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다정 죽집 - 2024년 제30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113
우신영 지음, 서영 그림 / 비룡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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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 올해의 상을 휩쓸으셨네? 동화쪽 수상도 하나 더 있고 혼불문학상까지 받으셨다.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시티 뷰>를 검색해보니 이 동화랑은 분위기가 완전 딴판.... 그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대단한 작가님을 또 알게 되었구나.

 

소개를 보니 소설 시티 뷰는 매우 서늘한 듯한데 이 책은 한없이 따뜻하다. 냉온탕을 오가는 글쓰기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사실 세상이 바로 그러하다. 한없이 서늘하고, 또 어느 구석엔 이런 따뜻함도 남아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도 있고, 철저한 단절과 남을 해치는 잔인함도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남아있는것들을 그렸다고 느껴졌다. 이야기의 배경과 소재부터도 그렇다. 요즘 동화에 음식점이나 가게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책의 배경은 죽집이다. 죽집이라고 옛날 것은 아니잖아? 요즘 프랜차이즈 죽집이 얼마나 잘되는데.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 죽집에는 오직 한가지 메뉴. 팥죽만 판다. 가끔 단골들이 조르면 팥칼국수를 추가할 뿐.

 

더구나 얼마전엔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앓아누우셨다가 겨우 털고 일어나 죽집 문을 다시 열었지만 예전 같지 않다. 더구나 건물 주인에게 이 자리에 마땅한 세입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도 듣게 된다. 말하자면 가게를 비워달라는 정중한 통보였다. 할머니는 순순히 인정하고 이제 그만 죽집을 접으려 한다.

 

하지만 죽집의 다른 식구들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다른 식구란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도구들이다. 팥을 끓이는 가마솥, 젓는 주걱, 담는 사발, 칼국수를 미는 홍두깨, 앞치마를 다리는 인두. 이중에 가마솥이 이 책의 화자다. 가마솥이 화자인 책은 아마도 처음일 듯?^^

 

규중칠우쟁론기의 바느질 친구들처럼 이 죽집 친구들도 서로 견제도 하고 얄미워하기도 하지만 죽집 사수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친다. 여기에 은혜 갚은 ○○역할의 고양이. 할아버지가 팥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던 이 고양이의 꾹꾹이에서부터 이 책의 모든 마법은 시작된다.

 

할머니가 출근하시기 전 신새벽에 죽집 친구들은 협력하여 신메뉴를 만든다. 그건 죽은 아니었고, 팥을 이용한다는 점은 같다. 팥냥이와 정체모를 그림자가 매일 새벽 죽집 앞에 먹음직스러운 식빵을 놓고 가고, 친구들은 비장의 레시피로 팥빵을 만든다. 그 빵은 홀로 남아 허전한 할머니의 마음과 비어있는 속을 채워주는 음식이 되었고,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선물이 되었다. 표면에 고양이 발바닥 문양을 찍어서 일명 고양이빵’.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그 고양이빵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까?

 

급식에 팥죽이 나오는 날이 1년에 한 번은 있다. 동짓날이지. 그때 담아준 팥죽을 다 먹는 아이를 거의 못 봤다. 나는 밥을 덜고 대신 죽을 맛있게 먹는데. 아이들은 아까운 팥죽을 잔반통에 그냥 붓는다.ㅠ 그런 요즘에 죽집, 그것도 팥죽만 파는 죽집이라니. 더구나 설탕도 절대 쓰지 않으시는 덤덤한 팥죽을.

 

이 책에는 팥냥이를 비롯한 이중의 보은이 들어있다. 작은 은혜가 있어 따뜻하고, 그걸 갚으려 하는 마음은 곱하기로 따뜻하다. 안읽어봐서 모르지만 시티 뷰라는 소설에는 이런 존재들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정답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도 있다던가.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 ‘아름다운 아이와 영화 원더에서 말하는 친절함, 타인에게 마음을 써주는 작은 행위들. 이런 것들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지 않을까. 이제야 죽집의 이름을 불러 본다. 바로 다정 죽집!

 

오래된 맛과 오래된 도구들, 오래된 가치를 버무려 이렇게 상콤 따뜻한 이야기가 나오다니 감탄을 안할 수가 없네. ‘온기를 전하고 싶어서 쓰신 작가님의 의도는 온기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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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분식 -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52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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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이 있지만 저학년 동화를 대상으로 하는 초승달 문학상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이 책이 그 첫 수상작이다. 처음 등장한 작가님인 것 같은데 이미 꽤 많은 작품을 써보신 것 같은 능숙한 필력이 느껴진다.

 

이 책은 많이 선택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상작 프리미엄도 있는데다가, 제목이 짧으면서도 인상적이고, 표지가 너무 먹음직스럽다. 내용까지 총체적으로 맛있는! 느낌이 든다. 나도 오늘 몇 권의 읽을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을 가장 먼저 골라 들었다. 노란 톤의 바탕 아래 그려진 분식과 닭강정이 너무 탐스러워 저절로 책에 손이 간다. 집게 사이에 쓰여진 <해든분식>이라는 제목도, 거기에 매달린 아이의 모습도 재미가 가득 담겼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변신 판타지는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어서 헤아리기도 어렵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물건... 심지어 쓰레기로 변신하는 이야기까지도 나왔었지. 여기서의 변신을 보고 풋, 웃어버렸다. 몇 달 전 방영되었던 넷플릭스 드라마와 똑같은 변신이라니! 그 드라마 엄청 화제였고 내 주변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난 1화만 보고 그만두었는데.... (재미는 있었다 꽤 웃기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드라마의 변신이 어떤 결말로 갔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아마도 두 작품은 변신의 출발은 같되, 과정과 결말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의 문법과 저학년 동화의 문법은 다를 테니까.

 

해든분식을 운영하는 엄마의 둘째딸 강정인.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다. 이 책의 대표 독자로 2학년을 설정하신 것인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1,2학년보다는 2,3학년에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아주 단순하지는 않아서 3학년까지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2,3학년 담임이라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하고 싶을 정도로 내용이 재미있다.

 

더 좋은 건 모든 캐릭터의 건강함이다. 주변에 있을듯한 현실적인 캐릭터이며 평범한 우리가 겪는 자잘한 감정들을 다 겪으면서도 모든 길목에서 빛을 찾아 나아갈 것 같은 신뢰를 주는 캐릭터들. 때문에 저렇게 황당한 변신이 되었어도 저걸 어째, 하는 마음은 잠깐. 웃으며 지켜보게 된다. 언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마지막 순간에는 저절로 외치게 된다. 그래, 그거지!!^^

 

바쁘게 분식을 만들어 팔며 자매를 키우는 엄마도, 엄마끼리 친해서 어릴적부터 가까이 지냈던 준찬이도(그러고보니 엄마친구아들이네. 서로의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도 똑같아.ㅎㅎ) 정인이 친구들도. 다 평범하지만 건강하다. 지지고볶으며 사는 건 다 똑같지만 시선이 밝다. 이것이 독자에게까지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아프고 우울하고 괴롭고 슬프고 힘겹고 미치겠고 상처주고 이런 것도 인생이고 현실이지만 요즘은 아이들한테서도 가뜩이나 이런 것만 보여서.... 이 작품이 주는 맛은 더욱 특별했다. 여기 나오는 음식들은 사실 건강식은 아니지만, 이 책은 마음의 건강식이라고 할까? 쭉 한잔 마시고 나면 힘이 나는 맛. 이런 작품이 필요했어. 특히 아이들에게는 말이야. 이 책을 잘 챙겨둬야겠다. 읽어줄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으니.

(! 엄마들이 읽는 것도 추천한다. 아이랑 같이 읽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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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파! 사계절 아동문고 112
강인송 지음, 안난초 그림 / 사계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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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해변에 노을이 지고 있고 열대의 식물들이 우거진 사이에서 세 아이가 훌라춤을 추고 있다. 이 표지그림이 주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뭔가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모순된 느낌의 조화라고 할까. 이 느낌을 고루 섞으니 편안함이라는 느낌이 나온다.

 

이 느낌은 나의 갈망이기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난 어젯밤에도 꿈에서도 애를 쓰느라 잔 것 같지도 않게 자고 일어나 무거운 발을 끌면서 출근했다. 월요병이었나.... 나는 어딘가 엄청 먼 곳으로 이사를 갔고, 하지만 직장은 바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출근 시간을 감내하며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고, 전학수속을 밟아야 하기에 오늘 제시간에 출근하기가 어렵다는 걸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교감선생님한테 전화하면서 5교시에 있는 영어를 1교시로 옮겨주시면 2교시까지는 빨리 가보겠다고 했다. 꿈에서라도 통 크게 오늘 하루 결근하겠습니다!” 하지 못하는 나. 아이들을 새 학교에 넣고 서둘러 길을 가는데 어느새 이사간 곳이 아닌 늘 다니던 출근길을 가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출근길엔 다리가 하나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침수돼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이 바로 물에 잠겨 있었다. 지금 한시가 촉박한데 말이야! 물에 잠긴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높은 곳으로 피해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허둥지둥 뛰면서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의 하루는 그럭저럭 평탄한 편이다. 직장일이 쉽지는 않지만 남의 돈 벌기야 누구나 어려운 거고... 그런데도 난 편안하지 못하다. 이 책의 태양이와 비슷한 점이다. 태양이는 춤을 잘 춘다. 댄스학원을 다니는데 거기서 알아주는 실력자다. 최종선발에 뽑힐 것으로 자타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과 독대한 자리에서 원장님은 태양이를 선발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다음 동작에만 집중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 없다는 거다.

 

나는 춤과는 거리가 멀지만 느긋하지 못함은 태양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멋이 없다는 점도? 태양이는 상처받고 댄스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학교에서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 라는 희한한 이름의 동아리에 떠밀리다시피 들어갔는데, 이건 하와이에 사는 물고기 이름이라나. 고정멤버라곤 리나 한명 밖에 없는 이 동아리에 태양이와 재재가 함께 들어가게 됐다.

 

리나한테서 배운 훌라춤은 그동안 격정적으로 추던 춤에 비하면 참 심심해 보였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이쪽 저쪽으로 살랑살랑 움직이면서 손동작 좀 하는 그게 훌라춤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는 않은가보다. 태양이와 재재는 점점 그 매력에 빠져갔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그들은 자기주도적 페스티벌을 열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미세한 충돌은 알로하 정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태양이는 여기서도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본성을 버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한다. 자신이 안무를 완벽히 외운 것은 물론이고, 잘 안되는 재재한테까지도 스트레스를 준다. 리나는 태양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건 알로하 정신이 아니라는 거다.

 

알로하 정신이 뭐냐고 따지는 태양이에게 리나는 모두를 위한 마음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거지.” (60)

연습 제대로 안해서 망쳐도 알로하 정신이라고 할거냐며 태양이는 따진다.

어떻게 항상 다 괜찮고, 다 즐거워? 그게 말이 돼?”

웬만하면 다 같이 좋은 거. 그게 알로하고, 그게 훌라야” (61)

 

페스티벌은 용케 열었지만, 그들 차례에선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그동안의 연습이나 준비로 커버되는 일이 아닌.... 인생에서 부딪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위기는 더 큰 격려와 웃음과 감동으로 넘어갔다. 확실히 알겠다. 이런게 알로하 정신인 것을. 열정과 편안함이 손잡은.

 

작가님은 훌라를 사랑하고 즐기는 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따뜻하게 쓸 수 없다. 작가의 경험의 세계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처음보는 이런 소재로 동화를 즐길 수 있게 작가님에게 찾아온 그 경험이 고맙게 느껴진다. “!”는 시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구령과 함께 즐거운 춤이 시작된다. 나도 어디선가 이 즐거운 구령을 붙이고 웃음과 함께 즐거운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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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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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동화 아니면 비문학을 주로.... 어른책 자체를 별로 안읽음^^;;;

한강 소설도 안 읽었다. 채식주의자가 엄청 화제가 됐을 무렵, 그때 도서실 담당이던 때라 수서는 했지만 읽진 않았다.
뭔가 되게 불편하단 소릴 들어서다.

오늘 선배쌤과 만날일이 있었는데 작별과 채식을 맞바꾸었다. 작별도 아직 안읽었지만 쌤이 읽고싶어하셔서 일단 바꿨다. 어제 1교시가 도서실 시간이어서 갔는데 벌써들 다 빌려가시고 두권 남았더라고. 그중에 한권을 차지했다. 왜 그렇게들 빠르셔?ㅎㅎ

이 책은 과연, 내가 잘 읽을 책은 못되었다.
1편 채식주의자는 공감할 수 있었다. 공감이란 말은 주제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고통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해는 가 닿았다. 압도적인 폭력에 노출된 기억이 얼마나 각인되는지. 그 폭력의 행사자에게 적의가 생겼다. 그게 피할 수 없는 가족이라면? 인생의 첫번째 운은 태생인거다. 그런 면에서 난 풍족하진 못했어도 태생의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 거다. 때로 너무 싫고 가당찮은 인간을 길에서라도 보게 되면 "개새끼! 마누라가 불쌍하다." 혹은 "저런게 시아버지면 이혼하겠다." 이런 욕을 속으로 뱉는데, 가족의 기억을 불행으로 채워주는 폭력인들이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더라구? 그런것들 어떻게 해야돼? 죽여버릴 수도 없고.ㅠㅠ

피가 가득한 숲을 통과하는 그녀의 꿈이 너무 생생한데, 그건 인간 세상의 시스템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피에 발을 담그고 산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모른다.ㅠ

2편 몽고반점은 빠르게 넘겼다. 뭐라고 감상을 하기 힘들다.

3편 나무불꽃을 가장 천천히 읽었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관점이 그나마 나와 가장 가까웠다. 그녀의 고통에 근접할 수는 없지만.... 사실 정신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는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다 못해 마지막엔 모든 섭식을 거부하는데, 그때 강박하고 억지로 주입하는 치료방식도 폭력이라 생각되었다. 여기에서 존엄사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목도 내겐 몹시 고통스러웠다.

"바보같이.
기껏 해칠 수 있는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동생을 보면서 그녀가 한 생각이다. 영혜는 이런 말도 했었다.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영혜는 이제 자신이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것 같았다. 숲에서 비를 맞으며 나무가 되려 했던 모습을 보아도.

한강의 작품을 이제야 겨우 보았지만 들은바에 의하면 그는 고통을 깊게 그려내는 작가인 것 같다. 읽기도 고통스러운데 쓰는 일이야 오죽할까. 왜 이런 일을 자임하게 되었을까. 운명의 영역일까.
이 책은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진 5.18이나 4.3 같은 역사의 고통이 아닌 개인의 고통을 다뤘다. 하긴 역사의 고통도 개인의 고통들의 총집합인 거지. 고통이란 면에선 다를게 없겠지. 생생하게 날이 선 고통의 서슬이 시퍼랬다. 인생사의 고통과 슬픔의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그걸 모르는 나는 아직까지 헛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도 모르고 싶고.ㅠ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는 대출했으니 읽어볼거다. 어쩌면 다른 책도. 그다음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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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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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별볼일없이 살아간다.
(월급값 하느라고 분주히 살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면서도 별볼일없는 하루에 대한 염려와 거부감이 있다.
휴일날 거한 계획을 세워 떨쳐 나가지도 못하면서, 덧없이 하루가 흘러갈까봐 걱정한다. 책이라도 좀 읽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보거나 식구들을 잘 먹이거나 수업자료를 만들거나 하면 그나마 위안을 한다.
그런데 내가 그런 조바심을 내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목적없이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뭐가 크게 다를까? 잘 모르겠다.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이 가족, 화자인 '나'(은수)의 가족은 내 눈에 참을 수 없이 한심했다. 나의 지인이라면 당장 "왜 저러고 살아? 어휴..." 라고 속말을 했을, 답답함이 가득했다. 송미경 작가님의 작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안개같은 모호함에 싸여 있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특히 그랬다. 덜 잠근 수도꼭지를 그냥 두고 사는 가족 같달까. 내가 가서 꽉 잠가버리고 나오면 속시원할거 같은. 그런데 끝까지 그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는듯.... 나중에는 그걸 잠그고 싶어 들썩거렸던 내 마음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달까. 뭔지 모르겠는 마음이 이 책 전체를 휩싼다. 나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것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게 송미경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형태가 모호한 세상에서 나혼자 "아 그래서 그게 무슨 모양인건데! 네모야? 세모야?" 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세상은 니가 보는 차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문득 느끼게 하는?

'나'의 엄마는 어렸을 때 동생(소이)을 유원지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미제과의 백일장에 어린시절 동생이 좋아했던 딸기웨하스의 추억을 써보냈다가 대상을 탔다. 그 사연이 마케팅에 이용되면서 가족은 실속도 없이 유명해졌다. 가족이 사는 단독주택은 누가 봐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웨하스 지붕으로 꾸며졌고, '내가 잃어버린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엄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을 받아주었다가 떠나면 보낸다. 막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 그러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제리미니베리'라고 했다.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하는 짓을 보면 나라면 샅샅이 검증하고 당장 내보낼텐데... 결국 어찌저찌 나가게는 되지만, 다시 돌아와 익숙한 풍경의 한 부분이 된다.
"드라마는 비록 삼류 드라마일지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략) 나에겐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141쪽)

드라마로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다. 가족 외 중요한 인물, 동네 주민이자 친구인 마로니. 알고보니 이 사람은 드라마작가 마영희였다. 마영희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장드라마 작가다. '나'와 삼촌, 그리고 이 드라마작가는 자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들의 대화나 에피소드 속에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고 웃기는 부분도 많다. 폭소 정도는 아니고 풋, 하고 웃게 되는 정도. 하지만 마로니는 충격적으로 슬프게 떠난다. 이 책에선 그것 또한 무심하게 툭, 놓아두고 넘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의 소설이라면 기승전결을 통해 해결할 것들을 좀처럼 해결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속시원히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메리 소이 사건까지도. 어느날 마로니는 '나'에게 메리 소이를 정말 기다렸냐고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데, 이후에 '나'는 이렇게 쓴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쪽)
글쎄, 알듯말듯하다.
돌아보면 이 책에서 마로니의 역할은 '질문하기' 였던 것 같다. 삼촌에게도, 나(은수)에게도. 그 질문에 대체로 대답을 못하지만 질문은 거울처럼 자신을 보여주곤 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가장 한심한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화자인 '나' 였는데, 얘는 거의 20년째 눈깜빡이 인형 미사엘을 끌어안고 살며 동네 '원더마트'를 천천히 일주하면서 백화점과 아울렛을 떠돌다 종착역으로 들어온 떨이 옷들을 구경하다 사는 것이 일과다. 부모는 벌인 일이 망해서 어려운데도 이런 딸의 소비에 돈을 대준다. 그러다 마트의 젠탱글 강좌에 다니게 되자 엄마는 기뻐한다.
"미사엘이나 안고 다니는 대신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들뜬 표정을 애써 감추며..." (75쪽)
그러고보면 독촉하지 않았을 뿐이지 엄마들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에 '나'는 친척 동네의 한 잡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해서 다닌다. 이전과 다른 역할에 뿌듯함을 표현한 문장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소설을 얘가 쓰고 있는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독특한 글을.

이 책에서는 슬픔도 조금 우스꽝스러워지고 웃음에서도 슬픔이 느껴진다. 슬픔도 기쁨도 톤다운해서 결국 비슷한 색깔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서 오늘도 잡화를 팔며 소설을 꿈꾸는 '나'는 비슷한 처지의 독자, 즉 나를 위로한다. 딱히 힘주진 않고.

한번 더 읽으면 다른 게 보일게 확실하지만 그냥 한번만 읽고 잘래. 나도 내일 잡화를 팔러... 뭐 그 비슷한 일을 하러 출근해야 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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