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는 고요하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아니다. 어떤 물체를 만나느냐에 따라 빗소리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들린다. 여느 언어와 마찬가지로, 특히 쏟아낼 것이 너무 많고 통역자를 기다리는 말이 너무 많은언어처럼 하늘의 언어적 바탕은 무궁무진한 형태로 표현된다. 억수비가 내리면 양철 지붕은 요란하게 진동하고, 수백 마리 박쥐의 날개를 때리며 산산이 부서져 강물 위로 떨어지고, 축축한 구름이 우듬지를 감싸면 잎은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서로부딪힐 때마다 붓질하는 소리를 낸다 - P15
소리들은 케이폭나무의 숲밑understory (하층식생)에서 들려온다. 이 식물들은 케이폭나무의 활짝 벌린 가지 밑에서 줄기 둘레의 부엽토에 뿌리를 내렸다. 숲밑을 때리는 물은 이미 위에서 여러 잎을 거친 뒤다. 우듬지의 잎들은 대부분 표면이 매끄럽고 끄트머리가 뾰족하거나 실모양인 열대 특유의 형태다. 이 ‘뾰족끝*drip ip‘과 미끈한 앞면을 활용하여 물을 모아 커다란 방울을 만든다. 잎끝에서 부풀어 오른 물방울은 렌즈가 되어 빛을 굴절시킨다. 렌즈 안에 숲이 담겼다. 뒤집힌 상태으로, 뾰족끝에는 물방울이 앉을 자리가 거의 없기에 잎은 커진 방울을 몇 초마다 떨어뜨리고 새로 렌즈를 부풀린다. 물방울이 떨어지기직전, 상이 반짝인다. 이런 식으로 잎은 물을 떨구고 몸을 말려 (수분을 좋아하는) 균류와 조류의 생장을 늦춘다. 가뜩이나 커다란 빗방울이 숲 위층의 뾰족끝에서 더욱 팽창하여 숲밑 식물의 살갗 위로 떨어진다. 잎이 클수록 물이 많이 모이고 빨리 떨어지므로, 케이폭나무 우듬지의 다양한 잎 모양은 숲밑에서 다채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숲밑잎들의 무수한 크기, 모양, 두께, 질감, 유연성이 음에 색을 더한다. 심지어 낙엽도 다른 어느 곳보다 활기차게 노래한다. 낙엽이 만들어내는 땅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수천 개의 태엽 시계가 똑딱거리는 것 같다. - P17
굵은 나뭇가지가 흙을 떠받치고 덩굴이 흙을 붙들어 맨다. 케이폭나무 가지가 만나는 곳에서는 줄기가 사람몸통만 한 무화과나무를비롯하여 대여섯 종의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지상 50미터에뿌리박은 숲이다. 이 나무들은 북쪽과 동쪽에 모여 자라는데, 숲의 그늘진 골짜기처럼 우듬지 흙이 축축하고 케이폭나무 잎이 가장 무성하기 때문이다. 볕에 노출된 남서쪽 가지에는 선인장, 지의류, 뾰족잎 브로멜리아드가 비가 내리면 부풀어 올랐다가 적도의 햇볕이 고스란히내리쬐면 푸석푸석해지면서 홍수와 사막을 번갈아 가며 견딘다. 수직의 줄기에서는 덩굴과 난초 정원의 뒤엉킨 깔개에 물이 고이는데, 여기에 양치식물이 뿌리를 내린다. 이 모든 식물 위로 케이폭나무의 잎이 자란다. 겹잎 하나하나가 어린애 손만 하며 기다란 쪽잎(겹잎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잎_옮긴이) 여덟 장가량이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잔가지 끝에 잎이 나기 때문에 나무는 투명한 안개처럼 보인다. 잎은 나무의 크기에 비해 하찮게 보이지만, 아래의 피난처에서 자라는 식물과달리 뇌우와 하향격풍을 이겨내야 한다. 다행히 잎의 크기가 작고 부채꼴 모양이어서 쪽잎들이 접혀 바람을 흘려보낸다. 지금껏 대부분의 열대생물학자는 땅에서 연구했지만, 요즘 들어 몇몇이 비계, 밧줄 사다리, 기중기를 타고 우듬지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숲에 서식하는 종수의 절반 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종이 우듬지에 서식하고 있었다.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종들이었다. 숲에서 수많은 나무 종의 우듬지들이 이루는 덮개를 일컫는 용어인 ‘숲지붕canopy‘ 은 이토록 복잡한 3차원 세계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 P20
바이러스가 보기에 우듬지는 영장류 피로 이루어진 습지대이고 모기의 침은 웅덩이에흘러드는 개울이다. 수십 종의 박쥐와 설치류도 지류를 이룬다. 하이마고구속 모기는 바이러스, 세균, 원생생물을 비롯하여 혈액에 서식하는 온갖 병원체의 집합소다. 다행히도 녀석에게 물린 뒤에 삼림황열병sylvatic yellow fever 같은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숲에서의 생물학적 투쟁은 대부분 우리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척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겼다(우리의 시선을사로잡는 것은 테니슨이 말하는 이빨과 발톱 - 퓨마, 뱀, 피라냐 이지만). 숲의 동물에게서 DNA를 검사하면 예외 없이 살과 피에서 기생충이 발견된다. 하지만 기생충 감염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브로멜리아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개미 한 마리가 잎 가장자리에 턱을 박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녀석의 마지막 행동은 물어박기*anchoring bite였다. 포식동충하초속 Ophiocordyceps 기생 균류가 속에서부터 녀석을 먹어치우면서 녀석에게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의 잎으로 기어올라가 단단히 매달리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개미의 목덜미에서 줄기가 돋아났는데, 끄트머리의 홀씨주머니가 잔뜩 부풀어 있었다. 감염성 균류 홀씨를 아래쪽에 있는 모든 개미 위에 흩뿌리려는 수작이다. - P26
숲은 단지 그물망을 통해 결합되었을 뿐인)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다. 숲은 오로지 관계의 가닥으로만 이루어진 장소다. 인간의 문화는 이 본질을 철학으로 표현한다. 와오라니족, 슈아르족케추아족을 비롯하여 아마존 숲의 그물망에서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숲은 생물학적·물리적 ‘타자‘의 조합이 아니다. 아마존 부족들은 문화가 언어적·역사적으로 다르고 믿음 체계도 여느 대륙과 마찬가지로 다양하지만, 하나만은 일치하는 듯하다. 그것은 서구과학에서 ‘대상으로 구성된 숲 생태계‘라 부르는 것을 정령, 꿈, 잠에서 깨었다는 의미에서의) 현실이 어우러지는 장소로 여긴다는 것이다. (인간 거주민을 포함한)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따로 떨어진 부분들의 연합이 아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영적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정령은 머나먼 천국이나 지옥에서 온 저 세상 귀신이 아니라 땅에 뿌리박고 흙과 상상력을 연결하는 숲의 본성 자체다. 아마존 영성의 바탕은 여러 세대에 걸친 실용주의적 경험주의다. 영어의 단어와 개념은 정령에 대해 생각하기에 부적절하다. 영혼이 다른 장소에서 비롯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해를 가로막는 이러한 장벽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 인물은 숲 해설가 마예르 로드리게Mayer Rodriguez다. 그는 수백 명에 이르는 미국 대학 연구자와 학부생에게 숲을 안내했다. 로드리게스는 우리가 그의 정령 이야기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들을 수는 있지만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살아있고 체화된 관계를 숲 공동체 안에서 맺지 않고서는 이해의 공명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의 바탕이 되는 관계는 시간적으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며 공간적으로 생물 그물망을 거쳐 뻗어나간다. 로드리게스의 이야기를 들어서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이해를 내면으로부터 전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앎은 관계이며 속함은 영적 앎이다. - P32
에콰도르의 숲은 값진 광물의 보고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숲을 보호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2007년에 라파엘 코레아 Rafael Correa 대통령은 ITT 석유 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속적 경제 발전 기금을 국제사회가 제공한다면 석유를 영영 땅속에 묻어두겠다고 제안했다. 그뒤에도 개발도상국이 매장 화석연료와 기후 변화를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포괄적 기구를 국제연합과 석유수출국기구 산하에 두자고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에콰도르 정부는 새로운 실천 기준을 정했다. 2008년 에콰도르 헌법은 파차마마Pacha Mama, 즉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권리를 보호한다. 여기에는 인간 아닌 생명체가 살아가고 진화할권리, 인간이 물과 식량에 접근할 권리가 포함된다. 야수니 국립공원과 관련한 제안에는 이 취지가 확고하게 담겼다. 코레아의 계획은 야수니에서의 석유 채굴을 금지하고 아직 연소되지 않은 탄소를 무덤에 봉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지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할 가망이 조금이라도 있으려면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기후 협상의 명시적 목표다 연소되지 않은 연료를 땅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러니보물 지도가 있어도 ‘X‘ 표시 앞에서 돌아서야 한다. 돌아서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알려진) 전 세계 화석연료 매장량은 기후 목표치에 해당하는 양의 세 배를 넘는다. 코레아의 제안은 거부당했다. 이제 에콰도르가 석유를 태우지 않으면 잃어버린 기회의 비용은 에콰도르 혼자 짊어져야 한다. 지금껏 대부분의 화석 탄소를 대기 중에 쏟아낸 부유한 산업국 시민들은 석유포기에 따르는 금전적 부담을 나눠 지려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석유를 사는 일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리하여 케이폭나무는 매일같이 기계 소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우림에서 가장 키 큰 나무보다 더 높은 배기가스연소탑의 불꽃이 밤마다 나무를 비춘다. 지진탐사도 진행중이다. 이것은 땅속으로 탄성파를 발생시켜 석유의 메아리를 찾는 작업이다. - P39
숲의 생존 법칙인 호혜와 연대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젠 숲 자체의생존이 경각에 달렸다. 공격의 규모가 크고 싸움이 격렬할수록 더 깊은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갈등하고 심지어 서로 죽이는관계를 맺던 문화들이 협력망을 이룬다. 마찰이 사라지진 않았지만이곳은 문화적 자율성이 강하다-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 Confederationof Indigenous Nationalities of Ecuador은 정치 담론의 논조와 내용을 수정할 만큼 융통성을 발휘한다. 이제 연결은 국경선을 넘어 뻗어 나간다. 원주민 공원 경비원들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역의 판사들이 미주인권재판소에 모여 사라야쿠 주민들이정부와 석유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귀를 기울인다. 판사들은 사라야쿠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린다. 에콰도르 정부는 어떤 움직임은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움직임에대해서는 반격한다. 국가의 적극적인, 심지어 폭력적인 반응은 역설적으로 연합의 힘을 보여준다. 아마존에서는 싸움의 기술과 전법이 최고조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이 유일한 노래라면 숲은 절멸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비아 아우카에서는 그렇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생명 공동체의 수막 카우사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갈등에 내재하는 긴장은 잦아들지 않지만, 이들의 기운은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이끼, 개구리, 심지어 숲의 생각까지도 공중으로 띄워 올릴 만큼. - P48
발삼전나무
온타리오 주 북서부 카카베카 48°23‘45.7" N, 89°37‘17.2" W
나는 바위 절벽 위에 서 있다. 아래쪽 골짜기는 전나무 바늘잎의 청록색 음영, 아스펜aspen과 백자작나무white birch의 잎이 바람을 맞아 떨릴 때 생기는 반짝거림, 가문비나무의 뾰족뾰족한 우듬지, 늪지의 왜소한 나무들 위로 드리운 어둑어둑한 숲지붕 틈새, 늙은 나무가 바람에 쓰러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어린 늘푸른나무 덤불에 이르기까지 북부 숲의 질감과 색조로 가득하다. 나는 이런 덤불 중 하나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솔길 위에 서 있다. 덤불이 하도 빡빡해서 통과하려다가는 살갗이 심하게 벗겨질 것 같다. 발삼전나무는 어린나무 무리 위로 우뚝 솟았다. 키는 8미터, 수령은 30년가량이다. 오솔길에서는 전나무의 줄기가 전부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절벽 위로 산들바람이 분다. 덕분에 여름이면 나의 포유류 피를 포식하려고 모여드는 모기 수백 마리로부터 이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발삼전나무 꼭대기에서는 섬세한 금속에서 나는 듯한 소리가 난다. 땡땡 쏙쏙, 리벳 두드리는 소리, 거친 가장자리 대패질하는 소리. 새들이 나무 꼭대기를 두른 전나무방울을 뒤진다. 망치질은 그칠 줄 모른다. 녀석들은 무리를 통솔하고 어디에 씨앗이 가장 많은지 알려준다. 새들이 일하는 동안 전나무 가지 사이로 대팻밥이 떨어진다. 공기만큼가벼운 비늘조각이 바늘잎을 스치며 똑딱 소리를 낸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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