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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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소설의 대가 오가와 이토가 20대에 집필했다는 《초초난난》. 저자 특유의 서정적인 필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에 대해 그려냈다.

 

시오리 씨하고 있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얼마 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

초초난난 中 p.88

 

앤티크 기모노 가게를 운영하는 시오리는 1월의 어느 날 가게를 찾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닮은 남자에게 마음이 간다. 벚꽃 잎이 휘날리는 봄날 맞닿은 보드라운 손의 촉각을 시작으로 여름날 불꽃놀이의 낭만을 만끽하고, 달맞이하던 가을밤 그리고 겨울까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하루이치로씨는 맛있는 것을 보면 시오리가 생각나 챙겨온다. 그렇게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시오리의 일상에 스며드는데...

 

부모님의 이혼으로 삐뚤어진 장녀가 아빠를 닮은 남자에게 따스함을 느끼는 현실성 있는 스토리에 가독성도 좋아 순식간에 읽었다.

 

'오층 탑에서 동반 자살을 결심한 불륜 커플을 상상하며, 몸과 몸,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녹아들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행복일지 모르겠다.'라며 언젠가 하루이치씨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내내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아쉬워하는 시오리의 마음이 여실히 전해져서일까.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의 속삭임에도 미워할 수 없었고 너무 빨리 넘어가는 책장에 다 읽어간다는 사실이 아쉬운 소설이었다.

 

 

오가와 이토는 맛있는 음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글도 다채롭고 맛깔난다. 이어질 수 없는 사람을 계절의 변화로 연결 지어 봄 내음으로 시작되어 푸르러지다 또 다시 봄을 기다리며 마무리되는 《초초난난》.『라이온의 간식』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만, 상처를 마주하는 주인공들을 마주하면서 따스한 위로를 받게 하는 그녀의 색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녀의 나머지 작품들도 언젠가 다 읽어봐야겠다.

 

 

은은한 힐링 소설, 식도락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슬픔이

내 인생의 행복을 돋보이게 해주기 위한

어둠이라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짙은 어둠이었다.

초초난난 中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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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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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계절이라는 것이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계절에 비유한 미즈무라 미나에의 장편소설 《어머니의 유산》은 딸의 운명은 어머니에게 달려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그건 여자의 꿈 이야기야.

너는 신데렐라야, 우리 세대의

어머니의 유산 中 p.530

 

'오십 대에 어머니만이 아니라

남편까지 없어지고,

금화가 지천인 큰 부자니까.

다른 여자가 들으면 화날 거야'

 

프랑스 유학 시절 연애하던 남자와 결혼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미쓰코는 엄마에게 인생을 휘둘린 언니와는 달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이기에 불행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랜 병간호에 지쳐만 간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불륜까지 알게 되는데...

 

세상은 어느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180° 달라진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꼈다. '안 좋은 일은 결코 한 번에 하나씩 오지 않고 휘몰아치는구나.'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어머니의 죽음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인생 2 막을 준비하는 미쓰코의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하게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남편의 외도로 인해 받았을 충격에도 다시 자신의 살길을 모색했기 때문이었을 터.

 

어려서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인생이었듯, 미쓰코는 어머니의 유산은 하늘에서 내려준 대단한 선물이라 여긴다. 어머니의 유산이 있었기에 이혼해도 가난해지지 않는다란 생각에 남편과의 이별을 결심할 수 있었으니까. 여자에게 특히나 중년 여성에게 경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짚어주는 대목이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라고는 하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의 임종을 기다리다 회복하자 실망하는 딸의 모습 그리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임종을 바라던 미쓰코와 나쓰코가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기 보다 눈앞의 엄마의 고통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여 고통스러워 자유를 갈망하는 거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를 중심으로 『적과 흑』, 『금색야차』 등 고전 문학이 곳곳에 등장하며 《어머니의 유산》을 다채롭게 채워간다. 미쓰코는 홀로 떠난 여행에서 외가의 비밀을 알게 되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이혼을 결심한 그녀에게 언니는 자신의 상속분을 내어주며 그간의 미쓰코에게 내재된 마음의 앙금을 해소시킨다. 엄마와 언니와 마음으로 화해한 미쓰코는 진정한 자유를 쟁취한 게 아닐까. 어머니의 유산이 하늘의 선물이라는 저자의 해석이 적확한 비유인 것 같다.

 

늙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딸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어머니를 가져도 수많은 딸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순간쯤은 찾아오는 게 아닐까. 그것도 어머니가 늙으면 늙을수록 그런 순간은 빈번히 찾아오는 게 아닐까. (중략) 게다가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고통 -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p.491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은 응어리처럼 남는다.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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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 - 의지나 열정은 필요 없다 단순한 반복이 단단한 인생을 만든다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장은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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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반복이 단단한 인생을 만든다'라고 강조하는 IT 회사 CEO 호리에 다카후미는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자기계발서 《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에 과장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 노하우는 크고 작은 다양한 변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수중에 있는 능력을 최대화해 잘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중에 있는 능력'이란 무엇일까?

 

수중에 있는 능력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센스가 아니라, 평소 사고 방식과 행동이 몸에 베인 좋은 습관이라고 전한다. 저자의 성공노하우를 담은 《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에서 자신의 좋은 습관을 소개하고 습관을 익히기 위한 간단한 방법을 제시한다.

 

1. 끝까지 해내기 위한 행동 습관

2. 아이디어를 손에 넣기 위한 습관

3.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습관

4.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습관

5.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습관

 

저자는 예민한 성격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체질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일도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한번 불안함을 느끼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편이란다. 본인이 스트레스 내성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여러 가지 습관들을 소개해 관심이 갔다. 그는 최고의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제행무상'을 꼽았다.

 

제행무상은 불교의 세 가지 금본교의인 삼법인 중 하나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세상에 모든 것은 움직이고 흘러가며 변화한다. 우리가 과거에 사로잡힌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기에 후회하고 원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절대적인 스트레스 관리는 나에게 존재하는, 지금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향해 몸을 맡긴다고 한다. 더불어 흐름에 순응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덧붙인다.

 

스스로 '이렇게 하고 싶다'라며 흐름에 올라탄 적은 별로 많지 않다. 결국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물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모든 것은 바뀌어 간다. 흘러간다. 나는 그것에 순응한다. 그것이 즐겁다.

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 中 p. 168

 

즉, 세상 일이 내 마음같지 않기에 어깨의 힘을 빼고 눈앞의 일에 열중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저자는 간단한 습관이 단순한 반복으로 이어지면 인생이 단단해진다라고 전하며, 의지나 열정보다 간단한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거창한 노하우는 따라하기도 어렵고, 끝까지 완수하기도 힘들다.

 

지금 나의 작은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그 습관들이 모여 무기가 되며 나의 미래가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좋은 습관을 들이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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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 - 깜빡하는 당신을 위한 효율적인 두뇌 습관
가토 토시노리 지음, 황세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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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MRI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진단 가능할 정도로 뇌는 그 사람을 대변해 준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고민이라면, 《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에서 소개하는 나이에 맞는 뇌 사용법에 대해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뇌의 최전성기는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직장인이 되고 갑자기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학생 때 더 많이 공부해둘걸 후회가 된다면,

뇌가 성숙해진 증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배우기에 적합한 때가 되었다는 말과 같다.

 

단, 학생과 어른은 뇌의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학창 시절의 공부법으로 공부하는 것은 어른에게 적합한 공부법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아울러 뇌는 평생 성장하며, 뇌의 능력을 향상하는 요인은 뇌세포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발달이기 때문에 뇌 주요 부위의 활성화를 극대화해서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외우고 싶을 때는

외우려고 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쪽으로 머리를 써야 합니다.

뇌 번지로 설명하자면

이해계 뇌 번지를 써야 합니다.

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 中 p.95

 

저자는 《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을 통해 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뇌의 성장 법칙에 따라 머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뇌세포는 특화된 분야로 집단을 형성해 거점을 마련하는데, 저자는 이를 '뇌번지'로 명명하여 8가지 주요 뇌번지를 활성화하기를 권한다.

 

1. 사교계 뇌번지 : 사고·의욕·상상력 등을 관장하며, 무언가를 생각할 때 작용한다.

2. 이해계 뇌번지: 눈이나 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이해한다. 모르는 내용을 추측해 이해하려 할 때도 작용한다.

3. 기억계 뇌번지: 무언가를 외우거나 떠올릴 때 작용한다. 정보를 축적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주위에 위치한다.

4. 감정계 뇌번지: 희로애락을 느끼고 표현한다. 평생 계속 성장하며, 늦게 노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뇌의 여러 부위에 위치한다.

5. 전달계 뇌번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사소통한다.

6. 운동계 뇌번지: 손·발·입 등 신체를 움직이는 일 전반에 관여한다. 뇌 안에서 가장 먼저 성장을 시작한다.

7. 시각계 뇌번지: 눈으로 본 영상이나 사진, 읽은 문장을 뇌에 축적한다.

8. 청각계 뇌번지: 귀로 들은 말이나 소리를 뇌에 축적하기 위해 작용한다.

 

여덟 가지 뇌번지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뇌의 주인인 우리가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평생 성장하는 뇌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 부분에 과도한 업무를 강요해도 안 되고, 방치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뇌번지의 톱 3인 '사고계 · 이해계 · 기억계' 뇌번지를 포함해 다양한 뇌번지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뇌의 신경 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지만, 신경 세포를 서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나이에 상관없이 성장한다.

 

학습력 높이는 팁으로, '세타파가 나올 때는 학습 속도가 2~4배가 된다는 행동상의 데이터'를 소개하며 뇌가 좋아하는 보상을 활용하기를 권한다. 연구에 따르면 평소에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과 체력의 25~50%만을 사용해 원하는 지식을 저장 가능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카페라테를 좋아하면, 공부할 때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행복한 기분으로 공부에 임하거나 시험에 합격하면 보상으로 줄 상을 미리 정해놓으라 권한다. 특히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할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 등을 가까이에 두면 세타파가 방출되어 뇌는 보너스 타임으로 인식해 기억력이 향상된다고 전한다.

 

뇌의 최전성기가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라는 저자의 말이 어른의 뇌 학습법을 익혀보자 결심했던 부분이다. 《사소하지만 굉장한 어른의 뇌 사용법》에는 평소 뇌번지를 많이 활용해 저절로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을 두루 소개한다. 특히 뒷부분에 수록된 연령별 뇌 사용 훈련법을 참고해 자신만의 학습법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뇌가 잘 작동하면 돌아오는 보상은 오롯이 나의 차지다. 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요 뇌번지를 익혀 어른의 뇌 학습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나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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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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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말 감염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안정화를 찾아가는 시기에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페퍼스 고스트》는 '비말 감염'을 통해 타인의 미래를 보는 주인공이 테러사건을 저지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초능력

일명 '선공개 영상'

비말 감염된 타인의 다음 날 체험할 일부 장면을 영화의 예고편처럼 본다.

 

인간은 똑같은 인생을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요컨대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이나 곤경에 빠진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언젠가 또 같은 꼴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막막할뿐더러 헛수고한 느낌이라 정신이 아득해진다. 뭘 어찌해도 소용없다. 다 때려치워라.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허무주의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사카 고타로 《페퍼스 고스트》 p.106

 

《페퍼스 고스트》는 인간은 똑같은 인생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바탕으로 크게 세 가지의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베테랑 작가의 필력으로 맛깔나게 버무렸다. 카페 테러 유가족 모임인 '동우회'의 폭탄 테러, 비말 감염을 통한 초능력의 발현 그리고 소설 속의 또 다른 소설의 고양이를 학대한 사람을 응징하는 '고지모 사냥꾼'이야기가 교차하다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재미가 극대화된다.

 

다이아몬드 카페 테러사건으로 절망의 낭떠러지에 선 이들이 만나 결심한다. 그들의 세계를 끝장내기로. 소설이기에 너무 딱딱 들어맞는 우연들이지만, '마치 소설 속 세계 라면 몇 번을 읽든, 어디서부터 읽든 일어나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야말로 영원히 똑같은 스토리 속을 살아가는 셈이다.'라며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도 해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단과 학부형의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이었다. 얼마 후 학부형의 실종으로 단과 동우회가 만나게 되고, 고지모 사냥꾼들이 사람을 찾다 우연히 단을 만나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살아온 결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독과 허망함이었어.

이사카 고타로 《페퍼스 고스트》 p.327

 

사건을 이어나가는 중학교 국어 교사 단은 아버지로부터 '비말 감염' 초능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미래를 미리 알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상에도 미래가 보이는 건 의외로 고통스럽다는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의 경우, 영상의 등장인물이 일면식도 없어 도와주고 싶어도 충고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무력감이 쌓여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되도록 담아두지 말고 잊어버리도록 노력할 뿐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단은 자신의 영상에서 본 테러 사건을 막기 위해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위험을 자처하며 이타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참담함을 겪었을 때, 제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며 살아갈지라도,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영혼을 뒤흔들만한 행복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사카 고타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선공개 영상'을 봄으로써 사전에 방지할 수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원회귀 사상에 갇혀있기보다 한계를 뛰어넘어 고차원적인 인간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녹아있었다.

 

인생을 살며 영혼이 떨릴 만한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그 때문만이라도 영원한 인생이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말이죠. 만약 그런 삶을 살았다면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바로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듯이요.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사카 고타로 《페퍼스 고스트》 p.332

 

 

이사카 고타로는 30년 만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었다며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쏙쏙 들어왔다고 한다. 《페퍼스 고스트》에 영원회귀 사상이 중심축을 이루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초반부에는 고사모 집단의 과격한 횡포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고양이 학대가 일본에서 굉장히 큰 이슈였음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인간에게 말도 안 되게 대갚음해 주는 모습 역시 인과응보겠지?싶었으나, 홀연히 사라지는 장치로 설정한 것 역시 그의 의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간은 본디 망각의 동물이라 누군가가 처한 아픔을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물론 자기 삶을 살아가기도 벅차 타인의 아픔에 마음을 쓰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담담하게 전한다.

 

나를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첫 발을 담게 한 작품이 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였다. 그의 작품을 10여 년 만에 다시 읽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중반부 소설 속의 소설이 현재 시점과 합쳐져 허상과 현실의 모호함 속에서 미래의 선을 향해 하나씩 발 맞춰지는 스토리라인이 과연 대작가 답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초능력의 발현이 '비말 감염'이라는 독특한 전개는 물론이고,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현실에 불쑥 등장했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등 트릭을 사용해 관객 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연극의 무대 장치 기법 '페퍼스 고스트'를 절묘하게 녹여내며 제목의 이유를 끄덕이게 하는 천재 작가의 매력을 아낌없이 쏟아낸다.

 

《페퍼스 고스트》는 시사성, 고발성, 작품성, 오락성 어느 하나 놓치지 않은 작품이다.

미스터리 소설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올여름 펼쳐 보시기를 추천한다.

 

책장을 덮고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책장의 철학서 코너를 보니, 니체의 책이 제법 보인다. 언젠가 니체의 책들을 쌓아놓고 다시 니체에 빠져봐야지...

 

무튼, 매일매일을 기쁨으로 채우며 살기로!

 

이 세계의 비애는 깊다.

기쁨은 깊은 고뇌보다 더 깊다.

비애가 말한다. 사라져라!

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을 소망한다.

이사카 고타로 《페퍼스 고스트》 p.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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