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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축의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
폴란드 국민 작가 올가 토카르축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태고의 시간들>은 폴란드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상 니케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시사잡지 <폴리티카>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40대 이전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유서 깊은 문학상 코시치엘스키 문학상 등을 수상하여 작품서을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1,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과 냉전 체제와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시공간이 중첩되는 가상의
공간 '태고'에서 벌어지는 야만적이면서 신화적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84편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니에비에스키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태고의 이웃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점령한 군인들, 신과 천사, 죽은자까지 주인공이 되어 개체의 삶의 방식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중간중간 역사적 사건이 등장하는데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인이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학살하는 장면 등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여 태고라는 지명이 가상의 공간임을 잊게 한다.
태고의 시간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고 타국에 지배당했던 폴란드의 역사를 배경으로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부터 점령 당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비극 등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적 사실과 다소 신화적 요소인 마을 주민들의 삶을 엮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기록될 수 없었던 소수의 개인, 여성의 이야기를 강조한다. 탄생부터 결혼, 출산, 노화등 게르노파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남자보다 여자가,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남편보다 아내가 더 빨리 죽는 시절이었다. 여자는 인류가 은밀히 고여 있는 그릇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새가 알을 개고 나오듯 아이들은 여자들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다. 그런 다음 깨진 알은 스스로 붙어 다시 고유의
형태를 회복해야만 했다. 여자가 강할수록 더 많은 아이를 낳았고, 그로 인해 여자는 조금씩 약해졌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나 슬픔이 깃든 삶을 살아가는 미시아, 술취한 남자에게 몸을 팔며 연명하다 아이를 낳고 예언의 능력을 얻은
크워스카, 노파 플로렌틴카, 점령군에게 강간당하고 태고를 떠나는 크워스카의 딸 등 역사의 비극에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에 고향을
떠나는 여인이 어머니의 커피 그라인더를 꺼내 천천히 돌린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어머니의 삶이 딸에게 반복되는 겹겹의 시간들로. 소우주 속에서
되풀이되고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함축하는 저자의 섬세한 터치가 돋보였다. <태고의 시간>은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한 저력을 맛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