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돌아봐도 막막할 뿐이다. 땅이라도뚫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들어서 한 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을 지니고 있어 조금이나마글자를 알고 있으므로, 손에 한 권의 책을 든 채 마음을 달래고있노라면 무너진 마음이 약간이라도 안정이 된다. 만약 나의 눈이 비록 오색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책을 마주하고서 마치 깜깜한 밤처럼 까막눈이었다면 장차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을까.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잊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슬픔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기 내면 깊숙이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슬픔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다른 감정으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거짓 감정으로 참된 감정을 덮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그 슬픔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자신을 덮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슬픔 속에서 슬픔을 위안할 방법을 찾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슬픔이 닥쳤을 때 거짓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고 슬퍼할 수 있는 한 실컷 슬퍼하라는 말이다. 슬픔이 지극해진 후에야 비로소 슬픔을 넘어설 수 있다. 어디 슬픔만 그렇겠는가? 모든 감정이 마찬가지다. 기쁘면 실컷 기뻐하고, 즐거우면 실컷 즐거워하고, 화가 나면 실컷 화를 내고, 두려우면 실컷 두려워하고, 좋아하면 실컷 좋아하고, 미워하면 실컷 미워해야 한다. 거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차라리 어린아이처럼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더 낫다. 자신에게도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정직한 감정이란 바로 그와 같아야 한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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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섬은 대서양에서 오는 조수와 파도의 증폭된 힘을 받아내야 한다. 밀물에다 겨울철 노리스터norenster (시속 121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를 가진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영향을 주는 사이클론_옮긴이)나 늦여름 열대폭풍tropical storm의 해일이 겹치면 훨씬 넓은 땅덩어리가 물에 잠긴다. 파도 하나가 절벽이나 사구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다.
오늘 밤의 밀물에 살해당한 생물은 사발야자나무만이 아니다. 바닷물은 해초와 사구를 지나 가장 먼 사구열ridge 너머로 퍼져 나간다. 나무에게 돌아가려고 톱야자saw palmetto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이 뾰족뾰족한 식물의 이름이 왜 ‘톱야자‘인지 새삼 깨달았다. 평소에는 해변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파도가 신발을 밀고 잡아당겼다. 수위가 낮아지면 민물 석호, 참나무 · 작은야자palmetto 숲, 무궁화속Hibiscus 초원이던 곳이 모래로 덮이고 흙은 소금기에 푹 젖는다. 바닷물이 한 번만 침범해도 물길이 열려 수 헥타르의 습지가 사멸하거나 넓은 잡목림이 질식당한다. 밀물의 99퍼센트는 이렇게 높이 올라오지 않지만, 나머지 1퍼센트가 물의 가장자리를 할퀴고 소금을 뱉으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밀물이 여기까지 올라오면 물 공동체는 금세해변으로, 다시 바닷물로 바뀔 것이다. 지난 150년간 이곳에서는 물이(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해마다 2~8미터씩 후퇴했다. - P87

수중청음기 hydrophone -일종의 마이크인데,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달걀 모양의 고무로 감싼다-를 대면 모래 알갱이와 야자나무 뿌리를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내 발에서 은은한 콧노래 같던 소리는 물속에서 들으니 떠들썩한 아우성이었다. 그저 철벅거릴 거라고만 예상했는데, 수중청음기를 물속에 넣고서 귀청이 터지는 줄 알았다. 들통으로 벽에 물을 들이붓듯 바닷물이 밀려왔다. 당장 녹음기 음량을 줄였다. 바닷물은 대패로 나무를 깎듯 모래를 가로질렀다. 모래 알갱이의속도가 빨라지면서 음량이 비명 소리 수준으로 올라갔다.
물이 물러나면서 모래 알갱이를 끌고 가느라 와글와글 소리가 났다. 바다의 어루만짐, 가장 부드러운 물의 움직임을 이길 수 있는 모래는없다. 알갱이는 구르고 뜬다. 진흙이나 낙엽 조각 같은 가벼운 입자는 쓸려 내려간다. 흙을 붙잡고 있던 뿌리는 말끔하게 씻겼다. 물의 우월한 힘이 해변을 평평하게 고른다.
나의 맨감각이 한사리 폭풍 때 느끼던 것을 모래 알갱이는 가장 잔잔한 날씨에서도 느낀다. 딱정벌레 발과 중력이 사구 표면을 긁듯 잔파도는 모래를 갉아 해안선의 모양을 바꾼다. 폭풍의 아가리와 달리 물의 입질은 1년 내내 밤낮으로 계속된다. - P90

수천 년의 척도로 보면 모래는 물처럼 행동한다. 사구는 잔물결이고섬은 물마루가 생기는 파도다. 모래물은 바다와 바람의 힘을 받아 구르고 휘돌고 흐른다. 사발야자나무는 이 파도를 타는 서퍼다. 권파가 솟구쳤다가 무너지면 다음 너울로 이동하여 몸을 일으키고 파도의 표면을 탄다. 인간 서퍼와 달리 스스로 파도를 만들기도 하는데, 사구가생기는 원인은 물과 공기의 물리적 힘을 가진 식물 수십 종이 벌이는생물학적 행동들의 관계다. 매끈한 해변에서는 물에 씻긴 부챗잎, 뿌리, 줄기가 바람에 날리던 모래를 붙들어 떨어뜨린다. 이렇게 쌓인 모래가 바람을 교란시켜 더 많은 모래를 떨어뜨림으로써 초기 사구가 형성된다. 풀이 모래와 해초 무더기에 자리 잡으면 뿌리가 덩어리를 단단히 붙들어 사구를 만드는데, 수십 년, 수백 년을 가기도 한다.
죽은 풀과 야자나무에서 생긴 해변의 부스러기는 사구의 핵이 된다. 살아있는 야자나무가 이곳에 당도하는 것은 씨앗이 해안에 떠내려•오거나 새가 씨앗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발야자나무 서식•지가 띄엄띄엄 분포하고 부모 나무와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야자열매가 무척 많이 열린다. 열매 하나하나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엄청난 개수로 희박한 가능성을 이겨낸다. 열매의 크기와 색깔은 블루베리와 비슷하다. 몇 달 동안 바다 위를 출렁거리다 해안에 밀려 올라오면 씨앗이 발아하는데, 소금물에 잠겨 있어도 멀쩡하다. 사발야자나무의 최북단 서식지인 캐롤라이나에서는 씨앗이 유난히 소금기에 강한데, 이는 이 나무들의 조상이 바다에서 왔음을 시사한다. 미국 남해안과 카리브해 너머까지 씨앗을 퍼뜨리는 것은 새와 포유류 몫이다. 울새는 해안을 따라 북아메리카를 1년에 두 번씩 오르내리는데, 녀석의부리와 위장은 야자열매를 실어 나르는 날개 달린 화물차다. 섬의 텃새들도 사발야자나무 숲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씨앗을 나른다. - P94

해변을 따라 생겨난 사구와 숲이 늘 소금기 있는 사막은 아니다. 비가 내리면 잎에서 염분이 쏠려 나가고 흙에서 씻겨 나간다. 하지만 모래는 물을 오래 붙들어두지 못하기에 사발야자나무 스스로 민물을 붙잡아야 한다. 줄기 밑동의 팽창한 엉덩이에서는 벌레 굵기의 뿌리수천 가닥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이 뿌리들은 목질소 섬유와 뿌리집덕에 부챗잎처럼 튼튼하다. 굵기는 가늘지만, 해변에 쓰러진 사발야자나무의 드러난 뿌리는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는다. 굴을 파는 뱀 무리처럼 무성한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는 동시에 물을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 민물은 뿌리를 타고 올라가 가지로 흘러든다. 여느 나무의 줄기는 죽은 조직의 기둥이 살아있는 표피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발야자나무 줄기는 전부 살아있는 세포다. 비가 오면 세포들이 물로 부풀어 줄기는 원통형 물탱크가 된다. 줄기는 너비가 약 0.5미터로, 길이 1미터마다 물 25리터를 저장할 수 있다. 건기에는 부잎 잎대의 좁은 통로로 물을 찔끔찔끔 내보내어 잎이 간신히 기능을 유지할 정도로만 수분을 공급한다. 덩치가 큰 사발야자나무는 줄기에 저장된 물로 몇 달을 버틸 수 있으며, 심지어 아예 뽑아버려도 살 수있다. 숲에 불이 나면 사발야자나무 우듬지가 터지고 불타 없어지는데, 대신 그 물 덕에 줄기는 살아남는다. 화재 현장을 본 사람들은 불타는 사발야자나무 숲에서 폭발의 폴리리듬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 나무 좋은 모두 죽었는데도 사발야자나무만 며칠이 지나지않아 새까만 우듬지에서 새 부찻잎을 틔웠으며 줄기 안에 묻힌 살아있는 조직으로 부활했다. 늙은 사발야자나무는 물에 잠긴 소금밭에서 파도를 타며 수십 년을 살아간다. 그동안 계속해서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동물을 먹이고 소금기 어린 바다의 잔해를 향해 씨앗을 퍼뜨린다. - P96

바다의 각 미생물은 햇빛을 모으거나 유기물 분자를 재생하는 등의 특수 임무를 띠고 있으며 그 밖의 임무는 대부분 공동체에 위임한다. 진화는 이 종들의 DNA를 솎아내어 각 종에서 특수 임무에 필요한 유전자만을 남겼다. 다른 임무는 심지어 세포의 생존에 중요하더라도 다른 미생물이 대신한다. 낱낱의 종이 필수 임무에 필요한 유전자를 잃고 공동체에 의존하는 이 ‘간소화‘가 가능한 것은 미생물이 서로가까이 떠다니면서 이 세포에서 저 세포로 화학물질을 손쉽게 주고받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세포는 먹이뿐 아니라 정보까지 교환한다. 분자들이 필요 사항과 자신의 정체를 신호로 보내기 때문에, 바다의 아수라장에서도 세포 간의 교환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많은 세포는 공동체에서 분리되면 죽는다. 자신의 DNA만으로는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 미생물의 가장 작은 유전적 생존 단위는 그물망을 이룬 공동체다. 이 방식은 효율적이어서 그물망의 각 부분이 자신의 장기에 집중할 수 있지만, 소통이 두절되면 피해를 입기 쉽다. 원유가 누출되거나 합성 화학물질이 배출되거나 바닷물의 산도가 달라져 세포들의 관계가 깨지면 미생물 공동체가 변화하는데, 이로 인한 영향은 미생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기와 대양의 화학 조성은 이 그물망에 의존한다. 전 세계 광합성의 절반을 바다 미생물과 플랑크톤이 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 생물에게서 들려오는 수십억의 속삭임은 전 세계 물과 공기의 화학적 상태를 좌우한다.
바다의 변화가 세포 간의 정보 교환을 어떻게 망치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바다가 그물망을 통해 유전적 간소화를 이룬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를 장기간 조사했더니 지난 100년간 플랑크톤 개체 수가 해마다 평균 1퍼센트씩 감소했다. 어류 개체 수도 여러 곳에서 급감하고 있다. 바다의 화학적 성질도 요동치고 있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서 산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인간이 만든 새로운 화학물질이 하류로 떠내려와 바닷물 한 방울 한 방울속에 떠다닌다. 어떤 화학물질은 인체 세포 간의 소통을 방해하거나 단절시키는데, 바다의 세포 그물망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 P103

소로가 바닷가를 거닐다 떠내려온 시신을 발견한 사건은 지금의 미국 해안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소로가 코드곳에 도착하기 이틀 전인 1849년 10월 7일에 아일랜드 골웨이를 출항한 브리그 범선이 폭풍우에 닻을 내리다 난파하여 많은 이주민이 익사했다. 소로는 서글픈장면을 앞에 두고 희희낙락했다. "차라리 바람과 파도에 공감했으며아일랜드인이 "더 새로운 신대륙에 이주했다고 믿었다. 그들이 육신을 출렁거리는 파도에 버려둔 채 환희에 차 내세의 해안에 입맞춤했으리라 생각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소로는 냉혈한으로 보인다. 그는 아일랜드인의 가치에 대해 이중적 견해를 가졌기에 그들의 운명에 무심했을 것이다.
당시의 이민 규모와 난파 횟수도 한몫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이 일어났을 때 10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피신했는데, 1850년에 미국 인구는 2000만 명을 갓 넘은 상태였다. 소로의 시대에는 폭풍이 몰아치는겨울 코드곳에서 두 주일에 한 척꼴로 난파 사고가 일어났다. 소로는이렇게 묻는다. "경외심이나 동정심에 왜 시간을 낭비하는가"
플라스틱 때문에 죽은 거북이나 새가 이따금 해안으로 떠내려오기는 했지만, 사발야자나무 아래서 사람의 시신을 찾지는 못했다. 우리해안은 소로의 해안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의 난민 수를 급증시키는 요인은 심술궂은 감자 병과 19세기 영국 정치인이 아니라 해수면 상승 등의 새로운 이유로 인한 거주지 상실이다. 숫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이주민수를 정확히 조사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정에따르면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해안선 이동, 척박해진 토양, 민물 부족등으로 거주지를 잃었으며 앞으로 이주민 수가 수억 명에 달할 것이다. 조지아에서는 이런 현상을 거의 실감할 수 없지만, 지중해, 아덴만, 안다만해, 카나리아 제도의 해안에서는 관광객들이 이주민의 시신을 발견하고 있으며 난파 생존자들이 해변의 일광욕 의자 사이로 기어간다. 21세기 영국 정치인들은 조상의 태도를 되풀이한다. "우리는 지중해에서의 조직적 수색과 구조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의도하지않은 유인을 발생시켜 더 많은 이민을 부추긴다고 믿습니다." 소로가 목격한 대량 이주와 난파의 세계가 돌아왔다. - P110

붉은물푸레나무

테네시 컴벌랜드 고원 세이커래그 분지
35°12‘52.1" N, 85°54‘29.3" W

죽음 뒤에도 삶이 있지만, 이 삶은 영생이 아니다. 나무의 그물망적속성은 죽음으로 인해 끝나지 않는다. 나무가 썩으면서, 죽은 줄기와가지, 뿌리는 수천 가지 관계의 초점이 된다. 숲에 서식하는 생물 종의 절반 이상이 쓰러진 나무에서 먹이와 보금자리를 찾는다.
열대지방의 무른 나무는 세균, 균류, 곤충이 일으키는 빠르고 연기없는 불길에 자신의 몸을 화장한다. 쓰러진 나무는 10년을 넘기는 일이 드물다. 잎이 무성하고 줄기가 무거워도 기껏해야 반세기를 버틸 뿐이다. 반면에 북극 근처 습지의 산성 토양과 추운 기후에서는 부패 과정이 훨씬 오래 걸린다. 그곳에 서식하는 나무는 자신의 몸을 미생물에 내어주면서 수천 년에 걸쳐 내세의 강을 건넌다. 열대지방과 극지방의 두 극단 사이에 위치한 중간 위도로 가면, 온대림에서 쓰러진 나무는 살았던 기간만큼 죽음 과정을 겪는다.
쓰러지기 전의 나무는 자신의 몸 속과 주위에서 대화를 중개하고 조절한다. 나무가 죽으면 이와 같은 적극적 중개 행위는 중단된다. 뿌리 세포는 더는 세균의 DNA에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잎은 곤충과 화학적 수다를 떨지 않으며, 균류는 숙주로부터 아무 전갈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는 이 연결을 온전히 통제한 적이 없었다. 살아있을 때의 나무는 그물망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죽음은 나무의 삶을 중심에서 밀어내지만 끝장내지는 않는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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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증조할머니랑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다면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았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가만히 차를 마셨다. 내가 진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끝이 슬프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구나."
할머니가 나를 보고 다정하게 미소 짓다가 입을 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 P116

엄마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앞으로 걸어갔다.
"날 한 번이라도 그냥 믿어줄 순 없어? 그게 안 돼?"
엄마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넌 이보다 잘 살 수 있는 애였어. 똑똑하고 밝고, 너 같은 애가 내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그렇게 엄마 마음에 안 차?"
내가 울컥해서 말하자 엄마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엄만 네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거지."
"엄마, 이게 나한텐 최선이야.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 이 세상에널리고 널렸어. 나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지금 직장도 내 능력에 과분한 곳이야."
"직장 얘기만 하는게 아니잖아."
"엄마, 그만해."
"알았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속도를 높여 걸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알 테니까.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 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 P135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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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걸 말하는 애가 아니었어."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바깥에서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집에와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곤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것 같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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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의 발로는 마치 고철(古鐵)이 활기차게 못에서 뛰어오르고, 봄철 죽순이 성내듯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다. 거짓으로꾸민 감정은 마치 먹을 매끄럽고 넓은 돌에 바르고, 맑은 물에 기름이 뜨는 것과 같다.  - P205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인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도강록(渡江)」 칠월 팔일(갑신일)자에 실려 있는 <호곡장론(好哭場論)>을 읽어 볼만하다. 조선을 벗어나 요동벌판을 처음 본 박지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한바탕 울 만한 곳이로구나! 가히 한바탕 울 만한 곳이야!" 그때 옆에 있던 정진사라는 이가 박지원에게 이렇게 묻는다. "하늘과 땅 사이에 탁 트여 끝없이 펼쳐진 경계를 보고 갑자기 통곡을 생각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에 박지원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 오직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 뿐 사실 일곱 가지 감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알지 못하네. 기쁨이 지극해도 울 수있고, 노여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즐거움이 지극해도 울수 있고, 사랑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미움이 지극해도 울수 있고, 욕망이 지극해도 울 수 있지. 답답하게 맺힌 감정을 활짝 풀어 버리는 데는 소리 질러 우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없다네." 그러자 정 진사는 재차 묻는다. "지금 울만한곳이 저토록 넓으니, 저도 선생과 같이 한바탕 통곡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무엇에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감정을 골라잡아야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박지원은 "그것은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이네"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배 속에서 막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야말로 거짓 꾸밈없는 천연의 감정이자 최초의 본심이라고 말한다.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감정이 무엇이겠는가?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동안 어둡고 막혀서 답답하게 지내다가 어머니의 배 속을 벗어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 손을 펴보고 다리를 펴보게 되자 마음과 정신이 넓게 활짝 트이는 것을 느낄 것이네. 어찌 참된 소리와 감정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크게 한번 발출하고싶지 않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는 거짓 꾸밈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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