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청나라 사람 장조張潮는 이런 글을 남겼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은 벽이없어서는 안된다.
花不可以無蝶,山不可以無泉,石不可以無苔,
水不可以無藻,喬木不可以無藤蘿,人不可以無癖.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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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1912년 8월의 어느 아침, 제임스 티론의 여름 별장의 거실.

뒤쪽에 커튼이 달린 넓은 문 두 개가 있다. 오른쪽 문은앞응접실로 통하는데, 앞응접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이 으레 그렇듯이 형식적으로 꾸며진 모습이다. 다른 문은창도 없는 어두운 뒷응접실로 통하는데, 이 공간은 거실과식당을 오가는 통로로밖에 사용된 적이 없다. 두 문 사이의 벽에는 작은 책장 하나가 놓여 있는데, 위에는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있고 책장에는 발자크, 졸라, 스탕달의소설들과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엥겔스, 크로포트킨,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서와 사회학 서적들, 입센, 버나드 쇼, 스트린드베리의 희곡들, 스윈번, 로제티, 오스카 와일드, 어이스트 다우슨, 키플링 등의 시집들이 꽂혀 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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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하루키가 팔아치운 책의 표지를 모두 모아 쌓아놓으면 그간 내가 간신히 판 책의 높이와 거의 비슷해지겠지만, 그런 점에서, 그러니까 장례식에 입고 갈 검은 양복이 없다는 점에서 하루키와 나는 똑같은 처지다. 그리하여 2003년 초,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문득 나는 ‘이제 검은 양복 한벌쯤은 필요한 나이가 됐군‘이란 생각을 했다. 그건 말해놓고 보니 굉장히 끔찍한 느낌이 드는 경우였다. 화가 나서 ‘난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외쳤다가는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울고 싶어지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게 반도패션이든 폴 스튜어트든 일단 구입했다면 열심히 입고 다니는 게 본전을 뽑는 일일텐데, 내가 저승사자도 아니고 어찌 그 양복을 최대한 활용할수 있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왜 검은 양복 따위는 친구에게 빌려 입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하루키 얘기를 마저 하자면, 상실의 시대」에는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해 있다‘라는, 이성교제 문제로 아버지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은 여고생이 자살사이트 익명게시판에 적어놓을 만한 문장이 나온다. 원서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문학사상사에서 낸 번역본에는 혹시 독자들이이 문장을 놓칠까봐 고딕으로 인쇄한 게 눈에 띈다. 한샘국어식으로 따져서 밑줄을 쫙 그을 만한 중요한 문장인가보다. 그래서 우락부락한 인간들이 모여 앉은 흡연구역에서 담배 한 대 피울정도의 시간만큼 생각해봤더니 그건 맞는 말이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푸른 하늘에도 별은 떠 있듯 평온한 이 삶의 곳곳에는 죽음이라는 웅덩이가 숨어 있다. - P51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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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사든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서 시간이 원래의 10배는 더 걸리지만, 이상하게도 이것은 불만족을 낳는다. 물건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물건을 찾고, 더욱 다양한 물건을 찾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다양한 물건을 찾는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더욱더 많이 원하는, 끊임없고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지닌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소매점을 돌면서 새로운 물건과 옷과 음식을 찾는 게 주된 여가활동이 된 사회에 살고있는 듯하다. - P267

과학이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다‘
요전 날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실린 이 문구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노화를 비밀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화는 때가 되면 저절로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안에는 아무런 비밀도 없다.
나에 관한 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앉아서도 잠을 잘 수 있고, <사인펠드> 재방송을 이미 본 것인지도 모르고 몇 번씩다시 볼 수 있으며, 세 번째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노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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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 옛날로 돌아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백여 년 뒤의 세계에대해 말해준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텔레비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본다거나 스마트폰으로 지인들과 바로바로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말한다면?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믿지 못할 일은 백여 년 뒤의 사람들도 아사히신문에 실린 나쓰메 소세키의「문」을 매일 읽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2080년의 일들을 상상하는 나에게 미래의 누군가가 찾아와 그때에도 종이신문의 한 귀퉁이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릴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그게 가장 놀랄 만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먼 미래의 사람들도 하리라는 것. 소설을 읽고, 일기를 쓰고, 옆에서 걷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단골식당 앞에 줄을 서고, 보름달에 소원을 빌고.... 그렇게 이 세계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놀랄 만한 미래는, 그렇게 다가온다. - P13

그런데 따분하게 이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읽다가 어느 순간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 그랬을까? 순전히 밟으면 삐걱대는 오래된 마루널처럼 몸이 아픈 어머니를 떠나보낸 내 감정이입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온갖 금지 사항만을 늘어놓던 이덕무가 어느 결엔가 이런 문장을 썼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와 숙부들이 다 살아 계실 때는 매우 우애가돈독하였다. 다섯 분 형제가 한 방에 모이시면 화기가 가득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이분들을 공경히 섬겨 아침저녁 식사를 반드시 손수 장만하시어 다섯 그릇의 밥과 다섯 그릇의 국을 반드시 큰상에 차려서 드렸다. 다섯 분은 빙 둘러앉아서 똑같이 식사를 드시는데 화기가 애애하였다. 나는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 지금은 네 분 숙부가 다 작고하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으며, 아버지만이 홀로 계시는데, 때로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 이덕무는 그저 ‘어릴 때 그 일을 보았다‘
며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고만 말했다. 자기 마음은 하나도 밝히지 않고 은근슬쩍 그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 얘기만 하더니 다시 하지 마라‘는 식의 글이 이어진다. 이 문장에서 이덕무는 별말이 없었는데, 나는 그가 어머니와 네 분 숙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들을 여의고 난 뒤집이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아버지와 둘이 앉아 옛일을 얘기하노라면 슬피 우시는 아버지 때문에 눈물도 보이지 못한 이덕무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이 책에 실린 말들이 사실은 이덕무의 말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손에 묻어도 빨아먹지 말아라, 얘야, 참외를 먹다가 남에게 줄 때는 꼭 칼로 이빨 자국을 깎아버리고 주어야 한다. - P33

정약용이 쓴 「선중씨先仲氏 정약전 묘비명」을 읽는데 내 눈에 문득 이런 구절이 들어왔다.

차마 내 아우로 하여금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며 나를 보러오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마땅히 우이보에 나가서기다려야 되지.
不忍使吾弟 涉重以見我 我當於牛耳堡待之

1801년 11월 21일 목포 쪽과 해남 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주막거리인 나주 율정점에 도착한 죄인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다음 날 아침 그곳에서 헤어져 각자 자기의 유배지로 떠났다. 이 일을 정약용은 「율정별栗亭別」이란 시에서‘로 이은 가게집, 새벽 등잔불이 푸르스름 꺼지려 해 / 잠자리에서 일어나샛별 바라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그리운 정 가슴에 품은 채묵묵히 두 사람 말을 잃어/ 억지로 말을 꺼내니 목이 메어 오열이 터지네‘라고 노래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14년이 지난 1814년 아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풀려나리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 떠나올 때만 해도 흑산도 입구인 우이도에 살았으니 우이도로 잘못 찾아간 아우가 한 번 더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할까봐 정약전은 고집을 피워 우이도로 다시 나갔다. 그리고 거기서 3년을 더 아우를 기다리다가 죽었으니 아우 정약용이 그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그 묘비명에 ‘악한 놈들의 착하지 못함을 쌓아가던 게 이와 같았었다‘라고 쓰는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유배 16년 동안, 겨우 몇 권의 책만 낸 정약전. 그가 뭍이 아니라 아우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그 그리움을 잊으려고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고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사랑이 내리 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 P42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 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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