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활동가들 입장에서 보면 이 정치적 잠재력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거의 대다수 지구 주민들이 끝까지 분명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아마도 정치적 현실주의자였던 소수의 열일곱 살배기들은 낭만적 이상주의를 삶의양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잠재력은또한 언론에게도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서 보도 수준은 달라도 여전히, ‘히피 현상‘을 팬티 사냥(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습격해 속옷을 훔치는 일로, 1950년대 미국 대학가에서 유행했다. 옮긴이)의 연장선상이나 앨런 긴즈버그같은 안락한 유대인 청년회가 이끄는 아방가르드 운동, 또는 평화봉사단에 합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비닐 랩과 베트남 전쟁을 만들어낸 문화에 반대하는 심오한 저항으로 그리기를 고집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접근법, ‘저들이우리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 식의 접근법은 "히피들은 돈을우습게 보고 ‘빵‘이라고 부른다"고 밝힌 <타임> 커버스토리에서 절정에 달했고, 원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지금까지도 세대 간 주고받는 신호가 돌이킬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걸출한 증거로 남아 있다. 언론이 수신하는 신호들에는 정치적 가능성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았기에, 헤이트 애시베리에 감도는 긴장들은 대체로 언급되지 않고 넘어갔다. <라이프>와 <>과 CBS 방송에서 헤이트 애시베리에 파견된 기자들이 하도 많아서 오히려서로를 관찰했다. 관찰자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대충 그대로 믿었다. 정치적 행동을 박차고 나온 세대고, 권력게임은 초월했으며, 신좌파는 잘난 척에 불과하다는 말. 그러한고로, 헤이트 애시베리에 실제로 활동가는 없으며 매주 일요일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즉흥적인 시위일 뿐이라고, 왜냐하면, 디거스의 말대로, 경찰은 야만적이고 청소년은 인권이없고 가출한 아이들은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했고 사람들은 헤이트 스트리트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면 베트남의 축소판이라고 믿었다. - P174
물론 활동가들-사고가 경직된 사람들 말고 창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으로 혁명에 접근하는 이들은 언론이 놓치는 진실을 이미 오래전에 포착했다. 우리는 뭔가 중요한것을 보고 있었다. 안쓰러우리만큼 아무 대책도 없는 한 줌의 아이들이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 공동체를 창조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본 이상, 그 진공 상태를 더는 간과할 수 없었다. 원자처럼 쪼개지는 사회를 복구할 수 있다고 더는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전통적인 세대 반항이 아니었다. 1945년에서 1967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우리가 하는 게임의 법칙을 말해주는일을 게을리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그 법칙을 믿지 않게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의 수가 너무 적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들은 사회의 가치를 전통적으로 제시하고 강화하는 사촌과 대고모와 주치의와 평생 함께 하는이웃의 그물망에서 잘려 단절된 채 성장했다. 이 아이들은새너제이로, 출라비스타로, 여기로, 아주 많이 이사를 다녔다. 사회에 반항한다기보다는 사회를 아예 모른다. 그저 이 사회에서 가장 널리 홍보된 내재적 의혹에 피드백을 할 줄만 안다. 베트남, 비닐 랩, 다이어트 알약, 원폭.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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