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전날 밤 건강진단에서 의사들은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의 손톱과 발톱이 새빨갛게 물든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 디히드로코데인을 하루에 백 알 넘게복용하다 중독된 것이었다. 작가 윌리엄 버로스가 묘사했듯 이 약물은 자극성은 코카인만큼 약하지만 효능은 코데인의 두 배로 헤로인과 맞먹기에 미국 의사들은 괴링을 법정에 세우기 전에 의존증부터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합군에 체포될 당시 괴링이 가지고 있던여행 가방에는 2만 회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남아 있던 생산분의 사실상 전부였다. 그의 중독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독일 국방군 거의 전원이 페르비틴을 지급받았으니 말이다. 이 메스암페타민 알약을 복용한 병사들은 몇 주일 내리잠도 자지 않은 채 광적인 흥분과 악몽 같은 혼수를 오가며 정신 착란 상태에서 싸웠다. 과다 복용한 병사 중 상당수는 걷잡을 수 없는 희열에 사로잡혔다. 사위가 쥐죽은듯 고요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의미해진다. 마치 내가 조종하는항공기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독일 공군의 한 조종사가 몇 년 뒤 쓴 이 문장은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 아니라 지복의 환상을 목격하는 고요한 환희를 회상하는 듯하다.  - P9

독일군 빌리 지베르트는 이렇게 썼다. "기상 통보관 말이 맞았다.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풀이 난 곳은 선명한 초록색이었다. 이런 날엔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이 아니라 소풍을 가야 했다." 그는 그날 아침 이프르에서 독일이 살포한 염소 가스 6000통을 개봉한 병사 중 한 명이었다. "난데없이 프랑스군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규모로 소총과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모든 야포, 모든 기관총, 모든 소총이 불을 뿜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었다. 탄알이 우리 머리 위로 빗발치듯 날아가는 광경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가스를 멈출순 없었다. 바람이 가스를 프랑스 전선 쪽으로 계속 밀어갔다. 소들이 울부짖고 말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랑스군은 계속 사격했다. 자신들이 무엇에 대고 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15분쯤 지나자 포성이 잦아들었다. 반시간 뒤에는 산발적 총성만 들렸다. 그러다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얼마 뒤 시야가 걷혔고 우리는 빈 가스통을 지나쳐 걸어갔다. 우리가 본 것은 총체적 죽음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짐승도 굴에서 나와 죽었다. 사방에 토끼, 두더지, 쥐, 생쥐가 죽어 있었다. 공기 중에는 여전히 가스 냄새가 감돌았다. 남은 덤불 몇 그루에도 냄새가 걸려 있었다. 프랑스 전선에 당도하자 참호는 비어 있었지만 800미터 앞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믿을 수없었다. 영국인도 몇 명 보였다. 병사들이 숨을 쉬려고 얼굴과 목을 손톱으로 할퀸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총을쏜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마구간에 있던 말, 소, 닭, 모든 것이 모조리 죽어 있었다. 모든 것, 심지어 곤충까지도 죽어 있었다." - P31

새벽까지 계속된 파티가 끝나갈 무렵 그의 아내는 정원에 나가 신발을벗고는 남편에게 지급된 리볼버로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그녀는 위층에서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열세 살 아들의 품에서 피 흘리며 숨을 거뒀다. 이튿날 프리츠 하버는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채로 동부 전선의 가스 공격을 감독하러 떠나야 했다. 그는 전쟁 기간 동안 가스 살포의 효율을 높이는 기법을 가다듬었으며 그러는 내내 아내의 혼령에시달렸다. "며칠에 한 번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나가있는 게 도움이 된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이며 유일한 임무는 참호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서 본부에 돌아와 전화기에 붙들려 있다보면 그 가련한 여인이 내게 했던 말이 심장 속에서 울려퍼진다. 기진맥진하여 환각이 보일 땐 명령서와 전보 사이로 그녀의 머리가 나타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경험이다."
1918년 휴전 이후 연합군은 프리츠 하버를 전쟁 범죄자로규정했다. 자신들도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못지않게 가스를 쓰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주제에 말이다. 그는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자리잡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전의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발견은 수십 년 뒤 인류의 운명을 바꿀 터였다.
1907년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는 20세기 초에 전례 없는 세계 대기근을 몰고 올 뻔한비료 부족 사태와 맞섰다. 하버가 아니었다면 구아노와 초석같은 천연 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억 명이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 P34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 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 P42

그럼에도 이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의 아수라장에서도 특이점은 얼룩처럼 그의 마음속에 퍼져 참호의지옥도를 덮었다. 진흙 구덩이에 파묻힌 죽은 말의 눈에서,
동료 병사의 총상에서, 흉측한 가스 마스크의 뿌연 렌즈에 서 그는 특이점을 보았다. 그의 상상력은 자신이 발견한 결과에 매혹되었다. 만에 하나 특이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종말까지 지속될 것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달았다. 이상적 조건이 갖춰지면 그 항성은 영생하는 천체가 되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으면서 영영 그대로 머물러 있을 터였다. 그것은 여느 천체와 달리 어떤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이중으로 탈출이 불가능했다. 특이점은 기묘한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 시간의 양끝에 자리잡았다. 특이점으로부터 가장 먼 과거로 달아나거나 가장 먼 미래로 탈출하더라도 다시 한번 특이점을 마주칠 뿐이었다. 슈바르츠 실트는자신의 발견을 아인슈타인에게 알리기로 한 바로 그날 러시아에서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기 시작한 이상한 것에 대해 불평한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나의 모든 생각에 어둠을 드리워. 그건 형태나 차원이 없는 공허, 볼 순 없지만 온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자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는 그의 몸을 침범했다. - P49

쿠란트는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다. 쿠란트가 의사들에게진료받은 뒤 호송대에 합류하여 베를린으로 떠나기 직전 슈바르츠실트는 평생 쿠란트를 괴롭힐 질문을 던졌다. 당시에는 죽어가는 군인의 헛소리요, 피로와 절망에 시달린 슈바르츠실트의 정신을 스멀스멀 사로잡은 광기의 산물인 줄 알았지만 슈바르츠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슈바르츠실트는 그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조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쿠란트는 그를 달래려 애썼다. 슈바르츠실트가 두려워하는 종말의 징조는 전혀 보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빠져든 전쟁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리 없다고 말했다. 인간 영혼은 어떤 수학적 수수께끼보다도 큰 신비이며 물리학의 발견을 정신처럼 방대한 영역에 투사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상기시켰다. 하지만 슈바르츠실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검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올라와온 세상을 집어삼킬 거라고 횡설수설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탄식했다. 특이점은 어떤 경고도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돌아올 수 없는 지점, 한번 넘으면 무지막지하게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한계에는 어떤 표시도 경계도 없다고, 그 선을 넘는 사람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모든 가능한 궤적이 돌이킬 수 없이 특이점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슈바르츠실트가 눈에 핏발이 선 채 물었다. 그 문턱의 성질이 이렇다면 우리가 이미 특이점에 들어섰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쿠란트는 독일로 돌아갔다. 슈바르츠실트는 그날 오후 사망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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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잣나무(백송의 발상지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 1625년에 이 나무의 어린나무가 채근되어 일본 본토로 옮겨졌다. 그곳에서더 단단한 곰솔black pine (흑송)의 뿌리에 접붙여져 조금씩 분재로 다듬어졌다.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이 나무는 콜로라도에서 내게 그늘을 드리운 폰데로사소나무처럼 20미터까지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서 성장을 억제한 탓에 이 나무의 도기 화분 옆에 서면 그늘이 무릎 높이 위로는 올라오지 않는다. 가지와 뿌리를 쳐주면 나무가 왜소해질 뿐 아니라 줄기도 곧고 바늘잎 우듬지가 균형을 이룬 형태로 자란다. 게다가 여느 분재와 마찬가지로 가지에 철망을 둘러 인간의 눈에 보기 좋은 형태를 이끌어냈다.
폰데로사소나무의 뿌리와 균류 그물망은 뿌리 끝이 닿지 않는 흙속 깊숙한 곳에서 물을 끌어당길 수 있다. 접붙인 섬잣나무는 여느 분재와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근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이 유심히 살피며 매일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줘야 한다. 또한1~2년에 한 번씩 오래된 뿌리를 잘라내어, 넓고 얕은 화분의 제한된 공간을 어린 잔뿌리가 고루 채우도록 해야 한다. 분재 화분에서도 공생 균류가 흙에 서식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노동이 균류의 일을 대부분 대신한다. - P314

이것은 야마키 섬잣나무라는 원자적 나무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한 가지 결론인지도 모른다. 식물이 노예가 되었다가 폭격을 맞는 이야기.
하지만 야마키 섬잣나무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이런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분재는 생명 그물망을 벗어나지 않는다. 올리브 농장에서처럼, 분재는 다른 곳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사실 인간의 삶과 나무의 삶은 언제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많은 나무에서 그물망의 주된 구성 요소는 세균, 균류, 곤충, 새 같은 인간 아닌 종이다. 올리브나무와 분재는 인간을 한가운데로 보내어우리로 하여금 지속적 관계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이 연결이 끊어지면 생명이 위축되고 때로는 끝난다. 레반트에서는 관계가 끊어지면 기름을 내던 나무들이 쇠락하거나 죽으며 나무에 의존하는 경제와 문화도 같은 운명을 겪는다. 분재에서는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단절된 나무는 금세 죽는다. 수 세기에 걸친 나무의 생장과 인간의 노고로 인한 결실도 함께 사라진다. 이 손실이 식량 사정과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올리브 농장에 비하면 크지 않지만 문화에는 깊은 타격을 가한다. - P323

부副큐레이터 애린 패커드Aarin Packard는 분재의 흙과 잔가지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내게 말했다. 초심자는 자신이 나무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줄기와 가지에 원하는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움이 쌓이면서 형태란 생명들의 예측할 수 없는 만남에서 생기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급 분재가는 15년 이후의 형태 변화까지 내다볼 수 있을 겁니다. 존 나카John Naka 같은 대가들은 반세기까지도 볼 수 있겠죠.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미래는, 전개되는 텔로스는 어떤 자아에도, 나무의 씨앗이나 인간의 마음에도 담겨 있지 않다. 그 근원과 재료는 살아있는 관계의 가닥들에 담겨 있다. 분재는 원예라는 거울을 통해 나무의 본성을 비춘다. 나무는 공생명共生命, 즉 다수의 대화로 이루어진 존재다. - P325

나눌 수 없는 원자라는 개념은 환각임이 드러났다. 이 환각은 히로시마 상공 600미터에서 산산조각 났다. 개별성의 가면이 부서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절에서는 돌에 새겨진 부처의얼굴이 녹았다.
1964년에 원폭 생존자들이 홍법대사의 소나무 통나무에서 불을 가져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기념비와 공동묘지 가운데 있는 가스불을 점화했다. 나무로 종을 치자 미야지마의 숲 신사에서 들은 소리가났다.
야마키 가문은 원자를 넘어 예술을, 생명의 통합을 이뤄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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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에즈는 앞줄에 꼼짝도 없이 가만 앉아 있었다.
아일랜드식 옷깃과 소맷동이 달린 긴팔 감색 원피스를 입고무릎에 양손을 포개고 앉아 있었다. 사진보다 훨씬 더 범상치 않은 외모였다. 카메라는 그 얼굴에서 인디언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고 놀랍게 섬세한 골격과 눈을 놓치는 경향이있다. 특히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완벽한 직설, 꾸밈없는 솔직함을 포착하지 못한다. 훌륭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소유자, 옛날이라면 숙녀라고 불렀을 법한 모습이다. "인간쓰레기." ‘양차 대전 참전 용사‘라고 밝힌 노인이 씩씩거렸다. 똑딱이 나비넥타이를 한 노인은 이런 회합에 단골로 참석했다. "스패니얼 개 같으니라고." 미스 바에즈의 머리카락길이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노인은 지팡이로 톡톡 두드려 미스 바에즈의 관심을 끌려 했지만, 강단에 못 박힌 눈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스바에즈는 한참 후에 일어나서 장내가 완벽히 정숙해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반대편은 바짝 긴장한 채로 앉아서 정치나 학교나 턱수염이나 ‘버클리대학교 스타일‘ 시위나 기타 전반적 무질서에 관해 뭐라고 변명을 하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 반박할 태세를 가다듬었다.
"다들 4만에서 5만 달러 상당의 주택과 사유지의 가격하락을 걱정하시는데요! 미스바에즈는 마침내 느릿느릿 말했다. 낭랑한 목소리를 나직하게 깔고 감리위원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냥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캐멀 밸리에 1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역시 제 사유지를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토지 소유주는 펫커스 박사와 부인을 바라보며 천진하게 미소 짓고 나서 완벽한 침묵 속에 제자리에 앉았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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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움직임은 나무의 일부가 된다. 도시는 콩배나무 안에 있다. 콩배나무는 진동을 받아 흔들리면 뿌리를 더 뻗어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뿌리는 흔들림과 구부림에 저항할 수 있도록 뻣뻣해진다. 섬유소와 목질소 가닥이 증가하여 길이 방향의 힘도 커진다. 따라서 도시의 나무는 시골의 사촌보다 더 단단하게 땅을 움켜쥔다. 나무줄기는 움직임에 반응하여 둘레가 굵어진다.
내부에서는 목질부를 이루는 세포들이 더 촘촘하게 자라 벽을 강화한다.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금언은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의미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관계 학교에서는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경계선을 지우고는 나의 일부가 된다. 나무는 몸을 구부려 바깥에 있던 것을 안으로 품는다. 식물의 삶, 땅의 진동, 바람의 하품이 나누는 대화가 몸을 얻으면 나무가 된다. - P246

도시의 소리는 그 밖의 새로운 감각과 결합하여 이곳의 많은 종을 혼란에 빠뜨린다. 전자제품과 무선 신호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아지랑이는 시골보다는 전선과 송신기로 가득한 도시에서 더 강한데,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새의 나침판을 교란한다. 새들은 전파의 안개 속에서 갈 곳을 모른다. 경유 매연은 꽃향기의 화학물질과 결합하고 이를 왜곡하여 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도시의 향에 둘러싸인 나방은 냄새로 길을 찾지 못한다. 나뭇잎에 사는 미생물은 서로를 찾고 말을 걸지 못하는 듯하다. 도시에서는 미생물의 다양성이 매우 낮다. 이 새로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은 소수의 몇 중에 불과하다. 콩배나무도 그중 하나다. 비결은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다.
밤 10시가 되자 콩배나무 꼭대기의 꽃들이 보름달 달빛을 반사하여 은빛으로 빛난다. 빛은 직진하지 않는다. 꽃잎이 받아들이는 것은 도시 협곡의 창문에서 반사된 달빛이다. 달 또한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빛은 꽃에서 꽃으로 흘러내린다. 아래쪽에서는 달빛이 뉴스가판대 네온등의 붉은 기둥과 뒤섞인 채 호박색 가게 정문을 비춘다.
해에서 석탄으로 전구로, 꽃잎으로 햇빛은 느릿느릿 지상을 활보하며 브로드웨이 대로에 아치를 드리운다. 남동쪽으로 몇 블록 가면 골목길이 온통 은은하게 빛나는 콩배나무 꽃터널이다. 운수평 (중국 청대의 화가 옮긴이)이 달빛 머금은 꽃을 그리다 이곳에도 붓질을 한 듯하다.
아침이면 17세기 중국의 이미지는 자취를 감춘다. 맥주 운반 트럭이 정차한다. 연소실에서 폭발이 일어나 피스톤 로드가 위아래로 움직이면 흰 배꽃 1만 송이가 흔들린다. - P250

연안도沿岸島의 이름이 마나하타에서 니우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뉴욕으로 바뀌는 동안 인간 아닌 생물의 다양성이 급감했다. 도시에서 생물이 감소하는 이러한 패턴이 전 세계에서 되풀이되었다. 주변 시골에 서식하는 토착종 조류 중에서 도시에 깃들어 사는 것은 평균 8퍼센트에 불과하다. 식물은 상황이 조금 나아서, 토착종의 4분의 1가량이 도시에서도 서식한다. 토착종의 다양성이 낮아지는 것과 더불어 균질화 현상이 일어난다. 전 세계 도시의 96퍼센트에 새포아풀Poa annua자란다. 유럽이 원산지로 키가 작은 새포아풀은 여러 풀이 교잡하여 진화했다. 이처럼 계통이 섞인 탓에 새포아풀은 부모가 많으며, 유전적 기억 덕에 도시에 적응하여 인류의 이동을 따라 전 세계 도시에 잽싸게 퍼졌다. 조류 공동체도 몇몇 코스모폴리탄 종이 지배한다. 콩배나무에서 본 비둘기, 찌르레기, 참새는 전 세계 도시의 80퍼센트 이상에서도 관찰된다.
이런 패턴을 보면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도시를 반대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도시는 지표면의 3퍼센트를 차지하고서 인구의 절반을 수용한다. 이러한 인구 밀집은 효율적이다. 뉴욕 시민이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은 미국민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뉴욕은 애틀랜타나 피닉스처럼 확장 중인 도시와 달리 교통수단으로 인한 탄소 배출이 지난 30년 동안 제자리다. 덴버는 잔디밭이 아주 많은데도, 콜로라도 주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덴버 시민의 물 소비량은 주 공급량의 2퍼센트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도시 인구가 모두 시골로 이주하면 토착종 조류와 식물은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숲이 벌목되고 개울이 흙탕물로 바뀌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을 것이다. 이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도시 거주민이 교외와 준교외로 피신하면서 숲이 개간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한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도시 지역에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전 세계적 패턴을 개탄하기보다는, 빽빽한 도시 덕분에 시골의 생물 다양성이 증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254

이곳에서는 여러 공동체가 한 장소에 존재한다. 날, 철, 달의 시간이 장소를 나눈다. 오전 7시 30분에는 통근자들, 오후 2시 30분에는 유모차들, 한밤중에는 기침 환자와 담배꽁초 줍는 사람들, 일요일 아침에는 회당에 가는 유대교도들, 토요일 밤에는 취객들, 여름 새벽에는 조깅하는 사람들, 겨울 오후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사회적 토양의 각 층에서 사람들이 뒤섞인다. 사회적·경제적 계층의 장벽을 넘어. 내 시골 고향에 장이 서면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잡담하고 눈빛을 교환하고 상대방을 나무 아래에 데려가 낮은 목소리로 심각한 얘기를 하고 웃고 울고 끌어안고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수천 명이 지나치는 와중에 사회망의 이러한 발현을 알아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은 주변의 움직임에 가려 흐릿해진다.
처음에 익명성처럼 보이던 것은 알고보니 수많은 공동체의 공존이었다. 나는 거리의 소음을 방향 잃은 원자들의 충돌로 착각했다. 내가들은 것은 관계의 팽팽한 끈 수천 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였다. 마을장날이 떠들썩하기야 하겠지만, 이 소음을 만들어내는 그물망 개수에는 한계가 있다.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도 높다. 장터에서는 장애인의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차는 고장나고 집은 저 아래 먼지투성이 길가에 있고 말동무라고는 시커먼 지빠귀뿐인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간 데 없다. 시골은 빈민과 환자를, 도시가 못 하는 방식으로 숨긴다. - P275

올리브나무

예루살렘
31°46‘54.6" N. 35°13‘49.0" E

고양이 세 마리 - 얼룩이, 노랑이, 커다란 검둥이 - 가 올리브나무 아래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야옹거리면서 서로 때리고 잘 다져진 흙 위를 뒹군다. 알 악사 사원의 금요 기도회는 몇 시간 전에 끝난 터라. 예루살렘 옛 성벽의 다마스쿠스 성문으로 빠져나오는 인파가 수천명에서 수십 명으로 줄었다. 올리브나무를 둘러싼 낮은 벽 아래쪽 광장에서 노점상들이 고함을 지른다. 신발, 오이, 오디, 허리띠, 자두, 커피머신 등이 든 상자가 주 통행로 주변을 덮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군중의 의복이나 말소리에 묻힐 일이 없기에, 상인들의 고함 소리는 성문의 높은 돌벽에서 부딪혀 메아리친다. "아샤라, 아샤라, ‘열‘ 냥이요!‘
군인 몇 명이 손가락을 총열에 올려둔 채 광장 주변에 서 있지만, 이날 오후에 경비를 서던 검은색 복장의 보안군 수십 명은 떠났다. 그들의 무장 트럭과 눈가리개 쓴 말도 막사로 돌아갔다. 해가 지평선에접근할 때 깨어난 서풍이 열기와 먼지를 가라앉힌다. 올리브나무는 빗자루 같은 가지를 흔들어 바람에 응답한다. 혹투성이 줄기는 2미터를 뻗었다가 네 가닥의 가지로 갈라져 2~3미터를 더 올라간다. 돔 형태의 무성한 우듬지는 8미터 너비로 벌어졌다. 올리브나무가 서 있는 곳은 도로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돌계단의 안쪽 만곡부다. 해가 중천에 뜨면 잎들이 이곳의 유일한 그늘을 드리운다. 고양이 세 마리가 등을 대고 뒹굴며, 허브 상인의 짐에서 떨어져 발길에 짓밟힌 세이지와 박하에 털을 비빈다. - P278

올리브나무는 지중해의 고된 여름에 잘 적응했다. 가장 뜨거운 시기에는 왁스를 잔뜩 칠한 것 같은 불투수성 잎의 숨구멍을 꽉 닫은채 혼수상태로 여름을 난다. 여름이 지나면 성문 옆 올리브나무의 잎들은 모양을 바꾼다. 햇볕에 마르지 않으려고 주맥 둘레로 대롱처럼 말려 가지 쪽으로 구부러지는 것이다. 그래야 다공성인 은빛의 잎밑면을 햇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밑면이 은빛인 것은 잎의 표면바로 위에 있는 투명한 세포 수천 개가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이 세포들은 작디작은 파라솔처럼 기둥에 얹혀 있으며 숨구멍 주변의 잎 표면 가까이에 수증기를 붙잡아두어 얇은 수분층을 만들어냄으로써 숨구멍이 더 오래 열려 있도록 한다.
대다수 올리브나무의 뿌리는 빗물을 흡수하기 위해 표토에 넓게 퍼져 있다. 이곳의 빗물은 깊이 스며들기 전에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과 수분의 공급 패턴이 달라지면 올리브나무 뿌리의 구조는 환경에 맞게 변화한다. 관개 시설이 있는 과수원에서는 뿌리가 관개수로 근처에 뭉쳐 있으며 1미터 넘게 파 들어가는 일이 드물다. 성기고 마른 흙에서는 굵은 뿌리 대여섯 가닥이 제각각의 경로를 따라 6미터깊이로 뻗는다. 나무뿌리는 다 적응력이 있지만, 올리브나무 뿌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뿌리의 역동성은 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늙은 나무의 줄기는 근육질의 이랑 사이사이에 깊은 골이 파여 있어 세로로 홈이 난 모습이다. 이랑 하나하나가 원뿌리 하나하나와 이어져있다. 그 뿌리가 물을 찾으면 거기에 연결된 줄기와 가지는 수십 년 동안 생장한다. 뿌리가 죽거나 뿌리 주변에서 물이 마르면 연결된 땅 위부분들도 죽는다. 수령이 몇십 년 이상인 올리브나무는 이렇듯 반半독립적인 뿌리·가지 덩이의 결합체다. - P281

‘나크바의 날‘ 시위가 끝나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마스쿠스성문 앞 장터가 다시 열렸다. 그 모든 공간의 아래에서는 물이 돌 위로 흘렀다. 병사들은 서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관개수로를 갖춘 잔디발, 물놀이장, 분수가 있는 곳으로 시위대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장벽을 통과하고 나서는 옛집 열쇠를 써보지 못한 채 서안지구와 수용소로 돌아갔다. 서안지구는 50년간 군사 통치를 받았다(오슬로 협정이후로 제한적 자치가 허용되기는 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장벽과 경비대가 보호하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팔레스타인 마을, 농장과 붙어 있다. 정착촌과 마을은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구분된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에는 검은색 물탱크가 빼곡하지만, 이스라엘 정착촌의 지붕에 있는 (수로를 갖춘 야자나무 뒤로 슬쩍슬쩍 보이는) 저수 시설은 몇 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생존이 아닌 태양열 난방용이다. 현지 타운과 마을을 그대로 통과하여 정착촌으로 곧장 흐르는 이 수로는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필라테의 수로를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지붕 물탱크는 군사적·정치적 갈등으로 물 공급이 차단되거나 연례행사처럼 (이스라엘 정착촌에는 풍부하게 공급되면서) 배급이나 제한 급수가 이루어질 경우를 대비한 비상용이다. - P288

1950년대에 이스라엘 발명가들이 유속 조절용 플라스틱 상자와 구멍을 개발했다. 이 방식에다 호주와 유럽의 점적관수(가는 구멍이 뚫린 관을 땅속에 약간 묻거나 땅 위로 늘여서 작물 포기마다 물방울 형태로 물을주는 방식_옮긴이) 파이프를 접목한 덕에 젊은 나라 이스라엘의 농부들이 독립 선언을 재천명하고 메마른 땅과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할" 수 있었다. 관개용수는 저수지나 희석한 하수나 (일부 지역에서는) 짠물에서 얻었다. 아마겟돈 숲에서는 키부츠와 교도소에서 배출된 하수가 파이프를 통해 흘렀다. 겨울철 몇 달간만 비가 내리는 곳에서 는 남들이 폐수로 치부하는 것이 귀중한 액체가 된다. 이스라엘 농부나 올리브 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필요는 좋은 스승이다"라는 유럽의 옛 속담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점적관수는 올리브나무에 물을 공급했을 뿐 아니라 나무의 성질자체를 바꿨다. 아마겟돈의 올리브나무는 다마스쿠스 성문의 근육질나무나 껍질에 골이 파인 고목처럼 빗물에만 의존하는 나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이곳의 올리브나무는 신품종의 어린 나무로, 빨리 자라고 기름을 많이 내도록 개량되었다. (포도 수확기를 개조한) 집채만한 수확기가 가랑이를 벌린 채 굉음과 함께 올리브나무 위로 지나가며 가지의 올리브를 흔들어 따서 호퍼(석탄, 모래, 자갈 따위를 저장하는큰 통_옮긴이)에 담는다. 흙이 축축하면 가지를 흔들 때 줄기가 통째로뽑히기도 하는데, 그러면 새 어린나무로 대체한다. 어떤 나무도 수확기입구보다 높거나 넓게 자랄 수 없다. 높이는 약 2미터, 너비는 1미터가 최대다. 나무들을 양팔 간격으로 심어서 울타리처럼 우듬지가 겹친다.
이 방식을 개발한 이스라엘인 라비 시몬Lavi Shimon은 국제 학술회의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것처럼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올리브나무를 빽빽하게 일렬로 심어 재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의 혁신적 재배 방식은 스페인과 호주에까지 보급되었다. - P290

우리는 나무 아래에 천막을 깔고 손으로 올리브를 땄다. 올리브는1950년대식 트랙터가 끄는 트레일러 화물칸에 실려 운반되었다. 당나귀들이 근처 밭에 서 있다가 일꾼들에게 물을 날라주고는 올리브 자루를 집과 압착기로 가져갔다. 나 같은 풋내기가 올리브를 따는 밭에서는 머뭇머뭇 띄엄띄엄 소리가 났다. 농부와 가족은 수확 솜씨가 뛰어나서, 손가락이 잔가지를 훑으면 올리브가 두두둑 우박 소리를 내며 천막을 두드렸다. 사람 목소리가 각각의 나무를 후광처럼 둘러쌌다. 나의 서툰 아랍어 실력과 유창한 동료들의 통역을 통해 몇 마디는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다리에 올라선 남자들은 가지치기 하는 법, 양고기 요리하는 법, 올리브유를 최대한 많이 짜내는 법을 놓고 설전을벌였다. 여자들은 남자 방문객이 있으면 대부분 입을 다물었지만, 외국인이 다른 나무로 이동하면 웃음소리와 가족 이야기가 가지 사이로터져 나왔다.
수확하는 동안 각 나무는 인간적 스토리텔링의 중심이 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람, 나무, 땅, 그리고 이들의 관계였다. 들판의 수확이끝나갈 즈음이면 수만 개의 단어가 입에서 귀로 흘러들었다. 이렇듯풍경의 마음-기억, 연결, 리듬 중 일부는 인간의 의식 속에 간직된다. 올리브나무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름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생태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지어내고살을 붙이는 것이다. 다마스쿠스 성문 옆의 올리브나무와 맨해튼의 콩배나무는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소식과 물건을 교환하는 그늘이 되어주는 것이다. 맨해튼에서는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매일 수천 명이 나무 주위에서 교류한다 - 도시의 교류는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에서 가족과 이웃이 나누는 대화의 단단한 매듭에 비하면 짧은 접촉에 불과하다.
분리 장벽 건너편에서 올리브를 따는 것은 대부분 기계 아니면 태국 이주 노동자다. 태국 노동자들은 수학과 괭이질과 땅파기를 하던 팔레스타인인과 시오니스트 농민을 대신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파견되었다. 여느 산업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사회망은 이제 나무에게서 거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스라엘인의 수가 하도 적어서 키부츠의 95퍼센트가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한다. 농장 노동자 중에서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레츠 이스라엘Eretz Yisrael(‘이스라엘의 땅‘이라는 뜻으로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옮긴이)에 대한 농업 지식은 이제 태국어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된다. 농업부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시민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일꾼들은 여권에 외국인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토종이다. - P297

나와 이야기를 나눈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하나같이 이스라엘 군이나 분리장벽이나 정착민에게 나무를 빼앗겼다. 장벽이나 정착촌 울타리 때문에 땅이 잘려나간 사람도 많았다. 농부들은 정착민들이 나무를 베고 제초제를 뿌리는 장면, 사람들을 쏘거나 때리는 장면, 농장에 불을 놓는 장면을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장벽 너머의 과수원을 방문하려고 해도 군인들이 잠깐씩밖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어떤 농가는 할아버지만 허가를 받았는데, 올리브 농장을 손으로 가꾸고 수확하려면 1헥타르당 300~400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방치된 채 농장이 폐허가 되어간다. 많은 관문에서 연장과 물병의 반입이 금지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자기네 예전 과수원을 차지한 이스라엘 정착민에게서 마실 물을 사야 한다.
이런 조치가 나무와 사람의 유대 관계를 끊는 데는 몇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농장은 잡초밭이 되고 화재에 취약해진다. 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뻗는다. 서안에서는 장벽 너머의 올리브 수확량이 평균 75퍼센트 감소했다. 3년간 경작하지 않은 땅은 국가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안보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땅은 군대에 징발된다. 팔레스타인 정치인들의 행동이 이스라엘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면 불법이던 정착촌이 합법으로 둔갑한다. 서안의 땅은 한 조각 한 조각 합병되고 주민들은 점점 좁아지는 거주 구역으로 내몰린다. 희망도 점점 쪼그라든다. 농부 한 명이 장벽 너머의 몇 그루 남지 않은 나무를 돌보고 나서 철조망 사이를 걸어 돌아오며 내게 말했다. "지금보다 더 비참해질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트랙터를 타고 왔다 갔다 했지만 지금은 늙은 당나귀를 몰고 걸어다닌다.
선동가들이 이 좌절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비좁은 통로와 급조된 콘크리트 주택뿐인 지닌 난민촌의벽에 붙은 포스터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거나 자살폭탄 공격을 저지른 사람들을 기리는 것뿐이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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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끌 만한 것은 바 뒤편에 내리던 파란색 인공 비뿐이었다. 남들만큼 나도 그 비가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걸 보면서여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내 동생은 영화를 보러 갔다.
우리는 일주일에 사나흘씩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 역할을 하던 어두운 반원형 막사의 접이의자에 앉았고,
밖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는 1943년 여름 그곳에서 처음 존 웨인을 보았다. 그 걸음걸이를 보고 그 목소리를 들었다. <와일드캣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는 존 웨인이 여자에게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나는 서부영화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여자로 자라나지 못했고 내가 사귄 남자들도 장점이 많았으며그들이 데려가준 장소들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들은 존 웨인이 결코 아니었고 미루나무가 자라는 강가로 데려가준 적도 없다. 영원히 인공 비가 내리는 내 심장 깊은 곳 한켠에서, 아직도 나는 그 대사를 듣게 될 날을 기다린다.
자기현시의 차원도 아니고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불러오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 웨인이 말을 달려 내 유년기를 가로질렀을 때, 아마 당신의 유년기도 가로질렀을 때,
그 남자가 우리 꿈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형성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런 남자가 병에 걸린다니, 몸속에 병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치료하기 힘든 병을 품고 다닌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소문은 어떤 모호한 불안을 건드려 느닷없이 우리로 하여금 유년기를 회의하게 했다.
존 웨인의 세계에서는 존 웨인이 대장인 줄 알았는데, "달리자" 존 웨인은 말했다. "말을 타." "앞으로!" 그리고 "사나이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어이, 안녕하쇼" 처음 여자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했다. 건설현장 숙소일 수도 있고 기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웃자란 수풀을 헤치고 말을 달려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포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무튼 존 웨인이 말하면 의도의 곡해가 있을 수 없었다. 그처럼 강렬한 성적 권위는 어린애라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돈 욕심과 의혹, 사람의 손발을 묶는 모호성으로 규정된다고 우리가 일찌감치 알아본 상황에서 존 웨인은 다른 세계를 암시했다. 과거에는 있었을수도 있고 과거에도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인간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저 나름의 도덕적 코드를 만들어 지키며 살 수 있는 장소, 남자가 해야할 일을 한다면 여자를 얻고 역경을 헤치고 달려가서 끝내는 자유인으로서 자기 집에 살게 되는 세상 말이다. 그 남자는 몸속 어디가 잘못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게 아니라, 꽃다발과 약과 억지 미소에 둘러싸여 높은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반짝이는 강물 어귀 이른 아침 햇살에 은은히 빛나는 미루나무 숲속에 있어야만 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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