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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평점 :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떠날 것이다. 되도록 아주 멀리.
창문으로 언덕과 마을 그리고 호수를 바라보며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무언가 압도되는 <아들의 밤>의 시작이다. 90년대의 북유럽
감성을 오롯이 담아낸 노르웨이 소설 <아들의 밤> 은 2019년 미국 PEN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밤이 깊은 어느 날, 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엄마의 사랑을 갈망하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 욘과 서툰 엄마 비베케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애달픈 서사를 비베케와 욘의 시점을
교차하며 풀어 나간다.
노르웨이의 북쪽에 작은 동네로 이사 온 싱글맘 비베케는 지방 문화 분과의
공무원이다. 비베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강렬하고 진정한 인상을 남기는 두꺼운 책을 옆에 끼고 사는 평온한 삶, 즉 소확행을 원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욘은 비스킷을 먹으며 엄마의 관심을 기다리지만 엄마 비베케를 방해하지 않는 8살 아이다. 욘의 생일을 앞두고 서로가 어디를 가는지
모르는 상황에 각자의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짧은 이야기지만 욘과 비베케를 오가는 시선들에 매료되어 소설에 빠져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구슬을 잃은 적이 있어요.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쇠창살
아래 떨어뜨렸거든요. 아마 이 학년 때였을 거예요. 쉬는 시간마다 거기 서서 들여다봤지만 창살이 너무 무거워 들어 올릴 수 없었어요. 너무
수줍어서 관리인에게 부탁하지도 못했죠. 그때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남자가 말했다.
"지금 시각이면 네 또래 남자아이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어야 하지 않니?"
여자의 목소리는 어둡고 말투는 느렸다. 그녀가 말을 걸 때는 웃는 듯했는데 욘이 그녀를 올려다보니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는데 집 안에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엄마는 곧
돌아올 거예요. 제 생일 케이크를 굽다가 깜박 잊은 게 있어 잠시 외출한 것 같아요."
"곧 네 생일인 모양이구나?"
"네, 내일이면 아홉 살이 돼요 "
엄마가 본인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러 나갔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욘의
모습은 여느 8살 아이와 달라 조금 안쓰럽다.
"너는 이제 다 컸단다. 그러니 어둠을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 내면에 있단다. 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결정해야 해. 계속 겁내고 싶다면 그렇게 될 거야. 그렇지 않다면 다른 뭔가를 생각해야 해.
"
왠지 모를 어두움이 내려앉은 북유럽 감성을 자극한다고 할까. 하얀 가발을 쓴
수상한 여자의 차에서 비베케가 돌아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동네 근처를 배회하면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추운 바깥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 시간, 비베케는 다른 남자를 만나며 하루를 보내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고..
"그래서, 앞으로 당신 앞날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녀가 물었다.
"나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대부분 책에는 시작된 이야기에 이어지는 2부가
있으니까요."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오늘 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장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쪽도 나만큼 잘 알 텐데요. 시작도 안 한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죠." 침묵이 흘렀다.
겨울이 긴, 특히 겨울의 밤이 긴 노르웨이가 배경인 <아들의
밤>은 서정적이면서도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낯선 남자에게 뭔가를 기대하며 집에 돌아가지 않는 비베케와 그런 엄마를 기다리며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욘의 상황과 그들의 마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결말까지. 처음 표지를 보며 막연히 북유럽 소설답게 오로라로 수놓았구나 하며 예쁘다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고 표정을 다시 바라본 내 감정은 바뀌어 있었다. 오로라가 수놓는 밤하늘은 한없이 아름답고 황홀하지만, 그
오로라를 기다리며 보내는 지루하면서도 춥고 기나긴 밤이 엄마를 기다리는 여덟 살 욘의 심정을 투영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