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동남아 - 동남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이끈 16인의 발자취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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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동남아/ 서강대 동아연구소/ 한겨레출판사




가까운 동남아의 낯선 인물들을 통해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 보는 [인물로 읽는 동남아]이다.


열강의 제국주의 앞에 식민지로 전락하여 착취당한 지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독특한 문화와 민족주의를 간직한 동남아를 읽어볼 시간이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의 동남아 연작,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자국에서는 유명하나 우리에게는 낯선,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 국가에까지 영향을 끼친 16명의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시기의 인물들답게 굴곡진 삶을 살았다. 인물의 선정 기준은 선과 악도, 위대한 업적도 아니다. 어떤 의미로든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ㆍ역사적 상황에서 작은 파장이라도 남기려 했던 사람들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폴 포트, 틱낫한, 아웅산.

16명 중 3명만 들어본 터라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언급한, 서양에 치우친 인식과 사고의 불균형에 깊이 통감했다. 빈약한 배경지식이 민망하지만, 이번 기회에 가까운 동남아 인물들을 알게 되어 뜻깊은 경험이었다. 물리적 거리만큼 정서적ㆍ역사적 거리를 가깝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열강의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과 근대화를 꿈꾸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투영되어 울컥하기도 하였다. 





인질이자 외교관이었던 '다라랏사미'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개혁,

EIDF2024 '폴 포트 댄싱'을 통해 알게 된 '폴 포트'의 그릇된, 광기 어린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참극,

반전 평화의 표상이지만 정작 남북으로 갈라진 고국 베트남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틱낫한,




리콴유와 함께 강소도시 국가 싱가포르를 설계한 고켕스위의 경제적 생존, 자주국방, 실용적 교육을 추구한 철학,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담하지만 연민 어린 시선으로 기록해나간 종군기자 목타르 루비스,

베트남의 영원한 장군으로 기억되는 보응우옌잡,

아시아 최초의 민족주의자, 첫 번째 필리피노인 호세 리잘.





여러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었다. 서양의 사상으로 근대화에 눈을 뜨고, 독립을 향한 강한 투지를 불태우며, 민족이 온당한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염원을 지닌 인물들이 사회적ㆍ정치적 상황에 의해 비슷한 길을 혹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기도 하였다. 순수한 이상을 좇던 인물이 급진적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민족을 위한 활동가였지만 폭력은 취하지 않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한 면모를 잃지 않기도 하였다.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친 16명의 인물들의 삶이 동남아를 향하는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9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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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여성 인물 도서관 10
박지숙 지음, 에이리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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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안 돼!

조선 여자라서 안 돼!

여자가 그딴 거 해서 뭐 하게!



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박지숙 지음/ 
청어람주니어



일본 식민지 조선에서 꿈 많은 남옥은 그 꿈을 펼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에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였다. 할 수 있다는 확신과 물러서지 않는 의지로 똘똘 뭉친 여장부, 박남옥이었다. 


이번 [여성 인물 도서관]의 주인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이다. 



박남옥/ 이경주 제공(신문기사 참조)

갓난아이를 업고 메가폰을 잡고 영화 촬영장을 누빈 그녀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이번 책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태어나 조선어보다 일본어에 익숙하지만, 꿈 부자였던 박남옥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투포환, 미술, 책, 영화…… 다채로운 꿈을 가진 그는 도전이 실패할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자신의 온전한 꿈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여자라서, 조선 여자라서 안 된다는 현실 앞에서 당당히 자기가 꿈꾸는 길을 걸어가고자 분투하는 박남옥의 열정이 아름다웠고, 부러웠다. 두꺼운 벽, 높은 담 앞에서도 픽 웃어버리고 하고자 하는 일에 부딪쳐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는 그는 꿈꾸는 자의 표상이다. 


지금도 유리천장이 존재하지만, 그 시대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다는 것은 터부를 깨야 하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안팎으로 격려와 지원보다는 비난과 반대가 더 컸을 텐데 '오늘 부는 바람과 내일 부는 바람은 다른'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이겨나가는 꿋꿋함이 인상적이다.



남옥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배우 브로마이드와 영화 포스터를 모으면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키워나갔다. 흠모하는 영화배우 김신재와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을 한다. 그리고 영화 <올림피아>의 감독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자기만의 색깔로 반짝이는 멋진 여성들이 세상에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열망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서 일하게 하였고, <대구일일신문> 기자로 영화평을 쓰게 하였다. 남옥이 품고 있는 색깔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 







늦은 결혼과 아이의 출산 후 바로 메가폰을 잡게 된 남옥의 이야기는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다. 태어난 지 2,3개월 남짓 된 아이를 업고 촬영장에 나타난 박남옥 여성 감독을 보고 스태프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안된다. 하지만, 여자라서, 엄마라서 안된다는 건 박남옥 사전에는 없었다. 그렇게 딸과 함께 찍은 영화가 바로 <미망인>이다. '여성의 아픔과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든 걸작을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로 영화 촬영을 시작하였다.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





작은 언니의 응원과 지지로 힘을 얻은 그녀는 '자매영화사'를 차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 되었다. 꿈 부자인 남옥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자기의 꿈을 응원해 주고 자기를 믿어주는 존재가 생기니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서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암담한 시기에도 '꿈'을 꿀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이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지를 깨닫게 된다. 진정 자기가 원하는 바를 고민하고 이루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패기의 박남옥 여성 영화감독이 있었기에 제2, 제3의 여성 영화감독이 존재할 수 있었다. 앞서 험난한 길을 헤치며 다져놓은 덕분에 지금 우리는 좀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사건]으로 '육이오 전쟁 한국 전쟁'을 살펴볼 수 있다. 박남옥 감독 또한 전쟁으로 큰 아픔을 겪었다. 남북으로 갈라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아픔을 절절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인물 키워드]는 당연히 '영화감독'이며, 

[그때 그 현장]에서는 '영화 제작 과정'을 순서대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영화에 관련된 꿈을 꾸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도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는 독후 활동지를 제공하고 있다. 독서 전-중-후 활동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종합적인 활동지로, 더 재밌고 더 알차고 더 유익한 독서 시간을 꾸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양한 독후 활동을 통해 단순 활자 읽기에서 벗어나 통합적인 책 읽기를 경험할 수 있다. 



포대기로 아기를 메고 메가폰을 든 채로 박남옥 여성 영화감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 박남옥 여성 영화감독을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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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와 사람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조원희 지음 / 사계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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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에 사람이 있었어."


호두와 사람/ 조원희 글·그림/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근육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 시리즈로 알게 된 조원희 작가가 쓰고 그린 민주인권 그림책 [호두와 사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학대받고 버려지는 고통 받는 동물들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동물권의 무게를 절실히 실감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두와 사람]은 조원희 작가에게 개 호두가 오기까지 대략 1년 4개월의 여정을 담고 있다. 사람에게 고통받은 상처가 서서히 사람에게 치유받아 아물어가 딱지 앉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긴 걸까? 짧은 걸까? 그보다 그 길을 호두와 기꺼이 같이 걸어간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고 소중할 것이다. 호두의 고통을 아파하고 돌보아주려고 애쓰는 손길이, 마음이 가슴 저리게 고마웠다. 다행이구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호두와 사람] 그림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힘을, 여백의 미를 새삼 되새겼다. 한 페이지에 그림과 글 몇 문장이나 그림과 몇 단어 혹은 그림만 있을 뿐인데 호두가 이겨낸 시간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단순하고 깔끔한 그림 속 호두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듯이 상처와 불안, 두려움 그리고 사랑과 평온이 전해졌다.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이들의 눈길과 손길이 닿은 덕분에 호두가 건강하게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이들이 어루만져 주었던 그 마음들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녹이는 다채로운 온기가 되어주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호두가 조원희 작가에게 스스로 다가갈 수 있었고, 배를 드러내고 누울 수 있고, 사람을 보고 반가이 뛰어갈 수 있었으리라.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 이 기적 같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해준 사람들의 연대에 고개 수그려 감사 인사를 전한다. 




[호두와 사람]은 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다양한 도움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입양'만이 아니라 수술한 다리가 나을 때까지 맡아주는 임시 보호, 수술비나 호텔비 등을 지원해 주는 의료비 후원, 직접 데리러 가기 힘든 보호자에게 데려다주는 이동 봉사 등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힘을 보태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이다. 








호두의 이야기로 눈물을 쏟았지만, 마지막 눈물 끝에 미소를 지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호두가 많이 있다. 호두가 호두가 되기 이전의 그들이 말이다.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귀한 마음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민주인권 그림책 시리즈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익숙한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창구이다. 미처 닿지 않았던 사회의 사각지대를 마주하게 해주고,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져 다 같이 연대하여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이야기이다. 계속 좋은 의제로 우리를 자극해 주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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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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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거대한 곰이 버티고 있을 때, 

그걸 뒤집어 문이 되면 열고 나가보자."




언니네 미술관/ 이진민 지음/ 한겨레출판사



이진민 작가의 [언니네 미술관]을 덮고는 긴 숨을 내쉬었다. 이 언니, 참 멋있다.(얼굴도 모르는이지만, 언니라 친근하게 부르고 싶어졌다).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이분법과 강한 확신과 관념들로 딱딱해진 세상을 조몰락조몰락 매만져 유연하고 다정하게 변화시키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세상을, 타인을 들여다보는 글인가 보고 있노라면 결국 나를 마주하는 글이었다. 나 안에 굳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탈탈 털어내고 다시금 채울 수 있었다. 

대단한 누군가가 아니라더라도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배경 속에서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온 수많은 감정들, 존재들, 생각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찬란한 순간 대신 평온한 일상이 우리 삶을 쌓아 올린 토양이자 자양분이었음을 깨달았다. 




'말씀'이 아니라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그저 보드라운 '숨소리'만으로도 

좋다고 믿는다. 

나의 하찮음을 깨닫고 편안해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수한 작은 목소리와 숨소리들도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218 (part02. 크게 바라볼 것들 3장. 사소함, 익숙함, 하찮음 * 결코 사소하고 하찮지 않은 것)





이진민 작가는 다시 바라볼 것들 - 근육, 마녀, 거울, 크게 바라볼 것들 - 슬픔, 서투름, 사소함 ㆍ 익숙함 ㆍ 하찮음, 함께 바라볼 것들 -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 이렇게 3가지 큰 영역으로 나눈 9가지의 단어 목록으로 세상의 존재들에게 말을 건다.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 이야기가 스며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꿈꾼다. 그렇게 우리들의 공간에 의자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저자는 구분 짓고 나누는 세상의 관념과 잣대들을 자신의 다정한 무기로 허물고 부수어 이어가고자 애쓰고 있다. 철학 이야기지만 미술과 문학을 매개로 한 [언니네 미술관]은 섬세하고 다정하다. 언어의 한계를 염려하는  세심한 배려 또한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테마인 <다시 바라볼 것들>은 외부의 시선들과 연관이 있다. 세상의 억압과 통제에 휘둘리지 않게 플라톤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아름답게 보이는 몸, 명사가 아니라 기능하는 몸, 동사로 살아가는, 마녀 안에 담긴 의미를 꿰뚫어 보는, 크로노스적 시간 위에서 꽃 피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나를 만들고 싶어졌다. 아장스망을 간직한 이가 되고 싶어졌다. 





두 번째 테마인 <크게 바라볼 것들>은 이진민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책의 중앙에 넣었다고 한다. 슬픔, 서투름, 사소함 ㆍ 익숙함 ㆍ 하찮음. 이들의 힘을 세상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았다고 한다. 일상에서 누구나 느끼는 부정적이고 소소한 영역을 다룬 문학 작품과 미술 작품을 이진민 작가의 목소리로 들으니 그가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힘에 가슴 한편이 저릿하였다. 

감명 깊게 읽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가 소개되어 반갑기도 하면서 읽었을 당시의 먹먹했던 감응이 되살아났다. '이 세상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는 건 기본적으로 슬픔'이라는 문장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결국 불사는 죽음이고 전능은 무력이다. 

반면 아무리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서투름은 변화의 친구이고 성장의 어머니가 된다. 

이를 깨닫는 자들에게 이 아이러니는 

서투르고 짧은 생의 위안이 될 것이다. 

서투름은 결국 인간을 빛나게 한다.

p.175 (part02. 크게 바라볼 것들 2장. 서투름 *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







세 번째 테마인 <함께 바라볼 것들>은 '함께'라는 의미에 포커스를 두었다. '직선과 곡선'을 이야기하지만 이내 곡선 안의 직선 구간을 살피고 있다.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게 하고 이는 새로운 앞으로 이어지고 있다. 

'너와 나'를 설명하고자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키스>와 르네 마그리트의 <키스>를 소환하였다. 하나의 돌을 최소한으로 조각하여 떨어질 수 없는 연인의 친밀감을 충만하게 표현한 작품과 천을 뒤집어쓴 채 키스를 나누는, 가까우면서도 먼 연인이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한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선명한 대비를 이루지만 왠지 두 작품 모두 와닿았다. 현실과 환상 혹은 상상처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곁에 있어주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와 나', 바로 우리를 정성 들여 그려내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머무르기를 권하는 다정한 속삭임에 고개가 절로 끄떡여 졌다.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느끼고 나누는 찰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큰일이 아니더라도 서투르더라도 달라지고 변할 수 있다는 성장의 기회를 감사히 여길 수 있기를,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빛나는 존재들이 곁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삶에 카이로스적 순간을 하나 더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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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눈사람 펑펑 1
나은 지음, 보람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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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눈사람 펑펑 1/ 나은 동화/ 창비




『팥빙수 눈사람 펑펑』은 나은 작가가 처음으로 출간하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펑펑과 안경점 손님이 전하는 이야기에 보람 그림작가의 귀여운 그림이 더해져 감동이 넘쳐흐르는 어여쁜 동화책이다.








나은 작가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눈사람과의 우정이 눈사람 마을과 눈사람 펑펑을 탄생시켰다. 눈사람 마을의 눈사람 안경점의 주인인 눈사람 '펑펑'은 빙수를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빙수에 얹을 재료를 받고 손님들에게 특별한 안경을 만들어 주는데…….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풍경이 있다. 

얼었던 물줄기가 서서히 녹아 살얼음이 낀 채 물이 졸졸졸 흐르는 초봄의 순간이나, 높이 자란 자작나무들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나, 씽씽 고속도로를 달리다 옆을 보면 고개 숙인 황금색 벼들로 가득 찬 논 등이 그렇다. 그리고 또 밤새 내린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세상이 마음에 쿵~ 닿는 풍경이 그렇다. 

코가 빨개져도, 귀가 땡땡 얼어도 그저 발바닥에 닿는 뽀득뽀득 눈이 마냥 좋은 기억 속 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 바로 『팥빙수 눈사람 펑펑』이다. 책을 펼치면 시원하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그렇게 눈사람 펑펑과 만났다. 




펑펑은 하얀 눈을 뭉쳐서 안경테를, 

투명한 얼음을 깎아서 렌즈를 만들어. 

안경 모양을 갖춘 뒤에 마지막으로 호 불어주면 

안경은 더 단단하게 얼어붙어. 

펑펑의 손길이 닿은 눈 안경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안경을 쓰면 보고 싶은 장면을 볼 수 있지.




눈이 어렸을 때부터 나빠서 수많은 안경을 써본 터라, 펑펑의 신비한 눈 안경에 더욱더 혹했다. 과거든, 미래든, 사람의 마음 속이든 무엇이든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닌 듯 펑펑의 안경점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소풍날 날씨가 궁금한 귀여운 아이, 친구의 슬픈 마음이 궁금한 강아지, 짝꿍이 누가 될까 궁금한 아이까지. 각자 보고 싶은 장면을 보고 펑펑과 고민을 나누는 사이에 답을 찾아간다. 진심 어린 공감과 격려 덕분에 우리 친구들이 한 걸음 나아갔다.





"꿈꾸는 건 누구에게나 자유란다. 

상상하면 돼. 그럼 무엇이든 가능하지."


"은이는 이제야 알 것 같았어. 마음을 주고받는 게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말이야."


"작은 추억이 모이면 행복한 기억이 되기도 해. 

작고 가벼운 눈을 뭉치면 

커다란 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펑펑은 손님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헤아려 보고픈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안경을 제작한다. 경청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 시간 속에서 가슴 훈훈하고 다정한 순간순간들이 쌓여갔다. 펑펑도, 손님도 소중한 것을 깨닫는 게 되는 만남이라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신비한 경험을 지켜볼 수 있는 나도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손님들 이야기들 사이에 펑펑에게 찾아온 인연은 달콤하고 시원하고 올려진 재료 따라 맛이 달라지는 놀라움 가득한 그것, 딱 빙수 같다.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이 살포시 들은 소원을 살짝궁 이루어주는 기적 같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소원을 이루어가는 데에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눈사람 안경점'이다. 그 사이 또 어떤 사연을 지닌 손님이 찾아올지 기대된다. 



"보고 싶은 장면이 있나요? 

그렇다면 팥빙수산 봉우리 눈사람 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눈사람 안경점'으로 놀러 오세요."


똑똑. 

어서 오세요. 펑펑과 스피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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