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더 유
J. S. 먼로 지음, 지여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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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느 날 갑자기 도플갱어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면 어떨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디 아더 유》는 도플갱어는 과연 초인식자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숨 막히는 숨바꼭질로 초대한다.

 

'그는 내 인생을, 나, 당신, 집, 회사, 내가 이룬 모든 것,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전부 차지하게 될 거야. '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는 1% 초인식자 케이트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케이트는 사고 후, 남자친구 제이크가 낯선 여성과 키스하는 CCTV 장면을 본 케이트는 이별을 통보하고, 우연한 만남으로 성공한 연하남 롭과 새로운 연애에 빠진다. 29살에 이미 부와 성공을 이룬 롭이지만, 과거에 만났던 도플갱어의 협박 때문에 불안에 사로잡혀 강박증에 시달린다. 롭과 함께 지내던 케이트는 뇌기능이 회복될수록 다정하던 롭에게서 낯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는 케이트의 망상일까? 롭의 도플갱어일까?

 

약을 탄 커피, 제이크의 화재를 비롯해 주변에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제이크는 케이트의 사고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경찰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케이트의 의문의 사고 그리고 지난 6개월간 실종된 11명의 초인식자들. 과연 우연일까? 수사를 진행할수록 점점 범죄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 모든 일들은 길모어 마틴이 영국에 들어온 이후 발생한 사건들이라는 것. 도플갱어의 파멸이 시작된 것인지,

 

도플갱어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불길한 징조로 알려져 있어요. p.483

 

스릴러 소설의 독자라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범인을 색출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권선징악이 실현될 때 진정한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소설 속 경찰인 사일러스를 아침마다 일어나게 만드는 힘, 경찰 일을 하며 느끼는 만족감처럼 말이다.

 

책장을 빨리 넘기다가 종이가 찢어졌다는 리뷰가 인상적이었던 심리 스릴러 《디 아더 유》, 이제 J.S. 먼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등재된 또 한 명의 작가가 되었다. 초인식자와 도플갱어라는 소재도 신선하지만, 600여 페이지의 두터운 분량도 금세 읽어버릴 수밖에 없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압권이다.

 

만일 《디 아더 유》 읽으실 예정이라면, 늦은 밤 책을 펼치지 마시기를 추천한다. 아니면 다음날은 필히 휴일이어야 함. '롭'의 정체가 궁금해 책장 넘기기를 멈추기 어려울 테니까. 페이지터너 시간 순삭 소설 인정!

 

나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러나 전 세계에 나를 닮은 3명의 도플갱어가 살아간다고 했던가. 이제는 디지털 세상이라 SNS로 도플갱어 찾기가 더 쉬워졌음에 소름이 쫘악 끼친다. SNS에 사진 올리기 무서운 세상,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도플갱어 부디 행복한 삶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인간을 나락으로 이끄는 것은 불안이 아닐는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케이트의 서사에서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껴본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물심양면 도울 누군가가 있다면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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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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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 소개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소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미친 속도감에 압도되어 순삭 읽혀버리는 페이지터너 적은 분량이라 아쉬울 뿐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성에 젖어드는 소설이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세 편의 단편 소설로, 고급 맨션에 홀로 사는 여인, 결혼 상대를 찾는 여인,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여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술사 출신 가미오 다케시가 도쿄 에비스 골목에 위치한 '트립 핸드' 바를 운영하며 남다른 센스로 손님들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

환상의 여자

 

부유한 노인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은 젊은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가 하면, 썸남의 의도적인 술수로 위기에 처한 여성이 등장하기도 하고, 위태로운 부부와 자녀 그리고 위태로운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까지 복잡 미묘한 이 시대에 불완전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블랙 슈트의 가미오는 그들의 인생 리셋을 위해 사건을 재치 있게 해결하며 재미를 선사한다.

 

"생각해 봤는데, 난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지도 몰라." 포크를 쥔 손을 내려놓고 유즈키가 말했다. "나랑 만나지 않는 동안에,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전부라 생각했지."

"보통 그렇지. 그걸로 된 거 아냐?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

p.198

 

"무엇이 행복이라 여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하지만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노 씨에게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피 흘릴 것도 각오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죠. 안 그런가요?" p.228

 

살인 사건 없이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반전과 사건의 서사는 시간 가는 것을 잊게 만든다. 게다가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 그리고 이면의 진실을 맛깔나게 구현하는 그의 탁월함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듯.

 

 

마지막 『환상의 여자』는 우리의 정서와 조금 차이가 있어 공감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것일 뿐, 각자의 위태로운 삶에서도 지켜내는 무언가에서 마음이 뜨거워진다. 아이를 존중하는 부성애는 드라마 『슈롭』에서 김혜수의 엔딩 장면이 연상되었고, '환상의 여자'의 친구를 보며 과연 나를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할 친구는 누구일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재미가 배가되는 것은 기정사실. "우리 만남에 건배!"라는 문장은 전작 《그대 눈동자에 건배》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블랙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 등장했던 블랙 쇼맨과 트립 핸드가 주요 배경이자 사건의 해결사라고 하니 리스트에 담아놓고 읽어봐야겠다.

 

다작하는 작가라 1년에도 몇 권씩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블랙쇼맨 시리즈도 기대해 본다.

 

장르 소설 마니아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애독자들이라면 최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설렐 터.

평소 책장이 잘 안 넘어가 소설 한 권 완독이 어려운 분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시간 순삭의 경험을 선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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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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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검증을 거친 작품을 읽는 것도 의미 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미공개 작품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블루 & 그린》은 『자기만의 방』으로 스무 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더욱 의미가 있다.

 

여성으로서 경제적 자립과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과 사교계의 명사 댈러웨이 부인이 바느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댈러웨이 부인』처럼 《블루 & 그린》 역시 1920년대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전으로 영미 문학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녀가 평생 집필한 50편의 단편 중 페미니즘 요소, 고독사, 행복, 여성 퀴어 등을 다룬 한 페이지 분량의 단편부터 중단편 등 18편이 수록되어 있어 울프의 다양한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군중 속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보다

더 외로운 순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불가사의한 V 양 사건 p.85

 

<본드 가의 댈러웨이 부인>에서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을 재회할 수 있어 버지니아 울프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또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직감 같은 것이 있어서,

아무리 애써 봐야 소용없다고

속삭일 때가 있다.

그런데 휴 같은 남자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그걸 존중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거지.

클라리사는 생각했다.

본드가의 댈러웨이 부인 p.48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개하기에 가끔 난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그녀의 흐름에 맡기고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작품에 빠져들게 된다.

 

하버드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가 중 한 명이 자 그녀의 작품은 죽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에서 빠지지 않듯, 《블루 & 그린》도 고전 문학 탐독 가나 여성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읽어봐야 할 도서로 자리하지 않을까.

 

그리고 《블루 & 그린》은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다는 큰 매력을 지닌 책이다.

깔끔한 번역 덕분에 맥락이 끊기지 않을뿐더러 널찍한 자간과 행간은 가독성을 높인다.

 

초록이 사라지고, 파랑이 덮치는 초록과 파랑의 흐름에 맡기고, 그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기본 메시지에 행복의 환희를 만끽하면서 말이다.

 

행복에는 항상 이렇게 멋진 환희가 따른다.

이는 정신적 고양이나 넘치는 충만,

칭찬, 명예, 건강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상태,

무아지경, 황홀경 같은 것이다.

행복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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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별들이깨지지 않은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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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삶 클래식 라이브러리 2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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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클래식 라이브러리 두 번째 도서 《평온한 삶》은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초기 대표작으로 국내 최초 소개되는 소설이라고 한다.

 

프랑스 남부 뷔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 《평온한 삶》은 제목과는 달리 제롬과 니콜라의 싸움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발단은 소설의 화자 프랑신이 남동생 니콜라에게 삼촌 제롬이 아내를 범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제롬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된 것이다.

 

제롬에 대한 분노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에서 프랑스 남부의 시골 뷔그의 농장으로 쫓겨온 배경에 제롬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신 베르나트는 가족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설상가상으로 남동생의 아내와 동침하는 삼촌이 사라져야 가족이 살아간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롬의 죽음은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남동생 니콜라의 죽음으로 이어지며 1부가 끝난다.

 

2부는 삼촌과 남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프랑신이 뷔그를 떠나 홀로 바닷가에서 상념에 젖어드는 이야기다. 그녀는 니콜라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연인 티엔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상처를 짚어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나는 지금의 나와 천 배는 다를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나 혼자서 그 천 가지 다른 모습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 모습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앞으로 약 서른 해, 서른 번의 10월과 서른 번의 8월을 더 살아야 한다. 나는 그 이야기의 함정에, 그 얼굴과 몸, 그 머리가 파 놓은 함정에 영원히 걸려들었다.

<평온한 삶> 中 p. 108

권태가 남았다. 매번 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권태의 밑바닥에는 늘 새로운 권태를 만들어 내는 샘이 있다. 권태를 통해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때로 새벽에 잠이 깨서 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다. 사물을 부식시키는 힘이 너무 강한 흰색의 빛 앞에서 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바다가 퍼트리는, 너무 순수해서 숨 막히게 만드는 습기 찬 상쾌한 기운이, 이어 새소리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럴 때, 말할 수 없다. 그럴 때, 새로운 권태를 발견한다. 전보다 더 멀리서 온, 하루가 더 담긴 권태다.

<평온한 삶> 中 p. 143

 

마지막 3부는 다시 프랑신이 뷔그로 돌아오며 마무리된다. 제롬과 니콜라의 죽음으로 뷔그를 떠났던 프랑신이 바닷가에서 물에 빠져 죽은 남자 때문에 다시 뷔그로 돌아오게 되는 장면도 우연은 아니다. 연이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자기 때문이라는 타인의 시선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독백은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수치심의 무게가 얼마나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권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권태롭다. 언젠가 권태롭지 않은 날이 오겠지. 머지않았다. 나는 필요조차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평온한 삶이 오고 있다.

<평온한 삶> 中 p. 174

 

'나는 나의 권태의 궁전 속에서 권태를 벗 삼아 지낸다.'라는 문장을 곱씹어 보게 된다. 평온과 권태는 어찌 보면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나날에는 평온한 일상을 꿈꾸지만, 또 별다른 일이 없는 나날에는 무료하고 권태롭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생이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 추와 같다.'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평온한 삶이란, 권태로운 일상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덜어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온전한 안락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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