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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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시대다. 가와무라 겐키는 《4월이 되면 그녀는》에서 타인과의 사랑은 분명 번뇌의 연속임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지 현실감있게 전하는 동시에 인생에서 '사랑'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잔잔하게 그려낸다.

 

수의사 야오이는 약혼남과 파혼하고 정신과 의사 연하남 후지시로에게 왔으나, 9년 만에 후지시로의 전 여자친구 하루로부터 편지가 오면서 야요이는 결혼을 앞두고 돌연 잠적한다. 후지시로는 죽음을 앞둔 하루의 편지를 야요이가 읽고 떠났음을 안 뒤에서야 야요이와의 관계에서 상실된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되는데...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지금 여기로 밀려드는 파도 같은 그 감정은 입에 담은 순간부터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상대의 반응에 마음이 흔들린다. 슬픈 결말을 피하고 싶기에 마음은 혼란스럽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랑을 한다. 왜일까.

《 4월이 되면 그녀는 》, 가와무라 겐키

 

저자 가와무라 겐키는 '사랑'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를 걱정한다. 불과 몇 해전만 하더라도 결혼은 안해도 연애는 했다면, 이제는 연애마저 안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로 대개 경제적인 원인을 꼽는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여성일수록 현재의 자유로움을 결혼이라는 굴레에 가두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미루기도 한다. 우리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걸까?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몇 번씩이나 결혼한 사람,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 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안 하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어느 쪽에도 들어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략)

역시 난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한 거에요. 그런데도 누군가와 계속 함께한다니, 그건 좀 무리 아닐까요?"

"그런데도 결혼하는 건 다들 외로워서야. 우쭐거리며 큰소리치는 척할 뿐이지, 혼자가 무서운 거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자는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랑 받았다'며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또한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이 결국 끝나는게 당연함을 안다면, 한 순간에 불과한 사랑이 아니라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오래된 연인들은 '사랑'의 설렘보다 익숙함과 정으로 만난다. 사랑의 감정이 무뎌진 채 결혼을 해도 행복할지 고민하는 현실적인 남녀의 연애사에 하루의 편지를 통해 프라하, 유우니, 인도를 넘나드는 영상미가 더해지며 《4월이 되면 그녀는》 의 1년이라는 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누군가는 일상에서 사랑으로 도피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한다. 《4월이 되면 그녀는》 판타지적인 연애소설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좋았다.

 

현실감 있는 캐릭터 덕분에 6년 전에 출간된 책이 새 옷을 입고 나왔음에도, 현재의 우리나라 실정과 더 비슷해서인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혼 남녀라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연애소설이다.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느새 몸속으로 침투하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난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은 사라져간다. 열이 났던 게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온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 p.58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한순간이란 걸 지금은 알아요.

그때의 난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었어요. 너무나 어리고 무방비했죠. p.77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무서워요.

미워하는 사람보다 곁을 지키면서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가혹하게 상처를 입히니까. p.117

 

사랑을 끝내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손에 넣지 않는 것이다.

절대로 자기 것이 되지 않는 것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p.186

 

그런데 내 생각은 그래요.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고독해진다고.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p.232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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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유
J. S. 먼로 지음, 지여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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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느 날 갑자기 도플갱어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면 어떨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디 아더 유》는 도플갱어는 과연 초인식자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숨 막히는 숨바꼭질로 초대한다.

 

'그는 내 인생을, 나, 당신, 집, 회사, 내가 이룬 모든 것,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전부 차지하게 될 거야. '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는 1% 초인식자 케이트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케이트는 사고 후, 남자친구 제이크가 낯선 여성과 키스하는 CCTV 장면을 본 케이트는 이별을 통보하고, 우연한 만남으로 성공한 연하남 롭과 새로운 연애에 빠진다. 29살에 이미 부와 성공을 이룬 롭이지만, 과거에 만났던 도플갱어의 협박 때문에 불안에 사로잡혀 강박증에 시달린다. 롭과 함께 지내던 케이트는 뇌기능이 회복될수록 다정하던 롭에게서 낯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는 케이트의 망상일까? 롭의 도플갱어일까?

 

약을 탄 커피, 제이크의 화재를 비롯해 주변에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제이크는 케이트의 사고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경찰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케이트의 의문의 사고 그리고 지난 6개월간 실종된 11명의 초인식자들. 과연 우연일까? 수사를 진행할수록 점점 범죄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 모든 일들은 길모어 마틴이 영국에 들어온 이후 발생한 사건들이라는 것. 도플갱어의 파멸이 시작된 것인지,

 

도플갱어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있어요. p.483

 

스릴러 소설의 독자라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범인을 색출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권선징악이 실현될 때 진정한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소설 속 경찰인 사일러스를 아침마다 일어나게 만드는 힘, 경찰 일을 하며 느끼는 만족감처럼 말이다.

 

책장을 빨리 넘기다가 종이가 찢어졌다는 리뷰가 인상적이었던 심리 스릴러 《디 아더 유》, 이제 J.S. 먼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등재된 또 한 명의 작가가 되었다. 초인식자와 도플갱어라는 소재도 신선하지만, 600여 페이지의 두터운 분량도 금세 읽어버릴 수밖에 없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압권이다.

 

만일 《디 아더 유》 읽으실 예정이라면, 늦은 밤 책을 펼치지 마시기를 추천한다. 아니면 다음날은 필히 휴일이어야 함. '롭'의 정체가 궁금해 책장 넘기기를 멈추기 어려울 테니까. 페이지터너 시간 순삭 소설 인정!

 

나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러나 전 세계에 나를 닮은 3명의 도플갱어가 살아간다고 했던가. 이제는 디지털 세상이라 SNS로 도플갱어 찾기가 더 쉬워졌음에 소름이 쫘악 끼친다. SNS에 사진 올리기 무서운 세상,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도플갱어 부디 행복한 삶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인간을 나락으로 이끄는 것은 불안이 아닐는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케이트의 서사에서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본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물심양면 도울 누군가가 있다면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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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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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 소개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소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미친 속도감에 압도되어 순삭 읽혀버리는 페이지터너 적은 분량이라 아쉬울 뿐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성에 젖어드는 소설이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세 편의 단편 소설로, 고급 맨션에 홀로 사는 여인, 결혼 상대를 찾는 여인,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여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술사 출신 가미오 다케시가 도쿄 에비스 골목에 위치한 '트립 핸드' 바를 운영하며 남다른 센스로 손님들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

환상의 여자

 

부유한 노인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가 하면, 썸남의 의도적인 술수로 위기에 처한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고, 위태로운 부부와 자녀 그리고 위태로운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까지 복잡 미묘한 이 시대에 불완전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블랙 슈트의 가미오는 그들의 인생 리셋을 위해 사건을 재치 있게 해결하며 재미를 선사한다.

 

"생각해 봤는데, 난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지도 몰라." 포크를 쥔 손을 내려놓고 유즈키가 말했다. "나랑 만나지 않는 동안에,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전부라 생각했지."

"보통 그렇지. 그걸로 된 거 아냐?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

p.198

 

"무엇이 행복이라 여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하지만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노 씨에게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피 흘릴 것도 각오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죠. 안 그런가요?" p.228

 

살인 사건 없이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반전과 사건의 서사는 시간 가는 것을 잊게 만든다. 게다가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 그리고 이면의 진실을 맛깔나게 구현하는 그의 탁월함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듯.

 

 

마지막 『환상의 여자』는 우리의 정서와 조금 차이가 있어 공감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것일 뿐, 각자의 위태로운 삶에서도 지켜내는 무언가에서 마음이 뜨거워진다. 아이를 존중하는 부성애는 드라마 『슈롭』에서 김혜수의 엔딩 장면이 연상되었고, '환상의 여자'의 친구를 보며 과연 나를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할 친구는 누구일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재미가 배가되는 것은 기정사실. "우리 만남에 건배!"라는 문장은 전작 《그대 눈동자에 건배》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블랙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 등장했던 블랙 쇼맨과 트립 핸드가 주요 배경이자 사건의 해결사라고 하니 리스트에 담아놓고 읽어봐야겠다.

 

다작하는 작가라 1년에도 몇 권씩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블랙쇼맨 시리즈도 기대해 본다.

 

장르 소설 마니아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애독자들이라면 최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설렐 터.

평소 책장이 잘 안 넘어가 소설 한 권 완독이 어려운 분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시간 순삭의 경험을 선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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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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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검증을 거친 작품을 읽는 것도 의미 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미공개 작품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블루 & 그린》은 『자기만의 방』으로 스무 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더욱 의미가 있다.

 

여성으로서 경제적 자립과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과 사교계의 명사 댈러웨이 부인이 바느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댈러웨이 부인』처럼 《블루 & 그린》 역시 1920년대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전으로 영미 문학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녀가 평생 집필한 50편의 단편 중 페미니즘 요소, 고독사, 행복, 여성 퀴어 등을 다룬 한 페이지 분량의 단편부터 중단편 등 18편이 수록되어 있어 울프의 다양한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군중 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보다

더 외로운 순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불가사의한 V 양 사건 p.85

 

<본드 가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을 재회할 수 있어 버지니아 울프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직감 같은 것이 있어서,

아무리 애써 봐야 소용없다고

속삭일 때가 있다.

그런데 휴 같은 남자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그걸 존중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거지.

클라리사는 생각했다.

본드가의 댈러웨이 부인 p.48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하기에 가끔 난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그녀의 흐름에 맡기고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작품에 빠져들게 된다.

 

하버드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가 중 한 명이 자 그녀의 작품은 죽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에서 빠지지 않듯, 《블루 & 그린》도 고전 문학 탐독 가나 여성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읽어봐야 할 도서로 자리하지 않을까.

 

그리고 《블루 & 그린》은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다는 큰 매력을 지닌 책이다.

깔끔한 번역 덕분에 맥락이 끊기지 않을뿐더러 널찍한 자간과 행간은 가독성을 높인다.

 

초록이 사라지고, 파랑이 덮치는 초록과 파랑의 흐름에 맡기고, 그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기본 메시지에 행복의 환희를 만끽하면서 말이다.

 

행복에는 항상 이렇게 멋진 환희가 따른다.

이는 정신적 고양이나 넘치는 충만,

칭찬, 명예, 건강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상태,

무아지경, 황홀경 같은 것이다.

행복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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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별들이깨지지 않은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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