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행성 1 - 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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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행성, #힐링, #김초엽, #SF, #소설추천, #아름다움, #예술

 

<박물관 행성 - 영원의 숲>

세상의 모든 예술품을 모은 별,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생 이야기들이 벌어지는 매혹적인 시리즈 1편이다.

 

 

 

박물관 행성1. 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한스미디어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 소설은 그리스 신화부터 뇌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연결한 직접 접속 학예사까지 고대와 미래를 망라하고 있다. 2000년에 출간된 이 SF 소설 속 여신의 이름을 지닌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들은 지금의 AI처럼 학예사 삶 속에 자연스럽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긴 내 뇌 속에 여신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면 생경하면서도 아찔하다. 이런 독창적인 설정은 이 소설이 지닌 강점이자 매력이다.

 

 


 

첨단 기술로 미의 세계를 지키고 구현해나간다는 큰 틀 안에서 '아름다움'에 관한 질문이 계속된다. 학예사 다시로 다카히로는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동료들과 함께 풀어나간다. 학예사들의 일상과 예술 작품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는 읽는 내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마음을 뒤흔들었다.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저자 스가 히로에가 선보인 미의 세계를 탐닉하고, 그가 던지는 날카롭고 심오한 질문이 일으키는 파장을 즐겼다. 판타지 공간에서 마음껏 뛰노는 그의 펜 덕분에 다카히로는 힘겨웠지만, 지켜보는 이로서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름다움, 예술, 사랑. 삶을 빛내고 풍요롭고 해주는 이 소중한 의미들을 아프로디테에서의 환상적인 경험으로 되새길 수 있었다.

 

 

학예사 다카히로는 좋아하는 예술 작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일에 치여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간다. 예술 전담 부서들 간의 다툼을 조정해야 하는 그이기에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기보다 대화하고 설득하는 등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접속자, 권한 A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부과되는 책임, 요구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테나의 네네와 칼, 데메테르의 롭 등 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프로디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총 9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 모두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작가의 특별하고 섬세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잘 녹아들어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과 삶, 예술과 과학, 삶과 사랑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아이는 누구?>에서 '인형'에 대한 정보는 무지막지했다. 그 고통을 상쇄시키는 다카히로의 제안은 참으로 인정 넘쳤다. 그리고 고객의 요구를 해결하고자 접근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었다.

 

<포옹>에서는 직접 접속자들의 고뇌를 한층 더 살펴볼 수 있었다. 학예사로서 예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 행위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났다. 아름다움을 오감이 아닌 직감이나 육감으로 받아들이는 환희와 행복을 다시금 느끼고자 아프로디테를 찾은 전 학예사 마삼바로 우리는 환상의 심해어를 낚을 수 있는 방법을 엿보았다.

 

<영원의 숲>, <반짝반짝 빛나는 별>, <러브 송> 등 박물관 행성은 사랑 이야기다. SF와 판타지로 그려낸 순수한 사랑의 힘은 세상 모든 예술품이 모인 별, 아프로디테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가상 공간인데도 예술 작품을 두고 벌이는 부서 간 다툼이나 예술을 관리하기 위한 용도로 첨단 기술의 적용과 발달이 가져온 변화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다시로 다카히로와 매슈 킴벌리 그리고 다시로 미와코 세 명이 직접 접속 학예사로서 보여주는 모습은 선명하게 다르다. 우리 모두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당신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작가가 묻는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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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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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김태일/ 한겨레출판



 


 

읽는 내내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연금'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았던 무관심하고 무지한 내가 불편했고, 연금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정부가 답답했다. 책을 덮으면서 저자 김태일 교수가 남긴 마지막 글이 가슴에 돌처럼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수십 년간 성실히 일하면서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도 웬만큼 노후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이는 미래 세대도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

이는 복지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

이를 못 한다면 정치권과 정부의 직무 유기다."

- 불편한 연금책/ 김태일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인 김태일 저자는 연금 개혁이 화두가 된 요즘 연금에 관한 '사실들'을 널리 공유하고자 <불편한 연금책>을 저술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저자는 전문적인 내용이라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전문서 대신 대중서를 택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연금의 실상을 알리고, 연금 개혁의 공감대를 넓히고자 하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그의 대안에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연금 제도의 실상과 개혁이 미비하고 어려운 실정과 다양한 벤치마킹 해외 사례들을 잘 정리해 줘서 이해하기가 편했다. 연금에 대한 대중서로, 배경지식 습득에 적정한 입문서였다. 전문적인 용어와 이론, 수치, 도표 등을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친절한 책이다. 무리 없이 연금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 그리고 세계 각국의 연금 제도와 우리나라의 연금 제도의 차이점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불편한 연금책>은 크게 3 소주제로 나누어

[연금 제도 바로 알기] -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제안] - [모두를 위한 연금 개혁]

총 10장으로 구성되었다.

 

대부분 공적연금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연금 운영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나 또한 국민연금에 대해 회의적이다. 과연 우리가 노후에 국민연금으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다. 적어도 현행대로 운용된다면 말이다.

 

우리가 연금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지속 가능성과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해 의문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김태일 교수는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이런 불안감을 명백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연금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시장 소득과 가처분 소득 빈곤율 차이가 가장 작다. 이는 공적 이전 소득이 실제 노인 빈곤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김태일 교수는 우리 국민연금이 기형적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1. 낸 것보다 너무 많이 받는 구조라서 2. 가입률이 낮고 가입 기간이 짧아서 수급률이 떨어지고 수급액이 적으며, 소득·성별 격차가 매우 심해서

 

기존에 접했던 뉴스나 기사와는 다른 결이라 사실 충격적이었다. '더 내고 덜 받기'나 '재정 고갈'을 강조하는 내용이 아니라 연금 본연의 역할을 상기시키고 있다.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과 소득 재분배 기능에 관한 정리는 흥미롭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연금이 되기 위해서 '가입 기간' 문제와 낸 것만큼 받기/수익비 1보다 작지 않기/소득 재분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가입 기간을 늘이기 위해

1. 가입 상한 연령 높이기

2. 군 복무 기간 전체 인정

3. 출산 크레딧 확대

4. 18세 자동 가입

5. 실업 크레딧과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처럼 사회보험 방식 연금 체계를 지닌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에게는 재분배를 적용하고, 중간 이상 소득 계층에게는 소득 비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저소득층은 수익비가 1보다 크고 중간 이상 소득 계층의 수익비는 1이 된다고 한다. 효율적인 적용 방식이라 사료된다. 이렇게 연금 제도에 대해 하나하나 알고 보니 연금 개혁은 분명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태일 교수는 이를 위해 단순히 보험료율, 가입 기간 등 변수를 조정하는 모수 개혁이 아닌 구조개혁을 논하고 있다. 뒷받침해 주는 근거를 다양하게 들어 조목조목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서구 복지국가의 연금제도 변천사를 통해 우리나라 연금 제도에 알맞게 적용하자는 실용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단순히 내가 내고 못 받는 게 문제가 아닌 연금의 실효성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에 이어 특수직역연금까지 공적 이전 소득을 둘러싼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과정을 담고 있는 <불편한 연금책>이다.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재정 목표를 정하고 달성할 수 있도록 보험료율을 매년 조금씩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보장세 신설을 통한 일반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과 적극적인 기금 운용으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일 교수의 바람대로 우리의 공적 연금인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그리고 퇴직연금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최소한의 소득 보장'과 '그 이상의 소득 보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금 개혁 특위까지 구성되었지만 임기 내 합의 도출에 실패한 점이나 모수 개혁안을 발표한 점을 보면 정상적인 공적 연금까지의 길이 먼 것 같다.

 

하지만 세대 간 계약으로 미래 세대에게 큰 책임을 넘기는 기성세대가 되지 않도록 진정성 넘치는 자세로 정부와 정치권의 공적연금 운영을 관심 있게 살펴야 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로 가고 있는 오늘날 복지국가로서 국민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해야 하는 당연한 책무를 정치권과 정부가 간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아닐까.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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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거리 수사대 1 : 한양풍문기의 진실 사계절 아동문고 110
고재현 지음, 인디고 그림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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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아동문고 <책방거리 수사대 - 한양풍문기의 진실> 한양 책방거리에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을 접하고 진실을 찾고자 수사를 하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책방거리 수사대 - 한양풍문기의 진실/ 고재현/ 사계절출판


 

 

 

평소 수사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동화였다.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 동분서주로 뛰어다니는 수사대 삼총사 지전 아씨 연이, 지전 하인 동지, 포졸 두태와 한 팀인 양 사건 해결에 함께 하였다. 다른 이들은 모른 체한 '최 여인과 다섯 아이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그들의 따스한 심성에, 험난한 수사 과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굳건한 심지에 감복하며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르고, 옆을 지키게 되었다.

 

조선시대가 배경이라 차별이 깔려있는 사회이지만, 진실을 향한 길에 남자도 여자도, 양반도 하인도 상관없다는 '책방거리 수사대'의 시대를 초월한 당찬 포부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깊은 귀감이 되어줄 것이다. 차별과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실에 한발 한발 다가서는 용기와 의지가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잘 녹여내고 있다. 같은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우연히 만나 결의를 다지는 모습은 괜스레 보는 이에게도 힘이 솟게 만들었다.

 

 


 

 

우찬성 댁 자제 '이윤휘'가 바람 같은 소문을 만들었다면, 책방거리 수사대는 소문에 근거 없이 퍼져나가는 비난의 댓글들을 경계하고 댓글의 내용을 참고하여 진실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게 하기 위해 힘썼다. 세책점에서 빌린 '장화홍련전'에 붙여놓은 '한양풍문기'는 마치 인터넷 세상 같다. '한밤중 과부 여인과 다섯 아이가 사라졌다'라는 글에 이에 대해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글을 남긴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가벼이 비난의 글을, 모욕의 글을 남긴다.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지전의 주인 나리와 연이와 동지가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연이 또한 윤휘의 행동에 반감과 우려를 표했던 것이리라. 연이로 인해 틀을 깨고 나온 윤휘 도령의 행보는 놀라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빛이 났다.

 

글의 힘은 말보다 강하다. 그래서 더욱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이렇기에 연이의 한양풍문기는 끝이 나는가 싶어 내심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또다시 바람이 분다고 하니 책방거리 수사대 삼총사의 활약은 계속 기대해도 좋겠다.

 

 

"말은 쉽게 나오고, 빠르게 옮겨진다.

입에서 입으로 말이 도는 동안에는 사실이 멋대로 바뀌기도 하지만

흥미를 잃으면 곧 사라지기도 한다.

글은 많은 생각 끝에 힘들게 나오고, 퍼지는 속도는 느립니다.

하지만 내용이 변하지 않고,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양풍문기에 달린 댓글에서 단서를 찾아 진실에 가까워져가는 수사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납치가 되거나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등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지는 긴장 가득한 수사였다. 하지만 수사대의 진정 어린 모습에 차츰 마음을 여는 관계자들이 늘어나 비로소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 광나루에서 시신을 보았다. 모두 여섯이었다.

- 어른 횡포에 아이들까지 죽었으니 가엾고도 가엾다.

- 그자의 횡포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 참나무 토막이 문제다.

 

 

 

 

<책방거리 수사대 - 한양풍문기의 진실>은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뿐 아니라 수사대가 여섯 죽음을 무시하지 않고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고자 마음먹은 이유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이 힘을 얻는 다정한 동화라 더 빠져들어 읽었다.

매력 넘치는 등장인물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 조선시대의 차별과 신분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공감하며 몰입하게 만드는 창작동화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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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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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끝내 놓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당신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습니까?"

 

 


레퓨테이션 : 명예1 / 새라 본 장편소설/ 미디어창비


 

 


세라 본의 신작 <레퓨테이션 : 명예>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롤로그 시작부터 끔찍한 단어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세 달이라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속도감을 잃지 않고 엠마 웹스터와 그녀의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시체는 계단 가장 아래에 있었다."

- 첫 문장 -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주인공 엠마 웹스터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나름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감정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읽어나갔다.

 

 




 

엠마는 포츠머스 지역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이자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으로서 리벤지 포르노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과의 갈등과 협박은 도가 넘어가고, 온라인상에서도 경악할 수준의 악플이 달린다.

 


 



 

 

 

대의를 품은 하원의원인 공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픈 사적인 엄마로서의 역할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플로라에게 '엄마'로서 안정감과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은 크나 시간이 여의치 않는다. 속 깊은 플로라는 항상 일로 바쁜 엄마에게 고민을, 상처를 털어놓지 못하고 곪아가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더 안타깝고 더 가슴 저렸다.

 

 




 


 

현대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는 이 소설에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데 앞장선다. 너무도 빠르게 너무도 쉽게 퍼져나가는 소식들, 진실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는다. 그저 감정을 토해내는 쓰레기장 같은 공간이었다. 오프라인보다 가볍게 여기기 쉬운 온라인상의 활동이지만,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행동에 반감을 표했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는 엠마와 플로라는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 속 존재처럼 다가온다.

정치인으로서 품은 대의에 성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에 취한 순간 찾아온 시련은 엠마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 플로라를 위해 그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 소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낯을 날카롭게 담아내고 있다. 지역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갈등 그리고 폭력을 하원의원 엠마 중심으로 면밀하게 그려내 우리에게 살피도록 하고 있다. 협박과 미행, 감시에 시달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평정심이 깨져버린 엠마를 극적으로 그려내어 '공인'의 삶과 공인을 향한 대중의 기대와 시선과 태도에 대한 고찰을 당부한다.

 



 

"그때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마지막 문장 -

 



 

두 권으로 제작된 이야기라 마무리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오는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는 우리도 엠마에게 벌어진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그녀가 스토커에 쫓겨 숨을 헐떡거릴 때, 플로라가 자신에게 진심을 털어놓지 않아 서운할 때, 기자 마이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잘못된 선택을 한 플로라를 마주했을 때, 그 순간순간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의 심리와 감정, 생각은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하고, 빠른 템포의 문장은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간다.

 

정치인으로도, 개인으로도 최악의 상황에 처한 엠마 웹스터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엠마 웹스터가 한 일이 과연 무엇일지 남겨진 이야기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언론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학교 폭력까지 현실적인 이슈를 밀도 있게 담아낸 <레퓨테이트 : 명예>가 영상으로 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매력적인 작품을 다양한 경로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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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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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 저자인 박영란 작가의 신작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을 만나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박영란 장편소설/ 창비출판



 

 

박영란 작가의 글은 다정하고 인간미 넘친다. 그의 세계 속 인물들은 세상의 기준이나 잣대로 보면 결코 행복하지도, 풍요롭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을 살피고 곁을 내주어 품을 줄 아는, 인정 넘치는 따뜻한 이들이다. 그래서 퍽퍽한 현실에도 춥지 않은 온기를 담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소설은 갑자기 귀향을 택한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고 남매와 도시에 남기 위해 어머니가 새로 머무를 공간으로 주택 2층을 선택하면서 시작한다.

 

 

"속았다." 이 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사는 꿈을 가졌던 아버지와 엄마는 성실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회사 차량을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고, 아버지는 퇴직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을 거라며 혼자 장원으로 내려갔다. 고3 딸, 초6 아들, 아내를 두고.

아직 꿈을 버리지 않았던 엄마는 직장을 구하고 남매를 데리고 이 도시에 남는다. 멀지 않은 꿈이라 여겼지만 정리된 현실은 냉혹했다. 그래서 사방이 막힌 주택 2층이 최선이었다. 이 선택으로 나의 가족은 의뭉스러운 가족을 만나게 된다.

 

 


주택 2층만 사용하는 가족들은 1층에 기거하는 '종려'와 '자작' 가족을 느끼게 되고, 모른 척해 준다. 홀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동생이 종려와 자작과 장희 그리고 할머니와 많은 추억을 쌓게 된다. 비록 나는 동생처럼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들의 소리 덕분에 홀로 집에 있다는 오싹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쁘다.

 

 


 

 


각자의 사정으로 주택에 모인 두 가정.

타인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지극히 위하고 챙기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사랑과 신뢰는 강하다.

뜻을 모으지 못한 부모에 의해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처한 남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한다. 그러던 중 종려와 자작 가족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변하고 깨닫게 된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름다운 인생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어떤 게 아름다운 건데요?"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렸지.

암, 거기에 달렸지."

 

 

 


지치고 힘겨운 시기,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늘에 묻혀있는 집이 두 가정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노란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통로를 걸어 베일에 싸인 비밀을 품은 집에서 나가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무섭고 오싹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품어주는 집, 그 시공간에 새겨진 부드러운 속삭임에 그들은 호쾌하게 내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는 준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렌즈를 살짝 빌리고 싶다. 주변을 살피고 마음을 쓰고 속을 트고 살아가는 아이라니. 속으로 우는 울음까지 공명할 수 있는 준이가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다시 만날 수 없어도 평생 기억하고 사랑할 마음과 기억을 나눈 날들이 분명 그 집에 새겨졌을 거다.

 


똑똑똑!

오늘도 종소리를 듣고 싶은 혹은 필요한 누군가 앞에 그 집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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