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와 엄마고양이 이지북 어린이
이철환 지음 / 이지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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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와 엄마고양이/ 이철환 글 ·그림/ 이지북




소설과 동화를 쓰는 작가이자 화가 이철환의 촘촘한 손끝에서 

가슴 찡한 그림책 《등대와 엄마고양이》가 탄생하였다. 

점묘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바다 위 배를 지켜주는 환한 등대처럼 

험한 세상에서 아기고양이들을 지켜주는 

엄마고양이의 절절한 사랑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촘촘한 점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콕 박히면서 

어느새 이야기와 그림은 우리네 마음 가득 차오른다. 



이철환 저자가 

초등학교 시절 바닷가에서 만난 고양이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으니 더더욱 마음이 아렸다. 

핑크색의 고양이 세 마리가 함께 하는 모습이 

계속 어른거리는 《등대와 엄마고양이》다. 











길지 않은 글과 보고 싶으면 빠져드는 부드러운 질감의 그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다. 

주제 또한 따뜻하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가슴 뭉클한 모성이라 음미하며 공명할 수 있다. 







바다와 등대 그리고 배, 바닷가 마을과 고양이들 그리고 사람. 

친절하고 베푸는 마음이 등불처럼 길이 되어주는 듯하지만, 

강한 파도와 어둠에 고깃배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엄마고양이도 다른 고양이와 인간의 위협에서 

홀로 아기고양이들을 지켜내고자 애쓴다. 

그 마음이 세상의 빛에 따라 변하는 고양이들의 몸빛처럼

다채로운 빛깔로 우리를 물들인다. 



편안한 색감과 질감의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속 물결이 잔잔해지고 평온해진다. 

가슴 저릿한 사연과 충만한 그림으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그림책 《등대와 엄마고양이》를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을 많은 이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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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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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전수경 지음/ 창비



"많은 경우 우린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야 하죠."




「우주로 가는 계단」에서 평행 우주 이론을 바탕으로 상실과 그리움, 치유와 위로를 담담히 그려내었던 전수경 작가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가 출간되었다. 




전수경 작가는 SF 장르로 상처와 고통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담백한 어조로 다정하게  내미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만다. 이번에도 딸 희진과 엄마 미영이 각자 짊어진 상처를, 희진의 친구 윤아를 침잠시키는 우울증을 다중 우주와 연결시킨 흥미로운 접근으로 마주 보게 한다. SF 장르로 과학적 호기심을 배경으로 하면서 인간 내면의 상처와 골을 살피는 따뜻한 전개는 우리네 감각을 깨우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움츠렸던 몸을 펴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너는 오직 여기에만 있어. 

이 세계에만 존재해.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이유야. 

이 세계는 나에게 가혹하고 매정했지만, 

그래서 너무 무섭지만 떠날 수가 없어. 

네가 여기 있으니까. 

희진아, 너는 엄마에게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세계야."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고등학교 1학년 '제갈희진'에 공감하며 『채널명은 비밀입니다』를 읽어 내려갔다. 희진의 엄마인 미혼모 '제갈미영'에 관한 서사는 세세하지 않았고, 현재의 모습이 부각되었기에 같은 엄마이기에 그녀를 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희진의 속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안전한 공간인 텔레비전 앞에 자신을 가둬버린 미영을 말이다. "그래도…… 네가 똑똑해서 다행이야." 희진이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슬펐다. 희진을 바라보는 엄마 미영이 안타까웠다. 서로에게 분명 소중한 존재이건만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모녀가 답답하고 가슴 아렸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안다고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우매한 일인가. 희진이는 엄마를 잘 안다고, 윤아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희진이가 본 그들의 모습은 일부였을 뿐이고, 희진이의 관점으로 본 그들이었을 뿐이다. '절대'라는 말을 싫어하는 윤아처럼 절대로 확신할 수 있는 것 없으니까. 

우리 세계에서 희진이가 평소와 다른 윤아의 문자 메시지를 그냥 넘기지 않아서, 다른 세계에서 누군가 이동 중 사이 틈에 갇힌 엄마를 구조해서 윤아를, 엄마를 구할 수 있었다. 스스로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했던 희진은 비로소 깨닫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에 빚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엄마가 자신을 떠나버릴까 봐 걱정한 희진이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는 반면, 현 세계를 떠나고 싶을 만큼 두렵고 무섭지만 자신이 선택한 세계인 희진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옹골찬 미영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자신이 잘 살피지 못해 친구 윤아를 떠나보냈다는 자책감에 다른 세계의 윤아를 만나기 위해 이동까지 감행한 소민의 용기에 감동받았다. 그렇게 절실하고 진실한 마음들이 쌓여 타인을 구원하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미영의 말처럼 다중 우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족, 친구, 학교, 학원, SNS 등 다양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세계일지라도 세계가 확장되면 중요한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도 타인에게 세계를 침범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함께 하며 소중한 세계를 공유할 뿐이니까. 





『채널명은 비밀입니다』 덕분에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세계를 좀 더 넓혀가는 내일을 그릴 수 있었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은 지금 흔들리고 불안한 이들에게 수많은 세계를 품고 있는 '나'라는 우주를 발견할 수 있도록 손 내미는 전수경표 소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다른 세계가 우리에게 값진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나 제도, 관습 등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거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양하고 유연한 변화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소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를 이 가을에 다들 만나봤으면 좋겠다. 




"엄마는 두 세계를 산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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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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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산문/ 한겨레출판





웃다가, 입맛 다시다가, 어느새 술상을 차리게 만드는 책, 바로 권여선 작가의 <술꾼들의 모국어>다. 2018년 출간되었던 <오늘 뭐 먹지?> 작품을 2024년 개정하여 출간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권여선 작가가 이토록 '술과 안주'에 심취한 분이었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읽기 시작했다. 역시 먹는 것을 좋아하는 1인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어서 "해 먹어봐야겠다. 맛있겠는걸. 저런 수고 끝에 맛있는 음식이 아니 안주가 탄생하는 거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식거리다가 박장대소를 하게 되는,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 예사롭지 않다. 




목젖이 바르르 떨려온다.(67쪽)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69쪽)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118쪽)







간지에 권여선 작가가 손글씨로 가득 남긴 편지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본인이 엄선한 안주 메뉴판을 건네고, 안주를 성심껏 고르고 한 잔 같이 기울이기를 청한다. 마음이 혹해 얼른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절에 걸맞은 안주들을 면밀히 살펴본다. 



익숙한 음식 아니 안주들도 그의 표현으로 만나니 특별식처럼 느껴진다. 안주와 얽힌 이야기 덕분에 더 풍성해진다. 김밥, 만두, 순대 같은 친근한 음식들이 추억 속 인물들을 소환하여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삼시 세끼 다른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글을 쓰는 작가를 상상하게도 한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저자가 추천해 주는 여름 안주들은 특색 있다. 매운맛을 좋아하여 청양고추만 엄청 썰어 넣은 고추전을 부쳐 먹는지라 매운 음식들 레시피들이 더 눈에 띄었다. '깜장'과 '고추장물'이다.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라는 감각적인 표현에 지나간 여름을 다시 뒷걸음질 치게 만들까? 싶었다. 








'목에서 손이 나온다'라는 표현이 재밌었다. 음식에 진심인 마음과 그만큼 맛에 민감하여 정성을 쏟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술과 안주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하는 그 공간과 시간에 이야기가 쌓여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 독자들에게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의 재료가 되어주었다. 


음식에 정성을 다하시는 저자의 어머니 덕분에 새로운 음식들을 접했다. 사투리인지 구수한 어감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괜스레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까죽', '까막고기' 음식에 담긴 저자의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친정 엄마의 손맛 담긴 음식들을, 추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음식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배는 허기지고 혀는 친구 식도와 인사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머리는 새로 입력된 음식들과 잊혔던 과거의 음식들을 재배치하느라 분주하다. 

"술을 좀 줄이자. 죽을 때까지 먹게."가 '인생의 한 마디'라 밝힌 진정한 술꾼 권여선 작가의 사계절 안주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하고 만족스러웠다. 



권여선 작가님, 술 한잔하실래요?

안주는 냄비국수 어떠세요? 이제 가을이잖아요.



첫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 혀를 소중히 여기소서.

언제나 한결같은 '맛'을 행복으로 아는, 그 맛을 지키는데 목숨을 거는 권여선 작가의 다음 주류문학 작품을 기다린다. 일단 아쉬움은 단편소설 《자전거, 캔맥주 그리고 곰》으로 풀어본다. 캬~ 목은 시원한 맥주를 넘기고, 손가락은 책장을 넘긴다. 



한겨레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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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생각학교 클클문고
고정욱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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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소설

마지막 반전에 생각이 깊어지는 소설

바로 [가방 들어주는 아이]부터 청소년·어린이 문학에서 큰 획을 그어온 고정욱 작가님의 신작 [점퍼]이다. 




점퍼/ 고정욱 지음/ 생각정원




2024년 폭력을 휘두르는 알코올중독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중학생 박창식. 돈도 꿈도 의욕도 없는 창식이는 아버지와 마찰 후 1928년 일제강점기로 타임 슬립하게 된다. 

"창식아…"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난데없이 빡빡 머리 남학생이 학교 늦는다고 채근을 한다. 평안북도 정주에 떨어진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인 그 시대의 박창식으로 오산중학교 학생으로 생활하게 된다.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여 무기력하게 살아오던 창식이는 나라 잃은 설움의 시대에서 김소월, 백석, 이중섭과 함께하면서 시나브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고정욱 작가는 힘 있고 흡입력 강한 스토리텔링으로 억압당해 서러운 하지만 독립을 향한 강한 불씨를 품은 1928년 평안북도 정주로 독자들을 소환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처럼 예술로 한민족의 마음을 응집하여 강인하고 뜨거운 열망을 생생하게 분출하고 있다. 두렵더라도 옳고 바른길을 가고자 하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눈에 띄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목표를 향해 유연하게 다부지게 그들의 방식대로 헤쳐나가는 학생들의 결의는 읽는 이조차 그 안에 뛰어들어 함께 걸어갈 만큼 단단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겠지만 

시기와 시간, 장소에 따라 해결법이 다를 거야. 

그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야. "






창식이는 가난한 현실과 회사 비리를 고발하였다가 도리어 배척당해 술에 의지하게 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그 어두컴컴한 시간에도 문학과 그림에 매진하는 친구들 덕분에 몸과 정신이 깨어나고 성장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고문이든 미움이든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언젠가는 끝날 거란 희망도 없어서 더 힘든 게 아닐까. 

그 두려움에 우리 아버지들이 무너진 거라고 생각해."





<진달래꽃>, <산유화> 한민족의 정서와 한을 담은 민족저항 시인 김소월, <사슴> 한국 모더니즘과 향수를 그린 시인 백석, <황소> 향토적이고 자전적인 요소로 역동적이고 동화 같은 세계를 그린 화가 이중섭. 

한국사의 굵직한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예술이 지닌 힘과 가치를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담아내어 그림 그리는 취미를 가졌음에도 예술을 무시하던 창식이의 눈을 뜨게 만든다. 





"사람들이 모이면 정보를 나누고, 

거기에다가 누군가가 저항하자는 정신을 집어넣으면 

바로 그런 정신이 쌓여서 힘을 가지게 되는 거야. 

뿔뿔이 흩어져서 문화 활동도 없고, 예술 활동도 없다고 생각해 봐. 

영원히 우리는 일본의 종노릇을 하는 것 아니겠니?"


 


그저 입으로, 머리로만 투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치던 중학생 창식이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염원과 투쟁을 함께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더욱이 자신이 과거로 오게 되면서 현재로 오게 된 과거의 창식이가 불러온 변화는 큰 깨달음을 주었다. 비참한 현실을 그저 비관한 채 꿈꾸지 않았던 자신과는 달리 바꾸고자 행동한 창식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일어설 수 있게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소는 순하지만 힘을 쓸 때는 무서운 능력을 발휘해.

느리게 걷는 거 같지만 달릴 때는 사람이 따라갈 수가 없지.

나는 그게 멋있어.

우리 민족이 지금은 억눌려 있고 고삐에 매여

농부에게 끌려가는 것 같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 나는 생각해.

언젠가 화가 나서 돌진하면 주인을 떠받아저릴 거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생생한 현장을 그려낸 작품 [점퍼]

창식이가 왜 1928년 평안북도 정주로 타임 슬립해야만 했을까? 김소월, 백석, 이중섭, 박창식, 이말순같이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밀고하는 마영일 같은 친일파도 있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일제의 총칼에 쓰러진 민초들이 잠든 대지 위에 마영일의 후손들이 공직자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맺는다. 










물질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자신과 오늘을 되돌아보는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창식이가 떠올리는 우투리 설화가 기억에 남는다. 재밌으면서도 몸과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점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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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클
스티븐 롤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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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클/ 스티븐 롤리 소설/ 이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참았던 긴 숨을 내뱉었다. 상실의 사막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바스락거리는 몸을 물에 담그는, 용감한 생존자 겅클 패트릭을 보면서 울컥했다. 장장 550여 페이지 내내 끊임없이 매력을 뽐내던, 상처 입은 영혼이 그저 존재하는 데 멈추지 않고, 진정으로 살아가는 오늘에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



신랄하면서도 유쾌하고, 슬프면서도 즐거운 겅클과 조카아이들의 상실 극복기는 긴 여운을 남겼다. 극중 인물의 말처럼 아이들을 작은 어른처럼 대하는 패트릭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카아이들 메이지와 그랜트가 패트릭을 거리낌 없이 겅클, 거프로 부르거나 에머리를 삼촌의 남자친구로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바이러스로 전멸한 세대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축하연이에요. … 차별을 당했지만 이제 정치적 힘을 지닌 집단이 되었다고요." 에머리가 패트릭에게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에서 그들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녹록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으며, 패트릭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인 JED, 에머리는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한 듯 보였다. 패트릭이 지나온 시간이 '겅클 패트릭'이라는 특별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의 성 정체성, 세라와의 우정, 조와의 사랑, 배우 인생 그리고 조와의 이별 등 그 모든 것들이 그를 빚어냈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아름답게. 







조와의 이별 후 은둔 생활을 하는 패트릭에게 세라와 그레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기꺼이 맡겼다. 아이들이 마주한 상실과 그가 겪었던 또 겪은 상실이 서로를 유대하고 공감하고 치유할 에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그만큼 패트릭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아꼈다. 사랑하는 조를 황망히 잃고 TV 스타로서의 영광과 인기를 묻고 슬픔을 고요로 포장하여 뜨거운 사막에서 은둔한 채 살아가는 가여운 겅클 패트릭을 생생한 공간 속으로 소환하고자 하였다. 



자신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 막중한 부담을 느낀 패트릭과 엄마 세라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 메이지와 그랜트는 '겅클 규칙'을 만들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서툴지만 그만의 어조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패트릭과 갑자기 부모 모두 옆에서 사라진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아홉 살 메이지와 일곱 살 그랜트 남매는 90일의 동거를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중독 갱생 치료로 한꺼번에 빈 부모 자리를 유쾌하고 독특한 겅클 패트릭이 차지한 것이다. 






패트릭은 혼성어를 즐겨 사용하고 평범을 거부한다. 아마 조의 죽음 이후 그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가족을 비롯한 옛날의 영광과 교류하지 않고 숨어 있던 그는 조카들과 유대감을 쌓아가며 관계로 충만한 행복감을 만끽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찍은 유튜브 영상에 반응하는 대중들을 인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도모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현재의 일상과 관련 있는 과거의 추억이 교차되면서 패트릭의 내면과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 조를 잃고 또다시 십 대 시절 전부였던 자신의 사람 세라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패트릭. 그의 인생에서 소중한 두 사람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가 감내했을 아픔에 오열하고 말았다. 글 속에 갇힌 아픔이 절절하도록 느껴졌다. 그런 그에게 메이지와 그랜트는 선물이었다. 그의 사람이었다 그레그와 아이들의 전부가 된 세라가 남긴 선물. 





너희 엄마가 결코 너희를 떠날 수 없듯이

너희도 엄마를 떠날 수 없어.




캐릭터들의 넘치는 매력과, 진정 어린 관계에서 배어 나오는 친밀감과 아늑함과,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일상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여나가는 성숙한 자세가 어우러져 만찬 같은 책 읽기였다. 패트릭처럼 오스카 와일드에 푹 빠져버렸다. 
겅클 패트릭, 이제 괜찮죠? 
이렇게 또 하나의 징표가 생겼다. 영원히 사라질 어린 시절의 징표. 


네가 앞으로 인생이 수월해질 거라고 했잖아.

그럴 거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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