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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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장강명 외 13인/ 한겨레출판




14인의 문인들이 뭉쳤다. 오늘의 교육 현실을 소설로 써 내려가기 위해. 이제껏 읽은 앤솔로지 중 가장 많은 작품과 작가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우리네 교육 현실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바로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이다.


유독 이 책이 스며들었다. 아마 예비 고3 학부모라는 위치 때문인 것 같다. '수능날은 학교 쉬는 날'이라며 마냥 좋아했던 작년과는 다르게 울적해하는 큰아이였다. "이제 너희 고3이야."라는 말을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하셨단다. 장도식 때 선배들을 배웅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고. "그랬구나."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 수많은 '나'와 '너'가 있었다. 

양육자로서의 '나'와 학부모로서의 '나'와

아들딸로서의 '너'와 학생으로서의 '너' 그리고 너로서의 '너'가 있었다. '그래, 그래…….' 안도하고, '다 그렇지, 뭐.' 변명해 보기도 하고, '미안해, 사랑해.' 사과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읽었다. 



올해 '수능'이 뜨거운 감자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수능을 몇 달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능을 치렀다, 우리 아이들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지만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인 우리 아이들을 위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책 속에는 그런 사회와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내년의 내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작품들은 대부분 '성공'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교육 현실의 치열한 경쟁과 그로 인해 망가져가는 아이들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살짝 결이 다른 작품들도 있어서 눈에 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표제작인 장강명 작가님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에서 우리 아이들에 향한 믿음과 희망을 읽었다. 소년은 '기만'이라 표현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한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결승점을 한곳으로 정한 사회라 가능한 해프닝이겠지만, 씁쓸하고 웃픈 이야기였다. 

그리고 개성 넘치는 문체로 학생 인권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낸 김현 작가님의 [김남숙]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지나간 일


정아은 작가님의 [그날 아침 나는 왜 만 원짜리들 앞에 서 있었는가]의 '나'와 서윤빈 작가님의 [소나기]의 '윤아'는 애처롭고 안쓰러운 캐릭터들이다.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서 자기를 소모해가면서 오로지 '결과'에 집착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끝이 있을는지 답답하고 화가 났다. 



구슬에 비치는


박서련 작가님의 [다른 아이]와 지영 작가님의 [민수의 손을 잡아요] 담고 있는 메시지에 감탄한 작품이다. 짧은 분량의 글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러면 아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이가 되나요?" 

"…… 다시 하면 되죠."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 

지금 행복하고 싶으면 지금 행복해지는 일을 해.

- '김남숙' 중





이 말의 무게가 내 안에서 가벼워져 떠오르고 떠올라 입술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그런 날을 기다려보련다. 


* 오늘날 교육 현실을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킬러 문항 킬러 킬러]를 추천합니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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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초록빛 - 아끼고 고치고 키우고 나누는, 환경작가 박경화의 에코한 하루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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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고치고 키우고 나누는,  환경작가 박경화의 에코한 하루"



이번 생은 초록빛/ 박경화/ 한겨레출판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시리즈의 박경화 작가님의 신작 [이번 생은 초록빛]을 읽었다.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반복해서 받는 질문인 

"작가님은 일상에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요?"에 대한 답인 생활 에세이다. 


환경활동가에서 환경작가로 서서히 정체성이 이동하는 시간 속 박경화 작가님의 에코한 하루를 통해 환경 실천법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행동하고 고민하면서 환경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었다. 박경화 선생님의 바람처럼 '환경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오래 쓰는 즐거움'편에서 쓸모를 다할 때까지 제 몫을 하는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녹슨 유리병 뚜껑을 버리고 알맞은 뚜껑을 구입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손잡이가 부러진 고향 집 어머니의 칼을 대장간에서 새 칼 가격 2배의 가격을 주고 수리한 일화에서부터 옷, 볼펜 등 일상의 물품들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쓸 만한 것을 왜 버릴까? 정말 소비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시대이다. 옷, 잡화 등 패션부터 가전제품, 전자제품까지 유행에 민감하다.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들을 주기적으로 생산하고 노련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명인들을 인플루언서, 앰버서더로 내세워 소비를 유도하기도 한다.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환경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하는 수고를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약간의 불편이라도 없애기 위해 
전기 ·전자제품을 사는 것을 선택한다. 




공감 가는 생각들이 많았다. 물질의 풍요로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 편하게 살고자 한다. 쓸모를 다할 때까지 제 몫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떠올려 봐야겠다. 



'나누는 재미'편에서는 '헌 옷', '잘 돌려주는 기술', '천 마스크'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옷장을 정리하면서 의류 수거함에 제법 많은 양의 옷을 넣은 터라 '헌 옷의 행방'에 충격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생태계를 망치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옷 기증 창구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포장지, 세탁소 옷걸이, 종이봉투 등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을 가게에 잘 돌려준 일화는 역시 박경화 작가님 답구나~ 싶었다. 사실 포장재가 많은 시대라 예쁘고 상태가 좋은 게 너무 많아 버리기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초록초록, 식물과 더불어'편에서 텃밭과 유기 식물에 관한 일화는 부지런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식물을 키우고 돌보면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그의 하루가 멋있었다. 특히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냉장고를 열어라' 이야기가 재밌었다. 세상에 과일을 먹은 후 씨앗을 심다니~ 그리고 진짜로 싹이 났다니 놀랄 일이다. 우리 집 화분에도 이번 여름에 아들이 장난삼아 수박씨를 심었는데 나려나~ 



'아끼는 기쁨'편에서는 '핸드폰'에 관한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핸드폰 없는 일상을 생각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족쇄이기도 하다. 핸드폰과 레스토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걸 선사한다. 세계의 여러 식당에서는 핸드폰을 맡기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할인을 해주거나, 사용하면 경고를 준다고 한다. 소통을 위한 도구가 불통을 부르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수리권'은 소비자로서 중요한 권리이므로 좋은 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먼 그날 대신 스스로 고쳐버려는 사람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뚜벅뚜벅 나의 삶'편에서는 환경작가와 환경운동가 박경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때론 로그아웃이 필요해' 이야기처럼 너무 빠르고 너무 가까운 SNS 시대가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잠시 세상으로부터 로그아웃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백분 공감한다. 



[이번 생은 초록빛],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초록초록 생기가 돌 수 있으리라. 




우리에게 닥친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상상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서 꿈틀꿈틀 "저도 해볼게요." 무모한 용기가 솟구친다. 박경화 작가님의 글이 재밌어서,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해서, 환경문제가 심각해서… 무슨 이유든 일상 속에서 환경을 아끼고 지키는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행동하는 '우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 후손도 초록초록 세상에서 마음껏 숨 쉬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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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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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바람의아이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년이면 사람도 태어나 성년이 되는 길다면 긴 세월이다. 그 시간 내내 사랑받는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제 열여섯! 

너무 짧은 시간을 살다간 소년 황재준의 죽음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절친 진유미가 읽기 시작한다, 그의 파란 일기장을. 마치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첫 장에 쓴 문장에 마음이 무너지고 온몸이 떨린다. 






솔직히 이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리고 쓰라렸는지 모른다. 혹시나? 싶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웠다. 쉽사리 일기장을 펼쳐 읽지 못하는 유미가 이해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 죽음에 자신은 미처 몰랐던 비밀이 있을까 봐 두려웠으리라. 재준이 날아올라 추락해 부서졌던 그 시간에 자기가 보냈던 문자처럼 살피지 못한 아픔을 마주할까 봐 무서웠으리라.




밤이 깊어도 죽음은 오지 않네

흐르는 강물에 청춘을 내던져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아침이 와도 죽음은 가지 않네

눈 쌓인 산 위에서 청춘을 포획하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할말은 하는 유미와 수줍음 많은 재준이가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에서부터 불의의 사고로 사라진 재준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까지 이경혜 작가는 한결같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공통분모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두 아이를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 가깝게 배치하여 묶어주었다. 같은 반이자 서로의 집이 가까워 같은 길로 등하교를 하면서 애타는 짝사랑을 하는 아이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꿈을 응원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과 어른의 시선보다 본인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갑자기 찾아온 재준의 죽음은 유미와 주변을 흔들어놓았다. 죽음을 걱정할 나이가 아니기에 유미도, 재준도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을 것이다. 재준의 일기장에는 평소 즐겨한 '죽은 영혼의 놀이'에 관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엄격한 아버지와 아프고 연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시들어가는 그 아이의 영혼이 안타까웠다. 죽음을 놀이화하면서 현실의 소중함을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듯 해서 가슴이 저리고 시렸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눈에 밟히는 이야기였다. 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약하고 잘 다쳐서 도리어 눈치를 살피게 하거나, 자유롭게 풀어주어 결정권을 주지만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안겨주거나, 무엇이든 간섭하고 아이들을 차별하고 편견이 심하다. 하지만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이 아니고,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무심한 듯 싶으면서도 마음으로 아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어른들도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을 한결같은 눈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그들이 있어 아이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키우며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들어간 제목의 소설책 표지가 아련하고 싱그럽다. 바람결을 타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이 도드라지는 질감에 손끝이 머문다. 파란 일기장을 든 유미와 디지털카메라를 든 재준이가 떨어져 있어 눈으로 그 거리를 가늠한다. 부디 갑작스러운 죽음 끝에 찾아온 허망함의 구멍이 차차 메워지기를 바라며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의 죽음은 서글픈 아픔이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오늘을 충만하게 찬란하게 느끼며 살기를 말해준다. 사랑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변하고자 한걸음 나아간 열정적인 소년 재준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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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걸작선 을유세계문학전집 13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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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 

에드가 앨런 포와 더불어 현대 공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브크래프트의 대표 걸작 모음집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H.P. 러브크래프트/ 을유문화사




옮긴이 이동신 교수는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움직이는 힘에 관한 다섯 작품'으로 칭하고 있다. '러브크래프티안'라 불리는 추종자를 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모음집으로 엮을만한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들어는 봤지만,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는 입문자로서 다섯 편 모두 독특하고 기이한 세계관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작품을 즐기고 이해하려면 러브크래프트에 관한 배경지식을 갖춘 다음에 읽기 시작하면 좋을 듯싶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성장 배경을 알면 그가 그려낸, 초자연적인 공포를 품은 작품 세계를 더 밀도 있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걸작선에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외부자(1921년작)

벽 속의 쥐들(19235년작)

크툴루의 부름(1926년작)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1930년작)

우주로부터의 색(1927년작)




러브크래프트 하면 '크툴루 신화'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크툴루의 부름>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호러/위어드 픽션의 대가답게 '크툴루'라는 고대 신을 등장시켜 깊은 바닷물 속에 가라앉은 석조 도시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거대한 힘을 지닌 신적인 존재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 그리고 광기를 그만의 문체로 풀어나가고 있다. 


'기이한 이야기' 시리즈나 '에일리언' 등의 호러/위어드 픽션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항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거대한 힘 앞에서 특별한 능력이 없는 범인들의 정신과 육신은 온전하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화자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조사나 인터뷰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공포보다 암흑 속에서 조여오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이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 소름이 돋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기조차 무섭게 만드는 감각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벽 속의 쥐들>과 <우주로부터의 색>이 더 찌릿하고 오싹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벽 속의 쥐들>은 개인적으로 '쥐'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운 동물이라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던 것 같다. 러브크래프트가 선사하는, 몇 세기가 지나도 피를 타고 흐르는 광기(?)를 다룬 서늘한 공포가 입맛을 씁쓸하게 하였다. 활자를 읽는 데도 소리로 전환되어 소름이 돋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우주로부터의 색>은 활자를 시각적인 공포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아미의 시선을 쫓다 보니 어느새 그를 무너뜨린 공포에 압도되었다. 상상력 부족하지만, 친절하고 선량한 그가 이웃 네이엄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감당해나갔던 그 짧은 시간으로 그의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운석 하나로 우주에 대한 공포를 퍼트린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광활하고 무한한 공간에 무엇이든 존재할 수 있으니까.



서브 컬처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러브크래프트를 이렇게 만나보았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를 선사한  그의 독특한 세계관에 이제 입문했다. 아직도 조여든 채로 펴지지 않는 심장이 열심히 뛰고 있다. 이 아찔한 공포가 옅어지는 날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다시 펼쳐볼 것이다. 공포는 이런 것이다. 공포의 맛을 제대로 선사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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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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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장은진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부끄러움' 밑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공감 어린 서사로 풀어내고 있는 장은진 작가의 [부끄러움의 시대]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고요한 데, 일어나는 사건들은 해일처럼 주변을 다 휩쓸어버리는, 모순적인 작품이다. 세상을 멈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한해네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버티는 삶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인 폭력과 멸시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진실한 삶의 자세가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부끄러움 때문에 '유령'으로 살아가고 싶은 아버지 '강정식' 씨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어머니 '문희숙' 씨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결혼 3년 차에 이혼하고 돌아온 딸 '강노라' 씨와 우산 공예가로 이솔우산 주인인 아들 '강한해' 씨. 

이 가족이 견뎌낸 '부끄러움의 시대'는 우리 사회가 되풀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시간들이라 더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한해네 가족처럼, 이봐요 씨처럼 견뎌내고 버텨내면서 힘을 키워 부끄러워야 함이 마땅한, 사과해야 함이 마땅한, 책임져야 함이 마땅한 이를 무찌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많아지리라. 


희망을 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차가워진 바람으로 답하고, 겨울을 부르는 가을의 손짓에 언제나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실 후 내 안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바깥의 시간은 흐르기에, 조금만 눈을 들어 주변의 시간을, 계절을 교감할 수 있다면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리쬐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수제 우산'과 '호텔 청소' 

친근한 소재가 아니라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일터에서 '유령'으로 존재해야 하는 '청소부'의 현실을 한 번 더 비틀어 자기 스스로 '유령'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삶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골격이 되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유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호텔 청소부가 되어 오히려 귀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대를 이어 엮어지면서 또다시 삶은 계속되었다. 

무언가를 귀히 여기고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고 아름다움을 찾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나서 좋았다. 호텔 청소부로서의, 수제 우산 공예가로서의 자긍심이 넘쳐흘러서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세가 삶 전반에 녹아 스며들어있었다. 부모님, 스승님 세대를 이어가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유연한 한해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분명 그를 잇는 다음 세대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그게 꼭 손 같았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손. 

그때는 그것도 힘이 됐어. 그래서 난 우산 손잡이가 좋아. 

우산을 만든다기보다 누군가 잡을 손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해보고 싶어졌어.






시대의 부끄러움은 다양한 낯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상대방에게, 세상에게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다. 사과가 없는, 책임이 없는 세상의 모든 폭력과 멸시와 인재들은 소설 속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생은 견디고 버티는 것'이라는 말 끝에 '정의'가, '사과'가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부끄러움의 시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해도, 노라도, 이봐요 씨도 떠나간 이들이 남겨준 추억들을 아픈 조각까지 잊지 않고 곁에 둔다. 그리고 우산을 씌워준다. 서서히 변하리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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