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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뽑은 올해의 책 《트러스트》는 월가의 천재적 투자가와 아내의 이야기를 네 명의 시선으로 전개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트러스트》는 네 편으로 구성된 소설로, 1920년 대 월가의 전설적인 거물 앤드루 베벨과 그의 아내 밀드레드 베벨에 대한 이야기를 네 명의 시선으로 전개한다. 해럴드 배너의 '채권', 앤드루 베벨의 '나의 인생', 아이다 파르텐자의 '회고록을 기억하며', 밀드레드 베벨의 '선물'까지 화자가 달라질 때마다 무언가 조금 다르지만, 서로 맞물려가며 퍼즐처럼 맞춰진다. 이들의 진실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신뢰할 수 있을까.
1920년 대공황에서 더 큰 번영을 이룬 앤드루 베벨의 성공 신화를 소설가 해럴드 배너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채권'을 완성한다. 앤드루 베벨을 미국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작전으로 자신의 수익을 극대화한 인물로 비난하고, 밀드레드는 남편의 부를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사회에 환원하였으나 정신병에 걸려 죽는 비극적인 결말로 묘사한다. 2부 앤드루 베벨은 자서전을 통해 밀드레드는 탐서가이자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는 쇠약한 여인으로 그려내 아내의 명예를 회복하고, 금융 사업가에 대해 예찬하며 앤드루가 사업가로서 출중한 능력을 지님을 주장한다. 3부 회고록은 대필 작가의 시선으로 자서전은 앤드루의 입맛에 맞춘 글임을 고백하며, 그가 숨긴 진실이 무엇인지 세상에 드러낸다. 마지막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를 통해 밀드레드 베벨의 실체가 공개된다.
죽기 전까지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던 앤드루,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밀드레드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앤드루 베벨은 왜 그리도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를 감추려 했으며 밀드레드 베벨이 총명하지만 음악과 소설을 좋아하는 여인으로 묘사하려고 했는지. 명예를 회복시키기보다 평범한 아내상으로 그려내기를 바랐던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니까 말이다.
저자는 인간이 부에 대해 열망하는 이유를 자연은 아무것도 안정적이지 않으므로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돈과 성공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러스트》에서 결정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앤드루 베벨을 통해 돈과 사랑 그리고 명예까지 지키고 통제하려고 하는 인간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주며, 마치 범죄 현장이 없는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트러스트》는 읽을수록 매력 있는 소설이다. 금융 시장을 조망하는 앤드루의 통찰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소설을 찾는다면,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
p. 173
모든 금융업자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금융이란 인생의 모든 측면을 관통하는 실이기 때문이다.
p. 201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어야 한다.
p.201
과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건네주었든, 정해진 형태가 없는 미래라는 블록으로부터 현재를 조각해 내는 건 우리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