박쥐의 날개를 ‘손 날개‘로 만든다. 날개 뒤쪽 끝은 뒷다리 발목에 붙어 있다. 이는비행 시에 안정감을 더하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날개의 구조가 제각기 다른 것은 똑같이 선조사지동물의 앞다리 설계에서 비롯했더라도 발생상의 변형에 차이가 있었다는걸 의미한다. 조류와 파충류의 앞다리 형성에 공통점이 수두룩하다 - P244

북아메리카 북부 호수 지역에 서식하는 큰가시고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하나의공통 선조 형태로부터 극히 최근에 갈라져 나왔다. 약 만 5천 년 전, 지난 빙하기의 얼음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큰가시고기들은 빙하호에 남은 채 고립되었다.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상당히 짧은 기간만에 서로 다른 생태지위를 차지하는 서로 다른 형태로 갈라졌다. 하나는 얕은 물 바닥에 사는 가시가 짧은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큰물에 사는 가시가 긴 종류이다(그림7-11].
둘의 차이는 주로 단단한 외피 부분에 있다. 큰가시고기의 몸 양면에는 단단한 딱지가 둘러져 있으며, 위와 아래에 가시들이 나 있다. 그런데 포식자의 압력에 따라 그 가시의 수와 길이가 다르다. 큰물에서는 가시가 길어야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있다. 하지만 물 바닥에서는 배지느러미가 길면 도리어 불리하다. 놀랍게도 물 바닥에서 제일 탐욕스러운 포식자는 잠자리 유충들이다. 이들은 큰가시고기의 가시 부분을 낚아챈다. 따라서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가시가 없는 형태의 고기로 진화한 것이다.
배의 가시는 뒷다리 종류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이 없어졌다는 것은 사지 골격 발생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발생생물학자들은 큰가시고기의 앞뒤 다리를 형성하고 특화하는 데 어떤 유전자들이 관여하는지 밝혀냈다. 그중 하나인 Pitxl 유전자는 사지동물의뒷다리 및 어류의 배지느러미 형성에 관여한다.  - P248

 진화적 혁신의 첫번째 비밀은, 두말할 것도 없이이미 존재하는 것을 동원해 작업한다는 점이다. 동물들에게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상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거미의 방적돌기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척추동물의 날개는 사지동물의 등이나 옆구리에서 새롭게 자라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모두 기존에 있던 구조의 변형판이었다. 20여 년 전에 프랑수아 자콥은 「진화와 땜질」이라는 에세이에서 진화의 이런 성격을 간파한 바 있다. 자콥은 자연을 땜질하는 수선공에 비유했다. 손에 닿는 재료들을 모아 뚝딱뚝딱 만들어낸 뒤 영겁의 시간을 거치며 끝없이 개량하고 고치는 수선공이라 했다. 사전에 그려둔 계획도와 전문적 도구로만 작업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유전자차원에까지 적용된다. 우리는 ‘오래된‘ 유전자들이 거듭 다른 방식으로 재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화적 혁신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은 일단 A로 갔다가 다음에 B로 가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데서 곧바로 B로 가는 길이 아니다.
두번째와 세번째 비밀은 다기능성과 중복성이다. 이 점을 제일먼저 지적한 사람은 다윈이었다. 이 두 속성이 존재할 때 얼마나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리는지, 나도 앞에서 누차 강조했다. 여러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가 있는데 그것이 여러 개 중복되어 존재한다면, 그때 노동 분업을 이루어 서로 다른 구조로 전문화될 여지가 생긴다.
혁신의 네번째 비밀은 모듈성이다. 1장의 내용을 떠올려보자. 나는 절지동물과 척추동물의 모듈 구조가 그들의 성공을 뒷받침한 요인이라 믿는다. 절지동물의 모듈성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라. 한동물에만도 서로 다르게 적응한 상이한 구조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수많은 혁신이 가능한 덕에 절지동물은 지구에서 가장 다채로운 동물군이 되었다. 척추동물도 그렇다. 익룡이 네번째 손가락을 길게 진화시킬 수 있었던 것, 박쥐의 손가락들이 길어져 날개막을 지지할수 있었던 것, 뱀이 수백 개의 척추뼈를 진화시켜 몸통을 늘인 것, 큰가시고기가 배지느러미/뒷다리 구조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모두 모듈 식 설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듈성 덕분에 각 신체부속들은 다른 부속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고 독립적으로 변형되거나 전문화될 수 있었다. 가끔은 엄청나게극단적인 결과도 나타나곤 했다.
동물 성체의 해부학적 구조가 모듈성을 띠는 것은 배아 지리가모듈성을 띠고, 스위치라는 유전논리가 모듈성을 띠기 때문이다. 스위치는 특정 구조에서만 선택적으로 진화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도구이다. 스위치야말로 모듈성의 비밀이 간직된 곳이며, 모듈성이야말로 절지동물과 척추동물의 성공의 비밀이다. - P251

헨리 월터 베이츠는 자신의 관찰과 수집이 다윈의 이론을 지지할 수 있음을 깨닫고 흥분하였다. "자연이 새로운 종을 제조해내는 실험실을 내가 직접 엿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이츠는 다윈에게 보낸 초기의 편지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이츠가 과학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베이츠의 표현으로는 ‘상사적 유사성‘, 즉 의태擬態 현상을 발견한 일이다. 베이츠는 곤충, 특히 나비를 주로 연구했는데, 한 종이 다른 종의 색과 무늬를 흉내 냄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이츠는 새들이 먹잇감으로 반기는 나비가 있는가 하면 꺼리는 나비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몇 차례의 체험을 통해 두 종류를 구분하였다. 베이츠는 새의 입맛에 맞는 나비 중 몇몇이 새가 꺼리는 나비의 색상 및 무늬를 따라함으로써 포식자를 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윈은 나비에 자연선택 압력이 작용하는 사례를 듣고 몹시 기뻐했다. 의태에 관한 베이츠의 논문이 "평생 읽은 논문들 증가장 주목할 만하고 감탄할 만한 논문"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현상은 요즘도 베이츠 의태라고 불린다. - P256

나비의 다채로운 색깔에 필적할 곤충은 거의 없다. 각 인편은 한가지 색깔만 띤다. 크게 확대해서 보면 인편 각각이 이웃한 인편들과는 전혀 다른 색조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보89]. 우리 눈에는 색이 섞였거나 중간 색조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개별 인편들의 색이 절묘하게 배열됨으로써 이뤄진 착시 현상이다.
날개색은 색소로 인한 색이면서 구조색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푸른색과 초록색, 파삭하게 보이는 흰색은 인편이 빛을 흡수, 반사, 산란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구조색이다. 다채로운 구조색은 인편의 미세 구조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구조색이 색소들과 결합하여 효과를 내기도 한다.
기하학적 무늬는 발생 중에 무늬를 조직해내는 신호전달 경로가 발명된 결과이다. 그중 가장 속속들이 정체가 알려진 것은 눈꼴무늬이다. 점박 형태의 눈꼴무늬는 색이 다른 인편들이 여러 겹의 동심원을 이뤄 만들어진다. 눈꼴무늬가 포식자 습격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대체로 눈꼴무늬의 역할은 습격해오는 포식자(주로 새나 도마뱀이다)의 시선을 날개 가장자리로 향하게 함으로써 연약한 몸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한다. 나비는 날개의 상당 부분이 찢겨나가도 날 수 있지만,
몸체에 타격을 입으면 치명적이다. 눈꼴무늬가 포식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왜일까? 확연한 형태가 대조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눈 모양으로 생긴 무늬가 포식자들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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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빼뜨라 꼬떼스가 받은 모욕을 보상하기 위해 그녀에게 마다가스카르의 여왕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게 한 사건으로 인해 그의 결혼은 두달 만에 파경을 맞을 뻔했다. 페르난다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신혼 가방들을 다시 꾸려 작별 인사도 없이 마꼰도를 떠나버렸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늪 지대로 가는 길에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는 수없이 간청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않겠다고 다짐한 끝에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놓고는 정부(情婦)를 포기했다.
자기 능력에 대해 알고 있던 뻬뜨라 꼬떼스는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그를 사나이로 만들었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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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가 그 소식을 전하면서 맨 먼저 편지를 보여 준 사람은 전쟁이 종결된 후부터 마콘도 시장이 된 보수파 장군 호세 라켈 몬카다였다. "아우렐리아노 이 친구, 보수파가 아니라는게 참 애석하군요." 그가 편지를 보고 한 마디 했다. 그는 진실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을 존경하고 있었다. 많은 보수파 민간인처럼 호세 라켈 몬카다는 자기 당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으며, 비록 군인의 자질은 부족했건만, 전쟁터에서 장군이라는 칭호까지 획득했었다. 그렇지만, 그는자기 당의 대다수 동지처럼 반전주의자였다. 그는 무기를 든사람들을 원칙 없는 게으름뱅들이, 모사꾼, 야심적인 사람들, 혼란 속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 민간인에 대항하는 자들이 라고 생각했다. 지성적이고, 사근사근하고, 혈기 왕성하고, 식성 좋고, 투계를 좋아하는 그는 한때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가장 위협적인 적수였다. 그는 그 광범위한 연안 지역의 여러 직업군인에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군대에게 자신의 주둔지 하나를 내줄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그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두 통의 편지를 남겨두고 철수했다. 그중에서 내용이 무척 길었던 편지 한 통은 전쟁을 좀 더 인간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공동 캠페인을 전개하자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 통은 자유파가 장악한 지역에 살던 아내에게 보내는 것이었는데, 아내에게 꼭 전해지도록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편지를 두고 갔었다.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살벌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에라도 두 사령관은 포로 교환을 위한 휴전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휴전기는 약간의 축제 분위기까지 가세된 일종의 휴식기였는데, 몬카다 장군은 휴전기를 이용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체스 두는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아주 좋은 친구가 되었다.  - P229

"이건 알아 두게, 친구. 자네를 총살시키는 건 내가 아니네.
혁명이 자넬 총살시키는 걸세." 그가 사형수에게 말했다.
몬카다 장군은 방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고서도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지조차 않았다.
"그런 똥 같은 소린 집어치우게, 친구." 몬카다 장군이 대꾸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마콘도로 돌아온 뒤 그 순간까지 몬카다 장군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 그는 몬카다 장군의 너무 많이 늙어 버린 모습과, 수전증에 걸린 손,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지니게 마련인 약간은 상투적인 체념을 보고 놀라워했는데, 그때 동정심으로인해 마음이 동요되는 자신에 대해 깊은 경멸감을 느꼈다.
"모든 군법회의란 본디 우스꽝스러운 연극인 바, 이번에 우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에 이길 것이기 때문에 사실자네가 남의 죄값을 대신 치러야 한다는 것쯤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자네가 내 입장이었다면, 자네도나처럼 하지 않았겠는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몬카다 장군은 셔츠 자락으로 도수 높은 거북껍질테 안경을 닦기 위해 일어섰다. "그랬을 테지. 하지만 결국 우리 같은사람들에게 총살형은 자연사나 마찬가지이므로 내가 걱정하는 건 자네가 날 쏘아 죽인다는 문제가 아닐세." 그가 말했다.
그는 안경을 침대 위에 놓고 줄 달린 시계를 몸에서 떼어 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말이야, 자네가 군인들을 너무나도 미워하고, 그들과 전투를 너무 많이 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했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과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일세. 그토록 비참한 경우를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는 법이네." 그는 결혼 반지를 빼고, 성모 마리아 상이 달린 목걸이를풀어 안경과 시계 옆에 나란히 놓았다. - P249

다섯권이 넘는 자작시도 다시는 읽지 않아, 시들이 잊혀진 채 트렁크 속에서 들어 있었다. 밤이건 낮잠을 자는 시각이건 자신이 데려온 여자들 가운데 하나를 해먹으로 불러 일상의 욕망을 채우고는, 걱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돌멩이처럼 태평스럽게 깊은 잠에 빠졌다. 당시, 멍한 가슴이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처음에그는 영광스러운 귀향과 믿기지 않는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이 위대하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전술에서는 자신의 위대한 스승이자, 치장하고 있던 가죽 옷과 재규어발톱으로 어른들의 존경과 아이들의 감탄을 유발하던 말보로공작을 오른팔처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흐뭇하게 생각하고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우르술라까지도, 자기 몸으로부터 3미터 이내로는 접근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의 부관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분필로 원을 그려 놓았는데, 그는 그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 원의 중앙에서 짧지만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몬카다 장군을 총살하고 난 후 처음으로 마나우레에 진군했을 때, 그는 자신이 희생시킨 몬카다 장군의 마지막 소원을들어주기 위해 서둘렀는데, 장군의 미망인은 안경과 목걸이, 시계와 반지는 받았지만, 그가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들어오지 마세요. 대령, 당신은 당신이 일으킨 전쟁에서는명령할 수 있겠지만, 이 집에서는 내가 명령해요." 미망인이 그에게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분노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개인 경호원들이 미망인의 집을 강탈하고 잿더미로 만들었을 때야 분한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마음을 잘다스리게, 아우렐리아노. 자네는 산 채로 썩어 가고 있어." 그때 헤리넬도 마르케스 대령이 충고했다.  - P257

 그의 명령은 채 시달되기도 전에, 아니 그가 어떤 명령을 내릴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수행되었고, 항상 그 명령이 미칠 것이라 생각되던 범위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미쳤다. 그는 무한한 권력의 고독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방향 감각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점령한 이웃 마을들에서 자기를 환호한 그 사람들이 적군을 환호한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각자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각자의 목소리로 그에게 얘기를 하고, 그가 그들에게 인사를 할 때 그랬던것처럼 똑같은 불신을 품은 채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들이 그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소년들을 만났다. 그는 자기 씨앗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싹트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한 고독감을 느꼈다. 부하 장교들조차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말보로 공작과도 다투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는 얼마 전에 죽은 그친구야."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불안감으로 인해 지치고,
갈수록 더 늙고, 더 쇠약해지고, 갈수록 왜 전쟁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언제까지 할 것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늘 제자리걸음하도록 만드는 그 영원한 전쟁의 악순환으로 인해 지쳐버렸다. 분필로 그려 놓은 원 밖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한 사람, 백일해를 앓는 아들이 있는 사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지긋지긋한 전쟁을 더 이상 견딜 수가없어 잠이나 실컷 자러 가고 싶은 사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모든 게 정상입니다. 대령님."이라고 보고하기위해 마지막 남은 힘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상태,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끝없는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그렇듯 불길한 예감 때문에 스스로 혼자가 된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추위로부터 도망쳐 옛 추억의 온기가 밴 마콘도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던 것이다. - P260

끝없이 긴긴 그날 밤, 헤리넬도 마르케스 대령이 아마란타의 뜨개질 방에서 지냈던 무료한 오후를 회상하고 있는 사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고독의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그 껍질을 갉아 댔다. 아버지에 이끌려 처음으로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그 아득한 어느 오후 이후 그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낀 순간들은 은세공 작업실에서 작은 황금 물고기들을 만들면서 흘러갔었다. 근 사십 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야 했고, 전쟁을 통해 맺어진 모든 조약을 죽음을 걸고 위반해야 했으며, 승리의 영광이라는 수렁에 빠져 돼지처럼 허우적거려야 했다. - P264

"걱정 말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미소를 지었다. "죽는다는 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거든." 그의 경우 그건 맞는 얘기였다. 자신이 죽을 날이 정해져 있다는 확신 때문에 그는 그 신비한 면역성, 즉 정해진 날짜에 죽을 때까지는 전쟁의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을수 있는 불멸성을 지닐 수 있었고, 마침내 승리보다도 더욱 어렵고 더욱 처절하고 더욱 값비싼 패배를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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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조에 대해 알아보려면 동물의 진화 계통수를 놓고 몇 가지 추론을 펼칠 필요가 있다(그림6-21. 생물학자들이 진화 계통수에서 동물군들의 상대적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유연관계를 알아야만 어떤 속성이 어느 동물군에서 언제 진화했는지 유추할 수 있기때문이다. 곤충류와 척추동물은 동물 계통수에서 가장 굵은 두 가지를 대변한다. 두 가지의 정의, 그리고 근본적 차이는 배아가 형성될때 최초의 원구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 입이 형성되느냐에 달려 있다.
입이 배아의 원구 반대방향에서 형성되는 동물을 후구동물이라 하며, 사람을 비롯한 모든 척추동물, 극피동물(성게 등), 기타 몇몇 다른 동물군이 포함된다. 반면 입이 원구로부터 발생하는 동물은 전구동물이라 하며, 파리를 비롯한 절지동물, 환형동물, 연체동물, 기타 몇몇 동물군이 포함된다. 후구동물과 전구동물이 나뉘기 전에 계통수의 몸통에서 곧바로 뻗어 나온 다른 가지로 해면동물, 자포동물(해파리, 산호, 말미잘), 빗해파리 등이 있다(이 ‘몸통‘ 가지 동물들도 새며이 - P188

유조동물의 혹스 유전자는 몇 개이고 어떤 종류인가? 연구진은 생물의DNA를 분리한 뒤, 유조동물 게놈의 수많은 유전자 중 혹스 유전자DNA만 선택적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적용했다. 유조동물은 체절이나 부속지 종류가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연구팀이 밝혀낸바에 따르면 유조동물은 파리나 기타 절지동물이 갖는 모든 혹스 유전자들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었다.
절지동물의 혹스 유전자들이 유조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 선조에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아이셰아이아에서 아노말로카리스, 미크로딕티온, 마렐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캄브리아기 엽족동물과 절지동물이 열 개의 혹스 유전자라는 거창한 도구 일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후의 절지동물 설계들, 즉 거미류, 지네류, 곤충류, 온갖 종류의 갑각류 설계도 그 동일한 혹스유전자들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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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조차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 혹스 유전자가 등장한 게 아니라면, 캄브리아기와 이후의 형태들은 어떻게 진화한 것인가? DNA에 특정 유전자 집단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았다. 열쇠는 여러 절지동물의 배아 지리 및 형성 과정을 직접 살펴보는 데 있었다. 우리는 어떤 유전자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점이 형태 진화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P202

캄브리아기 이후 진행된 절지동물 진화의 역사는 주로 체절과 다리 종류가 다양해진 과정이다. 삼엽충류의 몸통은 머리, 가슴, 꼬리의 세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영역에 존재하는 체절과 부속지들은 매우 비슷한 모양들이었고, 일반적으로 크기만 달랐을 뿐이다. 절지동물은 캄브리아기 이전에, 또는 캄브리아기 이후 1억 5천만 년안에 모두 지구상에 등장했으며, 그 현생 동물 형태는 부속지 종류가 십여 가지 이상으로 훨씬 다양해졌다. 절지동물의 머리, 몸통, 꼬리에 달린 부속지들은 섭식, 이동, 호흡, 땅 파기, 감각, 교미, 알품기. 방어 등에 적합한 형태로 각기 전문화되었다. 절지동물이 이처럼 성공을 거둔 것도 다리 종류들을 엄청나게 전문화함으로써 환경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 P203

척추동물마다 혹스 복합체 수가 다르다는 것은 전체 유전자 툴킷의 규모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척추동물 진화에서는 비단 혹스유전자 복합체만이 아니라 툴킷에 있는 다른 유전자들도 복제되어 수가 늘었다. 게놈이 통째로 중복된 것일 수도 있고, 게놈의 상당 부분이 복제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등 척추동물의 툴킷이 더 큰것을 볼 때, 더 많은 유전자의 등장이 신체 설계의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최소한 척추동물 역사의 초기에는 옳다. 척색동물의 해부구조 진화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각 동물군이 얼마나 다양한 세포들을 지녔는지 꼽아보는 방법이 있다. 사람을비롯한 고등척추동물은 두색동물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세포를 갖는다. 척추동물의 연골, 뼈, 머리, 몇몇 감각 구조를 형성하는 세포들은 두색동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툴킷 유전자의 수.
그리고 세포의 종류 및 조직의 복잡도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가 많을수록 발생의 지침들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 후반에서는 유전자의 수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진화 과정 내내 혹스 유전자 복합체 수는 일관되게 네 개로 유지되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개구리와 뱀, 공룡과 타조, 기린과 고래는 모두 엇비슷한 네 개의 혹스 유전자 복합체들을 갖고 진화해온 것이다. 그러므로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혹스 유전자의 수 자체만 갖고는 형태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다. 동물들이 중심 체축이나 부속의 형태면에서 엄청나게 다양해진 까닭은, 앞서 본 절지동물과 마찬가지로, 배아에서 혹스 유전자 발현 지역의 위치가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혹스 유전자의 수가 좀 많아지긴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 P212

답은 스위치다. 배아에서 혹스 지역의 좌표를 통제하는 것은 바로 혹스 유전자의 스위치들이다. 혹스 지역의 진화적 이동은 혹스유전자 스위치들의 DNA 서열이 변화함으로써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쥐의 척추에는 경추 7개와 흉추 13개가 있는 반면 병아리의 척추에는 경추가 14개, 흉추가 7개 있다. 병아리 배아에서 혹스C8 유전자 발현 지역의 앞쪽 경계는 쥐 배아에서보다 상대적으로 한참 뒤다. 그런데 쥐와 병아리의 초기 배아에서 혹스C8 발현 경계를 통제하는 특별한 스위치가 존재한다. 쥐와 병아리는 그 스위치의 DNA 서열이 다르기 때문에 혹스c8 발현 위치가 상대적으로 다르게 된 것이다.
이 두 척추동물강에서 혹스C8 스위치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면일반적으로 동물의 진화에서 스위치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수 있다. 스위치의 염기서열 변화는 배아 지리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것도 툴킷 단백질의 기능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대로 보전한 채 말이다. 위의 경우에는 혹스8 스위치에 변화가 옴으로써 특정 종류 척추의 개수가 변했다. 혹스c8 단백질은 다른 조직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단백질의 유전자 암호서열에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그 모든 기능들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스위치에만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다른 신체부속들에는 아무런영향 없이 특정 모듈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설명한 갑각류 등 여러 절지동물의 신체지리에서 벌어졌던 변화도 바로 이런 전략에 의한 일이다. 혹스 발현 지역이 하나나 둘이나 세 체절 뒤로 이동한 것은 스위치가 변했기 때문이다. 혹스 단백질의 기능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다른 좌표에서 혹스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 식으로 스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 P214

툴킷 유전자의 발명 그 자체가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 방아쇠를 당긴 걸까?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생태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일단 좀더 크고 복잡한 동물이 진화하기 시작하자 그 추세가 꾸준히 지속되어 갈수록 더 크고 복잡한 동물이 생겨났던 것이다. 빅뱅이 벌어지고 난뒤, 다양한 동물종 사이의 생태적 상호작용과 경쟁의 압박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보다 복잡한 구조들이 쉴 새 없이 진화했다. 겹눈과 카메라, 걷기와 수영과 포식에 사용되는 관절 부속지들, 커진 몸의 순환을 담당할 심장, 보다 섬세한 이동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머리와몸통과 꼬리로 나뉜 신체구조 등이다. 툴킷 유전자들은 이 그림에서매우 중요한 배우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툴킷 자체는 가능성을 의미할 뿐, 운명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캄브리아기의 드라마는 생태계에 의해 지구적 규모로 추진된 것이라 봐야 한다. - P217

식사 도구와 종이 클립의 역사는 동물 부속지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부속자들 중 일부가 종래의 임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와기능을 진화시킴으로써 동물은 치열한 자연계의 경쟁을 치러낼 능력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다음에는 땅에서, 또 나중에는 공중에서 계속된 진화의 드라마는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이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차라리 ‘부속지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수영하고,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숨 쉬고, 땅을 파고, 나는 데 필요한또는 음식을 잡고, 으깨고, 삼키고, 찌르고, 거르고, 빨아들이고, 삼키는 데 필요한 더 뛰어나고, 빠르고, 가볍고, 강하고, 민첩한 부속지들을 경쟁하는 것이었다.
이런 발명들 덕분에 새로운 생활방식이 가능해져 다양성이 급속히 팽창하기도 했다. 이것을 진화의 ‘빅뱅‘이 아닌 ‘리틀뱅‘, 즉 ‘작은 혁명‘들이라 부를 수 있다. 혁신이 이뤄지고 나면 이후에도 진화적 변화들이 이어져 한껏 열린 기회를 더 확실히 이용했다. 척추동물은 어류 선조의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변형시켜 육지로 올라왔다. 척추동물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팔다리는 두 쌍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세 차례나 변형시켜서 새로운 종류의 동물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익룡, 조류, 박쥐류), 물로도 여러 차례 돌아갔다(고래와 돌고래, 바다표범 등). 땅을 누빌 사지도 여러 형태로 진화시켰다. 수백만 년 전, 인간 선조가 손가락 관절로 걷기를 그만두고 직립하자 이번에는 앞다리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렸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우리의 팔과 손은 온갖 종류의 활동에 사용될 수 있었다. 도구 제작, 사냥, 의사소통, 나중에는 상징을 동원해 자연계를 기록하는 활동도 하게 되었다. 크고 빠른 뇌가 진화하여 이 활동을 지지하였으며, 활동 자체가 뇌의 진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또 뇌의 진화는 자손을 낳는 과정에 관여하는 골격 구조의 진화를 불러왔으며, 부모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짐에따라 가족 구조의 변화까지 가져왔다. - P221

이때 이보디보가 강력한 증거들을 들고 나타났다. 곤충 중에서도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날개 발생 과정을 연구해보니 날개를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 단백질이 밝혀졌다. 그런 툴킷 단백질들 중두 가지를 들면 앱터로스(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날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와 누빈(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날개가 덜 여문 덩어리처럼 조금만 발달한다)이 있다. 미할리스 아베로프와 스티븐 코언은 날개가 갑각류의 아가미 분지에서 유래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앱터로스와 누빈 단백질들이 다른 절지동물의 부속지에서도 발현되는지 알아보았다. 특히 갑각류들을 조사해보았는데, 놀랍게도 앱터로스와 누빈 유전자는 갑각류 부속지의 외분지, 즉 호흡분지에서 선택적으로 발현하였다. 이 관찰에 대한 합당한 설명은 호흡 분지와 곤충의 날개가 상동기관이라는 것이다. 두 동물에 서로 다른 형태로 달려 있지만 동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대안적 설명을찾자면 갑각류가 호흡 분지를 만들 때, 그리고 곤충이 날개를 만들때 서로 독립적으로 두 단백질을 채택하는 기막힌 우연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가미나 날개를 만들 때 동원할 수 있는 툴킷 단백질은 그 밖에도 수백 가지나 존재하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곤충류의 선조인 수생 갑각류가 호흡 분지를만들 때 앱터로스와 누빈을 사용했으며, 가지가 날개로 진화한 후에도 그들이 그곳에 남아 활약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나중에 보겠지만 날개 외에도 다른 동물들의 다른 구조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곤충의 진화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선조 부속지의 외분지와 내분지가 분리되어, 외분지는 몸 위쪽으로 올라붙어 날개로 진화했고 내분지는 갈라지지 않은 걷는다리로 진화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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