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아우 정대는 이제 겨우 아홉 살이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둔하다. 정대가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귓속에서 쟁쟁 우는 소리가 나요." 내가 물었다. "그 소리가 어떤 물건과 비슷하니?"정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소리가 동글동글한 별 같아요. 보일 것도 같고 주울 것도 같아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상을 가지고 소리에 비유하는구나. 이는 어린아이가 무의식중에 표현한 천성의 지혜와 식견이다. 예전에 한 어린아이는 별을 보고 달 가루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말은 예쁘고 참신하다. 때 묻은 세속의 기운을 훌쩍 벗어났다. 속되고 썩은 무리가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덕무는 좋은 글은 동심(童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동심은 거짓으로 꾸미거나 억지로 애써 다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나이 어린 동생이라고 해도 평소 그의 말과 표현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글로 옮겨 적어 두곤 했다. 세속에 물들고 견문과 지식에 길들여져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의 세계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순수한 말과 표현이기 때문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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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밤 그랬듯이, 발가벗은 몸으로 전갈과 나비들 사이에서 사랑의 갈증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던 메메가 기다리고 있는 목욕탕으로 들어가려고 기왓장들을 들어내던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를 쓰러뜨렸다. 그의 척추에 박힌 총알 한 방은 그를 평생 동안 침대에 가둬버렸다. 그는 자기를 한순간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않았던 노랑나비들과 추억에 시달리고, 암탉 도둑으로 공식적으로 멸시를 받은 채,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불평 한 마디 없이, 변명 한 마디 해보지 않고, 고독 속에서 늙어 죽었다. - P132

‘바닥으로 엎드려! 바닥으로 엎드려!
앞줄에 있던 사람들은 기관총탄에 맞아 이미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살아난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리는 대신 작은 광장으로 달아나려 했는데, 그때 공포에 휩싸인 군중이 흡사 용이쳐대는 꼬리질을 피하듯 총알을 피해 빽빽한 파도처럼 한쪽으로 몰려가다가 반대편 길에서 용이 쳐대는 꼬리질을 피하듯 빽빽한 파도처럼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던 군중과 맞부딪쳤는데, 그쪽에서도 역시 기관총들이 쉬지 않고 발사되고 있었다. 군중은 기관총들의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규칙적인 가위질에 의해 가장자리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차근차근 동그랗게 잘려나가고 있었기때문에 진원지를 향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타고 빙빙 돌면서 가운데에 갇히게 되었다. 아이는 신비하게도 군중의 물결이 미치지 않는 어느 빈 공간에서 두 팔을 양 옆으로 쫙 벌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 하나를 보았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그 아이를 그곳에 내려놓자마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고, 곧이어 무자비한 군대는 그 빈 공간과, 무릎을 꿇은 그 여자와, 건기의 드높은 하늘 빛과, 우르술라 이구아란이 수없이 많은 동물 형태 캐러멜을 팔았던 창녀 같은 세상을 휩쓸어가 버렸다. - P151

문이 닫혔을 때,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이제 자신의 전쟁이 끝났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몇 년 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그에게 전쟁의 매력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 가운데 수많은 예들을 뽑아 그 매력에 대해 보여주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그는 대령의 얘기를 믿었었다. 그러나 군인들이 그를 쳐다보면서도 실제로는 보지 못했던 그날 밤, 지난 몇 달 동안의 긴장과, 감옥의 비참함과, 역 앞에서의 공포와, 시체를 가득 실은 기차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광대나 바보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대령이 전쟁에서 느꼈던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단 한 단어로 충분했을 텐데 그토록 많은 말들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단어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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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금박가루로 궁실과 인물을 그려 놓은 왜연갑倭硯匣을 배열해 놓는다. 한석봉의 액자 체첩(體帖)을 목각해 푸른비단으로 장정을 하고, 마디가 굵은 대나무로 필통을 만들어 회회청(回回靑,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코발트 성분의 푸른 물감, 회화국, 그러니까 아라비아에서 난 것으로 조선에서는 주로 중국을 통해 수입했다)으로 ‘수부귀(壽富貴)‘의 세 글자를 적고 구워서 늘어놓는다. 화분 속에는 금봉화와 계관화(鷄冠花, 맨드라미꽃)를 잡다하게 심어 놓는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나는 비록 그 사람이 고상한 선비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속물이라고 말할 것이다. - P182

담배 마니아였던 이옥은 담배의 경전인 「연경을 썼다. 그리고 자신이 이러한 서책을 저술한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담배에 심한 벽(癖)이 있는 사람이다. 담배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스스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되게 문헌과 자료를 가려서 뽑고 순서를매겨 저술했다. 엉성하고 그릇되고 거칠고 더러워서 숨겨진 사실을 밝히고 비밀스러운 부분을 들추어내기에는 진실로 부족하다. 하지만 내가 담배를 기록해 저술한 뜻은 옛사람이술에 대해 기록한 주록(酒錄)과 꽃에 대해 저술한 화보(花譜)』와 그 의도가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는 이옥의 「연경을 통해 담배와 관련한 조선의 거의 모든 역사와 풍속을 알 수 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차이와 결과가 이러하다. 불광부득不狂不得), 미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싫어한다면 그쪽으로 아예 고개도 돌리지 말아야 하고, 좋아한다면 차라리 미치도록 좋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싫어하든 좋아하든 비로소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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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시 십분에 마당으로 나가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와 큰 북이 울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를 들었고, 청년기 이후 처음으로 일부러 향수의 함정에 발을 내딛었고,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집시들이 와글거리던 그 신기한 오후를 회상했다. 산따 소피아 델라 삐에닷이 부엌에서 하고 있던 일을 팽개쳐두고 대문간으로 달려 나갔다.
「서커스단이에요!」 그녀가 소리를 쳤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밤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역시 대문 쪽으로 가서 서커스단의 행진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 틈에 섞여들었다. 코끼리 목덜미에 황금빛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슬퍼 보이는 단봉 낙타도 보았다. 네덜란드 여자처럼 차려입고 국자로 냄비를 두드리며 행진의 박자를 맞추고 있는 곰도 보았다. 행렬 끝에서 재주를 부리는 어릿광대들도 보았는데,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뻥 뚫린 환한 공간으로 변한 길거리와, 날개미들이 가득 찬 하늘과, 허전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일부 구경꾼들만 남았을 때, 다시 비참한 고독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서커스를 생각하면서 밤나무쪽으로 갔고, 오줌을 누면서도 계속 서커스 생각을 하려 했지만, 이제는 기억을 되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병아리처럼 머리를 두어깨 사이에 처박고 이마를 밤나무에 기댄 채 꿈쩍도 하지 않고있었다. 다음날 아침 열한시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뒤마당으로 나갔던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가이나소들이 날아 내려오는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을 때까지 가족들은 모르고 있었다. - P98

사신은 아마란따에게 언제 죽을 것인지, 레베까보다 먼저 죽을 것인지조차도 말해 주지 않은 채 돌아오는 사월 육일부터 수의를 짓기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아마란따가원하는 바대로 수의를 섬세하고 훌륭하게 짓되, 레베까의 수의를 지을 때처럼 성실하게 지으라고 했고, 그 수의를 다 완성하는 날해질 무렵에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비통함도 느끼지 않고 죽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후, 아마란따는 될 수 있으면 최대한으로 시간을 벌려는 생각에서 최상품 아마 원사를 사들여 몸소 천을 짜기 시작했다. 어찌나 공을 들였던지 천을 짜는 데만 사 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수의 짓는 일을 레베까가 죽은 후까지 연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갔으나, 그 같은 깨달음이 오히려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평온을 부여해 주었다. 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작은 황금 물고기를 만들었다 녹이고다시 만드는 일을 부질없이 되풀이했는지를 이해했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세상사는 그녀의 피부에서만 머물렀을 뿐, 그녀의 내면은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다. 아마란따는 새로운 빛아래서 기억들을 정화시키고 우주를 재창조하는 게 가능하고, 해질녘이면 삐에뜨로 끄레스삐에게서 풍기던 라벤더 향기를 회상하면서도 몸서리를 치지 않는 게 가능하고, 사랑과 증오가 아니라 고독에 대한 심오한 이해심을 통해 레베까를 고통의 수렁에서 구해 주는 게 아직 가능했을 때인 수년 전에 그런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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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는 고요하게 떨어지는 물소리가 아니다. 어떤 물체를 만나느냐에 따라 빗소리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들린다. 여느 언어와 마찬가지로, 특히 쏟아낼 것이 너무 많고 통역자를 기다리는 말이 너무 많은언어처럼 하늘의 언어적 바탕은 무궁무진한 형태로 표현된다. 억수비가 내리면 양철 지붕은 요란하게 진동하고, 수백 마리 박쥐의 날개를 때리며 산산이 부서져 강물 위로 떨어지고, 축축한 구름이 우듬지를 감싸면 잎은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서로부딪힐 때마다 붓질하는 소리를 낸다 - P15

소리들은 케이폭나무의 숲밑understory (하층식생)에서 들려온다. 이 식물들은 케이폭나무의 활짝 벌린 가지 밑에서 줄기 둘레의 부엽토에 뿌리를 내렸다. 숲밑을 때리는 물은 이미 위에서 여러 잎을 거친 뒤다. 우듬지의 잎들은 대부분 표면이 매끄럽고 끄트머리가 뾰족하거나 실모양인 열대 특유의 형태다. 이 ‘뾰족끝*drip ip‘과 미끈한 앞면을 활용하여 물을 모아 커다란 방울을 만든다. 잎끝에서 부풀어 오른 물방울은 렌즈가 되어 빛을 굴절시킨다. 렌즈 안에 숲이 담겼다. 뒤집힌 상태으로, 뾰족끝에는 물방울이 앉을 자리가 거의 없기에 잎은 커진 방울을 몇 초마다 떨어뜨리고 새로 렌즈를 부풀린다. 물방울이 떨어지기직전, 상이 반짝인다. 이런 식으로 잎은 물을 떨구고 몸을 말려 (수분을 좋아하는) 균류와 조류의 생장을 늦춘다. 가뜩이나 커다란 빗방울이 숲 위층의 뾰족끝에서 더욱 팽창하여 숲밑 식물의 살갗 위로 떨어진다. 잎이 클수록 물이 많이 모이고 빨리 떨어지므로, 케이폭나무 우듬지의 다양한 잎 모양은 숲밑에서 다채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숲밑잎들의 무수한 크기, 모양, 두께, 질감, 유연성이 음에 색을 더한다. 심지어 낙엽도 다른 어느 곳보다 활기차게 노래한다. 낙엽이 만들어내는 땅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수천 개의 태엽 시계가 똑딱거리는 것 같다. - P17

굵은 나뭇가지가 흙을 떠받치고 덩굴이 흙을 붙들어 맨다. 케이폭나무 가지가 만나는 곳에서는 줄기가 사람몸통만 한 무화과나무를비롯하여 대여섯 종의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지상 50미터에뿌리박은 숲이다. 이 나무들은 북쪽과 동쪽에 모여 자라는데, 숲의 그늘진 골짜기처럼 우듬지 흙이 축축하고 케이폭나무 잎이 가장 무성하기 때문이다. 볕에 노출된 남서쪽 가지에는 선인장, 지의류, 뾰족잎 브로멜리아드가 비가 내리면 부풀어 올랐다가 적도의 햇볕이 고스란히내리쬐면 푸석푸석해지면서 홍수와 사막을 번갈아 가며 견딘다. 수직의 줄기에서는 덩굴과 난초 정원의 뒤엉킨 깔개에 물이 고이는데, 여기에 양치식물이 뿌리를 내린다. 이 모든 식물 위로 케이폭나무의 잎이 자란다. 겹잎 하나하나가 어린애 손만 하며 기다란 쪽잎(겹잎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잎_옮긴이) 여덟 장가량이 부채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잔가지 끝에 잎이 나기 때문에 나무는 투명한 안개처럼 보인다. 잎은 나무의 크기에 비해 하찮게 보이지만, 아래의 피난처에서 자라는 식물과달리 뇌우와 하향격풍을 이겨내야 한다. 다행히 잎의 크기가 작고 부채꼴 모양이어서 쪽잎들이 접혀 바람을 흘려보낸다.
지금껏 대부분의 열대생물학자는 땅에서 연구했지만, 요즘 들어 몇몇이 비계, 밧줄 사다리, 기중기를 타고 우듬지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숲에 서식하는 종수의 절반 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종이 우듬지에 서식하고 있었다.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종들이었다. 숲에서 수많은 나무 종의 우듬지들이 이루는 덮개를 일컫는 용어인 ‘숲지붕canopy‘
은 이토록 복잡한 3차원 세계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 P20

바이러스가 보기에 우듬지는 영장류 피로 이루어진 습지대이고 모기의 침은 웅덩이에흘러드는 개울이다. 수십 종의 박쥐와 설치류도 지류를 이룬다. 하이마고구속 모기는 바이러스, 세균, 원생생물을 비롯하여 혈액에 서식하는 온갖 병원체의 집합소다.
다행히도 녀석에게 물린 뒤에 삼림황열병sylvatic yellow fever 같은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숲에서의 생물학적 투쟁은 대부분 우리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척도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겼다(우리의 시선을사로잡는 것은 테니슨이 말하는 이빨과 발톱 - 퓨마, 뱀, 피라냐 이지만). 숲의 동물에게서 DNA를 검사하면 예외 없이 살과 피에서 기생충이 발견된다. 하지만 기생충 감염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브로멜리아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개미 한 마리가 잎 가장자리에 턱을 박은 채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녀석의 마지막 행동은 물어박기*anchoring bite였다. 포식동충하초속 Ophiocordyceps 기생 균류가 속에서부터 녀석을 먹어치우면서 녀석에게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의 잎으로 기어올라가 단단히 매달리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개미의 목덜미에서 줄기가 돋아났는데, 끄트머리의 홀씨주머니가 잔뜩 부풀어 있었다. 감염성 균류 홀씨를 아래쪽에 있는 모든 개미 위에 흩뿌리려는 수작이다. - P26

숲은 단지 그물망을 통해 결합되었을 뿐인)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다. 숲은 오로지 관계의 가닥으로만 이루어진 장소다.
인간의 문화는 이 본질을 철학으로 표현한다. 와오라니족, 슈아르족케추아족을 비롯하여 아마존 숲의 그물망에서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숲은 생물학적·물리적 ‘타자‘의 조합이 아니다. 아마존 부족들은 문화가 언어적·역사적으로 다르고 믿음 체계도 여느 대륙과 마찬가지로 다양하지만, 하나만은 일치하는 듯하다. 그것은 서구과학에서 ‘대상으로 구성된 숲 생태계‘라 부르는 것을 정령, 꿈, 잠에서 깨었다는 의미에서의) 현실이 어우러지는 장소로 여긴다는 것이다. (인간 거주민을 포함한) 숲은 이렇게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따로 떨어진 부분들의 연합이 아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영적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정령은 머나먼 천국이나 지옥에서 온 저 세상 귀신이 아니라 땅에 뿌리박고 흙과 상상력을 연결하는 숲의 본성 자체다. 아마존 영성의 바탕은 여러 세대에 걸친 실용주의적 경험주의다.
영어의 단어와 개념은 정령에 대해 생각하기에 부적절하다. 영혼이 다른 장소에서 비롯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해를 가로막는 이러한 장벽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 인물은 숲 해설가 마예르 로드리게Mayer Rodriguez다. 그는 수백 명에 이르는 미국 대학 연구자와 학부생에게 숲을 안내했다. 로드리게스는 우리가 그의 정령 이야기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들을 수는 있지만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살아있고 체화된 관계를 숲 공동체 안에서 맺지 않고서는 이해의 공명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의 바탕이 되는 관계는 시간적으로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며 공간적으로 생물 그물망을 거쳐 뻗어나간다. 로드리게스의 이야기를 들어서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이해를 내면으로부터 전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앎은 관계이며 속함은 영적 앎이다. - P32

에콰도르의 숲은 값진 광물의 보고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숲을 보호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2007년에 라파엘 코레아 Rafael Correa 대통령은 ITT 석유 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속적 경제 발전 기금을 국제사회가 제공한다면 석유를 영영 땅속에 묻어두겠다고 제안했다. 그뒤에도 개발도상국이 매장 화석연료와 기후 변화를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포괄적 기구를 국제연합과 석유수출국기구 산하에 두자고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에콰도르 정부는 새로운 실천 기준을 정했다. 2008년 에콰도르 헌법은 파차마마Pacha Mama, 즉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권리를 보호한다. 여기에는 인간 아닌 생명체가 살아가고 진화할권리, 인간이 물과 식량에 접근할 권리가 포함된다. 야수니 국립공원과 관련한 제안에는 이 취지가 확고하게 담겼다.
코레아의 계획은 야수니에서의 석유 채굴을 금지하고 아직 연소되지 않은 탄소를 무덤에 봉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특히 지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할 가망이 조금이라도 있으려면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기후 협상의 명시적 목표다 연소되지 않은 연료를 땅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러니보물 지도가 있어도 ‘X‘ 표시 앞에서 돌아서야 한다. 돌아서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알려진) 전 세계 화석연료 매장량은 기후 목표치에 해당하는 양의 세 배를 넘는다.
코레아의 제안은 거부당했다. 이제 에콰도르가 석유를 태우지 않으면 잃어버린 기회의 비용은 에콰도르 혼자 짊어져야 한다. 지금껏 대부분의 화석 탄소를 대기 중에 쏟아낸 부유한 산업국 시민들은 석유포기에 따르는 금전적 부담을 나눠 지려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석유를 사는 일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리하여 케이폭나무는 매일같이 기계 소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우림에서 가장 키 큰 나무보다 더 높은 배기가스연소탑의 불꽃이 밤마다 나무를 비춘다. 지진탐사도 진행중이다. 이것은 땅속으로 탄성파를 발생시켜 석유의 메아리를 찾는 작업이다. - P39

숲의 생존 법칙인 호혜와 연대가 시험대에 올랐다. 이젠 숲 자체의생존이 경각에 달렸다. 공격의 규모가 크고 싸움이 격렬할수록 더 깊은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갈등하고 심지어 서로 죽이는관계를 맺던 문화들이 협력망을 이룬다. 마찰이 사라지진 않았지만이곳은 문화적 자율성이 강하다- 에콰도르원주민민족연맹 Confederationof Indigenous Nationalities of Ecuador은 정치 담론의 논조와 내용을 수정할 만큼 융통성을 발휘한다. 이제 연결은 국경선을 넘어 뻗어 나간다. 원주민 공원 경비원들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역의 판사들이 미주인권재판소에 모여 사라야쿠 주민들이정부와 석유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귀를 기울인다. 판사들은 사라야쿠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린다.
에콰도르 정부는 어떤 움직임은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움직임에대해서는 반격한다. 국가의 적극적인, 심지어 폭력적인 반응은 역설적으로 연합의 힘을 보여준다.
아마존에서는 싸움의 기술과 전법이 최고조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이 유일한 노래라면 숲은 절멸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비아 아우카에서는 그렇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생명 공동체의 수막 카우사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갈등에 내재하는 긴장은 잦아들지 않지만,
이들의 기운은 창조적으로 발현된다. 이끼, 개구리, 심지어 숲의 생각까지도 공중으로 띄워 올릴 만큼. - P48

발삼전나무

온타리오 주 북서부 카카베카
48°23‘45.7" N, 89°37‘17.2" W

나는 바위 절벽 위에 서 있다. 아래쪽 골짜기는 전나무 바늘잎의 청록색 음영, 아스펜aspen과 백자작나무white birch의 잎이 바람을 맞아 떨릴 때 생기는 반짝거림, 가문비나무의 뾰족뾰족한 우듬지, 늪지의 왜소한 나무들 위로 드리운 어둑어둑한 숲지붕 틈새, 늙은 나무가 바람에 쓰러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어린 늘푸른나무 덤불에 이르기까지 북부 숲의 질감과 색조로 가득하다. 나는 이런 덤불 중 하나의 가장자리에 있는 오솔길 위에 서 있다. 덤불이 하도 빡빡해서 통과하려다가는 살갗이 심하게 벗겨질 것 같다. 발삼전나무는 어린나무 무리 위로 우뚝 솟았다. 키는 8미터, 수령은 30년가량이다. 오솔길에서는 전나무의 줄기가 전부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절벽 위로 산들바람이 분다. 덕분에 여름이면 나의 포유류 피를 포식하려고 모여드는 모기 수백 마리로부터 이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발삼전나무 꼭대기에서는 섬세한 금속에서 나는 듯한 소리가 난다. 땡땡 쏙쏙, 리벳 두드리는 소리, 거친 가장자리 대패질하는 소리. 새들이 나무 꼭대기를 두른 전나무방울을 뒤진다. 망치질은 그칠 줄 모른다. 녀석들은 무리를 통솔하고 어디에 씨앗이 가장 많은지 알려준다. 새들이 일하는 동안 전나무 가지 사이로 대팻밥이 떨어진다. 공기만큼가벼운 비늘조각이 바늘잎을 스치며 똑딱 소리를 낸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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