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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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뷰/ 우신영 저/ 다산책방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프롤로그가 이해된다.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고 싶은 도시, 그 투명한 시티 뷰 너머 보이지 않는, 보지 않는 인생들의 로프가 흔들리고 있었다. 

도시가 품고 있는, 모순된 이중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우신영 작가의 소설 [시티 - 뷰]는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갯벌을 메꿔 만든 신도시, 송도.

아찔한 높이의 유리빌딩이 숲을 이루는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 속에 내재된 욕망과 결핍, 상처와 고통들이 얽히고설켜 우리네 민낯을 드러낸다. 감출 수도, 피할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초상은 피처럼 비릿하면서도 뜨겁고, 칼처럼 날카롭고 서늘했다. 







신도시 안과 밖. 

안에서 일하고 사는 석진과 수미,

안에서 일하지만 밖에서 사는 동준과 채원과 옥란, 

밖에서 일하고 사는 유화와 해룡.

다들 제각각 살아가는 것 같지만 도시를 배경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삶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시티 - 뷰] 소설을 직조하고 있다. 







칼국숫집을 하시는 가난한 집안의 섬 출신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로펌을 운영하는 집안의 도시 출신 필라테스 원장.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한 석진과 수미 부부는 너무 다른 성장과정을 겪었다. 필요에 의한 결혼은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서로를 향한 존중이라기보다 대립과 갈등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들은 가정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생 동반자가 되지는 못했다. 






보는 존재보다 보이는 존재가 익숙한 수미는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욕구와 시선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찾는다. 유화는 연인 해룡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남긴 장화를 신고 면도칼을 삼킨다. 그리고 석진의 병원을 찾는다. 누가 섭식장애일까? 과연 수미와 유화만 섭식장애일까. 석진의 헛기침, 동준의 헛구역질도 반동이 아닐까. 다들 살아가기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선택한 현실에 대한 무의식의 반응처럼 느껴졌다. 



보이는 존재인 수미와 동준은 숍에서 왁싱을 하지만, 

석진은 턱에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기른다.

석진은 바버 숍에서 그 수염을 관리하지만,

유화는 연인 해룡이 죽은 후 면도칼을 먹는다. 

칼국숫집을 하는 석진의 아버지는 칼로 가족을 부양하지만, 

그 칼로 아내를 학대한다. 

클라이밍을 하는 석진은 로프를 감고 가짜 벽을 타지만, 

해룡은 로프를 감고 빌딩 창문 청소를 한다. 

동일한 소재들을 인물별 상황에 맞게 녹여내어 한 시대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대비되는 듯 싶으나 하나같이 편안하지 못한, 피곤하고 고단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 








덕적도를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서 육지로 떠난 석진이 자리 잡은 송도가 덕적도의 해사로 메꿔졌다는 사실처럼 고통의 근원을 해소하지 않고 도망치는 걸로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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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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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유수연 저/ 믹스커피




영화를 보고 다양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믹스커피의 영화관 시리즈> 이번에는 『영화관에 간 의사』이다. 분명 똑같은 영화를 봤는데 '이런 접근이 가능하구나!' 깨닫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동화 같은 친숙한 이야기를 의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글을 다양한 창구에서 연재하고 있는 유수연 신경의 전문의다. 이번에는 영화를 의학적 방법으로 분류하여 감상하고 해석하였다. 


일반적인 영화 감상과는 다른 의학적 감상은 아는 영화를 색다른 영화로 변모시킨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유수연 저자가 찾아주는 듯하다. 영화 속 의학적 정보와 신화 이야기가 영화의 배경과 주제를 더욱더 명확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깜깜한 밤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처럼 인지하기 전에는 암흑이었던 영역들이 팡팡 화려하고 다채롭게 터지는 느낌이다.



총 21편의 영화를 의학적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공포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람한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남다른 접근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인상적인 영화 감상 몇 편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좋아하는 배우들이 열연한 <헤어질 결심>은 형사와 살인 용의자 간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스릴러다. 하지만 신경과 의사이자 신화와 전설 마니아인 유 저자는 '운디네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호흡 중추 자동능 장애'라는 질환을 재해석한 의학적 작품으로 보았다. 

<운디네의 저주>와 <인어공주> 그리고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지는 '호흡 기능 이상'과 '불면증'에 대한 의학적 해석은 다각적 영화 감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제임스 건 감독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유수연 저자는 '하이 에볼루셔너리'라는 인물에 의해 개조된 실험체였던 '너구리 로켓의 서사'에 주목했다. '악이 없는 완벽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만행을 나치와 연결 짓는다. 

잔인한 생체실험과 열악한 철창 안에서 살아가는 실험체의 모습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실패작이라고 판단되는 실험체들을 처분하는 모습에서는 장애인 대학살 'T4'작전을 떠올렸다. 

인류사 중 끔찍하고 처참한 비극인 홀로코스트.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인 나치 대학살과 가오갤을 연결시켰다. 그러면서 의학 본연의 가치까지 다루는 해석은 마블사의 오락 영화로 유쾌하고 즐겁게 감상한 기억을 머쓱하게 하였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영화 <스틸 앨리스>

언어학 교수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면서 생겨나는 변화를 그린 영화이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가 인상적인 이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의 프시케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앨리스가 세운 약물 과다 복용 방식의 자살 프로젝트 '나비작전'에서 프시케를 거론하였다. 신이 된 프시케가 지니게 된 나비 날개. 이 나비 날개는 영혼을 상징한다.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위해 '나비'라는 이름을 지었지 않았을까 유추하는 유 저자의 해석에 공감이 되었다. 하루빨리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원작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작가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과 같이 보면 더 좋은 영화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은 벤자민의 일생을 통해 삶과 사랑을 성찰할 수 있다. 유수연 저자는 이 영화에 관한 의학적 접근으로 노화와 조로증 그리고 소아 치매를 들었다. 벤자민이 현대인이라면? 가정하에 전개되는 의학적 설명이 곁들어진다. 그리고 길어진 수명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는 노화. 벤자민처럼 역행하는 시간이 아니라 순행하는 시간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충만한 삶을 이야기한다. 



『영화관에 간 의사』

영화는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라 관객 각자의 주파수에 맞춰 공명한다. 나의 주파수에 맞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도 충분히 감동스럽다. 하지만 타인의 주파수에 공명한 감상을 통해 더 넓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일 것이다. <믹스커피의 영화관 시리즈>가 그 길을 열어주고 있다. 유수연 의사가 들려주는 영화 독법으로 참신한 영화 감상의 시간을 향유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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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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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패트리샤 박 저/ 서사원





"우리는 아빠의 '삶'을 기념하기로 했다."




'알레한드라 김'

여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싶은 한 소녀가 있다. 이는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은 저자 '패트리샤 박'이 학교와 직장 그리고 삶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소설이다. 




"난 어디에 있어야 해요?"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여기지만, 타인의 눈에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그들과는 다르다 선을 긋는 분류에 표류하는 듯하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의 후손. 한국에서 아르헨티나로, 다시 미국으로 삶의 무대를 이동한 알레한드라네. 어느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알레한드라는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알레한드라는 부유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다. 가난한 동네 퀸스에 살고 있는 그녀는 뉴욕을 떠나 와이더 대학에 진학해 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자신을 응원해 주던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꿈을 크게 가지렴, 알레하-야.

이 나라에서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어."




어느 날 '창의적 글쓰기 수업' 초빙 강사인 소설가 조너선 브룩스 제임스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듣게 되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절친 로럴은 해고 청원 서명을 받기 시작한다. 




"넌 이 학교에서 손님 같은 존재야.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라."




아빠와는 달리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로럴이 고마우면서도 불편하다. 알레한드라는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고, 커져가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한국 - 아르헨티나 계 미국인, 사고로 인한 아빠의 죽음, 와이더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엄마,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 절친. 알레한드라 김은 자신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이 지긋지긋하다. 뉴욕을 벗어나 와이더 대학에서 새롭게 시작하고만 싶다. 답답하기만 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문화 연구 수업' 담당 강사 헌터 대학 심리학 교수 파얄 채터지 박사와의 만남은 숨통을 트여주는 창구가 되어준다. 


채터지 박사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고, '미국 이민 1세대의 증언' 프로젝트 인턴을 하면서 자신을 억누르고 힘들게 하는 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알레한드라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에 대해 분노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인종적 우울증' 심리에 대한 글과 이미 1세대 인터뷰를 읽으면서 아빠를 떠올리게 된다. 세 개의 문화를 항상 조율하며 살아가야 했던 아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애도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소설은 이민으로 새로운 나라에 정착해 살아가는 소수자 집단이 겪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얼굴, 인종, 민족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알레한드라 김의 간절함이 잘 전달된다. 고정관념, 선입견을 벗어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특히나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겪는 차별은 큰 생채기를 만들어 아프게 할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수많은 알레한드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알레한드라 김은 에세이를 쓰거나 토론 수업을 통해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를 통해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꿈을 향한 도전을 시도하였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해병대에 들어가는 빌리를 향한 우려, 학비에 대한 부담감, 자녀의 미래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부모 등 미래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알레한드라와 친구들은 이 고비를 넘기며 자신을 채워나갔다. 


패트리샤 박 작가는 소수자인 알레한드라가 견뎌야 하는 불공평한 일과 함께 로럴이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는 기분도 조명하고 있다.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인종 차별의 앞면과 뒷면을 독자들에게 비춰주고 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있어서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이미 공간에 속해있는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당혹을 넘어 무력하고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 교수의 수업과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여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질적 연구 방법이 인상적이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상실은 알레한드라를 뒤흔들었다. 훌쩍 커서 돌아온 친구 빌리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엄마는 일에 쫓겨 대화를 거부하고, 친한 친구 로럴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짜 자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픈 알레한드라 김. 그녀가 들려주는 솔직한 고백은 고정관념의 위협과 격려를 인지하게 한다.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한 생각들, 그 고정관념의 압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모습으로 살아가는 알레한드라 김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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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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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다산책방




"피치, 지독하게 멍청하고 지독하게 오만했던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나?"

"할 수 있지. 용서하네."







[완전한 구원]의 저자는 에단 호크다.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배우로 친숙한 그가 연기뿐만이 아니라 각본으로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풋풋한 미소로 사랑을 전하던 청년 제시에서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 극본을 적절히 녹여내어 허영심 많고 자기중심적인 영화배우로 돌아왔다. 연기자가 아닌 작가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에단 호크의 또 다른 매력을 즐겨보자. 






몇 편의 영화를 찍은, 얼굴이 알려진 삼십 대 초반의 영화배우 윌리엄. 

그의 아내는 록스타 메리다. 그녀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소설은 윌리엄이 셰익스피어 연극 <헨리 4세>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헨리 4세> 등장인물 중 '훗스퍼'를 연기한다. 윌리엄은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에 열중하는 가운데 아내 메리와 두 아이들과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자기애가 충만한 모습을 초반에 보여준다. 









윌리엄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가 겪는 심리적 압박과 일탈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예전에 겪은 상실과 상처들을 통해 그가 메리와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자신의 놀라운 아이들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아내 메리를 향한 사랑 등 그의 개인적인 사정은 연극하는 내내 그를 뒤흔든다. 






긴 시간에 걸쳐 <헨리 4세> 연극을 같이 준비하고 공연을 하면서 배우들, 제작자, 연출자와 관계를 쌓아간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로서 역할에 대한 책임감과 연극에 대한 기대 그리고 선배 배우들을 향한 경외심이 그를 점점 더 <헨리 4세>에 빠져들게 만든다. 열중하면서도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방탕한 생활을 해나가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주여, 제게 평화를 허락하소서, 나중에.

저는 사랑받고 싶습니다.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주여, 제게 흑사병을 허락하소서. 





윌리엄은 이 인극을 계기로 가족들과의 관계도 재정비하고 배우로서의 자질과 능력도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을 보인다. 대중적인 인기를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관심과 요구에 상처받는 섬세한 영혼은 불안정한 현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믿음과 바람과는 다르게 배우로서도, 남편이자 아빠로서도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하다. 







에단 호크는 윌리엄의 위태로운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본업이 배우인 그가 보여주는  연극 무대 뒤의 현장과 호흡은 생동감 넘친다. 배우들끼리의 미묘한 대치와 긴장 그리고 동료를 향한 응원과 격려, 현실과 연기의 모호한 경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연극 한편을 긴 프레임에 걸쳐 제작부터 공연까지 함께 완주하는 듯하다. 




"정말 이상해. 지난 세월 내내 네 아버지와 싸우면서 미워하고, 

돈 때문에 다투고,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며 살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네가

나한테 가장 많은 고통을 준 그 사람처럼 변해가는 걸 지켜봐야 한다니! 
언젠가 너도 네 딸이랑 이야기하다가 그 아이의 머릿속에 메리의 시선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지금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야. 그 무엇도 끝이 아니야.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고.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라는 것."



윌리엄은 훗스퍼가 되어 격정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츰 성숙해지게 된다. 과거 상처가 되었던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공연팀으로부터 들은 조언들을 바탕으로 배우로서, 아빠로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뚜벅뚜벅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 앞에 보이는 것은 새로 뻗은 계단뿐이다. 사람의 발이 만들어놓은 길이 보이지 않은 새로운 길. 윌리엄이 당당히 밟고 다져놓을 그 길이 보인다. 




실제 현실만큼 신나는 건 하나도 없어. 

이다음 순간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훌륭하진 않아. 

지금 이 순간.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은 불멸이야.

'사느냐 죽느냐'는 ……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겠는가를 묻는 거지. 





에단 호크는 '모든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되었다'는 연출자 J.C.의 글처럼 아름다운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그만의 사랑스러운 문학을 완성하였다. 적절한 인용문이 글의 맛과 의도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찬란한 인생을 그려나가는 이들을 향한 그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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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퍼즐
김규아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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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볼로냐 라가치상 문화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김규아 작가의 그래픽노블 [너와 나의 퍼즐]이 출간되었다. 



너와 나의 퍼즐/ 김규아 만화/ 창비




작품의 배경은 2023년 여름이다. 로봇이 일상화된 시대에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팔이 로봇 팔인 5학년 '이은오'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은오 반에 종이봉투를 쓰고 다니는 '김지빈'이 전학 온다. 지빈은 은오의 로봇팔을 '가짜'라며 시비를 걸고, 무례한 말로 상처를 주고, 거짓 소문으로 은오를 따돌린다. 처음에는 수아와 재우가 곁에 있어줬지만,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학교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데……






다들 왜 가만히 있어, 딱 한 마디면 되는데.

"아니야."라고.

한 사람이라도 말해 주면…… 안 돼?

그 말을 하는 건 한순간이면 될 것 같은데.




은오처럼 지빈이는 왜 그럴까?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쉽사리 답을 찾지 못한 채 은오는 지빈과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할머니에게 배우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친구와 우정을 다지며 단단히 여물어 간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종이봉투로 얼굴을 감춘 채 은오를 향해 날선 말을 던지는 '지빈'이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은오는 로봇 팔을 지닌 신체적 아픔을 가진 아이지만, 다정한 할머니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왔다. 자신의 사고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위해 더 밝게 생활하려 애쓰는 강인한 아이다. 할머니가 은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지빈이는 마음이 아픈 아이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이 엄마를 향한 아빠의 폭력으로 이어지고 결국 아빠는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제대로 풀지 못한 상처와 불안은 가시가 되어 지빈이의 심장에 박혔다. 

닫힌 엄마 방문이 영영 열리지 않을까 봐, 엄마마저 떠나버릴까 봐 마음 졸이는 지빈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떠나버린 아빠를 닮아간다는 말조차 싫은 지빈이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 있다. 울지 않고 그냥 아무 일이 없었던 척 넘어가려는 엄마는 지빈이에게도 씩씩하기를 강요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빈이를 아프게 한다.










지빈이가 왜 그렇게 은오를 못마땅해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울컥했다. 종이봉투를 쓰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버거운 아이의 눈에 은오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고양이 미소처럼 보였다. 밝고 건강한 은오가 미우면서도 부러웠으리라.








김규아 작가는 아이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지빈이가 흔들어버린 은오와 친구들의 공간과 관계를 무리 없이 공감할 수 있도록 아이들 각각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응하는 아이들을 섬세하게 쫓아간다. 








<너와 나의 퍼즐>을 읽는 내내 내 안의 작은 아이가 꿈틀거렸다. 지빈이처럼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못하는 나 또한 꾹꾹 눌러 담아놓은 감정과 상처가 가시가 되어 찌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미성숙한 아이를 깨우는 방법을 은오가 알려주었다. 작은 점. 훌훌 불어 날려버릴 테다. 그리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사귈 테다. 그렇게 다정한 어른이 되어 나의 사람들을 품어주리라.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 

이은오




은오 심장의 가시를 녹여주는 다정한 사람. 할머니의 말과 결정이 상쾌한 바람이 되어 나에게 긴 호흡으로 남았다. 그리고 은오는 할머니의 결정을 이해해 주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은오네를 보면서 건강한 가족 관계를 배웠다.



뜨거운 여름, 거짓된 소문에 휩싸여 혼자가 된 은오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서 도리어 상처를 주려 했던 친구, 소문 때문에 멀어졌던 친구와 깊은 소통과 교감을 나누게 된다. 슬픈 시간도, 힘겨운 시간도 삶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조각이었다. 알맞은 조각으로 각자 삶을 이루어나가는 너와 나는 세상을 채우는 하나의 완벽한 퍼즐이다. 










찰칵 찰칵 책 속 많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어 퍼즐을 만들고 한 조각 한 조각 맞춰나가고 싶다. 은오 할머니처럼. 그러면 더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마지막 페이지의 홀가분해 보이는 은오와 지빈이를 많은 이들이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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