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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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래버/ 한겨레출판


 


아일랜드와 영국. 강대국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일랜드 땅에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비극을 거장 윌리엄 트레버는 <운명의 꼭두각시>라 불렀다. 이제 우리는 그 서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윌리 퀸턴의 선택을 목도할 시간이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낯선 이들이 아픈 데는 없는지 묻곤 하는 얼굴을 가진 금발의 파란 눈의 소년, 윌리는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의 결합으로 결속된 집안인 퀸턴 가문의 장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혁명군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복종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영국 군대 '블랙 앤드 탠즈'의 무참한 폭력이 자행되는 빌미가 된다.

 

 



 


윌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여동생들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가여운 아이였다.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혈육, 어머니는 비극에 침잠하여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술에 기대게 된다. 한순간에 닥친 비극의 칼날은 여린 소년이었던 윌리를 주저앉힌 듯싶었지만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다. 과연 이 사랑은 윌리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을 위로하소서!

 

 


 




 

윌리, 메리앤, 이멜다의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들은 같은 결을 지니면서 어긋난 그들의 인생처럼 가슴을 저며온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년과 소녀 앞에 놓인 현실은 무겁거나 추악하여 어른에게도 버거운 짐을 감당해야 하는 그들이 한없이 애처롭다.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실로 조종당하는 윌리는 가문을 붕괴시킨 원수에게 기어이 복수의 칼날을 겨누고 떠나버린다. 그가 떠난 킬네이를 지키는 그의 아내와 딸.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 딸 이멜다는 미쳐버렸다고 한다.

 

 


 

 

윌리엄 트레버 작가는 난도질당한 삶들을 그만의 감각적인 문체로 나열한다. 그림자의 피조물인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암흑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진실이 하나둘 맞춰지게 된다. 처참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성인의 고요한 세계의 은총 안에 머무를 수 있음을 감사하는 세 사람의 모습으로 소설이 끝난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지난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잔혹한 운명의 손짓으로 부서져버린 한 가문의 비극 앞에서 부정하듯 눈을 감았다. 가족을, 사랑하는 이를, 함께 하던 이를 떠나보낸 그들의 감정선에, 선택에 빠져들어 삶을 관조해 보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이 지닌 힘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 <운명의 꼭두각시>이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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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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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정도로 요즘 현실을 묵직하게 담고 있는 장편소설

<그리고 봄>

 

그리고 봄/ 조선희/ 한겨레출판

 


 

대통령선거 이후 1년을 오롯이 담아낸 작가의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4인 가족을 사계절을 대표하는 화자로 내세워 각자의 생각과 입장을 그려내어 독자는 자신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지식인으로서, 기자로서, 어른으로서 정치적 선택으로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고 반성하고 후세대에게 자신들이 소중하게 지켜오고 믿는 가치를 유산으로 남기고자 강의(?) 하는 부모 세대와 정치에 크게 관심 없이 자신들의 문제에 몰입하는 20대 자녀 세대가 부딪치면서 튀는 스파크와 갈등을 숨죽이면서 지켜보았다. 과연 작가는 소설 속 녹록지 않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본문을 탐닉했다. 시원하고 호탕한, 정직하고 적절한 표현들에 감탄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다시 봄이 됐다.

 


'우리 시대의 집단 우울증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처럼 내 마음을 긁어대는 표현들이 많았다. 왜 이리도 지난한지, 지리멸렬한지…… 답답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요즘을 예리하게 묘사해 준 소설 <그리고 봄> 덕분에 현실을 정확하게 마주하였다. 그렇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1년이네. 10년은 된 거 같아."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사회라 믿으며 사회가 더 이상 험해지지 않도록 자정 노력에 힘쓰는 어른의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숨 고르기를 말하고 있다. 멈춤을 통해 서서히 혐오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그날을 그려보게 된다.

 

 


 


 

현실의 존재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리고 봄>안에서 영한, 정희, 하민, 동민의 동상이몽은 우리네 삶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이태원 참사같이 굵직한 사건사고를 주인공 가족 범주에 자연스럽게 포함시켜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지금 이야기임을 인지시킨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통보여서 더 혼란스러웠던 하민의 커밍아웃, 당황스러운 동민의 정치적 행보와 인디밴드 활동을 위한 가출을 겪으면서 정희 부부는 또 한 번 성장하고 변화한다. 자신의 옳고 그름만을 내세우지 않고, 자식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응원자로 물러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녀의 온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순간 가족 모두가 자유로워졌다. 그렇기에 생각은 달라도 말은 편하게 하는 동민처럼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부모 세대의 부모들은 서구화에 저항한 마지막 세대였다면 부모 세대는 디지털 문명에 저항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문장이 가슴을 저민다. 십 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눅진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무거운 마음이 문장을 만나 요동쳤다.

책을 저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날 영한은 동민이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있다. 정희는 강의 대신 책이냐고 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최선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런 노력 끝에 접점이 있으리라.

 


 

"네 사람에게는 네 개의 앵글이 있다.

서로 딴 데를 본다면 말을 섞기 힘들 것이다.

다만 고개를 돌릴 줄 안다면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 아닐까. "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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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래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
레나 엘러만 지음, 마라이케 암메르스켄 그림,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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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은 어디일까요?

그건 위대한 고래의 비밀이란다.

자, 우리 같이 찾으러 가보자."

 

 

 

 

큰 고래와 작은 고래가 헤엄치는, 신비로운 바다가 그려진 아름다운 표지의 그림 동화책 《작은 고래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을 소개합니다.

 

 

 

 

이 그림책은 바다 본연의 색과 태양에 물든 붉은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큰 작품입니다. 글 밥은 다소 많은 편이라 아이 혼자 읽기보다는 부모와 같이 읽으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합니다. 고래들의 모험을 따라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문구들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이가 성장할수록 고민이 커집니다. 이 책은 그런 부모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고마운 책이네요. 큰 고래는 작은 고래의 질문에 직답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며 인도해 줍니다. 힘들어 포기하려는 작은 고래를 다독이고 응원하여 함께 모험을 계속해 나가는 큰 고래를 통해 참부모를 배웁니다.

 

 

"가자. 다른 곳도 보여줄게.

괜찮아. 겁내지 마.

용기를 내면 상을 받을 거야.

또 다른 걸 보여줄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된 둘의 모험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고난과 좌절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느낄 두려움과 망설임도 그리고 이를 이겨내고 나아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대해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려냅니다. 부드럽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시선을 뺏기게 됩니다.

 

 

 


 

"이겼다! 내가 이겼다!"

 

 

큰 고래는 자신이 여행했던 멋진 곳들을 작은 고래와 같이 다니면서 소개해 줍니다. 비밀의 섬, 무지개, 모험의 배, 산호초, 해마의 숲, 옛날 전설 속 물에 잠긴 도시, 고래의 합창 장소, 고요의 만까지.

가는 곳마다 감명받아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작은 고래에게 "기다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장소를 보여주는 큰 고래는 작은 고래에게 마지막 수영 시합에 져주는 아량을 보여주네요. 작은 고래는 마무리까지 완벽한 하루를 선사한 큰 고래 덕분에 "인생에서 제일 멋진 날"을 보냈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제일 멋진 곳을 못 찾은 게 다행이에요.

내일 같이 더 찾아볼 수 있잖아요."

 

 


 

 

오늘 모험을 떠난 곳이 별이 되어 까만 하늘을 수놓은 밤, 우리는 비로소 위대한 고래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고래가 전하는 아름답고 따스한 깨달음 덕분에 책 읽는 내내 아이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나눴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은 우리가 함께 행복한 곳이란다.

이게 위대한 고래의 비밀이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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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박서영 지음, 윤지경 그림 / 고래책빵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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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탑골공원에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1919년 3월 1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 수많은 군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역사적인 그날을 기록한 외국인이 있었다. 바로 석호필, 독립선언문에 기록하지 못한 민족대표 34인 프랭크 스코필드였다.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박서영 지음/ 고래책빵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는 한국을 조국보다 사랑하여 일본에 억압받는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프랭크 스코필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시오.'

- 프랭크 스코필드 묘비명 -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프랭크 스코필드의 이야기는 박서영 작가의 상상력과 펜 끝에서 피어났다.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아버지처럼 어려운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의젓한 청년을 거쳐 생명을 구하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프랭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장난을 치던 프랭크가 여행을 다니면서 넓은 세상을 마음속에 품게 되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현실에 분노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인상 깊게 읽었다.

 

어렸을 때는 자신의 뜻대로만 하는 무섭고 고집스럽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였지만,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고자 하는 큰 뜻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면서 프랭크의 삶도 변하게 된다. 프랭크는 살아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멋지고 좋은 어른들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끈기와 의지 그리고 노력은 가난과 장애를 딛고 뚜벅뚜벅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까지 간 프랭크였기에 낯선 이국땅에서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지게 된 몸으로도 수의사가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과 장애를 딛고 세균학으로 우뚝 선 그는 당당한 거인 같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얽힌 나라 '한국'으로 초청받은 일이야말로 운명 같다. 주저 없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코리아를 도와주기로 한 그의 결단은 우리 민족에게는 크나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나라에 와서 의사로서의 후배 양성뿐 아니라 3.1운동, 제암리 예배당 사건, 수촌리 마을 방화까지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선 그는 조국보다 한국을 사랑한 우리의 영웅이자 독립투사였다.


 


 

 

아름다운 한국을, 자유를 갈망하는 한국을, 독립의지로 불타오르는 한국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여 목숨을 바쳐 도와준 의로운 인물,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를 만나 가슴 뭉클하였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지은 그의 사랑과 희생을 우리 마음에 깊게 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를 통해 박애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찬란한 시간이었다.

 

 

"당신은 한국 사람 같은데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겠소. 일이 필요하면 일을 줄 거요.

만약에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목숨도 줄 수 있으니,

이렇게 창문으로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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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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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는 마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쉰 살에 약초학을 전공하여 약초원에서 진료를 보는 저자는 채취인이다.

 

"채취만으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채취 강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365일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자연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기록한 일지를 《야생의 식탁》으로 출간하였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 부키출판


 


자연 파괴와 기후 변화를 염려하면서도 블랙 프라이데이에 지갑을 여는 수많은 이들에 기함하여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한 모 와일드. 이 야심찬 행보가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존에 EIDF <최초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강렬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간 로컬푸드만 먹고살아보기'에 도전하는 5인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숙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머무르는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로만 사계절을 살아내겠다는 당차고 호기로운 이 도전의 끝이 무척이나 궁금한 나로서는 이 여정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를 통해서라도 자연을 향한 경외와 공존을 간접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을 남겨준 모 와일드 저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제는 누구가 실감하는 위기 속에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가 찾고자 하는 답 그리고 가능성을 보여준, 생생한 삶의 기록이었다. 글과 함께 수록된 세밀화는 그가 발견한 자연을 우리 삶 속으로, 눈앞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채취 전문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풀과 열매, 버섯들이 등장했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푸성귀들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깊은 곳에서 감사와 애정이 솟아올랐다. 자연에 예민해지는, 민감해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의 사이클을 맞춰나가는 저자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네가 이렇게나 멋지고 귀한 존재였구나. 자연의 은총이었구나. 무지한 자의 눈에만 쓸데없이 웃자란 잡초였을 뿐, 너는 놀라운 기능을 품고 있구나. 하루에 1,2번은 걷는 마을 하천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명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름 없는, 불필요한 잡초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 해졌다.

 

 

저자가 기억하는 지도, 식량 지도라고 말하는 그 지도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맛집 지도와 비교되면서 '음식', '먹거리'의 의미와 무게에 관해 생각이 깊어졌다. 맛집 순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오늘의 자연이 허락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모와 맷을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내 안에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야생식 실험을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①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② 일 년 동안 다양한 서식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식량을 구한다.

③ 돈은 쓰지 않는다. 모든 식량은 채취, 사냥, 선물, 물물교환으로 얻거나 내 기술과 교환한 대가여야 한다.

④ 야생 조류의 알 대신 유기농으로 풀어키운 암탉의 달걀을 섭취한다.

⑤ 물물교환으로 염소젖을 구할 수 있다.

⑥ 냉동, 건조 또는 보존처리한 야생식도 섭취한다.

 

얼마나 꼼꼼하게 야생식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저자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2번만 예외사항을 두었을 뿐이다. 그의 결심과 절제에 절로 탄복하였다.

 

 

"음식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가장 큰 선물이다."

 

 

그가 채집하고 섭취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의 관대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지나친 소비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류세'가 아닌 '공생세'를 향해 우리가 뚜벅뚜벅 나아가는 내일을 그려본다.

 

 


 

 

저자의 기록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의 교감, 자연으로의 회귀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1여 년의 시간 속에 함께 한 동료와 지인들의 교류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지키고 이어주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삶의 통찰은 깊은 공감과 함께 사고하는 힘을 길러준다. 구석기 시대 도구인 손도끼와 돌칼로 토끼, 까마귀, 사슴의 가죽을 벗겨내는 의식 같은 작업이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 솔라스탈지아에 대한 글처럼 말이다.

 



 

 

국적, 성별, 나이, 식습관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은 성스러운 생명 탄생의 환희를 베풀었고, 자연이 선사한 음식들은 주위와 나눌 수 있는 아량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단순히 야생식 가능 여부를 궁금해한 것을 뛰어넘어 저자의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야생식을 끝내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는 시점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모 와일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사람은

생명이 지속되는 한 견딜 수 있는 힘의 여유분을 발견한다."

-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지금 당장 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  《야생의 식탁》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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