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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늙어간다는 것 - 80대 독일 국민 작가의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유영미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5월
평점 :
2024년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 《나로 늙어간다는 것》.
오래 살고는 싶지만, 아무도 늙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강단 있는 여든다섯의 여성 작가가 전하는 '나이 듦'에 대하여.
역자는 후기에 '책 자체가 다양한 꽃들로 수놓아진 부케'같다 평하는데, 공감 갔던 대목이다. 저자 엘케 하이덴라이히는 처음 출판사에서 도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했다는데, 무거운 주제를 다채롭게 풀어나가는 저자의 필력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 커버가 나오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한 저자였기에 청춘은 방황의 시절을 겪기도 했지만,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다가 80대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는 삶. 그녀에게는 단단함이 있었고, 그것은 책을 가까이한 그녀의 독서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유하는 것보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의 행복을 말하는 저자가, 옷장을 점점 비워내면서도 아가 시절 엄마가 감싸주던 목욕 수건을 버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품에 들어 있던 제비꽃 향 사탕 케이스를 간직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가 하면, 집에 층층이 쌓아온 책장들에 흐뭇해하는 지독한 애서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징징대고 불만투성이 사람들은 반드시 피하라는 저자의 재치까지.
단순히 나이 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닌, 나의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며 사는 작가의 모습은 나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친구들과 많은 밤을 웃고 사랑하며 주름을 얻었다는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학창 시절을 함께하던 소꿉 친구들에게 살포시 건네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그 편이 건강에 유익하다고 하므로."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는 것'. 행복은 언제나 순간이고, 이 순간들이 모여 나의 삶이 행복으로 채워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