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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일락
이규진 지음 / 하다(HadA) / 2020년 1월
평점 :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이야기 <안녕, 라일락>은 이규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책이다. "사월의 라일락이 담벼락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간판까지 닿아 있었다. 꽃 냄새 가득 담은 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초저녁 풍경에 취했던 것인지도. 석진은 하얀 뺨을 가진 그 여자가 어쩐지 사랑스러웠다. 말도 못 하는 그 여자가." 작은 꽃 가게를 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년과 그 앞에 나타난 초절정 꽃미남 록커,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현재와 과거의 인연들의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따스한 봄날 같은 기분이 든다.
"왜 도촬해요?"
"눈앞에서 찍었는데 무슨 도촬? 아빠가 아들 찍는 건 도촬이 아니야. 육아일기 같은 거지. 아빠가 영원히 널 기억하려는 거야. 오... 방금 그 자세 멋지다. 프로페셔널하다, 우리 일락이!"
일락은 픽! 하고 웃었다. 저렇게 찍어놓고선 보여주지도 않는다. 비밀이라나. 스마트폰 암호도 꼼꼼하게 걸어놓고 자기만 본다. 어련하시려고. 하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비밀스럽지 않은 게 없는 사람이니.
그 여인은 일락의 가게에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 할 꽃을 사러 왔었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주제로 일락이가 보라색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희한하게도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꽃들은 보라색이 많았다. 보라색 장미, 보라색 리시안셔스, 보라색 히아신스, 보라색 스타치스, 보라색 비단향꽃무, 거기에 보라색 튤립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또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일락도 잠이 들었다. 석진이 꾸는 꿈을 일락이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깨지 않는 꿈 속인 것도 같고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있는 것도 같은 시간들이 지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는데 새벽이 밝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일락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일락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눈을 뜨면 무엇을 보게 될지. 감은 눈에서 눈물만 흘러내렸다. 처음엔 소리 없이 울다가 다음엔 끅끅 숨을 삼키며 울었다. 그러다 걷잡을 수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슬퍼. 여전히.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굳이 슬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기쁨이 그러하듯이." 일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저씨가 크리스마스 선물 가져왔는데 안 궁금해?" " 전 아저씨한테 드릴 게 없는데요. 선물은 주고받는 거잖아요. 지난번에 사주신 옷이랑 구두 값도 못 갚았는데... 그리고 커피 잔 값도..." 여전히 낯가림하는 일락이었다. 정민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 그래도 좋았다.
<안녕, 라일락>은 수줍음 많은 소년과 명랑한 소녀, 아름다운 남자와 그의 연인들, 잊지 못할 첫사랑의 기억, 인간을 돌보는 천사, 천사보다 더 천사 같은 사람들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소재들이 보랏빛 향기로 전해지는 4월의 봄날 같은 따스한 소설이다.