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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의 맛
그림형제 지음 / 펜타클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퇴근의 맛/ 그림형제 소설집/ 펜타클
[퇴근의 맛]은 그림형제(필명) 작가가 들려주는 스무 가지 인생 이야기다.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이야기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일상이 펼쳐진다. 현실성 가득한 일과 끝에 마주한 저녁 한 끼에 주인공의 감정이, 기분이 담겨 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선을 쫓다 보면 절로 저녁 메뉴에 감정 이입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인물이 한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야기에서 화자가 되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이 인상적이다. 동일한 상황이 인물의 시선에 따라 서술되기에 우리는 다 조합해서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일상에서 벌어질 만한 상황들이라 인물마다 달리 보여주는 행동과 감정에 관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선 회사원, 은행원, 교사, 세일즈맨, 변호사, 군인, 경찰, 간호사, 통역사, 수의사, 헤어디자이너, 요리사, 장례지도사, 목사, 배우, 버스기사, 파일럿, 고등학생, 엄마, 작가라는 스무 가지 직업인이 주인공이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걸 제하고도 여러 직업군을 인터뷰하는 것부터 상황 설정, 음식 선정까지 고려하면 작가가 피력한 대로 절대 편하지 않는 작업이다. 더욱이 진짜 그 직업을 가진 독자에게까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실과 상상의 적절한 조합이 필수였으리라.

사회적 이슈와 현실적인 고민을 잘 녹여내어 이야기꾼이자 맛집 내공자의 면모를 찬란하게 뽐냈다.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일상은 반복되고,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개개인의 역할은 제한적이 되어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직장인의 애환, 학생의 학업 스트레스, 엄마의 육아 스트레스 등등 퍽퍽하고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모든 이들에게 '쉼'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아픈 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을 함께해 주는 게 '음식'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감정들을 녹여주는 적절한 음식, [퇴근의 맛]은 음식의 힘을 잘 아는 맛있는 책이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은 좋지만, 교권 침해로 인간의 존엄성이 흔들리는 것은 싫은 초등학교 교사의 선택은 망설임이 없는 짬뽕이었다. 짬뽕은 갈팡질팡하는 교사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극적인 맛으로 앙칼지게 승부해온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짜고 매운 짬뽕 한 그릇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어찌해야 할지 갈등하다)
고인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하고 유족에게 부검을 권한 장례지도사는 결국 해고당했다. 하지만 그는 장례지도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과 직업 만족도를 떠올리며, 부당 해고로 구제신청 접수를 한다. 그의 선택은 돈가스였다.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는 자신처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돈가스 가게에서 돈가스를 주문했다.(옳다고 믿는 일을 하다)
마지막 운행 중에 비상계엄령 선포를 듣게 된 버스 기사는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순댓국밥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일에 놀란 그는 국회의사당으로 갔다.(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여러 맛 중 여운이 남는 맛을 떠올려봤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깊이 있게 다가온 맛들을 음미하며 나의 오늘을 되짚어보게 하는 [퇴근의 맛]이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 맛이었나요?"
퍽퍽하고 고단한 하루였을지, 기쁨이 넘치는 하루였을지, 보통의 하루였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감정이든 삼키고 견뎌냈다면 [퇴근의 맛]에서 건져올려 같이 한 끼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