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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쓸 용기 - 방송작가에서 어린이책 쓰는 교사로
안소연 지음 / 푸른칠판 / 2024년 10월
평점 :
최초의 연결은 기억이 안나지만 안소연 선생님은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부러우면서도,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페친이다. 서로의 글을 잘 읽어주고 공감표시나 댓글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가깝고, 그의 다양한 이력이나 작가로서의 능력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방송국에서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고 그러다 진로를 바꾸어 늦깎이 교사가 되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작가적 역량으로 어린이 정보책 몇 권을 썼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한 비문학 책쓰기는 그의 예전 작업과도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우물도 깊게 못 판 나로서는 관심이 가고 부러운 사람이다.
그의 이력이 담긴 에세이가 나왔다길래 당장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교사로서는 다소 특이한 그의 이력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교육 경험담 성격이 더 강한 느낌이었다. 제목은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고쳐 쓸 용기>
페북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샘과 나는 공통점이 꽤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중시한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다. 저자샘 교실의 아침독서는 우리반 풍경과 비슷하다. 잔잔한 음악이 깔린 조용한 교실에서의 자유독서. 여기서 자유는 책 선택의 자유일 뿐 다른 활동이 허용되진 않는다. 교사들 중에서도 혹자는 이것을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보시는 걸 보았다. 아침이라도 아이들이 좀 편하게 하고 싶은 말 하면서 부담없이 시간 보내게 하자는 말씀인데, 나의 경험으로는 그게 훨씬 더 어려웠다. 교사의 하루 에너지를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몽땅 낭비하게 만든달까. 그리고 이때 아니면 10분이라도 독서하는 시간을 만들기 어렵다. 이건 꼭 내가 '마련해줘야 하는' 시간인 것을 얼마전에 재차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방학때, 딱 한가지 방학숙제만 내주었다. 방학기간 주말 빼고 평일 날짜만 넣은 독서기록표였는데, 그날 읽은 책 제목과 쪽수 정도만 한 줄로 넣는 표였다. 안 읽은 날은 공란으로 두면 되니 솔직하게 기록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방학 안내장과 알림장에는 학교도서관 개방 시간, 지역도서관 이용 방법 등을 안내해주었다. 개학날이 되어 아이들이 제출한 기록표를 살펴보고 "열심히들 했네. 수고했어요." 라고 칭찬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의욕이 불끈 나는 양가적 감정이 생겼다. 아이들 대부분이 책을 대출하거나 구입해서 읽은, 말하자면 새로운 자료를 구해서 읽은 기록이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한 권의 예외도 없이 출판사가 집에 있는 전집 한 종이라거나 모든 제목이 유아때 읽었을 법한 흔한 옛이야기라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 이 아이들 독서는 내가 시켜줘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솟는 결과였다.
이렇게 독서로 기반을 다져가며 저자가 연중 힘을 쏟는 교육은 글쓰기다. 교대 이전 학부때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현장 작가로 일한 경험이 큰 자원이 되겠다. 책 속에는 글쓰기의 의의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생각들이 들어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다면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69쪽)
- 나는 교실 속 글쓰기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함께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00쪽)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 글을 친구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사이에는 정서적 유대감이 생긴다. (124쪽)
저자의 글쓰기 지도 과정을 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있었다. 특히 피드백과 퇴고(이 책의 제목인 ‘고쳐쓰기’)를 철저히 하고 계신 점에서 배울 점이 많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확신에 따라 지도하고, 그에따라 발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독자 선생님들에게도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 교육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 글쓰기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사의 글쓰기에 큰 의미와 지침이 되어줄 수 있겠다. 나의 교직인생을 되돌아보니 ‘기록한 만큼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100%는 아니지만 그 상관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나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끄적이는 성격이어서 페이스북에 교실 이야기를, 서재에 서평을 불규칙적이나마 남긴다. 그 기록이 축적물이 되어줄 때가 있고, 다른 이들과 소통의 매개가 되는 때도 많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예로 들며 자신의 경험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작업이 ‘인생을 두 배로’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두배로라니! 아니기만 해봐! 라고 나에게 누가 달려든다면 ‘말이 그렇다는 거지!ㅎㅎ’라고 한발 물러설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겠다. 이렇게 글쓰기는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고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들은 확실히 느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어 메모해두었던 구절을 다시 적어보면서 마무리해야겠다.
“글을 쓰는 과정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창조자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137쪽)
표면적으로 볼 때 학생들에게 글쓰기 시간은 자유와 창조의 시간이기보다는 구속과 고통의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하긴 창작의 고통은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글쓰기가 자유와 해소와 위안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는 한다. 그날까지 나도, 아이들도, 독자들도 모두 정진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안소연 선생님이 앞으로 쓰실 좋은 책들을 기대하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