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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정원의 책/ 황주영 지음/ 한겨레출판
[정원의 책]을 읽고 있는 데 비가 쏟아졌다. 무더위를 뚫고 쏟아붓는 단비였다. 그저 야외에서 활동하기가 불편하고 꺼려졌던 나에게도 고마운 비였다. 땅 위로 스며들기 시작하는 물, 그 자그마했던 흔적이 어느새 사라지고 짙은 흙 내음이 올라온다. 그 안에는 땅속 생명들이 내뱉는, 얕은 안도의 한숨이 섞여있다. 기후 위기의 오늘날, 정원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었다. 문학 작품 속 정원을 걸어 다니며 황주영 작가의 다정한 설명을 들으니 여운이 짙게 남는다.
황주영 작가는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을 4가지 주제로 엮어냈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 문학 속 인물들이 정원에서 찾고자 했고, 표현하고자 했던 무언가를 좇아가는 여정이 펼쳐졌다. 섬세한 안내로 여러 시대 여러 나라 정원을 거닐었다. 다채로운 정원의 모습과 의미에 새삼 놀랐다.

정원은 인간의 돌봄이 전제되는 공간이다.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의도하는 바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치유의, 사랑의, 욕망의, 생태의 정원이 될 수 있었다. 정원은 단순히 문학 작품의 배경에 그치지 않고 주제를 뚜렷하게 해주었다. 정원으로 문학을, 이야기를, 사람을 읽어나가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정원에 관한 문학작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비밀의 정원>이다. 반갑게도 '치유의 정원'에 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소녀와 자기가 곧 죽을 거라고 믿는 아픈 소년", 메리와 콜린이 비밀의 정원을 통해 각자의 문제를 극복하고, 성장한다. 작가는 서로를 치유하며 살리는 희망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문학작품 소개 사이사이에 멋진 그림이 있다. 작품을 고려해 선정된 그림이라 오래 시선이 머문다.
유명한 센트럴파크를 설계하고 조성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영국 여행기 <미국 농부의 영국 도보여행과 이야기>,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도 '치유의 정원'을 그리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시민들의 힘을 모아 조성한 공원인 센트럴파크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우리의 공원'이라 당당히 소개하는 시민의 으쓱하는 자부심도 백분 이해가 된다.

'사랑의 정원'에서는 프란체스코 콜론나의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폴리필로는 꿈에서 폴리아와 진정한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입맞춤 순간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도, 폴리아도 없는 현실로 돌아온 폴리필로, 혼자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꿈을 좇으니까.
'욕망의 정원' 중 도미니크 비방 드농의 <내일은 없다>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보통의 리베르탱 문학과는 다르게 리베르틴이 공간을, 상황을 주도한다. T부인이 즐기는 유희의 무대는 욕망의 정원이었다.
'생태의 정원'에서는 테오도어 슈토름의 <레겐트루데>가 인상적이었다. 농촌 처녀 마렌은 자신이 원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 힘겨운 여행을 떠나 기어이 잠든 비 공주, 레겐트루데를 깨운다. 영웅적인 서사지만, 황주영 작가는 마렌의 캐릭터에 더 주목한다. 순결할지언정 순종적이지는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이를 성취해나가는 진취적인 모습에 감복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이가 모두 여성인 이 작품이 19세기 독일의 남성 작가 작품이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문학 속 정원을 읽어내는 작업으로 우리 인간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아름다운 정원의 묘사를 읽고 치유, 행복, 위안, 그리움, 사랑, 욕망 등 우리의 마음이 투영된 정원을 상상해 본다. [정원의 책]이 우리에게 보여준 정원이 지금 우리 곁 곳곳에 존재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