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쏜살 문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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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집에서는 일본인 부모님들과 전혀 다른 생활을 했습니다. 집에는 다른 규칙, 다른 기대감, 다른 언어가 있었습니다. 내 부모님의 원래 계획은 한두 해 후에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영국에 온 후로 십일년 동안 우리는 줄곧 ‘다음 해‘에 돌아간다는 생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 부모님은 이민자로서가 아니라 방문자로서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부모님은 영국인들의 신기한 관습을 자신들에게 적용시켜야 한다는 이ㅡ무감 같은 것 없이 그에 대한 견해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곳에서 살기로 오랬동안 예상했던 만큼 교육에서도 일본 현지의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매달 일본에서 오는 소포에는 그 전 달의 만화 잡지, 일반 잡지, 교육 자료의 요약본이 들어 있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허겁지겁 읽어 치웠습니다. 그 소포는 내 10대 어디쯤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 P21

하지만 옛 친구들과 친척들에 대한 부모님의대화, 일본에서 보낸 삶의 이런저런 일화들은 나에게 일본에 대한 이미지와 인상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언제나 놀랍도록 크고 잘 정돈된 나만의 추억 창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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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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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다 보면 1,2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당신 은 사람은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쓸데없는 일에, 하나마나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 P57

하루아침에 멋진 소설을 쓰겠다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한다고 재능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당신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먼 길을, 평생에 걸쳐도 도달하지 못할 만큼 먼 길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길을 지금 막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로 품이 깊은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뭘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시로 직업을 바꾸면서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겁니다. - P58

영화나 TV는 많은 사람과 같이볼 수 있고, 음악과 미술도 사람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책 한 권을 동시에 보는 일은 없지요. 문학만큼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즉 자신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는 예술은 없습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삶의 의미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의문을 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혼과 마주한 나머지 책을 집어 듭니다. 그런 심정으로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고독합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고독을 구원할 수 없다면, 최소한 질서 정도는 세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문학의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보다 몇 배는 깊은 고독을 경험해야 합니다. 고독의 숙련공이 아니면 소설가일 수 없습니다. - P74

일반적으로 조금 더 쓰고 싶다 하는 시점에 그만두는 것이 선배들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쓰고 싶다, 조금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쓰면 결국 이제 더는 쓰고 싶지 않다, 이제 못 쓰겠다 하는 시점에 펜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감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아 다음 날 집필에 지장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계속되면 작품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건강도 해칠 수 있습니다. 매일 여유를 남겨 두고, 자신감이 고조되었을 때 펜을 내려놓으십시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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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가지이 모토지로 단편선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안민희 옮김 / 북노마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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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그 사람의 높은 콧대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 P33

그림자만큼 신비로운 건 없다고 K군은 이야기했습니다.
"당신도 한 번 해보면 분명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점점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거든요. 다른 것도 아니고 내 그림자인데 말입니다. 전등 불빛 같은 것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달빛이 가장 좋습니다." - P35

과학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처음 목소리를 가진 생물이 태어난 것은 석탁기의 양서류였다고 한다. 즉 개구리의 소리가 지구에 울려퍼진 첫 생명의 합창이었다고 생각하면 꽤나 장렬한 기분이 든다. - P58

이 마을로 돌아와 얼마 후에는 누군가 목매 자살한 끈을 가져와 ‘속는 셈 치고‘ 한번 달여 마셔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약을 추천한 사람은 나라에서 칠 기공을 하는 남자였는데, 그 끈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요시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마을에 폐병을 앓는 홀아비 하나가 병세가 심해졌는데 돌봐줄 사람도 거의 없어서 다 무너져 가는 집에 홀로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얼마 전에 목매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빚을 여럿 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죽었다는 소문에 채권자들이 찾아왔는데 그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었던 집주인이 채권자들을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의 소지품을 경매에 부쳐 처리하게 했다. 그런데 소지품 중 가장 비싼 값을 받은 것이 그 사람이 목을 맨 끈이었고, 그것을 한 마디 두 마디씩 사겠다는 사람이 불어 결국 집주인은 그 돈으로 조촐하게나마 장례식을 치렀을 뿐 아니라 그동안 밀린 집세까지도 처리했다는 이야기였다. - P89

요시다가 병원에 온 후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간병인이라는 외로운 여성들의 무리였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단순히 생활에 필요해서뿐만이 아니라 남편과 사별했다든가 나이가 들어 돌봐줄 사람이 없다든가, 뭔가 그러한 인생의 불운에 관련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라는 점을 관찰했는데, 어쩌면 이 아주머니도 가족이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 이렇게 간병인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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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틀면, 이곳은 - 도쿄의 감각을 만드는 공간과 음악 브랜딩
도쿄다반사 지음 / 컴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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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팔머는 ‘인생에 있어서 헛되고 우아한 것 전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 P141

특히 1960년대의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절의 잔향이 담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라의 경제와 삶 질이 풍요로운 시절에 보사노바가 유행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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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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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괄량이에다가 성격도 밝지만, 진짜로 그런 건 아니야. 진짜로 밝은 사람은 잠자코 있을 때에도 밝아. 하지만 너는, 조용히 있으면 나까지 쓸쓸해져 - P24

아아, 인류여, 남자여, 여자여, 어쩌면 이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가. 나는 타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 때문에 멍해지고 만다.

생활이란 종잡을 수 없는 것이거늘, 그 종잡을 수 없는 것 속에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잣대로 자신을 재면서 거의 대부분 병처럼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려고 한다. 남이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한다. - P70

어렸을 때, 영화를 볼 때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주인공이 아닌 인간의 인생은 너무 부당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 P132

"그게 참, 2년이란 참 긴 시간이야. 낮 동안은 좋아. 일을 해야 하니까. 이때도 열심히 일한 녀석일수록 빨리 죽었어. 먹을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일하는 척만 해야지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돼는 거야."
"인텔리가 약하다든가 하지는 않고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적당히 아무렇게나 하는 녀석일수록 살아 남았어. 낮 동안은 좋아. 근데 밤이 길어." - P141

오늘은 친구가 왔는데 아주 복잡한 얼굴을 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채ㄹ 쓰던 남편이 증발한 후 길에서 헤매게 된 모자 가정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서 내보냈다고 한다. 그걸 본 아들이 "우리 집이 저렇게 되면 나 학교 그만두고 일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카네는 학교 보내고 싶으니까." 라고 말했다고. 일 년 내내 원숭이처럼 싸움만 하는 남매인데도 하면서, 친구는 뭉클해서 자신의 성공한 육아에 대해 황홀해 했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서 딸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했더니, 딸은 스파게티와 과일 파르페를 다 먹어 치우고는 더없이 만족한 얼굴로 "있지, 엄마, 오빠랑 밥 먹을 때 나보다 비싼 거 사 주면 안 돼"하고 히죽 웃었다고.

"흐음. 남자가 더 착해!"
글쎄, 나는 그 동생이 특별히 더 뻔뻔하고 못됐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냥 무척 여자답구나 하고 생각한다. - P182

포도주가 떨어지자 나와 도모는 손을 잡고 술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도무는 불쑥 "이게 인생이야"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또 주스 마시듯 포도주를 마셨다. - P248

언니, 언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운전할 줄 알고 책 좋아하는 여자는 전부 이혼했어, 내가 아는 범위 안이긴 하지만. - P289

여자가 한 번 어머니가 되어 버리면 어머니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남자는 아버지가 되어도 아버지 이외의 것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여자라 남자의 그런 재주가 신기하다. 세상에서는 무책임하게 어머니도 인간이며 여자라고 꼬드기지만, 아무리 꼬드김을 당해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어머니이기를 계속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책을 읽으면 객관적 입장이라는 것은 사라진다.
탈옥수의 수기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면 손에 땀을 쥘 수 있다. 손에 땀을 쥐기 위해 읽는 거다. 그러나 도중에 문득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탈옥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중간에 성장 과정이 나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한 살 때의 사랑스러운 사진이라도 한 장 삽입되어 있으면 손에 땀 같은 건 안 나온다. 우리 아이는 내가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 건가? 하고 점검하게 되어 피곤하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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