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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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난장판 소설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책의 등장인물들은 다 살아있다. 너무나 생동감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내 앞에서 그들이 직접 얘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표지부터 느껴지는 혼란, 혼돈이 소설 전반을 차지하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그들만의 사랑스러움이 잘 녹아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레니와 베일리 워커 - 너무나 가까운 자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비밀이 있다.

◑ 레니와 조 포테인 - 레니의 첫사랑, 숨 막히는 미소를 지닌 음악 천재.

          그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맙소사 17살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

● 레니와 토비 쇼 - 베일리의 토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같이 공유한 이

○ 레니와 할머니 - 레니와 베일리의 할머니이자 엄마, 장미의 주술

⊙ 레니와 빅 삼촌 - 수목 관리 전문가, 마리화나 중독자, 심장을 울리는 동굴 목소리, 명언 제조기

◎ 레니와 사라 - 우정 특공대, 베일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친구


 베일리 워커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들이 그려져 있다. 워커 가족은 끈끈하고 유대의식이 좋은 가족이라 베일리의 죽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레니의 사춘기로 성적 호기심, 첫사랑으로 슬픔, 외로움, 상실감, 혼란, 혼돈, 기대, 두려움, 기쁨, 환희 등 온갖 감정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책 소개대로 아름다운 난장판이었다. 레니가 언니의 죽음으로 찾아온 슬픔과 혼돈, 외로움, 상실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혼란, 풋풋함도 레니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베일리의 죽음 후 가족들의 상태가 묘사된 후

마치 잠시 한눈파는 사이 누군가가 지평선을 진공청소기로 빨아 없애버린 듯했다.

p.11


 엄마의 부재로 외할머니, 외삼촌의 보살핌 안에서도 무언가의 결핍을 느끼고 외로움을 함께 나누었던 베일리와 레니. 레니는 베일리에게 자꾸 확인한다.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나지 말라고~ 자신있게 자신은 떠나지 않을 거라 했던 베일리는 연극 리허설 중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베일리 또한 쉽게 떠나지 못했을 것 같다. 레니의 곁에, 토비의 곁에, 할머니와 삼촌의 곁에 언제나 언제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사랑하는 가족이 떠난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더욱이 베일리처럼 꽃 피우지 못한, 젊은 생명은 더 큰 상실감을 불러온다. 그래서 레니는 그 아픔을 다른 이와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슬픔에 빠진 토비가 눈에 들어온다. 혼란 속에서 레니와 토비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존 레넌

 레니를 비틀즈의 '존 레넌' 이라 부르는 조 폰테인. 그 애를 만남으로써 레넌은 베일리의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영역들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원하고 독점하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함께 하고픈 기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레니와 조의 달콤쌉싸름한 첫사랑(레니의 입장에서만 ♡)의 열병이 이미 굳어버린 심장으로 가슴 설레는, 손가락이 짜릿한 감정을 잊어버리고 산 나 또한 헤매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서로의 마음과는 다르게 어긋나는 어린 두 연인을 지켜보면서 풋풋하고 뜨거우면서도 서툴렀던 내 과거를 투영시켜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쁜 감정이나 오해는 사그라들고 아련한 그리움의 향기가 가득한 기억들이 떠올라 행복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어요."

"그건 착각이야, 레니.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네 발치에서 시작하지."


p.177 레니와 빅 삼촌의 대화 中

조와 키스하면서, 그 말이 처음으로 와 닿았다.

 베일리 언니의 죽음으로 가장 슬픈 사람은 자신이라 생각하여 주위사람들의 소통과 배려를 차단하고 자기자신 안으로안으로 침잠하며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겪는 레니. 첫사랑 조, 16년 전 자매를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할머니, 빅 삼촌, 토비, 사라 등 주위 사람들의 아픔, 슬픔, 이해, 사랑 등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베일리의 죽음 동굴에서 걸어나오게 된다. 자신만이 슬픈 게 아니고 자신만을 위로하기 위한 사람들의 대화가 아니고 자신만이 태양을 잃어버린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베일리의 들러리가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하게 된다.


레니의 성장소설이며 인생 소설인 <하늘은 에디에나 있어>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 엄마를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그 부재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이유를 궁금해하며 엄마를 기다리며 언제가는 돌아올거라는 할머니의 말을 굳게 믿는 자매. 그리고 갑자기 떠나게 된 언니.

 삶의 태양이었고 경주마였던 언니 곁에 있는 조랑말 같다고 생각하며 지내 온 레니는 그 부재를 이겨내기 위해 낙서를 끄적이고 언니와의 추억이 가득한 집, 학교, 마을 곳곳에 아무렇게나 둔다. 자신의 슬픔을 시로 토해내고 아무렇게나 버리지만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그 행동이 가슴아렸다. 그리고 그 글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의미가 깊어 그것만 엮어도 멋진 한 권의 책이 될 듯 하다. 산책독서를 즐기는 워커가 차녀이자 폭풍의 언덕을 23번이나 읽은 레니라 글솜씨는 의심할 바 없다.

 

 떠나는 딸을 자신이 붙잡지 못하고 돌아오지도 못하게 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레니와 베일리에게 엄마가 없어지지 않도록 미움을 받지 않도록 애써온 할머니는 또다른 딸 베일리 마저 떠나보내고 레니와 소통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어른도 슬픔 앞에 고통 앞에 아픔 앞에 의연할 수 없다. 안 그런 척 참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가슴아팠다. 그래도 다행히 다시 일상으로 회복한 워커가 앞날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다. 


"너 아주 이기적인 애가 됐구나. 레니 워커."

"그래, 레니. 너는 이 집에서 베일리를 잃은 사람이 너 혼자인 것처럼 굴지. 베일리는 내 딸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무슨 뜻인 지 아니? 응? 내게는 딸이었다고. 아니, 넌 모르겠지. 물어본 적도 없으니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너는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니?

"네가 슬픔에 몸부림치는 건 알지만, 레니,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부엌의 모든 공기가 다 빠져나갔다. 그 틈에 나도 빠져나갔다.

                                  p. 341 할머니가 레니에게 소리치며 내뱉은 진실의 말들

 인생에 사랑이 가득한 빅 삼촌은 인생을 달관한 듯한 말들로 레니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 담담하게 인정하게 되는 조언이다. 어떤 일은 벗어날 수 없고 지나가도록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우리 누구도 벗어날 수는 없어. 그저 통과하는 수밖에…….
p.35 토비와 레니에게 건네는 빅삼촌의 위로

 

 토비와의 사건, 조와의 사랑, 사라와의 우정, 할머니와 빅 삼촌의 한결같은 보살핌으로 이제 레니는 장례식 이후 한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언니의 묘지를 방문함으로써 언니의 죽음을 통과하고 자기 인생 무대에 우뚝 올라섰다.

 그동안 죄책감에 거부했던 일상을 되찾고 조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인생은 원래 엉망진창으로 단 하나의 진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 우리의 심장으로 써내려가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내 남은 평생 언니는 죽고 또 죽을 것이다. 

슬픔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일부가 될 것이다.

걸음걸음마다, 들숨 날숨마다. 

그리고 나는 언니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이다. 

슬픔과 사랑은 한 몸이라 어느 한쪽만 취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언니를 사랑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언니를 본받아 배짱과 기개, 기쁨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언니, 보고 싶어. 

언니가 앞으로 놓칠 게 너무나 많다는 걸 견딜 수 없어."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저자 : 잰디 넬슨 >>

단 두권의 책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작가

<미나리> <문라이트> 제작사 A24와 애플TV+ 영화화 확정


⊙ 코넬대학교 졸업, 브라운대학교 예술학 석사과정 이수 후

다년간 출판 대리인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예술적으로 풍부한 묘사와 강렬하고 매력적인 서사로 젊은 독자를 사로잡았고 

데뷔작인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가 미국청소년도서관협회 최고의 영어덜트 소설로 선정되는 동시에 <뉴욕 타임스>, 미국 공영 라디오 등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 리스트에 오르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 두 번째 장편소설 <I'll Give You The Sun(원제)> 또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마이클 프린츠 상, 조세트 프랭크 상, 스톤월 도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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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위대한 문어 비룡소의 그림동화 288
토미 웅게러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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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명한 문어라 하면 월드컵의 점쟁이 문어 '파울'과 바다괴물 '크라켄'이 떠오른다.

 축구 영웅 펠레의 예언이 빗나가 펠레의 저주라 일컬어지는 것과는 달리 파울의 예언은 적중률이 높아서 2006년, 2010년 월드컵 경기 우승국가를 잘 맞춰 주목받았다. 예언하는 장면을 생중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나, 이제는 만나볼 수 없게 아쉽다. 크라켄은 북유럽 민담에서 전해지는 거대한 바다괴물로, 거대한 촉수를 사용해 배를 감싸 부서뜨려 난파시킨다고 알려졌다.



이 문어들보다 더 위대한 문어가 나타났다!!!

에밀 위대한 문어

비룡소 출판사 토미 웅거러 글·그림



 

 심해 잠수부인 자모파르 선장은 바다 밑을 산책하다가 무서운 상어를 만나게 된다. 착한 문어 에밀은 번뜩이는 기지로(?? 책을 읽어보세요 :D) 상어에게서 선장을 구해 물 위로 데리고 올라갔다. 자모파르 선장은 생명의 은인 에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자모파르 선장과 에밀의 우정 시작이다. ♡

 

 에밀은 참으로 매력적인 문어다. 음악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 다양한 재주들이 있어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멋진 친구이다. 자모파르 선장과의 우정을, 뭍 위에서 인연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귀히 생각한다. 내 친구이면 참 좋겠다. (에밀, 우리 친구할까? :D)


 에밀은 자모파르 선장의 경비선과 함께 바다 경비를 나갔다 수상한 배를 발견하고 쫓기 시작한다. 악당들에게 속수무책 당하는 경찰들. 하지만 똑똑한 에밀은 배를 움직이지 못하게 수를 쓰고, 8개의 다리로 악당들을 휘리릭~ 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마치 크라켄처럼. 우리의 영웅 에밀 ♡


재주많고 용감하고 똑똑한 에밀


 자모파르 선장과 에밀의 우정은 어떻게 될까? 사람과 사람간의 우정도 어려우니 사람과 동물 간의 우정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자모파르 선장과 에밀은 지금도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서로서로를 생각하는 맘이 깊은 두 친구의 관계가 계속 되길 바래본다.

 

모든 파티에서 환영받는 손님, 에밀


 아이와 즐겁게 웃으면서 상상하면서 읽었다.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욕조에 문어 에밀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니 재밌으면서도 당황스러운 일일 듯 하다. 녹색 계열의 색조가 주를 이룬 이 책은 다채로운 색상에 기대지 않고 내용을 되새기면서 집중하면서 읽게 된다. 그러면 저절로 말이 아닌 마음과 행동으로 통하는 자모파르 선장과 문어 에밀이 그리는 우정 세계에 공감하게 된다.


<해당 후기는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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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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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워크>는 1981년 리처드 바크만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 스티븐 킹의 라이벌로 알려진 그는 평론가들의 극찬 속에서 여러권의 책들을 발간했다. 1985년 필명암이라는 희귀병으로 숨을 거뒀다. 그런데 작품의 유사성 및 두 작가의 법정대리인이 같다는 등 의심을 품은 한 독자의 탐문으로 리처드 바크만은 스티븐 킹의 필명임이 밝혀졌다.

 평론가들은 스티븐 킹을 돈만 밝히는 저급한 장르 작가라고 저평가하였고 그는 필명으로 작품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작품만으로 극찬을 이끌어낸 스티븐 킹의 완승이다.




프롤로그

베트남 전쟁은 끝났고 미국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1972년 8월 어느 후끈한 오후, 784번 고속도로 확장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에 관해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성함이······?"

"도스라고 합니다. 말씀드리죠.

나는 이게 개 같은 짓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스와 앨버트의 첫만남. 그러나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p.12


제1부 11월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일하려 했다.

 그에게는 인생의 전부인 곳. 그곳이 지금 무너지려하고 있다. 고속도로 확장을 통한 지역 개발 및 교통 여건 개선 등의 이유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으로 인해 그가 살아온 곳, 그와 그의 가족이 남긴 흔적, 그가 평생 일해온 직장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상황이다.


◎ 순순히 받아들인 이들과 바튼 도스처럼 인정할 수 없는 이

◎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바튼 도스처럼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


 하지만, 자본의 이익 논리 앞에서는 이들은 모두 허수아비인 셈이다.

바튼 도스는 얼마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끝을 준비한다. 현실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라 가볍게 여기다가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과정에 분노를 느끼는 하루가 반복된다.


 <블루리본 세탁회사> 이곳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야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그의 행동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블루리본 세탁회사는 바튼 도스 그가 완성된 곳이다. 던과 레이 타킹턴 부자와의 따뜻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가족사업장의 사장으로서 직원들을 가족처럼 헤아려주고 이끌어주고 품어주던 그들의 사업관은 바튼 도스를 한 인간으로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혈기왕성했으나 아는 건 없는 철없던 도스에게 교육의 길을 열어주고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곳을 원가계산, 자본의 이익 논리에 의해 허물고 정부가 784번 고속도로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블루리본 세탁회사가 그렇게 무의미하다니~ 찰리와의 추억이 가득한 우리집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다니~ 대체될 수 없는 가치가 자본에 의해 농락당한다고 느낀 도스는 준비를 시작한다.

제2부 12월

그는 프로그램 제목도 모르고 멍하니 텔레비전에 눈을 꽂은 채 홀로 술을 마셨다.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올리비아를 만난 바튼은 온정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는 환각제에 중독된 대학생으로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함께 생활하던 이들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고자 한다. 순수하고도 무모한 그녀는 그곳이 막연히 좋은 곳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과연 그럴까?


 바튼은 그녀에게 돈을 준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녀는 믿지 않는다. 바튼은 그녀가 온전하게 인생을 바로 바라보며 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받은 던과 레이 사장님께 받은 도움과 이미 죽어버린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아들 찰리를 떠올리며 진정으로 올리비아가 건강하고 밝은 미래를 꿈꾸길 바랬을 것이다. 비니 메이슨에 대한 관심과 염려에서도 그의 애정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장래성이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성장했으면 하는 염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이들은 그를 오해하고 미쳤다고 생각한다.


 784번 고속도로 확장 공사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기어코 레킹볼에 의해 블루리본 공장이 부서지고 만다. 벽에 부딪친 레킹볼이 포격음 같은 공허하면서도 요란한 소리를 냈다.


1973년 12월 18일 오후 4시경, 블루 리본 공장이 있던 자리에는 벽돌과 유리 파편, 그리고 그 사이에 튀어나온 부서진 주빔만이 남았다. 땅에서 발굴해낸 어느 괴물의 부서진 해골 같았다.

p.264


 이를 지켜본 바튼은 미래나 결과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그 일로 784번 고속도로 확장공사가 차질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의 생각대로 순순히 흘러갈 리 없다.

마음가짐이 안 바뀌면 어딜 가든 마찬가지야.

………

아니, 너야말로 내 말 잘 들어. 정신 바짝 차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차를 몰고 점점 깊어지는 눈 더미 사이로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차의 휠캡이 눈 더미에 묻히면 그 자리에서 공회전만 하게 돼. 그게 인생이야.

어디서 쟁기가 나타나 널 꺼내주지 않아. 널 구해줄 배 따위는 오지 않아.

누구한테나 마찬가지야. 넌 어차피 인생이라는 대회에서 승리하지 못해.

널 쫓아다니면서 찍는 카메라도 없고 고군분투하는 네 모습을 지켜볼 시청자도 없어.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 다른 건 없어.


바튼 도스와 올리비아의 크리스마스날 전화통화 p.306

제3부 1월

그날 샵엔세이브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일은 바튼이 평생 처음으로, 되는 대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계획한 일이었다.

 1974년 1월 19일까지가 만기였다. 그 집은 20일부터 바튼 도스 집이 아니다. 정부 소유다.

드레이크와의 짧은 만남으로 그는 깨닫는다, 그동안 온갖 일을 벌인 이유를. 지독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이게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로는 갈 수 없어요.               드레이크의 답변 p.407
 바튼은 결코 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인 매리의 표현처럼 찰리에게 붙잡혀 있는 죄수 같다. 매리는 풀려났는 데 왜 바튼은 그러지 못했을까? 찰리가 세상을 떠난 후 바튼은 한 번도 찰리를 생각하며 운 적이 없었다. 장례식에서조차 울지 않았다. 반면에 매리는 실컷 울었다. 수 주일을 울어 눈이 줄곧 충혈된 채로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매리의 상처는 차츰 치유됐다. 하지만 바튼의 상처는 안으로안으로 곪아 더 큰 상처가 되었다. 바튼은 호두만 한 크기의 작은 세포 덩어리가 찰리의 목숨을 앗아간 사실을 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 폭발했다. 엄청난 폭발이었지만 그에게는 흔하디흔한 호두만 한 크기였다.

접근금지 ROADWORK(도로공사)


에필로그

WHLM 뉴스팀은 ...... 퓰리처상을 받았다. 

매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주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해 연방 정부가 배정하는 예산을 잃게 되므로 시 당국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공사를 진행한다.

 지금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책정된 예산을 해당 연도에 다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해 예산은 삭감된다. 불합리한 예산 책정기준으로 불필요한 공사, 사업 등이 진행되고 우리의 세금이 새고 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모순과 억압, 파괴가 존재할 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그 대상이 되지 않은 한 관심이 없다. 바튼 도스처럼 행동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내 입장 같은 건 없어.

바튼 도스와 기자의 인터뷰 중 p.451


 글을 읽는 내내 조지와 프레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었다. 바튼과 찰리의 대화인 것일까? 순전히 바튼의 분열된 자아일까? 바튼은 자신이 사랑하는 추억과 인생이 담긴 집과 직장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 뿐이었다. 예산을 소비해야 하는 시 당국의 공사 진행으로 그 꿈이 부서지고 그 안에서 바튼의 몸과 정신도 다 부서졌다.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그 의미는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 지금도 그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개인과 정부, 개인과 기업, 개인과 사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공존의 길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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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 저이기에 공유합니다.
나이가 먹어 어른이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과 다짐이 계속 되는 하루하루입니다. ♡

https://m.blog.naver.com/jamo97/222311268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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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볼품없지만 트리플 3
배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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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왜 이리도 미친놈이 많은가? 

잊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어주고 손잡아 주는 이들이 있다. 살아가보자.


 한국문학의 신예 작가들을 시차 없이 만날 수 있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배기정 작가님의 「남은 건 볼품없지만」

 

 많은 문학작품들이 출판시장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소비자에게 독자에게 선택받는 책들은 극소수이다. 소위 대작가, 공인 등 이미 인정받은 이들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신예 작가들은 그 꿈틀거림을 표출하기도 전에 납작해져 버린다. 독자인 나 또한 잘 알려진 작가 책이나 관심분야의 책들을 중점으로 보지, 책 시장을 다양하게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는다. 그래서 펼쳐지지 못한 채 사그라드는 열정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기획의도가 좋다. 첫 번째 <호르몬이 그랬어> 박서련 작가님, 두 번째 작품 <오프닝 건너뛰기> 은모든 작가님은 다른 책을 통해 접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 작품의 배기정 작가님은 생소하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었다.


 남은 건 볼품없지만 - 끝나가는 시절 - 레일라 - 일일 까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음~ 오~ 아~ 헉~ 큭까지 온갖 감탄사들이 쏟아진다. 가감 없이 건조하게 쏟아내는 이야기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건 왜일까? 나도 모르게 '나'가 되었다가 '미니'가 되었다가 '레일라'가 되었다가 '나'가 되었다가 '이모'가 되기도 한다. 다 온전히 나인 것 같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남처럼 생경하게 글을 통해서만 말을 건다. 제3자처럼 지켜보게 된다. 그 상황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남은 건 볼품없지만> 처음에는 나와 후재와의 관계에 의아심을 가졌는데 읽다 보니 '그래, 이런 관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신기하다.' 그런데 그 관계가 흔한 남녀관계보다 더 깔끔하면서도 끈끈하게 유지될 수도 있음에 놀라워하면서 응원을 하게 되었다. 후재의 가오가 귀엽고 나의 예술에 대한 애정과 예술가에 대한 허세와 위선에 대한 미움, 역거움 등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특히 '미니'가 싫다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질투와 시기를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에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쟤도 잘 살아남아서 잘 지내고 있었네.    (p.053)     

 '나'는 딱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데 우연찮게 타국에서 접한 강진의 위험에서 벗어나 아직까지 잘 살아남아서 생활하고 모텔에서 인질이 될 뻔한 순간도 오지랖으로 모면하게 된다. 이 또한 살아온 방식이 '나'를 살린 것이리라.

내가 또 운이 좋아버렸구나. 몇 년째 궁상떨고 살아서 세상 모든 운들이 나를 피해 가나, 역시나 나에게 남은 운이란 건 없는 건가 싶었는데.  (p.024)


<끝나가는 시절> 송원이 너무 사랑스럽다. 좋아하는 존재에 대한 그 순수하고 맹목적인 경외심, 신뢰는 그를 대변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하고 아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를 보고 있으면 그의 소망대로 언젠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응원해주고 싶다. 그리고 무모할 만큼 무작정 시작한 중식당을 다시 궤도로 올려놓은 집중력과 의지를 보면 음악에 대한 꿈도 실현되리라 믿는다. :)


<레일라> 레일라는 선을 지키면서 남을 배려하고 곤경에 처한 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기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말하기 힘든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언니.  (p.132)

 

 반면 '나'는 자신만을 바로 세우며 자신을 위해 나아간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치부는 모른 체 해주는 게 옳다고 믿고 타인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레일라와 나의 대화 p.162,163


 요즘 보통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개인주의로 포장된 우리들의 모습. 하지만, 이 세상은 이렇게 철저히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갈수록 혼족이 많아지고 노인계층이 많아지는 요즘, 타인의 안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일상적인 얘기를 언어를 통해 들여다보니 우리의 위선, 기만, 이기심, 질투, 시기를 조금은 불편하게 인정하며 읽어가는 시간들이었다. 나또한 '나'와 비슷한 모습인지라 더 가슴이 뜨끔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편하게 살고 싶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 나랑은 상관없다. 다 그러면서 사는 거지.

 우리가 쉽게 대는 핑계거리들이다. 하지만 레일라처럼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순간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나'또한 레일라의 손을 잡게 된다. 이제 '나'는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의 구세주가 될까?


 

 경쾌하면서도 솔직하고 담백하면서도 날까로운 시선으로 풀어나간 여러 이야기들이 작은 책 사이즈 너머로 꽉 찼다. 배기정 작가님 책이 나올 때마다 떨릴 것 같다. 기대하면서 기다린다, 다시 만날 날을.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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